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 그날 저녁 생퇴베르트 부인 댁에 나타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데 롬 대공비가 정말로 도착했다. 자기가 겸양의 뜻으로 찾아온 집에서 자신의 높은 신분에 어떤 특별한 대접이 베풀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고, 그녀는 헤치고 나갈 인파도 없고 앞을 가로막는 이도 없는데도 두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인 채 방으로 들어섰다. 마치 지배인이 자기가 온다는 것을 미리 통고받지 못한 극장 문간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행렬에 서 있는 임금처럼, 자기가 있을 자리에 있다는 태도로 일부러 뒤쪽에 머물렀다. 그리고 자기 존재를 광고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자기 시야를 카펫의 무늬나 제 치맛자락을 뜯어보는 데로만 엄격히 한정한 채, 자기가 보기에 가장 겸손해 보이는 자리에 (그리고 그녀가 아주 잘 알고 있었듯이,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이 눈에 띄자마자 생퇴베르트 부인의 환희에 찬 외침이 자기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 줄 그런 자리에) 서 있었으니, 그것은 캉브르메르 부인 곁이었으나, 정작 그녀는 캉브르메르 부인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옆자리 부인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그 무언극을 지켜보았으나, 그것을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 생퇴베르트 부인 댁에서 몇 분을 보내기로 승낙한 김에, 데 롬 대공비가 (와 준 것으로 안주인에게 베푼 그 예의가 말하자면 ‘갑절로 쳐지도록’) 될 수 있는 대로 상냥하고 싹싹하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과장’이라 부르는 것을 천성적으로 질색했고, 자기가 몸담은 사교계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감정 표출에도 자기는 ‘결코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 물론 그런 표출은, 아무리 자신만만한 사람에게서도, 자기보다 못한 환경일지라도 낯선 환경과 닿을 때 발동하는, 수줍음에 가까운 그 모방의 정신에 힘입어, 그녀에게 언제나 어떤 인상을 남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 몸짓들이 어쩌면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곡, 자기가 여태껏 들어 온 그 어떤 음악과도 다른 부류일지 모를 그 곡에 반드시 딸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몸짓을 삼가는 것이야말로 자기가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시이자 안주인에 대한 무례가 아닌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서로 어긋나는 두 성향을 번갈아 타협으로 드러내려고, 어느 순간에는 그저 어깨끈을 바로잡거나, 소박하지만 효과적인 장식이 되어 준, 자잘한 다이아몬드가 서리처럼 박힌 산호와 분홍빛 에나멜의 작은 구슬들을 자기 금발 머릿속에서 더듬어 찾으며 차가운 흥미로 열정에 찬 옆자리 부인을 뜯어보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부채로 몇 마디쯤 박자를 맞추었으나, 자기 독자성을 잃지 않으려고 피아니스트와는 다른 박자로 쳤다. 연주자가 리스트의 간주곡을 끝내고 쇼팽의 전주곡을 시작하자, 캉브르메르 부인은 은근한 추억과, (제대로 알아듣는 감식가의) 연주에 대한 만족으로 가득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프랑크토 부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소녀 시절에, 목이 길고 구불구불한 그 생물들, 곧 쇼팽의 악구들을 어루만지고 아끼도록 배웠다. 그토록 자유롭고, 그토록 유연하고, 그토록 만질 듯한 그 악구들은, 처음 출발한 방향에서 저 멀리 한참 벗어난 어딘가에서, 곧 사람들이 다다르리라 예상했을 그 지점에서 벗어난 곳에서 제 마지막 안식처를 찾기 시작하며, 그 환상적인 샛길로 벗어나 노닐다가는 더욱 신중하게, 더 미리 벼려 둔 반응으로, 더 정밀하게, 마치 두드리면 사람이 괴로움에 소리 지를 때까지 울리고 떨리는 수정 그릇 위에서처럼, 다시 돌아와 사람의 심장을 움켜쥐고야 마는 것이었다.
친구도 손님도 드문 시골 집안에서 자라 무도회에 초대받는 일도 거의 없었던 그녀는, 낡은 저택의 고독 속에서, 저 온갖 상상 속 왈츠 추는 연인들을 위해, 이제는 기어가듯 느리게 이제는 열정적으로 소용돌이치듯 숨 가쁘게 박자를 매기느라 정신을 아득히 흐려 놓곤 했다. 그 연인들을 꽃처럼 그러모으고, 잠시 무도장을 떠나 호숫가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한숨짓는 곳에서 귀 기울이다가, 문득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이 세상 어떤 연인보다도 사람이 꿈꿔 본 그 무엇과도 더 다른, 흰 장갑을 낀, 목소리가 낭랑하고 낯설고 거짓된 어느 호리호리한 젊은이를 보곤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 음악의 예스러운 아름다움은 조금 케케묵은 것이 되어 버린 듯했다. 몇 해 전에 ‘진짜 음악을 아는’ 사람들의 존경을 잃은 뒤로 그것은 품격도 매력도 잃었고, 취향이 솔직히 나쁜 이들조차 거기서 어지간한 즐거움 이상은 더 찾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나마도 그 즐거움을 인정하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뒤쪽으로 슬그머니 눈길을 던졌다. 그녀는 자기 젊은 며느리가 (지성에 관한 일만 빼면 새로 얻은 고귀한 시댁을 존경으로 가득 떠받들었는데, 지성에 관해서라면 화성학과 그리스 문자까지 ‘나아간’ 터라 유달리 개명해 있었다) 쇼팽을 경멸하며 그의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면 아주 몸져눕다시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간 떨어진 곳에 제 또래들 무리에 끼여 앉아 있는 이 바그너주의자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아챈 캉브르메르 부인은, 감미로운 추억과 감각의 물줄기에 몸을 내맡겼다. 데 롬 대공비도 마음이 움직였다. 음악에 천부적 재능이라곤 없었지만, 그녀는 열다섯 해쯤 전에, 포부르 생제르맹의 어느 음악 여교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만년에 가난에 내몰린 천재적인 그 여자는, 일흔의 나이에, 옛 제자들의 딸과 손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부인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적인 손길의 메아리인 그 주법은, 이따금 제자들의 손가락에서 되살아났으니, 다른 면에서는 꽤나 평범했고 음악을 그만두었으며 피아노를 여는 일조차 거의 없던 이들의 손가락에서마저 그러했다. 그리하여 데 롬 부인은, 그 까닭을 온전히 의식한 채, 이 전주곡을 외우고 있었으므로 피아니스트가 그것을 연주하는 방식을 완벽하게 음미하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 수 있었다. 그가 시작한 악구의 마지막 음들이 이미 그녀의 입술 위에서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어쩜 이렇게 매혹적일까!” 하고, 그 형용사의 첫 자음에 힘을 주어 중얼거렸는데, 그것은 그녀의 세련됨의 표시였고, 그 덕분에 그녀는 자기 입술이 막 봉오리 지는 아름다운 꽃잎처럼 그토록 낭만적으로 오므라드는 것을 느껴, 저도 모르게 두 눈까지 거기에 맞추어, 잠시 그 눈을 어렴풋하고 감상적인 눈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는 사이 갈라르동 부인은, 데 롬 대공비와 마주칠 기회가 그토록 드문 것이 얼마나 성가신 일인가 하고 속으로 되뇌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녀는 대공비의 인사를 못 본 척함으로써 본때를 보여 줄 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촌이 방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프랑크토 부인이 머리를 움직이는 바람에 대공비의 모습이 드러났다. 갈라르동 부인은 대뜸 곁의 사람들을 죄다 헤집으며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언제고 그 집에서 마틸드 대공비와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마주칠 수도 있는 사람, 게다가 자기 ‘또래’도 아닌지라 자기가 먼저 다가갈 의무도 없는 사람과 친하게 지낼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그 자리의 모두에게 일깨워 줄, 그런 서먹하고 얼음장 같은 태도를 지키기로 작정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녀는 자기가 먼저 말을 붙이는 것을 정당화해 주고 대공비로 하여금 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무언가 이도 저도 아닌 한마디로 이 위엄과 조심스러움의 기색을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사촌에게 다다르자, 갈라르동 부인은 엄한 얼굴로, 마치 카드 한 장을 ‘강제로 뽑게’ 하려는 듯 한 손을 쑥 내밀며, “바깥양반은 안녕하시고?” 하고, 대공이 중병에라도 걸렸다면 썼을 법한 바로 그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대공비는, 자기 특징 중 하나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자기가 누군가를 놀리고 있음을 좌중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동시에, 생기 넘치는 입술과 반짝이는 눈 주위로 이목구비를 모아 자기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어머, 평생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는걸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계속 웃어 댔다.
그러자 갈라르동 부인은 몸을 곧추세우고, 어쩌면 아직도 대공의 건강이 마음에 걸렸던 탓인지 표정을 한층 더 차갑게 굳히며 사촌에게 말했다.
“오리안,” (그 순간 데 롬 부인은 재미있어하는 놀라움을 담아, 보이지 않는 제삼자 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자기가 갈라르동 부인에게 세례명을 불러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결코 없음을 그 제삼자에게 증언해 달라고 부르는 듯했다) “내일 저녁에 잠깐만이라도 들러 주면 정말 기쁘겠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이 들어간 오중주를 들으려는데. 네 의견을 듣고 싶어.”
그녀는 초대를 하기보다는 부탁을 청하는 듯 보였고, 마치 그 모차르트 오중주가 새로 온 요리사가 고안해 낸 요리이기라도 한 양, 그 솜씨를 미식가가 와서 판정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듯이 대공비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오중주라면 나도 아주 잘 알아. 지금 당장 말해 줄 수 있는데, 나는 그 곡을 무척 좋아해.”
“저기, 우리 그이가 영 몸이 안 좋아. 간이 문제야. 그 사람이 너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해.” 갈라르동 부인이 말을 이으며, 이제 자기 모임에 대공비가 와 주는 것을 마치 자선의 선행이라도 되는 양 만들었다.
대공비는 남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날마다 그녀는, 애초에 갈 생각이라곤 한순간도 해 본 적 없는 어느 모임에, 시어머니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시동생의 초대 때문에, 오페라 때문에, 혹은 시골 나들이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되어 유감이라는 편지를 써 보내곤 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자기가 그들과 가까운 사이이고, 기꺼이 그들의 집에 갔을 터인데 다만 어떤 대공가다운 사정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뿐이라는 느낌의 만족을 안겨 주었고, 사람들은 그 사정이 자기들의 변변찮은 대접과 겨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쭐해했다. 게다가 그녀는 저 재기 넘치는 ‘게르망트 사교계’에 속해 있었으니, 그 사교계에는 온갖 상투적인 문구와 관습적인 감상을 벗겨 낸, 메리메에서 비롯되어 메일락과 알레비의 희곡에서 마지막 표현을 얻은 그 기민한 기질이 얼마간 살아남아 있었는데, 그녀는 그 방식을 자기 사교상의 약속에까지 들어맞도록 손보아, 언제나 긍정적이고 정확하려,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가까워지려 애쓰는 예의로 옮겨 놓았다. 그녀는 안주인에게 그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표현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법이 결코 없었다. 그보다는 자기가 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려 있는 갖가지 자잘한 사정들을 그 안주인에게 죄다 털어놓는 편을 더 즐거워했다.
“들어 봐, 설명해 줄게.” 그녀가 갈라르동 부인에게 말문을 열었다. “내일 저녁엔 어떤 친구네 집에 가야 해. 오래전부터 날을 잡아 달라고 어찌나 졸라 대는지. 그 친구가 그다음에 우리를 극장으로 데려간다면, 아무리 가고 싶어도 너희 집엔 도저히 못 가. 하지만 그냥 집에 있기만 한다면, 거기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슬쩍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네 친구 스완 씨는 봤니?”
“아니! 내 소중한 샤를 말이야! 그가 여기 있는 줄은 몰랐어. 어디 있어? 눈을 마주쳐야겠는데.”
“그 사람이 저 늙은 생퇴베르트 댁에 오다니 우스운 일이야.” 갈라르동 부인이 말을 이었다. “아, 그가 아주 영리한 건 나도 알아.” 이 말로 그녀가 뜻한 것은 ‘아주 교활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 여기 유대인이 오다니, 게다가 그 댁 안주인은 대주교 두 분의 누이이자 처형 되는 사람인데.”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조금도 충격을 받지 않았는걸.” 데 롬 대공비가 말했다.
“그가 개종한 유대인이란 것도, 그 부모와 조부모 대까지 그랬다는 것도 다 알아. 하지만 개종한 자들이 실제로 믿는 자들보다 제 종교에 더 고약해서, 다 그저 겉치레일 뿐이라고들 하잖아. 그게 정말일까, 네 생각엔?”
“그 일에 대해선 나도 도무지 밝혀 줄 게 없어.”
쇼팽의 곡을 두 개 치기로 ‘되어 있던’ 피아니스트는 전주곡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폴로네즈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일단 갈라르동 부인이 사촌에게 스완이 방 안에 있다고 알려 준 뒤로는, 설령 쇼팽이 몸소 무덤에서 일어나 자기 작품을 차례로 죄다 연주했다 한들 데 롬 부인은 그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인류를 나누는 두 부류 가운데, 다른 절반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품는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 아는 사람들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으로 대체되어 있는 그 한 부류에 속했다. 포부르 생제르맹의 많은 여자들이 그렇듯이, 자기가 있는 어느 방에건 자기 패거리의 다른 일원이 하나 있기만 하면, 설령 그에게 딱히 할 말이 없을지라도, 그 사실이 다른 모든 상념을 밀어내고 그녀의 마음을 온통 차지하곤 했다. 그 순간부터, 스완이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며, 대공비는 (코앞에 각설탕 한 덩이가 놓였다가 도로 치워질 때의 길든 흰 생쥐처럼) 은밀한 공모의 표시가 천 가지나 북적이는,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쇼팽 음악에 깔린 정서와는 조금의 관련도 없는 자기 얼굴을 스완이 있는 쪽으로 돌리는 것 말고는, 그리고 그가 움직이면 거기에 맞추어 자기의 자석 같은 미소의 방향을 바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리안, 나한테 화내지 마.” 갈라르동 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는데, 그녀는 무언가 불쾌한 말을 하는 즉각적이고 은밀한 만족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가장 드높은 사교적 야심도, 언젠가 세상을 눈부시게 할 빛 속으로 나서리라는 희망도 기꺼이 제물로 바치는 것을 결코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네 그 스완 씨를 두고 사람들이 그러던데, 집에 들일 수 없는 부류의 사내라고. 그게 정말이야?”
“아니, 하고많은 사람 중에 바로 네가 그게 사실인 줄 알아야 마땅하지.” 데 롬 대공비가 대답했다. “너야말로 그를 백 번은 청했을 텐데도, 그가 네 집엔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사촌을 다시 한번 무안하게 만들어 둔 채, 그녀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웃음은 음악을 들으려 애쓰던 모든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예의상 피아노 곁에 남아 있던 생퇴베르트 부인의 주의를 끌었고, 부인은 그제야 처음으로 대공비를 발견했다. 생퇴베르트 부인은 데 롬 부인을 보고 한결 더 반가워했으니, 그녀가 아직 게르망트에 머물며 병든 시아버지를 돌보고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 대공비님, 여기 계셨네요?”
“네,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었어요. 정말 근사한 것들을 듣고 있었답니다.”
“아니, 그럼 꽤 오래전부터 이 방에 계셨던 거예요?”
“네, 아주 오래됐죠. 그런데도 참 짧게 느껴졌어요. 길게 느껴진 건 오직 당신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생퇴베르트 부인이 자기 의자를 대공비에게 권하자, 대공비는 이렇게 말하며 사양했다.
“아유, 제발 그러지 마세요! 왜 그러세요? 제가 어디 앉든 조금도 상관없어요.” 그러고는 참으로 지체 높은 부인의 소탈함을 한결 돋보이게 하려는 듯, 등받이 없는 낮은 자리를 일부러 골라 앉으며 말했다. “자, 이 방석이면 됐어요, 이거면 충분해요. 덕분에 등을 꼿꼿이 펴게 되겠네요. 어머! 이런, 또 소리를 내고 말았네요. 이러다 당신더러 저를 ‘내쫓으라고’ 하겠어요.”
그러는 동안, 피아니스트가 속도를 두 배로 올리자 음악 애호가들의 감흥은 절정에 이르렀고, 하인 하나가 쟁반에 다과를 받쳐 들고 돌리며 숟가락들을 달그락거렸으며, 여느 “연회의 밤”과 마찬가지로 생퇴베르트 부인은 그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손짓을 보냈으나 그는 끝내 그것을 보지 못했다. 젊은 여자란 결코 지루한 기색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어느 갓 결혼한 신부는, 이토록 즐거운 여흥과 관련해 자기를 “생각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얼른 보내려고 안주인의 눈길을 붙잡으려 애쓰며 힘차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프랑크토 부인보다는 침착했지만, 그녀가 날아다니는 손가락을 뒤쫓는 데에는 얼마간의 불안이 없지 않았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피아니스트의 운명이 아니라 피아노의 운명이었으니, 포르티시모마다 튀어 오르는 불 켜진 촛불이 그 갓에 불을 붙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흑단 위에 촛농을 흘릴 듯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피아노가 놓인 단의 두 계단을 뛰어올라 촛대를 바로잡으려 촛불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손이 채 거기에 닿기도 전에, 마지막 화음과 함께 곡이 끝나고 피아니스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에도 이 젊은 여자가 보인 대담한 행동과, 그로 말미암아 그녀와 피아니스트 사이에 빚어진 얼굴 붉히는 당혹의 한순간은, 전체적으로 호의적인 인상을 남겼다.
“대공비님, 방금 저 아가씨가 한 짓 보셨습니까?” 안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데 롬 부인에게 다가온 프로베르빌 장군이 물었다. “별났지요, 안 그렇습니까? 저이도 연주자 중 하나인가요?”
“아니요, 저이는 캉브르메르라는 젊은 부인이에요.” 대공비가 무심히 대답하고는, 더 생기를 띠고 말을 이었다. “저도 방금 들은 걸 그대로 옮기는 것뿐이에요. 누가 그랬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제 뒤에 있던 누군가가 저 사람들이 시골에서 생퇴베르트 부인의 이웃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말이지 저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시골 친척’쯤 되겠지요! 그런데 장군님은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화려한 사교계에 특별히 ‘밝으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 놀라운 사람들이 대체 다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생퇴베르트 부인의 야회에 오지 않을 때는 다들 뭘 하며 지낼 것 같으세요? 아마 악사며 의자며 음식이랑 함께 이 사람들도 주문해 들였을 거예요. ‘만물상’한테서 말이죠. 인정하셔야 해요, 장군님, 저들도 꽤나 그럴듯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매주 똑같은 ‘엑스트라’들을 고용할 용기가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하지만 캉브르메르는 꽤 훌륭한 가문 이름입니다. 게다가 유서도 깊고요.” 장군이 항변했다.
“유서가 깊다는 데야 이의가 없어요.” 대공비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낭랑한 이름은 못 되지요.” 그러면서 그녀는 낭랑한이라는 말을 마치 따옴표 안에 넣듯 따로 떼어 발음하며 말을 이었는데, 이는 게르망트 무리가 즐겨 부리던 자그마한 허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저 여자, 아주 탐스러운 미인인데요.” 캉브르메르 부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장군이 말했다. “대공비님도 제 말에 동의하시죠?”
“저 여자는 너무 앞으로 나서요. 저렇게 젊은 여자한테는, 그다지 곱게 보이지 않지요. 어차피 제 또래는 아닐 테니까요.” 데 롬 부인이 대답했다(마지막 그 말은 갈라르동가와 게르망트가에 두루 쓰이는 표현인 듯했다). 그러고 나서, 프로베르빌 씨가 여전히 캉브르메르 부인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반은 그 부인을 향한 심술에서, 반은 장군의 비위를 맞추려는 마음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곱게 보이지 않아요… 남편한테 말이죠! 저이가 그토록 장군님의 마음을 끄는 모양이니, 제가 저이를 모르는 게 유감이네요. 알았다면 소개해 드렸을 텐데요.” 대공비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그 젊은 여자를 알았다 한들 십중팔구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만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친구 하나가 생일 잔치를 여는데, 가서 축하해 줘야 하거든요.” 그녀는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사실 그대로 설명하며, 자기가 가려는 상류 사교 모임을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하지만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의례쯤으로 축소해 말했으니, 그 모습에는 어딘가 갸륵한 데가 있었다. “게다가 바쟁도 데리러 가야 해요. 제가 여기 있는 동안 그이는 자기 친구들을 보러 갔거든요. 장군님도 분명 아실 거예요, 다리 이름을 따서 부르는 그 사람들 말이에요. 아, 맞다, 이에나가예요.”
“대공비님, 그건 다리이기 전에 하나의 전투였습니다. 승리였지요!” 장군이 말했다. “제 말씀은, 저 같은 늙은 군인한테는요.” 그는 단안경을 닦아 다시 끼우며 말을 이었는데, 마치 그 아래 생살의 상처에 새 붕대를 갈아 대는 듯한 몸짓이라 대공비는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그 제정 시대의 귀족이라는 것이, 뭐, 물론 같은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것대로 놓고 보면 그 나름으로 아주 훌륭합니다. 정말로 영웅처럼 싸운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영웅이라면 더없이 깊이 존경한답니다.” 대공비가 희미하게 빈정거리는 기색을 띠며 맞장구쳤다. “제가 바쟁을 따라 그 이에나 대공비를 보러 가지 않는 것도 결코 그 때문이 아니에요. 그저 그 사람들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바쟁은 알아요. 그이는 그들을 떠받들다시피 하죠. 아, 아니에요,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이가 그 여자한테 반한 건 아니에요. 제가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게다가 제가 반대해 본들 언제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요?” 그녀는 슬프게 반문했으니, 데 롬 대공이 그 매혹적인 사촌과 결혼한 그날 이후로 줄곧 아내를 저버려 왔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이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아 온 사람들이고, 그이한테 극진히 잘해 주니, 제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이가 그 집에 대해 제게 들려준 얘기는 꼭 해 드려야겠어요. 그거면 충분하니까요. 상상이 되세요, 그 집 가구가 전부 ‘제정 양식’이라니!”
“하지만, 대공비님,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조부모한테서 물려받은 것일 테니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흉하지 않은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이 늘 좋은 물건만 가질 수는 없다는 건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적어도 그저 기괴하기만 한 물건을 굳이 둘 필요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저는 그 끔찍한 양식보다 더 처참하고, 더 답답하리만치 우쭐대는 것을 떠올릴 수가 없어요. 목욕탕 수도꼭지처럼 온통 백조 대가리로 뒤덮인 장식장이라니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집에 근사한 물건도 좀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 그 유명한 모자이크 탁자도 있을 게 분명해요, 그 위에서 …조약이 맺어졌다는…”
“아, 부정하진 않겠어요.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제법 흥미로운 물건들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결코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그냥 끔찍하니까요! 저도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어요, 몽테스키우가에서 바쟁한테 넘어온 것들이죠. 다만 그것들은 게르망트의 다락에 처박혀 있어서 아무도 볼 일이 없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게 요점은 아니에요, 저야 바쟁과 함께라면 그것들을 보러 한달음에 달려가겠어요. 그 스핑크스며 청동붙이 한가운데라도 기꺼이 보러 가겠어요, 제가 그 사람들을 안다면요. 하지만 저는 그들을 몰라요! 아세요, 저는 어릴 적부터 모르는 사람 집에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늘 배웠거든요.” 그녀는 어린애 같은 짐짓 근엄한 어조를 지었다. “그러니 저는 그저 배운 대로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상상이 되세요, 그 선량한 사람들 집에 생판 낯선 여자가 불쑥 들이닥친다면요? 아마 아주 쌀쌀맞은 대접을 받을지도 몰라요.”
그러고는 그 생각이 입가에 불러온 미소의 매력을, 장군에게 고정된 자기 푸른 눈에 부드럽고 꿈결 같은 표정을 담아 요염하게 한층 돋우었다.
“대공비님, 그 사람들이야 미칠 듯이 기뻐하리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아니, 왜죠?” 그녀는 더없이 발랄하게 물었는데, 그것이 자기가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귀부인 중 하나이기 때문임을 모르는 척하려는 것이거나, 아니면 장군의 입으로 그 말을 듣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것이었다. “왜죠? 어떻게 아세요? 어쩌면 그들은 그걸 세상에서 가장 달갑잖은 일이라 여길지도 몰라요. 저야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만약 그들이 저와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요, 저는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도 충분히 지루하답니다. 모르는 사람까지 만나야 한다면, 설령 그들이 ‘영웅처럼 싸웠다’ 한들, 저는 아주 미쳐 버리고 말 거예요. 게다가 장군님처럼, 그런 것과는 전혀 별개로 알고 지내는 오랜 벗이 아닌 다음에야, ‘영웅적 무훈’이라는 게 사교계에서 사람을 그리 멀리 데려다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찬을 베풀어야 하는 것만도 곧잘 충분히 지루한 일인데, 만약 스파르타쿠스한테 팔을 내주어 그의 부축을 받으며 식탁으로 내려가야 한다면요…! 정말이지 안 돼요. 열넷째 손님을 채우려고 제가 베르킨게토릭스를 불러들이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그런 사람은 아주 성대한 ‘대연회’를 위해 아껴 두어야 마땅하겠죠. 그런데 저는 그런 걸 도무지 열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