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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의 사랑 (20)

1권 · 스완의 사랑

게다가 그녀가 이따금 털어놓는 고백, 곧 그가 이미 알아챘으리라 짐작한 잘못에 대한 그 고백은, 스완에게 묵은 의심을 끝맺어 주기보다는 새로운 의심의 실마리가 되어 주기 일쑤였다. 그녀의 고백이 그의 의심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일이 결코 없었던 까닭이다. 오데트가 고백에서 핵심이 될 부분을 죄다 도려낸다 한들 소용없었다. 그 곁가지에는 스완이 여태 상상조차 못 한 무언가가 늘 남아 있어, 그를 새삼 짓뭉갰고, 마침내 그로 하여금 자기 질투라는 문제의 조건을 바꿔 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고백들을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그것들을 실어 나르다가 내던졌다가, 다시금 강물 위의 주검처럼 제 품에 안고 어르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한번은 그녀가, 파리-뮈르시 축제가 있던 날 포르슈빌이 자기를 찾아왔던 일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뭐라고! 당신이 그자를 그렇게 오래전부터 알았단 말이오? 아, 그래, 물론 그랬겠지.” 그는 자기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말을 고쳤다. 그러다 문득, 그가 그토록 소중히 간직해 온 그 편지를 받았던 파리-뮈르시 축제의 그날, 그녀가 어쩌면 포르슈빌과 함께 메종 도레에서 점심을 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맹세했다. “그래도 메종 도레라니, 그때 나도 사실이 아닌 줄 알았던 무언가가 떠오르는군.” 그는 그녀를 겁주려는 속셈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내가 방금 거기서 오는 길이라고 당신한테 말했던 그날 저녁, 사실은 거기 아예 가지도 않았던 거요. 그때 당신은 프레보에서 나를 찾고 있었고.” 그녀는 (그의 태도로 미루어 그가 이미 안다고 짐작하고서) 냉소라기보다는 소심함에서, 곧 스완의 비위를 거스를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단호함으로 대답했는데, 그 두려움만은 자존심 탓에 애써 감추려 들었고, 대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솔직해질 수 있음을 그에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도끼를 휘두르는 망나니와도 같은 날카로움과 힘으로 그를 내리쳤으나, 정작 잔혹하다고 탓할 수는 없었으니, 그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웃음마저 터뜨렸는데, 하기야 그것은 어쩌면 자기가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한다고 그가 여기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 컸을는지도 모른다. “정말이에요, 나는 메종 도레엔 가지 않았어요. 포르슈빌네 집에서 오는 길이었죠. 프레보엔 정말로 갔었고요, 그건 지어낸 얘기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거기서 나를 만나 자기 판화들을 좀 보러 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손님이 그를 찾아왔지 뭐예요. 내가 메종 도레에서 오는 길이라고 한 건 당신이 화낼까 봐 겁이 나서였어요. 실은 제법 갸륵한 마음이었잖아요, 안 그래요? 잘못한 건 나도 인정해요. 그래도 지금은 당신한테 죄다 털어놓고 있잖아요, 그렇죠? 만약 파리-뮈르시 축제 날 내가 그 사람이랑 점심을 든 게 사실이었다면, 그걸 솔직히 말하지 않은들 내가 무슨 득을 보겠어요? 더구나 그때만 해도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를 이렇게 잘 알지도 못했잖아요, 안 그래요, 여보?”

그는 이 짓뭉개는 말들이 자신을 넋 나간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탓에, 그런 자에게서 나오는 느닷없고 비굴한 나약함으로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가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다시는 떠올릴 엄두조차 못 냈던 그 몇 달, 그녀가 그를 사랑했던 그 몇 달 동안에도, 그녀는 이미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메종 도레에서 오는 길이라고 그에게 말했던 그 순간(그들이 처음으로 ‘카틀레야를 했던’ 바로 그 첫 저녁) 말고도, 스완이 조금도 의심하지 못한 거짓을 저마다 감추고 있는 그런 순간이 대체 얼마나 많았단 말인가. 그는 그녀가 언젠가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베르뒤랭 부인한테는 그저 옷이 채 준비가 안 됐다거나 마차가 늦게 왔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핑곗거리야 늘 있는 법이니까.” 아마 그 자신에게도 여러 번, 그녀가 늦은 까닭을 둘러대거나 정해 둔 만남의 시각을 바꾼 것을 얼버무리려고 그런 말을 술술 내뱉을 때마다, 그 순간들은 그가 당시엔 전혀 낌새조차 채지 못한 채, 그녀가 다른 어떤 사내와 맺어 둔 밀회를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 사내에게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스완한테는 그저 옷이 채 준비가 안 됐다거나 마차가 늦게 왔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핑곗거리야 늘 있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그의 가장 흐뭇한 기억들 밑바닥에, 그 옛날 오데트가 그에게 건넨 가장 단순한 말들, 그가 복음서의 말씀인 양 믿었던 그 말들 밑바닥에, 그녀가 그에게 이야기해 준 나날의 행적들 밑바닥에, 그녀의 재봉사 집이며 부아 대로며 이포드롬 같은 지극히 평범한 장소들 밑바닥에, 그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리 낱낱이 늘어놓아도 늘 무언가는 남기 마련이고, 그 남은 시간이 고백하지 않은 어떤 행위들을 감추는 은신처가 될 수 있다는, 그 시간의 잉여 덕분에 거기 숨어든) 있을 법한 거짓의 저류가 슬며시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거짓은 그에게 가장 귀중히 남아 있던 모든 것을, 가장 행복했던 저녁들을, 그리고 오데트가 자기가 말한 것과는 다른 시각에 늘 드나들었을 그 라 페루즈 거리마저도 더럽혔다. 그것은 메종 도레에 관한 그녀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를 옥죄었던 그 캄캄한 공포의 힘을 넓혀 갔고, 니네베의 파멸 속 외설스러운 짐승들처럼, 그의 지난날이라는 건물 전체를 돌 하나하나 무너뜨려 갔다.… 이제 그가 기억 속에서 메종 도레라는 잔혹한 이름이 되될 때마다 고개를 돌린 것은, 그 이름이 그에게, 얼마 전 생퇴베르트 부인의 파티에서처럼 오래전에 잃어버린 행운을 떠올리게 해서가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알아차린 불행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부아의 섬이 그러했듯, 메종 도레 역시 그 이름이 차츰 그를 괴롭히기를 그쳤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이라, 우리의 질투라 여기는 것은 어느 것도 단일하고 연속되며 하나뿐인 정념이 아닌 까닭이다. 그것들은 잇따르는 무수한 사랑으로, 저마다 다른 질투로 이루어져 있고, 그 하나하나는 덧없지만, 끊이지 않는 그 무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연속의 인상을, 단일성의 착각을 안겨 준다. 스완의 사랑이라는 생명도, 그 질투의 한결같음도, 죽음과 배신과, 오데트를 그 대상으로 삼은 헤아릴 수 없는 욕망과 헤아릴 수 없는 의심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그가 얼마간 그녀를 만나지 않고 지냈더라면, 죽어 간 것들은 다른 것들로 대체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오데트가 곁에 있는 한, 그것은 스완의 마음속에 사랑과 의심의 씨앗을 번갈아 계속 뿌려 댔다.

어떤 저녁이면 그녀는 느닷없이 그에게 다정함을 되찾곤 했는데, 이 다정함은 지금 당장 붙들지 않으면 앞으로 몇 해가 지나도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그에게 매섭게 을러대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어 ‘카틀레야를 해야’ 했고, 그녀가 그를 향해 품은 척하는 욕망이 어찌나 느닷없고 어찌나 종잡을 수 없으며 어찌나 다급한지, 그녀가 그에게 퍼붓는 입맞춤이 어찌나 노골적이고 어찌나 낯선지, 이 거칠고 부자연스러운 애정은 여느 거짓말이나 매정한 짓 못지않게 스완을 불행하게 했다. 어느 저녁, 그가 그렇게 그녀의 명령에 따라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갔을 때, 그녀가 평소의 냉담함과는 딴판으로 입맞춤 사이사이 열정 어린 말들을 섞어 넣던 참에, 그는 문득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그가 일어나 사방을 뒤졌으나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 곁 제자리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노발대발하며 꽃병을 하나 깨뜨리고는 이렇게 내뱉었다. “당신하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이 지긋지긋한 양반아!” 그리하여 그는 그녀가 실제로 어떤 사내를 방 안에 숨겨 두고서, 그 질투심을 자극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기 감각을 부추기려 했던 것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때로 그는 오데트에 관해 무언가 알아낼까 하는 마음에, 감히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는 못하면서도, ‘환락’의 집들을 드나들었다. “여기 마음에 쏙 들 만한 애가 하나 있어요.” ‘마담’이 이렇게 그를 맞이하면, 그는 한 시간 남짓 눌러앉아, 그가 더 나아가지 않는 데에 어리둥절해하며 앉아 있는 어느 가엾은 처녀와 시무룩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중 아직 앳되고 어여쁜 한 처녀가 언젠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야 물론 제가 바라는 건 진짜 친구 하나를 만나는 거예요. 그럼 그 사람은 아주 마음을 놓아도 돼요. 나는 다시는 다른 남자들이랑은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요.” “정말이지, 여자가 어떤 남자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데에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여서, 그에게 결코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스완이 애가 타서 물었다. “아이참, 그럼요! 그거야 사람 나름이죠!” 스완은 이 처녀들에게, 데 롬 대공비를 즐겁게 했을 법한 바로 그런 말들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를 찾는다던 처녀에게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참 곱기도 하지, 허리띠에 맞추려고 눈을 파랗게 물들였구려.” “당신도요, 소맷부리를 파랗게 하셨네요.” “이런 데서 이렇게 곱다란 이야기를 나누다니! 내가 당신을 지루하게 하는 건 아니오? 붙잡아 두는 것도 아니고?” “아니에요, 저야 할 일도 없는걸요, 고마워요. 지루했다면 그렇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이야기하시는 걸 듣는 게 좋아요.” “그거 참 영광이오.… 우리 참 얌전히도 굴고 있지 않소?” 그는 마침 들여다본 ‘마담’에게 물었다. “아무렴요, 나도 마침 혼잣말로 그러던 참이에요. 두 분이 어쩜 저리 점잖으실까 하고요! 하지만 요새가 다 그렇죠! 요즘엔 사람들이 그저 이야기나 나누자고 우리 집엘 온다니까요. 저 대공께서도 바로 며칠 전에 그러시더군요. 마님이랑 있을 때보다 여기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요. 요새는 상류층 부인네들이 다들 그 모양이라나요. 나는 그거야말로 망측한 일이라고 봐요. 자, 그럼 나는 두 분만 조용히 계시게 물러날게요. 눈치 없이 낄 자리가 아닌 건 나도 아니까요.”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맺고는, 스완을 그 파란 눈의 처녀와 남겨 둔 채 물러갔다. 그러나 이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녀는 오데트를 알지 못했으니까.

화가가 병을 앓자 코타르 박사가 뱃길 여행을 권했고, ‘단골들’ 가운데 몇몇이 그를 따라나서겠노라 했다. 베르뒤랭 부부는 파리에 저희끼리만 남겨질 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처음에는 요트를 세냈다가 마침내 아예 사들였다. 그리하여 오데트는 노상 뱃놀이를 떠났다. 그녀가 얼마간 자리를 비울 때면 스완은 그녀에게서 마음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으나, 마치 이 마음의 거리가 둘 사이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기라도 하듯, 오데트가 파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녀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한번은 다들 고작 한 달만 떠나 있으리라 여겼는데, 잇따른 유혹에 넘어갔든, 아니면 베르뒤랭 가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미리 모든 것을 교묘히 짜 두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만 ‘단골들’에게 속내를 내비쳤든, 아무튼 그들은 알제에서 튀니스로 훌쩍 옮겨 갔고, 이어 이탈리아로, 그리스로, 콘스탄티노플로, 소아시아로 향했다. 그들이 거의 한 해 가까이 자리를 비운 동안 스완은 더없이 홀가분하고 거의 행복하기까지 했다. 베르뒤랭 는 피아니스트와 코타르 박사에게 저마다의 이모며 환자들에게는 그들이 딱히 필요치 않다고, 게다가 어차피 코타르 부인을 파리로 돌려보내는 것은 더없이 경솔한 짓이라고, 베르뒤랭 부인의 장담으로는 그곳에 마침 혁명이 터졌다고 구슬려 보았으나, 결국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가는 그들과 함께 돌아왔다. 이 네 여행자가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스완은 ‘뤽상부르’라는 팻말을 단 합승마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마침 그쪽에 볼일이 있던 터라 훌쩍 올라탔다가, 코타르 부인과 마주 앉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 ‘접견일’을 맞은 집들을 차례로 도는 길이었는데, 격식을 갖춘 정장 차림에 모자에는 깃털을 꽂고, 비단 드레스에 토시를 끼고, 우산을 (비가 오지 않으면 양산으로도 쓸 요량으로) 들고, 명함집에다, 세탁소에서 갓 찾아온 흰 장갑까지 낀 모습이었다. 이런 신분의 표장을 두르고서, 날이 좋으면 그녀는 같은 동네의 이 집 저 집을 걸어서 다녔으나, 다른 구역으로 가야 할 때면 합승마차의 환승표를 이용하곤 했다. 처음 한두 분 동안은, 이 여인의 타고난 상냥함이 의사 부인이라는 빳빳한 겉꺼풀을 뚫고 나오기 전까지는, 게다가 스완 앞에서 베르뒤랭 부부 이야기를 꺼내도 좋을지 확신도 서지 않던 터라, 그녀는 느릿하고 어눌하나 그리 밉지만은 않은 목소리로, 이따금 합승마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에 온통 파묻히곤 하는 그 목소리로, 오후 한나절 스무 남짓한 집의 계단을 기어오르며 주워듣고는 집집이 되풀이하던 화제들 가운데 몇 가지를 지극히 자연스레 꺼내 놓았다.

“스완 , 당신처럼 시류에 밝은 분이 미를리통에 가서, 온 파리가 좇아 다니는 그 마샤르의 초상화를 보셨는지야 새삼 여쭐 것도 없겠죠. 그래, 어떻게 보셨어요? 어느 편이세요, 찬미하는 쪽인가요, 헐뜯는 쪽인가요? 요새는 파리 어느 집엘 가나 다들 그러니, 마샤르의 초상화 말고는 아무도 다른 얘긴 입에 올리지도 않아요. 마샤르의 초상화에 한마디 견해를 내놓지 않고서는 세련됐다는 소리도, 정말로 교양 있다는 소리도, 시대에 발맞춘다는 소리도 못 듣는다니까요.”

스완이 그 초상화를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자, 코타르 부인은 그가 보지 못했노라 실토하게 만든 통에 혹여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다.

“아이, 괜찮고말고요! 적어도 당신은 그걸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가 있으시잖아요. 마샤르의 초상화를 못 봤다고 해서 창피할 것도 없다는 거죠. 나는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들어요. 자, 그런데 나는 그걸 봤답니다. 다들 의견이 갈리더군요. 어떤 이들은 그게 좀 공들인 티가 난다고, 휘저은 크림 같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다고 봐요. 물론 우리 벗 비슈가 그리는 그 파랗고 노란 부인네들하곤 눈곱만큼도 안 닮았죠. 그거야 뻔한 노릇이고요. 하지만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당신은 나를 지독히도 구닥다리라 여기시겠지만, 나는 늘 생각한 그대로를 말한답니다) 나는 그 사람 작품을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이가 그린 내 남편의 초상화에 좋은 구석이 있다는 거야 나도 잘 알죠. 아무렴요. 게다가 그건 그이가 그리는 대개의 것들보다야 덜 별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데도 그 딱한 양반한테 파란 콧수염을 달아 주지 뭐예요! 그렇지만 마샤르라니! 자, 이 얘기 좀 들어 보세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찾아가는 길인(덕분에 당신과 이렇게 동행하는 크나큰 기쁨까지 누렸지만요) 내 벗의 남편이, 만약 자기가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히면(그이는 우리 박사님의 동료 가운데 한 분이거든요) 마샤르를 시켜 그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지 뭐예요. 그러니 그 부인은 기다릴 낙이 다 생긴 셈이죠! 또 다른 벗 하나는 자기라면 차라리 를루아르한테 맡기겠다고 우기더군요. 나야 형편없는 속물에 지나지 않으니, 어쩌면 를루아르가 마샤르보다 그림에 대해 더 잘 알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는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더구나 만 프랑씩이나 들여 그릴 바에는, 닮아야 한다는 것, 그것도 보기 좋게 닮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 말뜻을 아신다면요.”

모자 깃털의 우쭐함이며 명함집의 문장(紋章)이며 세탁소에서 장갑마다 안쪽에 잉크로 적어 넣은 자그마한 번호며, 게다가 스완에게 베르뒤랭 부부 이야기를 꺼내기가 껄끄러웠던 사정에서 비롯된 이 화제를 다 풀어놓고 나자, 코타르 부인은 차장이 자기를 내려 줄 보나파르트 거리 모퉁이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아채고서, 이런 말과는 다른 말을 넌지시 일러 주는 제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귀가 무척 가려우셨을 거예요.” 그녀가 넌지시 운을 뗐다. “우리가 베르뒤랭 부인과 함께 요트에 있는 동안에요. 우리는 노상 당신 얘기만 했거든요.”

스완은 진심으로 놀랐으니, 베르뒤랭 부부 앞에서는 제 이름이 결코 입에 오르는 일이 없으리라 여겼던 까닭이다.

“그거 봐요.” 코타르 부인이 말을 이었다. “드 크레시 부인도 거기 계셨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오데트는 어디 있든 얼마 못 가 꼭 당신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거든요. 그것도 흉을 보는 게 아니란 걸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아니, 못 믿으시겠다고요!” 스완이 미심쩍어하는 낯빛인 것을 알아채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제 확신의 진정함에 못 이겨, 그 말에 아무런 나쁜 뜻도 담지 않은 채, 오로지 두 벗을 잇는 애정을 두고 쓸 때의 그 뜻으로만 그 말을 써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 사람은 당신을 흠모한다니까요! 정말이지, 그 사람 앞에서 당신을 험담하려 들었다간 큰코다칠걸요! 무엇을 하다가도, 이를테면 그림 한 폭을 들여다보다가도 그 사람은 이러곤 했어요. ‘그이가 여기 있었더라면. 이게 진품인지 아닌지 가려낼 사람은 바로 그이인데. 그 일이라면 그이만 한 사람이 없죠.’ 그리고 온종일 이러는 거예요. ‘그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부디 일이라도 조금 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재주를 타고나고서 저리 게으르다니 딱한 노릇이지.’(고까워 마세요, 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이가 눈에 선하네. 우리를 생각하며 우리가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을 거야.’ 정말이지 그때 나는 참 곱다고 여긴 표현을 그 사람이 쓰더군요. 베르뒤랭 가 그 사람한테 물었어요. ‘천 리 밖에 있는 사람이 뭘 하는지 대체 어떻게 본단 말이오?’ 그러자 오데트가 대답했죠. ‘벗의 눈에 못 볼 것이 어디 있겠어요.’

“아니에요, 장담하는데, 그저 당신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당신한테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참된 벗이 하나 있는 셈이에요. 게다가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그런 벗은 오직 당신뿐이랍니다. 베르뒤랭 부인도 그들과 함께한 마지막 날에 몸소 나한테 그러셨는걸요(헤어지기 앞두면 다들 좀 더 스스럼없이 말하게 되잖아요). ‘오데트가 우리를 아끼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그 애한테 무슨 말을 한들 스완이 하는 말 한마디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지.’ 아이참, 저런, 차장이 나 내리라고 세우네요. 이렇게 당신하고 수다를 떠느라 하마터면 보나파르트 거리를 그냥 지나칠 뻔했지 뭐예요, 까맣게 잊고서…. 미안하지만 내 깃털이 똑바로 꽂혀 있는지 좀 봐 주시겠어요?”

그러고는 코타르 부인이 토시에서 흰 장갑을 낀 손을 빼내어 스완에게 내밀었는데, 그 손에서는 환승표 한 장과 더불어, 갓 세탁한 새끼염소 가죽의 좀 더 매캐한 향기에 뒤섞인, 합승마차 안을 감도는 사교계 생활의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리하여 스완은 그녀에게, 또 베르뒤랭 부인에게(그리고 오데트에게마저, 이제 그가 그녀를 향해 품은 감정에는 더 이상 아픔의 빛이 어리지 않았고, 이제는 사랑이라 이르기도 어려운 것이 되었으므로) 고마움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합승마차의 승강판에서, 그녀가 깃털을 곧추세우고 한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린 채, 다른 손으로는 우산과 명함집을 그러쥐어 그 문장이 드러나 보이게 하고, 토시를 앞세워 걸음마다 허공에 춤추게 하며 보나파르트 거리를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뒷모습을 애정 어린 눈길로 좇았다.

이 경우에는 제 남편이 그리했을 것보다도 더 슬기로운 의사였던 코타르 부인은, 스완이 오데트를 향해 품은, 이제는 스러져 가는 감정과 겨루게 하여 도리어 그것을 자극하고자, 그 감정들 틈에 좀 더 예사로운 다른 감정들을, 곧 고마움이며 우정의 감정을 접붙여 놓은 셈이었다. 그 감정들은 스완의 마음속에서 오데트를 다시금 좀 더 인간답게(다른 여자들과 좀 더 비슷하게, 다른 여자들도 그에게 똑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다) 보이게 할 터였고, 그녀가 마침내 그 옛 오데트로, 곧 어느 저녁 화가의 집에서 흥청거린 뒤 그를 집으로 데려가 포르슈빌과 함께 오랑자드를 마시게 했던, 흔들림 없는 애정으로 사랑받던 그 오데트, 스완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헤아렸던 그 오데트로 되돌아가는 것을 앞당길 터였다.

지난날 그는, 언젠가 오데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것을 곧잘 두려운 마음으로 떠올리며, 바짝 정신을 차리고 지켜보다가 사랑이 자기에게서 달아나기 시작한다 싶으면 곧장 그것을 단단히 붙들어 잡아 두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랑이 희미해지자, 그녀의 연인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도 덩달아 희미해졌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벗어나 버린 자아의 명령에 계속 따르면서 변할 수는, 곧 딴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인 까닭이다. 이따금 오데트의 정부였으리라 그가 짐작하던 사내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 신문에서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의 질투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희미했고, 그가 그토록 모질게 괴로워하던, 그러면서도 그토록 강렬하게 행복할 줄도 알았던 그 시절에서 아직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그리고 앞길의 우연들이 어쩌면 아직도 그로 하여금 남몰래 멀찍이서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이따금 언뜻 엿보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에게 일러 주는 만큼, 이 질투는 오히려 그에게 흐뭇한 설렘을 안겨 주었다. 마치 베네치아를 뒤로하고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픈 파리 사람에게, 마지막 모기 한 마리가 이탈리아와 여름이 아직 그리 멀지만은 않음을 일러 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가 이제 막 벗어나고 있는 삶의 이 특정한 시절을 두고, 그 안에 머물지는 못할지언정 아직 그럴 수 있을 때 그것을 끊김 없이 바라보기라도 하려고 애를 쓰면, 대개는 이미 너무 늦었음을 깨닫곤 했다. 그는 이제 막 사라지려는 풍경을 돌아보듯, 자신이 떠나온 그 사랑을 돌아보려 했으나, 온전한 이중성의 상태에 들어서서, 이미 지니기를 그친 어떤 감정의 생생한 광경을 스스로에게 펼쳐 보이기란 어찌나 어려운지, 이내 머릿속에 구름이 몰려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는 그 시도를 접고서, 코에서 안경을 벗어 닦곤 했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잠시 쉬는 편이 낫겠다고, 나중에도 얼마든지 시간이 있으리라고 이르며, 마치 저를 태운 채, 그가 느끼기에 점점 더 빠르게, 오래도록 살아온 고장 밖으로 실어 내는 기차 안에서 잠을 청하려 모자를 눈 위로 끌어 내리는 졸린 나그네처럼, 그 고장이 마지막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스르르 지나가 버리게 두지는 않으리라 다짐해 놓고서도, 그만큼의 호기심도 없이, 그만큼의 나른함에 잠겨 제자리 구석으로 파묻히곤 했다. 실로 바로 그 나그네처럼, 그가 국경을 넘어 다시 프랑스에 들어서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나듯, 스완도 마침 가까이에서 포르슈빌이 오데트의 정부였음을 증명해 주는 무언가와 맞닥뜨렸을 때, 그것이 자기에게 아무런 고통도 안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 사랑이 아득히 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기가 그 사랑에서 영영 벗어난 그 순간을 미리 알려 주는 아무런 예고도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오데트에게 처음 입 맞추기에 앞서, 그 입맞춤의 새로운 기억으로 달라지기 전에 그토록 오래 익숙했던 얼굴을 기억에 새겨 두려 애썼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는 그녀가 아직 존재하는 동안, 자기에게 사랑과 질투를 불러일으킨 그 오데트에게, 자기를 그토록 괴롭혔으나 이제는 다시 볼 일 없을 그 오데트에게 (적어도 마음속으로나마) 작별을 고할 수 있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빗나갔다. 그는 몇 주 뒤에 그녀를 다시 한번 보게 될 운명이었다. 그것은 그가 잠든 사이, 어느 꿈의 어스름 속에서였다. 그는 베르뒤랭 부인과 코타르 박사,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페즈를 쓴 젊은이, 화가, 오데트, 나폴레옹 III세,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와 더불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며 바다를 굽어보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는데, 길은 때로 아주 높이 솟았다가 때로 겨우 몇 자밖에 안 되게 낮아져, 일행은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했다. 내리막에 접어든 이들은 아직 오르막을 오르는 이들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낮빛마저 스러져 가, 이내 캄캄한 밤이 그들을 덮칠 듯싶었다. 이따금 파도가 벼랑에 부딪쳤고, 스완은 뺨에 얼음장 같은 물보라가 흩뿌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데트가 그에게 그것을 닦으라고 일렀으나 그는 닦을 수가 없었고, 잠옷 바람인 데다 그녀 곁에서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어둠 속이니 이것이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베르뒤랭 부인은 끝없이 이어지는 한순간 동안 놀란 눈길을 그에게 붙박은 채였고, 그동안 그는 그녀의 얼굴이 모양을 바꾸어 코가 점점 길어지고, 그 밑으로 짙은 콧수염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오데트를 살폈다. 그녀의 두 뺨은 자잘한 불꽃 같은 반점이 돋은 채 창백했고, 이목구비는 초췌하게 처지고 그늘에 둘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애정이 넘쳐흐르는, 금방이라도 눈물처럼 떨어져 나와 그의 얼굴 위로 흘러내릴 듯한 눈으로 그를 마주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를 어찌나 사랑하는지 당장 그녀를 데리고 달아나고 싶을 지경이었다. 문득 오데트가 손목을 돌려 자그마한 시계를 흘긋 보고는 말했다. “나 가 봐야 해요.” 그녀는 스완을 따로 불러 세우지도, 그날 저녁이나 이튿날 어디서 만나기로 하자는 말도 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격식 차린 태도로 작별을 고했다. 그는 감히 묻지 못했고,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뒤로 돌아 그녀 쪽을 보지도 못한 채, 베르뒤랭 부인의 무슨 물음에 미소로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했고, 그는 이제 자신이 오데트를 미워한다고 느꼈으며,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애틋하게 사랑하던 그 두 눈을 기꺼이 짓뭉개고, 그 생기 없는 두 뺨에 피가 배도록 할퀴고만 싶었다. 그는 계속 베르뒤랭 부인과 함께 오르막을 올랐으니, 다시 말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리막을 따라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오데트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었다. 한순간이 흘렀을 뿐인데 그녀가 그를 떠난 지 어느새 여러 시간이 지나 있었다. 화가가 스완에게, 나폴레옹 III세가 오데트가 사라진 직후 곧바로 종적을 감추었다고 넌지시 일렀다. “저 둘이 미리 짜 둔 게 뻔하죠.” 그가 덧붙였다. “벼랑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선, 남 보기에 이상할까 봐 함께 작별 인사는 안 하려던 겁니다. 저 여자는 저이의 정부예요.” 낯선 젊은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스완은 그를 달래 보려 애썼다. “따지고 보면 저 여자가 옳은 겁니다.” 그는 젊은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좀 더 편안해지라고 페즈를 벗겨 주며 말했다. “나도 저 여자한테 그렇게 하라고 여남은 번은 일러 줬는걸요. 뭘 그리 애태우시오? 저이야말로 저 여자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분명한데.” 이렇게 스완은 그 젊은이를 두고 스스로 이치를 따졌으니,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던 그 젊은이 또한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던 까닭이다. 어떤 소설가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인격을 두 인물에게 나누어 놓았던 것이다. 곧 꿈속에서 ‘일인칭’이었던 자와, 페즈를 뒤집어쓴 채 눈앞에 보이던 또 다른 자에게로.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