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서곡 ①

1권 · 서곡

서곡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따금 촛불을 끄고 나면 눈이 어찌나 빨리 감기는지 “이제 잠이 드는구나” 하고 말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러고는 반 시간쯤 지나 이제 잠들 시간이라는 생각에 문득 깨어나, 아직 손에 쥐고 있는 줄로만 여기던 책을 내려놓고 불을 끄려 하곤 했다. 자는 동안에도 나는 방금 읽은 내용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어느새 저 혼자만의 물길로 흘러들어, 급기야 나 자신이 그 책의 주제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성당, 어느 사중주,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의 경쟁 관계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 인상은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그것이 정신을 어지럽히지는 않았으나, 눈 위에 비늘처럼 얹혀, 촛불이 이미 꺼졌다는 사실을 눈이 알아채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러다 이윽고 그 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갔으니, 마치 전생의 생각이 환생한 넋에게 그러하듯 했다. 책의 주제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내가 그 일부가 될지 말지를 마음대로 고르게 놓아두었고, 그와 동시에 시력이 돌아와, 나는 어둠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눈에는, 그리고 그보다 더 마음에는, 그 어둠이 꽤나 아늑하고 편안했으되, 마음으로서는 까닭도 없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참으로 캄캄한 노릇이었다.

나는 몇 시쯤 되었을까 스스로 물어보곤 했다. 기차들의 기적 소리가 들려왔는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숲속 새의 울음처럼 거리를 점점이 새기는 그 소리는, 나에게 인적 없는 들판을 원근으로 펼쳐 보였다. 그 들판을 가로질러 한 나그네가 가장 가까운 역을 향해 서둘러 가고 있을 터였다. 그가 걷는 길은 그의 기억 속에 영영 새겨지리니, 낯선 곳에 와 있다는 것, 예사롭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방금 나눈 대화의 마지막 말들, 낯선 등불 아래에서 주고받은 작별 인사가 자아내는 그 설렘 때문이었다. 그 작별의 말은 밤의 정적 속에서 아직도 그의 귓가에 울리고, 곧 다시 집에 돌아가리라는 흐뭇한 기대와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나는 뺨을, 갓난아이의 볼처럼 통통하고 발그레한 그 포근한 베개의 뺨에 살며시 갖다 대곤 했다. 아니면 성냥을 그어 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여행을 떠나야 했던 어느 병자가 낯선 호텔에서 잠을 청하다, 병으로 괴로운 순간에 깨어나, 침실 문틈으로 새어드는 한 줄기 햇살을 보고 반가운 안도를 느끼는, 그런 시각이었다. 오, 기쁨 중의 기쁨이여! 아침이로구나. 곧 하인들이 움직일 테고, 종을 울리면 누군가 와서 그를 돌봐 주리라. 편안해지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그는 고통을 견딜 힘을 얻는다. 분명 발소리를 들은 것 같다. 그 소리가 가까워지다가, 이내 잦아든다. 문 아래 새어들던 빛줄기가 사라진다. 자정이다. 누군가 가스등을 껐고, 마지막 하인마저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는 아무도 도와줄 이 없이 밤새 고통 속에 누워 있어야 한다.

나는 잠이 들었다가, 이따금 아주 잠깐씩만 다시 깨어나곤 했는데, 벽널이 규칙적으로 삐걱대는 소리를 듣거나, 눈을 떠 어둠의 변화무쌍한 만화경을 가늠하거나, 찰나의 번뜩이는 지각으로, 가구와 방과 그 온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는 잠을 음미하기에 딱 알맞은 동안이었다. 나는 그 주변의 하찮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머지않아 그 무의식을 다시 나누어 가질 참이었다. 아니면 어쩌면, 잠든 사이에 나는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 이제는 영영 벗어난 삶의 이전 단계로 되돌아가, 어릴 적 공포 가운데 하나에 다시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를테면 종조부가 내 곱슬머리를 잡아당기던 그 해묵은 공포 같은 것으로, 그 공포는 마침내 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던 날, 나에게는 새 시대의 여명과도 같던 그날에 말끔히 걷혔던 것이다. 나는 잠결에 그 일을 잊고 있었으나, 종조부의 손가락에서 벗어나려고 가까스로 스스로를 깨우자마자 그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도 나는 조심삼아, 꿈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머리를 온통 베개 속에 파묻곤 했다.

때로는 또, 이브가 아담의 갈빗대 하나에서 지어졌듯이, 잠자는 동안 내 팔다리가 놓인 어떤 자세에서 비롯되어 한 여인이 생겨나기도 했다. 내가 막 채우려던 욕망에서 빚어진 그 여인이, 상상 속에서, 나에게 바로 그 충족을 건네는 이였다. 제 온기가 그녀에게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내 몸은 그녀와 하나가 되려 애썼고, 그러면 나는 잠에서 깼다. 방금 곁을 떠나온 이 여인에 견주면 나머지 인류는 아득히 멀게만 보였다. 내 뺨은 아직 그녀의 입맞춤으로 따스했고, 내 몸은 그녀의 무게에 눌려 휘어 있었다. 때때로 그러하듯 그녀가 내가 깨어 있을 때 알던 어떤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나는 오로지 그녀를 찾는 일에 나를 온전히 내맡겼으니, 마치 늘 가 보고 싶어 하던 어떤 도시를 제 눈으로 보려고 길을 떠나, 공상이 매혹하던 것을 현실에서 맛볼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들처럼 그러했다. 그러다 차츰 그녀에 대한 기억은 녹아 스러져, 마침내 나는 꿈속의 그 처녀를 잊고 말았다.

사람이 잠들면 그 둘레에는 시간의 사슬이, 세월의 차례가, 하늘 별들의 질서가 둥그렇게 감돈다. 깨어나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살펴, 지표면 위 제 위치와 자는 동안 흘러간 시간의 양을 대번에 읽어 낸다. 하지만 이 정연한 행렬도 흐트러져 대오를 깨뜨리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불면의 밤을 지낸 새벽녘, 여느 때 잠드는 자세와는 사뭇 다른 자세로 책을 읽다 잠이 그를 덮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팔만 들어 올려도 해를 붙들어 그 길을 되돌릴 수 있어, 깨어나는 순간 시각을 도무지 가늠하지 못한 채 이제 막 잠자리에 든 것이라 여길 것이다. 아니면 더더욱 별난 자세로, 가령 저녁을 먹고 안락의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존다고 하자. 그러면 세계는 제 궤도에서 곤두박질치고, 마법의 의자는 그를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전속력으로 실어 나르니,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몇 달 전에, 그것도 아득히 먼 어느 고장에서 잠들었다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내 침대에서 잠이 어찌나 깊어 의식이 온통 풀려 버리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디서 잠들었는지 감각을 죄다 잃었고, 자정에 깨어나면 여기가 어딘지 몰라,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짐승의 의식 밑바닥에서 어른거리며 깜박일 법한, 가장 초보적인 존재의 감각밖에 없었다. 나는 동굴에 살던 원시인보다도 더 헐벗은 처지였다. 그러나 그때, 아직 내가 있는 곳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내가 살아 본, 그리고 지금 어쩌면 다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여러 다른 곳들에 대한 기억이,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처럼 다가와, 나 홀로는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을 비존재의 심연에서 나를 끌어올려 주었다. 나는 한순간에 문명의 여러 세기를 가로질러 넘어섰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석유등의 행렬에 이어 깃을 접은 셔츠들이 뒤따르면서, 조금씩 내 자아의 구성 부분들을 짜 맞추어 갔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의 부동함은, 그것들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것들 자신이라는 우리의 확신과, 그것들에 대한 우리 관념의 부동함이 억지로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깨어나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 헛되이 애쓸 때면, 언제나 온갖 것이, 사물이며 장소며 세월이며, 어둠 속에서 내 둘레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아직 잠에 겨워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은, 제 피로가 취한 형태를 이런저런 지체의 방향으로 헤아려 보려 애썼고, 그로써 벽이 어디 있고 가구가 어디 놓였는지 추론해 내어, 제가 깃들어 있을 집을 짜 맞추고 이름 붙이려 했다. 몸의 기억, 곧 갈비뼈와 무릎과 어깨뼈가 한데 모아 이룬 기억은, 언젠가 잠들었던 방들을 줄줄이 몸에게 내어놓았고, 그러는 동안 보이지 않는 벽들은 몸이 떠올리는 방 하나하나의 모양에 맞추어 끊임없이 바뀌며, 어둠 속을 미친 듯이 빙빙 돌았다. 그리고 내 머리가, 일이 언제 일어났으며 어떤 모습이었는지 헤아리느라 미적거리며 방을 알아볼 만큼 인상을 미처 다 그러모으기도 전에, 내 몸은 방마다 차례로, 침대는 어떤 모양이었고 문은 어디 있었으며 창으로는 햇빛이 어떻게 들었고 바깥에 복도가 있었는지, 잠들 때 무슨 생각을 했으며 깨어나 그것을 다시 어떻게 떠올렸는지를 되살렸다. 이를테면 내 몸에 눌려 뻣뻣해진 옆구리는 제 위치를 잡으려다, 자기가 벽을 향한 채 닫집 달린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다고 여기곤 했다. 그러면 나는 이내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라, 결국 잠들고 말았나 보네, 엄마는 잘 자라는 인사도 하러 오지 않으셨는데!” 나는 여러 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시골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누운 쪽 옆구리, 곧 내 몸은, 내 마음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었을 지난날의 인상을 충실히 간직해 두었다가, 항아리 모양으로 천장에서 사슬에 매달린 보헤미아 유리 종지 속 상야등의 가물거리는 불꽃과, 콩브레의 종조모 댁 내 침실에 있던 시에나 대리석 벽난로 선반을, 그 아득히 먼 옛날의 것들을 내 눈앞에 되불러왔다. 그 옛날은 깨어나는 순간에는 또렷이 윤곽 잡히지 않은 채로도 지금인 양 다가왔지만, 이윽고 잠이 온전히 깨면 좀 더 분명해지곤 했다.

그러다 또 다른 자세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벽이 다른 쪽으로 미끄러져 가고, 나는 시골에 있는 생루 부인 댁 내 방에 있었다. 이런, 벌써 열 시가 틀림없어, 다들 저녁 식사를 끝냈겠구나! 저녁 채비를 하기 전에 생루 부인과 산책을 다녀와 늘 한숨 붙이는 그 짧은 낮잠에서, 그만 너무 오래 잤나 보다. 콩브레 시절 이후로 이제 여러 해가 흘렀으니, 그때는 가장 멀고 가장 늦은 산책에서 돌아와도 아직 늦지 않게 침실 창유리에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의 반영을 볼 수 있었다. 지금 탕송빌에서 생루 부인과 함께 지내는 삶은 그와는 사뭇 다르고, 이제 저녁에만 산책을 하며 어릴 적 햇살 속에서 뛰놀던 길들을 달빛 아래 거니는 데서 얻는 즐거움 또한 다른 것이다. 한편 이제 곧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대신 잠들게 될 그 침실은,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니, 창으로 새어 나오는 등불이 밤 속의 외로운 봉홧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스치듯 어지러이 몰아치는 기억의 돌풍은 결코 몇 초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그 불확실함을 이루던 잇단 가설들을, 마치 달리는 말을 지켜볼 때 활동사진에 비치는 몸의 잇단 자세들을 하나하나 떼어 내지 못하듯, 좀처럼 가려내지 못하곤 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오는 동안 잠들었던 방들을 하나씩 차례로 보았고, 마침내 깨어 있는 긴 꿈속에서 그것들을 모두 다시 찾아가곤 했다. 겨울의 방들, 잠자리에 들면 이내 머리를 둥지에 파묻던 방들이니, 그 둥지는 온갖 잡다한 것들, 곧 베개 모서리며 담요 끝이며 숄 한 조각이며 침대 가장자리며 석간신문 한 부로 지어졌고, 나는 둥지를 짓는 새의 그 끝없는 인내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이겨 붙이곤 했다. 매서운 서리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아늑함을 만끽하던 방들도 있었으니, 마치 컴컴한 굴 끝에 둥지를 틀고 둘레의 흙에 감싸여 따뜻이 지내는 바다제비처럼,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아 나는 포근하고 향긋한 공기의 커다란 외투에 감싸이듯 잠들었고, 그 공기는 다시 불꽃으로 되살아나는 장작의 이글거림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벽 없는 벽감 같은, 방 한복판을 파내어 만든 온기의 동굴 같은 것으로, 그 경계는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온도가 바뀌었으니, 방구석에서, 혹은 창가나 벽난로에서 멀어 그만큼 차갑게 남은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 경계를 가로질러 내 얼굴을 서늘히 치곤 했던 것이다. 아니면 여름의 방들도 있었으니, 나는 따스한 저녁의 일부가 된 기분을 즐겼고, 반쯤 열린 덧문에 부딪힌 달빛이 침대 발치로 그 마법의 사다리를 드리웠으며, 나는 마치 한 줄기 햇살의 초점에 미풍이 붙들어 둔 박새처럼 노천에서인 양 잠들곤 했다. 아니면 이따금 루이 16세 풍의 방도 있었으니, 어찌나 밝고 정겨운지 처음 묵는 밤에도 도무지 정말로 울적해질 수가 없었다. 그 방에서는 천장을 가벼이 떠받친 가느다란 기둥들이 더없이 우아하게 갈라져 침대가 놓일 자리를 일러 주고 그것을 따로 떼어 두었다. 또 어떤 때는 저 천장 높은 작은 방도 있었으니, 두 층을 아울러 피라미드꼴로 파낸 그 방은 한쪽 벽이 마호가니로 둘려 있었고, 첫 순간부터 내 마음은 꽃 핀 풀들의 낯선 향내에 취해, 보랏빛 커튼이 적의를 품었으며 마치 내가 거기 없기라도 한 양 목청껏 재잘대는 시계가 오만하게 무관심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는 동안 네모난 발이 달린 기이하고 무자비한 거울 하나가 방 한 귀퉁이를 가로질러 서서, 내 평소 시야의 고요한 언저리에 그런 것이 자리 잡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자리를 제 것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 방에서 내 마음은, 몇 시간이고 제 닻줄에서 풀려나려, 방의 꼭 그 모양을 띠려고 위로 몸을 늘여, 그 흉물스러운 깔때기 꼭대기에까지 이르려 애쓰며, 얼마나 많은 불안한 밤을 지새웠던가. 그동안 내 몸은 침대에 뻗은 채 눈은 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귀는 곤두세우고, 콧구멍은 불안스레 벌름거리고, 심장은 두근거렸다. 마침내 습관이 커튼의 빛깔을 바꾸고, 시계를 잠잠하게 하고, 거울의 잔인하게 비스듬한 얼굴에 연민의 빛을 띠게 하고, 꽃 핀 풀들의 향내를 가리거나 아예 말끔히 걷어 내고, 천장의 그 짐짓 높아 보이던 것을 눈에 띄게 낮추어 놓기까지는 그러했다. 습관이여! 몇 주고 임시변통의 처사로 마음을 괴롭히는 것으로 일을 시작하는, 저 솜씨 좋되 결코 서두르는 법 없는 관리인이여. 그래도 마음으로서는 습관을 만난 것이 다행이니, 습관의 도움 없이는 제 힘만으로는 어떤 방도 결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확실히 잠이 완전히 깨어 있었다. 내 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척였고, 확신이라는 착한 천사가 둘레의 온갖 사물을 멈춰 세워, 나를 이불 아래, 내 침실에 뉘어 놓았으며, 흐릿한 빛 속에서 옷장과 책상과 벽난로와 거리로 난 창과 두 짝의 문을 대략 제자리에 붙박아 놓았다. 그러나 내가 그 어느 집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들 소용없는 노릇이었으니, 잠이 덜 깬 멍한 순간에 또렷이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그런 집들이 그럴싸하게 있을 법도 하다고 여전히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억이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대개 나는 곧바로 다시 잠들려 하지 않고, 밤의 태반을 콩브레의 종조모 댁에서 지내던 옛 시절의 삶을, 그리고 발베크와 파리와 동시에와 베네치아와 그 밖의 여러 곳을 떠올리며 보내곤 했다. 내가 알던 온갖 장소와 사람을, 그것들에 대해 내가 실제로 본 것과 남들이 나에게 들려준 것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말이다.

콩브레에서는 오후가 저물 때마다, 잠자리에 올라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멀리 떨어져 잠 못 이룬 채 누워 있어야 할 시각이 오기 훨씬 전부터, 내 침실은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들이 모여드는 붙박이 초점이 되었다. 유난히 처량해 보이던 저녁이면 내 기분을 달래 주려고 누군가 좋은 생각을 내어, 나에게 환등기를 하나 주었는데,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것을 내 등불 위에 얹어 두곤 했다. 고딕 시대의 도편수와 유리 채색공들이 하던 식으로, 그 환등기는 내 벽의 불투명함 대신, 만질 수 없는 무지갯빛 어른거림과 갖가지 빛깔의 초자연스러운 형상을 드리웠고, 그 속에 전설들이, 변화하며 스쳐 가는 창유리 위에서인 양 그려졌다. 그러나 내 시름은 도리어 깊어질 뿐이었으니, 이 조명의 변화가, 무엇으로도 그러지 못했을 만큼, 내가 방에 대해 품어 온 익숙한 인상을 부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익숙함 덕분에 방은, 거기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고역만 아니라면 제법 견딜 만한 곳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방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했고, 마치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막 다다른 어느 곳의 호텔이나 셋방에 든 것처럼 불안해졌다.

덜컹거리는 종종걸음으로 말을 몰며, 골로는 흉악한 계략으로 마음이 가득 찬 채, 알맞은 언덕 비탈을 짙푸르게 물들인 세모꼴 작은 숲에서 나와, 껑충껑충 뛰듯이 가엾은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성을 향해 나아갔다. 이 성은 곡선 하나로 뚝 잘려 있었는데, 그 선은 실은 환등기 홈에 밀어 넣는 슬라이드 속 투명한 타원들 가운데 하나의 둘레였다. 그것은 성의 한쪽 곁채일 뿐이었고, 그 앞으로는 황야가 펼쳐져 파란 허리띠를 두른 주느비에브가 그 위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성과 황야는 노란빛이었으나, 나는 그것들을 굳이 보지 않고도 빛깔을 알 수 있었으니, 슬라이드가 나타나기 전에 브라방이라는 그 낡은 금빛의 낭랑한 이름이 나에게 틀림없는 실마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골로는 잠시 멈춰 서서, 종조모가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짤막한 대사에 슬프게 귀 기울였고, 그것을 완전히 알아듣는 듯했으니, 위엄이 없지 않은 순순함으로 자세를 고쳐 글의 지시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다시 아까와 같은 덜컹거리는 종종걸음으로 말을 몰아 떠나갔다. 그 무엇도 그의 더딘 행보를 막지 못했다. 환등기를 옮겨 놓아도 나는 여전히, 커튼의 굽이를 따라 부풀었다가 그 주름 속으로 잠기며 나아가는 골로의 말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골로 자신의 몸뚱이도 그 말과 똑같은 초자연스러운 재질로 되어 있어, 앞을 가로막는 듯한 온갖 물질의 장애를, 그 하나하나를 뼈대 삼아 제 몸에 받아들임으로써 이겨 냈다. 이를테면 문손잡이 같은 것으로, 그 위에는 이내 형태를 맞추며 그의 붉은 망토나 창백한 얼굴이 거침없이 떠다녔으되, 그 고귀함도 우수도 결코 잃지 않았고, 그런 성변화(聖變化)에 조금도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참으로 나는, 마치 메로빙거 왕조의 옛날에서 곧장 튀어나와 그토록 아득한 역사의 반영을 내 둘레에 흩뿌리는 듯한 이 밝은 영상들에서 적잖은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내 방을, 방 생각이든 내 생각이든 더는 하지 않을 만큼 온통 나 자신의 개성으로 채워 놓았는데, 그 방에 신비와 아름다움이 이렇게 밀고 들어온 데서 느낀 거북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습관의 마취 효과가 부서지자 나는 몹시 우울한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 다른 모든 문손잡이와 나에게는 달랐던 내 방의 문손잡이, 다루는 일이 어찌나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었던지 내가 돌리지 않아도 저절로 열리는 듯하던 그 손잡이가, 보라, 이제 골로의 별세계 몸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녁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식당으로 뛰어 내려갔는데, 거기 커다랗게 매달린 등불은, 골로도 푸른 수염도 알지 못하나 우리 식구와 쇠고기 조림 접시만은 잘 아는지라, 여느 저녁과 똑같은 빛을 비추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으니,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불행이 어머니를 나에게 한층 더 애틋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골로의 죄악이 나로 하여금 여느 때보다 더 꼼꼼히 내 양심을 헤아리게 몰아세운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저녁 식사가 끝나면, 아아, 나는 이내 엄마 곁을 떠나야 했다. 엄마는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날이 좋으면 정원에, 궂으면 다들 몸을 피하는 작은 응접실에 머물렀다. 다만 할머니만은 예외였으니, 할머니는 “시골에 와서 집 안에 틀어박히다니 딱한 노릇이지” 하는 지론이어서, 아버지가 나를 바깥에 두는 대신 책을 들려 방으로 올려 보내는 통에, 비가 가장 심한 날이면 아버지와 끝없는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래서야 저 애를 튼튼하고 활달하게 만들 수 없지요.” 할머니는 슬프게 말하곤 했다. “더구나 저 어린것은 얻을 수 있는 힘과 기개를 죄다 필요로 하는 아이인데.”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기압계를 살펴보았으니, 기상학에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어머니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 아주 조용히 있으면서, 다정한 존경을 담아 아버지를 바라보되, 너무 뚫어지게는 아니었으니, 그 뛰어난 정신의 신비를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떤 날씨에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프랑수아즈가 소중한 등나무 안락의자들이 젖지 않도록 부랴부랴 집 안으로 들여놓은 때에도, 폭풍우에 채찍질당하며 인적 없는 정원을 거니는 모습으로 눈에 띄곤 했다. 헝클어진 잿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겨, 이마가 생기를 주는 비바람의 정기를 더 자유로이 들이켜게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는 “이제야 숨을 좀 쉬겠구나!” 하고는 물에 흠뻑 젖은 오솔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니, 그 길은 아버지가 아침 내내 날이 갤지 물어 대던 새 정원사가 자연에 대한 감각이라곤 없는 탓에 할머니 취향에는 지나치게 곧고 반듯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진창 얼룩에서 자두빛 치마를 지키려는 걱정(그런 것은 할머니에게 전혀 없었다)에서라기보다는, 폭풍우의 도취와 위생의 힘과 내 교육의 어리석음과 정원의 대칭이 할머니 마음에 자아내는 갖가지 감정에 따라, 예민하고 덜컹거리는 종종걸음을 옮겼다. 치마는 진창 얼룩 아래로 차츰 잠겨 들어가, 그 깊이가 하녀에게 늘 새로운 골칫거리를 안기고 새로운 절망으로 그녀를 채우곤 했다.

할머니의 이런 산책이 저녁 식사 뒤에 벌어질 때면, 어김없이 할머니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도는 길이 나방처럼 할머니를, 트럼프 탁자에 술이 차려진 작은 응접실 등불이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 놓는 어느 대목에서) 종조모가 할머니를 향해 이렇게 외칠 때였다. “바틸드! 어서 들어와서 자네 남편이 브랜디 마시는 걸 좀 말리게!” 실은 그저 할머니를 놀리려고(할머니가 워낙 별난 기질을 아버지 집안에 들여온 터라 다들 그것을 우스개로 삼았다), 종조모는 술이 금지된 할아버지에게 그저 몇 방울을 들게 하곤 했던 것이다. 가엾은 우리 할머니는 들어와서 남편에게 브랜디를 입에 대지 말라고 빌고 또 애원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짜증을 내며 기어이 그 몇 방울을 삼켰고, 할머니는 슬프고 낙담한 채, 그래도 여전히 미소 지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어찌나 겸허하고 다정한지, 남을 대하는 그 온화함과, 자신과 제 시름을 끊임없이 뒤로 물리는 그 마음이 얼굴 위에 미소로 어려 있었으니, 여느 사람들 낯에 떠오르는 미소와 달리 그 미소에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 말고는 비웃음의 자취가 조금도 없었고, 우리 모두를 향해서는 입맞춤이 두 눈에서 솟아나는 듯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면 그들에게 뜨거운 애무를 퍼붓고 싶은 갈망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눈이었다. 종조모가 할머니에게 안기는 괴로움, 할머니의 헛된 애원,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여림 속에 이미 진 채로도 그래도 할아버지를 술잔에서 떼어 놓으려 부질없이 애쓰는 그 모습, 이 모든 것은 훗날 나이가 들면 사람이 익숙해진 나머지 웃어넘기게 되고, 괴롭히는 이의 편을 흐뭇이 들면서 실은 그것이 정말로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그런 부류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것이 나를 얼마나 소름 돋게 했던지, 나는 종조모를 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바틸드! 어서 들어와서 자네 남편이 브랜디 마시는 걸 좀 말리게!” 하는 소리를 듣기 무섭게, 나는 비겁하게도 대번에 어른이 되어, 우리 어른들이 고통과 불의 앞에서 하는 짓을 그대로 했다. 곧 그것을 보지 않는 편을 택한 것이다. 나는 집 꼭대기로 뛰어 올라가, 교실 옆 지붕 밑 작은 방에서 혼자 울었다. 그 방은 붓꽃 뿌리 냄새가 났고, 바깥벽 돌 틈을 비집고 올라와 반쯤 열린 창으로 꽃 핀 가지를 들이민 야생 까치밥나무의 향내도 배어 있었다. 좀 더 특별하고 좀 더 은밀한 용도로 쓰이던 이 방은, 낮이면 멀리 루생빌르팽의 성탑까지 내다보이는 곳으로, 오랫동안 나의 피난처였다. 아마도 내가 문을 잠그도록 허락받은 유일한 방이었기 때문이리니, 침범당해서는 안 될 홀로 있음이 필요한 일, 곧 독서나 몽상,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나 발작하듯 치미는 욕망 같은 일을 할 때면 그러했다. 아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 자신의 의지박약과 병약한 몸,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내 앞날의 불확실함이, 남편이 저지르는 사소한 규칙 위반 따위보다 훨씬 더 무겁게 할머니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말이다. 오후에도 저녁에도 이어지던 그 끝없는 거닒 속에서, 우리는 할머니의 잘생긴 얼굴이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쳐들린 채 오르내리는 것을 보곤 했으니, 갈색으로 주름진 그 두 뺨은 나이가 들어 가을 갈아엎은 밭의 자줏빛에 가까운 빛을 띠었고, 바깥을 거닐 때면 반쯤 걷어 올린 너울에 덮여 있었으며, 그 뺨 위에는 추위가, 혹은 어떤 서글픈 상념이 어김없이 저도 모르게 흐른 눈물의 마른 자국을 남기곤 했다.

밤에 잠자리로 올라갈 때 내 유일한 위안은, 내가 침대에 든 뒤 엄마가 들어와 입 맞춰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잘 자라는 인사는 어찌나 짧던지, 엄마는 이내 다시 내려가 버려서, 엄마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땋은 밀짚 술이 조롱조롱 달린 파란 모슬린 정원 드레스가 이중문 복도를 따라 사각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그 순간은, 나에게는 더없이 애타는 슬픔의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잘 자라는 인사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급기야 그것이 되도록 늦게 오기를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엄마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유예의 시간을 늘리고 싶어서였다. 이따금 엄마가 입을 맞추고 나서 나가려고 문을 열면, 나는 엄마를 다시 불러 “한 번만 더 입 맞춰 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엄마가 대번에 언짢은 낯빛을 지으리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의 비참함과 안달을 달래려 이렇게 잘 자라는 평화의 입맞춤을 하러 올라와 주는 그 양보가 늘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른 까닭이니, 아버지는 그런 격식을 터무니없다고 여겼고, 엄마는 내가 엄마를 곁에 두어야 하는 그 필요와 습관 자체를 차차 떨쳐 버리게 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엄마가 이미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을 때 입맞춤을 한 번 더 청하는 습관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언짢아하는 낯빛을 보는 것은, 조금 전 엄마가 내 침대 위로 사랑 어린 얼굴을 숙이며, 내 입술이 그 실재하는 임재의 느낌과 함께 잠들 힘을 깊이 마실 수 있도록 영성체의 성체인 양 그 얼굴을 내밀었을 때 나에게 안겨 준 그 온전한 평온의 느낌을 죄다 부수어 버렸다. 그러나 엄마가 내 방에 그토록 잠깐만 머무는 저녁들도, 손님이 저녁 식사에 와서 엄마가 아예 올라오지 못하는 저녁들에 견주면 참으로 달콤한 것이었다. 우리 집 “손님”이라야 사실상 스완 로 국한되었으니, 어쩌다 지나가는 낯선 이 몇을 빼면 콩브레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그가 유일해서, 때로는 이웃 삼아 저녁을 들러(다만 그 불행한 결혼 뒤로는 뜸해졌으니, 우리 식구가 그의 아내를 맞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은 까닭이다), 때로는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청하지 않아도 불쑥 찾아오곤 했다. 그런 저녁이면, 우리가 집 앞 큰 밤나무 아래 철제 탁자에 둘러앉아 있을 때, 정원 저편 끝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것은 “종도 울리지 않고” 들어와 그 장치를 멈춰 놓은 식구 아무나를 그 무쇠 같고 끝없이 이어지는 얼어붙은 소리로 알리며 귀를 먹먹하게 하던 그 크고 시끄러운 종소리가 아니라, 손님용 초인종의 이중으로 울리는 소리, 곧 머뭇거리는 듯 둥글고 도금한 듯한 그 소리였다. 그러면 다들 대뜸 “손님이네! 대체 누굴까?” 하고 소리쳤지만, 실은 스완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종조모는 본을 보이려고, 짐짓 자연스레 들리게 하려는 어조로 큰 소리를 내며,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소곤대지 말라고, 들어오는 낯선 이에게 그보다 더 거북한 것은 없으며 그가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리라고 이르곤 했다. 그러고는 할머니가 척후로 내보내졌는데, 할머니는 정원을 한 바퀴 더 돌 핑곗거리가 생긴 것을 늘 반가워하며, 지나는 길에 슬그머니 장미나무 한두 그루의 버팀대를 뽑아, 장미가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이게 하는 데 그 기회를 썼다. 마치 이발사가 매만져 놓은 머리를 어머니가 손으로 헝클어, 아이 머리통 둘레로 알맞게 뻗치게 하듯이 말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