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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부인 댁에서 ⑭

2권 제1부 · 스완 부인 댁에서

그러나 이론이란 온전히 하나로 진술되어야 하는 법이라, 스완은 이 순간적인 언짢음이 지나간 뒤 외알 안경을 닦고 나서, 마음속에 있던 말을 이런 말로 끝맺었으니, 그것은 훗날 내 기억 속에서 예언적 경고의 무게를 지니게 될 말이었건만, 나는 그것을 새겨들을 만한 분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랑이 지닌 위험은, 여자의 복종이 남자의 질투를 한동안은 가라앉혀 주지만 동시에 그 질투를 더욱 까다롭게 만든다는 데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 정부를, 탈출을 막으려고 밤낮으로 감방에 불을 켜 두는 그런 죄수들 중 하나처럼 살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그건 대개 화(禍)로 끝나지요.”

나는 다시 노르푸아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 사람은 절대 믿으면 안 돼요, 세상에 둘도 없는 독설가라니까요!” 스완 부인이 말했는데, 그 어조는 내게 노르푸아 가 그녀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 다녔음을 암시하는 듯이 들렸으니, 특히나 스완이 아내가 도를 넘기 전에 말리려는 듯 나무라는 기색으로 건너편의 그녀를 바라보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는 사이 질베르트는, 우리의 마차 나들이를 위해 가서 채비하라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남아서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듯 서성이다가, 다정하게 아버지의 어깨에 기댔다. 언뜻 보기에, 붉은 머리에 금빛 살결을 지닌 이 아이만큼, 가무잡잡한 스완 부인과 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도 없을 성싶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고 나면 질베르트에게서 어머니의 여러 특징을, 이를테면 대를 이어 그 작업을 되풀이하는 보이지 않는 조각가가 날카롭고 흔들림 없는 결단으로 짧게 깎아 낸 그 코라든가, 표정이라든가, 몸짓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른 형태의 예술에서 예를 들자면, 그녀는 스완 부인을 그다지 닮지 않게 그린 어느 초상화를 떠올리게 했으니, 화가가 무슨 색채의 변덕을 부리느라 그 부인을 어설프게 변장시켜, 베네치아풍 ‘분장’으로 차려입혀 파티에 나가는 모습으로 앉혀 놓은 그런 초상화였다. 그리고 그녀는 단지 금발 가발을 쓰고 있을 뿐 아니라, 살결에서 더 거무스름한 기운이 원자 하나까지 죄다 빠져나가, 갈색의 장막을 벗은 그 살결이 한결 벌거벗은 듯 보였고 오직 내면의 태양이 뿜는 빛살로만 덮여 있었으므로, 이 ‘분장’은 그저 겉치레에 그치지 않고 그녀 안에 육화(肉化)되어 있었다. 질베르트는 어떤 전설적인 동물을 구현했거나 신화적 변장을 걸친 듯한 모습이었다. 이 불그레한 살결은 어찌나 정확히 아버지의 것이었던지, 자연은 질베르트를 만들어 낼 때, 스완 의 살결 말고는 손에 쥔 재료가 하나도 없이 스완 부인을 조각조각 재구성해 내야 하는 문제를 풀어야 했던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연은 이것을 완벽하게 활용했으니, 나뭇결과 옹이를 일부러 고스란히 드러내 두는 명장(名匠) 조각가와도 같았다. 질베르트의 얼굴에서는, 오데트의 코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그 한쪽 구석에, 스완 의 두 점(點)을 고스란히 간직하려는 듯 살결이 도톰하게 솟아 있었다. 그리하여 얻어진 것은 스완 부인의 새로운 변종(變種)이었으니, 마치 자줏빛 라일락 곁에 자라난 흰 라일락 나무처럼 그녀 곁에 자라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두 닮은꼴 사이의 경계선을 확정된 것으로 상상해서는 안 되었다. 이따금 질베르트가 미소 지을 때면, 누군가가 그 둘을 뒤섞어 놓고 그 혼합에서 무엇이 나올지 지켜보기라도 한 듯, 어머니의 얼굴 위로 아버지의 갸름한 뺨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갸름한 윤곽은 배아(胚芽)가 살아 있는 형체로 자라나듯 뚜렷해졌다가, 비스듬히 길어지고 부풀어 오르더니, 잠시 뒤에는 사라져 버렸다. 질베르트의 눈에는 아버지의 솔직하고 정직한 눈빛이 담겨 있었으니, 그녀가 내게 마노 구슬을 주며 “간직해, 우리 우정을 기억하도록” 하고 말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그러나 질베르트에게 무언가를 물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캐물으면, 바로 그 눈 속에서 당혹감과 망설임과 얼버무림과 곤혹스러움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은 오데트가 옛날, 스완이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면 곧잘 내보이던 것이었고, 그럴 때 그녀가 내놓던 그 거짓 대답들은 그 시절에는 사랑에 빠진 남자를 절망으로 몰아넣었으나 이제는 그가 호기심 없고 신중한 남편처럼 대화를 불쑥 딴 데로 돌리게 만들었다. 나는 샹젤리제에서 질베르트의 얼굴에 떠오른 이 표정을 보고 종종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대개는 내 두려움이 근거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순전히 육체적으로만 그녀 안에 살아남은 이 표정은 (적어도 그것만큼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질베르트의 눈동자가 그 움직임을 짓는 것은 수업에 다녀왔을 때, 무슨 과외를 받으러 집에 돌아가야 할 때였으니, 지난날 오데트의 눈에서 그 움직임을 자아냈던 것은 낮 동안 정부들 가운데 하나에게 문을 열어 주었음을, 혹은 바로 그 순간 어떤 밀회 장소로 서둘러 가려는 참임을 들킬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리하여 이 멜뤼진의 몸속에서 스완 와 스완 부인의 두 본성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썰물처럼 빠지며 번갈아 서로를 침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 다 닮는다는 것은 물론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가 물려받는 장점과 결점의 배분은 어찌나 기묘하게 짜여 있는지, 부모 중 한쪽에서는 떼어 놓을 수 없어 보이던 두 가지 미덕 가운데 아이에게서는 오직 하나만 발견될 뿐이며, 게다가 그것은 다른 쪽 부모에게 있던, 그 미덕과는 도무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던 바로 그 결점과 짝을 이루고 있다. 실로, 훌륭한 도덕적 자질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 육체적 흠 속에 육화되는 것은 흔히 자식이 부모를 닮는 법칙 가운데 하나다. 두 자매 중 하나는 아버지의 당당한 풍채에 어머니의 옹졸하고 째째한 영혼을 겸비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지성을 넉넉히 타고났으면서도 그것을 어머니가 익히 보여 온 모습으로 세상에 내보일 것이니, 어머니의 볼품없는 코와 앙상한 가슴이, 당신이 어느 당당한 풍모 아래에서 알아보는 법을 익혔던 그 재능들을 감싸는 육신의 껍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자매 저마다에 대해, 부모 중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 아이가 더 닮았다고 똑같이 정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질베르트가 외동딸인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두 명의 질베르트가 있었다. 아버지의 것과 어머니의 것, 이 두 본성은 그녀 안에서 단지 뒤섞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녀를 차지하려 다투었으니, 그렇다고 딱 잘라 그렇게 말할 수도 없으며, 그리 말하면 그동안 제3의 질베르트가 다른 두 질베르트의 먹이가 되어 고통받고 있었다고 여겨질 테니 말이다. 실제로 질베르트는 번갈아 이쪽이었다가 저쪽이었으며, 어느 한순간에는 그 둘 중 하나 이상은 결코 아니었으니, 다시 말해 그녀가 착하지 않을 때에는 그에 걸맞게 괴로워할 수도 없었던 것인데, 그때 더 나은 질베르트는 순간적으로 자리를 비운 탓에 다른 질베르트가 미덕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아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둘 중 덜 착한 쪽은 마음 놓고 비천한 종류의 쾌락을 누릴 수 있었다. 다른 쪽이 아버지의 마음에서 우러나 당신에게 말할 때면 그녀는 너그러운 견해를 지녔으므로, 당신은 그녀와 더불어 아름답고 유익한 일을 도모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만, 막 그 계획이 마무리되려는 찰나에 어머니의 마음이 이미 다시 지배권을 되찾아 버리고, 대답하는 것은 그쪽의 목소리이니, 당신은 실망하고 언짢아하며, 마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뒤바뀐 것을 마주한 듯 거의 어리둥절해지고 마는데, 이는 어떤 비루한 생각, 어떤 진심 없는 웃음 때문이었으되, 질베르트 자신은 거기서 아무 잘못도 보지 못했으니 그것들이 바로 그 순간의 그녀 자신에게서 솟아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로 이 두 질베르트 사이의 간극은 때때로 어찌나 컸던지, 당신은 지난번에 그녀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했기에 이제 그녀가 이토록 딴사람이 되었나 하고, 답도 찾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녀 자신이 어딘가에서 당신과 만나기로 해 놓고서도, 나타나지 않고 그 뒤에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든 간에, 막상 당신이 그녀를 만났을 때 어찌나 딴판인 성격을 내보이던지, 당신은 메나이크미의 줄거리를 이루는 것과 같은 닮은꼴에 속아, 그토록 정중하게 당신을 보고 싶다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고 여겼을 법도 했으니, 다만 그녀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껴 해명을 해야 하는 처지를 피하고 싶어 함을 드러내는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자 그럼, 어서 가서 채비하렴,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 있잖니.” 어머니가 그녀에게 일렀다.

“난 우리 아빠랑 여기 있는 게 너무 좋은걸요, 딱 일 분만 더 있을래요.” 질베르트가 대답하며 아버지의 팔 밑에 머리를 파묻자, 아버지는 그녀의 환한 머리칼 사이로 다정하게 손가락을 쓸어 넘겼다.

스완은, 오랫동안 사랑의 환상 속에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이 숱한 여자들에게 가져다준 번영이 그 여자들의 행복을 늘려 주면서도 정작 그들 안에 은인을 향한 어떤 고마움도, 어떤 애틋함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그런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런 남자들은 자기 아이에게서만큼은, 제 이름 속에 육화되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 남아 있게 해 줄 그런 애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더 이상 샤를 스완이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도, 스완 이라는 사람은, 혹은 스완 태생의 다른 아무개 부인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남아, 사라진 아버지를 계속 사랑해 줄 터였다. 실로, 어쩌면 아버지를 지나치게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스완은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질베르트의 애무에 “착하지!” 하는 말로 화답했는데, 그 어조는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운명을 지닌 존재의 너무도 열렬한 애정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그 불안으로 인해 부드러워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고 라 베르마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는 자기가 하는 말에 어느 정도는 무심한 척 남아 있고 싶다는 듯 초연하고 나른한 어조로, 그 여배우가 외논에게 “당신은 알고 있었어!”라고 말할 때 얼마나 명민하게, 얼마나 놀라울 만큼 딱 들어맞게 말하는지를 내게 짚어 주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 억양만큼은 정말로 알아들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따라서 라 베르마를 찬미할 반박 불가능한 근거를 찾고자 하던 내 바람을 충족시켜 줄 만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명료함 때문에 그것은 나를 조금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녀의 억양은 어찌나 기발하고 그 의도와 의미가 어찌나 분명한지, 마치 그 자체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듯했으니, 그리하여 웬만큼 명민한 여배우라면 누구나 그것을 쓰는 법을 익힐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것은 훌륭한 착상이었으나, 다른 누구든 그것을 그만큼 온전히 떠올린다면 그 사람 역시 그것을 똑같이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것을 찾아낸 공로만은 라 베르마의 몫으로 남았지만, 문제의 그 대상이, 남에게서 그대로 받았더라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무엇이라면, 훗날 다른 누군가가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본디 제 본성에 속하지도 않는 무엇이라면, ‘발견’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과연 있는 것일까?

“이거 참, 자네가 우리 틈에 끼니 대화의 격이 한결 올라가는군!” 스완이 마치 베르고트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내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게르망트 사교계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을 그저 평범한 친구들처럼 대접하는 버릇이 들어 있었으니, 그런 친구에게는 오로지 그가 좋아하는 요리를 먹이고, 놀이를 하게 하며, 시골에서라면 그가 즐기는 온갖 종류의 운동을 마음껏 하게 해 주려 애쓸 뿐인 것이다. “우리가 예술 이야기를 잔뜩 하고 있는 것 같군.”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말 좋은걸요, 난 그런 게 참 좋아요!” 스완 부인이 내게 고마운 눈길을 던지며 말했으니, 그것은 그녀의 선량한 천성에서 나온 것이자, 더 지적인 형태의 대화를 향한 예전의 열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베르고트는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 주로 질베르트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거리낌 없이 내가 느낀 모든 것을 그에게 털어놓았는데, 그것은 여러 해 전에 (그가 내게는 그저 나 자신의 더 나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던 그 숱한 고독한 독서의 시간 동안) 그와 더불어 진솔함과 솔직함과 신뢰의 습관을 몸에 익혔던 까닭이어서, 나는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에게보다 그에게 덜 겁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나는 내가 그에게 틀림없이 심어 주고 있을 인상을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어지러웠으니, 그가 내 생각들에 대해 느끼리라 짐작했던 그 경멸은 그날 오후부터가 아니라, 콩브레의 우리 집 정원에서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던 그 이미 아득한 시절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나는 이렇게 되새겼어야 했으리라. 내가 온전히 진심으로, 내 생각의 흐름에 나를 내맡긴 채, 한편으로는 베르고트의 작품에 그토록 강렬하게 공감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에서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실망을 느꼈던 것이므로, 나를 사로잡았던 그 두 본능적인 움직임이 서로 그렇게까지 다를 리 없으며 반드시 같은 법칙에 따르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그의 책 속에서 사랑했던 그 베르고트의 정신이, 나의 실망과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에 대해 전적으로 낯설고 적대적인 무엇일 수는 없다고 말이다. 나의 지성은 균질한 하나임에 틀림없으니, 어쩌면 실로 오직 하나의 지성만이 존재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거기에 참여하고, 우리 저마다는 제각기 따로 떨어진 몸의 자리에서 그것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이리라, 마치 저마다 제 좌석을 따로 가지고 있으되 무대만은 오직 하나뿐인 극장에서처럼. 물론 내가 애써 풀어내 보려던 관념들은 아마 베르고트가 자기 책 속에서 흔히 그 깊이를 헤아리던 그런 관념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나,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지성이 하나이자 같은 것이라면, 그는 내가 그 관념들을 표현하는 것을 들을 때 그것들을 떠올리고 아끼고 그것들에 미소 지었을 것이며, 아마 내 짐작과는 달리, 자기 책 속으로 흘러든 발췌본과는 다른 지성의 세계 전체를 마음의 눈앞에 간직하고 있었을 터인데, 나는 바로 그 발췌본에 근거하여 그의 정신적 우주 전체를 상상해 왔던 것이다. 사제들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가장 폭넓은 경험을 지녔기에 자기 스스로 저지르지 않는 죄들을 가장 잘 용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재는 인간의 지성에 대해 가장 폭넓은 경험을 지녔기에 제 저작의 토대를 이루는 관념들과 가장 정면으로 대립하는 관념들조차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일러 주었어야 했다 (하기야 그것이 그리 위안이 되는 생각은 아니었으니, 위대한 정신들의 너그러운 겸양에는 옹졸한 정신들의 몰이해와 적의가 따름정리처럼 뒤따르는 법이요, 사람은 위대한 작가의 호의에서, 그것도 더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탓에 그의 책 속에 표현된 형태로나 마주하는 그 호의에서 얻는 행복보다, 지성 때문에 고른 것도 아니건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의 적의에서 겪는 고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일러 주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내가 베르고트에게 바보처럼 비쳤으리라 확신하고 있던 참에, 질베르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얼마나 기쁜지 넌 짐작도 못 할 거야, 네가 내 소중한 벗 베르고트 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았거든. 선생님이 엄마한테 널 아주 똑똑하다고 여긴다고 그랬대.”

“우린 어디로 가는 거야?”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 네가 가고 싶은 데면 어디든, 알잖아,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러나 그녀의 할아버지 기일에 일어났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질베르트의 성격이 내가 짐작했던 것과 다르지는 않은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그 무심함, 그 지혜로움, 그 차분함, 그 온순하고 한결같은 순종이 실은 그녀의 자존심이 겉으로 드러나기를 허락하지 않는 격렬한 열망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어쩌다 그 열망이 좌절될 때마다 그녀가 오직 갑작스러운 저항으로만 그것을 내비치는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베르고트가 우리 부모님과 같은 동네에 살았으므로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섰고, 마차 안에서 그는 내 건강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 친구들이 자네가 앓았다고 그러더군. 참 안됐네. 하지만 그래도 그리 안됐다고만은 못 하겠는걸, 자네가 정신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안다는 걸 아주 잘 알겠거든. 그리고 그 즐거움을 아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듯, 자네에게도 아마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일 테고 말이야.”

아아, 그가 하는 말이 내게는 얼마나 들어맞지 않는지를 나는 느꼈으니, 나로 말하자면 아무리 고매한 사색이라 해도 나를 시큰둥하게 만들 뿐이었고, 오직 편안하고 몸이 성한 순수한 무위(無爲)의 순간에만 행복했다. 나는 내가 삶에서 욕망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순전히 물질적인지, 그리고 지성 따위는 얼마나 손쉽게 없어도 되는지를 느꼈다. 나는 내 즐거움들을, 서로 다른 원천에서 오고 깊이와 지속성이 저마다 다른 것들 사이에서 구별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대답할 순간이 오자, 내가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허물없이 지내고, 샹젤리제의 그 오래된 세관 초소에서처럼 콩브레를 떠올리게 하는 서늘한 냄새를 자주 마주치는, 그런 삶을 바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그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 이상적인 삶 속에서 정신의 즐거움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정신의 즐거움은 제게 별 의미가 없답니다, 제가 좇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제가 그걸 맛본 적이나 있는지조차 모르겠는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가 대답했다. “글쎄, 그럴 수도, 아니, 잠깐만 있어 보게, 그래, 결국은 그게 자네가 제일 좋아하는 것임에 틀림없어, 이제 똑똑히 알겠군, 나는 확신하네.”

분명히 그는 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미 한결 행복하고 덜 옥죄인 기분이었다. 노르푸아 가 내게 했던 말 이후로, 나는 몽상과 열정과 자신감에 찬 내 순간들을 순전히 주관적이며 진실이라고는 없는 것으로 여겨 왔었다. 그러나 내 경우를 이해하는 듯 보이는 베르고트에 따르면, 사정은 정반대여서, 내가 무시해야 할 증상은 실은 나의 의심,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혐오인 듯했다. 게다가 그가 노르푸아 에 관해 했던 말은, 내가 도무지 뒤집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어느 선고에서 그 가시의 대부분을 뽑아내 주었다.

“자네는 제대로 보살핌을 받고 있나?” 베르고트가 내게 물었다. “누가 자네를 치료하고 있지?” 나는 코타르에게 진찰을 받아 왔고 앞으로도 아마 계속 그럴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네에게 도무지 맞는 부류의 사람이 아닐세!” 그가 내게 말했다. “의사로서의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네. 하지만 스완 부인 댁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지. 그 사람은 얼간이야. 설령 그렇다고 해서 그가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란 법은 없다 치더라도, 나로서는 그것마저 믿기 망설여지네만, 어쨌든 그 때문에 그는 예술가들에게, 지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좋은 의사가 되지는 못하는 걸세. 자네 같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의사를 두어야 하고, 거의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은데, 자기에게 특별히 맞춘 치료와 약을 써야 하네. 코타르는 자네를 따분하게 만들 테고, 그것만으로도 그의 치료는 아무 효험도 없게 될 걸세. 게다가 자네에게 알맞은 치료법이 여느 갑남을녀와 똑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성인들이 앓는 병의 십중팔구는 그들의 지성에서 비롯되는 걸세. 그들에게는 적어도 자기 병을 이해하는 의사가 필요하네. 코타르가 어떻게 자네를 치료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나, 그는 소스를 소화하기 어려운 것이나 위장 장애는 감안했겠지만, 셰익스피어를 읽어서 생기는 영향은 감안한 적이 없거든. 그러니 자네의 경우에는 그의 계산이 어긋나고 균형이 무너지는 걸세, 알겠나, 늘 그 작은 병 속 도깨비가 다시 불쑥 떠오르는 격이지. 그는 자네 위(胃)가 늘어나 있다고 진단할 걸세, 굳이 자네를 진찰할 필요도 없지, 이미 그의 눈 속에 그게 들어 있으니까. 저기 그의 안경알에 비쳐 있는 걸 자네도 볼 수 있다네.” 이런 말투는 나를 몹시 지치게 했다. 나는 상식이 지닌 어리석음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코타르 교수의 안경알에 늘어난 위가 비쳐 있지 않은 것은, 노르푸아 의 하얀 조끼 뒤에 시시한 말들이 쟁여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 대신 나는 자네에게,” 베르고트가 말을 이었다, “뒤 불봉 박사에게 진찰을 받아 보라고 권하고 싶네, 아주 지성적인 사람이거든.” “그분은 선생님의 책을 무척 흠모하는 분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나는 베르고트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을 알아챘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은 이내 서로 만나게 되는 법이며, 정말로 “알지 못하는 벗”이란 그리 많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베르고트가 코타르에 관해 내게 한 말은, 내가 스스로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어긋나면서도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내 의사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으니, 나는 그에게, 내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법칙을 지닌 어떤 기술 덕분에, 내 오장육부를 살핀 뒤 내 건강에 관해 틀림없는 신탁을 내려 주기를 기대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를 손쉽게 능가하는 그 지성의 힘을 빌려 그가 내 지성을 이해하려 애써 주기를 조금도 요구하지 않았으니, 나는 내 지성을 그 자체로는 아무 중요성도 없는, 어떤 외적인 진리들에 다다르려는 하나의 수단쯤으로만 그려 보고 있었다. 나는 지성적인 사람들이 얼간이들과는 다른 형태의 섭생을 필요로 하는지 크게 의심스러웠고, 얼마든지 얼간이들에게 맞는 쪽에 나를 내맡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가 정말로 좋은 의사가 필요한지 말해 주지, 바로 우리 친구 스완이라네.” 베르고트가 말했다. 그리고 그가 아프냐고 내가 묻자, “그게 말이야, 알다시피 그는 화냥년과 결혼한 남자의 전형이라서, 자기 아내와 만나기를 거부하는 여자들이나, 자기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었던 남자들 때문에 날마다 뱀을 백 마리씩 삼켜야 하는 처지거든. 그것들이 그의 입 속에서 꿈틀거리는 걸 볼 수 있다네. 자네가 거기 가는 날이면 언제든 한번 보게나, 그가 방에 들어서면서 누가 와 있는지 보려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그 모양을 말이야.” 베르고트가 그토록 오랫동안 반가운 손님으로 맞아들여지던 집의 벗들에 대해, 낯선 이에게 이렇게 지껄이는 그 악의는, 정작 그 집에서는 그가 그들에게 말할 때 줄곧 취하던 그 거의 애정 어린 어조만큼이나 내게는 뜻밖의 것이었다. 이를테면 내 대고모 같은 사람이라면, 내가 베르고트가 스완에게 아낌없이 쏟는 것을 들었던 그런 정중함으로 우리 중 누구를 대한다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언짢은 말을 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그들이 들어서는 안 될 말은 결코 입에 담지 않았을 것이다. 콩브레의 우리 사교(社交)만큼 그 사교 “세계”와 닮지 않은 것도 없었다. 스완네 집은 그 세계로, 그 변덕스러운 조수(潮水)로 나아가는 길목의 한 단계였다. 그들이 아직 먼바다에는 이르지 못했다 해도, 적어도 석호(潟湖)에는 들어와 있었다. “이건 다 우리끼리 얘기일세.” 베르고트가 내 집 문 앞에서 나와 헤어지며 말했다. 몇 해 뒤였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으리라. “저는 남의 말을 옮기는 법이 없어요.” 그것은 사교계의 상투적인 인사말이니, 험담을 늘어놓는 자는 언제나 거기서 그릇된 안도를 얻는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 자리에서 베르고트에게 했어야 할 말이었으니, 사람은 제가 하는 말을 죄다 스스로 지어내지는 않는 법이요, 특히 사교라는 카드 한 벌 속의 한 장 노릇을 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상투구를 알지 못했다. 반면에 내 대고모가 비슷한 경우에 했을 법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남이 옮기지 않기를 바란다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게냐?” 그것은 붙임성 없는 사람, 시비 걸기 좋아하는 사람의 대답이다. 나는 그런 부류가 조금도 아니었으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 눈에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보이던 문인들이 여러 해를 궁리한 끝에야 겨우 베르고트와 어떤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으되, 그 관계란 끝까지도 어렴풋이 문학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서재의 네 벽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건만, 정작 나는 첫 시도에,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서 그 위대한 작가의 벗들 틈에 자리를 잡았으니, 마치 극장에서 나쁜 좌석 하나를 얻으려고 몇 시간씩 사람들 틈에 끼어 밖에 서 있는 대신, 일반인에게는 닫혀 있는 문으로 들어와 곧장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받는 사람과도 같았다. 스완이 이렇게 내게 그런 문을 열어 준 것은, 필시 왕이 자기 아이들의 벗을 왕실 관람석으로, 혹은 왕실 요트 위로 자연스레 청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베르트의 부모가 자기 딸의 벗을 자기네 집에 있는 온갖 진귀한 것들 사이로, 그리고 그곳에 고이 간직된 한층 더 진귀한 친밀함 속으로 맞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나는, 스완의 이 살가움이 에둘러 우리 부모님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콩브레에서 언젠가 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바, 그는 내가 베르고트를 흠모하는 것을 생각해서 나를 데리고 그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겠다고 부모님께 제안했으나, 부모님은 내가 아직 너무 어리고 너무 쉽게 들뜨는지라 “나다니기”에는 이르다며 사양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필시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는 (바로 내게는 더없이 경탄스러워 보이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는) 내게 그러한 것과는 사뭇 다른 무엇으로 비쳤을 터이므로, 마치 분홍빛 옷의 부인이 우리 아버지에게 그가 도무지 받을 자격 없어 보이던 찬사를 바쳤을 때처럼, 나는 부모님이 내가 방금 얼마나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받았는지를 헤아려 주기를, 그리고 그것을 내게, 아니 차라리 부모님께 베풀어 준 그 너그럽고 정중한 스완에게 고마움을 표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니, 정작 그 스완은, 루이니의 벽화 속에서 매부리코에 금발을 한 그 매력적인 동방박사만큼이나, 자기 선물의 가치를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는데, 듣자 하니 스완은 한때 바로 그 동방박사를 빼닮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