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우리가 손님에 대해 자칫 내놓고 싶어질지 모를 어떤 비평이든 미리 막으려는 듯, 어머니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노르푸아 영감은 오늘 저녁 당신 말마따나 꽤 ‘전형적’이었지, 안 그래? 파리 백작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었을 거라고 말할 때는, 당신이 웃음을 터뜨릴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천만에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저는 그만한 지위에, 게다가 그만한 연배의 어른이 그런 소박함을 잃지 않은 걸 보고 흐뭇했는걸요. 그건 정말이지 정직함과 좋은 가문의 증표잖아요.”
“그야 물론이지! 그렇다고 그가 예리하고 분별 있는 지성을 지니지 않은 건 아니야. 나는 그를 잘 알아, 위원회에서 그를 보잖나, 거기서는 여기서와는 아주 딴판이거든,” 아버지가 소리치듯 말했다. 어머니가 노르푸아 씨를 높이 사는 것을 보고 반가웠던 데다, 그가 어머니가 짐작하는 것보다 한층 더 뛰어난 사람임을 설득하고 싶었던 것이니, 다정한 천성은 심술궂은 천성이 벗의 흠을 깎아내리며 얻는 만큼의 즐거움으로 벗의 장점을 부풀리는 법이다. “그가 또 뭐랬더라, ‘대공들에 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법이지’…라고 했던가?”
“네, 바로 그거였어요. 그때도 눈여겨봤는걸요, 참 깔끔한 말이었어요. 그분이 세상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 수 있죠.”
“놀라운 건 그가 스완네와 저녁을 함께했다는 것, 게다가 거기서 꽤 점잖은 사람들을, 심지어 관리들까지 만난 모양이라는 거야. 대체 스완 부인이 무슨 수로 그런 사람들을 낚아챘을까?”
“그가 얼마나 짓궂은 투로 ‘그건 특히 신사분들에게 매력적인 집이지요!’라고 말하던지 눈치채셨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저마다, 노르푸아 씨가 이 말을 내뱉던 그 말투를, 마치 라방튀리에르나 푸아리에 씨의 사위에서 브레상이나 티롱의 어떤 억양을 흉내 내 보려던 것처럼 재현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온갖 말 가운데, 프랑수아즈가 즐긴 만큼 절실하게 음미된 말은 없었으니,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프랑수아즈는, 대사가 그녀를 “일류 요리사”라 평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상기시키면, 어머니가 몸소 그녀에게 전해 준 그 찬사에, 마치 국방장관이 방문한 군주에게서 받은 축사를 대열병 뒤에 공표하듯 전한 그 찬사에, 도무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침 나는 어머니보다 먼저 부엌에 가 있던 참이었다. 전쟁에는 반대하면서도 잔혹했던 프랑수아즈에게서, 잡아야 할 토끼가 쓸데없는 고통을 겪지 않게 해 주겠다는 다짐을 받아 냈는데, 아직 그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터였다. 프랑수아즈는 토끼가 바랄 수 있는 한 평온하게, 아주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노라 내게 장담했다. “그런 짐승은 처음 봐요. 찍소리 한 번 없이 죽던걸요. 벙어리인 줄 알았다니까요.” 짐승의 말에 밝지 못했던 나는, 토끼에게는 어쩌면 병아리 같은 울음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넌지시 말했다. “두고 보시라니까요,” 내 무지를 잔뜩 업신여기며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토끼가 병아리 못지않게 우는지 아닌지. 아니, 훨씬 더 요란한걸요.” 그녀는 노르푸아 씨의 찬사를, 누군가 제 예술에 대해 말을 건넬 때의 예술가가 짓는, 그 당당한 소박함과, 기쁨에 찬, 그리고 (그 순간만이라도) 총명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프랑수아즈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녀를 큰 식당 몇 군데로 보내 거기 요리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오게 했었다. 그날 저녁, 그녀가 그중 가장 이름난 식당들을 한낱 싸구려 밥집으로 깎아내리는 것을 들으며, 나는 오래전 연극배우들에 관해, 그 재능의 서열이 명성의 서열과 조금도 들어맞지 않음을 알았을 때와 똑같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대사님이,”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것만큼 훌륭한 차가운 쇠고기 요리와 수플레를 내는 데는 어디서도 못 봤다고 나한테 그러시더군요.” 프랑수아즈는 겸손한 태도로, 진실에 마땅한 경의를 표하듯 수긍하면서도, “대사”라는 직함에는 조금도 감동한 기색이 없었다. 자기를 요리사로 여겨 준 사람에게 걸맞은 살가움으로 그녀는 노르푸아 씨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양반도 나처럼 사람 좋은 노인네예요.” 그녀는 그가 도착하는 모습을 언뜻 보고 싶어 했으나, 마님이 하인들이 문간이나 창가에 서성이는 걸 질색한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가 망을 보고 있었다는 걸 마님이 다른 하인들이나 문지기에게서 전해 들을까 봐(프랑수아즈는 어디서나 오로지 “시샘”과 “고자질”만을 보았으니, 그것들은 다른 이들에게 예수회나 유대인의 음모가 하는 것과 똑같은, 그 음산하고 끝없는 노릇을 그녀의 상상 속에서 했다), “마님과 말썽을 빚지 않으려고” 부엌 창으로 살짝 엿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고는 노르푸아 씨의 순간적인 모습을 두고, 그녀가 “재바름”이라 일컫던 것 때문에, 게다가 둘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는데도, “르그랑 씨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도 당신만큼 젤리를 잘 만들지 못하는지 그걸 어떻게 설명할래요?” “저야 정말이지 그게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르겠어요,” 프랑수아즈가 대답했다. 그녀는 적어도 몇몇 뜻에서는 “오다”라는 동사와 “되다”라는 동사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세워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온전한 진실은 아닐지언정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 제 젤리나 크림의 우월함을 보장하는 비밀을 드러낼 능력이나 뜻이, 멋쟁이 여인이 제 몸단장의 비결을, 위대한 가수가 제 노래의 비결을 드러낼 능력이나 뜻보다 조금도 더 있지 않았다. 그들의 설명은 우리에게 거의 아무것도 일러 주지 않으니, 우리 집 요리사가 내놓는 조리법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들은 너무 서둘러서 해요,” 그녀가 큰 식당들을 두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한꺼번에 다 익히지도 않고요. 쇠고기가 스펀지처럼 되어야, 그래야 육즙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빨아들이는 거예요. 그래도 어느 카페 한 군데는 요리를 좀 알더라고요. 딱 제 젤리라곤 안 하겠지만, 아주 곱게 만들었고, 수플레에도 크림이 그득했어요.” “앙리네 말이냐?” 아버지가 물었다(이제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아버지는 가용 광장에 있는 그 식당을 무척 좋아해 클럽 만찬 때면 으레 거기 드나들었던 것이다. “아유, 천만에요!” 프랑수아즈가, 속으로 깊은 경멸을 감춘 부드러운 말씨로 말했다. “저는 자그마한 식당을 말한 거예요. 그 앙리네도 다 좋기야 좋지요, 그럼요, 하지만 그건 식당이랄 게 없어요, 차라리 무료 급식소에 가깝죠.” “그럼 베베르네냐?” “아유, 아니에요, 나리, 저는 좋은 식당을 말한 거예요. 베베르네는 루아얄 거리에 있잖아요. 그건 식당이 아니라 술집이에요. 거기서 주는 음식이 제대로 차려지기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식탁보도 없는 것 같던데요. 그냥 ‘먹든지 말든지’ 하는 식으로 앞에 툭 내던지고 마는걸요.” “시로네는?” “오! 거긴 세상 여자들한테 요리를 시키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이란 프랑수아즈에게는 뒷골목 바닥을 뜻했다.) “원 참! 사내들을 끌어들이려면 그런 게 필요하겠지요.” 우리는, 그 온갖 소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아즈가 제 직업의 명사들에게는 가장 시샘 많고 가장 우쭐대는 여배우보다 더 재앙 같은 “동업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녀가 제 예술에 대해 온당한 감정을, 전통에 대한 존중을 지녔음을 느꼈으니, 그녀가 이렇게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제 말은, 아주 훌륭한 가정식 밥상을 차리는 것처럼 보이는 식당이에요. 그것도 제법 규모가 있는 데죠. 손님도 그득하고요. 오, 거긴 동전푼깨나 긁어모았지요.” 셈에 밝은 프랑수아즈는, 씀씀이 헤픈 사람이라면 금화로 셈했을 것을 동전푼으로 셈했다. “마님도 잘 아시는 곳이에요, 저 아래 큰 거리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데요.” 그녀가 이렇듯 자랑스러움과 너그러운 관용을 뒤섞어 이야기한 그 식당은, 알고 보니 카페 앙글레였다.
새해 첫날이 오자, 나는 우선 어머니와 함께 친척 집을 도는 인사를 다녔는데, 어머니는 나를 지치게 하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짜 준 동선의 도움을 받아) 친등의 멀고 가까움보다는 구역별로 미리 그 순서를 짜 두셨다. 그러나 우리와 집이 멀지 않다는 것이 맨 먼저 찾을 명분이던 먼 사촌의 응접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거기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마롱글라세인지 déguisés인지를 선물로 손에 든 채 서 있던 그 사람은, 내 삼촌들 가운데 가장 예민한 분의 절친한 벗으로, 우리가 그분부터 찾지 않았다는 것을 당장 그분에게 달려가 일러바칠 위인이었다. 그러면 그 삼촌은 필경 마음이 상할 터였다. 그분이 보기에는, 우리가 의과대학 거리로 가는 길에 생토귀스탱에 들르기에 앞서, 마들렌에서 그분이 사는 식물원까지 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까.
인사를 다 마치자(할머니는, 그날 저녁 우리가 그 댁에서 저녁을 들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당신을 찾아뵈어야 하는 의무는 면제해 주셨다), 나는 샹젤리제까지 내처 달려가, 우리 단골 가판대 아주머니에게, 스완네에서 생강빵을 사러 일주일에 몇 번씩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건네 달라는 부탁과 함께, 한 통의 편지를 맡겼다. 그 편지는, 내 벗이 나를 그토록 애태우던 날, 새해에 그녀에게 보내리라 마음먹은 것으로, 거기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오랜 우정은 묵은해와 더불어 스러져 가고 있으며, 나는 이제 지난날의 슬픔과 실망을 잊으려 하고, 이 1월의 첫날부터 우리가 다져 갈 것은 새로운 우정, 그 무엇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굳건하고, 질베르트가 애써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지켜 주기를 내가 바랄 만큼 놀라운 우정이며, 우리 둘 중 누구라도 그것을 위태롭게 할 위험의 낌새를 조금이라도 알아채면, 내가 그녀에게 일러 주기로 약속하듯 서로 제때에 일러 주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수아즈는 나를 루아얄 거리 모퉁이에서 멈춰 세우고, 노점 가판에서 제 선물 꾸러미로 쓸 비오 9세와 라스파유의 사진을 골랐고, 나로서는 라 베르마의 사진 한 장을 샀다. 그 여배우가 불러일으키던 헤아릴 수 없는 찬탄은, 그녀가 그것에 응답해야 할 이 하나뿐인 얼굴에 거의 초라하다 할 기색마저 입혔으니, 그것은 “갈아입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옷처럼 바꿀 수도 없고 위태롭기도 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 위에서 그녀는 오로지 윗입술의 자그마한 보조개, 눈썹의 곡선, 그 밖에 늘 똑같은 몇몇 신체의 특징만을 끊임없이 내보여야 했는데, 그나마도 따지고 보면 화상이나 타박상 하나에 좌우될 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얼굴은 그 자체로는 내게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았으나, 그것이 틀림없이 받았을 그 모든 입맞춤 때문에, 나에게 그것에 입 맞추고 싶은 생각을, 따라서 그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앨범 속 제 페이지에서 그 얼굴은, 그 요염하게 부드러운 눈길로, 그 짐짓 순진한 미소로, 여전히 그 입맞춤들을 애원하는 듯했다. 우리의 라 베르마는 페드르라는 인물의 탈을 쓰고 고백하던 그 갈망을, 실은 수많은 젊은이에게 느꼈음이 틀림없으니, 그 갈망을 채우는 일은, 온갖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우고 젊음을 늘려 주던 이름의 매혹마저도, 그녀에게 그토록 손쉽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밤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벽보가 줄지어 붙은 기둥 앞에 멈춰 섰는데, 거기에는 그녀가 1월 1일에 출연하기로 된 작품의 벽보가 붙어 있었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하루의 때요 한 해의 때였다. 나는 문득 예감했다. 새해 첫날이 다른 날들과 다른 날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아직 온전히 남아 있는 어떤 우연으로, 마치 천지창조의 순간처럼, 마치 과거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리고 내가 앞날의 길잡이로 간직해 두었을 법한 표지들과 더불어, 그녀가 이따금 내게 안겨 준 실망마저 지워져 버리기라도 한 듯이, 내가 질베르트와 새삼 사귈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첫날이 아니라는 것을. 옛것에서는 아무것도 남아서는 안 될 새로운 세계, 다만 한 가지, 질베르트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내 소망만은 빼고.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이 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 우주를 제 둘레에 그렇게 다시 세워 주기를 바랐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러니 질베르트의 마음이라고 달라졌을 까닭이 없다고 스스로 일렀다. 나는 이 새로운 우정이 예전 것과 똑같은 것임을 느꼈으니, 마치 새해들이, 그것들을 향한 우리의 소망이 정작 그것들에 가닿아 그것들을 바꿔 놓지는 못하면서도, 그것들 자신도 모르게 저마다 다른 이름을 입혀 주는 그 새해들이, 그 앞선 해들과의 사이에 아무런 경계의 도랑도 두지 않는 것과 같았다. 나는, 원한다면, 이 새해를 질베르트에게 바칠 수도 있었고, 자연의 맹목적인 법칙 위에 어떤 종교 체계를 세우듯, 새해 첫날에 내가 그것에 대해 빚어낸 그 특유의 형상을 새겨 넣으려 애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헛된 일이었다. 나는 느꼈다, 그날이 사람들이 저를 새해 첫날이라 부르는 줄도 알지 못한 채, 내게 조금도 새로울 것 없는 모습으로 겨울 어스름 속을 지나가고 있음을. 벽보 기둥 둘레를 감돌던 그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나는 알아보았고,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으니, 그것은 지난 나날과 세월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실체, 그 낯익은 축축함, 그 무심한 유동성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늙은이들의 새해 첫날을 보낸 셈이었다. 그들이 그날 젊은이들과 다른 것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선물을 주기를 그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새해를 믿기를 그쳤기 때문이다. 선물이라면 나도 분명 받았으나, 나에게 유일하게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는 그 선물, 곧 질베르트의 몇 줄만은 받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아직 젊었으니, 그녀에게 그런 편지 한 통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 편지로 나는, 내 홀로 품은 사랑과 그리움의 꿈을 그녀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녀 안에도 비슷한 꿈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던 것이다. 늙어 버린 사내들의 슬픔은, 그런 편지의 부질없음을 제 경험으로 아는 터라, 그런 편지를 쓸 생각조차 더는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잠자리에 든 뒤에도, 이 축제의 저녁이라 유난히 길게 이어지던 거리의 소음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나는 밤을 즐기며 지새우는 온갖 사람들을, 그리고 그날 저녁 상연이 예고된 것을 내가 본 그 연극이 끝난 뒤 무대 문 앞에서 라 베르마를 맞으러 갈 연인을, 어쩌면 방탕한 무리를 떠올렸다. 잠 못 이루는 밤 그 생각이 내 안에 일으키던 동요를 가라앉히려 해도, 라 베르마가 어쩌면 사랑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으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조차 없었으니, 그녀가 읊는 대사, 오래도록 공들여 되뇐 그 대사가, 사랑이란 얼마나 감미로운 것인지를 순간마다 그녀에게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어찌나 잘 알던지, 그 낯익은 고통을, 다만 새로운 격렬함과 뜻밖의 감미로움으로 한층 짙어진 그 고통을, 놀라 마지않는 관객 앞에 펼쳐 보였다. 그런데도 그 관객 하나하나가 그 고통을 저마다 몸소 겪은 터였다. 나는 다시 촛불을 밝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바로 그 순간에도 그 얼굴이, 라 베르마에게서 초인적이되 아련한 기쁨을 주고 또 받는 것을 내가 막을 길 없는 저 사내들에게 애무받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관능적이라기보다 더 잔혹한 감정을, 이내 나팔 소리에 북받쳐 오른 그리움을 느꼈다. 사순절 사육제의 밤이나 여느 축일의 밤에 흔히 들리는 그 나팔 소리는, 그럴 때면 온갖 시정을 잃은 채, 장난감 피리에서 새어 나와, “저녁 무렵, 숲 깊은 곳에서” 울릴 때보다 더 서글펐다. 그 순간이라면, 질베르트의 전언조차 어쩌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으리라. 우리의 갖가지 욕망은 서로 길을 엇갈리며, 이 어수선한 삶 속에서 어떤 행운이 그것을 애타게 부르던 욕망과 맞아떨어지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나는 날이 좋은 날이면 계속 샹젤리제로 갔다. 세련된 분홍빛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따라서였는데, 그 집들은 (그 무렵 수채화 전시가 한창 유행이었던 까닭에) 가볍게 떠도는 대기 속에 씻긴 듯이 보였다. 그 시절 가브리엘의 궁전들이 이웃한 집들보다 더 아름답게, 아니 심지어 다른 시대의 것으로 내게 다가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나는 산업 궁전에서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트로카데로에서 더 멋을, 그리고 더 오랜 연륜을 느꼈을 법하다. 어수선한 잠에 잠긴 내 소년기는, 저가 거닐 법한 그 구역 전체를 하나의 한결같은 심상으로 빚어냈으니, 나는 루아얄 거리에 18세기의 건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은, 루이 14세 시대의 영광인 생마르탱 문과 생드니 문이, 그 이름을 딴 누추한 구역에 가장 최근에 지어진 셋집들과 같은 시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내가 놀랐을 것과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가브리엘의 궁전 하나가 나를 잠깐 이상으로 멈춰 세운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밤이 내린 터라, 달빛에 형체를 잃은 그 기둥들이 마치 판지로 오려 낸 듯한 모습을 하고서, 오페레타 Orphée aux Enfers의 한 장면을 내게 떠오르게 하여, 처음으로 아름다움의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질베르트는 샹젤리제에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를 반드시 보아야만 했으니,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그 캐묻고, 불안해하고, 까다롭게 구는 방식, 내일 만날 약속의 희망을 우리에게 주거나 우리에게서 앗아 갈 한마디 말을 향한 조바심, 그리고 그 말이 나오기까지 기쁨과 절망을 번갈아, 아니 동시에 상상하는 그 마음, 이 모든 것이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의 우리 관찰을 너무 떨리게 만들어, 그녀의 정겨운 인상을 담아 오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또한,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그 뒤에 숨은 것을 알아내려 애쓰는 온갖 감각의 그 일제한 활동이, 살아 있는 사람의 수천 가지 형상과 변해 가는 향기와 움직임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때는 대체로 그 사람을 하나의 고정된 자세에 붙박인 것으로 여기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모델은 가만히 있어 주지 않으니, 우리가 마음속에 담아 두는 그녀의 사진은 언제나 흐릿하다. 나는 질베르트의 이목구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녀가 그것을 내게 드러내 보여 주던 천상의 순간을 빼고는. 나는 그녀의 미소밖에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어, 그것을 되찾으려 온갖 애를 써 보아도, 나는 사람 미칠 듯이 세세한 정확함으로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새겨진 것이 목마 장수 사내와 보리사탕 파는 여인의, 아무 의미도 없는 도드라진 얼굴들뿐임을 깨닫고 넌더리를 내곤 했다. 마치 다정한 벗을 잃고서,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그를 결코 다시 보지 못하면서, 깨어 있는 세상에서 알고 지낸 것만으로도 넌더리가 나는 갖가지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을 꿈속에서 끊임없이 만나 화가 치미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슬픔의 대상을 어떤 형상으로도 그려 낼 수 없기에, 자기가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고 단언하다시피 하기에 이른다. 나 또한, 질베르트의 이목구비를 떠올릴 수 없으니 질베르트 그 자체를 잊어버렸고 더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을 뻔했다. 마침내 그녀는 다시 거의 날마다 그곳에 놀러 나오게 되어, 내일 그녀에게 바라고 조를 새로운 즐거움들을 내 앞에 펼쳐 놓았고, 그런 뜻에서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을 날마다 새로운 사랑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한 사건이 다시 한번, 그것도 느닷없이, 날마다 오후 두 시 무렵이면 내 사랑의 문제가 내게 들이닥치던 그 방식을 바꾸어 놓게 된다. 스완 씨가 내가 딸에게 써 보낸 편지를 가로챘던 것일까, 아니면 질베르트가 그저, 오래전에 이미 자리 잡은 상황을, 앞으로 내가 더 조심하도록 하려고 한참 뒤에야 털어놓은 것일까?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녀는, 누가 자기가 앞으로 할 일이나 산책이나 마차 나들이나 방문에 관해 물어 오면 언제나 짓던, 말을 아끼고 비밀을 감춘 그 어렴풋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렇게 내뱉었다. “있잖아, 그분들은 너를 아주 질색하셔!” 그러고는 자기가 정말 물의 정령 운디네라도 되는 양 내게서 스르르 빠져나가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은 흔히 그 말과 어우러지지 않은 채, 마치 음악이 그러하듯, 다른 차원의 어떤 보이지 않는 표면을 그려 내는 것만 같았다. 스완 씨와 스완 부인이 질베르트에게 나와 노는 것을 그만두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녀 생각으로는, 우리가 애초에 어울리기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두 분은 그편을 똑같이 흡족해했으리라는 것이었다. 두 분은 우리 사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나를 도덕 수준이 낮은 젊은이로 여기며 내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이 나쁠 것이 틀림없다고 상상했던 것이다. 스완 부부가 나를 그와 닮았다고 생각한 이런 파렴치한 젊은이의 부류를, 나는,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의 부모를 몹시 싫어하면서 그들 면전에서는 알랑거리다가,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면 그들을 비웃고, 그녀를 부추겨 부모에게 거역하게 하며, 일단 정복을 이루고 나면 부모가 딸을 다시는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는 자로 그려 보았다. 이런 특징들을 두고 (하기야 아무리 비열한 악당이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결코 이런 특징을 통해서가 아니지만), 내 마음은 스완에 대해 실제로 품고 있던 감정을, 그것도 도리어 그토록 열렬한 감정을 얼마나 격렬하게 대비시켰던가, 그가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눈치챈다면 나를 오판으로 단죄한 것을 뉘우칠 수밖에 없으리라고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느끼는 모든 것을 나는 대담하게도 긴 편지에 담아, 질베르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며 맡겼다. 그녀는 그러겠다고 했다. 아아! 그런데 그는 내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한층 더 대단한 사기꾼을 나에게서 보았다. 내가 열여섯 쪽에 걸쳐, 그토록 진실을 넉넉히 담아 그려 냈다고 스스로 믿었던 그 감정들을, 그는 미심쩍게 여겼던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노르푸아 씨에게 했던 말들만큼이나 뜨겁고 진실했던 그 편지도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튿날 질베르트는 월계수 덤불 뒤 오솔길로 나를 데리고 가, 우리는 의자 두 개에 나란히 앉았는데, 그러고서 내게 말하기를, 아버지는 이제 그녀가 내게 도로 가져다준 그 편지를 읽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건 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말이 옳았다는 걸 더 잘 보여 줄 뿐이지.” 내 의도의 순수함과 내 영혼의 선함을 아는 나로서는, 내 말이 스완의 그 어처구니없는 오해의 겉면조차 스치지 못했다는 데 격분했다. 그것은 오해였으니까. 그때 나는 그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내 관대한 감정의 어떤 반박할 수 없는 특징들을 그토록 정확하게 그려 냈다고 느꼈으므로, 스완이 내 실마리에서 그 감정들을 곧바로 되짚어 내지 못하고, 내게 용서를 빌며 자기가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러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 고결한 감정들을 그 자신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어, 남에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그저, 관대함이란 우리의 이기적인 감정이 아직 이름 붙여지지도 분류되지도 않았을 때 그것이 걸치는 내면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스완이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내가 그에게 드러낸 호의 속에서, 그저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의 한 결과를, 그것도 더없이 강력한 증거를 알아보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 행동을 거스를 수 없이 좌우할 것은 그를 향한 어떤 부차적인 존경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랑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의 관점을 함께할 수 없었다, 내 사랑을 나 자신에게서 떼어 내어 그것을 인류의 공통된 경험 속으로 도로 밀어 넣고, 그리하여 그 결과를 시험 삼아 겪어 보는 데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나는 잠시 질베르트 곁을 떠나야 했다. 프랑수아즈가 나를 불렀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따라, 옛 파리의 버려진 통행세 징수소 하나를 닮은, 초록빛 격자 시렁으로 덮인 작은 정자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 안에는 영국에서는 ‘래버토리’라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어설픈 영국 취향에서 “워터클로짓”이라 부르는 것이 얼마 전에 들어서 있었다. 입구의 오래되고 축축한 벽들에서는, 프랑수아즈를 기다리며 내가 서 있던 그곳에서, 서늘하고 곰팡내 나는 냄새가 풍겨 나왔는데, 그 냄새는 질베르트가 전한 스완의 말이 방금 내 안에 불러일으킨 불안을 단번에 덜어 주면서, 다른 즐거움들과는 사뭇 다른 성질의 즐거움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다른 즐거움들은 우리를 전보다 더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것을 붙들지도 소유하지도 못하게 하지만, 이 즐거움은 반대로, 내가 기댈 수 있는 한결같은 즐거움이었다, 감미롭고, 마음을 가라앉혀 주며, 오래 지속되고 설명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어떤 진실로 가득 찬 즐거움이었다. 나는 오래전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하던 때처럼, 나를 사로잡은 이 인상의 매력 속으로 파고들려 애쓰고,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머무른 채, 그것이 베푸는 즐거움을 그저 “덤”으로만 누리지 말고 아직 내게 드러내지 않은 그 밑바닥의 실체로 내려오라고 나를 부르는 이 케케묵은 발산을 캐물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시설의 관리인, 볼에 연지를 바르고 적갈색 가발을 쓴 나이 지긋한 부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프랑수아즈는 그녀를 두고 “정말이지 아주 살림이 넉넉한 분”이라 여겼다. 그녀의 “따님”은, 프랑수아즈가 이르기를 “좋은 집안 젊은이”와 결혼했다는데, 그것은 프랑수아즈의 눈에는 그 사위가 노동자와 다른 정도가, 생시몽의 눈에 공작이 “천한 백성의 찌꺼기에서 올라온” 사람과 다른 정도보다 더 컸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 관리인은 이 일을 맡기 전에 영락을 겪었으리라. 그러나 프랑수아즈는 그녀가 “후작부인”이며 생페레올 가문에 속한다고 굳게 믿었다. 이 “후작부인”은 내게 밖에서 추위에 떨지 말라고 이르며, 문 하나를 열어 주기까지 하면서 말했다. “잠깐 안에 들어가 계시지 그래요? 자, 여기 깨끗하고 좋은 데가 있어요, 돈은 한 푼도 안 받을 테니.” 어쩌면 그녀는 그저, 우리가 구아슈 가게에 뭘 사러 들어가면 그 집 아가씨들이 유리 종 밑 진열대에 놓아둔 사탕 하나를 내게 권하곤 하던 그런 마음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아, 하기야 엄마는 그 사탕을 내가 받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덜 순진한 마음에서, 엄마가 꽃꽂이 받침을 채우려고 집에 들이곤 하던 늙은 꽃장수 여인처럼, 내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며 게슴츠레한 눈길을 던지던 그런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후작부인”이 어린 사내아이들을 좋아하는 구석이 있어서, 사람들이 스핑크스처럼 웅크리는 그 돌로 된 칸막이 방들의 지하 세계 같은 문을 아이들에게 활짝 열어 줄 때, 그녀가 그런 너그러움으로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이들을 타락시키려는 바람에서라기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쓸데없는 낭비를 베풀며 누구나 느끼는 그 기쁨 때문이었으리라, 왜냐하면 나는 늙은 공원지기 한 사람 말고는 그녀가 다른 어떤 손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