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가 나를 떠났을 때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누가 날 보러 와서 적어도 세 시간이나 있다 갔는지 넌 절대 못 맞힐 게다.” 어머니가 말했다. “세 시간이라고는 했다만 어쩌면 더 길었을 게다. 그이는 내 첫 손님이던 코타르 부인의 바로 뒤를 따라 들어오다시피 해서는,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걸 죄다 지켜봤단다. 손님만 서른 명이 넘었는데 말이야. 그러곤 겨우 십오 분 전에야 갔단다. 네 곁에 앙드레가 와 있지만 않았다면 널 부르러 사람을 보냈을 게다.” “아니, 대체 누구였는데요?” “결코 남을 방문하는 법이 없는 분이지.” “파름 대공비요?” “저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리한 아들을 두었구나. 이름 맞히기를 시켜 봐야 재미가 없겠어, 대번에 알아맞히니 말이다.” “어제의 무례를 사과하러 오신 건가요?” “아니다, 그랬다면 어리석은 일이었겠지, 그이가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사과였단다. 가엾은 네 할머니라면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여겼을 게다. 두 시쯤 그이가 하인을 보내 내게 접견하는 날이 있는지 물어봤던 모양이야. 오늘이 그날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이렇게 올라온 거지.” 나의 첫 생각은, 감히 어머니께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파름 대공비가 그 전날 자기와 가깝게 지내며 즐겨 이야기를 나누던 지체 높고 세련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감추려고도 하지 않은 짜증을 느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뻣뻣함은 독일의 귀부인들 방식에 꼭 들어맞는 것으로, 게르망트가도 이를 상당 부분 받아들인 터였으며, 그들은 세심한 상냥함으로 그것을 벌충하려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리고 나도 이윽고 그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는데, 일어난 일이란 다만 이런 것이라고 믿었다. 곧 파름 대공비가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여 굳이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어머니가 떠난 뒤에야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어머니가 그 집을 나서다 마주친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서든, 아니면 손님들이 대공비 앞에 들기 전에 하인들이 그 이름을 장부에 적어 두는 방문객 명단에서든,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공비는 어머니께 기별을 보내거나 “당신을 못 알아봤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겼으되, 대신, 왕족으로서는 예외적인 행위인 방문, 게다가 몇 시간에 걸친 방문이라면 그 해명을 어머니께 에두르되 못지않게 설득력 있는 형태로 전하리라고 생각했으니, 이 또한 내 애초의 짐작에 못지않게 독일 궁정의 예법과 게르망트가의 행동 규범에 들어맞는 것이었고, 실제로 벌어진 일도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나는 대공비의 방문에 대해 어머니께 들려 달라고 청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니, 방금 알베르틴에 관해 앙드레에게 물어보려 했다가 잊어버린 여러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기야 나는 이 알베르틴의 이야기에 대해, 곧 내게 각별한 흥밋거리가 될 수 있는, 아니 적어도 어떤 순간들에는 다시금 나의 흥미를 끌기 시작하던 유일한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적었으며, 또 앞으로인들 얼마나 알게 될 것인가. 왜냐하면 인간은 정해진 나이가 없는 존재, 몇 초 만에 여러 해 젊어지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며,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벽에 둘러싸인 채 그 안에서 떠다니되, 마치 수면의 높이가 끊임없이 바뀌어 그를 이제는 이 시대의, 이제는 저 시대의 언저리로 데려가는 어떤 웅덩이 속에서처럼 떠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앙드레에게 다시 와 달라는 편지를 썼다. 그녀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올 수 있었다. 그녀가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좋아요, 알베르틴이 여기 머무는 동안엔 그런 짓을 한 번도 안 했다고 당신이 우기니, 당신 말대로라면 그 앤 그걸 더 마음껏 하려고 나를 떠난 건데, 그럼 어느 친구를 위해서였죠?” “천만에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럼 내가 그 애한테 너무 매정했기 때문인가요?” “아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 생각엔 그 앤 이모 때문에 당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이모는 그 애의 앞날을 그 건달, 그러니까 당신이 ‘나 곤경에 빠졌어’라고 부르던 그 젊은이한테 걸고 있었거든요, 알베르틴한테 반해서 그 애한테 청혼했던 그 젊은이 말이에요. 당신이 그 애와 결혼하지 않는 걸 보고는, 그 애가 당신 집에 머문 기간이 남부끄러울 만큼 길어서 그 젊은이가 청혼을 못 할까 봐 그들은 겁이 났던 거죠. 봉탕 부인은 그 젊은이가 자꾸만 압박을 넣자 알베르틴을 집으로 불러들였어요. 어쨌거나 알베르틴한텐 이모부와 이모가 필요했으니, 그들이 자기더러 마음을 정하기를 바란다는 걸 알자 그 앤 당신을 떠난 거예요.” 나는 질투에 사로잡혀 이런 설명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오직 알베르틴이 다른 여자들을 욕망한다는 것과 나 자신의 경계심만을 떠올렸을 뿐,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충격을 주었던 일을 머잖아 이상하게 여길 봉탕 부인이 또한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적어도 봉탕 부인은, 내가 알베르틴과 결혼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그 애를 위해 남겨 두고 있던 이 있을 법한 신랑감에게 그것이 충격을 줄까 봐 겁냈던 것이다. 이 결혼이 정말로 알베르틴이 떠난 원인이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자존심에서, 이모에게 얹혀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또는 나로 하여금 자기와 결혼하도록 몰아붙이려고,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는 편을 택했던 것일까? 나는 하나의 행동에 여러 원인이 있다는 그 방식이, 곧 알베르틴이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저마다 자기를 위해 그 애가 왔다고 여기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능란하게 부리던 그 방식이, 우리가 취하는 관점에 따라 한 행동이 띠는 서로 다른 면모들의, 일종의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상징에 지나지 않음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알베르틴이 내 집에서, 그 이모의 비위를 거스를 수도 있는 떳떳지 못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말해 본 적이 없다는 데서 내가 느낀 놀라움, 아니 거의 부끄러움이라 해도 좋을 그 감정은, 내가 그것을 느낀 것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것이 불러오는 위기를 이해하려 애쓰고 난 뒤에, 문득 제삼자가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곧 그가 둘 중 하나와 한층 더 가까운 사이이기에 지니게 된, 어쩌면 그 위기의 원인이 되었을 관점에서 그 일을 내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잦았던가.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이 그토록 불확정한 채로 있다면, 사람들 자신인들 어찌 그만큼 불확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알베르틴이 이 남자 저 남자를 차례로 자기와 결혼시키려 든 모사꾼이었다고 우기는 사람들의 말을 듣노라면, 그들이 나와 함께한 그녀의 삶을 어떻게 규정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그녀는 희생자였으니, 어쩌면 온전히 순결하지는 않은 희생자, 그러나 그렇다면 다른 이유로, 곧 사람들이 입에 올리지 않던 악덕들 탓에 죄가 있는 희생자였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한편으로 거짓말은 흔히 성격의 한 특질이며, 다른 한편으로 본디 거짓말쟁이가 아닐 여자들에게 그것은, 온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저 돌연한 위험, 곧 사랑에 맞선, 처음에는 즉흥적이다가 차츰 더욱더 짜임새를 갖추어 가는 자연스러운 방어라는 것을. 또 다른 한편으로, 지적이고 감수성 예민한 남자들이 예외 없이 무감각하고 열등한 여자들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동시에 그들에게 어찌나 매여 있는지 사랑받지 못한다는 증거조차 그런 여자를 곁에 붙들어 두려고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본능을 조금도 낫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그런 남자들이 괴로워할 필요가 있다고 내가 말한다면, 나는 정확한 것을 말하는 셈이지만, 그러면서도 그 앞선 진실들을 감추는 것이니, 그 진실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본의 아닌 그 괴로워할 필요를 그 진실들의 지극히 이해할 만한 귀결로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온전한 천성이 드문 만큼, 지극히 감수성 예민하고 지극히 지적인 남자는 대개 의지가 약하여, 습관의,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괴로움에 옭아매는 저 눈앞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의 노리개가 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런 처지에서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결코 내칠 채비가 되어 있지 못하리라는 것도 헤아리지 않은 채 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가 그토록 적은 사랑에 만족한다는 데 놀랄지 모르나, 오히려 그 자신이 느끼는 사랑이 그에게 안겨 줄 수 있는 슬픔을 마음속에 그려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가엾이 여겨서는 안 될 슬픔이니, 짝사랑이, 연인의 떠남이나 죽음이 불러오는 저 끔찍한 격동은, 처음에는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나 그 뒤로 우리 근육이 조금씩 생명의 탄력과 기운을 되찾아 가는 마비의 발작과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슬픔에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감수성 예민하고 지적인 남자들은 대개 거짓말에 그다지 기울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들은 한층 더 불시에 허를 찔리는데, 그들이 아무리 지적이라 해도 가능성의 세계에 살며,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그녀가 무엇을 마음에 두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사랑하던 남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또렷한 지각 속에서라기보다는 한 여자가 방금 그들에게 안긴 슬픔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런 지각은 주로, 과거를 한탄하기보다 미래에 대비하려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신중한 천성들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남자들은 자기가 배신당했음을 느끼되 어떻게 그리되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놀라워하던 그 평범한 여자는, 지적인 여자였을 경우보다 훨씬 더 그들을 위해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그녀의 말 하나하나 뒤에 그들은 거짓말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고, 그녀가 갔다고 말하는 집 하나하나 뒤에 또 다른 집을, 행동 하나하나, 사람 하나하나 뒤에 또 다른 행동, 또 다른 사람을 느낀다. 필시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그럴 기운도 없으며, 어쩌면 밝혀내기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짓말하는 여자는, 지극히 단순한 술책 하나로, 제 수법을 굳이 바꾸는 수고조차 없이,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게다가 그 술책을 마땅히 알아챘어야 할 바로 그 사람마저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감수성 예민하고 지적인 남자 앞에, 온통 깊이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지어내니, 그의 질투는 그 깊이를 재어 보고자 하며, 그것은 그의 지성에도 흥밋거리가 없지 않다.
나는 딱히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알베르틴이 죽은 지금 어쩌면 그녀의 삶의 비밀을 알게 될 참이었다. 여기서도 다시, 한 사람의 지상의 삶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튀어나오는 이런 경솔한 폭로들은, 아무도 내세를 정말로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만약 이 폭로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행실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원망을, 천국에서 그녀와 마주할 그날에도,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며 두려워했던 만큼이나 똑같이 두려워해야 마땅하리라. 그리고 만약 이 폭로들이 거짓이라면, 그녀가 이제 곁에 없어 반박할 수 없기에 지어낸 것이라면, 우리가 천국을 믿는다면 죽은 여인의 분노를 더욱더 두려워해야 마땅하리라.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알베르틴의 마음속에서 내 곁에 머무는 것과 나를 떠나는 것 사이에 오랜 갈등이 이어졌을 수도 있으나, 나를 떠나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그녀의 이모 때문에, 혹은 그 젊은 남자 때문에 내려진 것이지, 어쩌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을 여자들 때문은 아니었을 수 있다. 내 생각에 가장 심각한 것은, 앙드레가, 이제는 알베르틴의 품행에 관해 내게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한편의 알베르틴과 다른 편의 뱅퇴유 양이나 그 여자친구 사이에는 그런 종류의 일이 결코 없었다고 내게 맹세했다는 점이었다. (알베르틴 자신도 그 처녀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제 본능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녀들 쪽은, 욕망의 대상을 잘못 짚을까 하는 그 두려움, 욕망 그 자체만큼이나 숱한 오해를 낳는 그 두려움에서, 알베르틴을 그런 부류의 일에 몹시 적대적인 사람으로 여겼다. 어쩌면 나중에 그녀들은 알베르틴의 취향이 자기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 모르나, 그때쯤이면 그녀들은 알베르틴을 너무 잘 알았고 알베르틴도 그녀들을 너무 잘 알아서, 함께 무슨 짓을 한다는 생각 따위는 들 수가 없었다.) 요컨대 나는 알베르틴이 왜 나를 떠났는지 전보다 조금도 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여자의 얼굴이, 그 움직이는 표면 전체를 담지 못하는 우리의 눈으로도, 우리의 입술로도, 하물며 우리의 기억으로는 더더욱 어렵게밖에 지각되지 않는다면, 그 얼굴이 그녀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우리가 놓여 있는 층위에 따라 어둠에 싸여 있다면, 우리가 보는 그녀의 행동과 그 동기 사이에 드리운 장막은 얼마나 더 두터울 것인가. 그녀의 동기는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더 먼 평면에 자리하며, 게다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흔히 그것과 완전히 모순되는 행동들을 낳는다. 공적 생활을 하는 사람 가운데, 벗들에게는 성인으로 여겨지던 이가 문서를 위조하고 국고를 훔치고 조국을 배신한 것으로 드러난 예가 어느 시대엔들 없었던가. 대귀족이, 어릴 적부터 손수 키워 정직한 사람이라고 기꺼이 맹세할 만한, 실제로 그러했을지도 모르는 집사에게 얼마나 자주 도둑질을 당하는가. 그런데 타인의 동기를 가리는 이 장막은,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얼마나 더 꿰뚫을 수 없게 되는가. 그 사랑은 우리의 판단을 흐릴 뿐 아니라,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여느 때 같으면 분명 중요하게 여겼을 것들, 이를테면 재산 같은 것에 이내 아무 가치도 두지 않게 되는 그녀의 행동마저 흐려 놓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쩌면 그녀는 우리를 괴롭혀 더 많은 돈을 얻어 내려는 속셈에서, 재산에 대한 이런 경멸을 어느 정도 꾸며 보이도록 내몰리는지도 모른다. 흥정하려는 본능 또한 끼어 있을 수 있다. 그녀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그녀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어떤 밀통, 그럼에도 여러 사람이 우리와 똑같이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열렬한 욕망을 품었더라면, 다만 더 자유로운 마음을 지녀 죄지은 당사자의 의심을 덜 사면서 능히 알아냈을 밀통, 몇몇 사람은 모르지 않았던 밀통, 그러나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모를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이 모든 이유들 가운데, 자기 이익에 대한 무관심에서든, 증오에서든, 자유에 대한 사랑에서든, 갑작스러운 분노의 폭발에서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에서든,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그 성격의 특이성들을 우리는 넣어야 한다. 그리고 또 환경의, 자라 온 내력의 차이가 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 말들에 지워지기에 우리는 그 차이를 믿으려 들지 않지만,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면 그것들은 되살아나, 서로 만날 가능성이라곤 없을 만큼 정반대의 관점에서 우리 각자의 행동을 이끈다. “하지만 앙드레, 당신은 또 거짓말을 하는군요. 기억해 봐요, 당신 스스로 내게 인정했잖소, 나는 그 전날 저녁에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기억하죠, 알베르틴이 뱅퇴유 양이 오기로 되어 있던 베르뒤랭가의 오후 모임에 가려고 그토록 애를 태우면서, 마치 내가 알아서는 안 될 일인 양 그것을 내게 숨겼던 것을.” “그래요, 하지만 알베르틴은 뱅퇴유 양이 거기 오리라고는 조금도 몰랐어요.” “뭐라고요? 그녀가 며칠 전에 베르뒤랭 부인을 만났다고 당신이 직접 내게 말했잖소. 게다가 앙드레, 우리가 서로 속이려 들어 봐야 아무 소용 없어요. 나는 어느 날 아침 알베르틴의 방에서 편지 한 통을, 그날 오후에 와 달라고 청하는 베르뒤랭 부인의 쪽지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그 쪽지를 보여 주었는데, 사실 그것은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이 떠나기 며칠 전에 알베르틴의 물건들 맨 위에 올려 두어 내 눈에 띄게끔 신경을 쓴 것이었고, 아무래도 알베르틴이 내가 자기 물건을 뒤졌다고 여기게 하려고, 어쨌든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리려고 거기에 놓아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게 아무것도 숨길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낙담하여 진 듯한 심정이 된 알베르틴의 출분에, 프랑수아즈의 그 술책이 크게 한몫한 것은 아닐까 하고 곧잘 자문하곤 했다. 나는 앙드레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었다. “저는 조금도 거리끼지 않아요, 이 두터운 가족의 정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니까요…” “당신도 잘 알잖소, 앙드레, 알베르틴이 늘 말하기를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가 자기에게는 어머니 같고 손위 언니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을.” “하지만 당신은 이 쪽지를 잘못 해석했어요. 그날 오후에 베르뒤랭 부인이 알베르틴에게 만나게 해 주려던 사람은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가 결코 아니라, 당신이 ‘난 곤경에 빠졌다’라고 부르는 그 젊은 남자였고, 그 두터운 가족의 정이란 결국 자기 조카인 그 짐승 같은 자에게 베르뒤랭 부인이 품은 정이었어요. 그와 동시에 나는 알베르틴이 나중에 뱅퇴유 양이 거기 오리라는 말을 들었으리라 생각해요, 베르뒤랭 부인이 따로 그녀에게 알려 주었을 수도 있고요. 물론 그 친구를 다시 본다는 생각은 그녀에게 기쁨을 주었고, 지난날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겠죠, 하지만 그건 당신이 어느 곳에 가는데 거기에 엘스티르가 있으리라는 걸 알면 반가워할 딱 그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어요, 그만큼도 안 됐고요. 아니, 알베르틴이 왜 베르뒤랭 부인 댁에 가고 싶어 하는지 말하려 들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이 리허설이었기 때문이에요. 베르뒤랭 부인이 아주 조촐한 사람들만 초대한 리허설이었는데, 그중에는 당신이 발베크에서 만났던 그 조카, 봉탕 부인이 알베르틴을 시집보내고 싶어 하던, 그리고 알베르틴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던 그 조카도 있었으니까요. 참 훌륭한 사람들이죠!” 그러니 알베르틴은, 앙드레의 어머니가 생각하던 바와는 달리, 결국 부유한 혼처의 가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베르뒤랭 부인을 찾아가고자 했을 때, 그녀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날 저녁 내가 미리 알리지도 않고 거기 가 버린 것에 그토록 짜증을 냈을 때, 그녀와 베르뒤랭 부인이 짜 놓은 그 계략이 노린 것은 뱅퇴유 양과의 만남이 아니라, 알베르틴이 사랑하던, 그리고 베르뒤랭 부인이 중매쟁이 노릇을 하던 그 조카와의 만남이었으니, 부인은, 우리가 그 심중에 온전히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그저 부유한 신붓감을 노리려니 짐작하는 어떤 집안들에서 벌어져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런 혼사 가운데 하나를 성사시키려 애쓰는 데서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쩌면 그 덕분에 내가 그녀의 첫 입맞춤을 받게 된 장본인일지도 모를 이 조카를 두고 다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세워 두었던 알베르틴의 동기의 평면 전체에, 나는 이제 다른 평면을 갈아 끼워야, 아니 차라리 그 위에 겹쳐 놓아야 했다. 어쩌면 이 평면이 저 평면을 배제하지는 않았을 테니, 여자들에 대한 편애가 그녀가 결혼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설명들을 죄다 찾아 헤맬 필요도 없어요.” 앙드레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알베르틴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애가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지는 하늘만이 알겠죠, 하지만 정말이지, 그 애는 장티푸스를 앓고 난 뒤로는(당신이 우리 모두를 처음 만나기 한 해 전이었죠) 완전히 변덕쟁이였어요. 느닷없이 자기가 하던 일이 싫어져서, 모든 계획을 당장 바꿔야 했고, 그 애 자신도 아마 왜 그러는지 당신에게 말해 주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이 처음 발베크에 왔던 해, 우리 모두를 만났던 그해를 기억해요? 어느 날 그 애는 누군가를 시켜 파리로 돌아오라는 전보를 자기에게 보내게 했고, 트렁크를 꾸릴 겨를도 거의 없었죠. 하지만 그 애가 떠날 이유라곤 전혀 없었어요. 그 애가 댄 핑계는 죄다 거짓이었고요. 그 무렵 그 애가 파리에 있을 일이라곤 도무지 없었어요. 우리는 다들 아직 발베크에 있었어요. 골프 클럽도 문을 닫지 않았고, 실은 그 애가 그토록 우승하고 싶어 하던 우승컵 예선 경기도 끝나지 않았고요. 그 애는 틀림없이 우승할 참이었어요. 그저 한 주만 더 머물면 되는 거였죠. 그런데도 그 애는 떠나 버렸어요. 그 뒤로 나는 그 일을 두고 그 애와 곧잘 이야기했어요. 그 애 스스로 말하기를 왜 떠났는지 모르겠다고, 고향이 그리웠다고(그 고향이라는 게 파리였으니, 그게 얼마나 그럴싸한 소린지 짐작이 가죠), 발베크에서 행복하지가 않았다고, 거기에 자기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나는, 앙드레의 말에 이만큼의 진실은 있다고 스스로에게 일렀다. 정신들 사이의 차이가, 같은 작품이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인상을 주는 것을, 감정의 차이를,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의 불가능함을 설명해 준다면, 성격들 사이의 차이 또한, 한 성격의 특이함 또한 있어서, 그것들 역시 행동의 동기가 된다는 것을. 그러고 나서 나는 이 설명에 대한 생각을 그치고, 이 세상에서 진실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분명 알베르틴이 베르뒤랭 부인 댁에 가고 싶어 애태우는 것과 그것을 숨기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점에서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사실 하나를 붙잡는 데 용케 성공한다 해도, 우리가 겉모습으로만 지각하는 다른 사실들이 있으니, 태피스트리의 뒷면, 행동의, 밀통의 진짜 면은, 지성의 면과 마음의 면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어서, 우리는 우리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납작한 실루엣들만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할 뿐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그녀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누구 때문이다, 라고. 뱅퇴유 양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의 폭로는, 알베르틴이 내게 그녀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그것을 미리 앞질렀던 만큼, 내게 한층 더 논리적인 설명으로 보였었다. 게다가 그 뒤에 그녀는 뱅퇴유 양이 온다고 해서 아무 기쁨도 느끼지 않는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여기서, 이 젊은 남자에 관해, 나는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얼마 전, 알베르틴이 내 집에 머물던 무렵, 나는 그를 만났었는데, 그는 발베크에서의 태도와는 딴판으로 몹시 다정하게, 심지어 살갑게 굴며, 자기가 나를 찾아뵙게 해 달라고 졸랐고, 나는 여러 이유로 그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단지, 알베르틴이 그 집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서, 그가 그녀를 만나고 또 그녀를 내게서 채 가기에 온갖 편의를 얻으려고 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가 파렴치한이라고 결론지었다. 얼마 뒤, 이 젊은 남자의 작품 초연에 참석했을 때, 나는 분명 그가 그토록 나를 찾아뵙고 싶어 한 것이 알베르틴 때문이었으리라고 여전히 생각했지만, 그것을 나무랄 만한 일로 느끼면서도, 과거에 내가 생루를 보러 동시에르로 내려갔던 것이 실은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떠올렸다. 물론 상황이 똑같지는 않았다. 생루는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내 애정에는 어쩌면 이중성의 흔적은 있었을지언정 배신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뒤이어 생각했다. 우리 욕망의 대상을 좌우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느끼는 이 애정을, 그 사람이 그 대상을 좌우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그것을 사랑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물론 그럴 때 우리는 우리를 곧장 배신으로 이끌 우정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렇게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맞서 싸울 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그 대상을 좌우하는 자에게 꾸며 보이는 우정이 한낱 술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느끼며, 그런 까닭에 그것을 어찌나 열렬히 드러내는지, 배신이 일단 완결되고 나면, 배신당한 남편이나 애인은 어이없다는 분노에 차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 못된 놈이 내게 퍼붓던 애정의 맹세를 당신이 들었더라면! 누군가가 한 사내의 보물을 빼앗으러 오는 것, 그것은 나도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그자가 먼저 무엇보다 그 사내에게 자기 우정을 다짐해 두어야 한다는 악마 같은 필요를 느낀다는 것,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렴치와 사악함의 극치요.” 그런데 그 행동에는 그런 사악함이 없으며, 아주 명백한 거짓조차 없다. 알베르틴의 가짜 약혼자가 그날 내게 드러낸 이런 종류의 애정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었으니, 그것은 알베르틴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나온 단순한 결과보다 더 복잡한 것이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지식인으로 일컬어지기를 갈망하게 된 것은 겨우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에게 스포츠나 연애 아닌 다른 가치들이 존재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엘스티르에게서, 베르고트에게서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 알베르틴이 어쩌면 내가 작가들을 비평하던 방식을 그에게 들려주어, 나 역시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 그녀가 상상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느닷없이 내가 그에게(그가 마침내 스스로임을 깨달은 그 새로운 사람에게) 사귀고 싶은, 제 계획을 털어놓고 싶은, 어쩌면 엘스티르에게 소개를 청하고 싶은 흥미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하여 그가 나를 찾아뵈어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진심이었으니, 그가 내게 표한 존경에는 알베르틴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지적인 이유들도 진심을 불어넣고 있었다. 물론 그가 그토록 나를 보러 오고 싶어 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했을 만큼 굴었던 것이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두 이유를 일종의 격정적 발작으로 끌어올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은 이 마지막 이유를, 그 자신은 어쩌면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다른 두 이유는 실제로 존재했다. 그것은 마치, 알베르틴이 리허설이 있던 날 오후에 베르뒤랭 부인 댁에 가고 싶어 애태웠을 때 그녀 안에 실제로 존재했을 법한 것들, 곧 그녀의 눈에는 그녀가 그들의 눈에 그러한 것 이상으로 더 부도덕할 것도 없는 어린 시절의 벗들을 다시 만나는 데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베르뒤랭가에 자기가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알던 그 가여운 계집아이가 이제 어엿한 집안에 초대받는 몸이 되었음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데서 그녀가 느꼈을 지극히 떳떳한 기쁨, 또한 어쩌면 뱅퇴유의 음악을 듣는 데서 느꼈을지도 모를 기쁨과도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뱅퇴유 양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알베르틴의 두 뺨에 오른 홍조는, 내가 알아서는 안 될 그 청혼 때문에 그녀가 내게 숨기려 했던 그 오후 모임에 관해 내가 저지른 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모임에서 뱅퇴유 양을 다시 만난다 해도 아무 기쁨도 느끼지 않으리라고 내게 맹세하기를 알베르틴이 거부한 일은, 그 순간에는 내 괴로움을 더 키우고 내 의심을 더 굳혔지만, 돌이켜 보면 그녀가 진실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음을, 그것도 죄 없는 일에서까지, 어쩌면 단지 그것이 죄 없는 일이었기에 그러했음을 내게 증명해 주었다. 앙드레가 알베르틴과의 관계에 대해 내게 한 말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앙드레가 오로지 내가 행복해하지 못하도록, 내가 스스로를 그녀보다 낫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 이야기를 지어냈다고까지 믿지는 않더라도, 나는 여전히 이렇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알베르틴과 하곤 했던 일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조금 부풀렸으리라고, 그리고 알베르틴 또한, 마음속 유보를 통해, 앙드레와 한 일을 역시 조금 줄여 말했으리라고. 알베르틴은 내가 그 주제에 대해 어리석게도 세워 둔 어떤 정의들을 체계적으로 이용하여, 앙드레와의 관계가 자기가 내게 고백해야 할 것의 범위에는 들지 않는다고, 그러니 거짓말하지 않고도 그것을 부인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앙드레가 아니라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내가 믿어야 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진실과 삶은 몹시 고된 것이어서, 그것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나에게 그것들로부터 남은 것은, 어쩌면 슬픔보다 실은 피로가 더 크게 짓누르고 있는 어떤 인상이었다.
알베르틴에 대해 절대적인 무관심에 다가가고 있음을 내가 의식했다고 기억하는 세 번째 순간으로 말하자면(그리고 이 세 번째 순간에 나는 그 무관심에 완전히 이르렀다고 느꼈다), 그것은 어느 날, 베네치아에서, 앙드레가 마지막으로 다녀간 지 한참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