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순간이 있듯, 너무 늦게 찾아오는 불운도 있어서, 그것들은 조금만 일렀더라면 우리 눈에 지녔을 그 온갖 무게를 더는 지니지 못한다. 앙드레의 그 끔찍한 폭로가 나에게 안긴 재앙도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나쁜 소식이 마땅히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할 때조차, 대화의 흥취와 균형 잡힌 주고받음 속에서 그 소식이 우리 곁을 멈추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있으니, 우리 자신이 화답으로 해야 할 수많은 말에 골몰한 채, 지금의 상대를 즐겁게 해 주려는 욕망에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잠시나마 애정으로부터, 이곳에 들어서며 벗어 던졌다가 그 짧은 마법이 풀리면 다시 마주하게 될 그 고통으로부터 보호받는 터라, 그 소식을 받아들일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애정, 그 고통이 지나치게 우세하면, 우리는 새롭고 덧없는 세계의 영역으로 어수선하게 들어설 뿐이어서, 그 속에서 우리는 제 고통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리하여 우리가 듣는 말들은 대뜸 우리 마음과, 아직 멈춰 서지 않은 그 마음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알베르틴에 관한 말들은, 증발해 버린 독처럼 그 독성을 잃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오후에 하늘에 뜬 흐릿한 초승달을 보고 나그네가 "저것이 바로 그 거대한 달이로구나" 하고 혼잣말하듯, 나도 스스로에게 말했다. "뭐라고,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간절히 좇았던, 그토록 두려워했던 저 진실이라는 것이 고작 대화 도중에 내뱉어진 이 몇 마디 말, 우리가 혼자가 아닌 탓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조차 없는 이 몇 마디 말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게다가 그것은 나를 아주 불리한 처지에서 덮쳤으니, 나는 앙드레와 함께 진을 다 빼 버린 뒤였다. 그만한 크기의 진실이라면 나는 거기에 바칠 힘이 더 있었으면 싶었다. 그것은 내 바깥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아직 내 마음속에 그것을 놓아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진실이 새로운 표징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어 온 말들과 닮은 문구가 아닌 것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생각하는 습관은 이따금 우리가 현실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그것에 무감하게 만들며, 그것을 또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어떤 관념도 그 안에 스스로에 대한 반박의 가능성을 품지 않은 것이 없고, 어떤 말도 그 반대되는 뜻을 함축하지 않는 것이 없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한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연인의 삶을 이렇게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그 진실은 우리가 더는 그것을 쓸 수 없게 된 바로 그때에야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수면 위로 떠오르니 말이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다른 여자, 그리고 그녀에게도 똑같은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이미 잊어버린 여자는 더 이상 떠올리지도 않으므로) 우리는 낙심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살아 있는 저 여자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또 그녀가 죽고 나면 그녀가 내게 숨기는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면.” 그러나 이것은 악순환이다. 내가 알베르틴을 되살릴 수 있었다면, 그 즉각적인 결과는 앙드레가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저 해묵은 말, “내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어떤지 알게 될 거야”와 똑같은 것이니, 이 말은 그토록 참되면서도 그토록 터무니없다. 사실 우리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때는 이미 캐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테니까. 정확히 같은 이치다. 우리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 다시 만나는 여자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 준다면, 그것은 그녀가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거나 우리가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져 있던 그 사람은 이미 존재하기를 그쳤다. 거기에도 죽음이 지나가, 모든 것을 쉽고도 불필요하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앙드레가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리라는(그럴 법도 한) 가정, 그리고 알베르틴 역시 처음에 내게 드러내 보였던 그 생탕드레데샹적인 본성이, 바로 이제 그녀가 나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기에 그녀를 내게 진솔하도록 이끌었으리라는 가정을 세우고서 이런 사색을 이어 갔다. 이 경우 그녀가 그렇게 용기를 낸 것은 더 이상 알베르틴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실재는 그가 죽은 뒤 우리 마음속에서 잠시밖에 살아남지 못하며, 몇 해가 지나면 그들은 사라진 종교의 신들과 같아져서,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존재를 믿지 않기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그들을 모욕한다. 그러나 앙드레가 더 이상 알베르틴의 실재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가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한 비밀을 누설하기를 겁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른바 공범을 소급하여 헐뜯는 거짓말을 지어내기를 더 이상 겁내지 않게 되었음을 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이 사라진 덕분에, 그녀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마침내 진실을 털어놓게 된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무슨 이유에선가 나를 행복과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고 여기고 나를 아프게 하고 싶어 거짓말을 지어낸 것일까? 어쩌면 나를 보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짜증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내가 비참하고 위로받지 못한 상태로 보이는 동안에는 그 짜증이 억눌려 있었지만). 내가 알베르틴과 관계를 가졌기에, 그리고 내가 그 때문에 스스로를 그녀보다 더 큰 은총을 입은 사람으로 여긴다고 생각하여 그녀가 나를 시샘했기 때문이다. 정작 그녀 자신은 그런 은총을 결코 얻지 못했고, 어쩌면 구하지조차 않았을 텐데. 그렇기에 나는, 넘치는 건강의 기색을 풍기는, 게다가 스스로 그런 건강의 기색을 의식하고 있어 그녀를 부아나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녀가 안색이 나빠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약 올릴 생각으로 자기는 아주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녀는 중병에 걸렸을 때에도 그 말을 그치지 않고 되뇌었으니, 죽음이 주는 초연함 속에서 다른 운 좋은 사람들이 건강하다는 것도, 그들이 자기가 죽어 가는 줄 안다는 것도 더 이상 아무래도 좋아지는 그날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그날은 아직 멀리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나, 예전에 그녀가 발베크에서 우리가 만났던 한 젊은이, 곧 운동에는 그토록 밝으면서도 다른 모든 것에는 그토록 무지했던, 그 뒤로 라셸과 살고 있던 그 젊은이에게 이따금 터뜨리던 것과 같은 격분에 사로잡혀 내게 등을 돌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 젊은이의 이름만 나오면 앙드레는 비방을 쏟아냈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를 바랐으니, 그래야 그의 아버지를 향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고발을 던질 수 있고 그로서는 그 거짓됨을 증명할 수 없으리라는 심산에서였다. 나를 향한 이 격분은 필시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그녀가 보았을 때 가라앉았다가, 그저 다시 되살아난 것일 가능성이 아주 컸다. 사실 그녀가, 분노로 눈을 번득이며 망신 주고 죽이고 필요하다면 거짓 증언으로라도 감옥에 보내고 싶어 하던 바로 그 사람들도, 그들이 불행하고 짓밟혀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녀는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고 싶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온갖 친절을 퍼부을 채비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본디 악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다소 묻혀 있는 그녀의 본성이, 처음에 그녀의 섬세한 배려에서 짐작되던 친절이 아니라 오히려 시샘과 자만이었다 해도, 그보다 더 깊이 묻혀 있는 세 번째 본성, 곧 참되지만 온전히 실현되지는 않은 그 본성은 선함과 이웃 사랑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다만, 어떤 삶의 상태에 놓여 더 나은 상태를 갈망하면서도 그것을 오직 욕망으로만 알 뿐, 첫째 조건이 이전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임을 깨닫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곧 낫기를 애타게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광증이나 모르핀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는 신경쇠약자나 모르핀 중독자처럼, 세속에 얽매인 채 고독을 갈망하면서도 그 고독을 이전의 삶을 절대적으로 버리는 일로는 상상하지 않으려는 신앙심 깊은 이들이나 예술가적 영혼들처럼, 앙드레도 자신의 모든 동류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되, 다만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승리자로 상상하지 않는 데 성공해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 미리 그들을 굴욕에 빠뜨려야 한다는 조건에서였다. 그녀는 우리가 오만한 자들조차 사랑해야 하며, 그들의 오만을 더 거만한 오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자기 병을 오래 끌게 하는 바로 그 수단으로 낫기를 바라는 병자들과 같았으니, 그들은 그 수단을 좋아하며, 만약 그것을 버린다면 곧바로 좋아하기를 그칠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헤엄을 배우면서 동시에 한 발은 바닥에 딛고 있으려 한다. 내가 발베크에 두 번 머무는 동안 만났던 그 젊은 운동가, 곧 베르뒤랭가의 조카에 관해서는, 부수적인 언급으로서 또 미리 앞질러, 앙드레의 방문이 있고 얼마 뒤에(그 방문 이야기는 곧 다시 이어질 것이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음을 덧붙여 두어야겠다. 우선 이 젊은이는(어쩌면 그가 사랑했던 줄을 그때 나는 몰랐던 알베르틴을 떠올리면서) 앙드레와 약혼하여 그녀와 결혼했으니, 그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라셸의 절망에도 개의치 않고 그리했다. 앙드레는 그때는(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있는 그 방문이 있고 몇 달 뒤에는) 더 이상 그를 파렴치한이라 부르지 않았고, 나는 나중에야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은 오로지 그를 미친 듯이 사랑하면서도 그가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또 다른 사실이 나를 한층 더 놀라게 했다. 이 젊은이는 무대를 위한 몇몇 소품을, 무대장치와 의상까지 손수 도안하여 내놓았는데, 그것들은 오늘날의 예술에 적어도 러시아 발레가 일으킨 것에 못지않은 혁명을 이루어 냈다. 실제로 가장 권위 있는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지극히 중대한 것으로, 거의 천재의 작품으로 여겼고, 나 또한 그들에게 동의하는 바이니, 이로써 나 스스로도 놀랍게 라셸이 오래도록 품어 온 견해를 확인해 준 셈이었다. 발베크에서 그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 오직 그가 어울리는 남자들의 옷맵시가 세련됐는지 아닌지에만 마음을 쓰던 사람들, 그가 바카라와 경마와 골프장과 폴로 경기장에서 온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아 온 사람들, 그가 학교에서는 늘 열등생이었고 심지어 리세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음을(부모를 약 올리려고 그는 샤를뤼스 씨가 모렐을 덮치려 했던 그 세련된 매음굴에서 두 달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알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어쩌면 앙드레가 만든 것이며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명성을 그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아니면 더 그럴듯하게는, 방탕으로도 거의 축나지 않은 막대한 개인 재산을 들여 그가 영감은 넘치되 궁핍한 어떤 전문가에게 값을 치러 그것을 만들게 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부류의 부유한 사회, 곧 귀족과 섞임으로써 순화되지 않은 사회에 속한 사람들, 예술가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 말이란 딸의 약혼 잔치에 불러다 독백을 읊게 하고는 곧바로 다른 방에서 조용히 사례금을 쥐여 주는 배우, 아니면 딸이 결혼한 뒤 아이가 생기기 전 아직 한창일 때 초상을 그리게 하는 화가로만 대변될 뿐이어서, 사회에서 글을 쓰거나 곡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작품을 남에게 대신 만들게 하고, 다른 이들이 의회의 의석을 확보하려고 돈을 치르듯 작가라는 명성을 얻으려고 돈을 치른다고 믿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이었고, 그 젊은이는 참으로 그 감탄스러운 작품들의 작가였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상반된 추측들 사이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말로 여러 해 내내 겉보기 그대로 ‘거친 짐승’이었다가 어떤 생리적 대격변이 그의 안에 잠들어 있던 천재성을 잠자는 미녀처럼 깨워 놓았거나, 아니면 폭풍 같던 학창 시절, 마지막 시험에 번번이 낙제하던 시절, 발베크에서 도박으로 큰돈을 잃던 시절, 베르뒤랭 숙모의 단골들과 그들의 유별난 옷차림 탓에 함께 전차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리던 시절에, 그는 이미 천재였으되 어쩌면 젊은 정념의 끓어오름 속에 제 천재성의 열쇠를 문 앞 깔개 밑에 놓아둔 채 그 천재성에서 멀어져 있었거나, 또는 이미 스스로 천재임을 자각한 사람이면서도 반에서 꼴찌였으니, 선생이 키케로에 관해 진부한 소리를 늘어놓는 동안 정작 그는 랭보나 괴테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그중 하나였다. 물론 발베크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는 그런 가정을 세울 근거가 전혀 없었으니, 거기서 그의 관심사란 오로지 멋들어진 쌍두마차를 뽑아 몰고 칵테일을 섞는 데에만 쏠려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또한 넘을 수 없는 반박은 아니다. 그는 몹시 허영심이 강했을 수 있고, 이는 천재성과 결부될 수 있는 것이며,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 눈부시다고 알고 있던 방식으로 빛나기를 바랐을 수 있으니, 그 방식이란 선택적 친화력에 대한 깊은 지식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두마차를 모는 솜씨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훗날 그가 그 훌륭하고도 그토록 독창적인 작품들의 작가가 된 뒤에도, 그를 알아보는 극장들 밖에서 야회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라면 인사하기를 그리 달가워했으리라고는 전혀 확신하지 못하겠으니, 이는 예전의 그 ‘단골들’이 하던 식이었다. 그런 태도는 그에게 어리석음의 증거가 아니라 허영의 증거였을 것이고, 나아가 어떤 실리적 감각, 곧 자신의 허영을 그 얼간이들의 심성에 맞추는 어떤 통찰의 증거였을 것이다. 그는 그들의 존경에 기대고 있었고, 그들의 눈에는 어쩌면 야회용 저고리가 사색가의 눈빛보다 더 눈부신 광채로 빛났을 테니 말이다. 밖에서 본다면, 재능 있는 어떤 사람, 아니 재능은 없어도 정신의 일들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 이를테면 나 자신이, 리브벨에서든 발베크의 호텔에서든 그곳 해변에서든 그를 만난 이의 눈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잘난 체하는 얼간이로 비치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옥타브에게 예술의 문제란 필시 그토록 은밀한 것, 그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살아 있는 것이어서, 이를테면 생루가 그러했을 법한 식으로 그것을 입에 올릴 생각은 결코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루에게 예술은 옥타브에게 말과 마차가 지녔던 만큼의 중요성을 지녔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도박에 열정을 품고 있었을 수 있으며, 지금도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 해도, 뱅퇴유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세상에 드러낸 그 경건함이 몽주뱅의 어지러운 삶 한가운데서 솟아났듯이,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비범한 걸작들이 대학 졸업장에서, 브로글리 식의 모범적이고 학구적인 교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패덕’과 화려한 술집들을 드나든 데서 나왔다는 생각에 나는 못지않게 감명을 받았다. 어쨌든 발베크에서의 그 시절, 내가 그를 알고 싶어 안달하게 만든 이유들, 그리고 알베르틴과 그 친구들이 내가 그를 알지 못하기를 바라며 안달하게 만든 이유들은, 다 같이 그의 진가와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오직 어떤 사교계 인물(그 젊은 골프 선수)을 두고 ‘지식인’(이 경우 나로 대표되는)과 사교계 사람들(작은 무리로 대표되는) 사이의 영원한 오해만을 두드러지게 할 뿐이었다. 나는 그의 재능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고, 내 눈에 비친 그의 위신이란, 지난날 블라탱 부인의 위신이 그러했듯,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가 내 여자 친구들의 친구이며 나보다 더 그 무리의 일원이라는 데 있었다. 반면에 알베르틴과 앙드레는, 이 점에서 사교계 사람들이 정신의 일들에 대해 온당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함과 그 일에서 헛된 겉모습에 매달리는 성향을 상징하듯, 내가 그런 얼간이에게 관심을 둔다는 이유로 나를 거의 바보로 여겼을 뿐 아니라, 이 골프 선수 저 골프 선수 다 놔두고 하필 내 선택이 그들 가운데 가장 못하는 선수에게 떨어졌다는 데 한없이 놀라워했다. 이를테면 내가 어울릴 상대로 젊은 질베르 드 벨뢰브르를 골랐더라면, 골프를 빼면 그는 대화에 재간이 있고 시험에서 proxime를 받았으며 제법 괜찮은 시를 쓰는 소년이었다(사실은 그들 가운데 가장 멍청한 자였지만). 또는 내 목적이 ‘책을 위한 소재를 얻는’ 것이었다면, 완전히 정신 나간 데다 여자 둘을 유괴한 적이 있는 기 소무아는 적어도 나의 ‘흥미를 끌’ 만한 별난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이라면 그나마 봐줄 만했겠지만, 다른 하나, 그에게서 내가 무슨 매력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엄청난 짐승’, ‘거친 짐승’의 전형이었다. 앙드레의 방문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녀는 자신과 알베르틴의 관계를 방금 내게 털어놓은 뒤에, 알베르틴이 나를 떠난 가장 큰 까닭은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남자와 그런 식으로 사는 모습을 작은 무리의 친구들이, 또 다른 사람들까지 보았을 때 뭐라고 여길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나도 알아요, 그게 당신 어머니 댁이었다는 거. 하지만 그건 아무 상관 없어요. 그 애들이 다 어떤지, 서로에게 무엇을 숨기는지, 서로의 눈총을 얼마나 겁내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나는 그 애들이, 남자들이 자기 친구들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어떤 얘기가 옮겨질까 봐 겁이 나서, 그 남자들에게 몹시 매몰차게 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그 애들을, 나는 우연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본 적이 있죠, 그 애들로서는 아주 질색할 노릇이지만요.” 몇 달 전이었다면, 작은 무리의 처녀들을 움직이는 동기에 대해 앙드레가 지닌 듯 보이는 이 앎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녀의 말은, 훗날 파리에서는 내게 몸을 내맡긴 알베르틴이 어째서 발베크에서는, 곧 내가 끊임없이 그녀의 친구들과 마주치던 그곳에서는 내게 응하기를 거부했는지를 설명하기에 어쩌면 충분했다. 나는 그 친구들과 마주치는 것이 그녀의 애정을 얻는 데 그토록 큰 이점이 되리라고 터무니없이 여겼던 것이다. 어쩌면 실은, 그녀가 내가 앙드레와 어떤 친밀함의 기색을 내보이는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내가 경솔하게도 앙드레에게 알베르틴이 그랑 호텔에서 밤을 보내러 온다고 말해 버렸기 때문에, 한 시간 전만 해도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양 내게 어떤 호의를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던 알베르틴이 돌연 마음을 바꾸어 초인종을 울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녀는 다른 숱한 이들에게는 너그러웠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 생각이 내 질투를 다시 불붙였고, 나는 앙드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당신들은 그 짓을 당신 할머니의 빈 아파트에서 했나요?” “아뇨, 절대 아니에요, 거기선 방해받았을 거예요.” “아니,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게는 그렇게 보였는데…” “게다가 알베르틴은 시골에서 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체 어디서 말이죠?” “처음엔, 멀리 갈 시간이 없을 때면 우린 뷔트쇼몽에 가곤 했어요. 그 앤 거기 어떤 집을 알고 있었죠. 아니면 나무 아래 눕곤 했는데, 거긴 사람이 도무지 없거든요. 프티 트리아농의 동굴에서도 그랬고요.” “거봐요, 그러니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겠어요? 당신은 채 일 년도 안 됐을 때 뷔트쇼몽에서는 아무 짓도 한 적이 없다고 내게 맹세했잖아요.” “당신을 괴롭힐까 봐 겁이 났어요.” 앞서 말했듯이 나는(비록 한참 뒤에야 그랬지만) 오히려 이 두 번째 경우, 곧 그녀가 고백을 하던 그날에 앙드레가 나를 괴롭히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알베르틴을 그만큼 사랑하고 있었다면, 그 생각이 필요했을 터이므로 곧바로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앙드레의 말은, 그것을 당장 거짓이라 물리치는 일이 내게 꼭 필요할 만큼 나를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앙드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때 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알베르틴의 그토록 다양한 형상을 알고 난 끝에 내가 발견한 진짜 알베르틴은, 첫날 발베크의 바닷가 산책로에서 문득 솟아오른 모습을 내가 알아챘던 그 젊은 바쿠스 무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잇달아 내게 그토록 여러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마치 어떤 도시가 다가갈수록 건물들의 자리를 조금씩 바꾸어, 멀리서는 오직 그것만이 보이던 으뜸가는 기념물을 가리고 지워 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 도시를 잘 알게 되어 정확히 가늠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의 참된 균형은 첫눈의 원근이 가리켰던 바로 그것으로 드러나고, 우리가 지나쳐 온 나머지는, 삼라만상이 우리의 시야에 맞서 세우는,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치르며 하나하나 건너야 하는, 그리하여 그 심장에 다다르기 전에 건너야 하는 끝없는 방어선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 고통이 줄어든 까닭에 알베르틴의 결백을 굳이 절대적으로 믿을 필요가 없었다면, 거꾸로 이 폭로에 내가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은 것은, 얼마 전부터 내가 알베르틴의 결백에 대해 꾸며 내던 믿음 자리에 그녀의 죄에 대한, 내 마음속에 늘 자리 잡은 믿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대신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더 이상 알베르틴의 결백을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을 믿고 싶은 욕구, 그 간절한 열망을 이미 느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믿음을 낳는 것은 욕망이며, 우리가 대개 이 점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을 만들어 내는 욕망 대부분이, 알베르틴이 결백하다고 나를 설득하던 그 욕망과는 달리, 오직 우리 자신의 삶과 더불어서야 끝나기 때문이다. 나의 애초 판본을 뒷받침하던 온갖 증거보다도 나는 어리석게도 알베르틴의 단순한 진술을 더 믿었던 것이다. 어째서 나는 그것을 믿었던가? 거짓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쾌락의 추구만큼이나 큰 몫을 하며, 더구나 그 추구의 명령을 받는다. 우리는 쾌락을 지키려고, 또는 쾌락을 드러내는 일이 우리의 명예에 어긋난다면 명예를 지키려고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한평생 거짓말을 하며, 특히, 아니 어쩌면 오직,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쾌락을 잃을까 두려워하게 하고 그들의 존중을 갈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알베르틴을 죄 있다고 여겼는데, 내 지성의 힘을 의심의 과정에 바치게 한 내 욕망만이 나를 그릇된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기적이고 지진과도 같은 징후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타인의 성품에 관한 진실을 알려면 그것들을 성실하게 풀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앙드레의 말에 슬퍼하면서도, 나는 진실이 마침내, 그 뒤로 내가 비겁하게 굴복해 버린 그 초라한 낙관보다는 애초에 내 본능이 예감했던 것과 일치하는 편이 더 낫다고 느꼈다. 나는 삶이 내 직관의 그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를 바랐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 첫날 해변에서, 저 처녀들이 쾌락의 광란을 구현하며 악덕의 화신이라고 여겼을 때 느꼈던 직관들, 또 알베르틴의 가정교사가 그 정열적인 처녀를 작은 별장으로 데려가는 것을, 마치 겉보기와는 달리 장차 무엇으로도 결코 길들이지 못할 야생동물을 우리에 밀어 넣듯 하는 것을 본 그 저녁에 느꼈던 직관들, 그것들은 블로크가 내게 해 준 말과 일치하지 않았던가. 그는 욕망의 보편성을 내게 보여 주어, 내 모든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 나를 두근거리게 하며 세상을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게 했던 것이다. 어쩌면 결국, 그 첫 직관들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새로이 확인된 것이 차라리 나았는지도 모른다. 알베르틴을 향한 나의 사랑이 온전히 이어지는 동안에는 그 직관들이 나를 너무나 사무치게 괴롭혔을 터이니, 그것들 가운데 오직 한 자취만이, 곧 내가 보지 못했으되 그럼에도 내 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던 일들에 대한 나의 영원한 의심만이 남아 있었던 편이,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이르고 더 광대한 또 하나의 자취, 곧 나의 사랑 그 자체가 남아 있었던 편이 나았다. 내 이성의 온갖 부인에도 불구하고, 알베르틴을 고르는 것,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그녀의 온갖 추함까지 다 아는 것과 매한가지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의심이 잠잠해지는 순간에도, 사랑이란 그 의심의 지속이자 변형이 아니던가. 그것은 통찰의 증거(사랑하는 이 자신은 알아듣지 못하는 증거)가 아니던가. 욕망은 언제나 우리 자신과 가장 반대되는 것을 향해 나아가므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괴롭힐 것을 사랑하도록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분명 한 사람의 매력 속에는, 그 눈과 입술과 자태의 이끌림 속에는, 우리를 가장 격렬하게 괴롭힐 수 있는, 우리로선 알 수 없는 요소들이 깃들어 있으니, 그리하여 그 사람에게 끌린다고 느끼는 것,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순수한 척한들, 이미 다른 판본으로 그녀의 온갖 배신과 허물을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를 끌어당기려고 한 사람의 해롭고 위험하고 치명적인 부분들을 그렇게 형상화한 그 매력들은, 어떤 독을 품은 꽃들의 유혹하는 무성함과 독즙이 그러한 것보다도 더 직접적인 인과의 관계로 그 은밀한 독과 이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 앞날의 고통의 원인인 알베르틴의 악덕 그 자체가 그녀에게 그토록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를 빚어내어, 그녀와는 남자와 나눌 법한 그 충직하고 거리낌 없는 우정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자아냈던 것인지도 몰랐다. 마치 그와 짝을 이루는 악덕이 샤를뤼스 씨에게 감수성과 정신의 여성적인 세련됨을 빚어냈듯이 말이다. 더할 나위 없이 캄캄한 맹목의 시기 내내, 통찰은 바로 그 편애와 애정의 형태 아래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이는 곧 사랑에서 잘못된 선택을 운운하는 것이 그르다는 뜻이니, 선택이 있는 한 그것은 나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뷔트쇼몽으로 그렇게 나들이를 간 건 당신이 여기로 그 앨 데리러 오곤 하던 때였나요?” 나는 앙드레에게 물었다. “아! 아니에요, 알베르틴이 당신과 함께 발베크에서 돌아온 날부터는, 아까 말한 그 한 번을 빼면 그 앤 나와 다시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런 얘기를 내가 꺼내는 것조차 그 앤 허락하지 않았죠.” “하지만 앙드레, 어째서 계속 내게 거짓말을 하죠? 나는 무엇 하나 캐내려 한 적이 없는데도, 순전히 우연으로, 알베르틴이 한 그런 부류의 일들을 아주 세세한 데까지 알게 됐어요. 정확히 말해 줄 수도 있어요, 그녀가 죽기 며칠 전에 강가에서 어떤 세탁부와 그랬다는 것을요.” “아! 어쩌면 그 앤 당신을 떠난 뒤에는 그랬을지도, 그건 내가 뭐라 말할 수 없네요. 그 앤 자기가 실패했다고, 다시는 당신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으리라고 느꼈어요.” 이 마지막 말이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그러자 나는 라일락 가지의 그 저녁을 다시 떠올렸고, 그로부터 두어 주 뒤에 내 질투가 새로운 대상을 자꾸 찾아 헤매던 끝에, 알베르틴에게 앙드레와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아! 절대 아니에요! 물론 나는 앙드레를 무척 좋아해요, 그 애한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죠, 하지만 자매 사이처럼요. 설령 당신이 짐작하는 듯한 취향이 내게 있다 해도, 그 앤 내 머릿속에 떠오를 마지막 사람일 거예요. 원하시는 무엇에 걸고든 맹세할 수 있어요, 이모에 걸고, 가엾은 어머니의 무덤에 걸고요.” 나는 그녀를 믿었었다. 그런데 설령, 어떤 일들에 대해 그녀가 예전에 부분적으로 시인했던 것과, 내가 아무렇지 않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그 뒤로 그것을 딱 잘라 부인하던 단호함 사이의 모순에 내가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스완을 떠올렸어야 했다. 그는 샤를뤼스 씨의 우정이 플라토닉한 성질의 것이라고 확신하며, 내가 안뜰에서 그 재봉사와 남작을 본 바로 그날 저녁에 내게 그렇게 장담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곱씹었어야 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덮은 채 두 세계가 있으니, 하나는 더없이 훌륭하고 더없이 진실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로 이루어진 세계요, 그 뒤에는 바로 그 사람들의 잇따른 행동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어서, 어떤 유부녀가 한 젊은이를 두고 “아! 내가 그이에게 엄청난 애정을 품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건 아주 순진하고 아주 순결한 것이랍니다, 부모님의 기억을 걸고 맹세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대신, 그녀가 필시 방금 욕실에서 나왔으리라고, 곧 그 젊은이와 밀회를 나눌 때마다 그가 자기에게 아이를 배게 할 위험을 막으려고 부리나케 달려가는 그 욕실에서 나왔으리라고 스스로 맹세해야 마땅했다. 라일락 가지는 나를 깊이 슬프게 했으며, 알베르틴이 나를 잔인하고 적대적이라 여기거나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는 발견 또한 그러했다. 무엇보다도 어쩌면, 내가 미처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뜻밖의 어떤 거짓말들이 그러했다. 어느 날 알베르틴은 내게, 자기가 비행장에 갔었다고, 그 비행사가 자기에게 반해 있다고(이는 필시, 내가 다른 남자들에 대해서는 덜 질투한다고 여기고서 내 의심을 여자들에게서 딴 데로 돌리려는 것이었다), 그 비행사에게, 또 그가 알베르틴에게 늘어놓는 온갖 찬사에 앙드레가 넋을 잃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났고, 급기야 앙드레가 그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인 날조였으니, 앙드레는 그 비행장에 발을 들인 적이 결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