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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이름 ④

1권 · 고장의 이름: 이름

스완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를 닮으려는 마음에 식탁에 앉아 있는 내내 손가락으로 코를 따라 문지르고 눈을 비벼 댔다. 아버지는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저 녀석 완전히 얼간이가 다 됐군, 갈수록 못 봐주겠어.” 무엇보다도 나는 스완처럼 대머리가 되고 싶었다. 그는 내게 어찌나 유별난 존재로 보였던지, 내가 알고 자주 보는 사람들이 그 역시 알고 지내고, 하루 사이에 누구든 길에서 그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저녁 식사 때면 늘 그러듯 그날 오후 어디에 다녀왔고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하다가, 그저 이런 말로, “참, 내가 트루아 카르티에에서 누구를 봤는지 맞혀 보렴, 우산 매장에서 말이다, 스완이었단다!” 하는 그 말로, 내게는 메마른 사막 같기만 하던 그 이야기 한복판에 신비로운 꽃 한 송이를 활짝 피워 냈다. 바로 그날 오후, 그 초자연적인 형상이 군중 사이를 헤치며 스완이 우산을 사러 갔었다니, 얼마나 애틋한 만족인가. 크고 작은, 그러나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은 그날의 온갖 일들 가운데, 유독 그 일만이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을 언제나 흔들어 놓던 그 야릇한 떨림을 내 안에 불러일으켰다. 아버지는 내가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고 나무랐다. 아버지가 테오도시우스 왕의 방문 뒤에 이어질지도 모를 정치적 사태를 이야기하는 동안 내가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왕은 마침 프랑스에 국빈으로, 그리고 (넌지시 말하기로는) 동맹국의 원수로 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스완이 후드 달린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지 아닌지가 얼마나 미치도록 궁금했던가!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내가 물었다.

“그럼, 당연히 나눴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스완과 그다지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가는,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스완 부인이 있는 마당에, 사람들이 자기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화해시키려 들까 봐 늘 두려워하는 듯했다.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건 건 그이였어. 나는 그이를 보지도 못했는데.”

“그럼 두 분이 다투신 게 아니었어요?”

“다투다니? 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가 다퉜다고 생각하는 거니?” 어머니는, 내가 마치 스완과 다정하게 지낸다는 그 꾸며 낸 이야기에 의심을 던지며 두 사람을 ‘가깝게 붙여 놓으려’는 궁리를 하기라도 한 듯, 재빨리 받아쳤다.

“어머니가 한 번도 그분을 집에 초대하지 않으시니 서운해하실 수도 있잖아요.”

“누구든 다 집에 초대해야 하는 건 아니잖니. 그이가 나를 자기 집에 부른 적이 있기나 하니? 나는 그이 부인을 알지도 못하는걸.”

“하지만 콩브레에서는 자주 오셨잖아요.”

“그야 그랬지! 콩브레에서야 자주 왔지만, 지금 파리에서는 그이도 할 일이 더 많고, 나도 그렇단다. 하지만 우리가 다툰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사람들이 그이한테 소포를 가져다주는 동안 우리는 한참을 거기서 기다렸단다. 그이가 네 안부를 묻더구나. 네가 자기 딸이랑 놀았다는 얘기도 하고.”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은, 스완의 마음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일러 주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샹젤리제에서 사랑에 떨며 그 앞에 섰을 때 그가 내 이름을 알고, 내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알며, 자기 딸의 놀이 친구라는 내 자격에다 우리 조부모와 그 인척들, 우리가 사는 곳, 우리 지난날의 몇몇 세세한 일들까지(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던 것들을) 곁들일 수 있을 만큼, 그토록 온전하고 그토록 구체적인 형태로 그의 마음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완이 자기를 알아본 그 순간에 자기가 그에게, 굳이 다가와 말을 걸게 할 만큼 함께 나눈 추억이 넉넉한 어엿한 한 사람으로 비쳤던 트루아 카르티에의 그 매장에서, 특별히 마음 끌릴 만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제는 스완의 집안이나 질베르트의 조부모를 입에 올리거나, 증권 중개인이라는 그 직함을 쓸 만한 계기를 좀처럼 찾지 못하는 듯했는데,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그런 화제만큼 짜릿한 기쁨을 주는 것이 없었다. 나의 상상은, 파리라는 건축의 도시 안에서 어느 한 집을 따로 떼어 내어 그 현관에 조각을 새기고 창문을 값진 것으로 꾸며 놓았듯, 사교계의 파리 안에서 어느 한 집안을 따로 떼어 내어 신성하게 받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장식들을 볼 눈을 가진 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완이 사는 집을 그저 같은 시기에 불로뉴 숲 근처에 지어진 다른 집들과 꼭 닮은 집쯤으로 여겼듯, 스완의 집안도 그분들에게는 여느 증권 중개인 집안들과 같은 부류로만 보였다. 그분들의 평가는 그 집안이 온 세상에 두루 흔한 장점들을 얼마나 나눠 가졌느냐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갈렸고, 거기에는 유일무이하다고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반대로 그분들이 스완가에서 높이 사는 것은 다른 데서도 못지않게, 아니 더 크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하여 그 집이 좋은 자리에 있다고 인정하고 나서도, 그분들은 곧 더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 질베르트와는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집 이야기로, 또는 그녀의 할아버지보다 더 큰 규모의 금융업자들 이야기로 넘어가곤 했다. 잠깐 내 생각에 동의하는 듯 보였더라도, 그것은 이내 바로잡히는 착각일 뿐이었다. 질베르트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빛깔의 척도에서 적외선이라 부르는 것에 견줄 만한, 감정의 척도 위의 어떤 형언할 수 없는 특질을 가려내려면, 한동안 사랑이 내게 부여해 준 여분의 지각 능력이 있어야 했는데, 나의 부모님께는 그것이 없었다.

질베르트가 미리 샹젤리제에 나오지 못한다고 일러 준 날이면, 나는 어떻게든 그녀와 어떤 식으로든 맞닿을 수 있도록 산책 길을 짜 보려 애썼다. 어떤 때는 프랑수아즈를 이끌고 스완가가 사는 집으로 순례를 떠나, 가정교사에게서 들은 스완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하게 했다. “글쎄, 그 부인은 성패(聖牌)를 그렇게 믿는대요. 부엉이 우는 소리를 듣거나, 벽에서 죽음벌레 소리가 나거나, 한밤중에 고양이를 보거나, 가구가 삐걱거리기라도 하면 절대로 길을 나설 생각을 안 한다지 뭐예요. 아무렴요! 아주 신심이 깊은 마님이시라니까요!” 나는 질베르트에게 미친 듯이 빠져 있었기에, 가는 길에 그 집 늙은 집사가 개를 데리고 나오는 모습이라도 눈에 띄면 벅찬 감정에 걸음을 멈추고, 그 하얀 구레나룻에 사랑으로 녹아드는 눈길을 붙박곤 했다. 그러면 프랑수아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얘야, 이번엔 또 왜 그러니?” 그렇게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겨 그 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세상 어느 문지기와도 다르게, 제복의 장식 술 하나까지도 질베르트라는 이름 속에 깃들어 있다고 느껴지던 그 애수 어린 매력에 흠뻑 젖은 한 문지기가, 마치 나 같은 인간은 타고난 하찮음 탓에 그 안쪽 삶의 신비, 그가 지키는 것이 소임인 그 신비 속으로 영영 파고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는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신비 위로, 1층 창문들은 저희가 보호하듯 닫혀 있음을 스스로 의식하는 듯했고, 고귀하게 휘어 오르는 모슬린 커튼의 아치 사이로 그 창문들은 세상 어느 창문보다도 질베르트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더 닮아 있었다. 다른 날에는 큰길을 따라 걸어 뒤포 거리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스완이 치과에 가는 길에 그곳을 지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의 상상은 질베르트의 아버지를 나머지 인류와 어찌나 동떨어진 존재로 만들어 놓았던지, 진짜 사람들의 무리 한복판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이에 그토록 기적 같은 요소가 끼어드는 듯하여, 마들렌 성당에 이르기도 전부터 나는 그 초자연적인 환영이 언제라도 불시에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를 거리로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감격으로 떨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주, 질베르트를 못 보는 날이면, 스완 부인이 거의 날마다 큰 호수를 끼고 아카시아 길과 렌 마르그리트 길을 따라 산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나는 프랑수아즈를 이끌고 불로뉴 숲 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내게, 온갖 식물이 한데 모이고 풍경의 대비 효과가 어우러진 어느 동물원 같았다. 언덕에서 동굴로, 초원으로, 바위로, 시내로, 도랑으로, 또 다른 언덕으로, 늪으로 옮겨 가지만, 그 모두가 실은 하마와 얼룩말, 악어, 토끼, 곰, 왜가리가 자연스럽거나 그림 같은 무대에서 저마다 뛰놀게 하려고 거기 있을 뿐임을 아는 그런 동물원. 이 불로뉴 숲도 그에 못지않게 복잡하여, 저마다 뚜렷이 구별되고 따로 떨어진 수많은 작은 세계를 하나로 아울렀으니, 붉은 나무들과 아메리카참나무를 세워 둔, 마치 버지니아의 시험림 같은 무대를 호숫가 전나무 숲 옆에, 또는 어느 순간 벙어리 짐승의 크고 애원하는 듯한 눈을 하고 하늘거리는 모피를 두른 채 총총히 지나가는 산책자가 불쑥 나타나는 숲 덤불 옆에 나란히 놓아 두던 그 숲은, 곧 여인의 정원이었다. 그리고 아이네이스의 도금양 길이 오직 한 종류의 나무만 심겨 저들을 즐겁게 하려 했듯, 아카시아 길에는 그날의 이름난 미인들이 북적였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벼랑 끝 바위를 멀리서 바라보는 아이들이, 물개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기쁨에 몸을 떨듯, 나 역시 아카시아 길에 이르기 한참 전부터, 사방에 흩뿌려진 그 향기가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어느 식물의 인격, 그 견줄 데 없는 존재에 내가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다 가까이 다가서면, 그 우듬지 가지들, 가볍게 나부끼는 잎사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편안한 우아함, 요염한 윤곽, 섬세한 결 위로 수백 송이 꽃이, 날개 돋친 채 파닥이는 귀한 곤충의 무리처럼 얹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름 자체가, 여성스럽고 나른하며 매혹적인 그 이름이 내 심장을 뛰게 했는데, 그것은 무도회장에 들어서는 아름다운 무희들의 이름만을 소리 높여 불러 떠올리게 하는 왈츠처럼, 사교를 향한 갈망이 뒤섞인 두근거림이었다. 나는 그 길에서 몇몇 멋쟁이 여인들을 보게 되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늘 스완 부인과 나란히 입에 오르내렸고, 대개는 그들의 직업상 이름으로 불렸다. 새 이름이 있다 한들 그것은 일종의 익명, 한 겹 베일에 지나지 않아, 그들을 입에 올리려는 이들은 알아듣게 하려고 그 베일을 조심스레 걷어 내곤 했다. 아름다움이, 여성적 우아함의 영역에서, 그들만이 입문한 어떤 은밀한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에게는 그것을 실현할 힘이 있다고 여긴 나는, 그들을 보기도 전에, 다가올 계시의 진리인 양, 그들의 옷차림과 마차와 말의 모습을, 그 덧없이 변해 가는 화려한 행렬에 한 편의 예술 작품 같은 통일성을 부여하는 내면의 영혼처럼 내가 믿음을 걸었던 수천 가지 세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었던 이는 스완 부인이었고, 나는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치 그녀가 질베르트이기라도 한 듯 깊이 마음이 흔들린 채로. 질베르트의 부모는,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렇듯 그녀만의 각별한 매력에 흠뻑 젖어 있어, 내 안에 그녀 못지않게 격렬한, 아니 한층 더 괴로운 동요를 불러일으켰고(그들이 그녀와 맞닿는 지점이란, 내게는 감춰져 있던 그녀 삶의 그 은밀하고 내밀한 부분이었으니), 게다가 머지않아, 때가 되면 보게 되겠지만, 그들이 내가 딸과 어울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우리에게 해를 끼칠 힘을 쥐고서 거리낌 없이 그것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우리가 늘 품게 되는 그 경외의 감정까지 더해졌다.

스완 부인이 두 발로, 수수한 천으로 지은 ‘폴로네즈’를 걸치고, 꿩 깃털로 장식한 작은 토크 모자를 쓰고, 가슴에는 제비꽃 한 다발을 꽂은 채, 마치 그것이 제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라도 한 듯 아카시아 길을 총총히 걸어가며, 멀리서 그 자태를 알아보고 모자를 들어 올리며 저토록 옷매무새가 완벽한 사람은 다시없다고 서로 속삭이는 마차 안 신사들의 인사에 재빠른 눈길로 답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미적 가치와 사교적 위엄의 서열에서 첫자리를 소박함에 내주었다. 그러나 만일, 더는 견디지 못하고 두 다리가 ‘풀려’ 버린다고 하소연하는 프랑수아즈를 억지로 붙잡아 한 시간을 더 나와 함께 오르내린 끝에, 포르트 도핀 쪽에서 나타나 내게 왕가의 위엄을, 어느 군주의 행차를 그려 보이는 광경을, 그 뒤로 어떤 실제 왕비도 결코 내게 다시는 안겨 주지 못한 그런 인상을(그들의 권세에 대한 내 관념이 그만큼 덜 어렴풋해지고 경험에 더 뿌리내린 탓이겠지만) 보았다면, 나는 소박함 대신 첫자리를 화려함에 내주어야 했으리라. 콩스탕탱 기스의 그림에서 볼 법한, 날렵하고 맵시 있는 한 쌍의 불같은 말이 이끌고, 마부석에는 코사크처럼 털옷을 두른 거구의 마부가, 그 곁에는 토비, ‘고인이 된 보드노르의 타이거’처럼 자그마한 마부 아이가 앉아 있는 가운데, 나는 보았다, 아니 오히려 그 윤곽이 정갈하고도 치명적인 일격으로 내 가슴에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빅토리아 마차 한 대를. 다소 높다랗게 지어졌으되, 그 지극히 현대적인 장식으로 지난날의 형태를 넌지시 암시하던 그 마차 깊숙이, 스완 부인이 나른하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이제 한 가닥 잿빛이 섞여 온통 옅어진 그녀의 머리칼은 대개 제비꽃으로 엮은 가느다란 꽃 띠로 둘려 있었고, 거기서 긴 베일들이 흘러내렸으며, 손에는 라일락빛 양산을 들고, 입가에는 아리송한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그저 위엄에서 나온 자애로운 겸양만을 읽었으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고개 숙이는 사내들에게 너그러이 베푸는 화류계 여인의 요염한 미소였다. 그 미소는 실은 어떤 이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 그럼요, 아주 잘 기억하고말고요. 근사했지요!” 또 어떤 이에게는, “얼마나 그러고 싶었는지! 우리가 운이 없었어요!” 또 다른 이에게는, “네, 정 그러시다면! 잠깐만 이 줄에 서 있다가, 틈이 나는 대로 빠져나갈게요.” 낯선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그녀는 여전히 벗을 기다리거나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나른한 미소를 입가에 머물게 두었고, 그러면 그들은 “참 아름다운 여인이야!” 하고 말했다. 그리고 오직 몇몇 사내들에게만은 시큰둥하고 긴장된, 수줍은 듯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것은 이런 뜻이었다. “그래요, 이 능구렁이 같은 양반, 당신 혀가 독사 같고 한시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가 당신 말에 신경이나 쓸 줄 알아요?” 코클랭이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귀 기울이는 벗들 무리에 둘러싸여 지나갔고, 손을 크게 휘저어 마차 안 사람들에게 배우다운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스완 부인만 생각했고, 아직 그녀를 못 본 척했다. 그녀가 비둘기 사격장에 이르면 마부에게 ‘빠져나가’ 마차를 세우라 일러, 걸어서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곁을 바짝 스쳐 지날 용기가 났다 싶은 날이면, 나는 프랑수아즈를 그쪽으로 끌고 갔다. 마침내 스완 부인이, 라일락빛 치마의 긴 자락을 뒤로 끌며, 여느 여인은 걸치지 못할 호사스러운 차림으로, 민중이 왕비란 저리 차려입으리라 상상하는 그대로 차려입고서, 이따금 눈을 내리깔아 양산 손잡이를 들여다보며, 마치 자기에게 중요한 것, 거기 나온 유일한 목적이 남에게 보이는 것도 모른 채, 모든 이의 고개가 자기 쪽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랑곳없이 그저 운동하는 것이기라도 한 듯,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그러나 이따금 개를 부르려 뒤를 돌아볼 때면, 그녀는 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슬쩍, 주위를 휘 둘러보곤 했다.

그녀를 모르는 이들조차, 그녀에게 깃든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것, 정상을 넘어선 무언가에 이끌려, 아니 어쩌면 라 베르마가 ‘숭고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을 열광의 갈채로 몰아가는 것과 같은 어떤 텔레파시의 암시에 이끌려, 그녀가 이름난 누군가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서로에게 “누구지?” 하고 묻거나, 때로는 지나가는 낯선 이를 붙잡고 캐묻거나, 그녀의 차림새를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나중에 자기보다 사정에 밝은 벗의 머릿속에서 그 정체를 확인하려 했고, 그러면 그 벗은 곧바로 알려 주곤 했다. 또 다른 두 사람은 걸음을 반쯤 멈추고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나? 스완 부인이야! 그래도 모르겠나? 그럼, 오데트 드 크레시라면?”

“오데트 드 크레시! 아니,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저 크고 슬픈 눈이라니… 그런데 말이야, 저 여자도 이젠 예전만큼 젊진 않겠지, 응? 기억나는데, 마크마옹이 물러나던 날 저 여자를 안았지.”

“나라면 그 얘긴 저 여자한테 꺼내지 않겠네. 이젠 스완 부인이야, 자키 클럽 신사이자 웨일스 공의 벗인 사람의 아내라고. 하기야 그것과는 별개로, 저 여자는 여전히 근사해.”

“아, 자넨 그때 저 여자를 봤어야 하는데. 이런, 얼마나 고왔다고! 중국 물건이 잔뜩 놓인 아주 별난 작은 집에서 살았지. 기억나는데, 밖에서 소리치는 신문팔이 아이들 때문에 내내 성가셨어. 나중엔 저 여자가 나더러 일어나서 나가라지 뭔가.”

이런 옛이야기들에 귀 기울이지 않고도, 나는 그녀를 에워싼 명성의 어렴풋한 웅성거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그중에 (내 느낌에는) 나를 업신여기던 어느 물라토 은행가가 보이지 않아 낙심했지만, 아직껏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이름 없는 젊은이가, 이 여인, 아름다움과 방종과 우아함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 여인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기까지 아직 몇 초가 더 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에 심장이 뛰었다(그녀를 알지도 못하면서 인사한다는 게 사실이긴 했으나, 내 부모님이 그녀의 남편을 알고 나는 그녀 딸의 놀이 친구였으니 그럴 자격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스완 부인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다. 나는 어찌나 요란하고 어찌나 오래 끄는 몸짓으로 모자를 벗었던지, 그녀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그녀로 말하자면, 나를 질베르트와 함께 본 적이 없어 내 이름도 몰랐으니, 내가 그녀에게는, 숲의 관리인들이나 뱃사공, 혹은 그녀가 빵 부스러기를 던져 주던 호수의 오리들처럼, 날마다 바깥을 거니는 그 산책길의 하찮은 단역, 익숙하되 이름 없고, 극장 무대 뒤 일꾼만큼이나 아무런 개성도 없는 존재였다.

아카시아 길에서 그녀를 놓친 어떤 날에는, 홀로 있고 싶거나 홀로 있고 싶어 하는 듯 보이고 싶은 여인들이 찾는 렌 마르그리트 길에서 다행히 그녀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녀는 오래 혼자이지 못했으니, 이내 어떤 사내, 흔히 회색 ‘실린더’ 모자를 쓴, 내가 모르는 어떤 사내가 다가와 한동안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동안 두 사람의 마차는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왔다.

불로뉴 숲을 하나의 인공적인 장소로, 그리고 동물학적이거나 신화적인 뜻에서 하나의 정원으로 만들던 그 복잡함의 감각을, 나는 올해 다시 붙잡았다. 트리아농으로 가는 길에 그곳을 가로지르던, 11월 초 어느 아침이었다. 파리에서, 집 안에만 있으면,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 사이에 그토록 빠르게 저물어 가는 가을의 변모 장면을 그토록 가까이 두고도 지켜보지 못하게 되어, 떨어진 잎사귀들에 대한 아쉬움이 열병처럼 번지고, 밤잠까지 설치게 되는 그런 아침이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그 낙엽들은, 그것들을 보고 싶다는 내 바람에 이끌려, 닫힌 내 방 안으로 흘러들어, 내 생각과 내가 거기에 붙들어 두려던 대상 사이로 미끄러져 들며, 무엇을 바라보든 이따금 눈앞에서 춤추거나 헤엄치는 듯한 저 갈색 반점들처럼 내 앞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지난 며칠과 달리 빗소리가 들리지 않고, 닫힌 입술 사이로 그 행복의 비밀이 새어 나오듯, 드리운 커튼 자락에서 맑은 날씨의 미소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서, 나는 저 노란 잎들이, 빛을 머금어 투명하게 빛나는 그 지극한 아름다움 그대로 눈앞에 정말로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굴뚝에서 바람이 울부짖을 때면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열망을 억누르지 못했던 것처럼, 이제 나무들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을 더는 억누를 수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서 불로뉴 숲을 지나 트리아농으로 향했다. 그때는 불로뉴 숲이 아마도 가장 여러 모습을 띠는 시각이자 계절이었으니, 그때가 가장 잘게 나뉘는 때이기도 하려니와, 여느 때와 다른 방식으로 나뉘기 때문이었다. 나무가 없는 부분에서조차, 지평이 넓게 트인 그곳에서, 여기저기, 이제 잎을 떨구었거나 아직 여름 잎을 그대로 간직한 어둡고 먼 나무 덩어리를 배경으로, 주황빛 도는 붉은 밤나무 두 줄이, 마치 이제 막 시작한 그림 속에서, 아직 나머지에는 아무 색도 입히지 않은 화가가 지금껏 칠해 놓은 유일한 것인 양 서 있었고, 훤한 대낮에 그 회랑을 내어 주며, 뒷날 그림에 더해질 인간 군상이 무심히 거닐 자리를 마련해 두는 듯했다.

좀 더 멀리, 나무들이 아직 온통 푸른 어느 곳에서는, 작고 볼품없이 뭉툭하게 가지치기당한, 그러나 끈질기게 버티는 나무 한 그루만이 홀로 미풍에 붉은 갈기를 흉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 잎사귀들의 오월이 처음 깨어나는 모습이 눈에 띄었으니, 미소 짓는 기적처럼, 겨울에 꽃핀 붉은 산사나무처럼, 어느 담쟁이덩굴의 잎들이 바로 그날 아침 이를테면 한꺼번에 ‘피어나’ 있었다. 그리하여 불로뉴 숲은, 어떤 식물학적 목적에서든 축제 준비에서든, 아직 뽑혀 다른 데로 옮겨지지 않은 흔한 나무들 사이에, 환상적인 잎사귀를 단 몇몇 진귀한 표본을 심어 놓아, 그 표본들이 저마다 둘레에 빈자리를 틔우고, 자리를 내고, 바람을 통하게 하고, 빛을 퍼뜨리는 듯한, 묘목장이나 공원의 한때뿐인, 미완의, 인공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때는 불로뉴 숲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저마다 다른 특색을 드러내고, 더 많은 뚜렷한 요소들을 하나의 복합된 전체 속에 그러모으는 시절이었다. 그것은 또한 그런 시각이기도 했다. 나무들이 아직 잎을 간직한 곳에서는, 아침 이 시각에도 여전히 거의 수평으로 비쳐 드는 햇빛이 닿는 지점부터 그 잎들이 제 본바탕을 바꾼 듯 보였는데, 몇 시간 뒤, 막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그 햇빛은 다시 등불처럼 타올라, 잎사귀들 위로 멀리까지 따스하고 인공적인 광채를 던지고, 제 불타는 우듬지 아래로는 여전히 그대로인, 타지 않는 어둑한 촛대 같은 나무의 맨 꼭대기 몇 가지에 불을 지피곤 했다. 어느 지점에서는 빛이 벽돌담처럼 단단해져, 파랑으로 무늬 넣은 노란 페르시아 벽돌 세공처럼, 밤나무 잎들을 하늘에다 거칠게 발라 놓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잎들이 곱슬곱슬한 금빛 손가락을 뻗어 올린 그 하늘로부터 그 잎들을 오려 내었다. 야생 포도 덩굴을 두른 어느 나무의 줄기 중턱에, 빛은 붉은 꽃인 듯한, 어쩌면 새로운 품종의 카네이션인 듯한, 너무 눈부셔 또렷이 알아볼 수 없는 거대한 꽃다발 하나를 접붙여 피워 놓았다. 여름이면 그 한결같은 초록의 짙음과 단조로움 속에 그토록 쉽사리 뒤섞이던 불로뉴 숲의 서로 다른 부분들이, 이제는 또렷이 나뉘어 있었다. 밝은 빛 한 조각이 그 부분들 거의 하나하나로 다가서는 길목을 알렸고, 그렇지 않으면 화려한 잎사귀 무리가 그 앞에 군기(軍旗)처럼 우뚝 서 있었다. 나는 마치 채색된 지도를 보듯, 아르므농빌, 프레 카탈랑, 마드리드, 경마장, 그리고 호숫가를 가려낼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 아무 뜻 없는 구조물, 가짜 동굴이나 방앗간 따위가 나타났는데, 나무들이 물러서서 그 자리를 내주었거나, 아니면 그것이 잔디밭의 부드러운 초록 단(壇) 위에 얹혀 있었다. 나는 불로뉴 숲이 실은 숲이 아님을, 그것이 제 나무들의 삶과는 무관한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고양된 감정은 가을 빛깔에 대한 감탄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육체적 욕망에서도 비롯한 것이었다. 그 원인을 미처 의식하지도, 그것이 어떤 바깥의 자극에서 온 것이 아님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가슴이 처음으로 느끼는 기쁨의 그 넉넉한 원천이여! 그리하여 나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 나무들을 바라보았으니, 그 갈망은 나무들을 넘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나무들이 날마다 몇 시간씩 틀에 담아 두던 아름다운 산책 여인들의 그 걸작을 향해 뻗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아카시아 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숲 덤불을 지났는데, 아침 빛이 그 덤불을 새로운 구획으로 쪼개며 나무들을 가지치기하고 다듬어, 서로 다른 줄기들을 짝지어 주고, 가지들로 꽃다발을 엮었다. 빛은 한 쌍의 나무를 제 쪽으로 능란하게 끌어당겨, 빛과 그림자라는 날카로운 끌을 솜씨 좋게 놀려, 저마다의 줄기와 가지에서 그 절반을 깎아 내고, 남은 두 절반을 하나로 엮어, 둘레의 빛으로 윤곽이 잡힌 하나의 그림자 기둥으로 빚어내거나, 인공적이고 떨리는 그 윤곽이 먹빛 그림자의 그물에 둘러싸인 하나의 빛나는 환영으로 빚어내곤 했다. 한 줄기 햇살이 가장 높은 가지들을 금빛으로 물들일 때면, 그 가지들은 반짝이는 물기에 흠뻑 젖어 여전히 방울져 떨어지며, 온 덤불이 바닷속에라도 잠긴 듯 담겨 있던 그 액체 같은 에메랄드빛 대기에서 저희만 홀로 솟아오른 듯 보였다. 나무들은 제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계속 살아갔으니,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그 생명력은, 줄기를 뒤덮은 초록 벨벳의 보풀에서, 혹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 해와 달처럼 둥글게, 포플러 맨 꼭대기 가지까지 흩뿌려진 겨우살이 구체(球體)들의 하얀 에나멜빛에서 한층 더 환히 빛났다. 그러나 이제 그토록 여러 해 동안, 일종의 접붙이기로 여성 인류의 삶을 나누어 지도록 떠밀려 온 그 나무들은, 저희 가지 아래로 지나가는 그녀를 감싸 주던, 저 걸음도 가볍게 총총히, 화사한 빛깔로 걸어가는 드리아드, 그 아리따운 속세의 여인의 모습을 내 마음에 불러왔고, 저희가 그러하듯 계절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나무들은, 내가 젊고 믿음을 품었던 행복한 날들을, 무심하고도 너그러운 가지 아래에서 여성적 우아함의 걸작들이 잠깐씩 화신(化身)하던 그 자리로 열망에 차 달려가던 그 나날을 내게 되새겨 주었다. 그러나 불로뉴 숲의 전나무와 아카시아가 내게 그리워하게 만든 그 아름다움은, 그런 점에서 내가 보러 가던 트리아농의 밤나무와 라일락보다 한층 더 마음을 뒤흔들었는데, 그것은 어느 역사적 시대의 유물 속에도, 예술 작품 속에도, 금빛 잎맥이 도드라진 가을 낙엽을 제물로 쌓아 올린 어느 작은 사랑의 신전 문 앞에도, 나 자신 바깥 어딘가에 붙박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호숫가에 이르렀고, 비둘기 사격장까지 걸어 나아갔다. 그 다른 시절, 나는 내 안에 지닌 완벽함의 관념을 빅토리아 마차의 그 높다란 차체에, 날개 돋친 말벌처럼 광포하고도 가벼운 그 말들의 여윈 몸매에, 디오메데스의 잔혹한 준마처럼 핏발 선 눈에 부여했었다. 그리고 이제, 여러 해 전 바로 그 길들을 따라 나를 내몰던 갈망만큼이나 뜨거운, 한때 사랑하던 것을 다시 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나는 그것들이 내 눈앞에 되살아나기를 바랐다, 그림 속 성 게오르기우스만큼이나 앳되고 제 주먹만 한 마부 아이의 시중을 받는 스완 부인의 거구의 마부가, 그 강철 편자를 박은 나는 듯한 날개가 우렛소리를 내며 땅을 박차는 그 기세를 다잡으려 애쓰던 그 순간에. 아아! 이제는 콧수염을 기른 정비공이 저마다 모는, 곁에는 키 큰 마부가 우뚝 선 자동차들뿐이었다. 나는, 여인들의 이마를 두른 화관에 지나지 않아 보일 만큼 챙이 낮은 그 작은 모자들이, 정말로 기억의 눈에 비친 것만큼이나 어여쁜지 알고 싶어, 그것들을 내 육신의 눈앞에 붙들어 두고 싶었다. 이제 모자들은 하나같이 거대했고, 온갖 과일과 꽃과 갖가지 새로 뒤덮여 있었다. 스완 부인이 왕비처럼 거닐던 그 고운 드레스 대신, 타나그라풍 주름을 잡은 그레코색슨 튜닉이, 혹은 이따금 디렉투아르 양식으로, 벽지 무늬처럼 꽃을 흩뿌린 ‘리버티 시폰’이 나타났다. 렌 마르그리트 길에서 스완 부인과 나란히 거닐 자격이 있었을 법한 신사들의 머리에서, 나는 옛날의 그 회색 ‘실린더’ 모자도, 다른 어떤 모자도 찾지 못했다. 그들은 맨머리로 불로뉴 숲을 거닐었다. 이 새로운 구경거리의 요소들을 모두 보면서, 나는 이제, 그것들에 씌워 주었더라면 일관성과 통일성과 생명을 부여했을 그 믿음을 더는 지니지 못했다. 그것들은 흩어진 순서로, 아무렇게나, 아무런 실재도 없이, 그 자체에는 옛날처럼 내 눈이 거기서 뽑아내어 한 폭의 그림으로 엮어 보려 했을 아름다움이라곤 하나도 담지 못한 채 내 앞을 지나갔다. 그것들은 그저 여자들일 뿐이었고, 나는 그들의 우아함을 믿지 않았으며, 그들의 옷차림도 내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하나의 믿음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는, 이제 우리에게서 잃어버린 그 힘, 새로운 현상들에 실재성을 부여하던 그 힘의 부재를 가리려는 듯 갈수록 더 뜨겁게, 한때 우리의 믿음이 생명을 불어넣던 옛것들에 대한 우상숭배 같은 집착이 살아남는다. 마치 신성의 불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 믿음 속에 깃들어 있기라도 했다는 듯, 그리고 우리의 지금의 불신에는 어떤 우연한 원인, 곧 신들의 죽음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