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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이름 ①

1권 · 고장의 이름: 이름

고장의 이름: 이름

잠 못 이루는 긴 밤이면 내 마음속에 가장 자주 떠오르곤 하던 방들 가운데, 발베크의 그랑 호텔 드 라 플라주에 있던 내 방만큼 콩브레의 방들과 철저히 다른 것은 없었다. 콩브레의 방들은 알갱이 지고 꽃가루처럼 흩날리며 먹음직스럽고 경건함이 배어든 대기의 티끌로 자욱하게 뒤덮여 있었지만, 리폴린을 칠한 발베크 방의 벽들은, 물이 푸르고 은은한 불꽃으로 빛나는 대야의 매끈한 안벽처럼, 더 맑고 순수하며 하늘빛이 감돌고 소금기 어린 한결 고운 공기를 담고 있었다. 이 호텔의 가구 배치를 맡은 바이에른 출신 실내장식가는 방마다 장식 방식을 달리했는데, 내가 묵게 된 방에는 세 벽면을 따라 유리문이 달린 나지막한 책장을 늘어세워 두었고, 그가 어쩌면 미처 셈에 넣지 못했을 자연의 법칙에 따라, 놓인 위치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하는 바다 풍경의 이런저런 조각이 그 유리에 비쳤으니, 벽은 바다 풍경의 띠 장식으로 둘러싸이고 오직 책장 자체의 반들거리는 마호가니만이 그 띠를 끊어 놓았다. 그 효과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방 전체가, 요즘 주택 박람회에서 볼 수 있는 견본 침실 같은 모습을 띠었다. 그런 방들은 결국 그 안에서 잠들게 될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해 주려고 설계자가 계산해 배치한 예술품으로 꾸며지며, 그 소재는 방을 계획한 집이 놓인 고장과 주위 환경에 얼마간 어울리도록 골라진다.

그렇지만 실제 발베크와 철저히 다르기로는, 폭풍우 치는 날이면 내가 자주 꿈꾸던 또 다른 발베크만 한 것도 없었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 날이면, 프랑수아즈는 나를 샹젤리제로 데려가면서 길가 쪽으로 너무 붙어 걷지 말라고, 떨어지는 슬레이트에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고, 신문에 실린 끔찍한 재난과 난파 소식을 한탄을 섞어 가며 들려주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바다의 폭풍우를 보고 싶었으니, 웅장한 볼거리로서라기보다 자연의 참된 생명이 한순간 드러나는 계시로서 그러했다. 아니, 나에게 웅장한 볼거리란 나를 즐겁게 하려고 인위로 꾸며 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바꿀 수 없는 것, 곧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위대한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뿐이었다. 나는 나 자신보다 더 진실하다고 믿는 것, 위대한 천재의 정신의 한 조각을 보여 주거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홀로 남겨졌을 때의 자연의 힘이나 우아함을 보여 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축음기에 홀로 재생된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어머니를 잃은 이를 결코 위로해 주지 못하듯, 폭풍우를 기계로 흉내 낸 것은 박람회의 조명 분수만큼이나 나를 시큰둥하게 만들었으리라. 게다가 그 폭풍우가 온전히 진짜이려면, 내가 그것을 지켜보는 해안이 자연 그대로의 해안이어야지, 시 당국이 최근에 쌓아 올린 둑이어서는 안 되었다. 더구나 자연은, 그것이 내 안에 불러일으키는 온갖 감정으로 하여, 인간의 기계 발명품과는 세상에서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연에 인간의 흔적이 덜 찍혀 있을수록, 그것은 내 마음이 부풀어 오를 자리를 더 많이 내주었다. 그리고 마침 나는, 르그랑댕이 우리에게 일러 준 발베크라는 이름을, “한 해의 여섯 달을 안개와, 파도가 날리는 물보라의 수의로 감싼 채, 숱한 난파로 이름난 저 음산한 해안” 한복판의 바닷가 고장 이름으로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발밑으로,” 그는 나에게 말했다, “피니스테르에서보다도 훨씬 더 (이제 그 위로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구 뼈대에서 가장 오래된 그 뼈를 바꿔 놓지는 못하지) 자네가 프랑스의, 유럽의, 구세계의 땅끝에 정말로 서 있음을 느끼게 되네. 그리고 그곳은 어부들의 마지막 야영지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살아온 어부들과 꼭 같이, 바다 안개와 밤 그림자의 영원한 왕국을 마주하고 있지.” 콩브레에서 어느 날, 나는 가장 사나운 폭풍우를 보기에 가장 좋은 지점이 어디인지 그에게서 알아내고 싶어, 스완 앞에서 이 해안, 이 발베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발베크라면 내가 잘 알고말고! 12세기와 13세기에 지어져 아직 절반은 로마네스크풍인 발베크 성당은, 아마 우리 노르만 고딕의 가장 진기한 예일 걸세. 어찌나 유별난지 페르시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지.” 그때까지 나에게 그 고장은, 태고의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지질학의 위대한 현상들과 동시대에 머물러 있고, 대양이나 큰곰자리만큼이나 인류 역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 그곳의 거친 어부 무리에게는 그들이 잡는 고래에게나 마찬가지로 중세라는 것이 없었던 곳으로만 여겨졌었다. 그러던 것이 문득 세기의 질서 안에 자리를 잡고, 로마네스크 시대의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며, 극지방에서 봄이 돌아오면 영원한 눈밭에 별처럼 흩뿌려지는 가냘프지만 억센 식물들처럼, 정해진 시각에 고딕의 세잎 장식이 저 거친 바위들까지 물들이러 왔음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리고 고딕 예술이 그 고장과 사람들에게, 달리는 갖지 못했을 하나의 자리매김을 가져다주었다면, 그들 또한 그 대가로 고딕 예술에 하나의 자리매김을 부여했다. 나는 그 어부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지옥의 물가 곶 위에, 죽음의 절벽 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그들이 그곳에서 시도했던 소심하고 남들이 짐작조차 못 한 사교의 첫걸음을 마음속에 그려 보려 애썼다. 그리고 고딕 예술은, 그때까지 내가 늘 도시들 속에 있는 것으로만 상상해 오던 그것을 도시에서 떼어 내어, 어느 한 사례에서 야생의 바위 암초 위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끝내 뾰족한 첨탑으로 피어났는지 볼 수 있게 되자, 나에게 한결 더 살아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발베크에서 가장 이름난 조각상들, 곧 텁수룩하고 뭉툭한 얼굴의 사도들과 정문의 성모상을 본뜬 복제품을 보러 갔고, 언젠가 내가 몸소, 소금 안개라는 영원한 배경을 등지고 그것들이 단단한 형체를 갖추는 것을 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뻐서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그 뒤로, 정겹고 사나운 2월 밤이면, 바람은, 내 침실 굴뚝 못지않게 세차게 내 마음을 뒤흔들며 그 안에 발베크로 떠나려는 계획을 불어넣어, 고딕 건축을 향한 나의 열망과 바다 위 폭풍우를 향한 열망을 하나로 뒤섞었다.

나는 당장 이튿날에라도, 그 착하고 너그러운 1시 22분 기차를 타고 싶었다. 철도 회사의 게시판이나 순환 여행 광고에서 그 출발 시각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 시각은 나에게 오후마다 어느 정확한 지점에 가장 매혹적인 홈을, 신비로운 표시를 새기는 듯했고, 거기서부터 비켜난 시간들은 물론 여전히 저녁으로, 이튿날 아침으로 이어지지만, 그 저녁과 아침을 파리가 아니라 기차가 지나며 고를 수 있게 해 주는 저 여러 고장 가운데 하나에서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기차는 바이외에, 쿠탕스에, 비트레에, 케스탕베르에, 퐁토르송에, 발베크에, 라니옹에, 랑발에, 베노데에, 퐁타방에, 캉페를레에 섰고, 나에게 내미는 이름들을 그득 싣고서 당당히 나아갔으니, 그 모든 이름 가운데 어느 하나 희생시킬 수 없어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기차를 기다릴 것도 없이, 부모님이 허락만 한다면, 나는 서둘러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바로 그날 저녁 파리를 떠나, 성난 바다 위로 서쪽을 향해 새벽이 번져 갈 무렵 발베크에 닿아, 몰아치는 물보라를 피해 그 페르시아풍 성당으로 몸을 숨길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부활절 휴가가 다가오자, 부모님이 이번만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그 휴가를 보내게 해 주겠노라 약속하니, 보라!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던 저 폭풍우의 꿈들, 곧 사방에서 밀려들어 점점 더 높이 솟구치는 파도만을, 절벽처럼 험하고 가파른 성당 곁, 그 종탑에서 바닷새가 울부짖는 더없이 거친 해안만을 보고 싶어 하던 그 꿈들이 있던 자리에, 홀연 그 꿈들을 지우고 그 매력을 앗아 가며, 정반대되는 것이기에 그 효과를 약하게 할 뿐이라 하여 그것들을 밀어내면서, 정반대의 꿈이 내 안에 들어섰다. 더없이 알록달록한 봄의 꿈, 그러나 아직 겨울 서리의 온갖 바늘 끝으로 찌르는 콩브레의 봄이 아니라, 이미 피에솔레의 초원을 백합과 아네모네로 뒤덮고,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서처럼 피렌체에 눈부신 황금빛 배경을 드리우는 그런 봄이었다. 그 순간부터 오직 햇빛과 향기와 빛깔만이 나에게 값어치 있게 여겨졌다. 이렇게 이미지가 뒤바뀌면서 내 욕망의 방향이 돌아섰고, 음악에서 이따금 일어나는 것처럼 돌연하게, 내 감수성의 음조가 통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낱 대기의 변화만으로도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내 안에 그 조바꿈을 불러일으키기에 넉넉했다. 우리는 흔히 한 계절 속에서, 다른 계절에서 길을 잃고 흘러든 어느 하루를 만나는데, 그 하루는 우리를 그 다른 계절 속에 살게 하고, 그 계절 특유의 즐거움을 곧바로 우리 앞에 불러내어 그리워하게 하며, 우리가 짜고 있던 꿈들을 가로막아, 제 차례도 아니게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다른 장에서 뜯겨 나온 이 한 장을 행복의 뒤섞인 달력 속에 끼워 넣는다. 그러나 이내 이런 일이 일어났다. 과학이 그것을 다스려 마음대로 만들어 내고, 우연의 후견에서 벗어나 그 동의와도 무관하게 그 출현을 명령할 힘을 우리 손에 쥐여 주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의 안락이나 건강이 그저 우연하고도 너무나 보잘것없는 이득밖에 끌어내지 못하는 저 자연 현상들처럼, 대서양과 이탈리아를 향한 이 꿈들의 생성도 더는 온전히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만 매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것들을 되살리려면 나는 그저 그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부르기만 하면 되었다. 발베크, 베네치아, 피렌체. 그 음절들 속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고장들이 내 안에 불러일으킨 온갖 그리움이 차츰 쌓여 있었으니. 봄에도, 책 속에서 발베크라는 이름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바다의 폭풍우와 노르만 고딕을 향한 열망을 내 안에 일깨우기에 넉넉했고, 폭풍우 치는 날에도 피렌체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햇빛을, 백합을, 도제 궁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를 향한 열망을 일깨웠다.

그러나 이 도시들의 이름이 이렇듯 내가 그것들에 대해 지어낸 이미지를 영영 빨아들였다면, 그것은 오직 그 이미지를 변형시킴으로써, 그 이미지가 내 안에 되살아나는 것을 이름 저마다의 특별한 법칙에 종속시킴으로써였다. 그리하여 이름들은 그 이미지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으되, 동시에 노르망디나 토스카나의 도시들이 실제로 그러할 수 있는 어떤 모습과도 더 동떨어지게 만들었고, 내 상상이 제멋대로 누리는 기쁨을 키움으로써, 여행길에 오를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환멸을 한층 더 키웠다. 이름들은 내가 지표면의 어떤 지점들에 대해 품은 관념을 부풀려, 그것들을 더 특별하게, 따라서 더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도시나 풍경이나 유서 깊은 건물을, 모두에게 공통된 어떤 재료에서 여기저기 오려 낸 더 예쁘거나 덜 예쁜 그림쯤으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저마다를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미지의 것, 내 영혼이 목말라하는 것, 그것을 앎으로써 내 영혼이 이로움을 얻을 그런 것으로 바라보았다. 이름으로 불림으로써 그것들이 띠게 되는 성격은 얼마나 한층 더 개별적이었던가. 그 이름들은 오직 그것들만을 위한 이름, 사람이 지니는 것과 같은 고유한 이름이었다. 낱말은 우리에게 사물의 작고 또렷하며 평범한 그림을, 목수의 작업대나 새나 개미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교실 벽에 걸어 두는 그림 같은 것을 내보인다. 그런 그림은 같은 부류의 다른 모든 것을 대표하는 전형으로 골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름은, 우리가 사람처럼 개별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진 사람과 도시의 이름은, 우리에게 흐릿한 그림 하나를 내보인다. 그 그림은 이름에서, 그 울림의 밝기나 어둠에서, 그것이 한결같이 칠해진 빛깔을 끌어내는데, 마치 저 벽보들처럼, 온통 파랗거나 온통 빨간 벽보에서는, 복제 공정이 강요하는 제약 탓이든 도안자의 변덕 탓이든, 하늘과 바다뿐 아니라 배와 성당과 거리의 사람들까지 파랗거나 빨간 것과 같다. 내가 가장 가 보고 싶어 하던 도시들 가운데 하나인 파르마라는 이름은, 수도원을 읽고 난 뒤로 나에게 야무지고 반드르르하며 보랏빛이 감돌고 부드러운 것으로 여겨졌으니, 누가 파르마의 이러이러한 집, 내가 묵게 될 집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나에게 야무지고 반드르르하며 보랏빛이 감돌고 부드러운, 이탈리아의 다른 어떤 도시의 집과도 아무 상관없는 거처에서 살게 되리라는 즐거운 상상을 안겨 주는 셈이었다. 나는 그 집을 오직 파르마라는 이름의 저 묵직한 음절, 한 줄기 바람도 일지 않는 그 음절과, 내가 그 이름에 덧입힌 스탕달풍의 감미로움과 제비꽃의 반사된 빛깔의 힘을 빌려서만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렌체를 떠올릴 때면, 그것은 기적처럼 방부 처리되어 꽃 같은 도시였으니, 백합의 도시라 불리고 그 대성당은 꽃의 성모라 불렸기 때문이다. 발베크로 말하자면, 그것은 저 옛 노르만 도기가 빚어진 흙의 빛깔을 아직 간직하고 있듯, 오래전에 사라진 어떤 관습을, 어떤 봉건적 권리를, 어느 고장의 옛 형편을, 이제는 쓰이지 않는 어떤 발음법을 아직도 그려 보이는 그런 이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발음법이 그 어울리지 않는 음절들을 빚어 하나로 짝지어 놓았으니, 나는 그곳에 이르면 곧바로, 도착한 나에게 카페오레를 따라 주며 교회 앞의 사슬 풀린 사나운 바다를 구경시키러 데려가 줄 여관 주인의 입에서조차 그 발음법을 듣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여관 주인에게 나는 옛 로망스에 나오는 어떤 인물의, 따지기 좋아하고 근엄하며 중세풍인 면모를 입혀 주었다.

내 건강이 뚜렷이 나아져, 부모님이 나에게 발베크에 가서 머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의 건축과 풍경을 알아 두기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상상 속에서 그토록 자주 기어올랐던 그 1시 22분 기차에 오르는 것을 허락해 주었더라면, 나는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기차를 멈추고 내리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그 도시들을 견주고 비교해 본들, 서로 바꿔 놓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르기 어렵듯, 어떻게 하나를 고를 수 있었겠는가. 녹슨 레이스로 엮은 고귀한 관을 높다랗게 이고, 그 맨 꼭대기가 둘째 음절의 오래된 황금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이외, 날카로운 악상테귀가 그 옛 유리창에 나무 마름모꼴 살을 지른 비트레, 흰빛이 달걀 껍데기의 노랑에서 진줏빛 회색에까지 걸쳐 있는 부드러운 랑발, 넉넉하고 누르스름한 마지막 자음들이 버터로 빚은 탑을 씌운 노르만 대성당 쿠탕스, 마을 거리의 고요 속에 마차 바퀴에 앉은 파리가 붕붕대는 소리가 울리는 라니옹, 케스탕베르와 퐁토르송, 우스꽝스러울 만큼 어수룩하고 단순하여, 물 넉넉하고 시정 어린 그 고장으로 가는 길에 흰 깃털과 노란 부리를 흩뿌려 놓은 듯한 그 이름들, 겨우 닻을 내린 듯한 이름이 제 해초 덤불 속으로 강물을 끌어들이려 안간힘 쓰는 듯한 베노데, 운하의 푸르스름한 물에 파르르 비치는, 사뿐히 얹힌 코이프 날개의 눈같이 희고 장밋빛 도는 날갯짓 같은 퐁타방, 이보다 더 단단히 매인 채, 중세 이래로 저 재잘대는 실개천들 사이에서, 잿빛 바탕 위에 진주알을 꿰듯, 창문에 낀 거미줄을 통과한 햇살이 무디어진 은빛의 뭉툭한 점들로 바뀌어 그리는 무늬처럼 흐르는 캉페를레, 그 사이에서 대체 어떻게 하나를 고른단 말인가?

이 이미지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도 거짓이었다. 곧 그것들은 어쩔 수 없이 크게 단순화되어 있었다. 아마도 내 상상이 열망하고 내 감각이 불완전하게, 아무런 즉각적 즐거움도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던 그 대상을, 나는 이름의 안전한 보관에 맡겨 두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거기에 꿈의 저장고를 쌓아 둔 까닭에 그 이름들이 이제 내 욕망을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 자체는 그리 많은 것을 품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이름 하나하나에 그 도시의 주요한 볼거리 두셋을, 사이도 칸막이도 없이 나란히 놓아두는 것뿐이었다. 발베크라는 이름 속에서 나는, 바닷가에서 파는 펜대에 박힌 확대경 속에서처럼, 페르시아풍으로 지어진 성당 둘레로 밀려드는 파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이미지들의 어쩔 수 없는 단순함이야말로 그것들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해 아버지가 우리가 부활절 휴가를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보내기로 정했을 때, 나는 피렌체라는 이름 속에 흔히 도시를 이루는 요소들을 들여놓을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조토의 정수라고 내가 여기던 것이 어떤 봄날의 정경들에 배어들어 하나의 초자연적 도시가 떠오르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름은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에서도 그리 멀리 뻗어 나가게 할 수 없는 법이라, 조토의 그림들 자체가 한 사람을 서로 다른 두 순간에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여기서는 침상에 누워 있고 저기서는 막 말에 오르려는 모습으로 보여 주듯, 피렌체라는 이름은 두 칸으로 나뉘었다. 한 칸에서는, 건축된 닫집 아래, 아침 햇살의 장막이 반쯤 드리워져 먼지 낀 채 비스듬히 차츰 번져 가는 프레스코 벽화를 바라보았고, 다른 한 칸에서는 (나는 이름을 다가갈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내가 곧 뛰어들려는 실재하고 감싸는 실체로 여겼으므로, 아직 살지 않은 삶, 온전하고 순수한 채 내가 그 안에 가두어 둔 삶이, 가장 물질적인 즐거움에도, 가장 소박한 정경에도, 초기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것들이 지니는 것과 같은 매력을 부여했다), 나는, 나를 위해 과일과 키안티 술병이 차려진 식탁에 되도록 빨리 이르려고, 노랑수선화와 수선화와 아네모네가 수북이 쌓인 폰테베키오를 가로질러 잰걸음으로 나아갔다. (내가 아직 파리에 있었는데도) 내가 본 것은 바로 그것이었지, 실제로 내 둘레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가장 소박하고 가장 사실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장들은 어느 순간에나 우리의 참된 삶에서, 우리가 마침 있게 된 고장보다 훨씬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아마도 그때 내가 “피렌체로, 파르마로, 피사로, 베네치아로 간다”는 말을 할 때 내 마음속에 있던 것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내가 본 것이 결코 도시가 아니라, 내가 아는 어떤 것과도 다른 무언가, 늦겨울 오후가 줄줄이 이어지는 것으로만 온 생을 보낸 인류에게 봄날 아침이 그러하리만큼 감미로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이임을 깨달았으리라. 비현실적이고 고정되어 늘 한결같은 이 이미지들은, 내 모든 밤과 낮을 채우며, 내 삶의 이 시기를 그 이전 시기들과 구별지어 주었으니 (밖에서만, 다시 말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관찰자라면 이전 시기와 쉽사리 혼동했을 테지만), 마치 오페라에서 새 선율 하나가, 대본만 읽었다면, 하물며 극장 밖에 남아 흘러가는 분초만 헤아렸다면 결코 짐작조차 못 했을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오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한낱 양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삶에서 나날은 모두 같지 않다. 하루의 끝에 이르기 위해, 나처럼 신경이 좀 예민한 사람은, 자동차가 그러하듯 서로 다른 “속력”을 쓴다. 넘어가는 데 한없이 오래 걸리는 산길 같고 험한 날들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이라 노래를 부르며 전속력으로 지날 수 있는 날들도 있다. 이 한 달 동안, 나는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의 이 환영들을, 마치 곡조를 되뇌듯, 그러나 결코 흡족하지 못한 채 애써 거듭 곱씹었고, 그것들이 내 안에 불러일으키는 욕망은 거기서, 마치 사랑이기라도 한 듯,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기라도 한 듯 깊이 개인적인 무언가를 끌어내어 간직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것들이 나 자신과는 무관한 어떤 실재에 대응한다는 믿음을 한시도 놓지 않았고, 그것들은 나에게, 신앙의 원시 시대에 낙원에 들어서기 전날 밤의 그리스도교인이 품었음 직한 그토록 찬란한 희망을 느끼게 해 주었다. 더구나, 내가 내 감각 기관으로 바라보고 만지고 싶어 하는 것이, 실은 내 꿈의 마력이 빚어냈을 뿐 내 감각으로는 전혀 지각된 적 없는 것, 그렇기에 오히려 감각에는 더욱 구미가 당기고 감각이 아는 어떤 것과도 더 다른 것이라는 모순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바로 그 점이 나에게 이 환영들의 실재성을 상기시켰고, 내 욕망이 채워지리라는 약속을 넌지시 내비치는 듯하여 내 욕망을 한층 더 타오르게 했다. 그리고 내 들뜸의 원동력이 미적 향유를 향한 갈망이긴 했어도, 미학 책보다 여행 안내서가 더 그것을 부추겼고, 여행 안내서보다도 더욱, 기차 시간표가 그러했다. 나를 흔든 것은, 내 상상 속에서 그토록 가깝고도 다다를 수 없는 이 피렌체가, 내 안에서 그것을 나와 갈라놓는 그 간격은 내가 건널 수 없는 것일지언정, 평범하고 지상에 놓인 길을 택하기만 한다면 에움길로, 우회로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베네치아는 조르조네의 화파요, 티치아노의 고장이며, 중세 주택 건축의 가장 완벽한 박물관”이라고 앞으로 볼 것에 특별한 값어치를 매기며 되뇌면,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어느 산책길에, 여러 날 이른 봄이 이어지다 콩브레에서 성주간이면 어김없이 우리를 맞이하던 날씨처럼 다시 겨울로 되돌아간 탓에, 날씨 때문에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다가, 큰길가의 밤나무들이, 물줄기처럼 스며드는 얼어붙은 대기에 잠겼으면서도, 그럼에도 시간 맞춰 온 손님답게, 잔치를 위해 이미 차려입고 어떤 낙담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추위의 헛된 힘이 그 꾸준한 자람을 막을 수는 있어도 결국 억누르지는 못하는 그 억누를 길 없는 푸른 잎을, 얼어붙은 덩어리 속에서 빚고 새기고 굽이지게 하기 시작한 것을 보았을 때, 나는 한층 더 행복했다. 나는 폰테베키오에는 이미 히아신스와 아네모네가 그득 쌓여 있고, 봄 햇살이 이미 대운하의 물결을 그토록 어스레한 하늘빛으로, 그토록 눈부신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여, 그 물결이 티치아노의 어느 그림 발치에 부딪혀 부서질 때면 그 빛깔의 풍요로움에서 그림과 겨룰 만하리라고 그려 보았다. 아버지가 청우계를 두드리고 추위를 투덜대는 틈틈이 어느 기차가 가장 좋은지 알아보기 시작하고, 점심을 든 뒤 석탄 그을음이 낀 실험실로, 제 둘레의 온갖 것을 통째로 탈바꿈시키기로 나선 마법사의 골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튿날 아침 대리석과 황금의 도시에서, “그 성벽의 축조는 벽옥이요 성벽의 주춧돌은 에메랄드”인 도시에서 깨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더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도시와 백합의 도시는, 내가 내 상상 앞에 마음대로 세워 놓을 수 있는 한낱 인공의 무대가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가로질러야 할 파리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지표면의 정해진 자리에,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그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온전히 실재했다. 아버지가 “자, 20일부터 29일까지 베네치아에 머물다가 부활절 아침에 피렌체에 닿으면 되겠구나”라고 말하자, 그것들은 더욱더 실재하는 것이 되었다. 그 말은 그것들을 이제 공간이라는 추상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여행을 하나만이 아니라 여럿을 한꺼번에 놓아두는 저 상상의 시간에서도 끌어냈으니, 그런 여행들은 한낱 가능성에 지나지 않기에 우리를 그리 힘들게 하지 않으며, 그 시간은 어찌나 잘 재구성되는지 한 도시에서 이미 써 버린 뒤에도 다른 도시에서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도시들에, 그 위에서 한 일이 참됨을 증명하는 저 실제 달력의 날들 얼마를 바쳤으니, 그 유일한 날들은 쓰임으로써 소진되어 돌아오지 않으며, 다른 곳에서 살아 버린 뒤에는 이곳에서 다시 살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세탁부가 잉크로 얼룩진 내 흰 조끼를 되가져오기로 한 월요일로 시작되는 그 주를 향해, 두 여왕 같은 도시가 아직 존재하지 않던 저 관념의 시간에서 벗어나 나타나는 소임을 서둘러 다하려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고, 나는 머지않아 더없이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기하학으로 그 도시들의 둥근 지붕과 탑들을 내 삶의 한 페이지에 새겨 넣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아직 행복의 지고한 정상에 이르는 길목에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나는 그 정상에 다다랐다. (그제야 비로소 나에게 계시가 터져 나왔으니, 조르조네의 프레스코가 반사하는 빛으로 붉게 물든 그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다음 주 부활절 전야에 베네치아를 거닐 이는, 그토록 여러 재촉에도 내가 계속 상상해 오던 것과 달리, “핏빛 망토 자락 아래 청동으로 번뜩이는 갑옷을 두른, 바다처럼 장엄하고 무서운” 사내들이 아니라, 나에게 빌려준 마르코 성당의 확대 사진 속에서, 촬영자가 중산모를 쓴 채 현관 앞에 담아 놓은 그 자그마한 인물,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대운하는 아직 꽤 추울 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겨울 외투와 두꺼운 양복을 챙기는 걸 잊지 마라.” 이 말에 나는 일종의 황홀경에 들려 올려졌다. 그때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을, 나는 정말로 저 “인도양의 암초 같은 자수정 바위들” 사이로 파고들고 있음을 느꼈다. 실제 내 힘을 훌쩍 넘어서는 지고한 근육의 안간힘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껍데기를 벗듯 나를 둘러싼 내 방의 공기를 벗어 던지고, 그 자리를 같은 양의 베네치아 공기로, 내 상상이 베네치아라는 이름 속에 감춰 둔 꿈들의 대기만큼이나 이루 말할 수 없고 유별난 그 바다 대기로 갈아 놓았다. 내 안에서 기적 같은 육신 벗기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목이 몹시 아플 때 느끼는 그 어렴풋한 구역질을 곧바로 동반했고, 사람들은 나를 자리에 눕혀야 했는데, 열이 어찌나 끈질기던지 의사는 그해 봄 피렌체와 베네치아 여행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모님께 못 박았을 뿐 아니라, 내가 완전히 회복한 뒤에도 적어도 한 해 동안은 여행할 생각을 아예 접고, 나를 흥분시킬 만한 모든 것에서 멀리해야 한다고 일렀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