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용한 저녁을 보내고 나면 스완의 의심은 잠시 잦아들었다. 그는 오데트의 이름을 축복하고, 이튿날 아침이면 가장 아리따운 보석을 그녀에게 보내라 이르곤 했다. 지난밤 그녀가 베푼 다정함이 그의 안에 고마움을, 혹은 그것을 다시 보고 싶은 바람을, 혹은 그런 배출구를 필요로 하는 그녀를 향한 사랑의 격발을 불러일으킨 까닭이었다.
그러나 또 어떤 때에는 슬픔이 다시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오데트가 포르슈빌의 정부라고, 그리고 자기가 초대받지 못한 샤투의 야회 전날 저녁, 두 사람이 불로뉴 숲에서 베르뒤랭 부부의 사륜마차 깊숙이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마부조차 알아챈 그 절망 어린 낯빛으로 자기와 함께 집으로 가자고 헛되이 애원하다가 외로이 짓눌린 채 돌아서던 그 순간, 그녀가 “저 사람 좀 봐요, 성이 잔뜩 났네!”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포르슈빌의 눈길을 그에게 돌리려고, 예전에 포르슈빌이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서 사니에트를 쫓아내던 저녁에 지었던 것과 똑같은, 반짝이고 짓궂고 곁눈질하는 교활한 눈길을 지었으리라고 상상했다.
그럴 때면 스완은 그녀를 몹시 미워했다. “하지만 나도 어리석었지,” 그는 스스로 따지곤 했다. “내 돈으로 딴 사내들의 쾌락값을 치르고 있으니 말이야. 어쨌거나 그녀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너무 자주 줄을 잡아당기지 말라고. 안 그러면 내가 아예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쨌든 당분간은 여분의 호의는 딱 끊는 편이 낫겠어. 생각해 보면 바로 어제만 해도, 그녀가 그 철에 바이로이트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바이에른 왕이 거기 가진 그 아담하고 근사한 별장 하나를 우리 둘이 쓰자고 나설 만큼 얼간이였지. 그런데 그녀는 별로 마음이 없어 보였어. 아직 그렇다 저렇다 말이 없거든. 부디 거절해 주었으면. 맙소사! 그녀와 함께 꼬박 두 주 동안 바그너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게. 물고기가 사과 나부랭이에 관심을 두는 만큼밖에 음악에 관심 없는 그녀와 말이야. 참 재미도 있겠군!” 그리고 그의 미움도 그의 사랑처럼 행동으로 드러나야만 했기에, 그는 자기의 고약한 상상을 점점 더 멀리까지 몰아붙이며 즐겼다. 오데트에게 뒤집어씌운 배신들 덕분에 그녀를 한층 더 미워하게 되었고, 만약 (그가 스스로 믿어 보려 애썼듯이) 그녀가 정말로 그 죄를 지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 기회를 틈타 그녀를 벌하여 넘쳐 나는 분노의 병들을 그녀에게 쏟아부을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급기야, 그녀에게서 편지가 한 통 오리라고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그 편지에서 그녀는 바이로이트의 별장을 빌릴 돈을 청하면서, 다만 자기가 포르슈빌과 베르뒤랭 부부를 초대하기로 약속했으니 그더러는 오지 말라고 못박으리라는 것이었다. 아, 그녀가 정말 그런 뻔뻔함을 부린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이기만 했다면, 그는 그 편지를 얼마나 반겼을까. 거절하는 데에서, 저 앙갚음의 답장을 써 내려가는 데에서 그는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보았을까. 그는 마치 그녀의 편지를 정말로 받기라도 한 양, 그 답장의 문구를 골라 소리 내어 읊조리며 즐겼다.
바로 이튿날, 그녀의 편지가 왔다. 그녀는 베르뒤랭 부부와 그 친구들이 이번 바그너 공연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고, 그러니 그가 부디 돈을 좀 보내 준다면, 그토록 자주 그들의 집을 드나든 끝에 마침내 자기 집에서 베르뒤랭 부부를 대접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적었다. 그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들이 바이로이트에 있다는 것이 곧 그가 갈 수 없다는 뜻임은 당연히 전제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정작 쓰일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바라지도 못한 채 밤새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공들여 되뇌던 그 숨통을 끊어 놓을 듯한 답장을, 그는 그녀에게 전하게 하는 만족을 누렸다. 아아! 그러나 그는, 바흐와 클라피송조차 가려듣지 못하는 그녀가 가고자 한다면, 이미 가진 돈으로든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든 그래도 바이로이트에 별장 하나쯤은 빌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빌리라지. 그저 그 안에서 좀 더 옹색하게 지내야 할 뿐일 테니. 다만 (그가 수천 프랑짜리 지폐 여러 장을 보내 답했더라면 마련되었을) 그 방도, 곧 저녁마다 빌린 성에서 그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만찬을 벌이고, 그 만찬 끝에 어쩌면 (여태 한 번도 그녀를 사로잡은 적 없을지 모를) 포르슈빌의 품에 안기고 싶은 변덕에 사로잡힐 그 방도만은 없을 터였다. 어쨌거나 이 역겨운 원정길, 그 값을 치를 사람이 스완일 수는 없었다. 아! 그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녀가 떠나기 전에 발목이라도 삐어 준다면, 그녀를 역까지 데려다줄 마차의 마부가 (뇌물이 아무리 크든) 그녀를 어딘가로 몰래 빼돌려 한동안 가두어 두는 데 응해 준다면, 저 신의 없는 여자를, 포르슈빌을 향한 공모의 미소로 눈이 번들거리는, 지난 마흔여덟 시간 동안 스완에게 오데트가 되어 버린 저 여자를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여자로 남아 있는 것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그 반짝이고 교활한 눈은 광채와 두 마음을 잃었고, 포르슈빌에게 “저 사람 좀 봐요, 성이 났네!” 하고 말하던 그 가증스러운 오데트의 그림은 빛이 바래 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차츰 또 다른 오데트의 얼굴이, 부드럽게 빛을 발하며 그의 앞에 다시 떠올랐다. 그 오데트 역시 미소를 지으며 포르슈빌 쪽을 돌아보았으나, 그 미소에는 오직 스완을 향한 애정뿐이었으니, 그녀가 이렇게 말할 때의 미소였다. “오래 계시면 안 돼요, 이분은 계실 때 제게 손님이 있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거든요. 아! 제가 아는 만큼 당신도 이 사람을 아신다면!” 그 미소는, 그녀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그의 어떤 정중한 배려에 대해, 혹은 오직 그에게만 기댈 수 있던 삶의 어떤 중대한 고비에서 그에게 청했던 어떤 조언에 대해 스완에게 고마워하곤 하던 바로 그 미소였다.
그러면 이 또 다른 오데트를 앞에 두고, 그는 대체 무엇에 이끌려 그 터무니없는 편지를 썼던가 자문하곤 했다. 그때까지 그녀는 아마 그가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고, 그 편지는 틀림없이 그가 자신의 너그러움과 한결같음으로 그녀의 존경 속에 스스로 얻어 낸 그 높은 자리, 그 더없이 높은 자리에서 그를 끌어내렸을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덜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었다. 그녀가 포르슈빌에게서도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지 못한 바로 그 자질들 때문에 그를 사랑했으니 말이다. 오데트가 그토록 자주 그에게 마주 베푸는 다정함을 보인 것도 바로 그 자질들 때문이었는데, 그 다정함은 그가 질투에 사로잡힌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한 것이었다. 그것이 마주 품은 욕망의 표시가 아니라, 실은 사랑이라기보다 애정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에 관한 독서나 친구와의 대화가 가져다주는 기분전환으로 흔히 더 빨라지곤 하던 그의 의심의 저절로 풀림이, 그의 열정으로 하여금 마주 갚음을 덜 요구하게 만드는 만큼, 그는 그 다정함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 진자의 흔들림 끝에 오데트가, 스완의 질투가 잠시 그녀를 몰아냈던 그 자리로, 곧 그가 그녀를 사랑스럽게 여기는 그 각도로 자연스레 되돌아오자, 그는 그녀를 다정함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눈에 허락의 빛을 담은 모습으로, 그리고 마치 정말로 방 안에 있어 입 맞출 수 있기라도 한 양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그녀 쪽으로 가져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녀가 정말로 자기를 그렇게 바라보기라도 한 듯, 그 넋을 홀리는 다정한 눈길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했으니, 그것이 실은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상상이 그려 낸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 고마움은 그만큼이나 강렬했다.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괴로움을 안겼을 것인가! 물론 그는 자기 원망에 걸맞은 이유들을 찾아냈지만, 그가 그녀를 그토록 격정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이유들만으로는 그 원망을 느끼기에 넉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도 꼭 그만큼 심각한 원한을 품은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이제 와서는 그 여자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베풀며, 더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에 아무런 노여움도 느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언젠가 오데트에 대해서도 똑같은 무관심의 상태에 이르는 날이 온다면, 그는 그때에야, 기회가 닿을 때 이번에는 자기 차례로 베르뒤랭 부부의 환대에 보답하고 자기 집에서 안주인 노릇을 해 보고 싶다는 그 바람(따지고 보면 어린애 같은 천진함에서, 또 그녀의 천성에 깃든 어떤 섬세함에서 우러난, 참으로 자연스러운 바람)에서 무언가 끔찍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게 한 것이 오직 자기 질투뿐이었음을 깨닫게 될 터였다.
그는 또 다른 관점으로 돌아왔다. 자기 사랑과 질투의 관점과는 반대되는, 일종의 마음의 공정함에서, 또 여러 가능성을 헤아려 보려고 이따금 기대곤 하던 그 관점으로. 그 관점에서 그는, 자기가 그녀를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그녀는 그에게 그저 다른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여자일 뿐이라는, 그녀의 삶은 (그 자신이 곁에 없을 때마다) 그와 떨어져 은밀히 짜여 그를 거스르는 쪽으로 뒤틀린 딴것이 아니었다는 가정 위에서, 오데트를 새로이 판단해 보려 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그녀가 그곳에서 포르슈빌이나 다른 사내들과 더불어, 자기와는 한 번도 누린 적 없는, 오직 자기 질투가 그 낱낱을 지어낸 그런 사람을 취하게 하는 쾌락을 누리리라 믿는단 말인가? 바이로이트에서도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설령 포르슈빌이 그를 조금이라도 떠올린다면, 그것은 오로지 오데트의 삶에서 대단히 큰 몫을 차지하는 사람, 그녀의 집에서 마주치면 자기가 자리를 비켜 주어야만 하는 사람으로서일 뿐이었다. 만약 포르슈빌과 그녀가 그의 뜻을 거스르며 그곳에 함께 감으로써 승리를 거둔 것이라면, 그 승리를 꾸며 낸 것은 오히려 그녀가 그곳에 가는 것을 헛되이 막으려 애쓴 그 자신이었다. 반대로 그가 그녀의 계획을 (따지고 보면 얼마든지 정당한 계획이었으니) 승낙해 주었더라면, 그녀는 그의 권유로 그곳에 간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자기가 그의 손에 보내지고 그의 손에 거처를 얻은 것으로 여겼을 것이며, 그토록 자주 자기를 대접해 준 그 사람들을 대접하는 데에서 얻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그에게 신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만약, 그녀를 이렇게 자기와 어긋난 채, 다시 만나 보지도 못한 채 떠나가게 두는 대신, 그가 이 돈을 그녀에게 보내 준다면, 그녀에게 이 여행을 떠나라 부추기고 애써 그것을 편안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 준다면, 그녀는 행복해하고 고마워하며 그에게 달려올 것이고, 그러면 그는 거의 한 주 내내 알지 못했던 그 기쁨, 곧 그녀의 얼굴을 보는 기쁨,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터였다. 스완이 혐오감 없이 그녀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고, 그녀의 미소 속 다정함을 다시 볼 수 있으며, 그녀를 온갖 연적에게서 떼어 내려는 욕망이 더는 그의 질투에 떠밀려 그의 사랑에 얹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사랑은 다시금 무엇보다도 오데트라는 사람이 그에게 안겨 주는 감각에 대한, 곧 하나의 구경거리를 감탄하듯 바라보거나 하나의 현상을 캐묻듯 지켜보며 그녀의 어떤 눈길이 태어나는 것, 그녀의 어떤 미소가 지어지는 것,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 억양으로 울려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데에서 얻는 즐거움에 대한 취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무엇과도 다른 이 즐거움은, 마침내 그의 안에 그녀에 대한 갈구를 빚어냈으니, 오직 그녀만이 자기 존재로써 혹은 편지로써 달랠 수 있는 그 갈구는, 스완의 삶의 이 새로운 시기를 특징짓던 또 다른 갈구만큼이나 사심 없고, 그만큼이나 예술적이며, 그만큼이나 뒤틀린 것이었다. 이 새로운 시기란, 앞선 몇 해의 메마름과 침울함 뒤에 일종의 정신적 넘쳐남이 뒤따라온 때로, 어느 순간부터 몸이 튼튼해지고 살이 붙어 한동안은 완전한 회복의 길에 들어선 듯 보이는 허약한 사람이 그러하듯, 그는 자기 삶의 이 뜻밖의 풍요를 무엇 덕분에 얻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 또 다른 갈구 역시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는 무관하게 그의 안에서 자라난 것으로, 곧 음악을 듣고 그것을 알아 가려는 갈구였다.
그리하여 그의 병이 벌이는 화학 작용에 따라, 그는 자기 사랑에서 질투를 빚어내고 난 뒤, 다시 다정함을, 오데트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금 예전의 오데트, 사랑스럽고 다정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그녀를 모질게 대한 것이 못내 뉘우쳐졌다.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 와 주기를 바랐고, 그녀가 오기 전에 미리 그녀에게 어떤 기쁨을 마련해 두어, 그 고마움이 그녀의 얼굴에 형체를 갖추어 미소를 빚어내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오데트 또한, 며칠만 지나면 그가 예전처럼 다정하고 고분고분하게 자기에게 와서 화해를 청하리라 확신했기에, 이력이 나서 더는 그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도, 심지어 그를 성나게 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자기에게 편할 때면 언제든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그 은총들을 그에게 거절하곤 했다.
어쩌면 그녀는, 다툼이 한창일 때 그가 자기에게 한 푼도 보내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녀를 아프게 하려고 할 수 있는 짓은 다 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다른 때에 그가 여전히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도, 적어도 그녀에게는 아닐지언정 그 자신에게만은 진심이었는지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곧 앞으로의 두 사람 관계를 위해, 자기가 그녀 없이도 지낼 수 있음을, 두 사람 사이에 파국이 아직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오데트에게 보이려고, 그가 다시 그녀를 보러 가기까지 한동안 기다리기로 마음먹곤 하던 그런 때에 말이다.
이따금 며칠이 흐르는 동안 그녀가 그에게 아무런 새 불안도 안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녀를 몇 차례 찾아가 보아야 거기서 큰 기쁨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지금 놓여 있는 이 고요한 상태를 끝장낼 어떤 언짢음을 얻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자기가 몹시 바빠서 앞서 자기가 제안했던 그 어느 날에도 그녀를 볼 수 없겠다고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러던 참에, 그의 편지와 엇갈려 온 그녀의 편지가 바로 그 만남들 가운데 하나를 미뤄 달라고 청해 왔다. 그는 왜일까 자문했다. 그의 의심이, 그의 슬픔이 다시 그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새로운 동요의 상태에 빠져든 그는, 앞서 그나마 고요하던 상태에서 자기가 세워 둔 결정을 더는 지킬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찾아 달려가, 이어지는 날마다 그녀를 보아야겠다고 우기려 들었다. 설령 그녀가 먼저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편지에 답장만 했더라도, 그것만으로도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기에 충분했다. 스완의 온갖 계산을 뒤엎으며, 오데트의 수락이 그의 태도를 온통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한순간 지니지 않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보려고 그 소중한 물건을 자기 마음에서 떼어 내면서, 나머지 모든 것은 그것이 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으리라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전체에서 한 부분이 빠진다는 것은 그저 그뿐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일부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모든 부분의 어지러워짐이며, 옛 상태로는 도저히 내다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오데트가 막 휴가를 떠나려던 무렵이면, 그가 일부러 구실로 삼은 사소한 말다툼 끝에,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편지도 쓰지 않고 만나지도 않기로 마음먹곤 했으니, 이는 어차피 그녀가 떠나는 이상 대부분 피할 수 없는 이별에다, 진지한 결별이라는 겉모습을 (그리고 그 보상을 기대하며) 입히려는 것이었고, 그녀는 어쩌면 그것을 영영 끝난 일로 여길지도 몰랐지만, 실은 그로서는 마땅히 시작될 시점보다 그 이별을 조금 앞당겨 시작하게 두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내, 그의 방문도 편지도 받지 못해 어리둥절해하고 불안해하며 괴로워하는 오데트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고, 그녀의 그런 모습은 그의 질투를 가라앉혀 줌으로써 그녀를 만나는 습관을 끊기 쉽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이따금, 결심이 그 생각을 밀어내 둔 그의 머릿속 가장 깊은 구석에서, 그리고 그가 동의한 긴 간격, 곧 삼 주간의 이별 덕분에, 그는 그녀가 돌아오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즐거이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그 조바심이 어찌나 적었던지, 그는 이토록 손쉬운 절제의 기간을 두 배로 늘리는 데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 절제는 지금까지 겨우 사흘 이어졌을 뿐, 그가 전에 오데트를 보지 못한 채, 더구나 이번처럼 이별을 미리 작정하지도 않은 채 흘려보내곤 하던 나날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바로 그 순간, 마음속의 사소한 심사 뒤틀림이나 몸의 작은 나른함이, 지금 이 순간을 규칙이 다스릴 수 없는 예외적인 때, 신중함마저도 쾌락의 진정 효과를 누리도록 허락하고 (애써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을 때가 올 때까지) 그의 의지에 휴가를 주도록 허락하는 때로 여기게끔 부추김으로써, 그의 의지의 작용을 멈추게 하여 억제하는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아니, 그런 것조차 없이도, 그가 오데트에게 물어보기를 잊은 어떤 정보, 이를테면 그녀가 마차를 어떤 색으로 다시 칠하기로 정했는지, 혹은 어떤 투자와 관련해 그녀가 사 주기를 바라는 것이 ‘보통주’인지 ‘우선주’인지 하는 생각이 (그녀를 보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그녀에게 보여 주는 것은 좋으나, 그러고 나서 마차를 다시 칠해야 한다거나 주식이 배당을 내지 못한다면, 그가 애써 이룬 일이 참으로 대단하기도 하겠기에), 그러다 문득, 놓았다가 튀어 오르는 팽팽한 고무줄처럼, 혹은 찢겨 열린 공기 기계 속의 공기처럼,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이, 그것이 묶여 있던 먼 시점으로부터 현재와 당장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튕겨 돌아왔다.
그렇게 그 생각은 더는 아무런 저항도 만나지 않은 채 튕겨 돌아왔으니, 어찌나 거스를 수 없었던지, 실은 스완은 오데트와 떨어져 지내야 할 보름이 하루하루 끝나 가는 것을 지켜볼 때보다, 그녀에게 데려다줄 마차를 마부가 돌려 대는 동안 십 분을 기다릴 때 훨씬 덜 불행했다. 그 십 분을 그는 조바심과 기쁨에 겨워 보냈으며, 그 사이 그는 오데트와의 만남이라는 생각을, 그토록 갑작스러운 반동으로, 아득히 멀다고 여기던 순간에 다시금 눈앞에, 바로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그 생각을, 수천 번이고 되풀이해 붙들고서 온 애정의 재물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사실 이 생각은 이제 그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더 미루지 않고 물리치려는 욕망을 더는 만나지 않았으니, 그 욕망은 스완의 마음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적어도 그렇게 믿기로는, 자신이 그토록 손쉽게 그 욕망을 물리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터라,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실행에 옮길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이별 계획을 미루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이 생각은, 오랜 습관이 무디게 만들어 두었으나 사흘이 아니라 보름이라는 이 결핍 동안 새로운 힘을 얻은 참신함과 매혹으로 단장하고 독기로 무장한 채 그에게 돌아왔으니 (절제의 기간이란 미리 앞당겨, 이미 그것에 정해진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헤아릴 수 있는 법이므로), 그리하여 그때까지 손쉽게 희생할 수 있던, 아껴 둔 즐거움이던 것을, 그가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뜻밖의 행복으로 바꾸어 놓았다. 끝으로 그 생각은, 그가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오데트가 무엇을 생각했을지, 어쩌면 무엇을 했을지 그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 아름다움이 한층 더해진 채 그에게 돌아왔고, 그리하여 그는 이제 거의 알지 못하는 오데트라는 황홀한 계시를 마주하러 가는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돈을 보내지 않겠다고 한 것이 한낱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가 이제 마차를 다시 칠하는 일이나 주식을 사는 일에 관해 물으러 온 그 질문에서도 한낱 구실밖에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겪는 이 위기의 여러 국면을 되짚어 재구성할 수 없었고,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품은 두루뭉술한 생각 속에서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은 채, 미리 알고 있는 것, 곧 그 위기의 필연적이고 어김없으며 늘 한결같은 결말만을 바라보았다. 스완의 처지에서 판단한다면 불완전한 생각이었지만 (그럴수록 어쩌면 더 깊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완이라면 틀림없이 오데트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마치 모르핀 중독자나 폐병 환자가, 한쪽은 뿌리 깊은 습관에서 막 벗어나려던 순간에 어떤 외부의 사건 탓에, 다른 한쪽은 마침내 나으려던 순간에 우연한 몸의 탈 탓에 도로 밀려났다고 저마다 굳게 믿으며, 이런 그럴싸한 우연들에 똑같은 중요성을 두지 않는 의사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과 같았다. 의사가 보기에 그 우연들이란, 한쪽의 악습과 다른 한쪽의 병든 상태가 환자들 눈에 띄도록 걸친 한낱 위장에 지나지 않았으니, 실은 그 악습과 병은, 환자들이 정상과 건강의 꿈을 애지중지 품는 동안에도 그들을 무겁게, 낫지 않게 짓누르기를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스완의 사랑은, 의사가, 그리고 (어떤 병의 경우에는) 가장 대담한 외과의마저, 환자에게서 악습을 빼앗는 것이 혹은 병을 없애 주는 것이 아직 온당한지, 아니 애초에 가능하기나 한지 스스로 묻게 되는 그런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물론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스완은 직접 알지 못했다. 그것을 가늠해 보려 하면, 때로는 그것이 줄어들어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오그라든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오데트를 사랑하기 전, 그녀의 표정 어린 이목구비와 바랜 낯빛에 대해 그가 느끼던, 거의 반감에 가까운 아주 미지근한 호감이 어느 날들에는 되살아나곤 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뚜렷이 나아지고 있군.’ 이튿날이면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곰곰이 되짚어 보면, 어젯밤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별 즐거움도 얻지 못했다는 걸 알겠어. 이상한 노릇이지만, 사실 그녀가 못생겼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분명 진심이었으나, 그의 사랑은 육체적 욕망의 영역을 훌쩍 넘어 뻗어 있었다. 실제로 오데트라는 사람 자체는 그 사랑에서 이제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오데트의 사진에 눈길이 가 닿을 때나 그녀가 그를 찾아올 때면, 그는 살아 있는 그 얼굴이든 판지 위의 얼굴이든, 그것을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고통스럽고 끊임없는 불안과 하나로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는 거의 놀라움에 젖어 ‘이 여자로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으니, 마치 누군가가 문득 우리 자신의 병 하나를 떼어 내어 밖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 줄 때,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닮은 데를 찾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이 여자가?’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스스로 물어보려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병에 대한 그 어렴풋한 관념들이라기보다는) 사랑이나 죽음 같은 무엇, 곧 대답을 얻지 못할까 봐, 그 실체가 우리 손아귀를 벗어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더 깊이 파고들려고 거듭거듭 되묻게 되는 무엇, 바로 인격의 신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완의 사랑이었던 이 병은, 이미 여러 갈래로 불어나, 그의 온갖 습관과 온갖 행동, 그의 생각과 건강, 잠과 삶, 심지어 죽은 뒤에 그가 바라는 것과도 어찌나 촘촘히 얽혀, 어찌나 온전히 그와 하나가 되어 버렸던지, 그를 거의 통째로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그것을 떼어 낼 수 없었을 터였다. 외과의들의 말마따나, 그의 경우는 이미 수술로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 사랑 탓에 스완은 다른 온갖 관심사에서 어찌나 멀어져 있었던지, 어쩌다 다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낼 때면, 아름답게 세공한 장식 받침처럼 (그녀로서는 그 값어치를 그리 정확히 헤아릴 수 없었겠지만) 그의 사교적 인연이 그래도 오데트의 눈에 비친 그 자신의 값을 조금은 더 높여 줄지 모른다고 스스로 일깨우면서도 (하기야 그의 사랑 자체가 그것을 값싸게 만들지만 않았던들 정말 그럴 수도 있었으니, 그 사랑은 자기보다 덜 귀하다고 몰아세우는 듯이 굴며 손대는 모든 것을 오데트에게는 값어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는 괴로움과 더불어, 유한계급의 놀이를 그린 소설이나 그림에서 얻을 법한 그 초연한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그것은 마치 집에서 그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살림살이며 자신의 옷차림과 하인들 제복의 말끔함이며 투자의 탄탄함을 흐뭇이 떠올리던 것과 같았으니, 그가 아끼는 작가 가운데 하나인 생시몽을 읽으며 베르사유의 일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맹트농 부인이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혹은 륄리의 약삭빠른 인색함과 대단한 호사를 읽을 때와 똑같은 재미로 그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초연함이 온전하지 못한 그 얼마 안 되는 자락에서, 스완이 맛보던 이 새로운 즐거움의 까닭은, 그가 잠시나마 자기 안의, 그의 사랑과 고통에 거의 물들지 않고 남아 있던 그 몇 안 되는 먼 구석으로 옮겨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샤를 스완이라는 좀 더 개인적인 인격과는 구별되는, ‘젊은 스완’이라는, 나의 대고모가 그에게 부여한 그 인격이야말로 이제 그가 가장 즐기는 것이었다. 한번은, 파름 대공비의 생일이라서 (또 그 대공비가 오데트에게 갈라 공연이나 기념 행사 따위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었기에) 그녀에게 과일 바구니를 보내기로 마음먹었으나, 어디서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그는 그 일을 어머니의 사촌 하나에게 맡겼다. 그를 위해 심부름하게 된 것을 기뻐한 그녀는, 과일을 모두 한곳에서 고르지 않았노라고, 포도는 그것이 특기인 크라포트에서, 딸기는 조레에서, 배는 늘 가장 좋은 것을 두는 슈베에서 골랐노라고, ‘과일 하나하나를 제가 직접 살피고 골랐다’고 힘주어 적은 편지를 그에게 보내왔다. 그리고 뒤이어, 대공비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한 그 정겨움으로 미루어, 그는 딸기의 맛과 배의 무르익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과일 하나하나를 제가 직접 살피고 골랐다’는 구절이, 그가 좀처럼 찾지 않던 어떤 영역으로 그의 마음을 데려감으로써 그의 괴로움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곳은 본디 그의 것이었으니, 그는 좋은 ‘가게’를 알아보는 안목과 상점에 물건을 주문하는 요령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 부유하고 번듯한 중산층 집안의 상속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