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금은, 스완을 만난 뒤 그녀가 그로서는 알지 못하는 어떤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스완은 오데트의 얼굴에서, 포르슈빌이 와 있는데 그가 그녀를 찾아갔던 날 그녀가 짓던 그 슬픔의 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드문 일이었으니, 그녀가 해야 할 온갖 일에도, 남들이 어찌 여길까 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완을 실제로 만나 낸 날이면, 이제 그녀의 태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신만만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귀던 초기에 그녀가 그 앞에서, 심지어 그가 없을 때에도, ‘당신, 손이 하도 떨려서 글씨를 겨우 쓰겠어요’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던 무렵 느끼던 그 겁먹은 감정과는 놀랍도록 대조되는, 어쩌면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앙갚음이자, 어쩌면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작용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런 척했고, 그 감정 가운데 얼마쯤은 진심이었음이 틀림없다. 아니라면 그녀가 그것을 부풀리고 힘주어 드러내려 애쓰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그 무렵 스완은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우리 손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가 아니고서는 떨리지 않는 법이다. 그들이 더는 우리 행복을 좌우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들 앞에서 얼마나 태연해지고, 얼마나 홀가분해지며, 얼마나 대담해지는가! 이제 그에게 말할 때도, 그에게 편지를 쓸 때도, 그녀는 그가 자기 것이라는 착각을 스스로에게 심어 주려 쓰던 그 말들을, 그를 가리키며 ‘나의’니 ‘내 것’이니 하고 말할 구실을 만들어 내던 그 말들을 더는 쓰지 않았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전부예요. 이건 우리 우정의 향기예요, 나는 이걸 간직할 거예요’ 같은 말도, 미래를, 죽음마저도 둘이 함께 겪어야 할 하나의 모험인 양 그에게 이야기하는 일도 이제 없었다. 그 초기 시절에는, 그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감탄하며 대답하곤 했다. ‘있잖아요, 당신은 절대 다른 사람들 같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조금 벗어진 그의 길쭉한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의 성공만 아는 이들이 ‘반듯하게 잘생겼다고까지는 못 해도 멋이 있어. 저 앞머리하며 저 외알 안경하며 저 미소하며!’ 하고 여기던 그 머리를. 그러고는 어쩌면 그의 정부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 그를 있는 그대로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그녀는 한숨지으며 말하곤 했다.
‘당신 그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정말 알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때로는 짜증 섞인, 때로는 너그러운 어조로 대답하곤 했다. ‘아! 그래요, 당신은 끝내 다른 사람들 같지 않겠지요!’
그녀는 그의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으니, 근래의 근심들로도 좀처럼 늙지 않은 그 머리를. (하기야 이제 사람들은, 해설을 미리 읽은 교향곡 한 곡의 뜻을 알아채게 하거나, 그 집안을 알고 지낸 아이에게서 ‘닮은 데’를 알아보게 하는 것과 똑같은 마음의 작용으로, 그 머리를 두고 이렇게 여겼다. ‘딱히 못생겼다고까지는 못 해도, 정말이지 어지간히 우스꽝스러워. 저 외알 안경하며 저 앞머리하며 저 미소하며!’ 넌지시 부추김을 받은 그들의 상상 속에서, 몇 달 사이를 두고 애타는 연인의 머리를 오쟁이 진 사내의 머리와 갈라놓는 그 보이지 않는 경계를 그려 내면서.)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당신을 바꿀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 머릿속에 철 좀 들게 말이에요.’
자기가 바라는 바가 진실이라고 언제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던 그는,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오데트가 그를 대하는 태도뿐일 때면, 그녀에게 건네는 말에 게걸스럽게 매달리곤 했다. “당신만 마음먹으면 할 수 있잖아요.”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 다잡아 주고, 일하게 만드는 것이 고귀한 소임이며, 다른 수많은 여자들은 그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그녀에게 설명하려 애썼다. 다만 공정을 기하자면, 그 다른 여자들의 손에 맡겨졌더라면 그 고귀한 소임도 스완에게는 자신의 행동의 자유를 무례하고 견딜 수 없이 침탈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덧붙여 두어야겠다. “그녀가 나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를 바꾸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를 바꾸려면 나를 더 자주 만나야 할 테고.” 이렇게 해서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서 찾아낸 이 결점들 속에서 적어도 그녀의 관심의 증거를, 어쩌면 사랑의 증거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실제로 이제 그녀는 그 사랑이라는 것을 그에게 너무도 조금밖에 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녀가 이따금 그에게 하지 못하게 금하는 갖가지 일들을 자기에 대한 그녀의 관심의 증거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그의 마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 마부가 어쩌면 스완을 자기에게서 등 돌리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스완의 명령에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만큼의 신속함과 공손함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마치 자기에게 입맞춰 주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나한테 올 때 그 사람은 다시 데려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기 입에서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그녀는 그 말을 해 주었고, 그는 깊이 감동했다. 그날 저녁, 그녀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안겨 주는 샤를뤼스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제 그가 내뱉는 아무리 사소한 말도, 심지어 그녀에 대해 들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조차,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오데트와 관련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요즘 나한테 어찌나 다정한지, 내가 하는 일에도 분명히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 떠나려고, 가는 길 어딘가에 내려 줄 친구와 함께 마차에 오를 때, 친구가 “어이, 마부석에 앉은 게 로레단 아닌가?”라고 물으면, 스완은 얼마나 우수 어린 기쁨으로 그에게 대답하곤 했던가.
“아, 이런, 아닐세! 정말이지, 라 페루즈 거리에 갈 때는 로레단을 감히 못 데려가네. 오데트가 내가 로레단을 두는 걸 싫어해. 그가 나한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 대체 어쩌겠나? 여자들이란, 자네도 알잖나, 여자들이란. 여보게, 그녀가 노발대발할 걸세. 아, 정말 그렇다니까. 거기엔 레미를 데려갈 수밖에 없어. 안 그랬다간 두고두고 잔소리를 들을 테니!”
오데트가 이제 스완에게 취하는 이 새로운 태도, 무심하고 나른하고 신경질적인 그 태도는 분명 그를 괴롭게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오데트가 그에게 냉담해진 것은 날이면 날마다 일정하게 진행되어 온 일이었으므로, 오늘의 그녀를 처음의 그녀와 직접 견주어 보아야만 비로소 그동안 일어난 변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야말로 그의 깊은, 은밀한 상처였고, 밤낮으로 그를 아프게 했으며, 자기 생각이 그 상처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그는 너무 사무치게 괴로워질까 봐 얼른 생각을 다른 물길로 돌리곤 했다. 그는 막연히 속으로 “오데트가 나를 더 사랑하던 때가 있었지”라고 되뇔 수는 있었으나, 그 시절을 뚜렷한 그림으로 그려 보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의 서재에 결코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장롱이 하나 있어서, 방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면 그 앞을 지나지 않으려고 옆으로 비켜 가곤 했는데, 그 서랍 하나에 그가 처음 마차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던 그 초저녁들 가운데 어느 날 그녀가 준 국화 한 송이와, “어째서 당신 마음까지 잊고 가지 않으셨나요? 그건 절대 돌려드리지 않았을 텐데”라든가 “낮이든 밤이든 어느 때고 제가 필요하시면 한마디만 보내세요, 저를 마음대로 부리셔도 좋아요”라고 적힌 편지들을 넣고 잠가 두었던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도 자기 생각이 결코 너무 가까이 넘어들지 못하게 하는 자리가 하나 있어서, 필요하다면 그 자리의 손닿는 데를 지나지 않도록 긴 추론의 우회로로 생각을 에둘러 가게 했으니, 그것은 행복했던 날들의 추억이 머무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토록 세심한 그의 조심성도 어느 날 저녁 그가 어떤 야회에 나갔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생퇴베르트 후작부인 댁에서였는데, 그해 철에 그녀가 나중에 자선 음악회에서 연주하게 될 악사들의 연주를 들으라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저녁 모임들 가운데 마지막 밤이었다. 앞서 열린 저녁 모임에도 차례로 다 가 볼 작정이었으나 끝내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스완은, 이 야회에 갈 채비로 옷을 차려입던 중에 샤를뤼스 남작의 방문을 받았다. 남작은, 스완이 거기 가서 그리 지루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덜 울적하도록 자기가 함께 있는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와 함께 후작부인 댁에 가겠노라 제안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스완은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자네가 함께 가 준다면 내가 얼마나 기쁠지 자네는 상상도 못 할 걸세. 하지만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그 대신 오데트를 보러 가 주는 것이라네. 자네가 그녀에게 얼마나 훌륭한 영향력을 지녔는지 자네도 알잖나. 오늘 저녁 그녀는 늙은 재봉사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면 아마 아무 데도 안 갈 걸세. 자네가 거기 함께 가 준다면 그녀도 분명 무척 기뻐할 거야. 어쨌거나 그 전에는 집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걸세. 그녀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고, 겸해서 건전한 충고도 조금 해 주게. 내일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일을, 우리 셋이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좋겠네. 여름에 대해서도 슬쩍 떠 보게.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있는지, 우리 셋이 함께 떠날 만한 뱃놀이라도 있는지, 무엇이든 자네가 떠올릴 수 있는 걸로. 나야 오늘 밤 그녀를 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네. 그래도 그녀가 내가 와 주기를 바라거나, 자네가 빠져나갈 틈을 찾거든, 자정까지는 생퇴베르트 부인 댁으로 한 줄만 보내 주게. 그 뒤에는 내가 여기 있을 테니. 나를 위해 애써 주는 모든 것에 정말이지 고맙네, 자네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자네도 알잖나!”
그의 벗은 스완을 생퇴베르트 저택 문 앞에 내려 주는 대로 그가 바라는 대로 하러 가겠노라 약속했고, 스완은 샤를뤼스 씨가 저녁을 라 페루즈 거리에서 보내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 채 저택에 이르렀으나, 오데트와 관계없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특히 사교 생활의 세세한 면면에 대해서는 우수 어린 무심함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무심함은 그것들에, 더 이상 우리 욕망의 대상이 아니게 되어 제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온갖 것에서 발견되는 그런 매력을 입혀 주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리면서, 안주인들이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 손님들에게 기꺼이 펼쳐 보이며 의상과 배경의 정확성에 무척 신경을 쓰는, 그 집안 살림살이의 꾸며 낸 요약도의 맨 앞자리에서, 스완은 발자크의 ‘타이거들’의 후예이자 계승자들, 이제는 ‘그룸들’이라 불리는 이들을 발견하고 재미있어했다. 평소에는 여주인이 바깥나들이를 할 때 그 뒤를 따르던 이들이, 지금은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채, 자갈 깔린 진입로 위 저택 앞에, 또는 마구간 밖에, 마치 정원사들이 저마다 맡은 화단 끝에 사열이라도 받으려는 듯 늘어서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화랑에 걸린 초상화들 사이에서 닮은꼴을 찾으려는, 그가 늘 지녀 온 독특한 성향이 여기서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더 뚜렷하고 더 일반적인 형태를 띠었다. 이제 그가 거기서 떨어져 나온 터라, 그의 앞에 일련의 그림들로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교계 전체였던 것이다. 지난날 아직 사교계 인사였을 적이라면, 그는 외투를 걸치고 이 휴대품 보관실로 들어가 야회복 차림으로 나왔을 테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상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보낸 한두 순간 동안 그의 마음은 방금 떠나온 야회에 아직 머물러 있거나 이제 막 안내받아 들어갈 야회에 벌써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토록 뒤늦게 도착한 손님의 뜻밖의 등장에 깨어난, 힘들이지 않는 당당한 짐승 떼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곧 벤치와 궤짝 위에서 여기저기 졸고 있다가 이윽고 고귀한 그레이하운드 같은 옆모습을 곧추세우며 벌떡 일어서서 그를 둘러싸고 빙 둘러 모이는 그 거대한 하인들을 난생처음으로 알아보았다.
그중 하나는 유난히 사나운 인상을 하고 있었는데, 처형이나 고문 따위를 그린 어떤 르네상스 그림들 속 망나니와 사뭇 닮은 그자가 그의 ‘물건들’을 받아 들려고 냉혹한 기색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강철 같은 그 눈초리의 매서움은 무명 장갑의 부드러움으로 상쇄되었으니, 그 효과가 어찌나 컸던지 스완에게 다가서는 그는 그의 인격에 대한 완전한 경멸과 그의 모자에 대한 더없이 애틋한 배려를 동시에 드러내는 듯했다. 그는 지나칠 만큼 까다롭다 싶은 무언가를 그 동작의 정확성이 더해 주는 조심스러움으로, 그리고 그 훌륭한 힘의 증거가 거의 뭉클하게까지 만드는 섬세함으로 모자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자기 부하 중 하나에게 건넸는데, 그 풋내기이자 소심한 자는 자신을 짓누르는 공황을 사방으로 사나운 눈길을 던지며 드러내고 있었고, 사로잡힌 첫 몇 시간을 보내는 야생동물의 온갖 말 없는 동요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제복을 입은 건장하고 큰 젊은이 하나가, 만테냐의 그림들 중에서도 가장 소란스러운 화폭 속에서, 사방에서 싸움과 유혈과 죽음이 벌어지는 와중에 방패에 기댄 채 꿈에 잠겨 있는 그 순전히 장식적인 전사처럼, 꼼짝도 않고 조각상 같고 쓸모없는 모습으로 골똘히 서 있었다. 스완 주위로 몰려든 동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그는, 자신의 잔혹한 초록빛 눈으로 그 광경을 흐릿하게 좇으면서, 마치 그것이 영아 학살이나 성 야고보의 순교이기라도 한 듯, 그 장면에 아랑곳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바로 그 사라진 종족에서 솟아난 듯 보였는데, 그 종족이란 것이 산 제노 성당의 제단 뒤 장식 병풍과 에레미타니 성당의 프레스코화, 곧 스완이 그것과 접했고 그것이 여전히 꿈꾸고 있는 그곳 말고 어디엔가 정말 존재하기라도 했다면 말이지만, 어쨌든 그 종족은 고전 조각상이 그 거장의 파도바 모델들 가운데 하나에게, 혹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센 사람들에게 잉태되어 맺은 열매였다. 그리고 타고나기를 곱슬곱슬하되 브릴리앙틴으로 머리에 착 달라붙은 그의 불그스름한 머리채는, 만토바의 화가가 끊임없이 연구해 마지않던 저 그리스 조각에서처럼 큼직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그 그리스 조각은, 창작자의 뜻으로는 인간만을 나타낸다 할지라도, 적어도 인간의 단순한 윤곽에서 이를테면 살아 숨 쉬는 자연 전체에서 빌려 온 듯한 그토록 다채로운 풍요로움을 이끌어 내는 까닭에, 한 다발의 머리채가 그 곱슬거림의 반들거리는 물결과 부리처럼 뾰족한 끝으로, 또는 빗어 넘긴 타래가 이룬 화사한 삼중 왕관의 겹쳐짐 속에서, 한 움큼의 해초와 갓 깃털 난 비둘기 새끼들과 히아신스 꽃밭과 뒤틀리는 뱀의 등짝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들, 못지않게 거대한 자들은 기념비적인 계단의 층계 위에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의 장식적인 존재감과 대리석 같은 부동자세 덕분에 그 계단은, 도제 궁의 저 신상들로 관을 씌운 오름길처럼 ‘거인의 계단’이라 불릴 만해졌고, 스완은 이제 그 위에 발을 디디면서 오데트가 한 번도 이 계단을 올라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아, 그와는 반대로, 그 자그마한 재봉사네 집으로 이어지는 어둡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목이 부러질 듯 가파른 층계라면 그는 얼마나 기쁘게 뛰어 올라갔을 것인가. 그 집 다락방에서라면, 오데트가 오는 저녁을 거기서 보낼 권리를 위해서라면, 또 다른 날들에도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 특권을, 그가 없을 때면 그녀가 으레 만나곤 하던 사람들 틈에서 지낼 특권을, 그렇기에 그가 아는 그 무엇보다도 더 실재적이고 더 다가갈 수 없고 더 신비로운, 자기 애인의 삶의 어떤 부분을 자기들끼리만 은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한 그 사람들 틈에서 지낼 특권을 위해서라면, 그는 오페라 극장의 주간 특별석 값을 기꺼이 치렀을 터였다. 늙은 재봉사네로 오르는 그 역겨우면서도 부러운 계단에는, 그 건물에 달리 하인용 계단이 따로 없었으므로, 저녁이면 문마다 그 앞 발판 위에 아침 배달을 기다리는, 씻지 않은 빈 우유통이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반면에, 스완이 그 순간 오르고 있던 그 비루하고 거대한 계단에서는, 그의 양옆으로, 저마다 다른 높이에, 수위실 창이나 어느 한 벌의 방으로 드는 입구가 벽에 만들어 놓은 굽이마다 그 앞에, 문지기 하나, 집사 하나, 지배인 하나가 (평일의 나머지를 저마다의 영역에서 반쯤 독립된 채 지내며, 거기서 작은 가게 주인들처럼 자기들끼리 식사를 하고, 내일이면 어느 잘나가는 의사나 산업계 거물의 평민적인 하인 노릇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르는 훌륭한 사내들이었다) 저마다 자기 문간의 아치 아래 서 있었으니, 그들은 자기가 관장하는 집 안 일의 부서들을 대표하며 손님들에게 그 부서들을 대신해 경의를 표하고 있었고, 오래간만에야 한 번씩 걸치는 데다 걸쳐도 그리 편치만은 않은 그 화려한 제복을 두르도록 허락받기 전에 산더미같이 쌓인 온갖 지시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이행하려 애쓰고 있었으며, 그 당당한 위세는 벽감 속의 성인상들처럼 민주적인 친근함으로 누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성당의 성당지기처럼 스위스 근위병 차림을 한 거대한 안내인 하나가 새 손님이 앞을 지날 때마다 지팡이로 바닥을 쿵 내리쳤다. 핏기 없는 얼굴에, 고야가 그린 성당지기들이나 옛 연극 속 서기처럼 뒤통수에 작은 변발을 뭉쳐 붙인 하인 하나를 뒤에 달고 계단 꼭대기에 이르자, 스완은 어느 사무실 앞을 지나쳤는데, 거기서는 육중한 명부 앞에 공증인들처럼 앉아 있던 종복들이 엄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어서 그는 자그마한 홀 하나를 가로질렀는데, 마치 어떤 방들이 그 주인의 손으로 단 하나의 예술품(그 방은 거기서 이름을 딴다)의 배경 노릇을 하도록 꾸며져, 공들인 그 휑함 속에 그 밖의 것은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것과 꼭 같이, 그 홀은 그가 들어서는 순간 그에게, 벤베누토 첼리니가 빚은 무장한 파수꾼의 값을 매길 수 없는 조상(彫像)이라도 되는 양, 젊은 종복 하나를 펼쳐 보였다.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인 그는 진홍빛 가슴받이 위로 그보다 더 진홍빛인 얼굴을 치켜들고 있었고, 그 얼굴에서는 불길과 수줍음과 열의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그는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방의 문을 가린 오뷔송 태피스트리를 그 격렬하고 방심 없고 필사적인 눈길로 꿰뚫으면서, 병사 같은 무표정으로, 혹은 초자연적인 믿음으로, 경보의 우의(寓意)이자 경계의 화신이며 폭동의 기념상인 양, 천사인지 보초인지 모를 모습으로, 지하 감옥이나 대성당의 탑에서 적이 다가오는지 아니면 심판의 시각이 왔는지를 살피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 스완은 연주회장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고, 사슬을 잔뜩 두른 안내인 하나가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마치 함락된 도시의 열쇠를 그에게 바치기라도 하듯 그 앞에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나 그는 오데트가 허락만 했더라면 바로 그 순간 자기가 있었을지도 모를 그 집을 떠올렸고, 문 앞 발판 위에 놓인 빈 우유통을 언뜻 본 기억이 그의 가슴을 쥐어짰다.
태피스트리 휘장 저편에서 하인들의 광경이 손님들의 광경으로 바뀌자, 그는 인간 수컷의 전반적인 추함에 대한 감각을 이내 되찾았다. 그러나 물론 그에게는 대개 낯익은 이 얼굴들의 추함마저도, 이제는 무언가 새롭고 섬뜩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이목구비가, 그때껏 그저 좇아야 할 숱한 즐거움이나 피해야 할 지루함, 혹은 답례해야 할 예의로만 여겨지던 이런저런 사내를 알아보는 데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표지 노릇을 하는 대신, 이제는 제 곡선과 각의 자율 속에서, 오직 미적 좌표로만 잴 수 있는 채로 가만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스완이 그 한복판에 빽빽이 끼여 있게 된 이 사내들에게는, (그들 중 많은 이가 낀 외알 안경조차도, 예전 같으면 기껏해야 스완으로 하여금 아무개가 외알 안경을 꼈다고 말하게 하는 정도였을 그 외알 안경마저도) 그들 모두에게 똑같은 어떤 습관이라는 일반적 함의에 더는 갇혀 있지 않게 된 채, 이제 저마다의 개별성에 대한 감각으로 그를 찌르지 않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문 바로 안쪽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프로베르빌 장군과 브레오테 씨를, 그가 그림 속 두 인물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실은 그들은 그를 자키 클럽에 천거해 주고 결투에서 그의 편을 들어 준 오랜, 쓸모 있는 벗들이었다. 장군의 외알 안경은, 흔하고 상처투성이에 승리에 젖어 오만한 그 얼굴에, 그것이 반쯤 멀게 만든 이마 한복판에 포탄 파편처럼 박힌 채, 마치 키클롭스의 외눈이 번뜩이는 이마처럼 보여, 스완에게는 받았다면 명예로웠을지언정 드러내 보이는 것은 분명 점잖지 못한 흉측한 상처처럼 여겨졌다. 반면에 브레오테 씨가 낀 것은, 진줏빛 회색 장갑과 접이식 예모와 흰 넥타이에 곁들인 축제의 휘장으로서, 그가 (스완 자신이 그러하듯) 어디 나갈 때면 늘 쓰던 안경 대신 갈아 낀 것이었는데, 그 반대편에는 현미경 슬라이드 위에 마련된 표본처럼 착 달라붙은, 다정한 감정으로 우글거리며 천장의 드높음과 야회의 유쾌함과 연주 곡목의 흥미로움과 다과의 훌륭함에 쉼 없이 반짝이기를 그치지 않는 지극히 미세한 눈길을 담고 있었다.
“어이!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아니, 자네를 못 본 지도 참 오래됐군.” 장군이 스완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그의 얼굴에 어린 긴장한 기색을 알아채고 어쩌면 중병 탓에 그동안 발길이 뜸했던 거라고 짐작하며 말을 이었다. “혈색은 좋아 보이는군, 이 사람아!” 한편 브레오테 씨는 “여보게, 자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건가?”라며, 눈썹과 뺨 사이 각에 방금 제 외알 안경을 끼워 넣은 어느 ‘사교계 소설가’에게 몸을 돌렸다. 그 안경이야말로 그가 인물에 대한 심리적 탐구와 가차 없는 성격 분석에 쓰는 유일한 도구였는데, 그 소설가는 이제 비밀스럽고 자못 대단하다는 투로, r 발음을 굴리며 대답했다. “관찰 중이올시다!”
포레스텔 후작의 외알 안경은 자그맣고 테가 없었는데, 그것이 박혀 있는 것 자체가 설명할 길 없고 그 재질도 상상할 수 없는, 군더더기 연골처럼 눈 위에 박혀 그 눈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오므리게 만드는 통에, 그의 얼굴에 우수 어린 세련미를 주었고, 여자들로 하여금 그가 사랑에 빠지면 지독히 괴로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생캉데 씨의 외알 안경은, 토성처럼 거대한 고리로 둘러싸인 채, 매 순간 그 안경알에 맞춰 새로이 짜 맞춰지는 얼굴의 무게중심이었고, 그동안 그의 삐죽 나온 붉은 코와 부풀어 오른 비꼬는 입술은 그 갖은 표정으로, 반들거리는 그 원판 속에서 반짝이는 한결같은 재기의 불꽃 높이까지 오르려 애썼으며, 그 안경알은, 인공적인 매력과 세련된 관능적 희열을 꿈꾸게 만들어 준 영악하고 타락한 젊은 여자들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눈들보다도 자기가 더 선호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팔랑시 씨가 있었는데, 커다란 잉어 대가리와 툭 불거진 눈으로 야회라는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며 방향을 가늠하려는 듯 순간순간 그 커다란 아가미턱을 벌리던 그는, 마치 제 몸에 자기 수족관 유리벽의 우연하고 어쩌면 순전히 상징적인 조각 하나만을 지니고 다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부분은 전체를 암시하려는 것이었고, 파도바에 있는 조토의 악덕과 미덕을 열렬히 흠모하던 스완에게, 그 옆에 무성한 나뭇가지가 그 은밀한 소굴을 감싼 숲을 떠올리게 하는 저 ‘불의’의 상을 상기시켰다.
스완은 생퇴베르트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또 플루트로 연주되고 있던 오르페오의 아리아를 듣기 위해 방 안쪽으로 나아갔고,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거기서는 나란히 앉은 ‘알 수 없는’ 나이의 두 부인, 캉브르메르 후작부인과 프랑크토 자작부인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사촌지간인 이 두 사람은 야회에서 저마다 손가방을 꼭 움켜쥐고 딸을 뒤에 달고서 이 방 저 방을 헤매고 다니며, 기차역에서 서로를 찾는 사람들처럼 상대를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보내곤 했고, 부채나 손수건으로 표시를 해 두어 나란한 의자 둘을 맡아 놓기 전에는 결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만큼 말벗이 있다는 것이 그만큼 더 반가웠고, 반대로 인기가 아주 많았던 프랑크토 부인은, 어릴 적 추억을 함께 나눈 이름 없는 시골 사촌과 함께 있는 것을 자기 훌륭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을 그 친구들 모두에게 보여 주는 편이 효과적이고 독창적이라고 여겼다. 빈정거림 섞인 우수로 가득 찬 스완은, 플루트 다음에 이어진 피아노 간주곡(리스트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을 들으며 그 명연주자의 아찔한 비상을 좇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프랑크토 부인은 초조하게,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그의 손가락이 그토록 날렵하게 건너뛰는 건반들이 마치 일련의 공중그네이기라도 한 듯, 그중 어느 하나에서든 그가 백 척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이따금 곁의 동무에게 놀라움과 못 믿겠다는 눈길을 슬쩍 던졌으니, 그 눈길은 마치 “말도 안 돼, 사람이 저 모든 걸 해낼 수 있으리라곤 도저히 믿지 못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은 여자답게 캉브르메르 부인은 머리로 박자를 맞추었는데, 그 순간만은 메트로놈의 추로 변한 그 머리가 한쪽 어깨에서 다른 쪽 어깨로 오가는 폭과 빠르기는 (더는 제 고통을 분석하지도, 그것을 다스리려 애쓰지도 못한 채 그저 “어쩔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환자가 짓는 그 격정에 내맡긴 눈빛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찌나 커져만 갔던지, 시시각각 그녀의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코르사주 장식에 걸렸고, 그녀는 머리에 꽂은 검은 포도송이 장식을 바로잡아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빨라지는 그 움직임을 조금도 멈추지는 않았다. 프랑크토 부인의 반대편(그리고 조금 앞쪽)에는 갈라르동 후작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기가 즐겨 골몰하는 명상, 곧 게르망트 가문과의 자기 혈연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그 혈연에서 남 앞에서나 속으로나 적잖은 영광을, 부끄러움이 섞이지 않은 것은 아닌 영광을 길어 냈으니, 그 가문의 가장 눈부신 인물들이 그녀를 다소 멀리했던 것은, 어쩌면 그녀가 그저 지겨운 노파였기 때문이거나, 추문이 따르는 노파였기 때문이거나, 가문의 못한 방계 출신이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아주 그럴듯하게는 아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프랑크토 부인 곁에 앉아 있듯이 모르는 사람 곁에 앉게 될 때면, 그녀는 자기가 게르망트가와 이어져 있다는 자의식을, 비잔틴 성당의 모자이크에서 어떤 성스러운 인물 곁에 하나 아래 또 하나 세로줄로 새겨져 그가 하는 말을 나타내는 저 글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문자로 밖으로 드러낼 길이 없다는 느낌에 몹시 괴로워했다. 지금 그녀는, 젊은 사촌인 데 롬 대공비가 결혼한 이래 이미 흘러간 육 년 동안 그녀에게서 초대는커녕 방문조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곱씹고 있었다. 그 생각은 그녀를 분노로, 그리고 자부심으로 가득 채웠다. 데 롬 부인 댁에서 그녀를 통 볼 수 없다며 놀라워하는 사람마다에게, 그것은 거기서 마틸드 대공비와 마주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더없이 참되고 순수한 정통왕당파인 자기 집안이라면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격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온 덕분에, 그녀는 그것이 실제로 자기가 젊은 사촌을 찾지 않는 이유라고 차츰 믿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녀는 데 롬 부인에게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지 여러 번 물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저 흐릿하게만 기억할 뿐이었고, 게다가 “어차피 먼저 나설 사람은 내가 아니지. 내가 그 애보다 적어도 스무 살은 위인데”라고 중얼거림으로써 이 다소 굴욕적인 기억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이 소리 없는 말에 힘입어 그녀는 두 어깨를 자랑스레 뒤로 젖혀, 어깨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지경이 되었고, 그 위에 거의 수평으로 얹힌 머리는 깃털로 위풍당당하게 꾸며진 채 식탁에 오르는 꿩의 ‘붙여 놓은’ 머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조금이라도 꿩을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타고나기를 작고 땅딸막하고 남성적인 체구였으니 말이다. 다만 잇따른 굴욕이 그녀에게 뒤로 젖혀진 자세를 안겨 주었는데, 그것은 벼랑 바로 끝에 뿌리내린 채 균형을 지키려고 뒤로 자랄 수밖에 없는 나무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나머지 게르망트가 사람들과 완전히 같은 반열에 있지 못한 것을 스스로 위로하려면, 자기가 그들을 그토록 드물게 보는 것은 자기 원칙과 자존심의 타협 없는 완고함 탓이라고 끊임없이 되뇔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끝없는 되풀이는 차츰 그녀의 몸을 다시 빚어냈고, 그녀에게 일종의 ‘자태’를 안겨 주었으니, 그것을 평민들은 좋은 혈통의 표시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때로는 클럽에 앉은 노신사들의 시들해진 눈에 순간적인 불꽃을 일으키기도 했다. 누군가 갈라르동 부인의 대화를, 거기 쓰인 여러 낱말의 상대적 빈도를 헤아려 암호문의 열쇠를 얻어 내는 그런 분석에 부쳐 보았더라면, 그는 대뜸, 아무리 흔한 말투조차도 “우리 사촌 게르망트가에서는”, “우리 게르망트 고모 댁에서는”, “엘제아르 드 게르망트의 건강”, “우리 사촌 게르망트의 관람석”만큼 자주 나오는 표현은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누가 그녀에게 어떤 저명한 인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녀는 그를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나 게르망트 고모 댁에서 수백 번은 보았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그 대답을 어찌나 얼음장 같은 어조로, 어찌나 공허한 소리로 내뱉던지, 만약 그녀가 그 명사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완고하고 뿌리 뽑을 수 없는 온갖 원칙들 탓이라는 것이 대번에 분명해졌다. 그녀의 활처럼 휜 어깨는, 마치 체조 교사가 우리 가슴을 넓게 펴려고 ‘쭉 뻗게’ 만드는 그 사다리 중 하나에 기대듯, 바로 그 원칙들에 기대어 뒤로 당겨져 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