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든 뒤, 나는 혼자 밖으로 나가 그 홀린 듯한 도시의 한복판으로 들어섰고, 거기서 나는 천일야화 속 인물처럼 낯선 지역들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헤매고 다니다가, 어떤 안내서도 어떤 여행객도 내게 일러 준 적 없는 어느 낯설고 널찍한 광장과 맞닥뜨리지 않는 일이란 매우 드물었다.
나는 작은 골목들의 그물 속으로 뛰어들었으니, calli가 그 갈래갈래로 사방을 가르며, 운하와 석호 사이에 외따로 떨어진 베네치아의 그 구역을, 마치 그 무수하고 가느다란 모세혈관 같은 선들을 따라 결정을 이룬 것처럼 나누고 있었다. 별안간, 이 작은 거리들 가운데 하나의 끝에서, 마치 그 결정을 이룬 물질 속에 거품 하나가 생겨난 듯싶었다. 이 작은 거리들의 그물 속에서라면 그 중요함을 결코 짐작조차, 아니 그것이 들어설 자리조차 찾아낼 수 없었을 드넓고 찬란한 campo가, 달빛에 은빛으로 물든 매혹적인 궁전들을 양옆에 거느린 채 내 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다른 어느 도시에서라면 거리들이 그리로 모여들어 당신을 이끌고 길을 가리켜 주는, 그런 건축적 전체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에서 그것은 골목들의 미로 속에 짐짓 감추어져 있는 듯했으니, 마치 동방의 이야기 속 궁전들과 같았다. 그 궁전으로는 밤이면 신비로운 사자들이 어떤 사람을 실어다 놓는데, 그는 동트기 전에 다시 집으로 옮겨진 탓에 그 마법의 거처로 돌아가는 길을 두 번 다시 찾지 못하고, 마침내 그곳을 한낱 꿈에서나 다녀왔으려니 여기고 만다.
이튿날 나는 그 아름다운 밤의 광장을 찾아 나서, 서로 꼭 닮았을 뿐 나를 더 멀리 헤매게 할 것 말고는 아무런 실마리도 주려 하지 않는 calli를 따라갔다. 때로 알아본 듯싶은 어렴풋한 표지 하나가, 그 외딴 은거와 고독과 정적 속에 그 아름다운 귀양살이 광장이 막 나타나려 한다고 믿게 했다. 그 순간, 새로운 calle의 모습을 뒤집어쓴 어떤 심술궂은 정령이 나도 모르게 내 길에서 방향을 틀게 했고, 나는 문득 대운하로 되돌아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꿈의 기억과 현실의 기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 법이라, 나는 마침내, 낭만적인 궁전들을 양옆에 거느린 드넓은 광장을 사색에 잠긴 달의 눈길 앞에 펼쳐 보인 그 야릇한 중단이, 베네치아라는 결정의 어느 어두운 얼룩 속에서 일어난 것이 실은 내가 잠든 사이의 일이 아니었을까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떠나기 전날, 우리는 멀리 파도바까지 가 보기로 했으니, 그곳에는 스완이 내게 복제화를 주었던 그 ‘악덕과 미덕’이 있었다. 아레나의 정원을 가로질러 눈부신 햇살 속을 걸은 뒤, 나는 조토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그 천장 전체와 프레스코 벽화의 바탕이 어찌나 파랗던지, 마치 그 눈부신 대낮이 사람 손님과 더불어 문지방을 넘어와, 그늘과 서늘함 속에 제 맑은 하늘을 잠시 갈무리해 두려고 들어온 것만 같았다. 이제 햇빛의 금빛을 벗어 버린 그 하늘은 조금 더 짙은 파랑이었으니, 가장 화창한 날들을 문득 끊어 놓는 그 짤막한 휴식의 순간들에, 우리가 구름 한 점 알아채지 못한 사이 해가 잠깐 눈길을 딴 데로 돌리자 그 창공이, 한층 더 그윽하게, 더 짙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이 하늘 속, 푸르게 물든 돌 위로, 천사들이 어찌나 강렬한 천상의, 적어도 어린아이 같은 열정으로 날고 있던지, 정말로 실재했던 어떤 특이한 종의 새들, 성서와 사도들의 시대의 박물지에 필시 실려 있었을 새들, 성인들이 바깥을 거닐 때면 그 앞을 날기를 결코 거르지 않는 새들처럼 보였다. 언제나 몇 마리가 그들 위에서 파닥이는 것이 눈에 띄며, 그것들은 진짜 나는 힘을 지닌 실재의 생물인지라, 우리는 그것들이 위로 솟구치고, 곡선을 그리고,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공중제비’를 돌며,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자세로 제 몸을 지탱하게 해 주는 날개의 도움으로 머리를 아래로 하여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날개가 한낱 표상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 자태가 대체로 날개 없는 천상의 존재들과 다를 바 없게 된 르네상스 및 그 이후 시대 예술의 천사들보다는, 차라리 한 종류의 새나 vol-plané를 연습하는 가로스의 젊은 문하생들을 훨씬 더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파리로 떠나기로 되어 있던 바로 그날, 퓌트뷔스 부인이, 따라서 그녀의 하녀도 방금 베네치아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우리 출발을 며칠 미루자고 청했다. 내 청을 아예 고려에 넣지도, 진지하게 귀담아듣지도 않는 듯한 어머니의 태도는, 베네치아의 봄기운에 들뜬 내 신경 속에, 부모가 나를 상대로 짜 놓은 상상 속의 음모에 반항하려는 그 해묵은 욕망을(부모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자기들에게 복종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 투지를, 예전에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뜻을 기어이 관철시키게 하고서는 그들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 뒤에야 도리어 그들의 뜻에 따를 채비를 하게 만들던 그 욕망을 다시 일깨웠다. 나는 어머니에게 베네치아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내가 이 말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믿는 티를 내지 않는 편이 자기 뜻에 더 맞는다고 여겨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 내가 진지한지 아닌지 곧 알게 되실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내 모든 짐을 챙겨 역으로 떠나는 시각이 오자, 나는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로 시원한 음료를 가져오게 하고는 거기 자리를 잡고 앉아 노을을 바라보았으며, 그동안 호텔 앞에 멈춰 선 배에서 한 악사가 “sole mio”를 불렀다.
해는 계속 저물어 갔다. 어머니는 이제 역에 거의 다다랐으리라. 이윽고 어머니는 떠나 버릴 것이고, 나는 베네치아에 홀로 남으리라, 어머니를 괴롭혔다는 것을 아는 비참함과 더불어 홀로, 그리고 나를 달래 줄 어머니의 곁도 없이. 기차 시각이 다가왔다. 돌이킬 수 없는 내 고독이 어찌나 코앞에 닥쳤던지, 내게는 그것이 이미 시작되어 온전히 완성된 듯 여겨졌다. 나는 내가 홀로임을 느꼈으니 말이다. 사물들이 내게 낯선 것이 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두근대는 내 마음에서 얼마간의 안정을 길어 올려 그 사물들 속에 불어넣을 만큼 차분하지 못했다. 내 앞에 보이는 그 도시는 더 이상 베네치아가 아니게 되어 있었다. 그 개성이며 그 이름이 내게는 거짓된 허구로 여겨졌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그 돌들 위에 새겨 넣을 용기가 없었다. 나는 궁전들이 그 구성 요소로 헐리어, 이것저것 가릴 것 없는 생명 없는 대리석 더미가 되고, 물은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영원하고 눈멀었으며 베네치아보다 앞서고 그 바깥에 있으며 도제도 터너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된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이 대수롭지 않은 곳은, 우리가 방금 도착하여 아직 우리를 알지 못하는 곳처럼, 우리가 이미 떠나와 우리를 벌써 잊어버린 곳처럼 낯설었다. 나는 나 자신에 관해 그곳에 더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었고, 나의 무엇 하나 그곳에 새겨 남길 수 없었으며, 그곳은 나를 오그라든 채로 내버려 두었으니, 나는 두근대는 심장 하나와, “sole mio”의 전개를 좇으려 팽팽히 긴장한 주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리알토의 아름답고 특징적인 아치에 아무리 절망적으로 마음을 붙들어 매려 해도 헛일이어서, 그것은 뻔한 것의 범속함을 띤 채, 내가 지녀 온 그것에 대한 관념보다 못할 뿐 아니라 그 관념과는 아예 다른 다리로 보였으니, 마치 금발 가발을 쓰고 검은 옷을 걸쳤음에도 그 본질에서는 결코 햄릿이 아님을 우리가 빤히 아는 어떤 배우와도 같았다. 그리하여 궁전들도, 운하도, 리알토도 그 저마다의 개성을 지어냈던 관념을 벗어 버리고 흔해빠진 물질의 요소들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범속한 곳이 내게는 아득히 멀게 여겨졌다. 병기창의 선착장에는, 그것 또한 과학적인 어떤 요소, 곧 위도 때문에, 사물들이 지닌 그 야릇함이 감돌고 있었으니, 그 야릇함이란 겉모습이 우리 고장의 것들과 비슷할 때조차 그것들이 이방의 것, 낯선 하늘 아래 귀양 온 것임을 드러내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토록 가까이, 한 시간이면 다다랐을 그 수평선이, 프랑스의 바다들이 그리는 곡선과는 사뭇 다른 지구의 한 곡선, 여행이라는 우연으로 마침 내가 있는 곳 가까이에 매여 있게 된 아득한 곡선임을 느꼈다. 그리하여 하찮으면서도 아득한 이 병기창 선착장은, 어릴 적 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들리니 수영장에 갔을 때 느꼈던 그 역겨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과연, 하늘도 해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물로 이루어진, 그러면서도 둘러선 탈의실들 사이로 수영복 차림의 사람 몸뚱이들로 붐비는 보이지 않는 깊이와 통해 있음이 느껴지던 그 환상적인 곳에서, 나는 자문했었다. 거리의 누구도 그것이 있는 줄조차 짐작하지 못하게 막아 주던 한 줄의 탈의실에 가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던 그 깊이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북극해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닌지, 극점들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비좁은 공간이 실은 극점을 에워싼 트인 바다가 아닌지를. 내가 홀로 남겨질 참이던, 내게는 아무런 매력도 없던 이 베네치아 역시 그에 못지않게 외따로 떨어지고, 그에 못지않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으며, 내가 알던 베네치아를 위한 만가처럼 피어오르던 “sole mio”의 소리가 증인으로 불러 세우려는 듯싶던 것은 바로 나의 비탄이었다. 어머니를 따라잡아 기차에서 만나려면 나는 마땅히 그 노래에 귀 기울이기를 그쳤어야 했고,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떠나겠다고 마음을 정했어야 했으나, 바로 그것이 내가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꼼짝 않고 있었으니, 자리에서 일어서기는커녕 일어서겠다고 결심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정신은, 필시 결심을 내리는 문제를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되게끔, “sole mio”의 잇따른 가락들의 흐름을 좇는 데에, 가수와 함께 그것을 마음속으로 부르는 데에, 그 가락 하나하나마다 그것을 높이 실어 올릴 선율의 터짐을 미리 기다리는 데에, 그것과 더불어 솟구쳤다가 이윽고 그것과 더불어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데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다.
분명 백 번은 들어 본 이 하찮은 노래는 나의 흥미를 조금도 끌지 못했다. 이렇게 경건하게 끝까지 그것을 들어 준다 해서 남에게든 나 자신에게든 어떤 즐거움도 줄 수 없었다. 사실 이 통속적인 소곡의, 미리부터 낯익은 그 어떤 요소도 내게 필요한 그 결심을 마련해 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악구들 하나하나는 저마다 차례로 다가왔다 지나가면서,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데 걸림돌이 되었으니, 아니 차라리 그것은 나로 하여금 베네치아를 떠나지 않는다는 반대의 결심을 택하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나는 기차 시각을 너무 늦쳐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자체로는 아무 즐거움도 없는, “sole mio”를 듣는다는 이 일은 깊고도 거의 절망적인 우수로 가득 차 있었다. 실은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행위만으로 내가 떠나지 않는다는 결심을 이미 택한 셈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는다”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 그런 직접적인 형태로는 불가능하던 그 말이, “‘sole mio’ 한 소절만 더 들으련다”라는 이 에두른 형태로는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 비유적인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놓치지 않았으니, “어차피 한 소절만 더 듣는 것뿐이야”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도, 그 말이 실은 “나는 베네치아에 홀로 남으리라”라는 뜻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우수야말로, 일종의 마비시키는 추위처럼, 그 노래의 절망적이면서도 홀리는 듯한 매력을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수의 목소리가 거의 근육질에 가까운 힘과 과시로 토해 내는 음 하나하나가 다가와 내 가슴을 찔렀다. 그가 마지막 장식음을 뽑아내어 노래가 끝난 듯싶었을 때, 가수는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지, 마치 내 고독과 절망을 한 번 더 선포해야 한다는 듯 한 옥타브 더 높여 그것을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이제쯤 역에 다다랐으리라. 조금만 있으면 어머니는 떠나 버릴 것이다. 내 가슴은, 베네치아의 혼이 빠져나가 이제 아주 조그맣게 오그라든 운하의 광경과, 더 이상 리알토가 아니게 된 그 흔해빠진 리알토의 광경을 곁들여, “sole mio”가 화해 버린 그 절망의 울부짖음이 내게 안긴 고뇌로 쥐어짜였으니, 그 울부짖음은 실체 없는 궁전들 앞에서 그렇듯 낭랑히 울려 퍼지며 그것들을 티끌과 재로 허물어뜨리고 베네치아의 폐허를 완성시켰다. 나는, 산조르조 마조레 너머로 제 행로를 멈춘 해의 놀란 눈길 아래 선 채 가수가 서두름 없이 음 하나하나로 예술적으로 쌓아 올린 내 비참함이 더디게 실현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고,4 그리하여 스러져 가던 그 빛은 내 기억 속에서 내 감정의 두근거림 및 가수의 청동빛 목소리와 영영, 종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으며 가슴 저미는 하나의 합금으로 어우러지게 되었다.
이렇듯 나는 산산이 부서진 의지로, 겉으로는 아무런 결단도 없이 꼼짝 않고 있었다. 필시 그런 순간에 우리의 결단은 이미 내려져 있으며, 우리 벗들은 흔히 그것을 스스로 알아맞힐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은 그러지 못하니, 그러지 못하지만 않았던들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덜 수 있었으랴!
그러나 마침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혜성이 번쩍이며 나오는 동굴보다 더 어두운 동굴들로부터, 뿌리 깊은 습관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어력 덕분에, 습관이 별안간의 충동으로 마지막 순간에 싸움판으로 내던지는 그 숨은 예비 병력 덕분에, 내 활력이 마침내 되살아났다. 나는 부랴부랴 뛰쳐나가, 객차 문이 이미 닫힌 뒤였으나 그래도 늦지 않게 다다라, 감정에 겨워 얼굴이 상기된 채 눈물을 참으려는 안간힘에 짓눌린 어머니를 발견했으니, 어머니는 내가 오지 않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윽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파도바와 베로나가 우리를 맞으러, 우리 길을 배웅하러, 저희 역의 승강장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우리가 그들에게서 멀어지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요 곧 제 일상으로 되돌아갈 참이던 그들이, 하나는 제 벌판으로, 다른 하나는 제 언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흘러갔다. 어머니는 손에 쥔 채 뜯어만 두었던 편지 두 통을 서둘러 읽으려 하지 않았고, 내가 호텔 문지기가 준 편지를 꺼내려고 대뜸 수첩을 끄집어내는 것을 막으려 했다. 어머니는 내가 여행을 너무 길고 너무 고되게 여길까 늘 걱정하여, 마지막 몇 시간 동안 나를 심심찮게 해 주려고, 나를 위해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순간을, 삶은 달걀을 꺼내 놓고, 신문을 건네주고, 내게 말도 없이 사 둔 책 꾸러미를 풀어 놓는 그 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미루곤 했다. 우리가 밀라노를 지난 지 한참 되어서야 어머니는 두 통 가운데 첫 번째 편지를 읽기로 했다. 나는 우선, 놀란 기색으로 그것을 읽어 내려가다가 이윽고 고개를 든 어머니를 지켜보았는데, 어머니의 눈길은 서로 뚜렷이 어긋나 하나로 맞추어 낼 수 없는 일련의 기억들 위에 멎어 있는 듯싶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방금 수첩에서 꺼낸 봉투 위에서 질베르트의 필체를 알아보았다. 나는 그것을 뜯었다. 질베르트는 자기가 로베르 드 생루와 결혼한다는 것을 알리려고 편지를 썼다. 그 일로 베네치아에 있는 내게 전보를 쳤으나 아무 답이 없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곳의 전신 업무가 시원찮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전보를 받은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으리라. 별안간 나는, 하나의 기억인 양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어떤 사실이 제자리를 떠나 다른 사실에게 그 자리를 내주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에 내가 받았던, 알베르틴에게서 온 것이려니 여겼던 그 전보는 질베르트에게서 온 것이었다. 질베르트의 필체가 지닌 다소 억지스러운 그 독특함은, 한 줄을 쓸 때 주로, 윗줄에다 그 낱말들에 밑줄을 긋는 듯한 t의 가로획이나 윗줄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 듯한 i의 점을 밀어 넣는 데에, 또 한편으로는 아랫줄에다 바로 위 낱말들의 꼬리와 장식획을 흩뿌려 놓는 데에 있었으니, 그 전보를 부친 사무원이 윗줄에 있던 s나 z의 꼬리를 “Gilberte”라는 낱말에 붙은 -me로 읽은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질베르트의 i 위의 점이 낱말 위로 솟아올라 전문의 끝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대문자 G로 말하자면, 그것은 고딕체 A를 닮아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이것 말고도 두세 낱말이 잘못 읽혀 서로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그 가운데 몇몇은 마침 내게도 알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보태면, 이것만으로도 내 착각의 세세한 대목을 설명하기에 넉넉했고, 아니 그마저도 굳이 필요치 않았다. 무엇을 예상하는지 아는, 그 전언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시작하는 부주의한 사람은, 실은 한 낱말 속에 몇 개의 글자를, 한 문장 속에 몇 개의 낱말을 제멋대로 읽어 넣는 것인가? 우리는 읽으면서 짐작하고, 지어낸다. 모든 것은 처음의 한 착오에서 비롯된다. 그 뒤에 잇따르는 착오들은(편지와 전보를 읽을 때뿐 아니라, 무릇 읽는 일 전체에서뿐 아니라),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별나 보인다 한들, 모두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참이라 믿는 것의 큰 부분은(그리고 이는 우리의 최종적인 결론들에까지도 해당한다), 오직 우리의 진심에만 견줄 만한 그 끈질김으로 그렇게 믿는 것인데, 실은 우리 전제에 대한 최초의 그릇된 이해에서 솟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