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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부인 댁에서 ②

2권 제1부 · 스완 부인 댁에서

“On dit qu’un prompt départ vous éloigne de nous, Seigneur…”

나는 그 시구들을, 인쇄된 지면 위에 흑백으로만 옮겨진 소박한 복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벼르던 여행이 마침내 이루어지기라도 하듯, 이제 그것들이 황금빛 목소리의 대기와 햇살 속에 잠겨 생생히 살아난 모습을 마침내 보게 되리라는 생각에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베네치아의 카르파초, 페드르의 라 베르마, 이들 회화와 연극의 걸작은 거기 서린 매혹과 위엄으로 말미암아 내게 그토록 생생한, 다시 말해 그토록 나눌 수 없는 하나였기에, 만일 누군가 나를 루브르의 어느 전시실로 카르파초를 보러 데려갔거나, 들어 본 적도 없는 어떤 작품 속의 라 베르마를 보러 데려갔더라면, 나는 수천 번 꿈꾸어 온 그 유일하고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상 앞에 마침내 눈을 크게 뜨고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그 감미로운 경이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라 베르마의 연기에서 어떤 고귀함과 비극적 슬픔의 계시를 얻으리라 기대하며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녀의 연기에 담긴 위대함과 진실이 무엇이든, 그 여배우가 그것을 참된 값어치를 지닌 작품 위에 실어낸다면 한결 드높아지리라고, 그러지 못하면 결국 흔해빠지고 천박한 바탕천 위에 진실과 아름다움의 무늬를 수놓는 데 지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끝으로, 내가 새로운 작품 속의 라 베르마를 보러 간다면 그녀의 예술과 대사법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으니, 이미 익숙하지 않은 대본과, 그녀가 억양과 몸짓으로 거기에 보태는 것을 나로서는 가려낼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보태진 것이 내게는 마치 작품 자체에 본디 깃들어 있는 양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내가 줄줄 외고 있는 옛 희곡, 곧 고전들은, 나의 살핌을 위해 미리 비워지고 마련된 드넓고 텅 빈 벽처럼 내 앞에 나타났으니, 라 베르마가 마치 프레스코를 그리듯 언제나 새로운 영감의 보물로 그 벽을 뒤덮는 그 솜씨를 나는 거리낌 없이 음미할 수 있을 터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몇 해 전부터, 큰 극장들을 떠나 자기가 ‘주연’을 맡은 큰길가의 어느 극장을 흥행시키느라 고전 배역에는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나는 부질없이 광고판을 훑었지만, 거기에는 그때그때 유행하는 작가들이 오로지 그녀를 위해 써 준 최신 작품들만 나붙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신년 연휴 주간의 낮 공연을 찾으려고 공연 안내란을 뒤적이던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아마 별것 아닐 개막극 다음, 곧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줄거리의 온갖 세부가 그 안에 잠재해 있어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던 그 개막극 다음에, 전단 맨 아래에 베르마 부인이 나오는 페드르 이막(二幕)과, 그 뒤 며칠 오후에는 드미몽드, 마리안의 변덕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이름들은 페드르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투명해서 오직 빛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니, 그 작품들이 어찌나 익숙했던지 예술의 밝히는 미소가 그 밑바닥까지 환히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공연들의 프로그램 아래, 초기 배역들 가운데 몇을 골라 관객 앞에 다시 서기로 마음먹은 이가 바로 그녀라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을 때, 그 이름들은 내게 베르마 부인 자신마저 새로운 고귀함으로 감싸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떤 무대 배역들이 초연의 새로움이나 재공연의 성공을 넘어서까지 살아남는 흥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연기한 그 배역들을, 오래전 그 속의 그녀를 흠모했던 세대나 아직 한 번도 그 속의 그녀를 보지 못한 세대의 눈앞에 내놓아 보이면 뜻깊을, 박물관의 진열품처럼 여겼다. 그저 하룻저녁 심심풀이로나 여겨질 연극들의 목록 한복판에, 다른 것들보다 길지도 않고 활자가 다르지도 않은 이 페드르라는 제목을 이렇게 내걺으로써, 그녀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탰다. 마치 안주인이, 다 함께 만찬장에 들기 전에 손님을 다른 손님들에게 인사시키면서, 그저 손님의 이름일 뿐인 이름들이 죽 이어지는 가운데, 아무렇지도 않게, 목소리의 가락 하나 바꾸지 않고 이렇게 흘리듯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아나톨 프랑스 입니다.”

나를 진찰하던 의사는, 나에게 여행을 금했던 바로 그 의사였는데, 부모님께 나를 극장에 보내지 말라고 일렀다. 그 뒤엔 다시 앓아누울 테고, 어쩌면 몇 주씩 그럴 것이며, 결국 그 경험에서 즐거움보다 괴로움을 더 얻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런 볼거리에서 기대한 것이 그저 즐거움뿐이어서, 뒤따르는 괴로움으로 그 즐거움을 그만큼 상쇄해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런 두려움만으로도 나를 말리기에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공연에서 요구한 것은,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발베크 여행이나 베네치아 여행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즐거움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그것은 내가 사는 세계보다 더 참된 세계에 속하는 일련의 진리들로서, 한번 손에 넣기만 하면, 설령 몸의 괴로움을 불러오는 것일지라도, 내 무위한 삶의 그 어떤 하찮은 사건으로도 두 번 다시 내게서 앗아 갈 수 없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공연 동안 내가 느낄 즐거움이란, 이 진리들을 알아차리는 데 어쩌면 반드시 따르게 마련인 형식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다만, 나에게 예고된 그 병이 연극이 끝나기 전에는 시작되지 않아, 내 즐거움이 조금도 훼손되거나 망가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나는 부모님께 애원했다. 의사가 다녀간 뒤로 부모님은 나를 페드르에 보내려는 마음이 더는 없으셨던 것이다. 나는 온종일 혼자서,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대사를 되뇌었다.

“On dit qu’un prompt départ vous éloigne de nous…”

거기에 담을 수 있는 온갖 억양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라 베르마가 그 시구를 읊는 데서 찾아냈을 방식에 내가 얼마나 놀랄지를 한결 잘 가늠해 보려는 것이었다. 내 시선에서 그녀를 가리는 장막 뒤에, 지성소처럼 감춰진 채, 그 장막 너머로 나는 순간순간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을 입혔으니, 질베르트가 나를 위해 구해다 준 소책자 속 베르고트의 말들 가운데 어느 것이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느냐에 따라, 곧 ‘조형적 기품’이냐, ‘그리스도교적 준엄함’이냐 ‘얀센주의적 창백함’이냐, ‘트로이젠과 클레브의 공주’냐 ‘미케네 비극’이냐, ‘델포이의 상징’이냐, ‘태양 신화’냐에 따라 그러했다. 라 베르마의 연기가 밤낮으로 내게 드러내 보여 줄 그 신성한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불 밝혀진 제단 위에서, 내 마음의 성소에 좌정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지금은 그녀의 보이지 않는 형상이 자리한 바로 그곳에, 장막을 벗은 그 여신의 완전함을 영원토록 모실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내 마음 자신이 아니라, 엄격하고도 변덕스러운 내 부모님이었다. 그리고 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상에 눈을 붙박은 채,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식구들이 내 앞에 세워 놓은 장벽을 넘어서려 애썼다. 그러나 마침내 그 장벽이 무너져, 어머니가, 하필 이 낮 공연이 아버지가 노르푸아 를 저녁 식사에 모셔 오기로 약속한 그 위원회 회의와 겹치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좋다, 우리도 네가 속상해하는 건 바라지 않으니, 네가 그렇게 즐거울 것 같거든 가려무나. 그뿐이다”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때껏 금지되고 이룰 수 없던 이 극장 나들이 날이 이제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달리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이 더는 불가능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달리지 않게 되자, 과연 그것이 바랄 만한 일인지, 부모님의 금지 말고도 내 계획을 접게 할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선, 그때껏 나는 부모님의 매정함을 미워해 왔건만, 이제 그분들의 허락은 그분들을 내게 더없이 소중한 이들로 만들어서, 그분들께 아픔을 안겨 드린다는 생각이 나 또한 아픔으로 찔렀으니, 그 아픔을 통해 삶의 목적은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사랑과 자애의 추구로 드러났고, 삶 자체도 오직 부모님이 기뻐하시느냐 슬퍼하시느냐에 따라서만 좋게도 나쁘게도 보였다. “엄마가 마음이 아프시다면 저는 차라리 안 갈래요.” 나는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도리어, 당신이 내 나들이를 뉘우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두려움을 내 마음에서 몰아내려 무진 애를 쓰셨으니, 그런 두려움은 그러잖으면 내가 페드르에서 얻을 즐거움을 망칠 것이며, 애당초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젓번 결정을 뒤집도록 만든 것이 바로 내 즐거움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보니, 공연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이런 종류의 의무가 나에게는 몹시 짐스럽게 여겨졌다. 게다가, 만일 내가 앓아서 돌아온다면, 연휴가 끝나 질베르트가 돌아오는 대로 샹젤리제에 나갈 수 있을 만큼 제때에 다시 나을 수 있을까? 어느 길을 택할지 정하려고, 나는 이 모든 이유에 맞세워, 저 장막 뒤에 보이지 않게 감춰진 라 베르마의 완전함이라는 관념을 올려놓았다. 나는 저울의 한쪽 접시에 ‘엄마를 슬프게 하기’, ‘샹젤리제에 못 나갈 위험 무릅쓰기’를 얹고, 다른 쪽 접시에 ‘얀센주의적 창백함’, ‘태양 신화’를 얹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 말들 자체가 내 마음의 눈앞에서 어둑하고 흐릿해져, 내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게 되고 온 힘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차츰 나의 망설임은 어찌나 괴로워졌던지, 이제 와 내가 극장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망설임을 끝내고 그것으로부터 단번에 벗어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내 괴로움에 끝을 지어 주는 일이 되었을 터이니, 나는 이제 더는 어떤 지적인 축복을 기대하며 완전함의 매력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지혜의 여신에게가 아니라, 장막 뒤에서 그 여신을 슬며시 대신하게 된, 이목구비도 이름도 없는 저 준엄하고 무자비한 신에게로 이끌려 가도록 나 자신을 내맡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문득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라 베르마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새로운 자극을 받아, 나는 낮 공연이 다가오기를 애타게, 또 기쁘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공연 전단이 나붙는 그 기둥 앞으로, 요즘 들어 주상고행 성인의 그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나의 나날의 자리를 지키러 갔다가, 나는 거기서, 방금 처음으로 나붙어 아직 축축하고 쭈글쭈글한 페드르의 전단 전체를 보았던 것이다(고백하건대, 그 전단에서 나머지 출연진은 내 결단에 보탬이 될 만한 어떤 매력도 더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 전단은, 나의 망설임이 오가던 두 지점 가운데 하나에, 한결 더 또렷하면서도, 그 전단의 날짜가 내가 그것을 읽는 날이 아니라 공연이 열릴 날, 그것도 막이 오를 바로 그 시각으로 적혀 있었던 만큼, 거의 코앞에 닥친, 이미 실현을 향해 한창 나아가고 있는 형태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나는, 바로 그날, 바로 그 시각에 내가 그 자리에 앉아 라 베르마의 목소리를 들을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둥 앞에서 기뻐 펄쩍 뛰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이제 할머니와 나를 위해 좋은 자리 두 개를 제때 잡지 못하실까 봐 겁이 나서, 나는 내 마음속에서 이제 ‘얀센주의적 창백함’과 ‘태양 신화’를 대신하게 된 그 마법의 문구에 채찍질당하듯 떠밀려 집으로 내달렸다. “모자를 쓴 부인은 일층 앞자리 입장 불가. 문은 두 시에 닫힙니다.”

아아! 그 첫 낮 공연은 쓰디쓴 실망이 되고 말 터였다. 아버지는 위원회로 가는 길에 할머니와 나를 극장에 내려 주겠다고 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 우리에게 근사한 만찬을 차려 주오. 잊지 마시오, 내가 노르푸아를 데리고 올 테니.” 어머니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종일, 또 밤새도록, 프랑수아즈는 자신이 참으로 능란한 대가였던 그 부엌의 예술에 헌신할 기회를 기뻐하며, 게다가 새 손님을 대접하게 되었다는 전망에 더욱 고무되어, 자기만 아는 방법으로 젤리에 굳힌 소고기 요리를 지어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채, 창조의 열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자기 작품의 짜임에 들어갈 재료의 본바탕 품질에 더없는 중요성을 두었던 터라, 그녀는 미켈란젤로가 율리우스 2세의 기념비에 쓸 가장 완벽한 대리석 덩이를 고르느라 카라라의 산중에서 여덟 달을 보낸 것처럼, 최고의 우둔살과 사태와 송아지 족을 구하러 몸소 레 알 시장으로 갔다. 프랑수아즈가 이 오감에 어찌나 열정을 쏟았던지, 어머니는 그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보고서 우리 늙은 하녀가 피에트라산타의 채석장에서 메디치가 영묘를 만든 조각가처럼 과로로 병이 나지나 않을까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밤사이 프랑수아즈는, 톱밥에 싸인 분홍빛 대리석 덩이처럼 빵가루로 감싼, 그녀가 “네브욕 햄”이라 부르는 것을 빵집 화덕에 구워 오도록 보냈다. 언어가 실제보다 낱말이 빈약하다고 믿고 제 귀도 덜 미덥다고 여겼던 터라, 누군가 요크 햄을 입에 올리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사전이 “요크”와 “뉴욕”을 한꺼번에 실을 만큼 헤플 리는 없다고 여겨,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며 그 햄은 실은 이미 자기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그 뒤로 요크라는 낱말은, 그녀의 귀에서든 광고에서 그것을 눈으로 읽을 때든, 그녀가 “네브”라 발음하는 “뉴”라는 접두어를 늘 앞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더없이 완벽한 확신에 차서 부엌데기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올리다 가게에 가서 햄 하나 사 오너라. 마님이 특별히 네브욕으로 사 오라고 이르셨다.” 바로 그날, 프랑수아즈가 창조적 천재의 불타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내 몫은 진리를 좇는 자의 잔인한 불안이었다. 물론 아직 베르마가 말하는 것을 듣기 전까지는 나도 얼마간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극장 앞에 펼쳐진 작은 광장에서 그 즐거움을 느꼈다. 두 시간 뒤면 그곳에서는 켜진 가스등이 마로니에의 헐벗은 가지의 세세한 얼개를 드러내며 그 가지들을 금속처럼 반짝이게 할 터였다. 매표소의 안내인들 앞에서도 그러했는데, 그들의 채용과 승진과 온갖 운명은 그 위대한 예술가에게 달려 있었다. 하루살이 같은 지배인들이 어둑한 계승 속에서 잇달아 갈리는 그 극장에서 권력을 쥔 이는 오직 그녀뿐이었으니 말이다. 안내인들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표를 받았는데, 베르마 부인의 지시가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봐, 즉 그녀를 위해 삯 박수가 결코 울려서는 안 된다는 것, 그녀가 무대에 오르지 않은 동안에는 창을 죄다 열어 두어야 하고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문이란 문은 모두 꽉 닫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먼지를 가라앉히려고 그녀 가까운 어딘가에 뜨거운 물 한 대접을 감춰 두어야 한다는 것이 도처에서 분명히 이해되지 않았을까 봐,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고 보면 이제 곧, 갈기를 나부끼는 두 필 말이 끄는 그녀의 마차가 극장 밖에 멈춰 설 것이고, 그녀는 모피에 파묻힌 채 마차에서 내려, 저마다의 인사를 못마땅한 듯 받으며, 시종 하나를 보내 친구들을 위한 무대 옆 특별석이 잡혀 있는지, “객석” 쪽 기온이 어떤지, 다른 특별석에는 누가 와 있는지, 프로그램 파는 사람들의 매무새가 말끔한지 알아보게 할 것이었다. 그녀에게 극장과 관객이란 걸쳐 입을 두 번째의, 가장 바깥쪽 외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녀의 재능이 통과해야 하는 매질, 다소간 “좋은” 전도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극장 안에서도 나는 행복했다. 내 어린 상상이 오래 품어 온 그림과는 어긋나게 모두에게 무대는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는 군중 한복판에 끼었을 때처럼 다른 관객들 탓에 무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리라 여겨 왔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와 반대로, 말하자면 모든 관람 행위를 상징하는 어떤 배치 덕분에, 누구나 자신이 극장의 중심이라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으로 나는, 언젠가 프랑수아즈가 맨 위층 관람석에서 어느 통속극을 보러 갔다가 돌아와, 자기 자리가 극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였으며 무대에서 너무 멀기는커녕 도리어 막이 신비롭고도 생생하게 바짝 다가와 있어 정말이지 겁이 났노라고 우리에게 장담하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내려진 그 막 뒤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전 달걀 껍데기 너머로 들리는 것 같은 어수선한 두드림을 가려듣기 시작하자 내 즐거움은 한층 커졌다. 그 소리는 이내 커지더니 별안간, 우리 눈으로는 뚫어 볼 수 없으나 제 눈으로는 우리를 살피던 그 세계로부터, 화성에서 오는 어떤 신호 못지않게 가슴을 울리는, 연이은 세 번의 망치질이라는 위압적인 형태로, 틀림없이 우리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막이 오르자, 무대 위의 조금도 예사로울 것 없는 책상과 벽난로가, 이제 들어설 사람들이 언젠가 어느 야회에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처럼 낭송하러 나온 배우가 아니라, 그저 제 집에서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이며 나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그렇게 엿볼 수 있음을 알려 주었을 때, 내 즐거움은 여전히 이어졌다. 그러다 그 즐거움은 한순간의 불안으로 깨어졌다. 극이 시작되기 전 내가 채비를 갖추어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데, 무대 옆에서 두 사내가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서로 몹시 화가 나 있었던 게 틀림없는데, 어찌나 큰 소리로 이야기했던지 적어도 천 명은 있던 객석에서 우리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정작 아주 작은 카페에서라면 다투는 듯한 두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웨이터를 불러 물어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때, 온통 잠긴 침묵, 이윽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며 깨어지던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이 아무 항의 없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에 놀라 앉아 있던 나는, 그 무례한 자들이 바로 배우들이며 이른바 “개막극”이라 불리는 짤막한 극이 이제 시작된 것임을 깨달았다. 뒤이어 막간이 어찌나 길었던지, 제자리로 돌아온 관객들은 안달이 나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에 겁이 났다. 형사 재판 기사에서, 어느 고결한 사람이 제 이익을 무릅쓰고 무고한 죄수를 위해 증언하러 나온다는 대목을 읽을 때면, 나는 늘 사람들이 그에게 충분히 살갑게 굴지 않을까,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을까, 넉넉히 보답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가 정떨어져 이내 불의의 편에 서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곤 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이 점에서 천재에도 미덕과 같은 성질을 부여하고 있던 나는, 그토록 버릇없는 관객의 무례한 언동에 부아가 난 베르마가 자신의 불만과 경멸을 서투른 연기로 드러내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그 관객 속에서 그녀가, 그 판단에 그녀가 중요성을 두지 않을 수 없을 몇몇 명사를 흐뭇하게 알아보아 주기를 바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분별한 광기로 내가 찾으러 온 그 드물고 여린 인상을 산산조각 내려는 이 발 구르는 짐승들을 애원하듯 둘러보았다. 내 즐거움의 마지막 순간은 페드르의 첫 장면들 동안이었다. 여주인공은 2막의 이 첫 장면들에는 몸소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막이 오르고, 이번에는 붉은 우단으로 된 또 다른 막이 한가운데서 갈라지자(“스타”가 나오는 모든 연극에서 무대의 안길이를 반으로 줄이는 데 쓰이던 막이었다), 뒤쪽에서 한 여배우가 들어왔는데, 그 얼굴과 목소리가 베르마의 것이라고 나는 들었던 터였다. 그렇다면 배역이 바뀌었음이 틀림없었다. 테세우스의 아내 역을 익히느라 들인 온갖 수고가 헛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두 번째 여배우가 첫 번째 여배우에게 응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첫 번째가 베르마라고 여긴 것이 틀렸음이 분명했다. 두 번째가 그녀를 한층 더 닮았고, 앞의 여배우보다 그녀의 발성을 더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고귀한 몸짓으로 각자의 배역을 풍성하게 했는데, 그들이 튜닉의 아름다운 주름을 들어 올렸다 떨어뜨리는 동안 나는 그 몸짓을 생생히 가려볼 수 있었고 대사와의 관계 속에서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때로는 열정적이고 때로는 반어적인 능란한 어조의 변화로도 배역을 풍성하게 했는데, 그 덕에 나는 집에서 그 참뜻에 충분히 유의하지 않은 채 혼자 읽었던 대사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녀의 성소를 가린 붉은 막의 틈새에, 마치 액자 속처럼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두려움과 동시에, 누가 창을 열어 그녀를 언짢게 하거나 프로그램을 부스럭거려 그녀의 대사 하나를 삼켜 버리거나 다른 이들에게 박수를 치면서 그녀에게는 충분히 치지 않아 그녀를 성가시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베르마 자신의 두려움보다 훨씬 더 애타는 그 두려움과 동시에, 그 순간부터 극장과 관객과 연극과 내 몸뚱이마저도 오로지 그 목소리의 억양에 이로운 정도만큼만 의미가 있을 뿐 그 밖에는 아무 중요성도 없는 음향 매질로만 여기는, 베르마 자신의 것보다도 한층 더 절대적인 내 나름의 방식 속에서, 나는 몇 분 동안 감탄하며 보았던 그 두 여배우가 내가 들으러 온 그 여인과는 티끌만큼도 닮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 즐거움은 죄다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녀를 감탄할 근거를, 그녀가 내놓을 그 근거의 부스러기 하나조차 놓치지 않으려고 베르마를 향해 눈과 귀와 정신을 아무리 곤두세워 보아도 헛일이어서, 나는 단 하나도 그러모으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동료들에게서 하듯이 그녀의 발성과 연기에서 지적인 억양이나 아름다운 몸짓조차 가려낼 수 없었다. 나는 마치 페드르를 읽고 있는 듯이, 혹은 그 순간 페드르 자신이 내가 듣고 있는 말을 입 밖에 낸 듯이 그녀의 말을 들었으며, 베르마의 재능이 그 말에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보탠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온전히 탐구하려고, 그 안의 무엇이 아름다운지 알아내 보려고, 그 예술가의 목소리의 억양 하나하나와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내 감각 앞에 얼마 동안 붙들어 두어, 꼼짝 못 하게 세워 두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대사 하나가 나오기 전에 그것을 붙잡으려 주의를 미리 갖추어 맞춰 두는 정신의 민첩함을 부려, 낱말 하나하나와 몸짓 하나하나가 차지하는 그 귀한 시간의 부스러기를 채비하는 데 허비하지 않으려 애썼고, 관찰의 강렬함 덕분에, 마치 혼자서 몇 시간이고 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보려 애썼다. 그러나 그 지속은 어찌 그리 짧던지! 한 소리가 내 귀에 닿기가 무섭게 그 자리는 다른 소리로 밀려났다. 어느 장면에서, 바다를 그린 배경막 앞에서 어떤 무대 장치의 솜씨로 푸르스름한 빛에 잠긴 얼굴 높이까지 팔을 든 채 베르마가 잠시 꼼짝 않고 서 있자, 극장 전체가 박수를 터뜨렸다. 그러나 이미 여배우는 움직였고, 내가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던 그 그림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자신의 오페라글라스를 건네주었다. 다만, 어떤 것의 실재를 믿을 때, 그것을 인공적인 수단으로 보이게 하는 일은 그것이 바로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제 나는 내가 바라보는 것이 더는 베르마가 아니라 확대경에 비친 그녀의 상(像)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페라글라스를 내려놓았지만, 그러자 거리 탓에 작아진, 내 눈이 받아들이는 그녀의 상이 더 정확할 것도 없었다. 두 베르마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였을까? 이폴리트에게 하는 그녀의 대사로 말하자면, 나는 거기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덜 아름다운 배역에서도 그녀의 동료들이 순간순간 내게 드러내 보이던 재기 넘치는 의미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는 분명 그 대사를, 집에서 극을 읽으며 내가 그럭저럭 그려 볼 수 있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놀라운 억양으로 살려 낼 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이노네나 아리시라면 절로 이르렀을 그 높이에 이르지 못했고, 가장 아둔한 비극 여배우조차, 심지어 연기 학교의 학생들조차 그 효과를 놓칠 수 없었을 만큼 두드러진 모순들이 뒤섞여 있던 대목 전체를, 한결같은 가락의 흐름으로 밋밋하게 다듬어 버렸다. 게다가 그녀가 그 대사를 어찌나 빠르게 내달았던지, 그녀가 그 대사 전체에 일부러 부여한 단조로움을 내 정신이 알아차린 것은 마지막 행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다 마침내 관객의 광적인 박수에 자극받아 감탄의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 박수를 그들의 박수에 뒤섞으며, 그 전체의 소리를 길게 늘이려 애썼다. 그리하여 베르마가 고마운 나머지 자신을 뛰어넘고, 내가 그녀의 절정의 날들 가운데 하루에 그녀를 들었노라 확신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대중적 열광의 폭풍이 터져 나온 순간이, 뒤에 알게 되었듯이, 베르마가 자신의 가장 풍요로운 보물 가운데 하나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초월적 실재들은 제 둘레에 온통, 군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채를 내뿜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무슨 큰 사건이 벌어질 때, 먼 국경에서 한 군대가 위기에 처하거나 패하거나 이길 때, 우리가 받아 드는, 식자라면 별 깨달음을 얻지 못할 그 막연하고 엇갈리는 보도들이 군중 속에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감정에 식자는 놀라며, 전문가의 비평이 실제 군사 정황을 그에게 일러 준 뒤에는, 중대한 사건들을 에워싸는, 수백 마일 밖에서도 보일 법한 그 “아우라”에 대한 대중의 지각을 그 감정 속에서 알아보게 된다. 승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 알게 되거나, 아니면 곧바로 문지기의 들뜬 기쁨에서 알게 된다. 베르마의 연기에서 천재의 손길을 발견하는 것도, 그녀를 듣고 일주일 뒤 어느 평론지의 비평에서이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일반석의 우레 같은 갈채에서다. 그러나 군중의 이 즉각적인 알아봄에는 온통 잘못된 백 가지 다른 알아봄이 뒤섞여 있었다. 박수는 흔히 엉뚱한 순간에 터져 나왔고, 게다가 그것은 앞서 있던 박수의 여파로 기계적으로 생겨난 것이기도 했으니, 마치 폭풍우 속에서 바다가 한번 충분히 일렁이고 나면 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한 뒤에도 계속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박수를 칠수록 베르마의 연기가 더 훌륭해지는 것만 같았다. “글쎄 말예요,” 내 곁에 앉은, 그리 신분을 내세울 것 없는 한 여자가 말했다. “저 여자 아주 제대로 보여 주네요, 그렇죠. 저렇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제 몸을 상하게 하지 싶다니까요. 저런 게 연기지, 안 그래요?” 그리고 베르마의 탁월함에 대한 이런 근거들을 찾아낸 것이 기뻤지만, 그 근거들이 그 탁월함을 설명해 주는 정도가, 어느 농부가 조콘다나 벤베누토의 페르세우스를 두고 입을 벌린 채 “거참 잘 만들었네. 죄다 금이잖아, 저것 봐! 근사하지, 안 그런가?”라고 하는 것이 그 걸작들을 설명해 주는 정도보다 나을 게 없다는 의심이 없지는 않았으니, 나는 이 대중적 열광이라는 독한 술을 게걸스레 들이켰다.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으로 막이 내렸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즐거움이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데 실망했지만, 동시에 그 즐거움을 늘이고 싶은, 극장을 나설 때 몇 시간 동안 나의 것이었던 이 무대의 낯선 삶에서 영영 떠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마치 유배라도 떠나듯 그 삶에서 나를 억지로 떼어 내야 할 터였는데, 만일 그 집에서, 페드르 관람을 허락해 준 덕에 이미 신세를 진 그녀의 찬미자, 노르푸아 에게서 베르마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라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나는 만찬 전에 아버지의 소개로 그와 인사했는데, 아버지는 그러려고 나를 자신의 서재로 불러들였다. 내가 들어서자 대사는 일어나 손을 내밀고, 큰 키를 굽혀 인사하며, 그 푸른 눈을 내 얼굴에 유심히 고정했다. 그가 아직 외국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던 시절 그에게 소개되곤 하던 외국 손님들은 (심지어 유명한 가수들까지도) 하나같이 얼마간은 명사였고, 그들을 만날 때면 그는 훗날 파리나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들을 때 뮌헨이나 소피아에서 그들과 보낸 저녁을 완벽히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는 그들과 알게 된 기쁨을 상냥함으로 그들에게 각인시키는 버릇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이에 더해, 유럽 여러 수도의 삶 속에서, 그곳을 거쳐 가는 온갖 흥미로운 인물들과, 또 토박이 주민들의 예절과 풍습에 두루 접하다 보면, 유럽 전역의 지적 흐름에 대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고 확신했던 터라, 그는 새로 만나는 사람마다 그 예리한 관찰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상대하는 이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대번에 가늠하곤 했다. 정부는 얼마 전부터 그에게 해외 직책을 맡기지 않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누군가 그에게 소개되기가 무섭게 그의 눈은, 마치 제 주인의 은퇴를 아직 통지받지 못한 듯이 그 풍요로운 관찰을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그는 온몸의 태도로 낯선 이의 이름이 자기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을 전하려 애썼다. 그리하여 그는 내내, 자신의 방대한 경험을 자각하는 사람다운 무게 있는 태도로 내게 다정히 말을 건네면서도, 마치 내가 어떤 이국의 풍습이나, 유서 깊고 교훈적인 건물이나, 자기 항로 위의 어떤 “별”이라도 되는 양, 슬기로운 호기심으로, 또 제 이익을 위해 나를 뜯어보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는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현자 멘토르의 위엄 있는 자비와 젊은 아나카르시스의 열렬한 호기심을 한꺼번에 보여 주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