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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부인 댁에서 ⑬

2권 제1부 · 스완 부인 댁에서

이 젊은 베르고트들은, 곧 훗날의 작가와 그 형제자매는, 아마 다른 젊은이들, 그들보다 더 세련되고 더 지적인 젊은이들에 견주어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으며, 오히려 한참 못했다. 그런 젊은이들은 베르고트네를 좀 “요란하다”고, 그러니까 조금 상스럽다고 여겼고, 그 집안 특유의, 잘난 체하면서도 유치한 말투를 이루던 재담에 짜증을 냈다. 그러나 천재는, 나아가 그저 대단한 재능일 뿐인 것조차, 남들보다 뛰어난 지성과 사교적 세련의 씨앗에서 솟아난다기보다, 그것들을 옮겨 놓고 그리하여 탈바꿈시키는 능력에서 솟아난다. 전등으로 액체를 데우려면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센 전등이 아니라, 그 전류가 빛 내기를 멈추고 빛 대신 열을 내도록 돌려쓸 수 있는 전등이 있어야 한다. 하늘로 오르려면 가장 힘센 발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따라가던 수평선을 수직선으로 가로지르며 땅 위를 계속 달리기를 그치고, 제 속도를 위로 오르는 힘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발동기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천재의 작품을 낳는 이들은 가장 섬세한 분위기 속에 살거나 대화가 가장 빛나거나 교양이 가장 넓은 이들이 아니라, 한순간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을 그치고 제 개성을 거울처럼 써서, 사회적으로 아무리 하찮고 또 어떤 뜻에서는 지적으로도 하찮은 제 삶을 그 거울에 비출 힘을 지녔던 이들이다. 천재란 비쳐진 장면 본래의 값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반사하는 힘에 있으니 말이다. 젊은 베르고트가 자기 독자들의 세계에,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멋없는 집안과, 자기와 형제들 사이의 그다지 재미랄 것도 없는 대화들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한 그날, 그날 그는 자기보다 더 지적이고 더 훌륭한 자기 집안의 친구들 위로 훌쩍 올라섰다. 그들은 멋진 롤스로이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베르고트네의 상스러움에 마땅한 경멸을 드러냈을지 모르나, 그는, 마침내 땅을 떠난 그 초라한 발동기를 달고서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의 말투에는, 집안 식구들과가 아니라 동시대의 어떤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가진 또 다른 특징들도 있었다. 그를 거장으로 떠받들기를 그만두기 시작하고 자기 안에 그와의 어떤 지적 친연성도 없다고 잡아떼던 더 젊은 작가들은, 그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던 바로 그 부사, 그 전치사를 쓸 때, 문장을 똑같은 방식으로 지을 때, 앞 세대의 유창하고 매끄러운 언어에 대한 반동으로 똑같이 잔잔하게 끄는 어조로 말할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친연성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 젊은이들은, 우리는 이런 말이 들어맞을 이들 몇몇과 마주치게 될 터인데, 베르고트를 한 번도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접종된 그의 사고방식이, 정신의 독창성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 저 구문과 어조의 변화로 그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마땅히 그 갈래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베르고트는, 글 쓰는 방식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었으나, 말하는 방식만은 젊은 날의 한 벗에게서 물려받았다. 그 벗은 그가 그 위세에 굴복하고 만 놀라운 이야기꾼으로, 베르고트는 대화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를 흉내 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재능이 덜한 탓에 이렇다 할 뛰어난 책이라곤 한 권도 쓰지 못했다. 그리하여 만일 말에서의 독창성을 찾고 있었다면 베르고트는 제자로, 남의 것을 빌려 쓰는 작가로 딱지 붙여졌겠지만, 실은 벗의 영향은 말에 그쳤을 뿐, 그의 글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이었다. 또한 아마도, 추상이며 묵직한 상투어를 지나치게 좋아하던 앞 세대와 자기를 구별하려고, 베르고트는 어떤 책을 좋게 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독자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안겨 주는 어떤 장면, 이치로 따질 만한 의미랄 것은 없는 어떤 그림을 앞세우고 칭찬하며 인용하곤 했다. “아, 그래요!” 그는 이렇게 감탄하곤 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주황색 숄을 두른 어린 계집아이가 나오지요. 아주 뛰어나요!” 또는, “오, 그래요, 한 연대가 거리를 따라 행진하는 대목이 있지요. 그래요, 아주 뛰어납니다!” 문체로 말하자면 그는 온전히 자기 시대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그러면서도 톨스토이, 조지 엘리엇, 입센, 도스토옙스키를 몹시 싫어하며, 오로지 자기 종족에만 머물러 있었다), 어느 작가의 문체를 칭찬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그의 입에 오르던 낱말은 “부드럽다”였다. “그래요, 아시다시피 나는 샤토브리앙을 아탈라에서가 르네에서보다 더 좋아합니다. 이쪽이 내게는 더 ‘부드럽게’ 느껴지거든요.” 그는 그 낱말을, 환자가 우유를 먹으면 체한다고 아무리 우겨도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유는 아주 ‘부드럽다’니까요” 하고 대답하는 의사처럼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베르고트의 문체에는, 옛사람들이 자기네 웅변가 몇몇을 두고 칭송할 때 쓰던, 이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표현으로 기렸던 조화와 비슷한 어떤 조화가 있었다. 그런 효과를 애초에 추구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근대어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말이다.

그는 또, 누군가 감탄을 드러낸 자기 글에 대해, 수줍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럭저럭 참되고 그럭저럭 정확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얼마쯤 값어치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저 겸손에서였으니, 옷이 곱다거나 딸이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은 여인이 “입기 편하답니다”라거나 “착한 아이지요” 하고 대꾸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베르고트에게는 짓고 세우려는 본능이 너무나 깊이 박혀 있어서, 자기가 쓸모 있게, 진실의 결을 따라 지어 올렸다는 유일한 증거가 자기 작품이 안겨 준 기쁨,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다음으로 독자에게 안겨 준 그 기쁨에 있음을 모를 수 없었다. 다만 여러 해가 지나, 그에게 더는 아무 재능도 남지 않았을 무렵, 그는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을 쓸 때마다, 마땅히 그래야 했듯 그것을 없애 버리지 않아도 되도록, 떳떳한 마음으로 그것을 펴낼 수 있도록,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곤 했다. “어쨌든 그럭저럭 정확하니, 나라에 얼마쯤 값어치는 있을 게 틀림없어.” 그리하여 오래전 그의 찬미자들 사이에서 겸손의 거짓된 목소리로 웅얼거려지던 그 말이, 끝내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한 자부심의 혀로 속삭여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베르고트에게 초기 작품들의 뛰어남에 대한 달갑잖은 변명 노릇을 하던 바로 그 말이, 이제는 말기 작품들의 가망 없는 범속함에 대한 부질없는 위안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가 지녔던 어떤 취향의 준엄함, “부드럽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는 어떤 결의는, 오랜 세월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메마르고 값비싼 예술가로, 정교한 자질구레한 것이나 다듬는 조각공으로 여기게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그의 힘의 비밀이었다. 습관이란 사람의 성격 못지않게 작가의 문체를 빚어내는 법이어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서 어떤 종류의 매력에 이르려 한 번 넘게 공을 들인 작가는, 그렇게 함으로써 제 재능의 경계를 돌이킬 수 없이 그어 놓는다. 그것은 마치, 즐거움에, 게으름에, 수고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너무 자주 굴복한 작가가, 아무리 고쳐 써도 바꿀 수 없는 표현으로 제 악덕의 형상과 제 미덕의 한계를 그려 내고 마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뒷날 내가 작가와 사람 사이에서 알아보게 될 온갖 닮음에도 불구하고, 스완 부인의 응접실에서 첫눈에는 내 앞에 선 이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신묘한 책의 저자인 베르고트일 수 있으리라고 믿지 못했다면, 어쩌면 나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도 엄밀한 뜻에서는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것을 믿지 않은 까닭은, 그가 상류 사교계 사람들 앞에서(그러면서도 그는 속물은 아니었다), 자기보다 훨씬 못한 문인들과 기자들 앞에서 여간한 정성을 다 쏟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독자들의 지지로부터, 자기에게 천재가 있으며 그에 비하면 사회적 지위나 공적인 서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천재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믿지는 않았으니, 머지않아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데 성공하려고 보잘것없는 작가들에게 짐짓 경의를 표하기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정작 아카데미와 포부르 생제르맹은, 베르고트의 작품을 지은 저 영원한 정신의 한 부분과는, 인과율이나 신의 관념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 또한 그는 알고 있었으나, 도벽 환자가 훔치는 것이 나쁜 줄 알면서도 그 앎을 조금도 써먹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수염과 달팽이 껍데기 코의 사내는, 탐나는 아카데미 의석에, 또는 선거에서 표 여럿을 좌우할 수 있는 이런저런 공작부인에게 이르려는 노력 속에서, 남의 은수저를 슬쩍 주머니에 챙기는 신사의 온갖 술수를 알고 또 부렸다. 그러면서도 그리로 가는 길에, 그런 목표를 좇는 것을 그의 악덕이라 여길 만한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하는 짓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는 반쯤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참된 베르고트의 말에 번갈아, 또 다른 베르고트, 야심에 차고 지독히 이기적인 베르고트의 말을 들을 수 있었으니, 그는 제 지위를 높이려고 힘 있고 부유하며 지체 높은 벗들 말고는 누구 이야기를 꺼낼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정작 자기 책에서, 참으로 자기 자신이었을 때에는, 산속 샘물처럼 맑은 가난의 매력을 그토록 잘 그려 낸 바로 그 사람이 말이다.

노르푸아 가 넌지시 비추었던 그 밖의 악덕들로 말하자면, 저 거의 근친상간에 가까운 사랑, 게다가 사람들 말로는 돈 문제에서의 섬세함 결여로 한층 더 고약해졌다는 그 사랑은, 그의 최근 소설들의 경향과 충격적일 만큼 모순되었다. 그 소설들에서 그는 어디서나 옳고 마땅한 것에 대한 그토록 아프도록 엄격한 존중을 드러내어, 주인공들의 더없이 순진한 즐거움조차 그 탓에 독이 배어들 지경이었고, 독자마저 살을 에는 듯한 거북함을 느끼며 그 책장을 넘기다가, 더없이 조용한 삶조차 과연 살아 나갈 수 있는 것인지 자문하게 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악덕들은, 설령 그것들이 베르고트에게 정당하게 돌려진다 치더라도, 그의 문학이 거짓이고 그의 온갖 섬세함이 한낱 연극에 지나지 않음을 조금도 증명해 주지는 못했다. 병리학에서 겉보기에 비슷한 어떤 병증들이, 어떤 것은 긴장이나 분비 따위의 과다에서, 어떤 것은 그 부족에서 비롯되듯이, 악덕도 감수성의 모자람에서만큼이나 그 지나침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어쩌면 도덕의 문제가 그 불안스러운 힘을 온전히 드러내며 떠오르는 것은 정말로 악덕에 물든 삶에서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에 예술가는, 제 개인의 삶이 아니라 그에게 참된 삶인 것의 차원에서 하나의 해답을, 곧 보편적이고 문학적인 해답을 찾아낸다. 위대한 교회 박사들이 흔히, 제 덕을 잃지 않은 채 온 인류의 죄를 먼저 알아 가고 그 죄에서 제 개인의 거룩함을 캐냈듯이, 위대한 예술가들도 흔히, 철저히 사악하면서도 우리 모두를 얽매는 도덕률의 관념에 이르기 위해 제 악덕을 써먹는다. 작가들이 제 책에서 가장 자주 꾸짖어 온 것은 자기가 몸담은 무리의 악덕(또는 그저 약점과 어리석음), 곧 무의미한 대화, 딸들의 경박하거나 충격적인 삶, 아내들의 부정, 아니면 자기 자신의 비행이었으되, 그렇다고 그들이 제 살림살이를 바꾸거나 제 집안의 기풍을 고쳐야 한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대조가 베르고트의 시대만큼 뚜렷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으니, 한편으로는 사회가 더 타락해 갈수록 우리의 도덕 관념은 갈수록 드높여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이 이제껏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문인들의 사생활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저녁이면 극장에서 사람들은, 내가 콩브레에서 그토록 흠모하던 그 작가가 어느 칸막이 좌석 안쪽에 앉아 있는 것을 손가락질하곤 했다. 그 좌석에 함께한 이들의 면면 자체가, 그가 방금 최근 책에서 내세우던 주장에 대한 야릇하게 우스운, 어쩌면 매섭도록 얄궂은 논평, 곧 뻔뻔스러운 부정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우연한 소식통이 내게 들려줄 수 있던 것이, 베르고트의 선함이냐 악함이냐 하는 물음을 매듭짓는 데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벗은 그의 무정함을 보여 주는 증거들을 내놓고, 그런가 하면 낯선 이는 그의 참된 정 깊음을 보여 주는 어떤 일화(그가 분명 숨겨 두기를 바랐던 만큼 뭉클한 일화)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아내에게 모질게 굴었다. 그러나 하룻밤을 묵으러 든 어느 시골 여인숙에서는, 물에 빠져 죽으려 한 어느 가엾은 여인을 지켜보느라 그곳에 머물렀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을 때는 여관 주인에게 큰돈을 맡겨, 그 가엾은 사람을 내쫓지 말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어쩌면 자그마한 수염의 사내를 밀어내며 베르고트 안에서 위대한 작가가 자라날수록, 그만큼 그 자신의 개인적 삶은 그가 상상해 낸 온갖 삶의 물결 속에 잠겨 버려, 마침내 그는 어떤 실제적인 의무들을 제 몫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고, 그 자리에 그 다른 삶들을 상상하는 의무를 갈음해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남들의 감정을 마치 제 것인 양 온전히 상상해 냈기에, 무슨 까닭으로든 불행을 겪은 어떤 사람과 이야기해야 할 때면(그러니까 우연히 마주쳤을 때면), 그렇게 하면서 제 개인의 처지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 자신의 처지를 취했다. 그 처지에서라면 그는, 남의 슬픔 앞에서도 여전히 제 하찮은 걱정거리만 생각하는 이들의 말에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가는 곳마다 마땅한 원한과 사그라들지 않는 고마움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그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어떤 이미지들과, (마치 작은 함 바닥에 박아 넣은 세밀화처럼) 그것들을 낱말로 짓고 그려 내는 일 말고는 참으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보낸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하찮은 것이 그에게 이런 이미지 한둘을 끌어들일 기회를 준다면, 그는 고마움을 아낌없이 쏟아 냈으나, 값비싼 선물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마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그가 법정에서 변론해야 했다면, 그는 어김없이, 그 말이 판사에게 미칠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판사라면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어떤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낱말을 골랐으리라.

질베르트의 부모와 함께 그를 처음 만난 그날, 나는 베르고트에게 얼마 전 라 베르마가 페드르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녀가 팔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린 채 서 있던 그 장면, 곧 그토록 큰 갈채를 받은 바로 그런 장면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녀가, 어쩌면 한 번도 본 적조차 없었을 어떤 고전의 형상들, 곧 올림피아의 어느 메토프에 같은 자세로 새겨진 헤스페리데스의 한 처녀와, 또 에레크테이온의 아름다운 옛 처녀상들을 대단히 고귀한 예술로 넌지시 떠올리게 해냈다고 말해 주었다.

“그저 신통한 직관일 수도 있지요. 그래도 나는 그녀가 미술관을 드나든다고 짐작합니다. 그 점을 ‘확증하는’ 일은 흥미로울 겁니다.” (“확증하다”는 베르고트가 늘 쓰던 표현 가운데 하나로, 그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러 젊은이가 그에게서 옮아,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암시로 그처럼 말하곤 하던 낱말이었다.)

“카리아티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스완이 물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베르고트가 말했다. “그녀가 외논에게 제 열정을 고백하는 장면, 케라미코스의 묘비에 새겨진 헤게소와 똑같이 손을 놀리는 그 장면만은 빼고요. 그녀가 되살려 내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원시적인 예술입니다. 내가 말한 것은 옛 에레크테이온의 코라이인데, 하기야 라신의 예술에서 그만큼 동떨어진 것도 아마 없으리라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페드르에는 이미 그토록 많은 것이 들어 있으니 … 하나쯤 더 있은들 … 오, 그리고, 그래요, 그녀는 정말 매혹적이지요, 6세기의 그 자그마한 페드르 말입니다, 팔의 뻣뻣함이며, ‘대리석에 얼어붙은’ 그 머리 타래며. 그래요, 아시다시피, 그 모든 것을 찾아냈다니 그녀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거기에는 올해 사람들이 ‘고전’이라 딱지 붙이는 책 대부분보다 훨씬 더 많은 고대가 담겨 있어요.”

베르고트가 자신의 어느 책에서 이 고졸(古拙)한 조각상들에게 유명한 기원(祈願)의 말을 바친 적이 있었기에,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내게 충분히 알아들을 만한 것이었고, 라 베르마의 연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 새로운 이유를 주었다. 나는 그녀가 팔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렸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장면에서의 모습 그대로, 그녀를 다시 마음속에 그려 보려 했다. 그리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저기 올림피아의 헤스페리스가 있구나. 저기 아크로폴리스의 그 사랑스러운 탄원하는 여인들의 자매가 있구나. 예술에는 참으로 고귀함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내게 라 베르마의 몸짓이 지닌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해 주려면, 베르고트는 공연 전에 그것들을 내 머릿속에 넣어 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 여배우의 자태가 실제로 살과 피를 지니고 내 눈앞에 존재하는 동안, 곧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직 현실의 실체를 지니고 있던 그 순간에, 나는 거기서 고졸한 조각의 관념을 이끌어 내려 애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장면 속 라 베르마에 대해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더 이상 수정될 여지가 없는 기억뿐이었으니, 마음껏 파고들어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현재라는 시제의 그 풍부한 원근(遠近)이 결여된 그림처럼 빈약했고, 외부로부터의 검증과 수정에 열려 있지 않은 의미를 뒤늦게 부여할 수는 없는 그림이었다. 이때 스완 부인이 대화에 끼어들어, 질베르트가 베르고트가 페드르에 관해 쓴 글을 내게 잊지 않고 건네주었는지 물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딸애가 어찌나 덤벙대는지!” 베르고트는 겸손하게 미소 지으며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몇 쪽에 지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정말 더없이 매력적인걸요, 그 작은 소책자, 선생님의 그 작은 ‘논고’ 말이에요!” 스완 부인이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으니, 자신이 훌륭한 안주인임을 보이기 위해서였고,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게 자기가 베르고트의 글을 읽었다고 여기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녀가 단지 베르고트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쓴 것 가운데서 스스로 취사선택을 하고 그의 글쓰기를 좌우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실제로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는데, 다만 그녀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말하자면, 스완 부인의 응접실이 지녔던 그 세련됨과 베르고트 작품의 어느 한 면 전체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상응 관계가 있어서, 오늘날 노년의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대한 주석 노릇을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내 감상이 어떠했는지를 그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베르고트는 자주 동의하지 않았지만, 내가 계속 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페드르가 팔을 들어 올릴 때 켜지던 초록빛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아! 무대 장치가가 그 말을 들으면 기뻐하겠군요. 그는 진짜 예술가랍니다. 당신이 좋아했다고 그에게 전하지요. 그는 그 효과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나 자신은 솔직히 그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온갖 것을 일종의 물기 어린 안개 속에 잠기게 하니, 저기 서 있는 가엾은 페드르가 수족관 바닥의 산호 가지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당신은 그것이 이 극의 우주적 측면을 드러낸다고 말하겠지요. 그건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 해도 그 장면이 넵투누스의 궁정을 배경으로 삼았더라면 더 어울렸을 겁니다. 아 물론, 넵투누스의 복수가 이 극에 나온다는 건 나도 알아요. 우리가 포르루아얄만 떠올려야 한다고 잠시라도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라신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성게들의 사랑’은 아니잖습니까. 어쨌든 그건 내 친구가 원했던 바이고, 옳든 그르든 아주 잘 만들어졌으며, 막상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제법 예쁘답니다. 그래요, 그게 마음에 들었단 말이지요, 물론 당신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이해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정말 같은 느낌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가 해 놓은 것이 조금 균형을 잃긴 했다고, 당신도 내 말에 동의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영리한 솜씨예요.” 그리하여 베르고트는 내 것과 정반대되는 의견을 말해야 할 때에도, 노르푸아 였다면 그랬을 것과 달리, 결코 나를 침묵으로, 어떤 대꾸도 짜낼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지 않았다. 이것이 베르고트의 의견이 그 대사(大使)의 의견보다 가치가 덜하다는 걸 입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강력한 관념은 그것에 맞서는 이에게 제 힘의 일부를 나누어 준다. 그것은 그 자체로 보편적 정신이 지닌 풍요의 일부이기에, 그것으로 논박하려는 상대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접붙고, 이미 그곳에 있던 관념들 사이로 슬며시 끼어들며, 그 관념들의 도움으로 상대는 얼마간 자리를 넓혀 그것을 보완하고 바로잡는다. 그리하여 최종적인 발언은 언제나 어느 정도는 토론에 참여한 양편 모두의 산물이 된다. 정작 아무 대꾸도 못 하게 만드는 것은, 엄밀히 말해 관념이라 할 수도 없는 관념들, 아무것에도 근거하지 않아 상대의 관념들 가운데서 어떤 버팀목도, 어떤 동류의 정신도 찾지 못하는 관념들이니, 그런 것 앞에서는 거기 있지도 않은 무언가와 씨름하느라 대답할 말을 한마디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노르푸아 의 논변은 (예술에 관한 한) 반박할 수 없었으니, 그것은 오로지 그 논변에 실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베르고트가 내 반론을 일축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반론이 노르푸아 의 경멸을 샀었다고 그에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 양반은 늙은 앵무새 아닙니까!” 하는 것이 그 대답이었다. “그는 줄곧 당신을 케이크 한 조각이나 갑오징어 한 점쯤으로 여기니까 계속 쪼아 대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요?” 스완이 물었다. “당신, 노르푸아와 친구요?” “그 사람은 비 오는 일요일만큼이나 따분해요.” 그의 아내가 끼어들었는데, 그녀는 베르고트의 판단을 크게 신뢰하고 있었고, 또 틀림없이 노르푸아 가 우리에게 자기 험담을 했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뒤에 그이가 입을 열게 해 보려 했지요, 나이 탓인지 소화불량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못 하게 끈적끈적하더군요. 정말이지 그이한테 흥분제라도 먹여야 하나 싶었다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안 그래요?” 베르고트가 맞장구를 쳤다. “있잖습니까, 그는 절반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자기 셔츠 앞자락을 눌러 놓고 하얀 조끼를 떠받치고 있는 그 시시한 말들의 재고를 죄다 써 버릴 테니까요.” “베르고트와 내 아내가 둘 다 그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군요.” 스완이 말했는데, 그는 자기 집에서 소박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 “노르푸아가 당신들에게 그리 흥미로울 리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스완은 ‘실제 삶’의 자잘한 단편들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으므로) “그는 상당히 눈여겨볼 만하답니다, 연애하는 남자로서 아주 눈여겨볼 만한 사례지요. 그가 로마에서 서기관으로 있을 때,” 그는 질베르트가 자기 말을 듣지 못하는 걸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 “여기 파리에 미친 듯이 사랑하는 정부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를 두어 시간 보려고 매주 오가는 여정을 두 번씩 마다치 않았답니다. 그녀는 마침 대단히 총명한 여자였고, 오늘날까지도 꽤나 매력적이지요, 지금은 미망인이 되었고요. 그리고 그 뒤로도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여자들을 거쳤답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파리에 살고 나는 로마에 갇혀 지내야 했다면, 나 같으면 틀림없이 완전히 미쳐 버렸을 겁니다. 신경이 예민한 남자는 언제나, 하층민들 말마따나, 자기보다 ‘아래인’ 여자를 사랑해야 하는 법이에요, 그래야 그 여자에게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할 물질적인 유인이 생기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스완은 내가 이 격언을 자신과 오데트에게 적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당신과 그가 함께 삶의 평면 위로 날아오르는 듯싶은 바로 그 순간에조차 그들의 개인적 자존심은 여전히 비루하게 인간적인 법이어서, 그는 나를 향한 격렬한 악의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의 불안한 눈길에만 드러났을 뿐이다. 그는 그때 내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를 놀라게 할 일은 아니다. 라신이 (그 진위는 이미 허구로 밝혀졌으나, 그 주제만은 파리의 삶에서 날마다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어느 이야기에 따르면) 루이 14세 앞에서 스카롱을 넌지시 빗대었을 때,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는 그날 저녁 그 시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총애를 잃은 것은 오직 그 이튿날의 일이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