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나를 몇 주 동안 베네치아로 데려왔는데, 더없이 값진 것에도 더없이 초라한 것에도 저마다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듯, 나는 그곳에서 예전 콩브레에서 그토록 자주 느꼈던 것과 비슷한 인상들을, 다만 전혀 다르고 훨씬 풍요로운 음조로 옮겨진 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침 열 시에 덧문이 활짝 열리면, 생틸레르의 슬레이트 지붕이 변하곤 하던 검은 대리석 대신, 산마르코 종탑 위에서 햇빛에 불타오르는 금빛 천사상이 보였다. 공간 속 어디라 짚어내기 어려울 만큼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 천사상은,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삼십 분 뒤 내가 피아체타에 나설 그 순간의 기쁨을, 예전에 선의의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명받았을 그 어떤 기쁨보다도 더 확실한 기쁨을 내게 약속해 주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그 천사상밖에 볼 수 없었지만, 온 세계란 결국 하나의 거대한 해시계이고 그 빛을 받은 한 부분만 보아도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는 법이어서, 바로 그 첫 아침에 나는 콩브레의 성당 광장에 늘어선 가게들을 떠올렸다. 일요일 아침이면 내가 미사에 맞춰 도착할 즈음 그 가게들은 언제나 막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고, 장터의 짚단은 벌써 뜨거워진 햇빛 속에서 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본 것, 나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한 것은 (그것들이 내 의식과 욕망 속에서 콩브레의 추억이 차지하던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렸기에), 베네치아에서의 첫 아침 산책이 남긴 인상들이었다. 그 일상이 콩브레의 일상 못지않게 실재했던 베네치아, 콩브레의 일요일 아침처럼 축제 같은 거리로 나서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으나, 다만 그 거리는 사파이어 빛 푸른 물로 포장되어 있었고, 조금 더 서늘한 공기의 잔물결이 그 물을 새롭게 하였으며, 그 빛깔이 어찌나 단단해 보이던지 지친 내 눈은 무너질 염려 없이 휴식을 구하며 그 위에 시선을 얹어 쉴 수 있었다. 콩브레에서 루아조 거리의 선량한 사람들이 그러했듯, 이 낯선 도시에서도 주민들은 큰길을 따라 나란히 줄지어 선 집들에서 정말로 걸어 나왔지만, 콩브레에서라면 제 앞에 그늘 한 조각을 드리우는 집들이 맡았을 몫이, 베네치아에서는 반암과 벽옥으로 지은 궁전들에 맡겨져 있었다. 그 아치형 문 위로는 수염 난 신의 머리가 (콩브레의 문에 달린 문고리처럼 열에서 삐죽 튀어나온 채) 제 그림자로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으니, 그것은 흙의 갈색이 아니라 물의 눈부신 푸른빛이었다. 광장에서는, 콩브레에서라면 포목상의 차양과 이발소의 간판 기둥이 드리웠을 그늘이, 르네상스식 파사드의 실루엣이 되어 햇볕에 그을린 타일의 사막 위 제 발치에 흩뿌려진 조그마한 푸른 꽃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고 볕이 뜨거울 때 베네치아에서도 콩브레에서처럼 우리와 운하 사이로 블라인드를 내려야 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다만 그 블라인드는 고딕식 창의 네잎무늬 장식과 잎사귀 무늬 뒤로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 호텔의 창도 바로 그런 것이어서, 어머니는 그 창의 기둥 뒤에 앉아 운하를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전 콩브레 시절이라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인내심이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는 내게 이루어진 적 없는 희망을 걸어 둔 채,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겉으로 냉정한 척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고, 내게 아낌없이 쏟는 애정은,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확실해진 환자에게 더는 금하지 않는 그 금지된 음식들과도 같았다. 물론, 루아조 거리에서 바라본 레오니 고모의 침실 창에 저마다의 개성을 부여하던 소박한 세부들, 이를테면 좌우 창들의 한가운데가 아니게 자리 잡은 그 비대칭이라든가, 유난히 높다란 나무 창턱이라든가, 덧문을 닫아 두던 비스듬한 빗장이라든가, 봉으로 갈라 벌려 놓은 반들거리는 푸른 새틴 커튼 두 폭이라든가, 이 모든 것에 상응하는 것들이 베네치아의 이 호텔에도 있었으니, 나는 이곳에서도 그토록 독특하고 그토록 웅변적인 그 말들을, 곧 멀리서도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돌아가는 집을 알아보게 해 주고 훗날에도 어느 한 시기 동안 그 집이 우리 것이었음을 증언하며 기억에 남는 그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베네치아에서 그 말을 건네는 소임은, 콩브레에서처럼,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는 어디서나 그러하듯 가장 소박한, 다시 말해 가장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중세 주거 건축의 지고한 성취 가운데 하나로 어느 미술관에서나 석고 모형으로 복제되는, 거의 동양풍인 파사드의 아치에 맡겨져 있었다. 멀찍이서, 산조르조 마조레를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나를 보고 있던 그 아치형 창을 알아보았고, 부러진 곡선들이 솟아오르는 그 모양새는 환영의 미소에다, 더 높고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눈길의 기품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빛깔의 대리석 기둥들 뒤에서, 엄마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앉아 책을 읽고 있었기에, 그 얼굴은 튈 베일에 감싸여 있었는데, 그 하얀빛은 엄마의 머리칼만큼이나 내게 가슴을 저미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그 베일을 밀짚모자에 꽂았음을, 얼마간은 호텔 종업원들 눈에 “차려입은” 듯 보이려는 생각에서였겠으나 무엇보다 내게는 덜 “상중인” 듯, 덜 슬픈 듯, 할머니의 죽음을 거의 견뎌 낸 듯 보이려는 뜻에서였음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내가 곤돌라에서 부르자마자, 엄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사랑을 내게 보내왔는데, 그 사랑은 오직 그것을 떠받칠 물질적 실체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만 멈추어, 엄마가 될 수 있는 한 내게 가까이 가져온 그 열정 어린 눈길의 표면 위에서, 엄마가 입술의 최전선까지 밀어내려 애쓰던, 나를 입 맞추는 듯한 그 미소 속에서, 한낮의 햇빛을 받은 아치형 창의 더 은근한 미소가 이루는 틀 안에서, 그 차양 아래에서 멈추었다. 이런 까닭에 그 창은 내 기억 속에서, 우리와 나란히, 우리와 동시에, 우리에게나 그것들에게나 똑같이 울린 어느 한 시각에 제 몫을 함께한 것들의 그 소중한 성질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창살이 아무리 감탄스러운 트레이서리로 가득하다 한들, 그 이름난 창은 내 눈에는, 어느 휴양지에서 한 달을 함께 지내며 우리에게 다정한 정을 품게 된 어느 천재의 그 친밀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미술관에서 그 창의 석고 모형을 볼 때마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창이 내게, 세상 그 무엇보다 나를 뭉클하게 하는 이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나는 네 어머니를 참으로 잘 기억한단다.”
그리고 창가를 떠난 어머니에게 가려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바깥의 따스한 공기에서 들어온 참이라, 오래전 콩브레에서 내 방으로 올라갈 때 알던 그 서늘한 느낌을 정말로 되찾았지만, 베네치아에서 공기를 서늘하게 하는 것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이었고, 그것은 이제 폭이 좁은 나무 계단 위가 아니라, 순간순간 초록빛 햇살 한 줄기가 튀어 오르는 대리석 덩어리들의 고귀한 표면 위에서였으니, 그 햇살은 오래전에 얻은 샤르댕 예술의 값진 가르침에다 베로네세 예술의 한 수업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에서는 일상의 인상을 우리에게 안겨 주는 소임이 예술 작품에, 값을 매길 수 없이 아름다운 것들에 맡겨져 있으므로, 어떤 화가들이 그린 베네치아가 가장 이름난 부분들에서는 차갑도록 심미적이라는 구실을 들어, (막심 데토마의 빼어난 습작들만은 예외로 치자) 오직 그 궁핍한 면모만을, 그 화려함을 빚어내는 모든 것이 감추어진 구역들만을 그려 내면서, 베네치아를 더 친밀하고 더 진솔하게 만든답시고 오베르빌리에를 닮게 하는 식으로 이 도시의 성격을 스케치할 수도 있으리라. 바로 이것이 매우 위대한 몇몇 예술가가 저지른 잘못이었으니, 서투른 화가들이 그린 인위적인 베네치아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작용으로, 그들은 더 사실적이라 여긴 베네치아에만, 어느 초라한 campo에, 인적 없는 어느 조그마한 rio에만 오로지 매달렸던 것이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나가지 않는 오후면 자주 탐험하던 곳이 바로 이런 베네치아였다. 사실 그곳에서는 노동 계급의 여인들을, 곧 성냥 만드는 여자들, 진주를 꿰는 여자들, 유리나 레이스를 다루는 직공들, 긴 술이 달린 검은 숄을 두른 일하는 여인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내 곤돌라는 작은 운하들의 물길을 따라갔다. 이 동양풍 도시의 미로 사이로 나를 이끄는 어느 정령의 신비로운 손길처럼, 그 운하들은 내가 나아갈수록 붐비는 구역의 한복판을 갈라 나를 위한 길을 파내는 듯했고, 그 구역을 두 쪽으로 쪼개며, 조그마한 무어풍 창들이 달린 높다란 집들을 제멋대로 새겨진 가느다란 틈으로 겨우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그 마법의 안내자가 손에 촛불을 들고 내게 길을 비추기라도 하듯, 운하들은 제 앞으로 한 줄기 햇살을 끊임없이 던지며 그 햇살을 위해 길을 트고 있었다.
운하가 방금 갈라놓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나의 빽빽한 덩어리를 이루었을 그 초라한 집들 사이에는, 빈터라고는 조금도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교회의 종루라든가 정원의 격자 울타리가, 물에 잠긴 도시에서처럼 rio 바로 위로 곧추 솟아 있었다. 그러나 대운하에서와 같은 그 옮겨 놓기 덕분에, 교회든 정원이든 마찬가지로, 바다가 어찌나 효과적인 왕래의 길이 되어 거리나 골목을 대신했던지, 이 오래된 서민 구역에서는 canaletto 양편으로 교회들이 물에서 솟아올라, 소박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전도용 예배당으로 격이 낮아진 채, 제 표면에 그 필요의 흔적을, 소박한 무리가 드나든 흔적을 지니고 있었으며, 운하의 물길이 가로지른 정원들은 놀란 듯한 잎사귀며 열매를 물속에 늘어뜨리도록 내버려 두었고, 방금 톱질해 낸 듯 아직 주름진 거친 돌로 된 어느 집 문턱에서는, 곤돌라에 놀란 사내아이들이 균형을 잡으며 두 다리를 수직으로 늘어뜨리고 있었으니, 그 모습은 두 짝이 양옆으로 열려 그 사이로 바다가 지나가게 한 도개교에 걸터앉은 뱃사람들 같았다.
이따금, 방금 연 상자 속의 뜻밖의 선물처럼, 마침 거기 있게 된 한결 아름다운 건물이 나타나곤 했다. 코린트식 기둥과 박공에 얹힌 우의적 조각상을 갖춘 자그마한 상아빛 신전이, 그것이 살아남아 그 한복판에 서 있는 평범한 건물들 사이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운하가 그 신전에 마련해 준 열주랑은 채소밭 농부들이 배를 대는 선착장처럼 보였다.
해가 막 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피아체타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우리는 곤돌라를 타고 대운하를 거슬러 올라갔고, 우리가 그 사이를 지나가는 두 줄의 궁전들이 그 장밋빛 표면 위에 햇빛과 그 기울기를 비추었다가 그와 더불어 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는데, 그 궁전들은 개인의 거처나 역사적 건축물이라기보다, 저녁이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 노을을 바라보는, 그 기슭에 늘어선 대리석 절벽의 사슬처럼 보였다. 이렇듯 운하 양편 기슭을 따라 늘어선 저택들은 자연의 산물을 떠올리게 했으나,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제 작품을 빚어낸 듯한 자연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베네치아가 거의 바다 한가운데서,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느껴지고 만조 때면 궁전들의 웅장한 바깥 계단을 덮었다가 간조 때면 다시 드러내는 그 물결 위에서, 우리에게 안겨 주는 인상이 언제나 도회적인 성격을 띠는 까닭에), 마치 파리에서 큰길이나 샹젤리제, 불로뉴 숲, 혹은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어느 널따란 거리에서였다면 그리했을 법하게, 뿌연 저녁 빛 속에서 우리는 더없이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인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거의 다 외국 여인이던 그들은 물 위를 떠다니는 제 탈것의 방석에 호사스레 몸을 기댄 채 그 행렬에 끼어들어, 만나고 싶은 벗이 있는 궁전 앞에 멈추어 그 벗이 집에 있는지 알아보라고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게르망트 저택 문 앞에서라면 그리했을 법하게 명함을 두고 가려 채비하면서, 안내서를 뒤적여 그 궁전의 연대와 양식을 알아보았는데, 그러는 사이 춤추는 곤돌라와 철썩이는 대리석 사이에 갇힌 것에 놀란 물이 번쩍이며 뛰노는 그 밀침에, 마치 푸른 물마루 위에서인 양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나들이든, 그것이 그저 인사차 방문이거나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일 뿐일 때조차, 이 베네치아에서는 세 겹이자 유일무이한 것이 되었으니, 여기서는 가장 단순한 사교적 왕래마저 동시에 미술관 관람과 뱃놀이의 형태와 매력을 띠었던 것이다.
대운하변의 궁전들 가운데 여럿이 호텔로 바뀌어 있었는데, 우리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던지, 아니면 우연히 마주친 사즈라 부인, 곧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그 뜻밖의 달갑잖은 지인이자 엄마가 함께 저녁을 들자고 청한 그 부인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었던지, 어느 저녁 우리 것이 아닌 다른 호텔을, 음식이 더 낫다는 말을 들었던 그 호텔을 한번 가 보기로 했다. 어머니가 곤돌라 사공에게 삯을 치르고 사즈라 부인을 그녀가 잡아 둔 방으로 데려가는 동안, 나는 슬며시 빠져나와 식당의 큰 홀을 살펴보았다. 그 홀은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과, 한때 온통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었으나 근래에 서투르게 복원된 벽과 천장을 갖추고 있었다. 웨이터 둘이 이탈리아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이렇게 옮긴다.
“저 노인네들이 방에서 저녁을 들려나? 도무지 알려 주는 법이 없으니. 이거 미치겠군, 저이들 자리를 잡아 둬야 할지 말지 통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non so se bisogna conservargli la loro tavola). 그러다 내려왔는데 자리가 차 있으면 어쩌라고! 이렇게 근사한 호텔에서 어떻게 저런 forestieri를 받아 주는지 원. 우리 격에 맞는 손님들이 아니야.”
경멸을 드러내면서도 그 웨이터는 자리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몹시 알고 싶어 하여, 리프트보이를 위층으로 올려 보내 알아보게 하려던 참이었는데, 미처 그리하기도 전에 답을 얻고 말았다. 마침 홀로 들어서는 노부인을 언뜻 본 것이다. 나이의 무게와 더불어 찾아오는 우수와 피로의 기색에도 불구하고, 또 얼굴을 뒤덮은 일종의 습진, 붉은 나병 같은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보닛 아래, 배우지 못한 눈에는 영락없이 늙은 파출부의 것으로 보였으나 실은 W⸺가 지은 검은 재킷 차림의 그 부인이 빌파리지 후작부인임을 어렵잖게 알아보았다. 운 좋게도, 아름다운 대리석 판 두 장 사이에서 프레스코화의 잔해를 살피며 내가 서 있던 자리는, 빌파리지 부인이 방금 앉은 탁자 바로 뒤였다.
“그럼 빌파리지 씨도 곧 오시겠군. 저이들이 여기 온 지 한 달이 됐는데, 함께 식사를 안 한 건 딱 한 번뿐이었어.” 웨이터가 말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여행하며 빌파리지 씨라 불리는 그 친척이 대체 누구일까 자문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 그 탁자로 다가와 그녀 곁에 앉는 이를 보니, 다름 아닌 그녀의 옛 연인 노르푸아 씨였다.
고령은 그의 목소리에서 울림을 앗아 갔으나, 그 대신 예전에는 그토록 조심스럽던 그의 말투에 도리어 거침없는 방종을 안겨 주었다. 그 까닭은 어쩌면,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껴 그만큼 더 격정과 열의로 그를 채우던 어떤 야심들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돌아가기를 갈망하던 정계에서 밀려난 그가, 소원이 소박한 나머지, 자신이 그 자리를 몹시 차지하고 싶어 하는 자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어 그들을 관직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상상한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내각이란 사흘도 버티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정치가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노르푸아 씨가 외교적 화법의 전통을 온전히 잃어버렸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과장이리라. “중대사”가 걸릴 때면,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는 이내 우리가 예전에 기억하던 그 사람이 되었으나, 그 밖의 모든 때에는, 더는 아무런 심각한 해도 끼치지 못하게 된 여인들의 품으로 몸을 던지게 만드는 몇몇 여든 노인 특유의 노쇠한 격렬함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향해 독설을 퍼붓곤 했다.
빌파리지 부인은 몇 분 동안, 노년의 쇠잔함 속에서 지난날의 추억으로부터 현재에 대한 헤아림으로 좀처럼 올라서지 못하는 늙은 여인의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아직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그 지극히 실질적인 물음 가운데 하나로 화제를 돌렸다.
“살비아티 가게에 들르셨어요?”
“들렀소.”
“내일 보내 준답니까?”
“그 그릇은 내가 직접 가지고 왔소. 저녁 먹고 나서 보여 드리리다. 자, 먹을 게 뭐가 있는지 봅시다.”
“내 수에즈 주식 건은 지시해 두셨나요?”
“아니요. 지금은 시장이 온통 석유 주식에만 쏠려 있소. 하지만 서두를 것 없소, 아직도 값이 아주 좋으니. 자, 여기 차림표요. 우선 노랑촉수가 있군. 한번 들어 볼까요?”
“저는 그러죠, 하지만 당신은 그걸 드시면 안 돼요. 대신 리소토를 청하세요. 하기야 여기선 그걸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상관없소. 여보게, 여기 부인께는 노랑촉수를, 내게는 리소토를 주게.”
새로운, 그리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참, 신문을 가져다 드렸소, Corrière della Sera며 Gazzetta del Popolo며 그 밖의 것들도 죄다. 아시오, 외교 개편에 관한 말이 무성한데, 그 첫 희생양은 세르비아에서 무능하기로 소문난 팔레올로그가 될 모양이오. 어쩌면 그 후임으로 로제가 오고, 콘스탄티노플에 자리가 하나 비게 될 거요. 하지만,” 노르푸아 씨는 씁쓸한 어조로 서둘러 덧붙였다. “그만한 규모의 대사관을 두고, 무슨 일이 있든 언제나 영국이 회의석의 으뜸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음이 뻔한 그런 수도에서라면, 눈을 가린 채 함정으로 걸어 들어갈 신식 학파의 외교관들보다, 우리 영국 동맹의 적들이 놓은 매복에 맞서 한결 잘 무장된 노련한 인물들에게 눈을 돌리는 편이 현명할 거요.” 노르푸아 씨가 이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의 그 성난 달변은, 무엇보다 신문들이 그가 청한 대로 그의 이름을 거론하기는커녕, 외무부의 어느 젊은 관리를 “유력한 후보”로 지목한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온갖 뒤틀린 술책 탓에, 세월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다소 무능한 풋내기들을 대신해 스스로 나서기를 주저하는 것도 하늘이 아는 일이오. 나는 경험주의를 표방하는 이 자칭 외교관들을 숱하게 겪어 보았는데, 그들은 온갖 희망을 한낱 비눗방울에 걸어 두었고, 나는 오래지 않아 그것을 터뜨려 버렸소. 두말할 나위 없이, 정부가 어리석은 나머지 요동치는 손아귀에 국정의 고삐를 맡긴다면, 소집의 부름 앞에서 늙은 병사는 언제나 ‘여기 있소!’ 하고 답할 거요. 하지만 누가 알겠소” (여기서 노르푸아 씨는 자신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지혜와 수완이 가득한 노병을 찾아 나설 그날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을지 말이오. 내 생각에는, 저마다 제 나름의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콘스탄티노플 자리는 독일과 벌이고 있는 현안을 매듭짓기 전에는 받아들여선 안 되오. 우리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며, 반년마다 그들이 찾아와 사기술로 우리에게 이런저런 빚의 상환을 요구하고, 힘과 공포로 그것을 뜯어 가려 하며, 매수된 언론이 늘 부랴부랴 그것을 갖다 바치는 이런 짓은 참을 수 없는 노릇이오. 이런 일은 끝나야 하며, 당연히 제 값어치를 입증한 고결한 인물, 이를테면 황제의 귀를 얻은 인물이라면, 그 어떤 범인보다 큰 권위로 이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거요.”
저녁 식사를 마쳐 가던 한 신사가 노르푸아 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니, 저기 포지 대공이 있군.” 후작이 말했다.
“아,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빌파리지 부인이 중얼거렸다.
“아니, 당연히 아시지 않소. 오도네 대공이오. 당신 사촌 두도빌의 처남 말이오. 내가 보네타블에서 그와 사냥을 나갔던 걸 설마 잊으셨겠소?”
“아! 오도네, 그림에 손을 댔다는 그 사람 말이에요?”
“천만에, 그는 N⸺ 대공의 누이와 결혼한 사람이오.”
노르푸아 씨는 제자가 못마땅한 훈장 같은 짜증스러운 어조로 이 말들을 내뱉으며, 푸른 두 눈으로 빌파리지 부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공이 커피를 다 마시고 제 자리를 뜨려 할 때, 노르푸아 씨는 일어서서 그에게로 서둘러 다가가더니, 위엄 있게 팔을 내저으며 스스로는 뒤로 물러난 채 그를 빌파리지 부인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분 동안, 대공이 그들 탁자 곁에 서 있는 내내, 노르푸아 씨는 옛 연인 특유의 나약함에서인지 엄격함에서인지,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이 즐기면서도 두려워하던 이탈리아어 실수를 저지를까 봐 한순간도 쉬지 않고 그 하늘빛 눈동자를 빌파리지 부인에게 붙박아 두었다. 그녀가 대공에게 조금이라도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할 때마다 그는 그 실수를 바로잡으며, 당황하여 고분고분해진 후작부인의 눈을 최면술사 같은 한결같은 강렬함으로 응시했다.
웨이터가 와서 어머니가 나를 기다린다고 알려 주기에, 나는 어머니에게 가서 사즈라 부인에게 사과하며, 빌파리지 부인을 보느라 그리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 이름을 듣자 사즈라 부인은 낯빛이 창백해지며 곧 기절할 듯했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부용 양이던 그 빌파리지 부인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잠깐이라도 그분을 한번 볼 수 없을까요? 평생의 소원이었답니다.”
“그럼 지체할 겨를이 없습니다, 부인. 곧 저녁 식사를 마치실 테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그분에게 그토록 관심을 두시게 됐는지요?”
“저 빌파리지 부인은 두 번째 결혼 전에 다브르 공작부인이었는데, 천사처럼 아름답고 악마처럼 사악해서 제 아버지의 넋을 빼놓고, 그이를 파산시킨 뒤 곧바로 내팽개쳐 버린 사람이거든요. 뭐, 그이에게 시궁창에서 굴러먹은 계집처럼 굴었을지도 모르고, 우리 식구와 제가 콩브레에서 초라하게 살아야 했던 것도 그 여자 탓이었을지 모르지요.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이가 제 세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겐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뭐니 뭐니 해도 그건 하나의 기쁨일 테지요…”
나는 감정에 겨워 떨고 있는 사즈라 부인을 식당으로 안내하여 빌파리지 부인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나 얼굴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눈먼 사람처럼, 사즈라 부인은 빌파리지 부인이 식사하고 있는 탁자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홀의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가 버리셨나 봐요, 가리키시는 자리에는 그분이 안 보이는데요.”
그러고는 그토록 오랫동안 제 상상을 사로잡아 온, 그 증오스러우면서도 흠모하는 환영을 찾아 홀 안을 계속 둘러보았다.
“저기 계시잖아요, 두 번째 탁자에요.”
“그럼 우리가 세는 기준이 서로 다른가 봐요. 제가 두 번째 탁자라고 하는 데는 두 사람밖에 없는걸요, 늙은 신사 하나와, 등이 좀 굽고 얼굴이 붉은, 아주 흉하게 생긴 자그마한 여자 하나요.”
“바로 그분이에요!”
그러는 사이, 빌파리지 부인이 노르푸아 씨에게 포지 대공을 앉히라고 청하자, 세 사람 사이에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정치를 논했고, 대공은 내각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으며 적어도 일주일은 더 베네치아에서 지내겠노라 밝혔다. 그는 그사이 각료 위기의 위험이 죄다 걷히기를 바랐다. 포지 대공은 한순간, 이런 정치 화제가 노르푸아 씨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그때껏 그토록 열띠게 제 뜻을 펴던 그가 별안간 거의 천사 같은 침묵에 잠겨, 목소리가 돌아온다 한들 멘델스존이나 세자르 프랑크의 순진한 가락이나 흥얼거려야 겨우 그 침묵을 깰 수 있을 듯 보였기 때문이다. 대공은 또한 이 침묵이, 이탈리아 사람 앞에서 이탈리아 문제를 논하고 싶어 하지 않을 프랑스인의 조심스러움 탓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 점에서 대공은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었다. 노르푸아 씨에게 침묵과 무관심한 태도란 조심성의 표시가 아니라, 중대사에 개입하기에 앞서 늘 나오는 서두였다. 후작이 노리는 것은 (앞서 보았듯) 다름 아닌 콘스탄티노플이었고, 그에 앞서 독일 문제를 매듭짓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그는 로마 내각의 손을 억지로 움직이게 하고자 했다. 사실 그는 국제적 파장을 지닌 자신의 어떤 행동이 제 이력에 값진 왕관이 되고, 어쩌면 새로운 영예로, 아직 그 야망을 접지 않은 까다로운 임무로 나아가는 길목이 되리라 여겼다. 늙음은 우리가 소임을 다할 능력은 앗아 가되, 적어도 처음에는 그것을 바라는 마음까지 앗아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사는 이들이 이미 행동을 단념해야 했듯 욕망마저 단념하는 것은 오직 세 번째 시기에 이르러서다. 그들은 그토록 자주 이기려 애쓰던 부질없는 선거에, 이를테면 대통령 선거 같은 데에 더는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바깥바람을 쐬고, 밥을 먹고, 신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며, 이미 제 삶보다 오래 살아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