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베르트로 말하자면, 그녀를 아끼고 그녀의 품위를 어느 정도 존중하던 사람들은 공작부인의 태도가 그녀에게 달라진 것을 두고, 질베르트가 스물다섯 해에 걸친 모욕 끝에 찾아온 접근을 경멸하듯 뿌리쳐 마침내 그 모욕을 갚아 주리라 여길 때에만 기뻐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도덕적 반응이 늘 상식이 상상하는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때 아닌 모욕으로 자기가 애착을 둔 사람의 우정을 얻을 희망을 영영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자가, 오히려 그로써 제 자리를 굳혔음을 깨닫기도 한다.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무심하던 질베르트는, 그 오만한 게르망트 부인을 늘 감탄하며 떠올리고, 그런 오만함의 까닭을 자문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정말이지 한번은(이는 그녀에게 얼마간 애정을 보이던 사람들 모두를 그녀 때문에 부끄러워 죽고 싶게 만들 일이었으리라) 공작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가 아무런 해도 끼친 적 없는 처녀에게 무슨 유감이 있느냐고 물어보리라 마음먹기까지 했다. 게르망트가는 그녀의 눈에, 그 가문의 태생으로는 도저히 줄 수 없었을 만큼 커다란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그녀는 그들을 모든 귀족 위에 둘 뿐 아니라 모든 왕가 위에까지 올려놓았다.
스완의 오랜 여자 친구이던 몇몇 부인이 질베르트에게 큰 관심을 두었다. 귀족 사회가 그녀의 최근 상속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얼마나 매력적인 아내가 되겠는지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게르망트 부인의 사촌인 니에브르 대공비가 제 아들의 짝으로 질베르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게르망트 부인은 니에브르 부인을 미워했다. 그녀는 그런 결혼이 추문이 되리라고 떠들어 댔다. 니에브르 부인은 겁이 나서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다고 맹세했다. 어느 날 점심 뒤, 볕이 좋아 게르망트 씨가 아내를 데리고 나서려던 참에, 게르망트 부인은 거울 앞에서 모자를 매만지며, 그 푸른 눈으로 제 모습과 아직 금빛인 머리칼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녀는 여주인이 고를 수 있도록 여러 양산을 손에 들고 있었다. 볕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두 사람은 좋은 날씨를 틈타 생클루로 방문을 가기로 정한 터였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진줏빛 회색 장갑을 끼고 실크해트를 머리에 얹은 게르망트 씨는 속으로 ‘오리안은 정말 아직도 놀랍단 말이야. 참으로 매혹적이야’ 하고 생각하더니, 아내가 기분이 좋아 보이자 소리 내어 말을 이었다. “참, 비를레프 부인이 당신한테 전하는 말이 있소. 월요일에 오페라 극장으로 오시라 청하고 싶었는데, 스완네 딸을 데리고 가는 참이라 차마 못 하고 나더러 넌지시 떠보라 하더군. 나야 아무 의견 없이 그저 전할 따름이오. 하지만 정말이지, 우리도 얼마든지…” 하고 그는 얼버무렸으니, 남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가 하나로 묶여 저마다 똑같은 꼴로 나타나는지라, 그는 제 심경으로 미루어 아내가 스완 양에게 품었던 적의가 가라앉았고 오히려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은 베일을 마음에 들게 매만지고 양산 하나를 골랐다.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 나야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 아이를 만난다고 안 될 이유는 없죠. 다만 우리가 친구들의 수상쩍은 살림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당신 말이 지당하오,” 하고 공작이 대답했다. “당신은 지혜의 화신이오, 부인, 그 모자를 쓰니 어느 때보다 황홀하구려.” “친절하기도 하셔라,” 하고 게르망트 부인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남편에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마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한마디 더 덧붙여 두는 것이 도리라고 느꼈다. “요즘은 그 어머니를 찾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한 데다, 그 여자도 일 년에 아홉 달은 앓아누울 눈치는 있으니까요… 아이는 아주 사랑스럽다더군요. 우리가 스완을 무척 아꼈던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요. 다들 지극히 당연하게 여길 거예요.”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생클루로 떠났다.
한 달 뒤, 아직 포르슈빌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은 스완네 딸이 게르망트가로 점심을 들러 왔다. 온갖 이야깃거리가 다 오갔고, 식사가 끝날 무렵 질베르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제 아버지를 아주 잘 아셨다지요.” “아무렴, 잘 알았고말고,” 하고 게르망트 부인은, 그 딸의 슬픔을 헤아린다는 것을 드러내는 애잔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정작 그 아버지를 기억하는지조차 확실치 않다는 사실을 감추려는 듯 일부러 지나치게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그이를 아주 잘 알았어요, 나는 그이를 아주 잘 기억하고요.” (하기야 그가 스물다섯 해 동안 거의 매일 그녀를 찾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잘 알아요, 들어 봐요,” 하고 그녀는, 그 딸에게 어떤 아버지를 두었는지 설명하고 그에 관한 정보를 일러 주려는 듯 말을 이었다. “그이는 내 시어머니와 아주 가까운 벗이었고, 게다가 내 시동생 팔라메드와도 무척 친했지요.” “이곳에도 오시곤 했지요, 아니 여기 점심을 들러 오시곤 했답니다,” 하고 게르망트 씨가 짐짓 겸손을 부리면서도 꼼꼼히 정확을 기하며 덧붙였다. “당신도 기억하죠, 오리안. 당신 아버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소. 점잖은 집안 출신임을 대뜸 알 수 있었지. 실은 나도 오래전에 그분의 부친과 모친을 한 번 뵌 적이 있소. 그분들이며 그분이며, 어찌나 훌륭한 분들이던지!”
부모와 아들이 아직 살아 있었더라면 게르망트 공작은 그들을 정원사 자리에 추천하는 데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포부르 생제르맹은 어느 부르주아에게든 다른 부르주아를 두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법이니, 대화가 오가는 동안 듣는 이만은 예외로 쳐 준다는 투로 그를 치켜세우려는 것이거나, 아니 오히려 그와 동시에 그를 욕보이려는 것이다. 반유대주의자가 유대인에게 말을 건네며 온갖 상냥함으로 그를 감싸는 바로 그 순간에, 무례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줄 수 있게끔 두루뭉술한 투로 유대인을 헐뜯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게르망트 부인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에게 찬사를 쏟아붓고는 좀처럼 그를 놓아 보내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몸소 곁에 있어야 한다는 욕구의 노예이기도 했다. 스완은 예전에는 이따금 대화의 열기 속에서 공작부인에게 자기를 다정하게 여긴다는 착각을 심어 줄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이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하고 공작부인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질베르트에게 다정한 눈길을 붙박은 채 말했으니, 만약 그 처녀가 섬세한 감정을 지녔다면 적어도 자기가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만약 둘만 있고 사정이 허락했더라면 게르망트 부인이 제 감정의 깊이를 온통 그녀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했으리라는 것을 그 눈길로 알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게르망트 씨는, 정말로 그런 감정의 토로를 사정이 허락지 않는다고 여겨서든, 아니면 감정을 과장하는 것은 죄다 여자들의 몫이며 남자란, 자기가 공작부인보다 더 훤히 알기에 따로 챙겨 둔 부엌과 술광을 빼면 다른 온갖 여성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낄 자리가 없다고 여겨서든, 눈에 띄게 못마땅한 기색으로 듣고 있던 이 대화에 자기까지 끼어들어 부추기지는 않는 것이 도리라고 느꼈다.
게다가 게르망트 부인은, 이 감정의 격발이 가라앉자, 세속적인 경박함을 담아 질베르트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그이는 내 시동생 샤를뤼스의 절친한 벗이었을 뿐 아니라, 부아즈농에서도 아주 귀염받는 손님이었답니다”(부아즈농은 게르망트 대공의 시골 저택이다). 마치 스완이 샤를뤼스 씨며 대공과 아는 사이인 것이 한낱 우연인 양, 마치 공작부인의 시동생과 사촌이 어떤 특별한 사연으로 스완과 우연히 가까워진 두 사람인 양 하는 말이었지만, 실은 스완은 그 무리의 사람들 모두와 가까웠다. 또한 그것은 게르망트 부인이 질베르트에게 그 아버지가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림잡아 알려 주려는 것, 곧 우리가 본디 알 리 없는 누군가를 어쩌다 알게 된 경위를 설명하려 하거나 이야기에 무게를 더하려 할 때 그 사람을 소개해 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대는, 그런 인물 소묘 가운데 하나로 그를 “자리매김”하려는 것이었다.
질베르트로 말하자면, 그녀 자신이 어서 화제를 바꾸고 싶던 참이라 그 이야기가 그친 것이 한결 더 반가웠으니, 그녀는 스완에게서 그 절묘한 재치를, 공작 부부가 높이 사서 어서 또 오라고 청할 만한 지적인 매력과 아울러 물려받은 터였다. 게다가 삶에 아무 목적도 없는 사람들 특유의 세세한 관찰벽으로, 그들은 사귀는 사람들에게서 더할 나위 없이 뻔한 장점을 하나하나 짚어 내고는, 시골에 나갔다가 풀잎 한 오라기를 발견한 도회 사람처럼 천진한 놀라움으로 감탄을 터뜨리는가 하면, 반대로 그것을 현미경으로 보듯 부풀려 끝없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으며 사소한 흠에도 발끈하고, 흔히 같은 사람에게 그 두 방식을 번갈아 들이대곤 했다. 질베르트의 경우에도 게르망트 씨와 부인의 한가로운 통찰력이 우선 겨눈 것은 바로 이런 자잘한 매력이었다. “저 애가 어떤 낱말을 발음하는 투 봤어요?” 하고 그 처녀가 떠난 뒤 공작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꼭 스완 같더군요, 그이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어요.” “나도 바로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소, 오리안.” “재치도 있고, 제 아비를 꼭 빼닮았어요.” “내 생각엔 아비보다 훨씬 낫소. 해수욕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던지, 생각해 보구려. 스완에겐 없던 생기가 저 애한테는 있단 말이오.” “어머! 그래도 그이는 어쨌든 꽤 재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이가 재치 없었다는 게 아니라, 생기가 모자랐다는 거요,” 하고 게르망트 씨는 볼멘소리로 말했으니, 통풍 탓에 신경이 곤두선 그는 달리 화풀이할 상대가 없으면 공작부인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다. 그러나 그 까닭을 뚜렷이 헤아릴 줄은 몰랐던 터라, 그는 차라리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인 척하는 편을 택했다.
공작 부부의 이 다정한 태도는, 앞으로 그들이 기껏해야 질베르트에게 이따금 “가엾은 당신 아버지” 정도의 말이나 흘리리라는 뜻이었는데, 하기야 그마저도 전혀 쓸데없는 일이었으니, 바로 이 무렵 포르슈빌이 그 처녀를 입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아버지”라 불렀고, 그 예의와 기품 있는 태도로 노부인들을 죄다 매료했으며, 포르슈빌이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후하게 대했다면 그 처녀도 마음씨가 고와 그 수고에 보답할 줄 안다는 평이 자자했다. 아마도 그녀는 이따금 자기가 아주 마음 편히 지낸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고 또 보여 주고 싶었던 까닭에, 내게 다시 자기를 소개하고 나와 이야기하며 제 친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으리라. 그러나 이는 예외였을 뿐, 이제는 누구도 그녀 앞에서 감히 스완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나는 마침 응접실에서 엘스티르의 소묘 두 점을 발견한 참이었는데, 그것들은 전에는 위층의 작은 방으로 쫓겨나 있어 내가 오직 우연히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엘스티르는 이제 유행하는 화가가 되어, 게르망트 부인은 그의 그림을 그토록 많이 사촌에게 줘 버린 것을 두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으니, 그것이 유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와서 그 진가를 알아보게 된 까닭이었다. 유행이란 실로 게르망트가 같은 사람들 몇몇이 내리는 평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다른 그림을 사들일 엄두는 낼 수 없었으니, 그것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한 터였다. 그녀는 적어도 엘스티르의 무언가는 제 응접실에 두겠노라 마음먹고, 자기가 “그의 유화보다 더 좋아한다”고 공언하던 이 소묘 두 점을 아래로 내려다 놓은 것이었다.
질베르트는 그 소묘들을 알아보았다. “엘스티르 같은데요,” 하고 그녀가 넌지시 말했다. “아무렴, 그래요,” 하고 공작부인은 무심코 대꾸했다. “실은 당신 아…, 우리 친구 몇이 우리한테 사게 한 거예요. 감탄할 만하지요. 내 보기엔 그이 유화보다 낫답니다.” 이 이야기를 못 들은 나는 소묘를 살펴보려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 이건 그 엘스티르인데…”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절망하며 보내는 눈짓을 알아챘다. “아, 그래요! 위층에서 감탄하며 보았던 그 엘스티르로군요. 그 복도에서보다 여기서 훨씬 더 잘 보이는데요. 엘스티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제 피가로에 실린 글에서 그를 언급했어요. 혹시 읽어 보셨나요?” “당신이 피가로에 글을 썼다고?” 하고 게르망트 씨는 마치 “아니, 저 애가 내 사촌이라니”라고 외치기라도 하듯 격하게 소리쳤다. “네, 어제요.” “피가로에 말이오, 정말이오? 그것참 놀랍구려. 우리는 저마다 피가로를 받아 보는데, 둘 중 하나가 놓쳤다면 다른 하나가 분명 알아챘을 게 아니오. 그렇지 않소, 오리안, 신문엔 아무것도 없었잖소.” 공작은 피가로를 가져오게 하더니, 앞서만 해도 내가 글을 실은 신문을 잘못 말했을 공산이 크다는 투로 굴다가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도무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당신이 피가로에 글을 썼다는 말이오?” 하고 공작부인은 자기 관심 밖의 일을 화제로 삼느라 애를 쓰며 말했다. “그만하고, 바쟁, 그건 이따 읽으시구려.” “안 돼요, 공작님이 그렇게 큼직한 수염을 신문 위로 드리우고 계시니 참 멋진걸요,” 하고 질베르트가 말했다. “저는 집에 가는 대로 읽겠어요.” “그래요, 다들 말끔히 면도하는 판에 저이는 수염을 기른답니다,” 하고 공작부인이 말했다. “저이는 남들 하는 대로는 도무지 하는 법이 없어요. 우리가 갓 결혼했을 무렵엔 수염은 물론 콧수염까지 밀어 버렸지요. 얼굴을 모르는 농부들은 저이가 프랑스 사람일 리 없다고 여겼답니다. 그때는 저이를 데 롬 대공이라 불렀지요.” “지금도 데 롬 대공이 있나요?” 하고 질베르트가 물었으니, 그 오랜 세월 자기에게 인사하기를 거부했던 사람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에나 그녀는 관심이 있었다. “아뇨, 없어요!” 하고 공작부인은 애잔하고 어루만지는 듯한 눈길로 대답했다. “참으로 멋진 칭호인데! 프랑스에서 손꼽히게 훌륭한 칭호 가운데 하나잖아요!” 하고 질베르트가 말했으니, 시계가 정각을 알리듯 어떤 종류의 진부함이 제법 총명한 사람들의 입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법이다. “그래요, 나도 그게 아쉬워요. 바쟁은 제 누이의 아들이 그 칭호를 잇기를 바랐지만, 그건 같은 게 아니에요. 하기야 반드시 맏아들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 칭호가 아우에게 넘어갈 수도 있어 못 될 일은 아니지만요. 그 무렵 바쟁이 말끔히 면도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죠. 하루는 어느 순례에서, 당신도 기억하죠 여보,” 하고 그녀는 남편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 파레르모니알 순례 말이에요, 늘 농부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내 시동생 샤를뤼스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어디서 오셨소?’ 하고 묻더군요. 그리고 워낙 인심이 후한지라 뭔가를 쥐여 주고 데려가 한잔 사 주기도 했지요. 메메만큼 소탈하면서 동시에 오만한 사람은 세상에 다시없으니까요. 그이는 어느 공작부인이 자기 눈에 충분히 공작부인답지 않으면 인사도 마다하면서, 정작 사냥개지기에게는 찬사를 늘어놓는답니다. 그래서 내가 바쟁에게 말했죠. ‘자, 바쟁, 당신도 저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 좀 걸어 봐요.’ 그다지 재치가 넘치는 편은 아닌 내 남편이…” “고맙기도 하오, 오리안,” 하고 공작은 넋을 잃고 읽던 내 글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말했다. “…농부 하나에게 다가가 제 동생의 물음을 고스란히 되풀이했지요. ‘어디서 오셨소?’ ‘저는 레 롬에서 왔습니다.’ ‘레 롬에서 왔다고. 아니, 그럼 내가 자네 대공일세.’ 그러자 농부는 바쟁의 매끈한 얼굴을 쳐다보더니 대꾸하더군요. ‘거짓말 마쇼. 당신은 영국 사람이잖우.’”3 이렇게 공작부인이 들려주는 일화들 속에서, 데 롬 대공 같은 그 위대하고 고귀한 칭호들이, 마치 어떤 기도서에서 그 시대의 군중 한가운데로 부르주의 우뚝한 첨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듯, 제 본디 모습과 고장의 빛깔을 띤 채 제자리로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인이 방금 문간에 두고 간 명함 몇 장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이 여자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이게 다 당신 덕이에요, 바쟁.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당신한테 무슨 득이 된 것도 아니지만요, 가엾은 양반,” 하더니 질베르트 쪽으로 돌아앉아 말했다. “이 여자가 누군지 당신한테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정말 모르겠네요, 당신은 분명 이름도 들어 본 적 없을 거예요, 자기를 러퍼스 이스라엘 부인이라 부른답니다.”
질베르트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저는 그분을 몰라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이는 더욱더 사실이 아니었으니, 이스라엘 부인과 스완은 스완이 죽기 두 해 전에 화해했고 그녀는 질베르트를 세례명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누구를 말씀하시는지는 잘 알아요.” 실은 질베르트는 대단한 속물이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언젠가 다른 처녀가, 심술에서였든 타고난 눈치 없음에서였든, 그녀에게 양아버지 말고 친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또 해야 할 말의 노골적임을 누그러뜨리려는 듯, 그 이름을 “수안”이라 발음하는 대신 “스반”이라 말했는데, 이는 그녀도 곧 깨달았듯 더 나빠진 셈이었으니, 영국계인 이 이름을 독일식 성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더 높이 오르려 스스로를 낮추며 이렇게까지 말했다. “제 출생을 두고 별의별 이야기가 다 돌지만, 물론 저야 그런 건 전혀 몰라요.”
질베르트가 제 부모를 떠올릴 때면(스완 부인조차 그녀에게는 좋은 어머니로 여겨졌고 또 실제로 그러했으므로) 삶에 대한 그런 태도를 어느 순간에는 부끄럽게 느꼈을 것이 분명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그 태도의 요소들이 필시 그 부모에게서 빌려 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제 인격 전부를 스스로 빚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는 일정한 양의 이기심에 아버지 집안 고유의 또 다른 이기심이 결합하는데, 이는 반드시 그것이 더해진다거나 곱절이 되는 배수로 작용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더 강하고 더 무서운 새로운 이기심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상이 시작된 이래 흘러온 세월 동안, 어떤 결함이 한 형태로 존재하는 집안이 같은 결함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집안과 통혼하여 그 자손에게 그 결함의 유난히 복잡하고 가증스러운 변종을 빚어 오는 사이, 쌓이고 쌓인 이기심들은(당분간 이 결함에만 국한하자면) 이미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만한 힘을 얻었으련만, 마치 무한히 증식하는 적충이 우리 행성을 파괴하지 못하게, 식물의 단성 수정이 식물계를 절멸시키지 못하게 막는 것과 비슷한 자연적 제약을, 그 병 자체가 제 참된 크기로 줄일 힘과 함께 낳지 않았더라면 그러했으리라. 이따금 하나의 미덕이 이 이기심과 결합하여 새롭고 사심 없는 힘을 만들어 낸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도덕의 화학이 이렇듯 너무 가공스러워지던 요소들을 안정시켜 무해하게 만드는 그 조합은 끝이 없어, 가문의 역사에 흥미진진한 다채로움을 안겨 줄 만하다. 게다가 질베르트에게 배어 있었을 이런 쌓인 이기심들과 더불어 부모의 어떤 사랑스러운 미덕이 함께 깃들어 있어, 잠깐 그것만으로 막간극을 펼치듯 온전한 진심으로 제 감동적인 몫을 연기하는 듯 보인다.
물론 질베르트가 자기가 어쩌면 어느 대단한 인물의 사생아일지 모른다고 넌지시 내비칠 때만큼 늘 멀리 나갔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제 출신을 감추었다. 어쩌면 그저 그것을 털어놓기가 너무 괴로워, 남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실을 알게 되기를 더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자기가 그것을 숨기고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니, 그것은 동시에 의심은 아닌 저 아리송한 믿음, 우리가 참이라 여기고 싶은 것에 여지를 남겨 두는 믿음으로서, 뮈세가 신에 대한 희망을 말할 때 그 한 예를 보여 주는 그런 믿음이다. “저는 그분을 직접은 몰라요,” 하고 질베르트는 말을 이었다. 자기를 포르슈빌 양이라 부르면서,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가 스완의 딸임을 모르리라는 희망이라도 결국 품었던 것일까? 어쩌면 몇몇 사람만이라도, 그리고 그녀가 바라기로는 그 몇몇이 언젠가 모든 사람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그 순간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녀도 착각할 수 없었고, 많은 사람이 “저 애가 스완의 딸 아냐?” 하고 수군대고 있으리라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것을 아는 방식은, 우리가 무도회에 가는 길에 어떤 이들이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소식을 접할 때의 그것, 곧 우리가 굳이 직접 받은 인상에 바탕을 둔 더 정확한 앎으로 바꾸려 애쓰지 않는, 아득하고 어렴풋한 앎일 뿐이었다. 적어도 이 몇 해 동안 질베르트는, 남에게 보이지 않으리라는 희망에서가 아니라, 그것은 좀처럼 그럴 성싶지 않다고 여겼으므로, 남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보지 않으려는 희망에서 머리를 파묻는 부류,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타조 가운데 가장 흔한 변종에 속했으니, 그렇게 하는 편이 그녀에게는 다행스럽게 여겨졌고 나머지는 운에 맡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거리가 사물을 더 작게, 더 아리송하게, 덜 위험하게 만들어 주듯, 질베르트는 남들이 자기가 태생으로는 스완임을 알아채는 그 순간에 그들 곁에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마음속에 그려 보는 사람들 곁에 있는 셈이고,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으므로, 질베르트는 신문이 자기를 포르슈빌 양이라 불러 주는 편을 더 좋아했다. 하기야 자기가 직접 쓰는 글, 곧 편지에서는, 그녀는 “G. S. 포르슈빌”이라 서명하며 얼마 동안 그 이행을 늦추기는 했다. 이 서명의 진짜 위선은 “스완”이라는 낱말의 나머지 글자들을 지운 데 있다기보다 “질베르트”라는 낱말의 글자들을 지운 데서 뚜렷이 드러났다. 실은 그 순진한 세례명을 한낱 G 한 자로 줄임으로써, 포르슈빌 양은 벗들에게 “스완”이라는 이름에 가한 이 비슷한 절단이 그저 줄여 쓸 필요 때문일 뿐이라고 넌지시 내비치는 듯했다. 정말이지 그녀는 S에 특별한 무게를 실어, 거기에 일종의 긴 꼬리를 달아 G를 가로질러 뻗치게 했으나, 그 꼬리는 아직 원숭이에게는 길게 남아 있으되 사람에게서는 사라져 버린 꼬리처럼, 한때의 것이며 곧 사라질 운명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속물근성 속에는 스완의 지적인 호기심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오후에 그녀가 게르망트 부인에게 뒤 로 씨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묻던 것을, 그리고 공작부인이 그는 병약해서 도무지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질베르트가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덧붙이며 묻던 것을 기억한다. (뒤 로 후작은 과연 스완이 결혼하기 전 그 가장 가까운 벗들 가운데 하나였고, 질베르트도 어쩌면 몸소 그를 본 적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은 그녀가 아직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던 시절의 일이었다.) “브레오테 씨나 아그리장트 대공이 그분과 조금이라도 비슷할까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어머! 조금도 안 닮았어요,” 하고 게르망트 부인이 외쳤으니, 그녀는 이런 지방색의 차이에 예민한 감각을 지녀, 담담하면서도 제 거칠고 금빛 어린 목소리로, 제비꽃빛 두 눈의 부드러운 피어남 아래 물들인 초상을 그려 냈다. “아뇨, 조금도요. 뒤 로는 페리고르 출신의 신사로, 매력적이고, 그 고장 특유의 온갖 좋은 예절과 격식 없음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어요. 게르망트에서 영국 왕을 맞았을 때, 뒤 로는 그분과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는데, 우리는 남자들이 사냥에서 돌아오면 조촐하게 요기를 하곤 했지요… 그맘때가 뒤 로가 제 방으로 가서 장화를 벗고 두툼한 털 슬리퍼로 갈아 신는 버릇이 있는 시각이었어요. 그런데 에드워드 왕과 뭇 대공들이 계셔도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 털 슬리퍼 바람으로 게르망트의 대청으로 내려왔답니다. 그는 자기가 뒤 로 돌망 후작이니 영국 왕 때문에 굳이 격식을 차릴 까닭이 없다고 여겼던 거예요. 그와 저 매력적인 카지모도 드 브르퇴유, 그 둘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사람들이었어요. 하기야 그들은 …의 아주 절친한 벗이기도 했지요”(그녀는 “당신 아버지”라고 말하려다 뚝 그쳤다). “아뇨, 그리그리와도, 브레오테와도 전혀 닮은 데가 없어요. 그는 페리고르의 진짜배기 귀족이었으니까요. 하기야 메메가 생시몽에서 돌망 후작에 관한 한 대목을 곧잘 외는데, 꼭 그 사람 같답니다.” 나는 그 인물 소묘의 첫 대목을 읊었다. “돌망 씨는 페리고르의 귀족 가운데서도 그 태생으로나 그 공덕으로나 크게 뛰어난 인물로, 그 고장의 살아 있는 모든 이에게, 그 정직함과 능력과 온화한 몸가짐 덕에 저마다 기대어 찾는 두루 통하는 조정자로, 이를테면 그 고장의 우두머리 수탉처럼 여겨졌다.” “그래요, 꼭 그 사람이에요,” 하고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게다가 뒤 로는 늘 수탉처럼 벌겠으니 더 그렇지요.” “네, 저도 그 대목이 인용되는 걸 들은 기억이 나요,” 하고 질베르트는, 그것을 인용한 이가 다름 아닌 제 아버지, 우리가 알다시피 생시몽을 크게 흠모하던 그 아버지였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은 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