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끔찍해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 자동차들이 옛날의 쌍두마차만큼 멋지다고 정말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하기야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이제 너무 늙었으니.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천으로 짓지도 않은 옷에 제 몸을 옭아매는 세상에 어울리도록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붉게 물든 잎사귀들의 섬세한 무늬 아래 모이곤 하던 그 무리가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한때 그 나뭇가지들이 틀에 담아 내던 그 그윽한 것을 천박함과 어리석음이 밀어냈다면, 이 나무들 사이를 거닌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 끔찍해라! 이제 우아함의 기준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내 위안은 지난날 내가 알던 여인들을 떠올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새장이나 화단에서 약탈한 것들을 잔뜩 쌓아 올린 모자 아래로 저 끔찍한 것들이 뒤뚱뒤뚱 지나가는 꼴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몸에 꼭 맞는 라일락빛 보닛을 쓰거나, 혹은 붓꽃 한 송이가 머리 위로 빳빳이 솟은 자그마한 모자를 쓴 스완 부인의 모습에 어렸던 그 매력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겨울 아침이면, 수달피 외투를 걸치고, 자고새 깃털 두 개가 칼날처럼 삐죽 솟은 털모자를 쓴 스완 부인을 걸어가다 마주치던 그때, 그러나 그저 가슴에 짓눌리듯 꽂힌 제비꽃 한 다발만으로도 넌지시 드러나던, 그녀 자신의 집이 지닌 그 의도된 인공의 온기에 감싸인 그녀를 마주치던 그때, 내가 느끼곤 하던 그 감정을 내가 과연 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을까? 잿빛 하늘과 얼어붙은 대기와 벌거벗은 가지들을 배경으로 생생하고도 푸르게 피어난 그 제비꽃들은, 계절과 날씨를 한낱 배경으로 삼아, 실은 어떤 인간적인 대기 속에, 이 여인의 대기 속에 살아가는, 그 매혹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었으니, 그것은 마치 그녀의 응접실 화병과 꽃단지 속에, 활활 타오르는 난롯가에, 비단 씌운 소파 앞에서, 닫힌 창 너머로 내리는 눈을 내다보던 그 꽃들과도 같았다. 그러나 옷차림만이 그 아득한 시절과 여전히 같아서는 내게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전체적인 인상을 이루는 서로 다른 부분들, 우리의 기억이 균형 잡힌 하나의 전체로 간직하여 그 어느 조각도 덜어 내거나 마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그 부분들을 함께 묶는 그 결속 때문에, 나는 그런 여인들 가운데 하나와 더불어, 어둡게 칠한 벽의 작은 집에서(이 이야기의 첫머리가 끝나는 해의 이듬해까지도 스완 부인의 집은 여전히 그러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하루의 나머지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벽을 배경으로, 11월 저녁의 어스름 속에 그녀의 국화들이 주황빛 불꽃으로, 붉은 연소로, 분홍과 흰빛으로 일렁이며 빛났을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즐거움을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그런 순간들과 비슷한 순간에.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비록 아무 결실도 없었으되, 그 순간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이었던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기억 속의 그 순간들을 다시 찾으려 했다. 아아! 이제는 온통 흰 페인트를 칠하고 파란 에나멜 수국을 놓은, 루이 16세 양식으로 꾸민 아파트들뿐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제 훨씬 뒤늦게야 파리로 돌아왔다. 내가 다시는 그 치명적인 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어느 아득한 시대, 시간 속 어느 날에 속한다고 느껴지던 그 기억의 요소들을, 한때 헛되이 좇던 즐거움만큼이나 이제는 다다를 수 없게 되어 버린 그 갈망의 요소들을 나를 위해 되살려 달라고 부탁했더라면, 스완 부인은 어느 시골집에서 2월이 되기 전에는 파리에 오지 않겠다고 편지를 써 보냈으리라. 그리고 나는 또한 그들이 같은 여인들이기를, 곧 내가 아직 믿음을 품고 있던 시절, 나의 상상이 저마다 낱낱이 구별하고 저마다에게 하나의 전설을 붙여 주었기에 그 옷차림이 내 흥미를 끌던 바로 그 여인들이기를 바랐으리라. 아아! 아카시아 가로수길, 그 도금양 길에서, 나는 그들 가운데 몇을 다시 보기는 했으나, 이제는 늙어 버려, 지난날 저희 모습의 스산한 유령에 지나지 않은 채, 무엇을 그리 애타게 찾는지 하늘만이 알 그 무언가를 찾아, 베르길리우스풍의 숲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건만, 나는 여전히 인적 없는 오솔길에 부질없이 물음을 던지며 서 있었다. 해의 얼굴은 가려졌다. 자연이 다시금 불로뉴 숲을 다스리기 시작하여, 그곳이 여인의 엘리시온 정원이라는 관념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값싼 풍차 위로 진짜 하늘이 잿빛으로 드리웠고, 바람은 진짜 호수처럼 그랑 락의 수면을 잔물결로 주름 잡았으며, 큰 새들이 진짜 숲 위를 날듯 불로뉴 숲 위를 재빨리 스쳐 날아, 날카로운 울음과 함께 큰 참나무들 위로 하나씩 하나씩 내려앉았다. 그 참나무들은 드루이드풍의 관을 쓰고 도도나풍의 위엄을 지닌 채, 이 낯설어진 숲의 인적 끊긴 텅 빔을 선언하는 듯했고, 기억 속에 갈무리된 그림들을 실재에서 찾으려 드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내게 깨우쳐 주었다. 그 그림들은 기억 그 자체에서, 그리고 감각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매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니. 내가 알던 그 실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스완 부인이 같은 차림으로 같은 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가로수길 전체가 뒤바뀌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알던 장소들은 이제 우리 편의를 위해 그것들을 그려 넣은 공간이라는 작은 세계에만 속할 뿐이다. 그 어느 것도 그 시절 우리 삶을 이루던 잇닿은 인상들 사이에 끼인 한낱 얇은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형태에 대한 회상이란 어떤 한순간에 대한 아쉬움일 따름이니, 집도, 길도, 가로수길도, 아아, 세월만큼이나 덧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