뵈즈발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같은 지방의 또 다른 지명, 뵈즈빌을 떠올리게 했다. 그 지명에는 붙임표로 이어진 두 번째 이름, 곧 브레오테가 딸려 있었으니, 그는 지도에서 그 이름을 자주 보았으면서도 그것이 익명의 편지가 오데트의 정부였다고 지목한 자기 벗 브레오테 씨가 지닌 이름과 똑같다는 것을 여태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브레오테 씨에 관한 한 그 혐의에 있음 직하지 않은 데라곤 없었다. 그러나 베르뒤랭 부인에 관한 한 그것은 순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데트가 이따금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그녀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 것은 온당치 않았고, 그녀가 스완에게 손수 되풀이해 들려준 베르뒤랭 부인과의 그 농지거리 속에서, 그는 삶에 서툴고 악덕에 무지한 여자들이 (그럼으로써 제 결백을 증언하며) 곧잘 내뱉는, 저 아무 뜻 없으면서도 위험한 익살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오데트 같은 여자야말로 세상에서 서로에게 지나친 애정을 느낄 리 가장 없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그녀가 자기 이야기로 한순간 그의 마음속에 무심코 불러일으킨 그 의혹들을 흩어 버리던 그 분개는, 그가 제 정부의 취향과 기질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들어맞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시인이나 철학자에게 여태 어설픈 각운 한 쌍이나 동떨어진 관찰 하나밖에 없다가 그의 작품에 힘과 완성을 부여할 착상이나 자연법칙을 문득 계시하는 그런 영감과도 같은 질투의 영감으로, 스완은 적어도 이 년 전에 오데트가 자기에게 했던 말 한마디를 처음으로 떠올렸다. “아유, 베르뒤랭 부인 말이에요, 요즘은 나밖에 몰라요. 글쎄, 내가 자기 ‘귀염둥이’라나요, 그러면서 나한테 입 맞추고, 어디든 같이 가자 하고, 자기를 이름으로 부르라잖아요.” 그때만 해도 그는 이 말에서, 오데트가 그 뒤로 그에게 되풀이한, 악덕의 분위기를 지어내려는 저 터무니없는 암시들과의 아무런 연관도 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것을 베르뒤랭 부인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우정의 증거로 반겨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오데트를 향한 그 애정의 옛 기억이, 그녀의 온당치 못한 대화에 대한 더 최근의 기억과 문득 하나로 녹아들었다. 그는 더 이상 그 둘을 마음속에서 갈라놓을 수 없었고, 현실에서 그것들이 뒤섞이는 것을 보았으니, 애정은 그 익살에 어떤 진지함과 무게를 실어 주고, 그 대가로 익살은 애정에서 순진함을 앗아 갔다. 그는 오데트를 보러 갔다. 그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자리에 앉았다. 감히 그녀를 껴안지 못했으니, 입맞춤이 그녀 안에서, 또 자기 안에서 애정을 불러일으킬지 분노를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앉아, 두 사람의 사랑이 스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득 그는 마음을 정했다.
“오데트, 내 사랑.” 그가 입을 열었다. “알아, 내가 지금 그저 얄밉게 굴고 있다는 걸. 하지만 몇 가지만 묻지 않을 수 없어. 언젠가 내가 당신하고 베르뒤랭 부인을 두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해? 말해 봐, 그게 사실이었어? 당신, 그 여자하고든 다른 누구하고든, 한 번이라도 그런 적 있어?”
그녀는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 “행렬 지나가는 거 구경하러 갈래?”라거나 “열병식에 올 거야?”라고 물었을 때, 가기가 귀찮아서 안 가겠다는 뜻으로 흔히들 짓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끼기를 마다할 때 흔히 쓰는 이 고갯짓은, 바로 그 때문에 이미 지나간 일에 끼었음을 부인하는 데에는 어떤 불확실함을 더한다. 게다가 그것은 무슨 단호한 거부나 도덕적 불가능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편의의 이유를 넌지시 비친다. 오데트가 이렇게 그 암시가 거짓이라는 몸짓을 자기에게 해 보이는 것을 보자, 그는 그것이 충분히 사실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말했잖아요, 그런 적 없다고. 당신도 잘 알면서.” 그녀는 화가 나고 거북한 기색으로 덧붙였다.
“그래, 그건 다 알아. 하지만 정말 확실해? 나한테 ‘당신도 잘 알잖아’라고 하지 말고, ‘나는 어떤 여자하고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해 봐.”
그녀는 그 말을 마치 외워 둔 학과처럼, 그러면서 그렇게 하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바라기라도 하듯 되뇌었다. “나는 어떤 여자하고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요.”
“라게토 성모 메달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스완은 오데트가 결코 그것에 걸고는 위증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유, 당신 정말 사람을 못살게 구네.” 그녀는 그의 물음이 옭아매는 굴레에서 몸을 빼내려는 듯 몸을 홱 틀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 좀 할래요? 오늘 대체 왜 이래요? 아주 작정을 했나 봐, 내가 당신을 미워하고 저주하게끔 몰아세우려고! 이봐요, 나는 당신하고 다시 사이좋게 지내고, 옛날처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돌아오는 게 고작 이거예요!”
그래도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발작이 수술을 멈추게 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수술을 접을 것까지는 없어 그 발작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외과의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당신한테 눈곱만치라도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아주 잘못 생각한 거야, 오데트.” 그는 그럴듯하고도 속임수 어린 부드러움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당신한테 이미 아는 것만 말하고, 언제나 입 밖에 내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어. 하지만 남들이 일러바쳐서만 알고 있는 한 나를 이토록 당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그것을, 오직 당신만이 고백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어. 내가 당신한테 화나는 건 결코 당신이 한 행동 때문이 아니야.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고 또 용서해. 화나는 건 당신의 거짓, 내가 사실이라고 아는 것을 한사코 아니라고 우기게 만드는 그 터무니없는 거짓 때문이야. 당신이 내가 거짓이라고 아는 것을 끝까지 우기고, 나한테 맹세까지 하는 걸 보면서, 내가 어떻게 당신을 계속 사랑할 수 있겠어? 오데트, 우리 둘 다 괴롭히는 이 순간을 질질 끌지 마. 지금 당장 끝낼 마음만 있으면, 당신은 영영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말해 봐, 당신 메달에 걸고, 그런 짓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다 아니다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녀는 발끈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죠, 아주 오래전에,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던 때에, 어쩌면 두세 번쯤.”
스완은 온갖 경우에 대비해 마음을 다잡아 두었었다. 그러니 현실이란, 칼에 몸을 찔리는 것이 머리 위 구름의 더딘 움직임과 아무 상관이 없듯, 미리 헤아려 둔 여러 가능성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무엇임에 틀림없었다. 저 “두세 번”이라는 말이 그의 심장의 산 살점 위에 이를테면 십자가 하나를 새겨 놓았으니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두세 번”이라는 그 말, 몇 마디 말에 지나지 않는 그것, 멀찍이서 허공에 내뱉어진 그 말이, 마치 정말로 심장을 꿰뚫기라도 한 듯 사람의 심장을 그토록 갈가리 찢고, 마셔 버린 독처럼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있다니. 스완은 문득 생퇴베르트 부인 댁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 강령술 이후로는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그가 이제 겪는 고통은 그가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가장 온전히 불신하던 시간에도 이토록 극에 달한 악행은 좀처럼 상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령 그 잘못을 상상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렴풋하고 불확실한 채로 남아, “어쩌면 두세 번”이라는 말과 함께 새어 나온 그 특유의 참혹함을 두르지 않았고, 처음으로 걸린 새로운 병처럼 여태 그가 알던 그 무엇과도 다른 그 남다른 잔혹함으로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악이 비롯된 이 오데트가 그에게 조금도 덜 소중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값진 존재가 되었으니, 마치 그의 고통이 커지는 만큼 이 여자만이 지닌 진정제, 곧 해독제의 값어치도 함께 커지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는, 갑자기 더 위중해진 것을 알게 된 병을 돌보듯, 그녀에게 더 마음을 쏟고 싶었다. 그녀가 “두세 번” 저질렀다고 그에게 말한 그 끔찍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막고 싶었다. 그러자면 오데트를 지켜보아야 했다. 흔히들 말하기를, 어떤 남자에게 제 정부의 허물을 짚어 주면 그가 곧이듣지 않는 탓에 도리어 그녀에 대한 그의 애착을 더 굳혀 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곧이듣는다면 그 애착은 얼마나 더 굳어지겠는가! 그러나, 스완은 자문했다, 대체 어떻게 그녀를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어느 한 여자의 오염에서야 그녀를 지켜 낼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여자는 수백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오데트를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서 찾지 못한 그 저녁에) 다른 한 사람을 소유하겠다는, 그런 것이 애당초 가능하기라도 한 듯한 그 갈망을 품기 시작했을 때 자기 야심이 얼마나 정신 나간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스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정복에 나선 야만족 무리처럼 그의 영혼을 침범한 그 고통의 덩어리 밑에는, 더 오래되고 더 잔잔하며 소리 없이 부지런한 타고난 바탕이, 다친 기관의 세포가 곧바로 상한 조직을 고치는 일에 나서듯, 마비된 팔다리의 근육이 예전의 움직임을 되찾으려 애쓰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영혼에 더 오래되고 더 토박이인 이 거주자들이 한동안 스완의 온 기운을 그 남모르는 복구의 일에 빨아들였으니, 그것은 회복기나 수술을 마친 뒤에 헛된 안식의 느낌을 주는 그런 일이었다. 이번에는 여느 때처럼 탈진으로 인한 긴장의 풀림이 스완의 머릿속에서라기보다, 오히려 그의 심장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삶에서 한 번 있었던 모든 것은 되풀이되기 마련이고, 이미 끝난 듯싶던 경련의 진통에 다시금 뒤척이는 죽어 가는 짐승처럼, 잠깐 동안만 놓여났던 스완의 심장 위에, 그 똑같은 고통이 저절로 되돌아와 그 똑같은 십자가를 다시 그었다. 그는 라 페루즈 거리로 자기를 태워 가던 사륜마차에 몸을 기댄 채, 그런 감정이 반드시 맺고 마는 독 든 열매를 알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진 남자의 감정을 관능적인 기쁨으로 키우던 저 달밤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은 한순간밖에, 그가 손을 들어 심장에 가져다 대고, 다시 숨을 고르고, 애써 미소 지어 제 괴로움을 감추기까지의 그 짧은 동안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다시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떤 원수라도 감수하지 않았을 만큼 애를 써서 그에게 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고, 그가 여태 알던 가장 잔인한 고통을 억지로 맛보게 한 그의 질투는, 그가 이미 충분히 괴로워했다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깊은 상처에 그의 가슴을 드러내 놓으려 했다. 악한 신처럼 그의 질투는 스완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그를 파멸로 떠밀고 있었다. 처음에 그의 벌이 더 혹독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오로지 오데트의 탓이었다.
“내 사랑.”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다 지난 일이야. 내가 아는 사람하고였어?”
“아니에요, 맹세코 아니에요. 게다가 내가 부풀린 것 같아요, 실은 그렇게까지 간 적은 없어요.”
그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 좋을 대로 해.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다만 아무 이름도 대 주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 그 사람이 누군지 떠올릴 수만 있으면, 두 번 다시 그 여자 생각을 안 하게 될 텐데. 이건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래야 이 일로 당신을 더는 성가시게 안 할 테니까. 마음속에 뭐든 또렷이 그려 볼 수 있다는 건 참 마음을 놓이게 하거든. 정말 끔찍한 건 도무지 그려 볼 수 없는 거야. 그래도 당신은 나한테 참 다정하게 굴어 줬어. 당신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아. 나한테 베풀어 준 그 모든 좋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 나는 이제 아주 끝냈어. 딱 한마디만 더 하지. 몇 번이었어?”
“아유, 샤를! 이러다 나 죽는 거 안 보여요? 다 아주 오래전 일이에요. 나는 그런 거 한 번도 마음에 담아 둔 적 없다고요. 누가 보면 당신이 아주 작정하고 그 생각을 내 머릿속에 다시 집어넣으려는 줄 알겠어요. 그래 봤자 당신만 훨씬 더 속 편해지겠네요!” 그녀는 저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그러나 짐짓 심술을 담아 말을 맺었다.
“나는 그저 그게 내가 당신을 알고 난 뒤의 일이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그거야 당연한 거지. 여기서 그런 적도 있었어? 언제였는지 어느 저녁을 짚어 줄 순 없어?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나 스스로 떠올려 볼 수 있게 말이야. 당신도 잘 알잖아, 누구하고였는지 기억 못 할 리가 없다는 걸, 오데트, 내 사랑.”
“하지만 나도 몰라요, 정말 모른다니까요. 불로뉴 숲에서였던 것 같아요, 어느 저녁 당신이 우리를 만나러 섬으로 왔던 날이요. 당신은 데 롬 대공비하고 저녁을 먹고 온 참이었죠.” 그녀는 자기 진실함을 증명해 줄 정확한 세부를 그에게 대 줄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듯 덧붙였다. “옆 탁자에 아주 오랫동안 못 봤던 어떤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가 나한테 그러더군요. ‘저기 바위 뒤로 가서 물 위에 비친 달빛 좀 봐요!’ 처음엔 그냥 하품이나 하면서 그랬죠. ‘아니에요, 난 너무 피곤하고, 여기 이대로도 좋아요, 고맙지만.’ 그 여자는 그런 달빛은 여태 본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그 소린 전에도 들어 봤어요.’ 하고 내가 대꾸했죠. 알잖아요, 나는 그 여자가 무슨 속셈인지 훤히 알고 있었거든요.” 오데트는 이 일화를, 그것이 자기에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 대수롭지 않음을 덜어 낸다고 여겼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부끄러워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거의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스완의 얼굴을 언뜻 보고는 말투를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악마예요!” 그녀는 그에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나를 괴롭히면서, 그저 나를 좀 가만 놔두려고 나한테 거짓말을 하게 만들면서 즐기는 거예요.”
스완을 내리친 이 두 번째 타격은 첫 번째보다 한층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그 일이 그토록 최근의 것이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순진하여 알아채지 못했던 그의 눈을 피해, 그것은 그가 전혀 알지 못했던 과거가 아니라, 그가 그토록 또렷이 기억하는, 오데트와 함께 지나온, 스스로 그토록 은밀하고도 낱낱이 안다고 여겼던 그 저녁들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저녁들이 이제 와 돌이켜 보매 교활과 기만과 잔혹의 빛을 띠는 것이었다. 그 저녁들 한가운데로, 느닷없이 불로뉴 숲 섬에서의 그 순간이라는, 아가리를 벌린 심연이 갈라져 열렸다. 오데트는 총명하지는 못해도 자연스럽다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가 어찌나 꾸밈없이 그 자그마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흉내 내 보였던지, 스완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 광경을 생생히 그려 볼 수 있었다. 하품하는 오데트, ‘저기 저 바위,’… 그녀의 대답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아아, 어쩌면 그리 태평스럽게도, ‘그런 얘긴 전에 들어 봤어요!’ 그날 저녁에는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당분간은 더 캐낼 것이 없으리라는 것을 그는 느꼈다. 그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가엾은 내 사랑, 용서해 줘요. 알아요, 내가 당신을 몹시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이제 다 끝났어요. 다시는 그 일을 떠올리지 않을게요.”
하지만 그녀는 그의 눈이 여전히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그리고 그들 사랑의 그 지난 시절에 붙박여 있음을 보았다. 그 시절은 어렴풋했기에 그의 기억 속에서 단조롭고도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데 롬 대공비와 저녁을 들던 사이에 달빛 아래 부아의 섬에서 있었던 그 찰나의 소식으로 인해, 칼에 베인 상처처럼 갈가리 찢겨 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인생을 흥미롭게 여기는 버릇을, 인생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기이한 것들에 경탄하는 버릇을 이미 몸에 익힌 터라, 그런 고통을 오래 견뎌 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극심하게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놀랍고, 멋진 뜻밖의 일들을 감추고 있구나. 악덕이란 것이 사람들이 흔히 믿어 온 것보다 훨씬 흔한 모양이다. 여기 내가 온전히 믿었던 여자가 있다. 그토록 순박하고 정직해 보이는, 설령 품행이 엄격하지는 않다 쳐도 그 취향과 성향만은 지극히 정상이고 건전해 보이던 여자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고발을 받고, 그녀에게 캐물었더니, 그녀가 인정하는 그 얼마 안 되는 것만으로도 내가 여태 의심조차 못 했던 것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나는구나.’ 그러나 그는 이런 초연한 관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가 방금 털어놓은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정확히 가늠해 보려 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그런 짓을 자주 저질렀는지, 또 앞으로도 저지를 법한지를 결론지을 수 있을지 알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녀의 말들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 여자가 뭘 노리는지 나도 뻔히 알았죠.’ ‘두세 번.’ ‘그런 얘긴 전에 들어 봤어요.’ 그러나 그 말들은 무장을 풀고 그의 기억 속에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저마다 칼을 한 자루씩 쥐고서 새삼 그를 찔러 댔다. 오랫동안, 마치 스스로 아프리라는 걸 알면서도 시시각각 그 동작을 해 보려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병자처럼, 그는 ‘난 여기가 좋아요, 됐어요,’ ‘그런 얘긴 전에 들어 봤어요’ 하고 끊임없이 중얼거렸으나, 그 고통이 어찌나 극심한지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태껏 늘 그토록 가벼이 여기고, 실은 웃어넘기기까지 하던 행위들이 자칫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병처럼 자신에게 이토록 심각한 것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아연했다. 그는 오데트를 감시해 달라 부탁할 만한 여자를 얼마든지 알고 있었으나, 그녀들이 어찌 그의 새로운 관점에 맞추어 주기를, 그리고 오랫동안 그 자신의 것이기도 했던, 그 관능적 삶에서 늘 그를 이끌어 온 그 관점에 머무르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찌 그녀들이 미소 지으며 ‘이 질투에 미친 양반아, 남의 즐거움까지 빼앗으려 들다니!’ 하고 말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대체 어떤 함정 문이 느닷없이 발밑에서 열려, 지난날 오데트를 향한 사랑에서 더없이 세련된 즐거움밖에 찾지 못했던 그를, 이제는 어떻게 빠져나갈지 알 길 없는 이 새로운 지옥의 굴레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했단 말인가. 가엾은 오데트! 그는 그녀에게 아무런 앙심도 품지 않았다. 잘못의 절반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직 어린아이나 다름없던 시절에, 니스에서, 그녀의 친어머니가 그녀를 어느 돈 많은 영국인에게 팔아넘겼다는 이야기를 그는 듣지 않았던가? 그러나 예전에는 아무 감흥 없이 읽어 넘겼던 알프레드 드 비니의 Journal d’un Poète 속 그 구절이, 이제 그에게 얼마나 쓰라린 진실을 담고 있었던지. ‘어떤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거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녀의 주변은 어떠한가? 그녀의 삶은 어떠했는가? 앞으로의 온 행복이 그 대답에 달려 있다.’ 스완은 ‘그런 얘긴 전에 들어 봤어요’라거나 ‘그 여자가 뭘 노리는지 나도 뻔히 알았죠’ 같은,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곱씹어 본 그토록 단순한 말들이 그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안길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단순한 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오데트가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그가 느꼈던 그 괴로움을 붙들어 두었다가 그에게 되쏟아 낼 수 있는 무구(武具)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지금 그가 새삼 느끼는 것이 바로 그 괴로움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와 사실을 안다 한들 소용없었다. 아니, 세월이 흐르며 그 잘못을 얼마쯤 잊고 온전히 용서했다 한들 소용없었다. 그녀의 말을 되될 때마다 그 옛 괴로움은 오데트가 입을 열기 전의 그로, 곧 아무것도 모르고 순순히 믿던 그로 그를 되빚어 놓았다. 그의 무자비한 질투는, 오데트의 고백에 제대로 상처받도록, 아직 진실을 알지 못하는 사내의 자리에 그를 다시 세워 놓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달이 지난 뒤에도 이 해묵은 이야기는 여전히 느닷없는 폭로처럼 그를 아연케 하곤 했다. 그는 자기 기억이 지닌 그 무시무시한 재현의 힘에 경탄했다. 나이가 들며 그 다산성이 줄어드는 그 창조의 힘이 쇠약해질 때에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고통이 누그러지기를 바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데트의 어느 한 문장이 스완을 괴롭히던 힘이 거의 다 소진되었다 싶으면, 보라, 여태 그가 가장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또 다른 문장이, 거의 새로운 문장 하나가 나타나 앞선 문장의 자리를 이어받고는 조금도 줄지 않은 힘으로 그를 내리쳤다. 데 롬 대공비와 저녁을 들던 그 저녁의 기억은 그에게 고통스러웠으나, 그것은 그 고통의 중심, 그 핵심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은 그 둘레로 어렴풋이 퍼져 나가, 그 앞뒤의 온 나날로 흘러넘쳤다. 그리고 그가 기억을 어느 한 지점에 붙들어 두려 한들, 그를 아프게 하며 되살아나는 것은 베르뒤랭 부부가 그토록 자주 부아의 섬으로 저녁을 들러 가곤 하던 그 철 전체였다. 어찌나 격렬하게 되살아나던지, 질투가 늘 그의 안에 불러일으키던 호기심은 그것을 채웠다가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고문을 안기게 되리라는 두려움에 차츰 무디어져 갔다. 그는 오데트가 자기를 처음 만나기 전에 흘려보낸 그 온 세월을, 여태 마음속에 어떤 그림도 그려 보려 한 적 없던 그 세월을, 자신이 어렴풋이 떠올리던 그 밋밋한 추상이 아니라, 저마다 구체적인 사건들로 빼곡한, 뚜렷하고 날짜까지 새겨진 숱한 해들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것을 더 알게 된다면, 지금은 빛깔도 없고 유동적이며 견딜 만한 그녀의 과거가, 손에 잡힐 듯한, 외설스러운 형체를 띠고서 저마다 낱낱의, 악마 같은 면모를 드러낼까 두려웠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을 그려 보기를 계속 삼갔으니,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탓이었다. 그는 언젠가 부아의 섬이나 데 롬 대공비의 이름을 들어도 그 옛 찢기는 아픔이 조금도 저미지 않을 날이 오기를 바랐다. 그때까지는 오데트를 부추겨 새로운 문장들을, 더 많은 장소와 사람의 이름을, 갖가지 다른 사건들을 끄집어내게 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 여겼다. 그것들은 아직 그의 병이 채 아물지도 않은 마당에 병을 또 다른 형태로 도지게 할 터였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 이제는 알게 될까 두려워하는 그것들을, 정작 오데트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그에게 드러내 보이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그녀의 악덕이 그녀의 실제 삶과, 스완이 자기 정부(情婦)가 보내리라 믿었고 여전히 곧잘 믿곤 하던 비교적 순결한 삶 사이에 벌려 놓은 그 틈은, 그녀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었던 까닭이다. 자기 악덕을 눈치채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앞에서 늘 한결같은 미덕의 낯빛을 꾸미는 방탕한 자에게는, 그 악덕이 (스스로는 그 끊임없는 자람을 알아채지 못한 채) 얼마나 조금씩 자신을 정상적인 삶의 길에서 떼어 놓았는지를 가늠할 등록부도, 잣대도 곁에 없는 법이다. 오데트의 마음속에서, 스완에게 숨긴 자기 행위들의 기억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그 밖의 무해한 행위들은 차츰 그 기억에 물들고 감염되었으나, 그녀는 그 안에서 무엇 하나 이상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고, 그 행위들이 그녀 안에서 살아 숨 쉬던 그 특정한 영역에서 아무런 폭발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것들을 스완에게 이야기하면 그는 그 행위들이 가리키는 이중성이 폭로되는 데에 짓눌리고 말았다. 하루는 그가 오데트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가 뚜쟁이 여자들과 무슨 거래를 한 적이 있는지 알아내려 했다. 사실 그는 그런 일이 없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 익명의 편지가 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심어 놓기는 했으나 순전히 기계적으로 그리했을 뿐, 그 생각은 아무런 믿음도 얻지 못한 채 받아들여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거기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스완은 이 의심이라는, 죽은 듯 무겁지만 그럴수록 더 마음을 어지럽히는 짐을 벗어 버리고 싶어, 오데트가 이제 그것을 영영 뿌리 뽑아 주기를 바랐다.
“어머, 천만에요! 그렇다고 그 여자들이 나더러 오라고 들볶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녀의 미소에는, 스완에게 그것이 정당해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채지도 못하는, 흐뭇해진 허영이 배어 있었다. “어제도 그중 한 여자가 나를 두 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달라는 대로 얼마든 주겠다지 뭐예요. 글쎄 어떤 대사가 그 여자한테 그랬다나 봐요. ‘그 여자를 내게 데려오지 않으면 나는 죽어 버리겠소’ 하고요. 그게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래요! 그 여자들한테는 내가 외출했다고 했는데도, 여자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거예요. 결국은 내가 몸소 나가서 말을 해야 여자가 물러가겠더라고요. 내가 그 여자를 어떻게 몰아세웠는지 당신이 봤어야 하는데. 옆방에서 듣고 있던 하녀가,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고 그러더군요. ‘아니, 내가 싫다는데도 그래요! 그런 짓을 하다니, 나는 딱 질색이에요! 나는 언제 어디서든 내 마음대로 할 자유쯤은 아직 있는 사람이라고요! 돈이 궁하다면야 이해라도 하겠지만…’ 문지기한테는 그 여자를 다시는 들이지 말라고, 내가 시골에 내려갔다고 하라고 일러 뒀어요. 아, 내가 그 여자한테 그러는 동안 당신을 방 어딘가에 숨겨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신도 틀림없이 흐뭇했을 거예요, 여보. 이래 봬도 당신의 이 오데트한테도 좋은 구석이 있답니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별별 흉한 소리를 다 해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