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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베네치아 ②

6권 · 제3장: 베네치아

대공은 후작을 편안하게 해 주고 또 그를 같은 나라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보이려고, 그때 재임 중이던 총리의 있을 법한 후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 어려운 과업을 떠맡게 될 후임 말이다. 포지 대공이 관직에 어울려 보이는 정치가의 이름을 스무 개 넘게 대는 동안, 전직 대사는 푸른 눈 위로 눈꺼풀을 드리운 채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고 듣고 있다가, 마침내 노르푸아 는 침묵을 깨고, 이후 스무 해 동안 각국 외무성에 이야깃거리를 대 주고, 훗날 잊힌 뒤에는 어느 신문에서 “사정을 아는 이”라거나 “테스티스”라거나 “마키아벨리”라 서명한 어느 인물이, 도리어 그것들이 파묻혀 잊혔다는 바로 그 사실 덕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킬 자격을 얻어 다시 파헤쳐 낼 그 말들을 내뱉었다. 앞서 말했듯, 포지 대공이 스무 개 넘는 이름을 대는 동안 그 외교관은 돌처럼 귀먹은 듯 꼼짝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 노르푸아 는 고개를 살짝 들더니, 가장 광범한 파장을 낳았던 그 외교적 개입들이 취하던 바로 그 형식으로, 다만 이번에는 한결 대담하고 덜 간결하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졸리티 각하의 이름을 거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이 말에 포지 대공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다. 그는 천상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내 노르푸아 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바흐의 숭고한 아리아가 마지막 음을 울리고 나면 청중이 더는 큰 소리로 떠들거나 물품 보관소에서 제 모자와 외투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듯, 그도 더는 소리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대공에게, 다음번에 국왕 내외분을 뵈면 부디 자신의 지극한 안부를 전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그 차이를 한층 뚜렷이 드러냈으니, 그것은 음악회가 끝날 무렵 마부를 부르는 외침, 곧 “벨루아 거리의 오귀스트!”에 해당하는 작별의 말이었다. 포지 대공의 감회가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우리로선 말할 수 없다. 다만 그가 “그런데 졸리티 각하의 이름을 거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라는 그 보석 같은 말을 들은 것을 틀림없이 기뻐했으리라. 노르푸아 로 말하자면, 나이가 그의 가장 빼어난 자질들을 허물거나 어지럽혀 놓았으되, 도리어 늙어 갈수록 그 화려한 기교만은 완성해 갔으니, 이는 다른 모든 면에서는 쇠했으되 실내악에 관해서만은 예전에는 지니지 못했던 완벽한 기교를 얻어 끝까지 간직하는 몇몇 노년의 음악가와도 같았다.

아무튼, 베네치아에서 보름을 지내려던 포지 대공은 바로 그날 밤 로마로 돌아갔고, 며칠 뒤 국왕을 알현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앞서 이미 언급했을지 모를, 대공이 시칠리아에 소유한 재산과 관련해서였다. 내각은 예상보다 오래 버텼다. 마침내 내각이 무너지자 국왕은 새 내각의 수반으로 누가 가장 알맞을지 여러 정치가에게 자문했다. 그러고는 졸리티 각하를 불러들였고, 그는 이를 수락했다. 석 달 뒤 어느 신문이 포지 대공과 노르푸아 의 만남을 보도했다. 대화는 여기 우리가 옮긴 그대로 실렸으되, 다만 “노르푸아 가 넌지시 물었다” 대신 “노르푸아 는 그 특유의 빈틈없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라고 적혀 있는 점만 달랐다. 노르푸아 는 “넌지시”라는 말만으로도 외교관에게는 이미 충분한 폭발력이 있으며, 이런 덧붙임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때에 맞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케 도르세에 공식 반박문을 내 달라고까지 청했으나, 케 도르세는 어느 쪽으로 몸을 돌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실인즉, 그 대화가 공개된 뒤로 바레르 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파리로 전보를 쳐 대며, 퀴리날레에는 이미 신임장을 제출한 대사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 사건이 유럽 전역에서 얼마나 분노를 사고 있는지 늘어놓았다. 그런 분노란 있지도 않았으나, 다른 대사들은 너무나 정중한 나머지, 바레르 가 모두가 격분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장담할 때 그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오직 제 생각에만 귀 기울이던 바레르 는 이 정중한 침묵을 동의로 잘못 알았다. 그는 곧장 파리로 전보를 쳤다. “방금 비스콘티베노스타 후작과 한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음” 운운. 그의 비서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도록 시달렸다.

그러나 노르푸아 는 아주 오래된 어느 프랑스 신문의 헌신에 기댈 수 있었으니, 그 신문은 실로 1870년, 그가 어느 독일 수도에서 프랑스 공사로 있을 때 그에게 중요한 도움을 준 바 있었다. 이 신문은 (특히 서명 없이 실리던 그 사설은) 감탄스러울 만큼 잘 쓰였다. 그런데 이 신문은, 그 사설이 (먼 옛날에는 “프르미에 파리”라 불렸고 이제는 무슨 까닭인지 “논설”이라 불리는데) 도리어 서투르게, 같은 낱말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쓰였을 때 천 배는 더 흥미로워졌다. 그럴 때면 누구나 뭉클한 심정으로 그 글이 “지시받아” 쓰인 것임을 느꼈다. 어쩌면 노르푸아 가, 어쩌면 그 시절의 다른 어느 거물이 그리 시킨 것이리라. 이탈리아 사건을 미리 짐작하게 하기 위해, 노르푸아 가 1870년에 이 신문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보이도록 하자.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으니 부질없는 짓이었다 여길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먼저 여론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신조로 삼던 노르푸아 에 따르면 그것은 더없이 효험 있는 일이었다. 낱말 하나하나가 저울질된 그의 기사들은, 나오기 무섭게 환자의 죽음이 뒤따르는 그 낙관적인 소식지들과도 같았다. 이를테면 1870년, 선전포고 전야, 동원령이 거의 끝나 갈 무렵, 노르푸아 는 (물론 뒤에 물러난 채) 이 이름난 신문에 다음과 같은 “논설”을 보내는 것이 제 소임이라 여겼다.

“권위 있는 소식통 사이에서는, 어제 오후 시간 이래로 사태가, 물론 경악할 성질의 것은 아니로되, 자못 심각하다 보아도 좋을 만하며 심지어 어떤 각도에서는 위태롭다 여겨질 여지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한 듯하다. 노르푸아 후작 께서는 프로이센 공사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단호하면서도 화해적인 정신으로, 또 지극히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른바 엄연히 존재하는 여러 마찰의 원인들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본지 마감 시각까지 우리는 양국 각하께서 외교 문서의 토대가 될 만한 방안에 합의하셨다는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하였다.”.

최신 소식: “우리는 소식에 밝은 소식통에서, 프랑스-프로이센 관계에 긴장이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는 소식을 흡족하게 접하였다. 노르푸아 께서 ‘운터덴린덴’에서 영국 공사를 만나 꼬박 이십 분간 대화를 나누셨다고 전해지는 사실에는 특별히 뚜렷한 중요성을 부여해도 좋으리라. 이 소식은 매우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족스럽게”라는 낱말 뒤에는 괄호로 그 독일어 대응어 “befriedigend”가 덧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논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노르푸아 께서 프랑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켜 내신 그 수완과 정력에는 누구나 서둘러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겠으나, 그 온갖 노련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결렬은, 말하자면, 사실상 피할 수 없게 된 듯하다.”

그 신문은 이런 투로 쓰인 사설 뒤에, 물론 노르푸아 가 대 준 논평을 골라 싣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독자는 어쩌면 앞선 몇 쪽에서, “조건법”이 외교 문헌에서 그 대사가 애용하던 문법 형태 가운데 하나임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대신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할 법하다”라고 쓰는 식이다.) 그러나 본래의 뜻으로가 아니라 옛 “기원법”의 뜻으로 쓰인 “현재 직설법” 또한 노르푸아 에게는 그 못지않게 소중했다. 사설 뒤에 이어진 논평은 다음과 같았다.

“일찍이 대중이 이토록 감탄스러우리만치 침착했던 적은 없다” (노르푸아 는 이것이 사실이기를 바랐으나, 실은 바로 그 반대가 진실일까 두려워했다). “그들은 부질없는 동요에 지쳤으며, 폐하의 정부가 벌어질 법한 사태에 따라 그 책임을 떠맡으리라는 것을 흡족하게 알게 되었다. 대중은 그 이상을 바라지 (기원법) 않는다. 그 자체로 승리의 징표인 그들의 훌륭한 냉정함에, 우리는 설령 그럴 필요가 있다손 치더라도 여론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한 소식 하나를 덧붙이려 한다. 실로 우리는, 오래전 건강상의 이유로 치료를 받으러 파리로 돌아오라는 명을 받았던 노르푸아 께서, 더는 당신의 주재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기시던 베를린을 떠나신 듯하다는 것을 확언받았다.”

최신 소식: “황제 폐하께서는 오늘 아침 노르푸아 후작, 육군상, 그리고 여론이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바젠 원수와 협의하시고자 콩피에뉴를 떠나 파리로 향하셨다. 황제 폐하께서는 처제이신 알바 공작부인을 위해 베푸시려던 연회를 취소하셨다. 이 조치는 알려지자마자 곳곳에서 각별히 호의적인 인상을 자아냈다. 황제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의에 찬 당신의 군대를 사열하셨다. 몇몇 군단은 폐하께서 파리에 도착하시자마자 내려진 동원령에 따라, 어떤 사태에든 라인강 방면으로 이동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따금 해 질 무렵 호텔로 돌아올 때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오래전의 알베르틴이 그럼에도 내 안에, 마치 내면의 베네치아의 지하 감옥 속에 갇힌 듯 들어 있고, 이따금 어떤 사건이 그 단단한 벽을 스르르 열어젖혀 그 지난날을 언뜻 엿보게 해 준다는 것을 느꼈다.

가령 어느 날 저녁, 증권 중개인이 보낸 편지 한 통이, 내 안에 살아 있으되 너무나 멀리, 너무나 깊이 파묻혀 내가 닿을 수 없는 채로 알베르틴이 갇혀 있던 그 감옥의 문을 한순간 다시 열어젖혔다. 그녀가 죽은 뒤로 나는, 그녀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마련하려고 벌여 두었던 투기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고, 지난 세대의 가장 현명하다던 판단들이 이 세대에 이르러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철도는 결코 성공할 리 없다고 말했던 티에르 에게 예전에 일어났던 일과 같았다. 노르푸아 가 우리에게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대단치는 않더라도 원금만은 결코 잃지 않을 것을 확신해도 좋다”고 말했던 그 주식들이야말로, 대개는 가장 크게 값이 떨어진 것들이었다. 상당한 금액의 추가 납입 요구가 내게 밀려들었고, 나는 경솔한 순간에 전부 팔아 치우기로 결심했다가, 이제는 알베르틴이 살아 있던 때에 가졌던 재산의 겨우 오분의 일밖에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은 콩브레에서 우리 집안의 남은 사람들과 그 친지들 사이에 알려졌고, 그들은 내가 생루 후작과 게르망트 집안 사람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교만이 패망의 앞잡이지!” 그들은 내가 알베르틴처럼 미천한 처지의 처녀를 위해 그런 투기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몹시 놀랐으리라. 게다가 인도의 카스트에서처럼 저마다 누린다고 알려진 수입에 따라 영원히 서열이 매겨지는 그 콩브레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게르망트의 세계에 감도는 그 크나큰 자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재산에 아무런 중요성도 두지 않았고, 가난은 불쾌한 것으로는 여겨졌으되 그 이상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었으며,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이라야 배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콩브레에서는 도리어, 생루와 게르망트 가 영지를 저당 잡힌 몰락한 귀족일 테고 내가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으리라 상상했을 것이다. 정작 내가 파산했더라면 진심으로 나를 도우러 나서 줄 이는 바로 그들이었을 텐데. 내 형편이 비교적 궁색해진 것이 그 순간 한층 더 난처했던 까닭은, 얼마 전부터 베네치아에서의 내 관심이 볼이 발그레한 젊은 유리 장수 처녀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반한 눈길에 온갖 주황빛 색조를 펼쳐 보였고, 날마다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갈망으로 나를 가득 채웠으므로, 어머니와 내가 곧 베네치아를 떠나리라 느낀 나는 그녀와 헤어지는 괴로움을 면하기 위해 파리에서 어떻게든 그녀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려 애써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녀의 열일곱 살 아름다움은 어찌나 고귀하고 눈부시던지, 이곳을 떠나기 전에 진품 티치아노 한 점을 손에 넣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데 내 재산의 얼마 남지 않은 부스러기가, 그녀로 하여금 오직 나 하나의 편의를 위해 고향을 떠나 파리에 와서 살게 할 만큼 넉넉한 유혹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증권 중개인의 편지 끝에 이르렀을 때, “고객님의 잔고는 제가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대목이, 발베크의 목욕탕 여자가 에메에게 알베르틴 이야기를 하며 썼던, 그에 못지않게 위선적이고 직업적인 표현을 떠올리게 했다. “그 여자를 돌봐 준 게 바로 저예요”라고 그녀는 말했었는데, 그 뒤로 두 번 다시 내 머리에 떠오른 적 없던 그 말이 감옥 문의 돌쩌귀에 대고 “열려라 참깨!”처럼 작용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문은 갇힌 희생자 위로 다시 닫혀 버렸다. 나로서는 그녀에게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해서 탓받을 일이 아니었으니,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볼 수도, 마음속에 불러낼 수도 없었고, 또한 타인이란 우리가 그들에 대해 간직한 관념의 범위 안에서만 우리에게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 갇힌 희생자는, 비록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으나 내가 그녀를 저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한순간 내게 어찌나 애처롭게 여겨졌던지, 나는 번갯불이 번쩍이는 그 짧은 동안, 밤낮으로 그녀의 기억이라는 벗 때문에 괴로워하던 이미 아득해진 그 시절을 그리움에 잠겨 떠올렸다. 또 한번은 산조르조 델리 스키아보니에서,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을 곁따르며 똑같은 방식으로 양식화된 독수리 한 마리가, 프랑수아즈가 내게 그 닮은 점을 일러 주었던 두 반지가 불러일으켰던 기억을, 그리고 거의 그 고통까지를 되살렸다. 그 반지들을 누가 알베르틴에게 주었는지 나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내 사랑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질 만한 성질의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우리 곤돌라가 호텔 계단 앞에 멈추기가 무섭게 문지기가 내게 전보 한 통을 건넸는데, 배달부가 이미 세 번이나 호텔로 가져왔던 것이었다. 수신인 이름이 부정확하게 적혀 있던 탓이었으니(그래도 나는 이탈리아 사무원들이 저지른 오기를 뚫고 그것이 내 이름임을 알아보았다), 우체국에서는 그 전보가 정말로 내게 온 것임을 증명하는 서명 수령증을 요구했던 것이다. 나는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것을 뜯었고, 부정확하게 전송된 낱말들로 뒤덮인 종이 위로 눈길을 던지면서도 그럭저럭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어 냈다.

그리운 이여, 당신은 나를 죽은 줄 알겠지요, 용서해 주세요, 나는 멀쩡히 살아 있어요, 당신을 보고 싶어요, 결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언제 돌아오나요? 사랑을 담아. 알베르틴.

그러자 내 안에서, 할머니의 경우에 일어났던 것과 나란한 과정이 거꾸로 된 순서로 일어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처음에는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저절로 떠오른 기억들이 그분을 내게 다시 살아 있는 듯 보이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분의 죽음에 진정으로 슬퍼했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알베르틴이 더는 살아 있지 않게 된 마당에, 그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은 내가 기대했음직한 기쁨을 안겨 주지 않았다. 알베르틴은 내게 한 다발의 상념에 지나지 않았고, 그 상념들이 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녀도 육신의 죽음을 넘어 살아남아 있었다. 반면에 이제 그 상념들이 죽어 버린 이상, 알베르틴은 그 육신의 모습으로도 조금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다는 생각에도 아무 기쁨이 없다는 것을, 내가 더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여러 달 동안의 여행이나 병을 치른 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자기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얼굴이 딴사람의, 중년이나 노인의 얼굴이 되었음을 발견하는 사람보다 더욱 아연실색했어야 마땅했다. 그런 발견이 우리를 질겁하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 그 아름답던 젊은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딴사람이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느낀 그 인상이야말로, 옛날의 얼굴 대신 눈처럼 흰 머리를 인 주름진 얼굴을 마주할 때 드러나는 것 못지않게 깊은 변화의, 옛 자아의 그토록 완전한 죽음과 그 옛 자아를 대신한 새 자아의 그에 못지않게 온전한 대체의 증거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 자연스러운 순리에 따라 우리가 딴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가 마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어느 한순간 우리가, 교활하고 예민하고 세련되고 거칠고 사심 없고 야심에 찬,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이 잇달아 되어 있다는 사실에, 삶의 나날마다 번갈아 그렇게 되어 있다는 사실에 마음 흔들리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흔들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인데, 곧 빛을 잃고 가려진 자아는, 뒤의 경우 곧 성격이 문제일 때에는 잠시 동안, 앞의 경우 곧 정념이 문제일 때에는 영영, 다른 자아를, 그 순간만이든 영원히든 우리의 온 자아가 되어 있는 그 다른 자아를 애도하러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자아는 제 거칢을 비웃으니 그가 거친 사람인 까닭이요, 잘 잊는 사람은 제 기억의 상실을 근심하지 않으니 다름 아니라 그가 이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알베르틴을 되살려 낼 수 없었을 터인데, 나 자신을, 그 시절의 자아를 되살려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삶은, 끊임없는 미세한 작업으로 세계의 얼굴을 바꾸어 놓는 그 습성에 따라, 알베르틴이 죽은 이튿날 내게 “딴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변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감지할 수 없는 변화들을 통해 내 안의 거의 모든 요소를 바꾸어 놓았고, 그리하여 내 정신은 스스로 변했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그 새 주인에게, 곧 나의 새 자아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정신이 의지하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새 주인이었다. 알베르틴을 향한 내 애정과 질투는, 앞서 보았듯이, 어떤 즐겁거나 괴로운 인상들이 관념 연합을 통해 뿜어내던 빛에, 몽주뱅에서의 뱅퇴유 에 대한 기억에, 알베르틴이 내 목덜미에 얹어 주던 소중한 잘 자라는 입맞춤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 인상들이 희미해져 감에 따라, 그것들이 괴롭거나 달래는 빛깔로 물들여 놓았던 드넓은 인상의 벌판이 본래의 무채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망각이 고통과 쾌락의 어떤 지배적인 지점들을 붙들자마자, 내 사랑이 내밀던 저항은 무너졌고, 나는 더 이상 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되불러 오려 애썼다. 알베르틴이 달아난 지 이틀쯤 뒤, 그녀 없이도 마흔여덟 시간을 살아 낼 수 있었다는 발견에 질겁했을 때, 내 예감은 옳았던 것이다. 오래전 질베르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대로 한두 해가 더 가면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리라”라고 속으로 되뇌었을 때와 똑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스완이 내게 질베르트를 다시 보러 오라고 청했을 때 그것이 마치 죽은 여자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거북하게 여겨졌었다면, 알베르틴의 경우에는 죽음이, 아니 내가 죽음이라 여겼던 것이, 질베르트의 경우의 오랜 결별과 똑같은 결과를 이루어 냈던 셈이다. 죽음은 다만 부재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 출현 앞에서 내 사랑이 벌벌 떨었던 괴물, 곧 망각이, 과연 내가 두려워했던 대로 끝내 그 사랑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은 내 사랑을 되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내가 무관심으로 가는 길을 이미 얼마나 멀리 나아와 있는지 깨닫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어찌나 대뜸 급작스레 재촉했던지, 나는 예전에 그 반대의 소식, 곧 알베르틴이 죽었다는 소식이 마찬가지로 그녀의 떠남이 낳은 효과를 완성시킴으로써 내 사랑을 드높이고 그 쇠락을 늦춘 것은 아니었을까 자문했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다는 앎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녀를 별안간 내 눈에 그토록 하찮게 만들어 버린 지금, 나는 프랑수아즈의 넌지시 던진 말들이, 우리의 결별 그 자체가, 심지어 그녀의 죽음이(상상 속의 것이었으나 사실로 믿어졌던) 내 사랑을 오래 끌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문했으니, 제삼자의 애씀이며 운명의 애씀마저도, 한 여자에게서 우리를 떼어 놓으려다 도리어 우리를 그녀에게 붙들어 매는 데에만 성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참된 이야기다. 이번에는 그 반대의 과정이 일어났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모습을 되불러 오려 애썼는데, 아마도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그녀를 다시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내게 떠오른 기억은 아주 뚱뚱하고 사내 같은 처녀의 모습이었으니, 그 핏기 없는 얼굴에서는 벌써, 움트는 씨앗처럼, 봉탕 부인의 옆얼굴 윤곽이 삐죽 솟아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앙드레며 다른 처녀들과 무슨 짓을 했든 안 했든 이제 내겐 아무 흥미도 없었다. 나는 그토록 오래 불치라 여겨 왔던 그 병으로 더는 앓지 않았고, 실은 이것을 미리 내다볼 수도 있었으리라. 분명, 잃은 정인에 대한 회한이며 그녀의 죽음 뒤에도 살아남은 질투란 결핵이나 백혈병에 못지않은 어엿한 육체의 병이다. 그런데도 육체의 병들 가운데서 순전히 물리적인 작용으로 생기는 것과, 오직 마음이라는 통로를 거쳐서만 몸에 작용하는 것을 갈라 볼 수는 있다. 매개체 노릇을 하는 마음의 부분이 기억이라면, 다시 말해 그 원인이 지워졌거나 멀리 있는 것이라면, 그 아픔이 아무리 괴롭고 그 기관의 교란이 아무리 깊어 보인다 해도,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란 매우 드물다. 마음이란 조직이 지니지 못한 재생의 능력, 아니 차라리 보존의 무능을 지닌 까닭이다. 암에 걸린 사람이라면 죽고 말았을 만큼의 어떤 기간이 지나고 나면, 위로받을 길 없던 홀아비나 아버지의 슬픔이 아물지 않는 경우란 매우 드물다. 내 슬픔도 아물었다. 마음의 눈에 그토록 살집 지게 비치던,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처녀들이 나이 들어 간 만큼 틀림없이 함께 나이 들어 갔을 이 처녀를 위해, 어제의 내 기억이자 내일의 내 희망이던 그 눈부신 처녀를(알베르틴과 결혼했더라면 다른 누구에게든 그렇듯 이 처녀에게도 아무것도 줄 수 없었을 텐데), 곧 “지옥이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라 정숙하며 “정말이지 조금은 수줍은” 그 새로운 알베르틴을 나는 단념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예전에 알베르틴이 그러했던 것은 바로 이 처녀였으니,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이란 처녀 시절 그 자체에 바친 내 헌신의 한 덧없는 형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한 처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아아! 실은 그녀 안에서 그 얼굴 위에 잠시 그 노을빛이 비쳐 드는 새벽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밤이 지나갔다. 아침에 나는 호텔 문지기에게 그 전보를 돌려주며 그것이 잘못 내게 전해진 것이고 내 앞으로 온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뜯긴 마당이라 자기가 곤란을 겪을 수 있으니 내가 그냥 지니고 있는 편이 낫겠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으되, 처음부터 그것을 받은 적이 없는 듯이 처신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완전히 알베르틴을 사랑하기를 그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랑은,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을 떠올렸을 때 내가 예상했던 행로에서 그토록 크게 벗어난 뒤, 나로 하여금 그토록 길고 괴로운 우회를 하게 만든 뒤, 한동안 예외인 듯싶더니 결국 그것 역시,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과 꼭 마찬가지로, 망각이라는 보편의 법칙 속에 녹아들며 끝나 버렸다.

그러나 그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 나 자신보다 알베르틴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녀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으로 나 자신에게서 떼어지지 않으려는, 죽은 뒤에 다시 일어서려는 내 욕망은, 알베르틴과 영영 헤어지지 않으려던 욕망과는 달리,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는 내가 그녀보다 나 자신을 더 높이 쳐서, 그녀를 사랑하던 때에도 나 자신을 더욱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자 그녀를 사랑하기를 그쳤으나, 나 자신에 대한 일상의 애착만은 알베르틴에 대한 애착처럼 끊기지 않았기에 나 자신을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내 육신에 대한, 내 자아에 대한 애착마저 끊긴다면…? 분명,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란 우리가 떨쳐 낼 줄 모르는 오래된 인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 힘은 그것이 이어진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끊어 내는 죽음이 우리를 불멸에의 욕망에서 낫게 해 줄 것이다.

점심을 든 뒤, 혼자 베네치아를 쏘다닐 생각이 없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나갈 채비를 하러 내 방으로 올라갔다. 벽들의 가파른 모서리에서 나는 바다가 강요한 제약을, 흙의 인색함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에게로 내려갈 때, 콩브레에서라면 닫힌 덧문이 지키는 어둠 속에서 바로 곁에 다가온 햇살을 느끼는 것이 그토록 기분 좋던 그 시각에, 이곳에서는, 르네상스 그림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궁전 위에 세워졌는지 갤리선 위에 세워졌는지 도무지 알 길 없는 대리석 계단의 위에서 아래까지, 똑같은 서늘함과 바깥 풍경의 그 찬란함에 대한 똑같은 느낌이 전해졌으니, 늘 열려 있는 창밖에서 나부끼는 차양 덕분이었다. 그 창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드는 공기의 물결을 타고, 서늘한 그늘과 초록빛 도는 햇살이 마치 물결치는 표면 위에서인 양 움직이며, 넘실대는 바다의 그 가까움을, 그 반짝임을, 거울처럼 일렁이는 불안정함을 떠올리게 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