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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부인 댁에서 ⑮

2권 제1부 · 스완 부인 댁에서

불행하게도, 스완이 내게 베풀어 준 이 호의를,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외투를 벗기도 전에, 그것이 부모님 가슴속에 내 것과 맞먹는 감동을 일깨워 스완네를 향한 어떤 엄청나고 결정적인 예의의 행동으로 이끌기를 바라며 부모님께 알렸건만, 그것은 그들에게 그다지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 같지 않았다. “스완이 너를 베르고트에게 소개했다고? 너한테 더없이 훌륭한 벗이요, 매력적인 교제로구나!” 아버지가 빈정대며 소리쳤다. “그것만 있으면 되겠구나!” 아아, 내가 이어서 베르고트가 노르푸아 를 도무지 좋게 볼 마음이 없더라고 말했을 때,

“그럴 테지!” 아버지가 쏘아붙였다. “그건 그저 그자가 어리석고 심보 고약한 작자라는 걸 입증할 뿐이다. 가엾은 녀석, 너는 애초에 분별이라곤 별로 없었다만, 그래도 너를 아주 결딴내 버릴 무리 속에 빠져드는 꼴을 보자니 딱하구나.”

내가 스완네를 드나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부모님은 조금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이번에 베르고트에게 소개된 일은 그들에게, 애초의 잘못이, 곧 나를 단속하는 데서 보인 그들 자신의 유약함이 빚어낸 불행하지만 당연한 결과로 보였으니, 그 유약함을 내 할아버지라면 “신중함의 결여”라고 불렀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언짢음을 마저 채우려면, 노르푸아 를 좋게 보지 않는 이 삐딱한 작자가 나를 아주 총명하다고 여기더라는 말만 하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것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누군가가, 이를테면 내 학교 친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순간의 나처럼 그릇된 길로 빠지고 있다고 단정할 때, 만약 그 사람이 아버지가 높이 치지 않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있으면, 그 증언에서 자신의 준엄한 판단이 확증되는 것을 보곤 했다. 그에게는 그 해악이 한층 더 두드러져 보일 따름이었다. 나는 벌써 아버지가 “그럼 그렇지, 다 한통속이로구나”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니, 그 말은 내 조용한 삶 속으로 들이닥칠 듯 위협하는 개혁들의 그 막연함과 방대함으로 나를 두렵게 했다. 그러나 설령 내가 베르고트가 나에 대해 한 말을 부모님께 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이미 품은 인상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였으므로, 그 인상이 조금 더 나빠진다 한들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내게 어찌나 부당하고 어찌나 완전히 잘못 짚은 것으로 보였던지, 나는 그들을 더 공정한 관점으로 이끌 어떤 희망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마음조차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총명한 사람들을 바보라고 일축하고 점잖은 이들 모두의 경멸을 산 사람의 눈에 내가 들었다는 생각에, 게다가 그런 자의 칭찬이란, 내게는 바랄 만한 것으로 보였던 만큼 나를 나쁜 길로 부추길 뿐이라는 생각에 그들이 얼마나 놀랄지를 느끼면서, 나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조금은 겸연쩍은 낯빛으로, 내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런 꽃다발을 내던졌다. “그분이 스완네한테 저를 아주 총명하다고 여긴다고 그랬대요.” 독을 먹은 개가 들판에서 영문도 모른 채, 제가 삼킨 독의 정확한 해독제가 되는 풀로 곧장 달려가듯이, 나 또한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 베르고트에 관한 부모님의 이 편견을 이겨 낼 수 있는 세상 유일한 말을 내뱉었던 것이니, 그 편견은 내가 들이댈 수 있었을 온갖 훌륭한 논거로도, 내가 그에게 바칠 수 있었을 온갖 찬사로도 결코 꺾지 못했을 것이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어머! 그분이 너를 총명하다고 여긴다고 했다고?” 어머니가 되뇌었다. “그 말을 들으니 기쁘구나, 그분은 재능 있는 사람이니까.”

“뭐라고!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온 세상이 머리를 조아리는 그의 문학적 명망을 내가 한순간이라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늙은 노르푸아가 여기 왔을 때 조심스레 넌지시 비쳤던 그 별로 떳떳지 못한 삶을 그가 살고 있다는 게 딱할 뿐이지.” 아버지는 말을 이었으나, 내가 방금 되뇐 그 마법 같은 말의 지고한 위력 앞에서는 베르고트의 도덕적 타락이라 한들 그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보다 조금도 더 버텨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보,”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 “그게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사람들은 별의별 말을 다 하는걸요. 게다가 노르푸아 가 세상에 둘도 없이 나무랄 데 없는 예절을 갖췄다 해도, 늘 그렇게 성품이 너그러운 건 아니에요, 특히 자기와 딱 어울리는 부류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요.”

“그건 정말 맞는 말이오, 나도 직접 눈여겨봤소.” 아버지가 인정했다.

“게다가 베르고트한테는 많은 걸 너그러이 봐줘야 마땅해요, 우리 어린 아들을 좋게 여겨 준다니 말이에요.”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길고 생각에 잠긴 눈길을 내게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베르고트의 이 판정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친구들이 올 때면 언제든 질베르트를 차 마시러 부르라고 내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감히 그러지 못했다. 첫째는 질베르트네에서는 차 말고는 마실 것이 결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가 초콜릿 한 주전자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나는 질베르트가 이것을 “촌스럽다”고 여겨, 그리하여 우리를 몹시 경멸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격식의 어려움, 곧 내가 도무지 해결하지 못하던 절차의 문제였다. 내가 스완 부인 댁에 도착하면 그녀는 으레 내게 묻곤 했다. “그래, 어머님은 안녕하시니?” 나는 질베르트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어머니도 똑같이 해 줄지를 알아보려고 몇 번이나 넌지시 운을 떼었는데, 그것은 내게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각하(閣下)”라는 호칭을 쓰는 문제보다 더 중대한 사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말을 한순간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절대 안 된다. 나는 스완 부인을 알지 못해.”

“하지만 그분도 어머니를 알지 못하는걸요.”

“그분이 나를 안다고는 나도 말한 적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매사에 꼭 똑같이 처신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스완 부인이 너한테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질베르트에게 예의를 차리마.”

그러나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고, 차라리 질베르트를 부르지 않는 편을 택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갔고, 주머니를 비우다가 문득, 스완네 집사가 나를 응접실로 안내하기 전에 내게 건네주었던 봉투를 발견했다. 이제 나는 혼자였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카드가 한 장 들어 있었고, 거기에는 내가 오찬 자리로 “모시고 들어갔어야” 할 부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블로크가 나의 세계관을 뒤엎고 행복의 새로운 가능성을(하기야 그것은 훗날 고통의 가능성으로 바뀌게 되지만) 내게 열어 준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으니, 내가 메제글리즈 쪽으로 산책하던 시절에 믿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여자들은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그가 내게 장담해 준 것이다. 그는 이 봉사에 두 번째 것을 보태었는데, 그 가치를 나는 한참 뒤에야 비로소 헤아리게 되었다. 나를 처음으로 유곽에 데려간 이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예쁜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내게 말해 주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들을 그저 어렴풋한 윤곽으로만 그려 볼 수 있었고, 그 집들이 바로 그 윤곽 자리에 실제 인간의 이목구비를 채워 넣게 해 줄 참이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을 누리는 일이 다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것을 영영 단념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그 “기쁜 소식” 덕분에 내가 블로크에게, 이 세상에서 오래 살 것을 바라도 좋다고, 장막 너머로 건너간 뒤에도 이 세상에서 완전히 끊기지는 않으리라고 희망할 이유를 준 낙천적인 의사나 철학자에게 우리가 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감사를 빚졌다면, 몇 해 뒤부터 내가 드나들기 시작한 밀회의 집들은, 내게 아름다움의 표본을 대 주고,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우리가 스스로 지어낼 힘이 없는 그 요소를, 곧 지난날 아름다움들의 단순한 요약 이상의 무엇, 참으로 신성한 그 선물, 우리가 스스로에게는 베풀 수 없는 유일한 선물, 우리 지성의 온갖 논리적 창조물이 그 앞에서 스러지고 무너지는 그 선물, 오직 현실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그 선물, 곧 개별적인 매력을 덧보탤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유래는 더 새롭지만 견줄 만한 쓸모를 지닌 저 다른 은인들과 나란히 자리매김될 자격이 있었다(그런 것들을 찾아내기 전에 우리는 다른 화가들을 연구하고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듣고 다른 도시들을 찾아다니면서, 만테냐와 바그너와 시에나의 매혹적인 마력을 아무런 열기 없이 상상하곤 했었다). 다시 말해 그림의 역사를 다룬 삽화본과 교향악 연주회와 “중세 도시들” 안내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블로크가 나를 데려간 그 집은(하기야 그 자신도 이미 오래전부터 발길을 끊은 곳이었지만) 너무 급이 낮았고, 그 안에 사는 여자들은 너무 눈에 띄지 않고 변화가 적어서, 내 오랜 호기심을 채워 주지도 새 호기심을 돋우지도 못했다. 이 집의 마님은 사람들이 흥정을 부탁하는 여자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고, 늘 원하지도 않는 다른 여자들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특히 한 여자를 내게 자랑했는데, 약속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마치 그것이 대단한 진귀품이자 특별한 별미라도 되는 양)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이 여자는 유대인이라우! 그러니 구미가 당기지 않수?”(하기야 그래서 그 여자의 이름이 라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전염되기를 바라는, 어리석고 짐짓 꾸민 흥분에 들떠, 거의 관능적 만족에 가까운 쉰 목의 그르렁 소리로 말을 맺곤 했다. “생각 좀 해 봐요, 도련님, 유대인이라니까! 근사하지 않겠수? 흐르르!” 내가 저쪽에서 언뜻 보았을 뿐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한 이 라셸은, 살결이 검고 미인은 아니었으나 총명해 보이는 데가 있었고, 미소 지으며 혀끝으로 입술을 훑곤 했으며, 자기에게 소개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려오던 그 “도련님들”을 끝없이 뻔뻔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작고 갸름한 그녀의 얼굴은 짧은 검은 곱슬머리로 둘려 있었는데, 그 머리칼은 마치 인디아 잉크로 그린 담채화 위에 펜으로 윤곽을 그어 놓은 듯 들쭉날쭉했다. 저녁마다 나는, 그녀의 뛰어난 총기와 교양을 자랑하며 각별히 고집스레 그녀를 내게 권하던 그 늙은 여자에게, 언젠가 일부러라도 찾아와 라셸과, 곧 내가 “라셸, 주님 곁에서 오실 때”라는 별명을 붙여 준 그 여자와 사귀는 일을 빼놓지 않겠노라고 약속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그날 저녁, 그녀가 집을 나서며 마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럼 그렇게 정한 거예요. 내일은 시간이 빌 테니, 손님이 있으면 잊지 말고 나를 부르러 보내세요.”

그리고 이 말들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한 사람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막았으니, 그 말들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저녁이면 이곳에 와서 루이 금화 한두 닢이라도 벌 만한 것이 없나 살피는 것이 하나같이 공통된 습관인 여자들의 일반적 범주 속에 곧장 분류해 넣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만 표현을 바꾸어, 심드렁하게 “저를 원하시면”이라거나 “누구든 원하시면”이라고 말하곤 했을 뿐이다.

알레비의 오페라를 알지 못하던 마님은, 내가 왜 그 여자를 늘 “라셸, 주님 곁에서 오실 때”라고 부르는지 몰랐다. 그러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덜 우습게 여긴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는 법이라, 그녀는 언제나 진심에서 우러난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오늘 밤에도 아무 일 없는 거예요? 대체 언제 도련님을 ‘라셸, 주님 곁에서 오실 때’와 맺어 준담? 왜 자꾸 그러세요, ‘라셸, 주님 곁에서 오실 때’라니? 아유, 그거 참 재치 있네, 정말. 내가 두 분을 꼭 맺어 드리리다. 후회 안 하실 거예요, 두고 보세요.”

한번은 마침 내가 마음을 정하려던 참인데 그녀가 “한창 바빴고”, 또 한번은 미용사의 손에 붙들려 있었으니, 그 미용사는 여자들의 풀어 헤친 머리에 기름을 붓고는 빗어 주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림에 지쳐 갔는데, 그러는 사이 그 집의 좀 더 미천한 단골 몇몇이(그들은 스스로를 여공이라 불렀으나 늘 일거리가 없어 보였다) 다가와 내게 마실 것을 타 주고, 논하는 주제가 자못 진지한데도 말하는 이들의 부분적이거나 완전한 벌거벗음 때문에 매력적인 소박함이 감도는 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게다가 내가 이 집에 발길을 끊게 된 것은, 집을 꾸리며 가구가 궁하던 그 안주인에게 호의의 표시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레오니 고모에게서 물려받은 가구 몇 점, 특히 큼직한 소파 하나를 그녀에게 준 탓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리가 없어 그것들을 집에 들이지 못했던 터라 나는 그 가구들을 볼 일이 없었고, 그것들은 창고에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들이 제멋대로 쓰고 있는 이 집에서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자마자, 콩브레의 고모 방 공기 속에서 배어 나온 온갖 미덕이 내 눈앞에 또렷이 되살아났으니, 무력하게 내버려 둔 그것들이 무참한 접촉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죽은 이를 욕보였던들 이만한 회한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그 새 안주인을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으니, 내게는 그 가구들이 살아 있는 것만 같았고, 겉으로는 생명 없어 보이나 순교를 겪으며 구원을 애원하는 인간의 영혼이 깃든 페르시아 동화 속의 저 물건들처럼 내게 호소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기억은 대개 사물을 시간의 순서대로가 아니라 이를테면 부분들의 차례가 뒤집힌 반영으로 우리에게 내어놓는 법이라, 나는 한참 뒤에야 비로소 떠올렸으니, 바로 그 소파 위에서 여러 해 전에 내 사촌 누이 가운데 하나와 처음으로 사랑의 단맛을 맛보았다는 것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던 우리에게 그녀가 다소 경솔하게도 레오니 고모가 방을 비운 틈을 타자고 일러 준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 레오니 고모의 물건 가운데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특히 훌륭한 옛 은식기 한 벌을, 나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팔아 버렸으니, 돈을 더 쓰고 스완 부인에게 더 많은 꽃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부인은 난초가 가득 담긴 커다란 바구니를 받고서 나를 이렇게 맞이하곤 했다. “내가 자네 아버지라면, 이런 일로 자네를 판사 앞에 세우겠네.” 언젠가는 내가 무엇보다도 그 은식기를 잃은 것을 아쉬워하게 되고, 질베르트의 부모에게 은혜를 베푸는 그 즐거움(어쩌면 아예 없는 것으로 오그라들었을 그 즐거움)보다 다른 어떤 즐거움들을 더 높이 치게 되리라고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마찬가지로, 내가 외국에서 외교관의 길에 들어서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도 질베르트를 생각해서, 그녀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이러하니, 오래가지 않을 마음 상태에 떠밀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질베르트 안에 깃들어, 그녀로부터 그 부모와 그 집안에까지 스며들어, 그 밖의 온갖 것에 나를 무심하게 만들던 그 야릇한 물질이, 그녀에게서 풀려나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갈 수 있으리라고는 나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다. 틀림없이 똑같은 물질이면서도 내게는 전혀 다르게 작용할 그 물질이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병(病)도 여러 변모를 거치는 법이며, 세월이 흘러 심장의 저항력이 줄어들면 감미로운 독도 더는 예전만큼 탈 없이 삼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부모님은 베르고트가 내게서 알아보았던 그 지성이 무언가 눈부신 성취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아직 스완네 사람들을 알지 못하던 무렵에 나는, 내가 원할 때 질베르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몰아넣는 초조한 상태 탓에 일을 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문이 내게 열려 있게 되자, 책상 앞에 앉기가 무섭게 나는 일어나 그들에게로 달려가곤 했다. 그리고 그들 곁을 떠나 다시 집에 돌아와서도 내 고립은 겉보기뿐이었으니, 몇 시간이고 내처 기계적으로 그 위에 실려 떠내려가도록 나 자신을 내맡겼던 그 말들의 흐름을 내 정신은 거슬러 헤엄쳐 오를 힘이 없었다. 홀로 앉아 나는, 스완네 사람들을 흡족하게 하거나 즐겁게 했을 법한 말들을 계속 지어냈고, 이 소일거리를 더 재미나게 하려고 자리에 없는 그 상대역들을 스스로 떠맡아 나 자신에게 상상의 물음들을 던졌으니, 내 눈부신 경구가 그저 그 물음들에 대한 신통한 대답 노릇이나 하도록 골라낸 물음들이었다. 소리 없이 치러졌을망정 이 연습은 그럼에도 명상이 아니라 대화였으며, 내 고독은 정신적인 사교장이어서, 그 안에서 내 말의 선택을 좌우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상상의 화자들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참되다고 믿는 생각들 대신에 손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밖으로부터의 아무런 자기 성찰도 요하지 않는 생각들을 지어내면서, 소화가 더딘 이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느꼈다.

확고히 일에 매달리기로 마음을 덜 굳혔던들 나는 어쩌면 당장 시작해 보려 애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결심은 뚜렷했으므로, 스물네 시간 안에, 아직 나 자신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까닭에 모든 것이 그토록 잘 정돈되어 있는 그 기나긴 내일의 텅 빈 틀 안에서 내 갸륵한 뜻이 어렵잖게 이루어질 터였으므로, 시작하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 저녁을 골라잡지 않는 편이 나았으니, 아뿔싸, 뒤이어 올 날들이라고 조금이라도 더 알맞아 보일 리 없었건만. 그러나 나는 사리에 밝았다. 이제 여러 해를 기다려 온 사람이 사나흘의 미룸을 참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리라. 모레쯤이면 몇 쪽은 써 놓았으리라 믿고 나는 부모님께 내 결심에 관해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몇 시간 참았다가 이미 진행 중인 작업의 견본을 확신에 차고 마음 놓인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 내일은 내가 열에 들떠 기다리던 그 광대한, 바깥의 하루가 아니었다. 그날이 저물 무렵, 내 게으름과, 어떤 내면의 장애물을 이겨 내려는 괴로운 몸부림은 그저 스물네 시간을 더 이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내 계획이 여물지 않자, 그것이 당장 이루어지리라는 희망도 예전 같지 않았고, 따라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뒷전으로 미룰 용기도 없어졌으니, 나는 다시 늦은 시각까지 깨어 있기 시작했고, 어느 저녁이든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나를 다잡아 줄, 이튿날 아침이면 내 일이 시작되리라는 확실한 희망이 이제는 없었던 것이다. 창작의 기운을 되찾자면 며칠의 휴식이 필요했는데, 할머니가 상냥하면서도 환멸 어린 어조로 “그래, 그 네 일은 어찌 됐니. 이제 그 얘긴 아예 꺼내지도 말란 말이냐?” 하고 나무람을 입에 담아 본 그 유일한 순간에, 나는 그 참견에 발끈했으니, 내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이 굳어졌음을 할머니가 알아보지 못한 나머지, 그 부당한 불신이 내 신경에 안긴 충격으로 내 일의 실행을 더, 어쩌면 오랫동안 미루어 놓았다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기 전에는 일을 시작할 마음이 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회의(懷疑)가 내 결심 속으로 무턱대고 뛰어들었음을 느꼈다. 할머니는 내게 입 맞추며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다시는 아무 말 않으마.” 그리고 내가 낙심하지 않도록, 내가 다시 아주 건강해지는 그날부터는 넘쳐나는 기운에서 그 일이 저절로 나오리라고 다짐해 주었다.

게다가, 하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스완네 사람들과 온종일 지내면서 나는 바로 베르고트가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께는 마치, 내가 빈둥거리기는 해도 위대한 작가와 같은 응접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만큼, 재능을 키우기에 가장 알맞은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누구든 그 재능을 스스로,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수고를 면제받고 남에게서 얻어 올 수 있으리라는 억측은, 위생의 온갖 규칙을 저버리고 온갖 몹쓸 방종에 빠진 사람이 그저 의사와 자주 함께 저녁을 먹는 것만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부모님까지 홀린 이 착각에 가장 완전히 넘어간 사람은 다름 아닌 스완 부인이었다. 내가 갈 수 없다고, 집에 남아 일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부인은 마치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야단법석을 떤다고, 내가 한 말에 허세뿐 아니라 어리석음까지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베르고트가 오잖아요, 안 그래요? 설마 그이가 쓰는 글이 좋지 않다는 말인가요? 머잖아 더 좋아질 거예요.” 부인은 말을 이었다. “그이는 책에서보다 신문 기사에서 더 날카롭고 더 집약적이랍니다. 책에서는 자칫 너무 늘어지곤 하지요. 앞으로 그이가 피가로의 사설을 맡도록 내가 주선해 두었어요. 거기서라면 그이야말로 ‘적재적소의 인물’이 될 거예요.” 그러고는 끝으로, “자! 그이가 자네에게, 누구보다도 잘, 자네가 무얼 해야 할지 일러 줄 거예요.”

그리하여, 마치 일개 사병을 그 대령과 만나게 자리를 마련하듯, 부인은 내 앞날을 위해서, 또 문학의 걸작이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는” 데서 솟아나기라도 하는 양, 이튿날 자기와 저녁을 들며 베르고트를 만나는 일을 빼놓지 말라고 내게 일렀다.

그리하여 스완네 사람들 쪽에서도, 부모님 쪽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말해 때를 달리하며 내 앞길에 장애물을 놓기 마련인 듯 보이던 이들 어느 쪽에서도, 마음의 평화까지는 아닐지언정 즐거움과 더불어 내가 원하는 만큼 질베르트를 볼 수 있는 그 즐거운 삶을 가로막는 어떤 반대도 더는 없었다. 사랑에는 마음의 평화란 있을 수 없으니, 손에 넣은 이점이란 언제나 새로운 욕망을 향한 새 출발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갈 자유가 없던 동안, 저 다다를 수 없는 행복의 목표에 눈길을 못 박은 채, 나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불안의 씨앗들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 부모의 저항이 꺾이고 마침내 문제가 풀리자, 그것은 다시금, 그것도 늘 다른 형태로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녁마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질베르트에게 해야 할 더없이 중요한 말이, 우리 우정 전체가 거기 걸린 말이 있다고 되뇌었으나, 그 말들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행복했고, 내 행복을 위협할 어떤 새로운 위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가, 아뿔싸, 내가 여태 아무 위험도 알아채지 못했던 쪽에서, 곧 질베르트와 나 자신에게서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도리어 나를 안심시킨 것에, 내가 행복으로 잘못 안 것에 시달렸어야 마땅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겉보기에 더없이 단순하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우연에, 그 우연 자체만으로는 지니지 않을 심각한 빛깔을 단박에 입힐 수 있다.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불안정한 요소이니, 우리는 그것을 제자리에 붙들어 두려고 끊임없이 매만지면서도, 그것이 밀려나지 않는 한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실은 사랑 속에는, 행복이 중화하고 조건부로만 남겨 두고 뒤로 미뤄 두는 고통의 항구적인 가닥이 하나 있으니, 그러나 그것은 언제라도, 우리가 구하던 것을 손에 넣지 못했던들 진작 되었을 그것, 곧 순전한 고뇌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여러 차례 나는 질베르트가 내 방문을 미루고 싶어 함을 느꼈다. 하기야 그녀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으면 나는 그저 그녀 부모의 초대를 받아 내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들은 내가 딸에게 더없이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점점 더 굳게 믿고 있었다. “저분들 덕분에,” 하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내 사랑은 아무 위험도 겪지 않는다. 저분들을 내 편으로 둔 이상 나는 마음을 놓아도 된다. 저분들은 질베르트에게 온전한 권위를 지니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뿔싸,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뜻에 거의 어긋나게 나를 집으로 부를 때 그녀가 내비치던 어떤 짜증의 기색을 나는 알아챘고, 내 행복의 보호막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그 행복이 지속될 수 없는 은밀한 까닭은 아닐까 자문하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질베르트를 보러 찾아갔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너무 얕게 알아 나를 데려갈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의 집에서 열리는 무용 강습에 초대받은 터였다. 공기가 눅눅한 까닭에 나는 여느 때보다 카페인을 좀 더 많이 먹었었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이 모임이 열리는 집에 무슨 못마땅한 데가 있어서인지, 스완 부인은 딸이 방을 나서려는 참에 더없이 날카로운 어조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질베르트!” 그러고는 나를 가리켜, 내가 그녀를 보러 왔으니 그녀가 나와 함께 있어야 함을 일러 주었다. 이 “질베르트!”는 나를 위한 더없이 좋은 뜻에서 나온, 아니 차라리 외쳐진 것이었으나, 질베르트가 외출복을 벗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양새로 나는, 그때까지는 어쩌면 멈춰 세울 수 있었을 그 점진적인 변화, 내 벗을 나에게서 차츰 떼어 놓던 그 변화를 그녀의 어머니가 뜻하지 않게 재촉했음을 알아차렸다. “날마다 춤추러 나갈 것까진 없잖니,” 하고 오데트가 딸에게 말했으니, 아마도 지난날 스완에게서 얻은 분별에서 나온 말이었으리라. 그러고는 다시 오데트로 돌아가, 그녀는 딸에게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치 벽 하나가 솟아나 질베르트의 삶의 한 부분을 내게서 가리는 듯했고, 악한 요정이 내 벗을 저 멀리 채어 간 듯했다. 우리가 아는 언어에서는, 소리의 불투명함 대신에 관념의 투명함을 우리가 갈아 넣는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언어는 굳게 잠긴 성채여서, 그 성벽 안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은 마음껏 우리를 속일 수 있고, 그동안 우리는 성벽 밖에 서서, 무력한 채 애타게 촉각을 곤두세우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그리하여 한 달 전이었다면 그저 미소만 지었을 이 영어 대화는, 프랑스어로 된 몇몇 고유명사가 이따금 섞여 들어 내 불안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것에 날을 세웠으니, 꼼짝 않는 두 사람이 내게서 몇 걸음 떨어진 데서 그것을 주고받자, 내 길동무를 강제로 채어 가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잔인함을 띠어, 나를 그만큼이나 버림받고 외롭게 만들었다. 이윽고 스완 부인이 우리를 남겨 두고 자리를 떴다. 그날, 어쩌면 그녀가 밖에 나가 즐기지 못하게 된 뜻하지 않은 원인이 나인 데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에서, 어쩌면 또 그녀가 나에게 화가 나 있으리라 짐작하고 미리 조심하느라 여느 때보다 그녀에게 더 쌀쌀히 굴어서였는지, 질베르트의 얼굴은 기쁨의 온갖 기색이 걷힌 채, 스산하고 헐벗고 약탈당한 듯이, 오후 내내, 내가 온 탓에 가서 어울리지 못한 그 파드카트르에 대한 서글픈 아쉬움을 곱씹는 듯했고, 나 자신을 비롯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해, 그녀가 보스턴 춤에 정을 붙이게 된 그 미묘한 까닭을 어디 알아맞혀 보라고 도전하는 듯했다. 그녀는 다만 이따금 나와, 날씨며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며 시계가 빨리 가는 것 따위에 관해, 침묵과 외마디로 끊기는 대화를 주고받는 데 그쳤으니,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일종의 절망 어린 분노에 사로잡혀, 우정과 행복에 바칠 수도 있었을 그 시간들을 스스로 짓뭉개도록 나 자신을 다그쳤다. 그리고 우리가 주고받는 말 하나하나에는, 그 어리둥절할 만큼의 하찮음이 극에 달함으로써 이를테면 더할 나위 없는 매몰참이 찍혀 있었는데, 그것이 동시에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으니, 내 말의 진부함과 내 어조의 무심함에 질베르트가 속아 넘어가지 못하게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요전 날 보니 시계가 오히려 좀 느리던데요.” 하는 내 공손한 말은 헛되이 울렸고, 그녀는 그것을 두고 “어쩜 이리 지겨운 사람이람!” 하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 분명했다. 비에 흠뻑 젖은 그 오후 내내, 한 줄기 변덕스러운 빛살조차 비쳐 들지 않는 그 흐릿한 말구름을 아무리 고집스레 길게 늘여 본들, 나는 내 쌀쌀함이 짐짓 꾸며 보이는 만큼 그리 옹골차게 굳어 있지 않음을, 그리고 이미 세 번이나 말한 뒤 네 번째로 저녁이 짧아지고 있다는 말을 되뇌었던들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겨우 참았으리라는 것을 질베르트가 훤히 알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럴 때면, 미소가 그녀의 눈을 채우지도 그녀의 얼굴을 벗겨 내지도 않을 때면, 그녀의 서글픈 눈과 시무룩한 이목구비에 찍힌 그 참담한 단조로움을 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거의 핏기 잃은 그녀의 얼굴은 그럴 때면, 바다가 저 멀리 물러나, 어디나 한결같은 그 희미한 반짝임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며, 변함없이 낮은 수평선에 붙박인 저 스산한 바닷가를 내게 떠올리게 했다. 이윽고, 몇 시간째 기다려 온 그 행복한 변화의 기미가 질베르트에게서 도무지 보이지 않자, 나는 그녀에게 못되게 군다고 말했다. “못되게 구는 건 당신이에요.” 하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나는 내가 무얼 잘못했나 스스로 물었고, 답을 찾지 못해 그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야, 자기는 스스로 착하다고 여기시겠지요!” 하고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하고는 계속 웃어 댔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웃음이 가리키는 그 다른,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층위에 다다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온갖 고뇌를 느꼈다. 그 웃음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니, 아니,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흔들리지 않을 테야. 당신이 나한테 미치도록 반한 건 알지만, 그런다고 나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 당신 따위 조금도 상관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게 일렀다, 어쨌거나 웃음이란 이 웃음이 정말로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틀림없이 알아들을 만큼 그리 또렷이 규정된 언어는 아니라고. 게다가 질베르트의 말은 다정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못되게 군다는 거예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말해 봐요. 당신이 바라는 건 뭐든 하리다.” “아뇨,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설명할 수가 없는걸요.” 한순간 나는 그녀가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고, 이것은 내게 새로운 고뇌였으니, 못지않게 날카로우면서도 다른 대화의 방식으로 다스려야 할 고뇌였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안다면 말해 줄 텐데.” 그러나 이 아픔은, 그녀가 내 사랑을 의심했던들 그녀를 기쁘게 했어야 마땅한데도, 도리어 그녀를 더 성나게 하는 듯했다. 그러자, 내 잘못을 깨닫고, 그녀가 하는 말에 더는 마음 쓰지 않기로 작정하고, 그녀가(굳이 믿으려 애쓰지도 않은 채) “나 정말 당신을 사랑해요, 정말이라니까요.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하고 다짐하도록 내버려 두면서(그 언젠가란, 죄지은 이들이 제 결백이 밝혀지리라 확신하는 그날, 그러나 무슨 알 수 없는 까닭에선지 그들의 증언을 받아 주는 날과는 결코 겹치지 않는 그날이었다), 나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갑작스러운 결심을 내릴 용기를 냈으니, 그러면서도 그것을 아직 그녀에게 알리지는 않았으니 그녀가 믿으려 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