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내가 알던 것처럼 그저 사교계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사교계 안에서, 곧 전하들과 공작부인들에게는 얼마간 양보를 하면서도 재치와 매력에 관해서는 거의 무한정 까다롭고, 그 구성원들이 따분하거나 상스럽다고 여긴 진정한 명사들에게조차 가차 없이 추방을 선고하던 그 게르망트 무리 안에서 옛 스완을 알던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옛 스완이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더는 신중하지 않을뿐더러, 그 교분을 넓히라는 청을 받을 때조차 더는 까다롭게 굴지 않게 된 것을 보고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상스럽고 그토록 심술궂은 봉탕 부인이 어째서 그를 화나게 하지 않았을까? 그가 어떻게 그녀를 매력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게르망트 무리의 기억이라면 마땅히 그를 그러지 못하게 막았으리라 짐작하겠지만, 실은 그 기억이 도리어 그를 부추겼다. 게르망트가에는, 사교계의 대다수 무리에 견주어, 분명 취향이, 그것도 세련된 취향이 있었지만, 또한 그 취향의 발휘가 잠시 멈출 여지가 생겨나는 속물근성도 있었다. 그들의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이를테면 공화파에다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어느 외무장관이나 말이 너무 많은 어느 아카데미 회원이 문제가 될 때면, 그들의 취향은 그를 향해 무겁게 짓눌러 왔고, 스완은 어느 대사관 만찬에서 그런 사람들 곁에 앉아야 했던 게르망트 부인을 위로하곤 했으며, 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나 게르망트가의 재치를 갖춘 멋쟁이, 곧 게르망트류의 사람, 자기들과 ‘같은 예배당 소속’인 누군가를 천 배는 더 반겼을 것이다. 다만, 어느 대공비나 왕족 공주가 게르망트 부인과 자주 저녁을 함께한다면, 그녀 역시 머지않아 그 예배당에 이름을 올리게 될 터인데, 그럴 자격도 없고, 그런 재치를 조금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그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교계 사람들 특유의 단순함으로, 그들은 일단 그녀를 자기네 집에 들인 순간부터 애써 그녀를 매력 있다고 여기려 들었으니, 그녀가 매력 있어서 초대했노라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완은 게르망트 부인을 거들며, 그 전하가 물러간 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니에요. 정말이지 우스운 것을 알아보는 감각이 제법 있거든요. 그야 그분이 순수이성비판을 통달했다고야 잠시도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매력이 없지는 않아요.” “오, 정말이지 전적으로 동감이에요!” 공작부인이 대꾸하곤 했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 모두를 조금 무서워했잖아요. 두고 보세요, 그분도 매력적일 수 있다니까요.” “적어도 X⸺ 부인보다야 훨씬 덜 진을 빼놓지요.” (그 말 많은 아카데미 회원의 아내이자, 그녀 자신도 대단한 여자였다.) “스무 권치 인용을 당신에게 퍼부어 대는 그 부인 말이에요.” “오, 그야 둘은 비교가 안 되죠.” 이런 말들을 하는, 그것도 진심으로 하는 재주를 스완은 그 공작부인에게서 얻어, 결코 잃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 재주를 자기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두고 써먹었다. 그는 애써,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그에게 호의를 품고 살펴보면, 까다로운 이들의 못마땅한 눈길로가 아니라 그렇게 살펴보면 누구나 드러내기 마련인 장점들을, 그들에게서 가려내고 또 그것들에 감탄하려 했다. 그는 봉탕 부인의 장점을 추어올렸으니, 일찍이 파름 대공비의 장점을 추어올렸던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그 대공비로 말하자면, 특정 전하들에게 주어지는 특별 입회 조건이 없었더라면, 또 그들이 입회를 청할 때 정말로 재치와 매력 말고는 아무것도 고려되지 않았더라면, 게르망트 무리에서 배제되고 말았을 사람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스완에게 언제나 그런 성향이 있었음을 보았다, 곧 어떤 상황에서는 자기에게 더 잘 맞을 다른 지위로 제 사회적 지위를 바꾸려는 성향 말이다(그는 이제 그것을, 다만 더 오래가는 방식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첫눈에 나눌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제 지각 속에서 분석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사람의 지위가 그 사람 자체와 하나로 굳어져 있다고 믿는다. 동일한 한 사람을 그 삶의 잇따른 시점마다 살펴보면, 사회의 사다리에서 저마다 다른 단계에 서서, 반드시 점점 더 세련되어지지만은 않는 공기를 호흡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의 어느 시기든, 우리가 어떤 환경과 인연을 맺거나 다시 맺고, 그 안에서 편히 움직일 수 있으며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느낄 때면,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뿌리와 덩굴손을 뻗어 그 환경에 스스로를 단단히 붙들어 매기 시작한다.
봉탕 부인에 관한 한, 나는 스완이 그토록 힘주어 그녀를 이야기한 데에는, 그녀가 자기 아내를 찾아왔다는 것을 우리 부모님이 듣게 되리라는 생각이 그리 싫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다고 본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 집에서 스완 부인이 차츰 알게 되는 사람들의 이름은 우리의 감탄보다는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트롱베르 부인이라는 이름에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다. “아! 새로 들어온 사람이로구나, 게다가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사람이야.” 그리고 마치, 스완 부인이 이를테면 정복하듯 친구들을 손에 넣는, 다소 성마르고 재빠르고 거센 방식과 식민지 원정 사이에서 어떤 닮은 점을 찾아내기라도 한 듯,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트롱베르 사람들이 항복했으니, 이웃 부족들이 들어오는 것도 머지않았구나.” 길에서 스완 부인과 스쳐 지나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스완 부인이 온통 전투 화장을 하고 있는 걸 봤단다. 아마 매사추토족이나 싱할라족이나 트롱베르족을 상대로 무슨 당당한 공세라도 펼치러 나선 게로구나.” 그리고 그 다소 잡다하고 꾸며진 사교계에서, 서로 크게 다른 환경으로부터 흔히 갖은 애를 써서 데려온 새 인물들을 내가 보았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어머니는 이내 그들의 출신을 알아맞히고는, 그들을 비싼 값에 얻은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하며 말하곤 했다. “아무개족을 친 원정에서 들고 온 것들이로구나!”
코타르 부인으로 말하자면, 아버지는 스완 부인이 그토록 하나도 내세울 것 없는 여자를 자기 집에 오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여기는지 놀라워하며 말했다. “교수라는 그 남편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구나.” 반면 어머니는 아주 잘 이해했다. 어머니는, 여자가 예전에 살던 계층과는 다른 사교 계층에 발을 들여놓으며 느끼는 즐거움의 상당 부분이, 그 예전의 벗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대신 삼은 상대적으로 더 화려한 이 새 사람들의 소식을 전할 길이 없다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는, (붕붕대며 꽃을 뒤지는 벌레가 꽃 속을 파고들듯) 이 새롭고 감미로운 세계에 들어가도록 허락받고, 그런 다음 방문의 발길이 이끄는 대로, 그 소식과 더불어 부러움과 경탄의 잠재된 씨앗을, 적어도 그러기를 바라건대, 널리 퍼뜨려 줄 목격자가 하나 필요했다. 이 역할을 채우려고 일부러 만들어진 것 같은 코타르 부인은, 어머니가(외할아버지의 기질 가운데 몇 가지를 물려받은 어머니가) ‘스파르타에 전하라’ 부류라고 부르던, 방문객 명단의 그 특별한 부류에 속했다. 게다가, 여러 해가 지나서야 우리가 알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접어 두더라도, 스완 부인은 이 선량하고 조심스럽고 겸손한 벗을 초대하면서, 자기의 화려한 ‘접견일’에 자기 응접실로 배신자나 경쟁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깃털 펜과 명함첩으로 무장한 그 부지런한 일꾼이 단 한나절에 얼마나 많은 소박한 꽃송이들을 찾아다닐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여인의 소문 퍼뜨리는 힘을 알고 있었고, 확률의 법칙에 셈을 기대어, 이삼 일 안에 베르뒤랭 부부와 가까운 누군가가, 파리 총독이 그녀에게 명함을 두고 갔다는 소식이나, 아니면 베르뒤랭 씨 자신이, 마술대회 회장인 르오 드 프레사니 씨가 자기들 부부, 곧 스완과 자기를 테오도시우스 왕 갈라에 데려갔다는 소식을 틀림없이 듣게 되리라고 믿게 되었다. 그녀는 베르뒤랭 부부가 이 두 사건을, 저에게 그토록 우쭐한 이 두 가지만을 전해 듣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우리가 명성을 담아 좇는 그 구체적인 형체가 몇 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 그럼에도 우리가 대체로 명성이 우리를 위해 한꺼번에 갖추어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 그 모든 형태를 동시에 상상해 내지는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스완 부인은 이른바 ‘관가(官家)’ 바깥에서는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멋쟁이 여자들은 그녀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들이 발길을 돌린 것은 거기에 공화파 ‘명사들’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보수적인 사교계는 더할 나위 없이 속물적이어서, ‘점잖은’ 집이라면 어디도 공화파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 살던 사람들은, ‘오포르튀니스트’를, 하물며 ‘지독한 급진파’를 자기네 모임에 초대하기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이 등잔불이나 말이 끄는 합승마차처럼 영영 변치 않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따금 한 번씩 돌리는 만화경처럼, 사교계는 꿈쩍도 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던 요소들을 잇달아 다른 순서로 배열하여 새로운 무늬를 짜낸다. 내가 첫 영성체를 하기도 전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에 선 부인들은 남의 집을 방문하다가 어느 멋쟁이 유대인 여인과 마주치는 아연한 일을 겪었다. 만화경의 이 새로운 배열은, 철학자라면 ‘기준의 변화’라 부를 법한 것에 의해 생겨난다. 드레퓌스 사건은 또 하나의 변화를 불러왔는데, 그것은 내가 스완 부인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때보다 다소 뒤의 일이었으며, 만화경은 또 한 번 그 자잘한 색색의 조각들을 흩뜨려 놓았다. 유대적인 것은 모조리, 그 멋쟁이 부인 자신까지도 무늬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 자리에 이런저런 이름 없는 국적들이 나타났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응접실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극렬 가톨릭 대공의 것이었다. 만약 드레퓌스 사건 대신 독일과의 전쟁이 닥쳤더라면, 만화경의 밑판은 반대쪽으로 돌아가고 그 무늬도 뒤집혔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모두를 놀라게 하며 자기들 또한 애국자임을 보여 주었을 터이니, 그들은 제 자리를 지켰을 것이고, 아무도 그 오스트리아 대공의 집에 더는 가려 하지 않았을뿐더러, 예전에 간 적이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교계가 한동안 멈춰 있을 때면 언제나 더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상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니, 마치 전화기의 탄생을 목격하고서도 비행기는 믿으려 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는 사이 언론계의 철학자들은, 앞선 시대를 매섭게 나무라는 일에 매달리는데, 그들 눈에 타락의 극치로 비치는 그 시대가 탐닉한 갖가지 쾌락만이 아니라, 이제 그들에게는 조금의 가치도 없어 보이는 그 시대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작품까지도, 마치 그것들이 유행하는 경박함의 잇따른 기분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기라도 한 듯 나무란다. 변치 않는 단 하나는, 어느 때고 언제나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내가 스완 부인의 집에 드나들던 무렵에는 드레퓌스의 폭풍이 아직 터지지 않았고, 이름난 유대인들 가운데 몇몇은 대단한 세력을 쥐고 있었다. 그 누구도 러퍼스 이스라엘스 경만은 못했는데, 그의 아내인 이스라엘스 부인은 스완의 고모였다. 그녀 자신에게는 조카만큼 지체 높은 가까운 지인이라고는 없었고, 조카는 조카대로 그녀를 탐탁잖아 했으므로, 알려진 바로는 그녀의 상속인이었으면서도 그녀와의 교분을 그리 애써 쌓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스완의 친척 가운데 그의 사회적 지위를 조금이라도 짐작한 사람은 그녀뿐이었으니, 나머지는 이 점에 관해서라면, 오랫동안 우리 자신이 그러했던 것과 같은 무지의 상태에 늘 머물러 있었다. 한 가문에서 그 구성원 가운데 하나가 ‘상류 사회’로 이주할 때, 그것은 그에게는 유례없는 위업으로 보이지만, 십 년이 지나고 나면 그는 소년 시절부터 알던 사람들 가운데 여럿이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유에서 그 위업을 이루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런 그는 자기 둘레에 그림자의 지대, 곧 미지의 땅을 하나 두르게 된다. 그 땅은 그와 함께 그 안에 사는 모든 이에게는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도 또렷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오지는 못한 채 그저 그 언저리에 닿을 뿐이며 제 한복판에 그런 것이 있는 줄은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캄캄한 밤이요 허무일 따름이다. 스완의 사촌 부인들에게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 줄 통신사 따위는 없었으므로, 그들은 (물론 그의 그 끔찍한 결혼 이전의 일이지만) 겸양의 미소를 지으며, 가족 만찬 식탁에서 서로에게, ‘사촌 샤를’을 보러 가느라 ‘덕스러운’ 일요일을 보냈노라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제 번영을 시샘하는 ‘가난한 친척’쯤으로 여겨), 발자크 소설 제목에 빗대어 재치 있게 ‘르 쿠쟁 베트’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스 부인만은, 스완에게 우정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람들의 이름과 지체를 훤히 꿰고 있었고, 솔직히 그 우정을 시샘했다. 거의 로스차일드가에 맞먹는 그녀 남편의 가문은, 여러 대에 걸쳐 오를레앙가 대공들의 재정을 관리해 왔다. 어마어마한 부자인 이스라엘스 부인은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것을 써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오데트를 ‘접견’하지 못하도록 손을 써 두었다. 오직 한 사람, 마르상트 백작부인만이 몰래 그 뜻을 거슬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데트가 마르상트 부인을 찾아간 날, 이스라엘스 부인이 거의 그 뒤를 바짝 좇아 방으로 들어섰다. 마르상트 부인은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는 이들 특유의 비겁한 무력함으로, 그녀는 오데트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고, 그리하여 오데트는, 게다가 자기가 환영받고 싶어 하던 세계도 전혀 아니었던 그 세계로의 침입을 더 밀어붙일 부추김을 좀처럼 얻지 못했다. 포부르 생제르맹의 이 완전한 냉담 속에서, 오데트는 여전히 무식한 ‘화류계 여자’로 여겨졌으니, 이는 계보의 지극히 사소한 대목까지도 ‘훤히 꿰고’, 실제 삶이 미처 마련해 주지 못한 귀족과의 교분에 대한 갈증을 전기와 회고록을 읽어 가며 달래려 애쓰던 점잖은 부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스완은 스완대로, 옛 정부(情婦)의 이 온갖 별난 점들이 그 눈에는 사랑스럽게, 적어도 흠 될 것 없게 비치는 연인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음에 틀림없으니, 나는 그의 아내가 실은 사교계의 이단이라 할 말들을 늘어놓는 것을 자주 들었으나, 그는 (그녀에 대한 미련 탓이든, 사교계에 대한 존중을 잃어서든, 그녀를 완벽하게 만들려는 노력에 지쳐서든) 그것을 바로잡으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콩브레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었던 그 단순함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했으니, 그 단순함은 이제, 그가 적어도 제 몫으로는 여전히 지체 높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지내면서도, 아내의 응접실에서 대화할 때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조금이라도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려 애쓰지는 않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그들은 스완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덜 중요했으니, 그의 삶의 무게중심이 옮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교계의 서열에 대한 오데트의 무지는 어찌나 깊었던지, 대화 중에 그 사촌인 공작부인의 이름에 뒤이어 게르망트 대공비의 이름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럼 그 사람들은 대공이라는 거예요?” 하고 그녀는 외치곤 했다. “아니, 그럼 한 계단 올라간 거네요.” 누군가 샤르트르 공작을 두고 ‘대공’이라 말하기라도 하면, 그녀는 이렇게 바로잡곤 했다. “공작이라는 말씀이겠죠. 그분은 샤르트르 공작이지 대공이 아니에요.” 파리 백작의 아들인 오를레앙 공작으로 말하자면, “그거 이상하네요, 아들이 아버지보다 높잖아요!” 하고 그녀는 말하고는, 영국병에 걸린 터라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그 로열티라는 것들은 정말이지 지독하게 헷갈린다니까요!” 그러면서 게르망트 가문이 어느 지방 출신이냐고 묻는 누군가에게는 “엔 지방에서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오데트에 관한 한, 스완은 그녀의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뿐 아니라 그 지성이 전반적으로 평범하다는 점에도 아주 눈이 멀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오데트가 어리석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스완은 흡족한 낯으로, 즐거워하며, 거의 감탄에 가까운 태도로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니, 거기에는 그녀를 향한 옛 욕망의 어떤 잔재가 스며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반면 같은 대화에서 그 자신이 꺼낸 미묘하고, 심지어 깊이 있는 말은 오데트가 늘 그렇듯 흥미 없이, 오히려 퉁명스럽게, 참지 못하겠다는 듯 듣곤 했으며, 때로는 매몰차게 반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처럼 세련됨이 저속함에 예속되는 일이 많은 가정에서 하나의 통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반대로 저 뛰어난 여인들, 자기의 가장 섬세한 말 한마디까지 가차 없이 헐뜯는 무례한 사내의 감언에 넘어가면서도, 사랑 특유의 한없는 관대함으로 그 사내의 가장 시시한 재담에까지 황홀해하는 여인들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이 무렵 오데트가 포부르 생제르맹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은 이유들로 되돌아가자면, 사교계라는 만화경이 최근 한 번 돌아간 것은 일련의 추문 때문이었음을 짚어 두어야겠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믿고 드나들던 집의 여주인들이 영국 첩자까지는 아니어도 흔한 매춘부였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동안은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든든한 지위에 있고, 반듯하고, 안정되고, 내력이 분명하기를 기대하리라(적어도 다들 그렇게 짐작했다). 오데트는 사람들이 방금 관계를 끊어 낸 바로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존재였고, 머지않아 그 관계를 곧장 다시 맺게 될 터였으나(사람의 본성이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 법이라, 어떤 새로운 질서에서도 옛것의 연장을 찾기 마련이므로), 다만 그 관계를 다른 형태로 다시 찾음으로써 사람들이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 이것이 파국 이전의 그 사교계와는 이제 같지 않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였다. 그러나 그 사교계의 희생양들과 오데트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사교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란 몹시 근시안이다. 알고 지내던 이스라엘계 부인들과 관계를 끊는 바로 그 순간, 그리하여 삶에 이렇게 생긴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울까 자문하는 그 순간, 그들은 폭풍우 치는 밤이 뜻밖에 안겨 준 선물처럼 그 자리에 밀려 들어온 새로운 부인을, 역시 이스라엘계인 부인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녀는 새롭다는 바로 그 까닭에, 그들의 마음속에서 앞서의 부인들과, 마땅히 끊어 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 그것과 결부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의 신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받아들인다. 내가 처음 오데트를 드나들던 시절만 해도 반유대주의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이 한동안 피하고 싶어 하던 그것을 떠올리게 할 만큼 충분히 그것을 닮아 있었다.
스완 자신으로 말하자면, 그는 옛 지인 몇몇을 여전히 자주 찾았는데, 물론 그들은 하나같이 최고위 계층에 속한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방금 만나고 온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때면, 지난날 알고 지내던 이들 가운데 그가 고르는 상대가 예술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수집가로서 그를 이끌던 것과 똑같은 취향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나는 알아챘다. 그리고 그 상대가 흔히 명성이 기울어 가는 어느 귀부인이며, 리스트의 정부였다는 이유에서, 혹은 발자크 소설 한 편이 그 할머니에게 헌정되었다는 이유에서 그의 흥미를 끈다는 것을(마치 샤토브리앙이 어떤 소묘에 관해 글을 썼다는 이유로 그 소묘를 사들이듯) 눈여겨보면서, 나는 우리가 콩브레에서 하나의 오해를, 곧 스완을 사교계에 드나들지 않는 한낱 주식중개인쯤으로 여기던 오해를 또 다른 오해로, 곧 그를 파리에서 가장 멋들어진 사내 중 하나라고 넘겨짚는 오해로 바꿔 놓았을 뿐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파리 백작의 벗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대공들의 벗’이라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까다로운’ 집이라면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을 그런 이들로 세상이 넘쳐 나지 않던가? 대공들은 스스로 대공임을 알기에 속물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기네가 왕가의 피가 아닌 모든 것보다 아득히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여기므로, 저 아래 심연에서는 대귀족이든 ‘사업가’든 사실상 한 층위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스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지난날이 사교계의 명부에 새겨 놓아 아직도 거기서 읽을 수 있는 이름들에 매달리며 있는 그대로의 사교계에서 그저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즐거움을 찾는 데 만족하지 못한 그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한데 모아 이를테면 사교계의 꽃다발을 엮는,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골라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다소 저속한 놀음에 빠져들었다. 사회학의 이 가벼운 측면(적어도 스완에게는 가벼운 측면이던 것)을 두고 벌인 이런 실험들이 언제나 한결같은 반응을, 다시 말해 아내의 벗들 저마다에게서 똑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코타르 부부를 불러서 방돔 공작부인과 만나게 해 볼까 하는데요.” 그는 봉탕 부인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소스에 정향 대신 카옌 고추를 넣어 보면 어떨까 궁리하며 그 시도를 벼르는 미식가의 군침 도는 어조였다. 실제로 이 계획은, 그 낱말의 예스러운 뜻에서 코타르 부부에게는 자못 익살맞게 비칠 것이었지만, 봉탕 부인을 격분시키는 힘도 지니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얼마 전 스완 부부의 소개로 방돔 공작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는데, 그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만큼이나 흐뭇하게 여겼던 터였다. 코타르 부부에게 그 일을 들려주며 그것으로 명성을 얻으리라는 생각은 그녀가 누린 기쁨에서 결코 덜 감칠맛 나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갓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 일단 제 서훈이 끝나고 나면 명예의 샘을 아예 원천에서 잠가 버렸으면 하고 바라듯이, 봉탕 부인도 자기 다음으로는 제 벗들 가운데 아무도 그 공작부인에게 소개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녀는 (물론 속으로) 스완의 방종한 취향을 규탄했다. 그가 하찮은 심미적 변덕을 채우자고, 방돔 공작부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코타르 부부의 눈에 뿌려 놓았을 그 모든 먼지를 단번에 바람에 흩어 버리도록 그녀에게 강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유일무이한 것인 양 남편에게 자랑했던 그 기쁨을 이번에는 교수 부부까지 나누어 갖게 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어찌 감히 남편에게 알린단 말인가. 그렇지만 코타르 부부가, 자기들이 진지하게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주최자의 여흥거리로 불려 온 것임을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봉탕 부부 역시 같은 이유로 초대받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스완은 귀족 사회에서 저 변함없는 ‘돈 후안’의 기질을, 곧 대수롭지 않은 두 여인을 상대하면서 저마다 자기만이 진지하게 사랑받는다고 믿게 만드는 그 기질을 익힌 터라, 봉탕 부인에게는 방돔 공작부인을 두고 마치 그녀가 만찬에서 반드시 만나기로 분명히 정해진 사람인 양 말해 두었던 것이다. “네, 우리는 그 공작부인을 코타르 부부와 함께 꼭 모실 참이에요.” 몇 주 뒤 스완 부인이 말했다. “남편은 그 조합에서 꽤 재미난 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작은 핵심’에서 베르뒤랭 부인이 아끼던 몇몇 버릇을, 이를테면 단골들 모두가 듣도록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버릇 같은 것을 간직했다면, 동시에 그녀는 ‘조합’이라는 말처럼 게르망트 무리가 아끼던 어떤 표현들도 갖다 썼으니, 그렇게 그녀는 바다가 달에 이끌리듯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멀찍이서 그 무리의 인력을 느꼈던 것이다. 눈에 띄게 그쪽으로 끌려가지는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래요, 코타르 부부와 방돔 공작부인이라니. 꽤 재미있지 않겠어요?” 스완이 물었다. “제가 보기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성가신 일만 잔뜩 생길 거예요. 불장난은 하는 게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봉탕 부인이 발끈하며 쏘아붙였다. 그래도 그녀와 그 남편은 아그리장트 대공과 마찬가지로 이 만찬에 초대받았는데, 이 만찬을 두고 봉탕 부인과 코타르는 저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늘어놓곤 했다. 한쪽 부류에게는, 또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느냐는 물음을 받으면, 봉탕 부인은 그녀대로, 코타르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아그리장트 대공뿐이었지요. 아주 단출한 자리였어요.” 그러나 딱하게도 사정을 더 잘 아는 이들도 있었다(실제로 언젠가 누군가 코타르에게 “한데 봉탕 부부도 거기 있지 않았소?” 하고 따지고 든 적이 있었는데, “아, 그들을 깜빡했군요.” 하고 코타르는 얼굴을 붉히며 실토했으니, 그는 그 눈치 없는 질문자를 그 뒤로 두고두고 험담꾼이자 남을 헐뜯는 자들 축에 넣어 버렸다). 이런 이들에게는 봉탕 부부와 코타르 부부가 서로 짜지도 않았는데 저마다 하나의 판본을 택했으니, 그 틀은 양쪽이 똑같고 오직 자기네 이름만 자리를 바꾸었을 뿐이었다. “가만있자,” 코타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주최자 부부, 그러니까 방돔 공작 내외분이 계셨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코타르 교수와 코타르 부인, 그리고, 맹세컨대 그 사람들이 어떻게 거기 끼었는지는 하늘만 아실 노릇인데, 국에 빠진 머리카락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던 봉탕 씨와 부인이 있었지요!” 봉탕 부인도 이와 똑같은 ‘대목’을 읊었는데, 다만 방돔 공작부인과 아그리장트 대공 사이에서 흐뭇한 강조와 함께 거명되는 것이 봉탕 씨와 부인이었고, 결국 그녀가 제멋대로 초대에 끼어들었다고 몰아세우던, 그래서 자리를 아주 망쳐 놓았다던 ‘들러리들’은 코타르 부부였다는 점만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