그녀는 또 다른 이유에서 아그리장트 대공과 브레오테 씨 이야기 하기를 좋아했다. 아그리장트 대공은 아라곤 왕가에서 물려받은 대공이었으나 그의 영지는 푸아투에 있었다. 그의 시골 저택으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가 사는 집은 그 자신의 집안 소유가 아니라 어머니의 옛 남편에게서 그에게로 온 것으로, 마르탱빌과 게르망트의 거의 중간쯤에 자리해 있었다. 그리하여 질베르트는 그와 브레오테 씨를, 제 옛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시골 이웃인 양 이야기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태도에는 거짓이 얼마쯤 섞여 있었으니, 그녀가 브레오테 씨를 알게 된 것은 오직 파리에서, 몰레 백작부인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는 그녀 아버지의 오랜 벗이기는 했다. 탕송빌 언저리 시골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즐거움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속물근성이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양가 있는 것을 타서 마시는 저 감미로운 음료와 비슷하다. 질베르트가 어느 사교계 부인에게 관심을 둔 것은 그 부인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책들과 나티에가 그린 초상들을 지녔기 때문인데, 내 옛 친구는 아마 국립도서관이나 루브르에서라면 그런 것을 들여다볼 수고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나는 짐작건대, 훨씬 더 가까웠음에도 탕송빌의 자기(磁氣) 같은 이끌림은, 질베르트를 사즈라 부인이나 구필 부인 쪽으로 끌어당기는 데는 아그리장트 씨 쪽으로 끌어당기는 데보다 오히려 힘을 덜 미쳤으리라 여긴다.
“어머! 가엾은 바발과 가엾은 그리그리,” 하고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그 둘은 뒤 로보다 훨씬 딱한 처지예요, 두 사람 다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걱정이랍니다.”
게르망트 씨는 내 기사를 다 읽고 나서, 나에게 찬사를 보냈으나 거기에 단서를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샤토브리앙의 케케묵은 산문에서처럼 과장과 은유가 넘치는" 다소 진부한 문체를 아쉬워했다. 반면 내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다. "나는 사람이 제 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걸 좋아하오. 늘 잘난 척이나 하고 선동이나 일삼는 쓸모없는 인간들은 질색이지. 얼빠진 족속들이야!"
질베르트는 사교계의 몸가짐을 놀랄 만큼 빠르게 익혀 가고 있었는데, 자신이 어느 작가의 벗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고 밝혔다. "제가 사람들에게 당신과 알고 지내는 기쁨을, 영광을 누린다고 떠들고 다닐 걸 생각해 보세요."
"내일 우리와 함께 오페라코미크에 가지 않으시겠어요?" 하고 공작부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것이 아마도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던 바로 그 칸막이 좌석, 그때 나에게는 네레이스들의 해저 왕국만큼이나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보였던 그 자리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우울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요, 지금은 극장에 가지 않습니다. 무척 아끼던 벗을 하나 잃었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동안 눈에 눈물이 맺힐 뻔했으나, 그러면서도 나는 처음으로 내 상실을 이야기하는 데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내가 모든 벗들에게 방금 큰 슬픔을 겪었노라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정작 그 슬픔을 더는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바로 이 순간부터였다.
질베르트가 돌아가자 게르망트 부인이 나에게 말했다. "제 신호를 못 알아채셨군요. 스완 이야기는 꺼내지 마시라고 넌지시 알리려던 참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사과하자 부인이 말했다. "아니, 저는 충분히 이해해요. 저 자신도 그이 이야기를 꺼낼 뻔했다가 아슬아슬하게 멈췄으니까요. 끔찍했죠, 다행히 혀를 붙들었지만요. 있잖아요, 이건 정말 성가신 일이에요." 부인은 남편을 향해, 마치 내가 누구나 지니고 있어 뿌리치기 어려운 성향에 굴복했을 뿐이라고 믿는 척하며 내 실수를 덜어 주려는 듯 말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공작이 대꾸했다. "그 그림들이 당신에게 스완을 떠올리게 한다면, 다시 위층으로 치우라고 이르기만 하면 될 것 아니오. 스완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 테니."
이튿날 나는 축하 편지 두 통을 받았는데 그것이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하나는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콩브레에서조차 두 번밖에 말을 나눈 적이 없는 구필 부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어느 공공 도서관 덕분에 그녀가 피가로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삶에서 약간의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 교유의 영역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있는, 이미 우리 기억 속에서 아득해져 특히 깊이라는 차원에서 멀찍이 놓인 듯한 사람들에게서 소식이 온다. 되살아날 계기가 스무 번은 있었을 학창 시절의 잊힌 우정이 살아 있음을 알려 오기도 한다. 물론 부정적인 결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나로서는 내 기사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무척이나 듣고 싶었던 블로크는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그 기사를 읽었고 훗날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지만, 그것도 뒤늦은 반작용을 통해서였다. 실은 그 자신이 몇 해 뒤 피가로에 기고하게 되었고 그 일을 나에게 곧바로 알리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는 특권으로 여기던 것을 시샘하기를 그쳤는데, 그것이 자기에게도 굴러떨어지자마자, 내 기사를 모르는 척하게 만들었던 그 질투가 지렛대를 들어 올리듯 사라져 버렸다. 그는 나에게 그 기사 이야기를 꺼냈으나, 정작 자기 기사에 대해 내가 그렇게 말해 주기를 바라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자네도," 하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기사를 하나 썼다지.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옳다고 여겼네. 자네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서 말이야. 우리는 벗들이 겪은 굴욕을 그들에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니까. 그리고 칼과 성수 살포기의 기관지에 '파이브 오클록' 다과회 따위를, 성수반까지 빠뜨리지 않고 실어 준다는 건 누가 봐도 굴욕이지 않나." 그의 성품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의 문체는 덜 현학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징주의 시를 짓기를 그만두고 신문 연재물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특유의 버릇을 벗어 버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의 침묵을 달래려고 나는 구필 부인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러나 그 편지에는 온기가 없었다. 귀족들은 첫머리의 "Monsieur"와 맺음의 "sentiments distingués" 사이에 몇 가지 정해진 상투구를 밀폐된 칸막이처럼 끼워 넣기는 하지만, 그 사이로 환희와 감탄의 외침이 꽃처럼 피어나 그 꽃송이들이 울타리 너머로 매혹적인 향기를 실어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중산층의 상투성은 편지의 내용조차 "당신의 마땅한 성공"이라거나 기껏해야 "당신의 대단한 성공"이라는 그물로 둘둘 감싸 버린다. 제 가정교육에 충실하고 점잖은 코르셋으로 몸을 옥죈 올케들은 "저의 각별한 안부를 전합니다"라고 써 놓고는 스스로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한 열정을 쏟아 냈다고 여긴다. "어머니도 함께 인사드립니다"란 그녀들이 좀처럼 물리지 않는 최상급 표현이다.
구필 부인의 편지 말고도 나는 또 다른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보낸 이의 이름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글씨는 배우지 못한 사람의 것이었으나 문체는 매력적이었다. 나에게 편지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낼 길이 없어 나는 애가 탔다.
베르고트라면 이 기사를 마음에 들어 했을지 자문하고 있는 사이, 포르슈빌 부인이 그가 이 기사를 엄청나게 감탄하며 질투 없이는 읽지 못했으리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 준 것은 내가 잠든 사이였으니, 그것은 꿈이었다.
우리의 꿈은 거의 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복잡한 진술과 여러 인물의 무대 등장으로 응답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무런 결말에도 이르지 못한다.
포르슈빌 양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게르망트가에서 딸을 보고 싶어 그토록 애태우던 스완, 그 청을 위해 그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벗에게 초대의 호의마저 거절했던 바로 그 스완의 딸을, 이제 그들은 제 발로 찾아 나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을 다시 빚어내고,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동안 그들에 관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격을 불어넣으며, 그 사이 우리 자신도 새 살갗을 얻고 새로운 취향을 익힌 것이다. 나는 스완이 이 소녀를 껴안고 입 맞추며 이따금 이렇게 말하곤 하던 것을 떠올렸다. "얘야, 너 같은 아이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란다. 언젠가 내가 더는 이 세상에 없을 때, 사람들이 여전히 네 가여운 아빠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오직 너에게, 그리고 너 때문일 테니." 스완이 이렇게 제가 죽은 뒤 딸 속에서 살아남으리라는 소심하고 애타는 희망을 미리 품은 것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행실이 나무랄 데 없는 어린 무희에게 유산을 남기는 유언을 해 놓고는, 자신은 그녀에게 그저 소중한 벗일 뿐이지만 그녀만은 제 기억에 충실하리라고 스스로 믿는 늙은 은행가만큼이나 크게 착각한 것이었다. 과연 그녀는 나무랄 데 없이 처신했으나, 그러면서도 식탁 밑에서는 늙은 은행가의 벗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자들의 발을 제 발로 더듬어 찾았고, 이 모든 것은 흠잡을 데 없는 겉모습 아래 감추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 갸륵한 사내를 위해 상복을 입겠지만, 그에게서 벗어나 잘되었다고 여길 것이며, 그가 남긴 현금뿐 아니라 부동산과 자동차까지 마음껏 누리되, 그 전 소유자의 문장(紋章)은 자신을 다소 부끄럽게 만드는지라 잊지 않고 지워 버릴 것이고, 그 선물을 누리면서도 준 사람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결코 곁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품는 환상은 아마 다른 종류의 환상 못지않게 사람을 속인다. 숱한 딸들이 제 아버지를 그저 자기에게 재산을 남겨 줄 늙은이로만 여긴다. 질베르트가 어느 응접실에 있다는 것은, 이따금이나마 여전히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할 계기가 되기는커녕, 사람들이 그에 관해 언급할 수 있었을, 점점 더 드물어지는 그런 계기들을 붙잡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그가 했던 말이나 그가 준 선물에 관해서조차 사람들은 그를 입에 올리지 않는 버릇이 들었고, 그의 기억을 되살려야, 아니 영속시켜야 마땅했을 그녀가 도리어 그 망각과 죽음의 과정을 재촉하고 완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질베르트가 서서히 그 망각의 과정을 완성해 가고 있던 것은 비단 스완에 관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안에서 알베르틴에 관한 그 망각의 과정마저 앞당겨 놓았다.
욕망의 작용, 따라서 질베르트를 다른 사람이라 여기던 그 시간들 동안 그녀가 내 안에 불러일으킨 행복에의 욕망의 작용으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얼마간의 비참과 괴로운 집착이 풀려나면서, 알베르틴에 관한, 아마도 오래전에 이미 부스러져 위태로워진 기억의 덩어리 전체를 함께 데려가 버렸다. 왜냐하면 그녀와 얽힌 많은 기억이 처음에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내 슬픔을 살려 두는 데 이바지했지만, 그 대신 그 슬픔 자체가 그 기억들을 붙박아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 감정 상태의 변화는, 나날이 이어진 망각의 끊임없는 붕괴로 어렴풋이 준비되어 오다가 어느 순간 통째로 실현되면서, 내가 그날 처음으로 느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 인상, 곧 텅 빈 공백의 인상, 내 안에서 관념 연합의 한 부분 전체가 사라져 버린 인상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그것은 오래 시달려 온 뇌의 동맥 하나가 터져 기억의 한 구획 전체가 폐기되거나 마비되어 버린 사람이 느낄 법한 것이었다.
내 고통이, 그리고 그 고통이 함께 데려간 모든 것이 사라지자, 나는 우리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던 병이 낫고 나면 흔히 그러하듯 오히려 위축된 채로 남겨졌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것은 아마 기억이 늘 참되지만은 않기 때문이며, 또 삶이란 우리 세포의 끊임없는 갱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기억의 경우, 이 갱신은 변할 수밖에 없는 한순간을 붙들어 고정하는 주의(注意)에 의해 늦추어진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욕망이 그러하듯 슬픔 또한 그것을 곱씹음으로써 커지는 법이니, 해야 할 다른 일이 잔뜩 있다는 사실은 정결이 그러하듯 망각을 쉽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 다른 반작용으로 (물론 내 망각을 문득 뚜렷하고 또렷하게 드러내 준 것은 다름 아닌 그 심심풀이, 곧 데포르슈빌 양에 대한 욕망이었지만), 시간이 서서히 망각을 가져온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 망각은 어김없이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뿌리째 뒤바꿔 놓는다. 공간에 착시가 있듯 시간에도 착시가 있다.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던 오랜 성향, 곧 일을 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아니 차라리 살기 시작하려는 그 성향은 나에게 내가 여전히 예전만큼 젊다는 착각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도 알베르틴이 살아 있던 그 마지막 몇 달 동안 내 삶에서 잇따라 일어난 모든 사건들의 기억은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잇따라 일어난 사건들의 기억 또한, 우리는 크게 변하고 나면 우리 삶이 더 길었으리라 여기게 마련이므로) 그 몇 달을 나에게 일 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게 만들었고, 이제 이토록 많은 것에 대한 이 망각은, 아주 최근의 사건들을 텅 빈 공간의 심연으로 나에게서 갈라놓아, 이른바 그것들을 잊을 '시간'을 내가 가졌던 탓에 그것들을 아득하게 여기게 하면서, 내 기억 속에 조각조각 불규칙하게 끼어들어, 마치 바다 위의 짙은 안개가 모든 지표를 지워 버리듯, 시간 속 거리에 대한 내 감각을 뒤흔들고 파괴하여, 한 곳에서는 오그라들고 다른 곳에서는 늘어나, 나로 하여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더 멀리 있다고, 또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아직 탐험하지 않은 새로운 공간들 속에, 내가 방금 가로질러 온 지난 시간 속에 할머니에 대한 내 사랑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았듯 알베르틴에 대한 내 사랑의 자취도 더는 남지 않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내 삶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앞 시기를 지탱하던 것 가운데 아무것도 뒤이은 시기에 살아남지 못하는 여러 시기의 연속을 내보이며, 개별적이고 동일하며 항구적인 자아의 뒷받침이 그토록 결여된 것, 미래에는 그토록 쓸모없고 과거로는 그토록 길게 늘어진 것으로 나에게 비쳐서, 죽음이 그 여정을 여기서 끝맺든 저기서 끝맺든 그것을 조금도 완결 짓지 못하는 것이, 마치 수사학 수업에서 교과 과정이나 교수의 변덕에 따라 1830년 혁명에서든, 1848년 혁명에서든, 제2제정의 끝에서든 아무 데서나 무심히 멈춰 서는 프랑스사 강의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아마 내가 느끼던 피로와 괴로움은, 이미 잊어 가기 시작한 것을 헛되이 사랑했다는 데서 온 것이라기보다, 새로 사귄 살아 있는 사람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순전히 사교계의 인물들이자 게르망트가의 벗들에 지나지 않는 이들과 어울리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데서 온 것이었으리라. 내가 사랑했던 여인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이제 희미한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발견과 화해하기란, 어쩌면, 살아 있으되 기생하는 인간 초목으로 내 삶을 꾸미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그 부질없는 활동을 내 안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그 초목은 죽으면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테고, 이미 우리가 여태 알아 온 모든 것과 무연한 것이지만, 그런데도 수다스럽고 우울하며 우쭐대는 우리의 노쇠함이 기어이 끌어당기려 드는 것이다. 알베르틴 없는 삶의 전망을 손쉽게 견뎌 낼 그 새로운 자아가 내 안에 나타난 것은, 게르망트 부인 댁에서 아무런 진정한 고통도 없이 슬픔의 언어로 그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뒤부터였다. 저마다 다른 이름을 지니게 될 이 낯선 자아들, 그것들이 찾아올 가능성은, 내 사랑의 대상에 무심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늘 나를 불안하게 했다. 오래전에는 질베르트와 관련하여, 그녀의 아버지가 나에게 내가 오세아니아에 가서 살게 되면 결코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을 때 그러했고, 아주 최근에는 베르고트의 소설에서, 젊은 시절 사모하던 여인과 삶의 사건들로 헤어진 어떤 인물이 늙어서 그녀를 다시 만나되 아무런 기쁨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없이 만나는 대목을 그토록 가슴 아리게 읽었을 때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그 자아가 망각과 더불어 고통의 거의 완전한 소멸을, 위안의 가능성을 나에게 가져다주고 있었으니,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러면서도 그토록 이로운 이 존재는 다름 아닌, 운명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둔 여벌의 자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우리의 애원 따위에는, 밝은 눈을 지녀 그만큼 더 권위 있는 의사만큼이나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우리의 손을 빌리지 않고, 때맞춘 개입으로, 너무 심하게 상해 버린 자아를 대신한다. 이 갱신을 자연은 이따금, 우리 조직의 쇠퇴와 재생을 통해 이루어 내거니와,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오직 옛 자아가 큰 슬픔, 곧 괴로운 이물(異物)을 품고 있었을 때뿐이다. 우리는 그것이 더는 거기 없음을 발견하고 놀라며, 선행한 자아의 고통이 이제 한낱 낯선 이의 고통에 지나지 않아,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않는 까닭에 연민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자아가 되어 버렸다는 데 어리둥절해한다. 실로 우리는 그 모든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으니, 그것을 겪었다는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밤 동안 우리의 꿈이 끔찍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깨어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서, 우리가 잠든 사이 그 자리를 물려준 사람이 한 무리의 살인자들에게서 달아나야 했다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지는 것이다.
이 자아가 옛 자아와 얼마간의 연을 이어 온 것은 틀림없다. 마치 어떤 벗이, 상(喪)에는 마음이 무덤덤하면서도 문상 온 이들에게는 적당히 슬픈 어조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자기더러 손님을 대신 맞아 달라고 부탁한 홀아비가 아직도 흐느끼고 있을 방으로 이따금 되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잠시 다시 알베르틴의 옛 벗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연을 한층 더 가깝게 맺었다. 그러나 내가 통째로 옮아가고 있던 것은 어떤 새로운 인격 쪽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희미해지는 것은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에게는 제 벗을 나무랄 까닭이 없었다. 그의 이름을 가로챈 사내는 그저 그것을 물려받았을 뿐이니.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에 충실할 수 있으나, 우리는 우리가 알았던 것만을 기억한다. 내 새로운 자아는 옛 자아의 그늘에서 자라나면서, 그 옛 자아가 알베르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 다른 자아를 통해, 그것에게서 그러모은 소식을 통해, 새 자아는 자기가 그녀를 안다고 여겼고, 그녀를 매력적으로 여겼으며, 그녀를 사랑했으나, 이것은 한낱 전해 들은 애정에 지나지 않았다.
알베르틴에 관한 한 이 무렵 망각의 과정이 아마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그리하여 그 과정이 내 안에서 이룬 한 걸음 더 나아간 진전을 얼마 뒤 내가 거꾸로 가늠하게 해 준 또 한 사람은 (이것이 최종의 망각에 앞선 두 번째 단계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앙드레였다. 실로 나는, 이미 앞서 전한 대화가 있고 나서 여섯 달쯤 뒤에 앙드레와 나 사이에 오간 어떤 대화, 그녀의 말이 예전의 그 대화 때 쓰던 말과 그토록 달랐던 그 대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지라도, 심지어 주된 원인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하나의 조건이자 필요한 원인으로 이 알베르틴의 망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내 방에서였음을 나는 기억하는데, 그 무렵 나는 그녀와 반쯤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무리의 소녀들에 대한 내 사랑이 애초에 띠었다가 이제 다시 띠게 된 그 집합적 형태 탓이었으니, 그 사랑은 오랫동안 그녀들 사이에 나뉘지 않은 채 있다가, 한동안, 알베르틴의 죽음에 앞선 그리고 뒤이은 몇 달 동안 오로지 알베르틴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매여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내 방에 있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이 대화의 날짜를 꽤 정확히 짚을 수 있다. 그것은 엄마의 접견일이라 내가 집의 나머지 공간에서 쫓겨나 있었기 때문이다. 접견일인데도 엄마는 얼마간 망설인 끝에 사즈라 부인 댁으로 점심을 들러 갔는데, 사즈라 부인은 늘 지루한 사람들과 마주치게끔 손님을 청하는지라 아무런 즐거움도 포기하지 않고 제때 집에 돌아올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과연 엄마는 제때, 아쉬움 없이 돌아왔으니, 사즈라 부인 댁에는 손님이 오면 그녀가 짓는 그 유별난 목소리, 엄마가 그녀의 수요일 목소리라 부르던 그 목소리에 처음부터 얼어붙어 버린,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한 사람들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녀를 무척 아꼈고, 그 가난을 안타까워했다. 그것은 X 공작부인에게 재산을 탕진당한 그녀 아버지의 방탕이 빚은 가난, 그녀로 하여금 일 년 내내 콩브레에서 지내며, 파리의 사촌 집에서 몇 주를, 그리고 십 년에 한 번 성대한 "유람 여행"을 누리게 할 뿐인 그런 가난이었다.
나는 이 일이 있기 전날, 몇 달 전부터 되풀이한 내 청에 따라, 또 대공비가 늘 그녀에게 와 달라고 졸랐기에, 엄마가 파름 대공비를 방문하러 갔던 일을 기억한다. 대공비 자신은 아무 데도 답방을 다니지 않았고, 그 댁에서는 사람들이 으레 이름만 적어 두고 오는 것으로 그쳤으나, 대공비는 규례상 자기가 우리 집에 올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어머니가 자기를 보러 와 주기를 한사코 고집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잔뜩 언짢아진 채 집에 돌아왔다. "너 때문에 괜한 헛걸음을 했구나."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파름 대공비는 나에게 인사도 겨우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이야기 나누던 부인들 쪽으로 돌아앉아 나에겐 눈길 하나 주지 않더구나. 그러고는 십 분이 지나도록 나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기에, 손 한 번 내밀어 주지 않는데도 나는 그냥 나와 버렸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그래도 나오는 길에 문간에서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만났는데, 그이는 무척 상냥하게 굴며 네 이야기를 한참 하더구나. 그이에게 알베르틴 얘기를 하다니 참 별난 생각도 다 했지. 네가 그이에게 그 애의 죽음이 너에게 그토록 큰 슬픔이었다고 말했다더구나. 나는 다시는 파름 대공비 근처에도 가지 않을 테다. 너 때문에 내가 바보 꼴이 되고 말았어."
자, 그 이튿날, 앞서 말했듯 어머니의 접견일에 앙드레가 나를 보러 왔다. 그녀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 무척 함께 저녁을 들고 싶어 하던 지젤을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 애 결점이야 나도 알지만, 그래도 결국 내 가장 친한 벗이고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야."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자기들과 함께 저녁을 들게 해 달라 청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마간 겁을 내는 기색마저 보였다. 그녀는 사람들에 굶주려 있었으므로, 나처럼 자기를 너무 잘 아는 제삼자는 그녀가 마음껏 풀어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뜸 그녀가 그들과 어울리며 온전한 만족을 누리는 것을 방해할 터였다.
알베르틴의 기억은 내 안에서 어찌나 조각조각 부서졌던지 더는 나에게 아무런 슬픔도 일으키지 않았고, 이제는 조바꿈을 예고하는 화음처럼 새로운 욕망으로 넘어가는 이행에 지나지 않았다. 실로, 한순간의 관능적 변덕이라는 생각을 접어 둔다면, 내가 알베르틴의 기억에 여전히 충실한 한, 나는 기적처럼 되살아난 알베르틴을 곁에 두는 것보다 앙드레를 곁에 두는 것이 더 행복했다. 앙드레는 알베르틴 자신이 나에게 들려준 적 없는 것들까지 알베르틴에 관해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베르틴에 관한 물음들은, 그녀에 대한 내 애정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미 사라져 버린 뒤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알고 싶은 내 욕망은, 덜 줄어들었던 까닭에, 이제 그녀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져 있었다. 한편 어떤 여자가 알베르틴과 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제 내 안에 그 여자와 나 역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망 말고는 아무것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앙드레를 어루만지며 이 말을 그녀에게 했다. 그러자 앙드레는, 몇 달 전에 했던 말과 제 이야기를 맞추려는 노력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은근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했다. "아! 그래요, 하지만 당신은 남자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내가 알베르틴과 하던 것을 똑같이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내 욕망을 (알베르틴과 관계를 맺었던 여자와 나도 관계를 맺고 싶다고, 속내를 캐낼 속셈으로 그녀에게 말해 둔 터였다) 키운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내 슬픔을 키운다고 여겼는지, 그도 아니면 알베르틴과 관계를 맺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데서 내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품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그것을 허물어뜨리려 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아! 우리는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 애는 어찌나 다정하고, 어찌나 열정적이던지. 게다가 그 애가 즐기기를 좋아한 상대는 나만이 아니었어요. 그 애는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 착한 청년 하나를 만났죠, 모렐 말이에요. 둘은 대번에 서로 뜻이 통했어요. 그는 (자기도 그들과 함께 즐겨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처녀를 좋아했으니까) 그 애에게 어린 계집아이들을 구해다 주기로 했어요. 그들을 그 길로 들여놓기가 무섭게 그는 그 애들을 버렸죠. 그런 식으로 그는 한적한 온천장의 어린 어부 처녀들이며 젊은 세탁부들, 총각에게라면 반해도 계집애의 꼬임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을 그런 애들을 꾀어 오는 일을 도맡았어요. 계집아이가 그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오기가 무섭게, 그는 그 애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알베르틴에게 넘겼죠. 그 일에 함께 끼어 있던 모렐을 잃을까 봐 계집아이는 늘 고분고분 따랐지만, 그래도 결국 그를 잃고 말았어요. 그는 무슨 일이 생길까 겁을 냈고, 게다가 한두 번이면 족했으므로, 거짓 주소를 남긴 채 슬며시 빠져나가 버렸으니까요. 한번은 그가 뻔뻔스럽게도 그런 계집아이 하나를 알베르틴과 함께 코를리빌의 어느 유곽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서 네댓 명의 여자가 그 애를 한꺼번에, 혹은 번갈아 가며 안았어요. 그게 그의 열정이었고, 알베르틴의 열정이기도 했죠. 하지만 알베르틴은 나중에 끔찍한 가책에 시달렸어요. 나는 그 애가 당신과 함께 지낼 때는 제 열정을 억누르고 그것에 빠지는 것을 하루하루 미루었다고 믿어요. 그때는 당신에 대한 애정이 어찌나 강했던지 양심의 거리낌을 느꼈던 거죠. 하지만 언젠가 당신을 떠난다면 그 애가 다시 시작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했어요. 그 애는 당신이 자기를 구해 주기를, 자기와 결혼해 주기를 바랐어요. 그 애는 그것이 일종의 죄스러운 광기임을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죠. 그래서 나는 이따금, 그런 일이 어느 집안에서 자살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고 난 뒤에, 그 애가 일부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닐까 자문하곤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애가 당신과 함께 살기 시작한 초기에도 나와의 장난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어요. 그것이 필요한 듯 보이던 날들이 있었죠, 어찌나 그랬던지 한번은, 다른 데서라면 훨씬 쉬웠을 텐데도, 당신 집에서 나를 잠자리로 데려가지 않고서는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더군요. 우리는 운이 없었어요, 하마터면 들킬 뻔했죠. 그 애는 프랑수아즈가 무슨 심부름을 나가고 당신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탔던 거예요. 그러고는 등불을 죄다 꺼 두었죠, 그래야 당신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도 스위치를 찾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요. 게다가 자기 방문도 닫아 두지 않았고요. 우리는 당신이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고, 나는 겨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내려가기 시작할 틈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 부질없는 짓이었으니, 믿기 힘든 우연으로 당신이 열쇠를 집에 두고 나가는 바람에 초인종을 눌러야 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넋이 나가 버려서, 우리의 낭패를 감추려고 둘 다, 미리 상의할 틈도 없이,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어요. 사실은 우리 둘 다 무척 좋아하던 시링가 향기를 겁내는 척하기로 한 거죠. 당신이 그 긴 가지를 하나 집으로 들고 들어오던 참이라, 나는 그 덕에 고개를 돌려 당황한 낯빛을 감출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더없이 어리석게, 어쩌면 프랑수아즈가 돌아와 당신에게 문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고 당신에게 말했죠, 바로 조금 전에는 우리가 방금 마차 나들이에서 돌아왔을 뿐이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프랑수아즈는 아직 집을 나서지 않은 채 막 심부름을 가려던 참이었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서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실수는, 당신이 열쇠를 지녔으려니 여기고 등불을 꺼 버린 것이었어요. 당신이 층계를 올라오다 그것이 다시 켜지는 걸 볼까 봐 겁이 났거든요, 아니 적어도 우리는 너무 오래 망설였죠. 그러고 나서 사흘 밤을 내리 알베르틴은 눈 한 번 붙이지 못했어요, 당신이 의심을 품고 프랑수아즈에게 왜 집을 나서기 전에 등불을 켜 두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지나 않을까 늘 겁을 냈으니까요. 알베르틴은 당신을 몹시 두려워했고, 이따금 나에게 당신이 심술궂고 인색하며 실은 자기를 미워한다고 힘주어 말하곤 했어요. 사흘이 지나자 그 애는 당신이 태연한 것을 보고 당신이 프랑수아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을 알아채고서야 다시 잠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뒤로는 나와 다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두려움에서, 어쩌면 가책에서였겠죠, 그 애는 정말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우겼으니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그 뒤로는 누구든 그 애가 듣는 데서 시링가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그 애는 새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려 홍조를 감추려 들지 않고는 못 배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