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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이름 ②

1권 · 고장의 이름: 이름

그리고 아뿔싸, 의사는 내가 극장에 가서 라 베르마를 보는 것도 더없이 단호히 금했다. 베르고트가 그 천재를 극찬하던 그 숭고한 여배우는, 어쩌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나에게 알려 줌으로써,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가지 못한 것, 발베크에 가지 못하는 것을 나에게 위로해 주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부모님은 날마다 나를, 내가 지치지 않도록 돌봐 줄 사람에게 딸려 샹젤리제로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수아즈로, 레오니 고모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 집에 들어와 일하고 있었다. 샹젤리제에 가는 것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베르고트가 자기 책 어딘가에 그곳을 묘사해 놓기라도 했다면, 상상 속에 먼저 그 모상이 스며든 다른 숱한 것들처럼, 나는 틀림없이 그곳을 보고 알고 싶어 했으리라. 그것이 사물을 따뜻이 데우고, 살아 있게 하고, 개성을 주었으며, 그러면 나는 그 짝을 현실에서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 공원에는 내 꿈에 매달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목마 옆의 늘 가던 자리가 지겨워지자, 프랑수아즈는 나를, 보리사탕 장수 여인들의 자그마한 보루가 일정한 간격으로 지키는 경계 너머, 이웃하되 낯선 저 고장으로 나들이 삼아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었고 염소 마차가 지나갔다. 이윽고 그녀는 월계수 덤불을 등지고 놓인 의자에 제 짐을 내려놓으러 가 버렸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미 햇볕에 바랜, 바짝 깎은 성긴 풀이 덮인 널따란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는데, 그 끝에는 분수에서 솟아오른 조각상이 우뚝했고, 그 앞에서 불그스름한 머리의 어린 소녀가 셔틀콕을 치며 놀고 있었다. 그때 길 쪽에서, 망토를 걸치며 제 채를 챙기던 또 다른 어린 소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잘 가, 질베르트, 난 이제 집에 갈게. 잊지 마, 우리 오늘 저녁 식사 끝나고 너희 집에 갈 거야.” 질베르트라는 이름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그것이 이름 붙인 그 애를 더욱더 힘차게 불러냈으니, 그 이름은 사람을 그 부재중에 두고 말하듯 단지 그 애를 가리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애에게 곧바로 건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이름은, 말하자면 작동 중인 채로, 그 궤적의 곡선을 따라 표적에 다가갈수록 커지는 힘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그 뒤에, 나는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름이 건네진 그 애에 대한 앎과 인상을, 나의 것이 아니라 그 애를 부른 친구의 것인 그 앎을 실어 날랐다. 곧 그 친구가 그 말을 내뱉는 동안 다소 생생히 되새기고 기억 속에 지니고 있던 온갖 것, 그들의 나날의 친밀함, 서로 오가던 방문, 나에게는 도무지 다가갈 수 없고, 거꾸로 이 행복한 소녀에게는 그토록 익숙하고 순한 것이었기에 더욱더 다다를 수 없고 더욱더 가슴 아픈 저 미지의 삶을 실어 날랐다. 그 소녀는 내가 그 겉면조차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그 전갈을 내 곁으로 스쳐 지나가게 두었고, 가벼운 외침으로 그것을 허공에 던졌다. 그 전갈이 스완 의 삶의 어떤 보이지 않는 지점들을, 앞으로 다가올 저녁, 곧 식사 뒤 그 애의 집에서 펼쳐질 저녁의 어떤 지점들을 정확히 건드려 증류해 낸 감미로운 향유를 대기 속에 떠다니게 하면서. 그 전갈은 아이들과 그 유모들 한복판을 지나는 천상의 행로에서, 푸생의 어느 정원 위로 감기어, 오페라의 구름처럼 병거와 말들로 그득한 채 신들의 삶의 어떤 현현을 오밀조밀 비추는 구름 같은, 절묘하게 물든 작은 구름 한 조각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헝클어진 풀밭 위, 그 애가 서 있던 자리에 (그것은 시든 잔디 한 자락인 동시에, 모자에 파란 깃털을 꽂은 유모가 불러 갈 때까지 셔틀콕을 계속 쳐올리고 받아 내던 그 어여쁜 놀이꾼의 오후의 한순간이기도 했다) 헬리오트로프 빛깔의 경이로운 작은 빛 띠를 드리웠으니, 그것은 잔디밭 위에 카펫처럼 펼쳐져, 나는 그 위를 아쉬운 발걸음으로, 향수에 젖어 불경스레 오가기를 그칠 줄 몰랐다. 그동안 프랑수아즈는 “어서, 외투 단추 좀 채워라, 자, 어서 가자!” 하고 소리쳤고,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말씨가 얼마나 상스러운지, 그리고 아뿔싸, 그녀의 모자에는 파란 깃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만, 그 애가 샹젤리제에 다시 올까? 이튿날 그 애는 없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들에는 그 애를 보았다. 나는 그 애가 친구들과 노는 자리 둘레를 맴도는 데 온 시간을 쏟았고, 그러다 한번은, 그들이 “죄수 잡기” 놀이 편을 짜는 데 사람이 모자라자, 그 애가 친구 하나를 보내 내가 자기네 편을 채워 줄 마음이 있는지 물어 왔으며, 그날부터 나는 그 애가 올 때마다 함께 놀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날마다 있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그 애가 수업 때문에, 교리문답 때문에, 오찬 모임 때문에, 요컨대 나의 삶과는 동떨어진 그 온 삶 때문에 오지 못했는데, 그 삶은 질베르트라는 이름으로 응축되어 단 두 번, 콩브레 근처 산사나무 오솔길에서, 그리고 샹젤리제의 풀밭에서, 그토록 가슴 아프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내가 느낀 그 삶이었다. 그런 날이면 그 애는 미리, 우리가 자기를 보지 못할 거라고 일러 두곤 했다. 수업 때문이라면 그 애는 “너무 성가셔, 내일은 못 올 거야. 너희끼리 여기서 실컷 놀겠구나” 하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고, 그것이 얼마간 나를 위로해 주었다. 반면에 그 애가 어느 모임에 초대받았는데 나는 그것을 모른 채 우리와 놀러 오느냐고 물으면, 그 애는 “제발 안 왔으면 좋겠어! 엄마가 친구네 집에 가게 해 주면 좋겠어” 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그런 날에는 적어도 내가 그 애를 못 보리라는 것을 알기라도 했지만, 다른 날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애 어머니가 그 애를 데리고 마차 나들이 같은 것을 나갔고, 이튿날 그 애는 “아, 맞아! 엄마랑 나갔었어” 하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지 남에게는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또 날씨가 궂은 날이면 그 애의 유모가, 제가 비를 맞을까 봐 겁이 나서 질베르트를 샹젤리제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이 미덥지 못한 날이면, 나는 이른 아침부터 온갖 조짐을 살피며 하늘에 캐묻기를 그치지 않았다. 맞은편 집 부인이 창가 바로 안쪽에서 모자를 쓰는 것이 보이면,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저 부인이 외출하는구나. 그러니 나가도 되는 날씨인 게 틀림없어. 질베르트라고 저 부인처럼 못 할 게 뭐 있겠어?” 그러나 날은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다시 갤지도 모른다고, 햇살 한 줄기면 넉넉하겠지만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비가 온다면 샹젤리제에 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하여 아침 식사 때부터 나의 불안한 눈길은 미덥지 못한 흐린 하늘을 떠나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창밖 발코니는 잿빛이었다. 문득 나는 그 침울한 돌 위에서, 덜 부정적인 빛깔을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으나, 덜 부정적인 빛깔을 향한 안간힘 같은 것을, 제 빛을 뿜어내려 애쓰는 머뭇거리는 햇살의 고동을 느꼈다. 잠시 뒤 발코니는 새벽녘 고인 물처럼 창백하고 환해졌고, 난간 쇠 세공에서 드리운 천 개의 그림자가 그 위에 내려앉았다. 한 줄기 바람이 그것들을 흩어 놓았다. 돌은 다시 어두워졌으나, 길든 짐승처럼 그림자들은 되돌아왔다. 그것들은 어느새 알아차릴 수 없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음악에서 서곡 끝머리에 한 음을 극한의 포르티시모까지 몰고 가며 그 사이 온갖 단계를 빠르게 지나게 하는 저 끊임없는 크레셴도처럼, 나는 그 그림자들이 갠 날의 저 고정되고 변치 않는 황금빛에 다다르는 것을 보았으니, 그 황금빛 위에 난간 연철의 날카롭게 벼려진 그림자가 변덕스러운 초목처럼 검게 윤곽 지어졌고, 그 가장 자잘한 세부까지 그려 낸 섬세함은 마치 공들인 정성을, 예술가의 흡족함을 드러내는 듯했다. 게다가 그 어둡고도 행복한 덩어리의 고즈넉함 속에는 어찌나 도드라진 양감이, 어찌나 보드라운 광택이 감돌던지, 저 햇빛의 호수 위에 비쳐 드리운 크고 잎 무성한 그림자들은 참으로 제가 행복과 마음의 평안의 약속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듯했다.

짧고 스러지는 담쟁이, 기어오르는 덧없는 초목, 벽을 타거나 창을 꾸미는 온갖 것 가운데 숱한 이에게 가장 빛깔 없고 가장 서글픈 것, 그러나 나에게는, 어쩌면 이미 샹젤리제에 와 있어 내가 다다르는 대로 “당장 시작하자. 넌 우리 편이야” 하고 나를 맞아 줄 질베르트의 존재의 그림자와도 같이 우리 발코니에 나타난 그날부터,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것. 가냘프고, 한 줄기 숨결에 쓸려 가면서도, 동시에 계절이 아니라 그 시각과 어우러진 것. 그날이 부정하거나 이뤄 줄 그 즉각적 즐거움의, 그리하여 무엇보다 으뜸가는 즉각적 즐거움, 곧 사랑하고 사랑받는 즐거움의 약속. 이끼보다도 더 보드랍고 더 따스하게 돌 위에 얹힌 것. 살아 있어, 햇살 한 줄기만으로도 그 태어남에, 그리고 겨울 한복판에서마저 기쁨의 태어남에 넉넉한 것.

그리고 다른 모든 초목이 사라진 날들, 늙은 나무들의 줄기를 감싼 고운 초록 가죽 저고리가 눈 아래 파묻힌 날들, 눈이 그친 뒤에도 하늘이 아직 너무 흐려 질베르트가 밖에 나서리라 바랄 수 없던 날들에는, 문득, 어머니가 “봐라, 이제 날이 아주 갰구나. 그래도 한번 샹젤리제에 가 보는 게 어떻겠니” 하고 말하게끔 부추기며, 발코니를 감싼 눈의 망토 위로 해가 나타나 황금빛 솔기를 꿰매며 짙은 그림자의 수 조각을 수놓았다. 그런 날 우리는 거기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막 떠나려던 외로운 소녀 하나가 질베르트는 오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다. 위엄은 있으나 김빠진 유모들 무리가 떠나 버린 의자들은 텅 빈 채였다. 오직 잔디 가까이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한 부인이 앉아 있었으니, 그녀는 온갖 날씨에 한결같이, 화려하면서도 침침한 똑같은 차림으로 왔는데, 그때 나는, 할 수만 있었다면 앞으로 내 삶에 찾아올 가장 큰 기회들을 모두 바쳐서라도 그녀와 사귀고 싶었을 것이다. 질베르트가 날마다 그녀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질베르트에게 그 애의 “더없이 소중한 어머니”의 안부를 묻곤 했고, 나는 만일 내가 그 부인을 알았더라면 질베르트에게 전혀 다른 사람이, 곧 그 애 부모의 세계에 아는 이들을 둔 사람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손주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함께 노는 동안, 그녀는 앉아서 데바를 읽었는데, 그것을 “내 오랜 데바!”라고 불렀으니, 마치 귀족다운 스스럼없음으로, 순경이나 의자를 빌려주는 여인을 두고 “내 오랜 벗 순경”이라거나 “의자 지기와 나, 우리는 오랜 벗이지”라고 말하듯이.

프랑수아즈는 가만히 서 있기엔 너무 춥다고 여겼고, 그래서 우리는 얼어붙은 센 강을 보러 콩코르드 다리까지 걸어갔다. 강 위로는 누구나, 아이들까지도, 마치 뭍에 올라앉아 무방비로 곧 토막 날 거대한 고래 위를 걷듯 겁 없이 걸어다녔다. 우리는 샹젤리제로 돌아왔다. 나는 미동도 없는 목마들과, 눈이 치워져 검은 오솔길의 그물에 갇힌 새하얀 잔디밭 사이에서 비참함에 속이 메스꺼워지고 있었고, 그 잔디밭을 굽어보는 조각상은 손에 길게 늘어진 고드름을 쥐고 있어 마치 제 몸짓을 설명하는 듯했다. 노부인은 자신의 데바지를 접고서 지나가던 유모에게 시간을 물었고, “정말 친절도 하시지!”라며 고마워하더니, 이어 청소부에게 손주들을 불러 달라고, 자기가 춥다며 부탁하고는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수고를 끼쳐 미안해요!”라고 덧붙였다. 문득 하늘이 둘로 갈라졌다. 인형극장과 목마들 사이, 열리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나는 방금 기적의 표징처럼 마드무아젤의 파란 깃털을 본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질베르트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털을 두른 모자 아래 반짝이며 발그레한 얼굴로, 추위에, 늦은 것에, 놀이에 대한 조바심에 생기가 돋아 있었다. 내게 거의 다다르기 직전 그녀는 얼음 조각에 미끄러졌고, 균형을 되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게 우아해 보인다고 여겨서인지, 혹은 스케이트를 타는 척하는 것인지,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나를 끌어안기라도 하려는 듯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브라보! 브라보! 아주 멋져. 너처럼 말하자면 ‘근사한’ 솜씨야. 하기야 ‘스포티하다’고 해야겠지만, 나야 백한 살 먹은 구식 여자니까 말이지.” 노부인이 소리쳤다. 목소리 없는 샹젤리제를 대신하여, 날씨에 겁먹고 물러서지 않고 와 준 질베르트에게 그들의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었다. “너도 나랑 똑같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오랜 샹젤리제에 충실한 거야. 우린 둘 다 용감한 사람들이지! 내가 이런 날씨에도 여길 사랑한다고 하면 넌 아마 안 믿겠지. 이 눈 말이야(알아, 날 비웃겠지), 이걸 보면 흰담비 모피가 떠오른단다!” 그러고서 노부인은 스스로 웃기 시작했다.

이런 날들 가운데 첫날은, 질베르트를 볼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힘의 상징인 눈이 이별의 날 같은 슬픔을, 거의 떠나는 날 같은 느낌마저 안겨 주었는데, 그것은 눈이 우리의 유일한 만남의 무대인 그 익숙한 풍경의 겉모습을 바꿔 버리고, 이제 온통 뒤덮여 마치 방진포로 씌운 듯 그 무대를 쓰지 못하게 거의 금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날은 내 사랑이 나아가는 한 단계를 이루었으니, 어떤 의미에서 그날이 그녀가 나와 나누게 될 첫 슬픔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작은 무리 중에 우리 둘밖에 없었고, 이렇게 그녀와 단둘이 있다는 것은 친밀함의 시작 같기만 한 게 아니라, 그녀 쪽에서 보면, 마치 오직 나를 기쁘게 하려고, 그것도 이런 날씨에 이곳에 온 것처럼, 파티에 초대받은 어느 날 그것을 마다하고 샹젤리제로 나를 만나러 와 준 것만큼이나 뭉클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토록 주위가 무기력하고 적막하고 스러져 가는 가운데서도 이렇게 생생히 살아 있을 수 있는 우정의 생명력에, 그 앞날에 한층 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내 목덜미에 눈 뭉치를 떨어뜨리는 동안, 나는 이 새로운, 이 겨울의 땅에서 그녀가 나를 여행의 길동무로 받아 주며 보여 주는 편애 같기도 하고, 궂은 시절을 거치며 내게 지켜 주는 일종의 의리 같기도 한 것에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겁 많은 참새들이 폴짝이듯, 그녀의 친구들이 하나둘 눈을 배경으로 검게 도착했다. 우리는 놀 채비를 했고, 그토록 서글프게 시작된 이날이 기쁨으로 끝나기로 되어 있었던 듯, 놀이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첫날 질베르트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던 그 날카로운 목소리의 친구에게 다가가자 그 애가 내게 말했다. “아니, 아니, 넌 분명 질베르트 편에 있고 싶을 거야. 게다가 봐, 저 애가 너한테 신호를 보내잖아.” 실제로 그녀는 눈 덮인 잔디밭을 가로질러 자기 진영으로, ‘진영으로 나서라’고 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잔디밭은 햇빛이 장밋빛 광채를, 낡고 해진 비단의 금속빛 윤기를 드리워 금란(金襴)의 들판으로 바꿔 놓은 참이었다.

그토록 많은 불안 속에 시작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내가 지나치게 비참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날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나는 질베르트를 보지 않고 하루도 지나가게 두지 않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지만(그래서 한번은 할머니가 저녁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가 길에서 마차에 치여 죽었다면 얼마 동안은 샹젤리제에서 놀지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본능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사랑에 빠져 있으면 다른 누구에게 쏟을 사랑이 남지 않는 법이다), 밤새 그리고 아침 내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흥분에 몸을 떨고, 세상 다른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얻으려던 그녀와 함께한 그 순간들은 결코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 생애에서 내가 한눈팔지 않고 세심한 주의를 온통 집중한 유일한 순간들이었는데도, 그 안에서 나는 티끌만 한 기쁨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베르트에게서 떨어져 있는 내내 나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끊임없이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려 애쓰다가 결국 그러지 못하게 되었고, 내 사랑이 정확히 무엇에 대응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나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사내아이들을 알고 있다고, 나는 늘 함께 놀아 줄 만한 좋은 동무이긴 하지만 너무 딴생각에 빠져 놀이에 충분히 열중하지 않는다고 곧잘 뽐내곤 했다. 더욱이 그녀는 내게 겉으로 냉담한 기색을 자주 내비쳤는데, 만일 내 믿음이 질베르트가 나에게 품은 사랑에 기대고 있었다면 그 냉담함이 내가 그녀에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믿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 믿음이 내가 그녀에게 품은 사랑에 기대고 있었고, 그 사랑은 내가 내부의 강박에 떠밀려 질베르트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 방식에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의심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나는 아직 말로 그녀에게 감히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물론 공책 갈피갈피마다 나는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끝없이 되풀이해 적었지만, 그녀가 나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내가 그어 놓을 수 있는 그 막연한 글줄들을 보면 낙담하곤 했다. 그것들은 결코 그것을 보지도 못할 질베르트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오직 내 욕망만을, 그리고 그 욕망을 순전히 개인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지루하고, 부질없는 무언가로, 그 본색 그대로 내게 드러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베르트와 내가 서로를 만나, 그때까지는 이를테면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던 우리 사랑을 서로 고백할 기회를 갖는 일이었다. 아마 내가 그녀를 그토록 조바심 내며 보고 싶어 한 갖가지 이유가 어른에게라면 덜 절박해 보였으리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제 쾌락을 가꾸는 데 아주 능란해져서, 이미지가 실제와 맞아떨어지는지 굳이 확인하려 애쓰지 않은 채 내가 질베르트를 생각하던 것처럼 한 여인을 생각하는 데서 얻는 쾌락으로 만족하고, 그녀가 우리를 사랑하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녀를 사랑하는 쾌락으로 만족하며, 또는 완벽한 꽃 한 송이를 얻으려고 나머지를 다 희생하는 저 일본 정원사들처럼, 그녀가 우리에게 품은 열정을 지키고 키우려고 그녀를 향한 우리 열정을 고백하는 쾌락을 단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던 시절, 나는 아직 사랑이 우리와는 별개로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사랑은 기껏해야 우리가 앞길의 장애를 넘어서게 해 줄 뿐, 우리가 조금도 바꿀 수 없는 어떤 질서에 따라 제 은총을 베푼다고 믿었다. 만일 내가 스스로 나서서 고백의 달콤함을 무관심의 가장으로 바꿔치기한다면, 나는 가장 자주 꿈꾸던 기쁨 하나를 스스로에게서 앗아 갈 뿐 아니라, 내 자유의지로, 진실과 아무 관련도 없고 그 신비롭고 미리 정해진 길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인위적이고 무가치한 사랑을 지어내는 셈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샹젤리제에 다다랐을 때, 언뜻 보기에는 내 사랑을, 살아 있고 독립된 그 원인과 마주 세워 필요한 수정을 가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듯했지만, 지친 기억이 잃어버려 다시 찾지 못하던 이미지들을 되살려 주리라 기대했던 그 질베르트 스완, 바로 전날 함께 놀았고, 걸을 때 우리가 무얼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게 하는 그런 맹목적 본능에 이끌려 방금 인사를 건네고 이어 알아본 그 질베르트 스완 앞에 서자마자, 그녀와 내 몽상을 불러일으킨 그 소녀가 이내 서로 다른 두 사람이었던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를테면 간밤에 내가 통통하고 발그레한 두 뺨 위 불타는 두 눈을 기억 속에 간직해 두었다면, 질베르트의 얼굴은 이제 내가 분명 기억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코가 어딘가 뾰족하고 길쭉해진 모양을 (그것도 뚜렷하게) 내밀었고, 그것은 순식간에 그녀의 다른 몇몇 이목구비와 어우러져, 박물학에서 한 종(種)을 규정하는 데 쓰이는 그런 특징들의 무게를 띠고서, 그녀를 옆얼굴이 뾰족한 부류의 소녀로 바꿔 놓았다. 오래 기다려 온 이 순간을 이용하려고, 미리 마련해 두었으나 이제 머릿속에서 더는 찾을 수 없는 질베르트의 인상에 나를 내맡기려고, 혼자 보내야 할 긴 시간 동안 내가 마음에 품은 것이 정말 그녀 자신이며 내가 차츰 키워 가는 것이 정말 그녀를 향한 내 사랑임을, 책 한 권이 쓰이면서 자라나듯 자라 가는 그 사랑임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그 인상에 몸을 맡기려고 채비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공을 던졌다. 그러자, 제 지성은 외부 세계의 실재를 믿기를 거부하면서도 제 몸은 그 세계를 고려하는 관념론 철학자처럼, 내가 그녀를 알아보기도 전에 인사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자아가 이제는 그녀가 던진 공을 잡으라고 나를 부추겼고(마치 그녀가, 내 영혼이 하나로 맺어지려던 자매 같은 영혼이 아니라, 함께 놀려고 온 동무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떠나야 할 때가 올 때까지 예의상 수많은 정중하고 하찮은 말을 그녀에게 건네게 했으며,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그 없어서는 안 될, 달아나 버린 관념에 손을 얹을 수도 있었을 침묵을 지키는 것도, 우리 사랑의 진전을 뚜렷이 이루어 줄 말들, 늘 다음 날 오후로 미룰 수밖에 없던 그 말들을 내뱉는 것도 다 막아 버렸다. 그렇지만 이따금 진전이 있기는 했다. 어느 날 우리는 질베르트와 함께 우리 단골 노점 아주머니에게 갔는데, 그 아주머니는 늘 우리에게 각별히 친절했으니, 스완 가 건강상의 이유로(그는 인종적 습진과 예언자들 특유의 변비에 시달렸다) 잔뜩 사들이던 생강빵을 바로 그 아주머니에게 주문하곤 했기 때문이다. 질베르트는 웃으며, 아동 그림책 속 꼬마 예술가와 꼬마 박물학자를 닮은 두 사내아이를 내게 가리켜 보였다. 하나는 빨간 막대 사탕을 마다하고 보라색이 좋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유모가 사 주려는 자두를 거절했는데, 마침내 격한 어조로 이렇게 설명했다. “난 저쪽 자두가 좋아. 벌레가 들었단 말이야!” 나는 반 페니짜리 구슬 두 개를 샀다. 나는 감탄 어린 눈으로, 저희끼리 따로 사발에 담겨 반짝이는 마노 구슬들을 바라보았는데, 그것들이 어린 소녀들처럼 곱고 해맑아 보였고 한 알에 오 펜스나 했기에 내게는 값진 것으로 여겨졌다. 나보다 훨씬 많은 용돈을 받던 질베르트가 내게 어느 게 제일 예쁘냐고 물었다. 구슬들은 생명 그 자체처럼 투명하고 물기 어린 듯했다. 나는 그중 단 한 알도 그녀가 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그것들을 다 살 수 있어서, 죄다 풀어 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눈과 같은 빛깔을 띤 한 알을 가리켰다. 질베르트는 그것을 집어 금빛 광선이 어릴 때까지 이리저리 돌려 보고, 어루만지고, 그 몸값을 치르더니, 이내 제 포로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받아, 너 가지라고 주는 거야, 날 기억하라고 간직해.”

또 한 번은, 여전히 고전극에서 라 베르마의 연기를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베르고트가 라신을 논한, 이제는 절판된 소책자를 한 부 갖고 있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 정확한 제목을 알려 달라고 했고, 그날 저녁 나는 그녀에게 작은 전보를 보내며 봉투에 질베르트 스완이라는 이름을, 공책에 그토록 자주 적어 온 그 이름을 썼다. 이튿날 그녀는 분홍 리본으로 묶고 흰 밀랍으로 봉한 꾸러미에 담아, 어렵사리 한 부 구했다는 그 소책자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봐, 네가 부탁한 거야.” 그녀는 토시에서 내가 보낸 전보를 꺼내며 말했다. 그런데 그 기송관 편지의 주소에서, 어제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저 내가 쓴 한 장의 ‘파란 쪽지’에 지나지 않다가, 심부름꾼이 그것을 질베르트네 문지기에게 전하고 하인이 그녀의 방으로 가져다준 뒤에는 값도 특별함도 없는 것이, 그날 하루 동안 그녀가 받은 여러 ‘파란 쪽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린 그 편지에서, 나는 우체국에서 찍힌 소인들 아래, 우편배달부가 연필로 덧붙인 표시들, 곧 실현이 이루어졌다는 징표, 바깥 세계의 봉인,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며 처음으로 내 꿈과 짝을 맺고, 그것을 지탱하고, 일으켜 세우고, 기쁘게 해 주러 온 그 보랏빛 띠들 아래에서, 부질없고 삐뚤빼뚤한 내 필적의 글줄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또 어느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있잖아, 날 ‘질베르트’라고 불러도 돼. 어쨌든 난 널 이름으로 부를 거야. 안 그러는 건 너무 바보 같잖아.”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동안 더 격식 차린 “vous”로 나를 불렀고,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미소 지으며, 마치 외국어 문법책에 새 단어의 용법을 가르치려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 없이 실린 예문처럼 한 문장을 지어, 짜 맞춰서는 끝에 내 세례명을 붙였다. 그리고 나중에 그때 내가 느낀 것을 돌이켜 보니, 나는 한순간 그녀의 입안에 나 자신이, 벌거벗은 채, 그녀의 다른 동무들에게도 똑같이 딸리는, 그리고 그녀가 내 성(姓)을 쓸 때는 내 부모에게도 딸리는 그 어떤 사회적 자격도 더는 걸치지 않은 채 물려 있었다는 인상을 가려낼 수 있었다. 그런 부속물들을, 그녀의 입술은, 특별한 무게를 실어 주고 싶은 말들을 또박또박 발음하려고 아버지를 조금 닮은 투로 애쓰는 그 노력으로, 마치 과육만 입에 넣으려고 과일 껍질을 벗기듯, 내게서 벗겨 내고 걷어 내는 듯했다. 한편 그녀의 눈길은, 말투와 똑같이 새로워진 친밀함의 정도에 맞추어, 나에게 한결 곧바로 내려앉았고, 거기엔 그 눈길이 느끼는 의식이, 기쁨이, 심지어 고마움까지 배어 있어 미소를 곁들이고 있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