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그 순간, 나는 이 새로운 쾌락들의 값어치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그 소녀가 그녀를 사랑하는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함께 놀곤 하던 다른 그녀가, 진짜 질베르트에 대한 기억도, 오직 그것만이 그토록 갈망하던 행복의 값어치를 알 수 있었을 그 굳건한 마음도 지니지 못한 나의 다른 자아에게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나는 그것들을 음미하지 못했으니, 날마다 내일이면 질베르트를 맑고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리라고, 그녀가 마침내 나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며 지금껏 그것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리라고 바라게 만드는 그 필연이, 바로 그 필연이 과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오직 앞만 내다보며, 그녀가 내게 베푼 자잘한 호의들을 그 자체로 충분한 것으로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침내 아직 만나지 못한 행복에 다다르게 해 줄 사다리의 새로운 디딤대로 여기도록 나를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때로 그녀가 이런 애정의 표시를 내게 보였다 해도, 그녀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지 않는 듯이 굴어 나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하필 내가 내 희망이 이루어지리라 가장 크게 기대를 걸었던 바로 그런 날들에 자주 일어났다. 나는 질베르트가 샹젤리제에 오리라 확신했고, 큰 행복의 예감에 지나지 않는 듯한 들뜸을 느꼈는데, 그것은 아침에 응접실로 들어가 이미 외출 채비를 마치고 검은 머리를 정성껏 틀어 올린, 통통하고 흰 아름다운 두 손에 아직 비누 향이 남은 엄마에게 입 맞추려던 참에, 피아노 위 허공에 홀로 선 먼지 기둥을 보고, 창 아래에서 손풍금이 “En revenant de la revue”를 켜는 소리를 듣고서, 겨울이 해 질 녘까지 봄날의 뜻밖의 눈부신 방문을 받았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맞은편 부인이 창을 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의자 곁에 정오의 휴식을 즐기러 누워 있던 햇살 한 줄기를, 우리 식당의 너비를 단숨에 가로질러 쓸어 보냈다가 이내 그 자리로 되돌려 다시 쉬게 했다. 학교에서 한 시 수업 동안, 햇살은 내 책상 가장자리로 기어드는 금빛 물줄기를 흘려보내며, 내가 세 시 전에는 결코 갈 수 없는 잔치로의 초대장처럼, 나를 조바심과 지루함으로 진저리 나게 했는데, 프랑수아즈가 교문으로 나를 데리러 온 순간까지 그러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햇빛으로 단장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지나 샹젤리제로 향했고, 그 거리에서는 햇살에 떼어져 아른아른해진 발코니들이 마치 황금빛 구름처럼 집들 앞에 떠 있는 듯했다. 아아! 샹젤리제에서 나는 질베르트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저기 풀잎 끝을 불꽃처럼 피워 올리는 보이지 않는 햇살이 기른 잔디밭 위에, 거기 내려앉은 비둘기들이 마치 정원사의 곡괭이가 성스러운 흙 표면으로 들어 올린 옛 조각상들처럼 보이는 그 잔디밭 위에 꼼짝 않고 서서, 나는 지평선에 눈을 못 박은 채, 아이를 두 팔에 안고 내밀어 햇살의 강물 속에 반짝이며 햇빛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듯한 조각상 뒤로, 가정교사의 모습에 이어 질베르트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매 순간 기다렸다. 데바지를 읽던 노부인은 늘 앉던 그 자리 의자에 앉아, 방금 공원지기에게 다정하게 두 손을 흔들며 “정말 좋은 날씨네요!”라고 외치며 말을 건넨 참이었다. 그리고 의자 삯을 받으러 온 여자가 다가오자, 노부인은 온갖 아양과 꾸밈을 섞어, 은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제 몸에서 가장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라도 한 듯, 그 표를 마치 작은 꽃다발인 양 장갑 속에 접어 넣었다. 자리를 찾고 나자 노부인은 목을 둥글게 한 바퀴 돌리고, 목도리를 바로 하고는, 맨 손목 위로 삐져나온 노란 종이 끝을 그 여자에게 보이며, 여인이 젊은 남자에게 제 가슴을 가리키며 “봐요, 당신이 준 장미를 달고 있잖아요!”라고 말할 때 짓는 그 홀리는 미소를 그 여자에게 지어 보였다.
나는 질베르트에게 가는 길에 프랑수아즈를 개선문까지 끌고 갔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했고, 이제 그녀가 오지 않는다고 확신한 채 잔디밭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때 목마들 앞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의 그 소녀가 내게 달려들었다. “빨리, 빨리, 질베르트가 여기 온 지 십오 분이나 됐어. 이제 곧 갈 거야. 진 뺏기 놀이 편을 짜려고 널 기다렸다고.”
내가 샹젤리제 거리를 올라가는 동안, 질베르트는 부아시당글라 거리로 왔는데, 마드무아젤이 좋은 날씨를 틈타 제 볼일을 보러 갔던 것이고, 스완 씨가 딸을 데리러 오는 참이었다. 그러니 내 잘못이었다. 잔디밭을 벗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질베르트가 어느 쪽에서 나타날지, 일찍 올지 늦을지 결코 확실히 알 수 없었기에, 이 끊임없는 긴장은 마침내 샹젤리제 전체와 오후 내내를, 그 위 어느 지점에서든 어느 순간에든 질베르트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 드넓은 공간과 시간처럼 한층 인상 깊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 모습 자체도 그렇게 만들었다. 그 모습 뒤에는 그것이 두 시 반이 아니라 네 시에 내 심장에 화살을 쏜 이유가, 놀이용 수수한 모자가 아니라 방문용 맵시 있는 모자를 쓴 이유가, 두 인형극장 사이가 아니라 앙바사되르 앞에 나타난 이유가 숨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그녀를 외출하게 하거나 집에 붙들어 두는 그런 일과들 가운데 하나를 어렴풋이 짐작했고, 그녀의 알 수 없는 삶의 신비와 맞닿아 있었다. 이 신비는 또한, 날카로운 목소리의 소녀가 시키는 대로 지체 없이 놀이를 시작하려고 달려가다가, 우리에게는 그토록 재빠르고 스스럼없던 질베르트가 데바지를 든 노부인에게(노부인은 “햇살이 참 좋네! 불이라도 타는 것 같구나”라며 답했다) 수줍은 미소를 띠고 어색한 기색으로 격식 차려 인사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를 어지럽혔다. 그 모습은 질베르트가 집에서 부모와 함께, 또는 부모의 벗들과 함께 방문을 다닐 때, 내게서 벗어나 있는 그녀 삶의 나머지 온갖 곳에서 지을 그 또 다른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 삶에 대해 스완 씨만큼 강한 인상을 내게 준 이는 없었으니, 그는 조금 뒤에 딸을 데리러 왔다. 그것은 그와 스완 부인이, 딸이 그들과 함께 살고 그녀의 수업, 놀이, 교우 관계가 그들에게 달려 있는 만큼, 그 근원임에 틀림없는 그녀를 전능하게 좌우하는 대상에게 걸맞게, 나에게는 질베르트처럼, 어쩌면 질베르트보다 더, 규정할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우수 어린 매력의 자질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이 내게는 그토록 한결같은 관심의 대상이어서, 이날처럼 스완 씨가(오래전 그가 아직 우리 부모와 사이가 좋던 시절 나는 그를 자주 보았으면서도 아무 호기심도 품지 않았다) 질베르트를 데리러 샹젤리제에 온 날들이면, 그의 잿빛 모자와 두건 달린 외투가 나타날 때마다 내 심장을 뛰게 하던 고동이 가라앉고 나면, 그를 보는 것이 마치 방금 여러 권의 책으로 공부한, 그 생애의 사소한 세부까지 열광하며 알아 가는 역사적 인물을 보는 것처럼 여겨졌다. 콩브레에서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그와 파리 백작의 교분이, 이제 내 눈에는 마치 그 말고는 아무도 오를레앙 왕가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 놀라운 무언가가 되었다. 그 교분은 그를, 샹젤리제의 바로 그 오솔길을 메운 갖가지 계층의 보행자들이라는 속된 배경 앞에 또렷이 떼어 세웠고, 그 무리 한가운데서 그가 어떤 특별한 예우도 요구하지 않고 끼어 있는 것에 나는 감탄했다. 마침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에게 예우를 표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가 몸을 감춘 익명이 그만큼 깊었던 것이다.
그는 질베르트의 동무들의 인사에, 그리고 내 인사에도, 이제 우리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정중히 응했지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기색은 없었다. (이 일은 그가 시골에서 나를 끊임없이 보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데, 질베르트를 다시 본 뒤로 스완은 내게 무엇보다 그녀의 아버지가 되었고, 더는 콩브레의 스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그의 이름에 결부시키는 관념들이 예전에 그 이름이 속해 있던 체계 속 관념들과는 달라져서, 이제 그를 생각할 일이 있어도 그 옛 관념들은 전혀 쓰지 않게 되었으니, 그는 새로운,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를 인위적인 실, 이차적이고 가로지르는 실로 우리의 옛 손님과 이어 두었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내 사랑이 그로부터 득을 볼 수 있는 만큼만 무엇이든 값어치가 있었기에, 지금 샹젤리제에서 내 앞에 있는, 다행히도 질베르트가 어쩌면 내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바로 이 스완의 눈앞에서, 내가 저녁마다 엄마에게 위층 내 방으로 올라와 잘 자라는 인사를 해 달라고 청하러 사람을 보내며, 그러는 동안 엄마는 정원 탁자에서 그와 아버지, 조부모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 나 자신을 그토록 자주 우스운 꼴로 만들었던 그 세월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는 데에 수치와 후회의 경련을 느끼며 그 세월을 되짚었다.) 그는 질베르트에게 한 판 놀아도 좋다고, 자기가 십오 분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고는,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철제 의자에 앉아, 필리프 VII가 그토록 자주 제 손안에 쥐었던 그 손으로 표 삯을 치렀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잔디밭에서 놀이를 시작해 비둘기들을 흩어 놓았는데, 그 아름답고 영롱한 몸뚱이는(심장 모양을 하고서, 분명 깃털 왕국의 라일락인) 저마다 성소인 양 몸을 피했다. 하나는 커다란 돌 대야 위로 피했는데, 그 부리가 대야 가장자리 아래로 사라지면서, 그것이 쪼는 시늉을 하던 열매나 낟알을 그 새에게 넉넉히 바치는 역할을, 그 목적을 대야에 부여했다. 또 하나는 조각상 머리 위로 피했는데, 그 새는 마치 몇몇 고전 작품에서 다채로운 빛깔로 돌의 단조로움을 덜어 주는 그런 에나멜 장식품 하나를 조각상에 씌운 듯했고, 여신이 그 표징을 지닐 때면 그녀에게 특별한 별칭을 붙일 자격을 주어, 다른 세례명이 인간을 그리하듯, 그녀를 새로운 신으로 만드는 그런 속성 하나를 씌운 듯했다.
내 희망을 이루어 주지 못한 이런 볕 좋은 날들 가운데 하루, 나는 질베르트에게 실망을 감출 용기가 없었다.
“너한테 물어볼 게 정말 많았어.”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이 우리 우정에 아주 큰 의미가 될 줄 알았거든. 그런데 오자마자 가 버리다니! 내일은 일찍 와 줘, 너랑 얘기할 수 있게.”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그녀는 기뻐 폴짝 뛰며 대답했다. “내일은, 딱 잘라 말하는데, 나의 소중한 친구, 난 안 올 거야!
“우선 큰 오찬 모임이 있고, 그다음 오후엔 친구네 집에 가서 창문으로 테오도시우스 왕이 도착하는 걸 볼 거야. 근사하지 않아? 그리고 그다음 날엔 미셸 스트로고프를 보러 가고, 그러고 나면 곧 크리스마스에다 새해 연휴잖아! 어쩌면 날 남쪽 리비에라로 데려갈지도 몰라. 좋지 않겠어? 하긴 여기 크리스마스트리는 못 보겠지만. 아무튼 파리에 남는다 해도 여긴 안 올 거야. 엄마랑 방문을 다니느라 나가 있을 테니까. 잘 있어, 아빠가 날 부르네.”
나는 프랑수아즈와 함께, 즐거움이 끝난 축제의 저녁처럼 여전히 햇빛으로 흥겨운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리를 겨우겨우 끌다시피 했다.
“놀랄 일도 아니지요.”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철에 맞지 않는 날씨예요. 너무 따뜻해요. 아이고, 아이고, 사방에 앓아누운 가엾은 사람들이 오죽 많을까요. 저 위쪽도 죄다 어긋나 버린 것만 같다니까요.”
나는 흐느낌을 억누르며, 질베르트가 오랫동안 샹젤리제에 다시 오지 않게 되었다는 데 기쁨을 드러내던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이 그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득 차던 그 매혹은, 마음속 흉터가 오그라들며 질베르트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쩔 수 없이 놓이게 된 그 특별한, 괴로울망정 유일한 자리는, 바로 그 무관심의 표시에마저 어딘가 낭만적인 무언가를 보태기 시작했고, 눈물 속에서도 내 입술은 실로 입맞춤의 수줍은 윤곽인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그리고 우편배달부가 올 시간이 되면 나는 그날 저녁도 여느 저녁과 다름없이 속으로 말했다. “질베르트에게서 편지가 올 거야. 그녀는 마침내, 한 번도 나를 사랑하기를 그친 적이 없다고, 지금껏 나를 향한 사랑을 숨기고 나를 보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척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신비로운 이유를 내게 설명해 주겠지. 그저 동무일 뿐인 저 다른 질베르트의 모습을 띠어야 했던 그 이유를.”
저녁마다 나는 이 편지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달랬고, 실제로 그것을 읽고 있는 양 여기며 문장 하나하나를 차례로 읊었다. 문득 나는 놀라 멈추곤 했다. 만일 내가 질베르트에게서 편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이 편지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금 그것을 지어낸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내게 써 주었으면 하는 말들에서 생각을 멀리 떼어 놓으려 애썼는데, 내가 먼저 그 말들을 골라 버림으로써 하필 그 똑같은 말들을, 가장 정겹고 가장 바라 마지않는 그 말들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영역에서 배제해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설령 거의 있을 수 없는 우연으로, 질베르트가 제 뜻으로 내게 보낸 것이 바로 내가 지어낸 그 편지였다 한들, 거기서 내 작품을 알아본 나는 내가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무언가를, 실재하는 것을, 새로운 것을, 내 마음 바깥의, 내 의지와는 무관한 행복을, 참으로 사랑이 준 선물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질베르트가 나에게 써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온, 라신이 영감을 길어 올린 옛 신화들의 아름다움을 논한 베르고트의 그 한 쪽을 다시 읽었는데, 그것을(마노 구슬과 함께) 나는 늘 손닿는 곳에 두었다. 나는 그 책을 구해다 준 벗의 다정함에 뭉클했다. 그리고 누구나 제 열정에 대한 어떤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고,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에게서 (독서로든 대화로든 익힌) 남자의 사랑을 자아낼 만한 자질들을 기꺼이 찾아내어, 그것을 흉내로 제 것으로 삼고 그것에서 제 사랑의 새로운 이유를 지어내며, 설령 그 자질들이 그의 사랑이 자발적이던 동안 구했을 것들과 정반대라 하더라도 그러하듯이, 스완이 나보다 앞서 오데트의 아름다움에 미학적 근거를 세우려 했듯이, 콩브레 시절 처음에는 그녀 삶의 온갖 미지의 요소, 내가 곤두박질치듯 뛰어들고 싶던 그 요소 때문에 질베르트를 사랑했던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나 더는 아무 의미도 없어진 것인 양 나만의 별개의 존재를 벗어던지고서, 이제 이런 생각을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이점으로 여겼다. 곧 이 나의, 너무도 익숙한, 하찮은 존재의, 질베르트가 언젠가 그 미천한 하녀, 다정하고 위안을 주는 협력자가 되어, 저녁이면 내 일을 도와 희귀한 소책자의 원문을 대조해 주리라는 생각을. 베르고트로 말하자면, 그 무한히 지혜로운, 거의 신과도 같은 노인, 그녀를 보기도 전에 그로 인해 내가 처음으로 질베르트를 사랑하게 된 그 노인을, 이제는 무엇보다 질베르트를 위해 사랑했다. 그가 라신에 대해 쓴 그 쪽들만큼이나 큰 기쁨으로, 나는 그녀가 그 쪽들을 내게 가져다준, 흰 밀랍의 커다란 봉인 아래 접히고 물결치는 분홍 리본으로 묶인 포장지를 살펴보았다. 나는 마노 구슬에 입 맞추었는데, 그것은 내 사랑의 심장에서 더 나은 부분, 경박하지 않고 충실한 부분이었고, 질베르트 삶의 신비로운 매혹으로 꾸며져 있으면서도 내 곁에 바짝 붙어 머물며 내 방에 깃들고 내 잠자리를 함께했다. 그러나 그 돌의 아름다움도, 내 사랑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겨지는 순간마다 그 사랑에 일종의 실체를 부여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의 관념과 기꺼이 결부시키던 그 베르고트의 쪽들의 아름다움도, 내가 알아챘거니와, 그 사랑보다 앞선 것이었고 그 사랑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 요소들은 질베르트가 나를 알기도 전에 작가의 재능으로, 혹은 지질학의 법칙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질베르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책이나 돌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그 안에서 행복의 전언을 읽어 낼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내 사랑이, 내일이면 질베르트가 나를 향한 사랑을 고백해 주기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저녁마다 그날의 서투른 일감을 허물고 풀어헤치는 동안, 내 존재의 어느 그늘진 구석에는, 끊어진 실들을 놓인 자리에 그대로 두지 않고 거두어 다시 짜 맞추는,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내 이익을 위해 애쓸 생각은 조금도 없이, 제 모든 손일에 부여하는 저만의 다른 질서로 그리하는, 알 수 없는 한 여직공이 있었다. 내 사랑에 아무 특별한 관심도 없이,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미리 단정하지도 않은 채, 그 여직공은 내게 설명할 수 없어 보이던 질베르트의 행동들과 내가 눈감아 주던 그녀의 잘못들을 나란히 놓았다. 그러자 이것저것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의미를 띠었다. 이 새로운 배열은 내게 이렇게 말해 주는 듯했다. 질베르트가 샹젤리제로 나를 만나러 오는 대신 파티에 가거나 가정교사와 볼일을 보러 가는 것을 보았을 때, 새해 연휴 내내 이어질 부재를 채비하는 그녀를 보았을 때, “저 앤 경박해서 그래” 또는 “쉽게 휩쓸려서 그래”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왜냐하면 그녀가 나를 사랑했다면 경박하지도 휩쓸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해도 내가 그녀를 보지 못하는 날 느끼던 것과 똑같은 절망을 가슴에 품고서 그리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배열은 또한 내게, 나는 질베르트를 사랑하니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국 알아야 마땅하다고 일러 주었다. 그것은 내가 그녀 앞에서 ‘으스대야’ 한다는 끊임없는 조바심에 눈을 돌리게 했으니, 그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졸라 프랑수아즈에게 방수 외투와 파란 깃털 달린 모자를 사 주게 하려 했고, 아니 차라리, 함께 있는 걸 남에게 보이기가 낯 뜨거운 그 하녀를 샹젤리제에 나와 딸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하려 했다(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프랑수아즈에게 부당하게 군다고, 그녀는 훌륭한 여인이고 우리 모두에게 헌신적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그 조바심은, 오직 질베르트를 보아야만 한다는 그 하나뿐인 절실한 욕구에도 눈을 돌리게 했는데, 그 결과 나는 몇 달 전부터 그녀가 언제 파리를 떠나고 어디로 가는지 알아낼 궁리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그녀가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고장도 유배지에 지나지 않으리라 느끼며, 샹젤리제에서 그녀를 볼 수만 있다면 파리에 영영 머물게 해 달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배열은, 내 조바심도 내 욕구도 질베르트의 행실 가운데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어렵지 않게 내게 깨닫게 해 주었다. 오히려 그녀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여기든 개의치 않고 제 가정교사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마드무아젤과 장을 보러 가야 하면 샹젤리제에 오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는 아주 당연해 보였고, 어머니와 어딘가에 나가야 하면 기쁜 일로 보였다. 그리고 설령 그녀가 나와 같은 곳에서 방학을 보내도록 허락해 준다 한들, 그 장소를 고를 때 그녀는 부모의 뜻과, 남들에게 들은 갖가지 놀거리를 헤아렸지, 우리 식구가 나를 보내려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다. 그녀가 (이따금 그러했듯) 내 서투름 탓에 제 편이 놀이에서 졌다며 다른 어떤 친구보다도, 어제보다도 나를 덜 좋아한다고 못 박을 때면, 나는 용서를 빌고, 그녀가 나를 다시 다른 아이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좋아하게 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그것이 이미 내 처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매달렸다. 마치 그녀가 나의 선행이나 악행에 걸맞게, 제 입에서 나오는 말만으로, 그녀나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향한 애정을 바꾸어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니 나는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것이 그녀의 행동에도 내 욕망에도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아직 몰랐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여직공이 짜 놓은 그 새로운 배열은 마침내 내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지금껏 우리를 불안케 하던 사람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었기를 우리가 바라게 된다 해도, 그 행동은 그 자취에 우리의 희망으로는 끌 수 없는 빛을 흘려 놓으며, 우리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바로 그 빛에 물어야 한다고, 그 사람이 내일 어떻게 행동할지를.
이 새로운 충고들을, 내 사랑은 귀 기울여 들었다. 그 충고들은 내 사랑에게, 내일도 지나간 모든 날과 다르지 않으리라고, 질베르트가 나에게 품은 감정은 이제 너무 오래 굳어져 바뀔 수 없으니 무관심이라고, 질베르트와의 우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고 설득했다. “그건 사실이야.” 내 사랑이 대답했다. “그 우정에서 더 어찌해 볼 것은 없어. 이제 달라지지 않을 거야.” 그리하여 바로 다음 날(다가오는 공휴일이 있다면, 어떤 기념일이나 새해처럼, 다른 날들과 달리 시간이 다시 시작되어 과거의 유산을 벗어던지고 그 슬픔의 몫을 물리치는 그런 날들 가운데 하나를 기다리게 되지 않는다면) 나는 질베르트에게 우리의 오랜 우정을 끝내고 나와 함께 새로운 우정의 주춧돌을 놓자고 청하려 했다.
나는 늘 손닿는 곳에 파리 지도를 두고 있었는데, 그 위에 스완 씨와 부인이 사는 거리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었기에, 그것이 내게는 비밀 보물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기쁘게 하려고, 또 일종의 기사도적 충심에서, 무슨 상관이 있든 아무 상관이 없든 그 거리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곤 했는데, 그러다 못해 아버지가, 어머니나 할머니와 달리 내 사랑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늘 그 거리 얘기만 하니? 별것도 아닌데. 불로뉴 숲에서 몇 분 거리라 살기에 훌륭한 거리이긴 하다만, 똑같은 거리가 열 개는 더 있단다.”
나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떻게든 스완이라는 이름을 끌어들이려 온갖 애를 썼다. 물론 마음속으로야 잠시도 그 이름을 되뇌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이름의 그윽한 울림을 귀로도 듣고, 소리 없이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던 그 화음을 실제로 울려 보고 싶었다. 게다가 그토록 오래 익숙했던 스완이라는 그 이름이 이제 내게는 (실어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흔한 낱말을 두고 이따금 일어나는 일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의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늘 마음속에 있었으나, 마음은 도무지 거기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나는 그 이름을 뜯어보고, 한 글자 한 글자 짚어 보았다. 그 철자가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름은 친숙해지는 동시에 순결함을 잃어버렸다. 그 소리에서 얻는 기쁨이 어찌나 죄스럽게 느껴졌던지, 남들이 내 속마음을 읽어 내고는, 내가 대화를 그쪽으로 이끌려 하면 화제를 돌려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래도 질베르트와 이어지는 화제로 되돌아가, 똑같은 말을 하염없이 되풀이했다. 그것이 한낱 말에 지나지 않음을,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내뱉어 그녀는 듣지도 못하는 말,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없어 사실을 그대로 옮길 뿐 그 사실을 바꿀 힘은 없는 말임을 알면서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질베르트에 관한 모든 것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휘저어 대다 보면 거기서 내게 행복을 가져다줄 무언가가 솟아나기라도 할 듯이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질베르트가 자기 가정교사를 무척 따른다고 부모님께 거듭 말했다. 그 말을 백 번째로 되뇌면 마침내 질베르트가 불쑥 방으로 뛰어들어 와 우리와 영영 함께 살게 되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이미 그 데바를 읽던 노부인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둔 터였다(부모님께 그 부인이 적어도 대사의 미망인쯤은 되고, 어쩌면 어느 전하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넌지시 흘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과 기품을 계속 늘어놓다가, 마침내 어느 날 질베르트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로 미루어 그 부인이 블라탱 부인인 듯하다고 말하고 말았다.
“아, 이제 네가 누구 말을 하는지 알겠구나.” 어머니가 소리쳤고, 나는 부끄러움에 온몸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조심, 또 조심하렴, 네 할아버지 말씀대로 말이다. 그래, 네가 그토록 대단하다고 여긴 사람이 그 여자였다니? 아니, 그 여자는 지독하게 끔찍한 사람이고, 예전부터 늘 그랬단다. 어느 집행관의 미망인이지.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네가 어렸을 때 체조 수업에서 그 여자를 피하느라 내가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몰라. 그 여자는 늘 나를 붙들려고 안달이었어, 나야 물론 그 여자를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네가 ‘사내아이치고 너무 잘생겼다’고 말하려고 그랬던 거야. 그 여자는 늘 사람들과 알고 지내려는 미친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어. 정말로 스완 부인과 아는 사이라면, 내가 늘 생각해 온 대로 그 여자는 아주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다. 아무리 그 여자가 아주 천한 집안 출신이라 해도, 그 사람 됨됨이를 나쁘게 말하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긴 하다만. 어쨌든 그 여자는 늘 낯선 사람들에게 억지로 들이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지. 정말이지 끔찍한 여자에다, 무섭도록 천박하고, 게다가 늘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 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