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용구를 던진 뒤 드 노르푸아 씨는 말을 멈추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냈는지 보려고 우리 얼굴을 살폈다. 그 효과는 컸으니, 그 속담이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해 ‘진짜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속담은 ‘바람을 심는 자는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를 대신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후자는 ‘프로이센 왕을 위해 헛수고한다’만큼 사철 싱싱한 맛이 없어 한참 쉴 필요가 있던 참이었다. 이 걸출한 인사들의 교양이란 번갈아 드는 것이어서, 세 갈래로 나뉘어 삼 년마다 갈아입는 것까지는 아닐지언정 어쨌든 돌려 쓰는 교양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드 노르푸아 씨가 레뷔에 실은 글을 이런 인용구로 보석처럼 꾸미는 데 뛰어났다 해도, 그 글들이 견실하고 정통해 보이는 데 그런 인용구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인용구가 제공하는 장식이 없더라도, 드 노르푸아 씨가 어느 대목에서 (그는 언제나 빠짐없이 이렇게 썼는데) “세인트 제임스 궁정도 그 위험을 알아차린 마지막은 아니었다”라거나, “가수들의 다리에서는 긴장이 고조되어, 이기적이나 능란한 이중 제국의 정책을 근심 어린 눈으로 좇고 있었다”라거나, “몬테치토리오에서 경보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라거나, 또는 “발플라츠 특유의 저 영원한 이중 거래”라고 써 넣기만 하면 충분했다. 이런 표현들로 문외한 독자는 대번에 de carrière, 곧 정통 직업 외교관을 알아보고 경의를 표하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그 이상이라고, 남다른 교양을 지녔다고 말하게 만든 것은 그의 신중한 인용 솜씨였으니, 그 무렵 그 완벽한 본보기는 여전히 이것이었다. “내게 좋은 정책을 주시오, 그러면 내가 좋은 재정을 드리리다, 루이 남작이 즐겨 하던 말마따나.” 우리가 극동에서 아직 다음 말을 들여오기 전이었으니 말이다. “승리는 상대보다 십오 분 더 버틸 수 있는 편에 있다, 일본인들이 말하듯.” 막대한 문학적 재능이라는 이 평판은, 그가 무관심의 가면 아래 감춰 둔 음모의 확실한 천재성과 어우러져, 드 노르푸아 씨를 윤리정치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게 했다. 그리고 더러는 그가 프랑스 아카데미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으리라 여기기까지 했으니, 러시아 동맹을 더 긴밀히 함으로써만 영국과의 양해에 이르기를 바랄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자 그가 서슴없이 이렇게 써낸 저 유명한 날에 말이다. “케 도르세에서 이 점을 분명히 새길지어다, 이 점에서 불완전해 보이는 모든 지리 교본에서 이제부터 이를 가르칠지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나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친다’라고 말할 줄 모르는 응시자에게는 그 졸업장을 가차 없이 내어 주지 말지어다.”
“요컨대,” 하고 드 노르푸아 씨는 내 아버지를 향해 말을 이었다, “보구베르는 이 일로 자신이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을 훌쩍 넘어서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소. 아시다시피 그는 (근년의 먹구름 같은 세월 뒤였으니 그것만 해도 다행이었을) 제대로 다듬어진 연설 정도를 기대했지 그 이상은 아니었소. 그 자리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린 여러 사람이 내게 장담하기를, 그저 연설문을 읽기만 해서는 그것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곧 대중 연설의 대가이자 그 대목에서 온갖 미묘한 뜻을 낱낱이 강조한 국왕이 놀랍도록 또렷한 발성으로 또박또박 발음했을 때 자아낸 효과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더군. 나는 이와 관련해 작은 일화 하나를 들었는데, 그것은 테오도시우스 왕이 그토록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솔직하고 소년다운 매력을 다시 한번 두드러지게 하는 이야기요. 듣자 하니, 그가 물론 연설의 놀라운 파격이자, 보시다시피 앞으로 여러 해 재상부에서 논란을 부를 그 ‘친연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바로 그 순간, 폐하께서는 그 말에서 자신의 온 노고와, 거의 꿈이라 해도 좋을 것과, 한마디로 원수(元帥)의 지휘봉의 봉인이자 그 위에 씌워진 관을 발견할 우리 대사의 기쁨을 미리 헤아리고서, 보구베르 쪽으로 반쯤 몸을 돌려 외팅겐가 특유의 저 사람을 사로잡는 눈길을 그에게 고정한 채, 더없이 절묘하게 고른 그 말 ‘친연성’, 그야말로 노다지 같은 그 말을, 그 자리의 모두에게 그것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정황을 온전히 알고서 쓰였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어조로 그에게 쏘아 보냈다는 것이오. 듣자 하니 보구베르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는데, 고백하건대 나도 어느 정도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오. 실제로, 전적으로 믿을 만한 어떤 사람이 내게 은밀히 일러 주기를, 만찬이 끝난 뒤 폐하께서 격식 없는 접견을 하시던 중에 보구베르에게 다가가, ‘어떻소, 그대의 제자가 마음에 드시오, 친애하는 후작?’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더군.
“그렇지만 한 가지만은,” 하고 드 노르푸아 씨는 말을 맺었다, “분명하오. 그런 연설 한 번이 두 나라를 가까이 끌어당겨 그 ‘친연성’을 맺는 데는 이십 년의 협상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 말이오. 테오도시우스 2세의 그 생생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소. 원하신다면 그저 한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하겠으나, 그것이 거둔 성공을 보시오, 온 유럽 언론이 그 말을 되뇌는 꼴을, 그것이 불러일으킨 관심을, 그것이 울린 새로운 가락을 말이오. 게다가 그것은 딱 그 젊은 군주다운 방식이오. 그가 날마다 그런 물 좋은 금강석을 캐낸다고까지야 말하지 않겠소. 그러나 준비된 연설에서든, 아니 그보다도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대화에서든, 그가 어떤 날카로운 한마디로 제 성품을 드러내지 않는, 하마터면 ‘제 서명을 새기지 않는’이라 말할 뻔했소만, 그런 일은 참으로 드문 법이오. 이 점에서 나 자신은 어떤 편애의 의심에서도 온전히 자유로운데, 나는 용어상의 온갖 혁신에 단호히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오. 열에 아홉은 더없이 위험한 것들이지요.”
“그렇군요, 마침 며칠 전에 저도 독일 황제의 그 전보가 당신 마음에는 그리 들지 않겠거니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하고 내 아버지가 말했다.
드 노르푸아 씨는 “오, 그 작자 말이오!” 하고 말하려는 듯 두 눈을 하늘로 치켜뜨고는 대답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배은망덕한 짓이오. 그것은 범죄 이상이오. 실책이지요, 그것도 피라미드처럼 어마어마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오! 실로 누군가 그자의 활동에 제동을 걸지 않는 한, 비스마르크를 내쫓은 그 사내는 비스마르크식 정책 전체를 차근차근 뒤엎고도 남을 위인이오. 그다음엔 어둠 속으로의 도약이 있을 뿐이지요.”
“남편이 그러는데, 어느 여름에 선생님께서 그이를 스페인에 데려가실지도 모른다더군요. 그이한테는 참 좋은 일이겠어요. 저도 무척 기쁩니다.”
“아, 그렇소. 그것은 나를 몹시 끌어당기는 생각이오. 여행 계획을 짜며 혼자 즐거워하고 있소이다. 그대와 함께 그곳에 가면 좋겠소, 친애하는 벗이여. 그런데 부인께서는요, 휴가를 어떻게 보내실지 벌써 정하셨소?”
“아마 아들과 함께 발베크에 갈 듯합니다만, 확실치는 않아요.”
“오, 발베크라면 아주 매력적인 곳이오. 나도 몇 해 전에 그 근방에 다녀왔소. 거기에 예쁘장한 작은 별장들을 짓기 시작하던데, 부인도 그곳이 마음에 드실 게요. 한데 무엇 때문에 발베크를 고르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소?”
“아들이 그 근방의 성당들, 특히 발베크 성당을 몹시 보고 싶어 해서요. 거기까지 가는 고단한 여정과 그곳에 머무는 불편이 그 애에게 너무 벅차지 않을까 조금 걱정스러웠지요. 하지만 마침 훌륭한 호텔이 새로 문을 열어서, 그 애가 필요로 하는 온갖 편의를 다 누릴 수 있으리라 들었습니다.”
“그렇소! 그건 내가 적어 두어야겠소. 편안한 호텔이라면 코를 치켜들지 않을 어떤 사람이 있어서 말이오.”
“발베크 성당은 무척 아름답지요,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나는, 발베크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그 예쁘장한 작은 별장들에 있다는 말을 듣고 치민 서글픔을 억누르며 물었다.
“아니, 나쁘진 않소. 허나 랭스와 샤르트르 대성당 같은 그야말로 돌에 박힌 보석에는, 또 내가 보기에 그 모두 가운데 진주라 할 이곳 파리의 생트샤펠에는 잠시도 견줄 수 없소.”
“하지만 발베크 성당은 일부가 로마네스크 양식 아닙니까?”
“아, 그렇소, 로마네스크 양식이지요. 다시 말해 무척 차갑고 생기 없는 양식, 뒷날 고딕 건축가들이 마치 돌을 레이스처럼 다루어 낸 그 우아함과 환상이라곤 어디에도 깃들지 않은 양식이오. 발베크 성당은 그 근방에 가거든 한번 가 볼 만하오. 자못 예스러우니, 비 오는 날 달리 할 일이 없거든 안을 들여다보시구려. 투르빌의 무덤을 보게 될 것이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젯밤 외무부 만찬에는 참석하셨습니까?” 하고 내 아버지가 물었다. “저는 못 갔습니다.”
“아니오,” 드 노르푸아 씨가 미소 지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것을 마다하고 아주 다른 성격의 모임에 갔소이다. 아마 이름은 들어 보셨을 어느 부인, 아리따운 스완 부인과 저녁을 들었지요.” 내 어머니는 무심결의 움직임을 억눌렀는데, 아버지보다 지각이 빨라서 아버지에게는 한참 뒤에야 언짢게 다가올 일을 두고 늘 아버지 몫까지 먼저 놀라곤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닥칠 불쾌한 일은 무엇이든 어머니가 먼저 알아차렸으니, 마치 프랑스의 나쁜 소식이 늘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먼저 알려지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완 부부가 대체 어떤 사람들을 대접하는지 궁금하던 터라, 드 노르푸아 씨에게 거기서 누구를 만났는지 물었다.
“허, 부인, 그 집은 (적어도 내겐 그리 보였는데) 특히 신사분들에게 매력적인 집이오. 어젯밤에도 유부남이 여럿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부인들은 하나같이 몸이 편치 않아 함께 오지 못했더군요.” 하고 대사는 짐짓 좋은 기분으로 감싼 신랄함으로 대답하며, 우리 각자에게 부드럽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눈길을 던졌으나, 실은 그 부드러움과 조심스러움이 그 악의를 누그러뜨리는 듯하면서도 교묘히 더 날카롭게 벼리고 있었다.
“공평을 기하자면,”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여자들도 그 집에 드나든다고 덧붙여야겠소. 다만 스완의” (그는 이것을 ‘스반의’라고 발음했다) “동아리보다는 차라리, 뭐랄까, 공화파 세계에 속한 여자들이지요. 그래도 모를 일이오. 언젠가는 정치 살롱이나 문학 살롱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오. 아무튼 그들은 지금 이대로 무척 흡족한 듯하오. 실은 스완이 제 행복을 조금 지나치게 요란히 떠벌린다는 느낌마저 드오. 그는 다음 주에 자기 내외를 초대한 사람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죄다 일러 주었는데, 굳이 가깝게 지낸다고 자랑할 것도 없는 이들을, 그토록 세련된 사람에게서 보리라곤 놀라울 만큼 절제도 취향도, 거의 재치조차 없이 늘어놓더군요. 그는 ‘우리는 저녁 하루도 비는 날이 없어요!’ 하고 되뇌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그것이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영락없는 벼락출세자처럼 굴었소. 하지만 그는 분명 그런 위인이 아니오. 스완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여자든 남자든 벗이 넘쳐 났으니, 지나치게 대담해 보이지도, 경솔하게 비치고 싶은 마음도 조금 없이 말하건대, 물론 그들 모두가, 아니 다수조차 아니겠으나, 적어도 한 사람, 더없이 지체 높은 어느 귀부인만은 스완 부인과 교분을 트는 것을 매몰차게 마다하지는 않았을 법하다고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소. 그랬더라면 사교계라는 양 떼 가운데 한 마리 이상이 그 부인을 뒤따랐으리라 보아도 무방하지요. 그러나 스완 쪽에서는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 낌새가 전혀 없었던 모양이오.
“이런, 이게 뭐요? 네셀로데 푸딩이라니! 그것마저! 이거 참, 이런 루쿨루스식 성찬을 들고 나면 카를스바트에서 요양이라도 해야겠소.
“어쩌면 스완은 넘어야 할 저항이 너무 크리라 느꼈는지도 모르오. 그 결혼이, 이건 분명한데,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말이오. 그 아내에게 돈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으나, 그건 다 허튼소리요. 어쨌든 그 일은 통째로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았소. 게다가 스완에게는 대단히 부유하고 사교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자리에 있는, 재정적으로 말하자면 실세인 남자와 결혼한 고모가 하나 있소. 그 고모는 스완 부인을 만나기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아예 제 벗들과 지인들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몰아붙이는 운동까지 벌였소. 파리의 점잖은 동아리에 드나드는 누군가가 스완 부인에게 실제로 무례를 범했다는 말은 아니오… 아니오! 천만의 말씀이오! 그 남편이 도전을 받으면 능히 되받아칠 사람이라는 점은 접어 두더라도 말이오. 아무튼 여기에 묘한 구석이 하나 있으니, 그토록 많은, 그것도 그토록 까다로운 사람들과 아는 스완이, 잘 봐줘야 몹시 잡다하다고나 할 사교계에 그토록 엄청난 무게를 두는 것을 보는 일이오. 그를 옛날부터 알던 나로서도, 그토록 잘 자란, 최상류 가문들에서 그토록 편안히 지내는 사람이 체신부 장관의 수석 비서관에게 자기들에게 와 주어 고맙다고 넘치게 인사하며, 스완 부인이 그 부인을 찾아뵈어도 되겠느냐고 묻는 꼴을 보고는, 우습다기보다 놀라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소. 그는 어지간히 유배당한 심정일 게요. 두말할 것 없이 아주 딴 세상이니 말이오. 그래도 나는 스완이 불행하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기야 결혼 전 몇 해 동안 그 여자가 늘 꽤나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그를 협박하려 든 것은 사실이오. 스완이 무엇이든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를 데려가 버리곤 했으니 말이오. 딱한 스완은, 영리하기는 해도 그만큼 순진해서, 아이가 사라진 것을 번번이 우연으로 믿고 사실을 마주하기를 마다했소. 그것 말고도 그 여자가 어찌나 끊임없이 소동을 부렸던지, 목적을 이루고 무사히 결혼하는 날부터는 무엇도 그 여자를 붙들 수 없어 두 사람의 살림이 이 땅의 지옥이 되리라고 다들 내다보았소. 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지요. 사람들은 스완이 제 아내를 두고 말하는 투를 두고 웃곤 하오. 아주 판에 박힌 우스갯거리가 되었지요. 물론, 자기가 다소간 어떤 처지인지를 (몰리에르의 그 대사를 기억하시겠지요) 의식하는 사람이 그것을 urbi et orbi 떠벌리고 다니리라고야 기대할 수 없겠으나, 그렇다 해도 그가 제 아내를 두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내라고 단언할 때 과장하는 구석이 있음을 알아채는 것까지 막지는 못하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만큼 사실에서 멀지는 않소. 그 여자 나름의 방식으로, 아마 모든 남편이 바라 마지않을 방식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오래도록 그 여자를 알아 왔고 결코 숙맥이 아닌 스완이 무엇을 각오해야 할지 몰랐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운데, 그 여자가 그에게 어떤 애정을 품고 있는 듯 보이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소. 그 여자가 바람기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고, 그 점을 두고는 스완 자신도 아내를 탓하지 않는데, 짐작하시다시피 여전히 나불대기를 그치지 않는 인정 많은 입방아를 믿는다면 그렇소. 하지만 그 여자는 그가 자기를 위해 해 준 일에 분명 고마워하고 있고, 곳곳에서 그 반대를 걱정하던 것과 달리 성미도 천사같이 누그러진 듯하오.”
이 변화는 어쩌면 드 노르푸아 씨가 짐짓 여기는 것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오데트는 스완이 자기와 결혼해 주는 데 언젠가 동의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어떤 한량이 방금 제 정부와 결혼했다는 그 넌지시 던지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그녀는 그가 얼음장 같은 침묵으로 굳어지는 것을 보았고, 기껏해야, 그녀가 대놓고 그를 몰아세워 “그이가 자기한테 젊음을 온통 바친 여자를 위해 그렇게 해 준 게, 참 곱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면, 그가 무뚝뚝하게 “허나 나는 거기에 잘못된 구석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소. 사람은 저마다 제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하는 법이오.” 하고 대답하는 것을 들을 따름이었다. 실로 그녀는 (그가 화가 났을 때 으르곤 했듯) 그가 자기를 아주 떠나 버리려 한다고 믿기 직전까지 갔으니, 얼마 전 어느 여성 조각가에게서 “남자들이 하는 짓이야 뭐 하나 놀랄 게 없어요, 죄다 짐승 같으니까”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비관의 잠언이 지닌 깊이에 감복한 그녀는 그것을 제 것으로 삼아, 틈만 나면 “어쨌거나 그것도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지. 딱 내 팔자에 맞는 일이고” 하는 뜻을 내비치는 실망한 낯빛으로 되뇌곤 했다. 그러는 사이 그때껏 오데트를 이끌어 온 낙관의 잠언, 곧 “남자들이 반해 있을 땐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죄다 얼간이들이니까!” 하는 잠언에서는 온갖 효험이 다 빠져나가 버렸으니, 그것은 그녀의 얼굴에서 “겁내지 마, 저이는 아무것도 깨뜨리지 않아” 같은 말에 따라붙었을 법한 바로 그 눈꺼풀의 떨림으로 드러나던 잠언이었다. 오데트는 기다리는 동안, 자기보다 스완과 함께 산 세월이 훨씬 짧고 아이도 없이 어떤 남자에게 시집간 뒤 이제는 엘리제궁 무도회 따위에 초대받는 어엿한 처지가 된 어느 벗이 스완의 처사를 어떻게 여길지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드 노르푸아 씨보다 눈 밝은 상담자였다면 필시, 오데트를 모질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수치와 굴욕의 감정임을, 그녀가 내보이는 그 악마 같은 특성이 그녀의 본질도, 돌이킬 수 없는 악도 아님을 알아차렸을 테고, 그리하여 실제로 벌어진 일, 곧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의 규범이 거의 마법 같은 속도로, 날마다 일어나되 결코 본질적이지는 않던 이 괴로운 사달들에 종지부를 찍으리라는 것을 어렵잖게 내다보았을 것이다. 사실상 모두가 그 결혼에 놀랐는데, 이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현상의 순전히 주관적인 본성을, 곧 사랑이 이를테면 세상이 같은 이름으로 아는 그 사람과는 별개인, 새롭고 제삼의, 덧붙은 사람을, 그 구성 요소의 대부분이 사랑하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사람을 어떻게 빚어내는지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기에 우리 눈에 어떤 존재가 띠게 되는 엄청난 크기를, 남들이 보는 그 존재와는 같지 않은 그 크기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길 수 있는 이도 극히 드물다. 그렇긴 해도 오데트에 관한 한 사람들이 이 점만은 헤아려 줄 만도 했으니, 그녀가 비록 스완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이해한 적은 없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가 연구하는 것들의 표제며 온갖 세세한 내용은 꿰고 있어서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이 제 양재사의 이름만큼이나 낯익었다는 점, 그리고 스완 그 사람으로 말하자면, 세상 나머지 사람들은 모르고 지내거나 그저 비웃고 말 그 성품의 결들을, 오직 정부나 누이만이 얻을 수 있는 그 속내를 드러내는 소중한 이미지를 그녀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별난 구석들에, 심지어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고치고 싶어 하는 것들에마저 어찌나 단단히 얽매여 있는지, 오래된 사랑이 가족의 정 같은 달콤함과 힘을 얼마간 지니게 되는 것은, 바로 한 여자가 시간이 흐르며 우리 자신이나 우리 피붙이가 그러하듯 그 별난 구석들을 너그럽고 다정하게 놀리듯 익숙히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다른 한 존재에 묶는 유대는, 그 존재가 우리의 어떤 결함을 두고 우리 자신과 똑같은 시각을 취할 때 그 성별(聖別)을 받는다. 그리고 이 남다른 결들 가운데는, 그의 성품 못지않게 그의 지성에 속하되, 그럼에도 그 뿌리가 성품에 박혀 있던 까닭에 오데트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들도 있었다. 그녀는 스완이 글쓴이가 되어 논고를 펴낼 때면 그 특성들이, 그의 편지나 대화에서는 넘쳐 나던 그것들이 정작 그 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그녀는 그더러 그것들에 더 두드러진 자리를 주라고 재촉했다. 그러고 싶었던 것은 그녀 자신이 그에게서 바로 그런 것들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인데, 다만 그녀가 그것들을 좋아한 것은 그것들이 그를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었으니, 그것들이 그의 글에서도 발견되기를 바란 것은 어쩌면 틀린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는 또한, 그의 글이 더 생기를 얻어 마침내 그에게 성공을 안겨 준다면, 그리하여 그녀 자신도 베르뒤랭가에서 세상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라 배운 것, 곧 살롱을 이룰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결혼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사람들, 자기 경우라면 “내가 몽모랑시 양과 결혼하면 게르망트 씨는 뭐라 생각할까, 브레오테는 뭐라 할까?” 하고 자문할 사람들, 그런 종류의 사교적 이상을 품은 사람들 가운데는, 이십 년 전이라면 스완 자신이, 곧 자키 클럽에 뽑히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그 무렵 화려한 결혼으로 제 지위를 굳혀 파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기대하던 그 스완이 끼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결혼이 당사자의 마음에 그려 주는 환영이란, 모든 환영이 그렇듯, 스러져 아주 사라지지 않으려면 바깥으로부터 양분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그대의 가장 뜨거운 소망은 그대를 모욕한 자를 욕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자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 다시는 그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그대의 원수는 그대에게 더는 티끌만 한 중요성도 지니지 못하게 되리라. 자키 클럽이나 학사원에 뽑히기를 바라게 만들던 그 사람들 모두를 스무 해 동안 보지 못하고 지냈다면, 그 두 단체 가운데 어느 한쪽의 회원이 된다는 전망도 더는 마음을 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은퇴나 병약함이나 개종에 못지않게, 한 여자와의 오랜 관계도 옛 환영을 새 환영으로 갈아 치운다. 스완이 오데트와 결혼했을 때 그의 편에서 사교적 야심을 포기한 일 따위는 없었으니, 오데트가 오래전에 이미, 그 말의 정신적인 뜻에서, 그를 그 야심에서 떼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그가 그렇게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한들, 그의 결혼은 오히려 그만큼 더 칭송받을 만한 일이었으리라. 다소간 유리한 지위를 순전히 사사로운 행복과 맞바꾸는 희생을 뜻하기에, 대체로 ‘있을 수 없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결혼인 법이다. (돈을 보고 하는 결혼을 ‘있을 수 없는’ 결혼에 넣기는 어려운데, 그렇게 제 몸을 판 아내가, 아니 남편마저도, 조만간, 오로지 관례에 힘입어, 또 하도 많은 선례에 기대어, 두 개의 상충하는 잣대를 두지 않으려고, 사교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예는 기록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또 한편으로, 스완의 천성 가운데 삐딱한 면까지는 아니어도 예술가다운 면은, 멘델주의자들이 행하고 신화가 전하는 그런 종(種)의 교잡처럼, 대공비든 창녀든 다른 종족의 존재를 제 짝으로 삼는 데서, 곧 왕가와 연을 맺거나 제 신분보다 낮추어 결혼하는 데서 어떻든 얼마간의 즐거움을 길어 냈을 것이다. 오데트와의 결혼 가능성을 떠올릴 때마다 그가 그 의견을 마음에 둔 사람은 온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그것도 결코 속물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바로 게르망트 공작부인이었다. 반대로 오데트는 그 부인에게는 거의 마음을 두지 않고, 그토록 아득한 하늘이 아니라 제 위치보다 바로 한 단계 위에 있는 사람들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스완이 백일몽 속에서 오데트를 이미 제 아내로 그려 볼 때면, 그는 어김없이 그녀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딸을 데 롬 대공비(머잖아 시아버지가 죽으면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될 부인)에게 인사시키러 데려가는 순간을 그려 보았다. 그는 그들을 다른 어디에도 소개하고 싶지 않았으나, 공작부인이 오데트에게 자기를 두고 할 온갖 말과 오데트가 공작부인에게 할 말을, 공작부인이 질베르트에게 보일 다정함, 그 애를 어여삐 여겨 그로 하여금 제 아이를 자랑스러워하게 만들 그 다정함을, 그들의 실제 말을 스스로 되뇌어 가며 지어낼 때면 그의 마음은 녹아내리곤 했다. 그는 이 인사 자리의 장면을, 사람들이 만약 복권에 당첨된다면 제멋대로 정해 둔 그 상금을 어떻게 쓸까 궁리할 때 보이는 것과 똑같은 정밀함으로, 그 상상 속 세부 하나하나까지 스스로에게 연출해 보였다. 우리의 어떤 결심에 따라붙는 마음속 그림이 그 결심의 동기라 할 수 있는 한, 스완이 오데트와 결혼한 것은 아무도 곁에 없이, 필요하다면 아무도 끝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녀와 질베르트를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인사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자기 아내와 딸을 위해 그가 품었던 이 유일한 사교적 야심이, 하필이면 그 실현이 그토록 절대적인 금제(禁制)로 그에게 막혀 있던 바로 그 야심이었음을, 그리하여 스완이 공작부인은 결코 그들을 알게 될 리 없으리라 믿은 채 죽었음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와 반대로,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스완이 죽은 뒤 오데트며 질베르트와 어울리게 되었음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는, 그토록 사소한 일에 그토록 큰 무게를 둘 수 있었던 만큼, 이 점에서 앞날을 너무 어둡게 그리기보다는, 자기가 더는 그것을 누릴 자리에 없게 되었을 때 저 두 부인의 만남이 정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스스로를 달래는 편이 더 슬기로웠으리라. 조만간 온갖 가능한 결과를, 따라서 가장 있을 법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결과까지도 기어이 빚어내고야 마는 저 더딘 인과의 과정은, 때로 본디 느린 데다, 우리의 조바심(그것은 재촉하려다 도리어 방해할 뿐이다)과 우리의 존재 그 자체 때문에 한층 더 느려져서, 우리가 그것을 더는 바라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어쩌면 더는 살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스완은 제 경험으로 이를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의 삶에는 이미, 이를테면 그가 죽은 뒤에 벌어질 일의 예시(豫示) 같은 것이, 곧 그가 한때 첫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언정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이 오데트와의, 그러나 정작 그가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 스완 안에서 그토록 살기를 갈망했고 오데트와 평생 함께 사는 것을 그토록 단념했던 그 존재가 이미 스러져 버렸을 때 맺은 이 결혼 속에, 죽은 뒤의 행복 같은 것이 있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