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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부인 댁에서 (16)

2권 제1부 · 스완 부인 댁에서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겪는 슬픔은, 그 사람이 직접 얽혀 있지 않아 우리 주의가 이따금씩만 그리로 되돌아가는 근심거리며 일거리며 즐거움 사이에 끼워 넣어져 있을 때조차도 쓰라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슬픔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던 것처럼, 그 사람을 보는 행복이 다른 모든 것을 밀어내고 우리를 가득 채우는 그 순간에 태어날 때면, 여태 화창하고 한결같고 잔잔하던 우리 마음을 그때 덮치는 그 날카로운 침울함은, 우리 안에 미쳐 날뛰는 폭풍을 풀어놓으니, 우리가 끝까지 맞서 견뎌 낼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폭풍이다. 내 마음속에 몰아치던 폭풍이 어찌나 사나웠던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들겨 맞은 듯이, 발길을 되돌려 무슨 핑계로든 질베르트 앞으로 되돌아가야만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으리라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으리라. “또 왔네! 저 사람한테는 무슨 짓을 해도 되겠어. 매번 되돌아올 테고, 나를 떠날 때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더 고분고분해질 테니.” 게다가 나는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그녀에게 이끌렸고, 그 엇갈리는 방향들, 내 안의 나침반 바늘이 그 사이에서 미친 듯이 오가던 그 움직임은 집에 다다른 뒤에도 이어져, 내가 초를 잡기 시작한, 질베르트에게 보내는 서로 어긋나는 편지들로 나타났다. 나는, 우리가 대개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맞닥뜨리게 마련인 그 힘겨운 위기 가운데 하나를 막 지나려던 참이었으니, 우리 성격에, 우리 본성에(우리의 사랑을 스스로 빚어내고,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들을 그 결점에 이르기까지 거의 빚어내다시피 하는 그 본성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해도, 우리는 그 위기를 매번 같은 식으로, 곧 나이마다 같은 식으로 맞지는 않는다. 그런 순간에 우리 삶은 둘로 갈리어, 이를테면 저울 한 쌍의, 그 둘 사이에 삶 전체를 담은 마주 놓인 두 접시 위에 나뉘어 실린다. 한쪽에는,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끝내 이해하지는 못하는, 그러나 그녀가 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느낌에 젖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도록 때로는 거의 아랑곳하지 않는 척하는 편이 더 편리한 그 대상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너무 비굴해 보이지 않으려는 우리의 욕망이 있고, 다른 쪽 접시에는, 국소적이고 부분적이기만 한 것이 아닌 고통의 느낌이 있으니, 그것은 여인의 마음에 들려는, 그리고 우리가 그녀 없이도 지낼 수 있다고 그녀에게 믿게 하려는 온갖 생각을 저버리고 당장 그녀를 찾아가지 않는 한 가라앉힐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자존심이 담긴 접시에서, 나이가 들수록 힘없이 스러지도록 내버려 둔 그 의지의 힘을 조금 덜어 내고, 우리 고통을 담은 접시에는 그동안 얻어서 자라도록 놔둔 육체의 아픔을 보태면, 그때는 스물한 살에 승리를 거두었을 그 용감한 해결책 대신에, 너무 무거워지고 어지간히 균형을 잃은 다른 쪽이 쉰 살의 우리를 짓눌러 무너뜨린다. 더욱이 상황이란 되풀이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라, 중년이나 노년에 이르면 우리는, 우리 사랑을, 청소년기에는 다른 요구들에 억눌리고 스스로를 덜 다스린 탓에 결코 알지 못했던 습관의 개입으로 뒤얽히게 하는 그 쓰디쓴 만족을 십중팔구 맛보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질베르트에게 편지 한 통을 써 놓은 참이었는데, 그 안에서 나는 분노의 폭풍이 천둥처럼 몰아치도록 내버려 두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마치 우연인 듯 종이 위에 흩어 놓은 몇 마디 말을, 곧 그것을 붙들면 내 벗이 화해로 이끌려 올 수도 있을 그 구명대를 던져 주는 일만은 잊지 않았다. 잠시 뒤, 바람이 바뀌자, 이번에는 사랑이 가득한 문구들을 그녀에게 건네고 있었으니, 어떤 처량한 표현들의 달콤함을 골라 쓴 것으로, 그 「다시는」이라는 말은 그것을 적는 이에게는 그토록 가슴 저리면서도, 그것을 읽어야 할 그녀에게는 그토록 성가신 것이었다. 그녀가 그 말을 거짓으로 여겨 「다시는」을 「오늘 저녁이라도, 원한다면」으로 옮겨 읽든, 아니면 참으로 여겨, 상대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일 때에는 우리 삶에 거의 아무 차이도 남기지 않는 그런 마지막 이별 가운데 하나를 자기에게 알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든 간에. 그러나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머잖아 우리가 되어 있을 다음 사람, 그때에는 더 이상 사랑하고 있지 않을 그 사람의 걸맞은 선행자 노릇을 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한 여인의 실제 마음 상태를 그려 볼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의식하면서도, 행복한 꿈으로 우리를 달래거나 큰 슬픔에서 우리를 위로하려고, 그녀가 우리를 사랑한다면 했을 바로 그 말을 언제나 공상 속에서 그녀에게 시켜 온 그런 여인의 마음을.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의 생각과 행동을 살펴보려 할 때, 우리는 완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니, 그것은 자연 현상 앞에 마주 선 세상 최초의 자연철학자들이, 그들의 학문이 아직 다듬어져 미지의 것 위에 한 줄기 빛을 던지기 전에 그러했을 것과 꼭 같은 처지다. 아니, 더 나쁘게는, 우리는 마음속에 인과의 법칙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 그리하여 한 현상과 다른 현상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세우지 못하는 사람, 그 눈에는 세계의 광경이 꿈처럼 불안정하게 비치는 사람과도 같다. 물론 나는 이 뒤죽박죽에서 벗어나, 사물의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나는 「객관적」이 되려고까지 애썼고, 그러기 위해, 질베르트가 내 눈에 지니는 중요성과, 내가 그녀 눈에 지니는 중요성뿐 아니라 그녀 자신이 다른 사람들 눈에 지니는 중요성 사이에 놓인 그 불균형을 잘 새겨 두려 했다. 만일 내가 그 불균형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내 벗의 한낱 다정함을 열렬한 고백으로 오해하고, 내 쪽의 그로테스크하고 비굴한 과시를 예쁜 얼굴에 이끌리는 단순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착각했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의 오류에 빠지는 것도 두려웠으니, 그 오류에 빠지면 나는 질베르트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적의로 보았을 터였다. 나는 똑같이 일그러진 이 두 관점 사이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줄 세 번째 관점을 찾아내려 했다. 그 목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계산들은 내 괴로움에서 마음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산술의 법칙에 따랐든, 아니면 내가 바라던 답을 그 계산이 내놓도록 만들었든 간에, 나는 이튿날 스완네 집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으니, 기쁘긴 했으나, 그 기쁨은 오래도록 하기 싫은 여행 생각에 시달리다가 정거장까지밖에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도로 푸는 사람들의 기쁨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망설이는 동안, 어떤 결심이 가능하다는 생각만으로도 (아무 결심도 하지 않겠다고 정함으로써 그 생각을 열매 없게 만들어 버리지 않는 한) 마치 땅속의 씨앗처럼, 그 행동을 실행할 때 태어날 감정의 윤곽과 온갖 세부가 자라나는 법이므로, 나는 스스로에게 일렀다. 질베르트를 다시 보지 않겠다는 그 생각에, 마치 정말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듯 그토록 상처받은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그리고 도리어 나는 끝내 그녀 곁으로 돌아가게 될 터이니, 그 모든 헛된 갈망과 괴로운 체념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 다정한 관계의 회복은 내가 스완네 집에 다다르기까지밖에 이어지지 않았으니, 나를 참으로 좋아하던 그 집 집사가 질베르트는 외출했다고 (마침 그 말의 사실 여부는 그날 저녁 그녀를 어딘가에서 본 사람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일러 준 탓이 아니라, 그가 그 말을 하던 태도 탓이었다. 「도련님, 아가씨는 댁에 안 계십니다. 정말입니다, 도련님, 거짓이 아닙니다. 알아보고 싶으시면 아가씨의 하녀를 불러오겠습니다. 도련님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것이고, 아가씨가 댁에 계셨다면 곧바로 모셔다 드렸을 겁니다.」 이 말은, 정말로 중요한 유일한 종류의 말, 곧 저절로 나온 말, 미리 꾸며 낸 말 밑에는 온통 감춰졌을 그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의 적어도 요점만은 보여 주는 방사선 사진 같은 말이었으니, 질베르트의 집안에서는 내가 방문으로 그녀를 성가시게 한다는 인상이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그 말을 채 내뱉기가 무섭게, 그 말은 내 안에 증오를 불러일으켰고, 나는 그 증오의 희생물로 질베르트보다 차라리 그를 삼고 싶었다. 그는 내가 내 벗에게 품었을 온갖 노여운 감정을 제 머리 위로 끌어당겼다. 그의 말 덕분에 이런 뒤엉킴에서 풀려나자, 내 사랑은 홀로 남아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말은 동시에, 지금으로서는 질베르트를 만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함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내게 편지를 써서 사과할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곧바로 그녀를 다시 보러 가지는 않으리라, 그녀 없이도 살 수 있음을 그녀에게 증명하기 위하여. 게다가 일단 그녀의 편지를 받고 나면, 질베르트와 함께 있는 것을 한동안 더 쉽게 단념할 수 있을 터였으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녀가 나를 맞을 채비가 되어 있음을 확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발적인 이별의 짐을 덜 아프게 견디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오직, 우리가 돌이킬 수 없이 갈라진 것은 아닌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몸을 언약한 것은 아닌지, 파리를 떠난 것은 아닌지, 억지로 끌려간 것은 아닌지 하는 그 무서운 불확실성에서 내 마음이 벗어났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뒤이은 날들은 내가 질베르트 없이 홀로 보내야 했던 그 옛 새해 연휴의 첫 주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 주가 지루하게 끝에 다다르면, 우선 내 벗은 다시 샹젤리제에 나올 것이고, 나는 예전처럼 그녀를 보게 될 터였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 새해 연휴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샹젤리제에 가 봐야 소용없음을 나는 그에 못지않게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 이는 곧 이미 아득한 옛일이 된 그 비참한 한 주 동안, 나는 마음을 평온히 하고 내 비참함을 견뎠다는 뜻이었다. 그 안에는 두려움도 희망도 섞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리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에 거의 못지않게, 바로 그 뒤엣것, 곧 희망이 내 슬픔의 짐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날 저녁 질베르트에게서 아무 편지도 받지 못하자, 나는 이를 그녀의 무심함, 그녀의 다른 볼일 탓으로 돌렸고, 이튿날 아침 우편에서 그녀에게서 온 무언가를 찾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이것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렸으나, 그 가슴은, 그 안에서 질베르트가 아닌 사람들의 편지만 찾아냈을 때, 또는 아예 아무것도 없었을 때, 가라앉아 나를 온통 맥없이 늘어지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편이 더 나쁠 것도 없었으니, 다른 이의 우정을 증명하는 것들은 그녀의 무관심을 증명하는 것을 그만큼 더 잔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을 오후 우편으로 옮겼다. 편지가 배달되는 시각들 사이에조차 나는 감히 집을 나서지 못했으니, 그녀가 심부름꾼을 시켜 편지를 보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그날 밤 우편배달부도 스완네 하인도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시각이 오면, 나는 마음이 놓이리라는 희망을 다시 뒤로 미루어야 했고, 그리하여 내 고통이 오래갈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끊임없이 그 고통을 새로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실망은 어쩌면 늘 같은 것이었으나, 옛날처럼 처음의 감정을 한결같이 늘이기만 하는 대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시작되었고, 그때마다 그토록 자주 되살아나는 감정에서 출발한 나머지, 그토록 순전히 육체적이고 그토록 순간적인 그 상태가, 끝내는 고착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찌나 한결같던지, 기다림의 긴장이 채 풀릴 틈도 없이 새로운 기다림의 까닭이 뒤따라 닥쳐서, 하루 중 단 한 순간도 그 불안의 상태에 놓이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 그것은 한 시간을 견디기조차 그토록 힘든 상태였다. 그리하여 내 벌은 오래전 그 새해 연휴 때보다 한없이 더 잔인했으니, 이번에는 내 안에, 그 벌을 순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이 끝나는 것을 보리라는 희망이 시시각각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그 체념의 상태에 다다랐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마지막이어야 함을 깨달았고, 내 사랑 그 자체를 위하여, 또 무엇보다 그녀가 나를 경멸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하지 않기를 바랐기에, 나는 질베르트를 영원히 단념했다. 과연 그때부터, 그녀가 내 쪽의 어떤 연인다운 앙심 같은 것을 짐작하지 않도록, 그녀가 만나자고 약속을 잡으면 나는 곧잘 그것을 받아들였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 갈 수 없게 되었노라고 그녀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다만 그 실망을 하소연하는 투는, 내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아무에게나 했을 법한 것과 똑같았다. 우리가 으레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에게나 쓰는 이 유감의 표현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꾸며 보이는 그 무관심한 어조보다, 내 무관심을 질베르트에게 더 잘 납득시키리라고 나는 상상했다. 한낱 말보다 더 낫게, 한없이 되풀이되는 행동으로써, 내가 그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그녀에게 증명하고 나면, 어쩌면 그녀는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다시금 되찾을지도 몰랐다. 아아! 나는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녀를 만나기를 그만둠으로써 나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을 그녀 안에 다시 일깨우려는 시도는 곧 그녀를 영원히 잃는 것이었다. 우선, 그 마음이 되살아나기 시작할 때, 내가 그것이 오래가기를 바란다면 곧바로 그것에 응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쯤이면 가장 애타는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을 터였다. 바로 이 순간에 그녀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니,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일러 주고 싶었다. 머잖아 그녀가 나를 다시 만나 줌으로써 달래 주어야 할 그 슬픔은, 그때쯤이면 이미 너무 사그라들어서, 더 이상 (조금 전만 해도 아직은 그러했을) 항복과 화해와 재회로 이끄는 동기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을 끝내려는 생각조차 그런 동기가 되지 못하리라고. 그리고 또, 훗날, 마침내 내가 (그녀의 나에 대한 호감이 그토록 힘을 되찾았을 무렵) 그녀에 대한 내 호감을 안심하고 질베르트에게 고백할 수 있게 될 즈음이면, 그 내 호감은 그토록 긴 이별의 긴장을 이겨 내지 못한 채 이미 사라져 버렸을 터였다. 질베르트는 내게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그녀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만일 내가 너무 오래 그녀를 보지 않고 지내면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리라는 시늉을 한다면, 그녀는 그것이 오로지 그녀가 나를 곧바로 다시 불러들이게 하려는 속셈이라고만 여겼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이 이별을 선고하기를 한결 수월하게 해 준 것은 이런 사정이었다. 곧 (내가 겉으로 아무리 그 반대라고 우겨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떤 다른 약속이나 내 건강 상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유의지임을 그녀에게 아주 분명히 해 두기 위하여) 질베르트가 집에 없으리라는 것을, 벗과 함께 어딘가로 나가 저녁 식사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 때면, 나는 스완 부인을 만나러 갔다. 그 무렵 그녀는 내게 다시금, 예전에 내가 그녀의 딸을 만나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그 딸이 샹젤리제에 나오지 않는 날이면) 내가 아카시아 길로 발걸음을 옮기곤 하던 시절에 그녀가 내게 지녔던 그 의미를 되찾아 주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질베르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고, 그녀도 머잖아 나에 관한 이야기를, 그것도 내가 그녀에게 관심이 없음을 보여 줄 투로 듣게 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괴로워하는 모든 이가 그러하듯, 내 우울한 처지가 더 나빴을 수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질베르트가 사는 그 거처에 언제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비록 나는 그 특권을 결코 쓰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있었으나, 만일 내 아픔이 너무 날카로워진다면 그것을 그치게 할 방법이 있음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나는, 그날그날을 빼고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과장이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다툰 뒤 내가 다시 스완네 집에 가기 전 그 첫 몇 주 동안 내 온 신경을 팽팽하게 죄던 그 애타는 기다림 없이) 나는, 머잖은 어느 날 질베르트가 틀림없이 보내올, 어쩌면 몸소 가져다주기까지 할 그 편지의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지 않았던가. 그 상상 속 행복의 끊임없는 환영은, 내 실제 행복의 황량함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들의 경우, 「실종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소식을 계속 기다리기를 그만두게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안절부절 애를 태우며 살아가고, 아주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란다. 아들이 위험한 탐험 항해에 나선 어머니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 오래인 뒤에도, 시시각각 상상 속에서 그를 본다. 기적으로 살아나 더없이 건강한 몸으로 성큼성큼 방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를. 그리고 이 기다림의 긴장은, 그녀의 기억의 힘과 그녀 몸속 기관들의 버팀에 따라, 그녀가 세월을 헤쳐 나아가도록, 그 세월의 끝에서 아들이 이제 없다는 것을 견디고, 차츰 잊고, 그 상실을 이겨 내고 살아남도록 도와주거나, 아니면 그녀를 죽인다.

다른 한편으로, 내 슬픔은 내 사랑이 그로써 이득을 보리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찾았다. 질베르트를 만나지 않은 채 스완 부인을 찾아간 방문은 저마다 잔인한 벌이었으나, 나는 그것이 그만큼 질베르트가 나에 대해 품는 생각을 높여 주리라고 느꼈다.

게다가 내가 스완 부인을 만나러 가기 전에 늘, 그 딸이 나타날 염려가 없도록 신경을 썼다면, 그것은 물론 그녀와 관계를 끊겠다는 내 결심에서 비롯한 것이었으나, 어쩌면 그에 못지않게, 그녀를 단념하려는 내 뜻 위에 겹쳐 놓인 저 화해의 희망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네 인간의 영혼에서 그런 뜻이 절대적인 경우는, 적어도 끊이지 않는 형태로는 아주 드무니, 그 영혼의 한 법칙, 곧 기억이 뜻밖에 풍성하게 대 주는 실례들로 확인되는 그 법칙이 바로 간헐성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그 안에 있던 참을 수 없이 잔인한 모든 것을 내게서 숨겨 주었다. 그 희망으로 말하면, 나는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똑똑히 보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엔가 생판 남이 어쩌면 자기에게 온 재산을 물려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다짐하면 마른 빵 껍질을 눈물을 덜 흘리며 적시는 가난뱅이와도 같았다. 우리는 누구나, 현실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려면, 제 안에 몇 가지 자잘한 어리석음을 품어 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질베르트를 만나기를 삼가면, 내 희망은 더 온전히 남아 있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이별은 더 확실해졌다. 만일 내가 그녀 어머니의 응접실에서 그녀와 얼굴을 맞대게 되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어, 우리의 파국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내 희망을 죽였을지도 모르며,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불안을 자아내어 내 사랑을 다시 일깨우고 체념을 더 어렵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내가 그녀의 딸과 관계를 끊는다는 것을 미처 생각조차 하기 전에, 스완 부인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질베르트를 만나러 오시는 것도 참 좋지만, 가끔은 저를 위해서도 와 주셨으면 해요. 제 '접견일'에 말고요, 사람이 하도 많아 지루하실 테니까요. 다른 날에요, 꽤 늦게 오시면 저는 언제나 집에 있답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녀를 만나러 가면, 마치 예전에 그녀가 나타냈던 바람에 오래 버티다가 마지못해 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도 아주 늦어 사방이 캄캄해질 무렵, 부모님이 저녁 식탁에 앉을 즈음이 다 되어서야, 나는 스완 부인을 방문하러 나서곤 했으니, 그 방문에서 나는 질베르트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 무렵 외진 곳으로 여겨지던 그 동네에서, 오늘날의 파리보다 더 어두웠던 그 파리, 도심에서조차 큰길에는 전등이 없고 개인 집에도 거의 없던 그 파리에서, 스완 부인이 대개 손님을 맞던 방들처럼 지면 높이에, 또는 그보다 조금 높이 자리한 응접실의 등불은, 거리를 밝히기에 충분했고, 지나가는 이가 눈을 들어, 그 불빛을, 겉으로 드러나되 숨겨진 원인처럼, 문밖에 늘어선 맵시 있는 브루엄 마차들의 존재와 결부 짓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그 행인은, 마차 한 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어떤 감흥마저 곁들여, 이 신비로운 원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말이 감기에 걸릴까 봐 이따금 말들을 씩씩하게 걸음을 떼게 하는 마부일 뿐이었으니, 고무 타이어를 두른 바퀴가 말발굽 소리에 고요의 배경을 깔아 주어, 그 소리가 그 배경에서 한결 또렷하고 한결 분명하게 도드라졌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 행인이, 어느 거리를 걷든, 응접실이 보도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기만 하면 흔히 언뜻 들여다보곤 하던 그 「겨울 정원」은, 오늘날에는 오직 P. J. 슈탈의 선물용 책에 실린 사진 요판화에서나 볼 수 있다. 거기서 그것은, 요즘 유행하는 루이 16세풍 응접실의 드문드문한 꽃 장식, 곧 두 송이째는 도저히 밀어 넣을 수 없는 목 긴 크리스털 꽃병에 꽂힌 장미 한 송이나 일본 붓꽃 한 대와 대조되어, 그 무렵 사람들이 들여놓던 실내 화초의 넘쳐남과 그 배치에 도무지 격식이라곤 없음 때문에, 그것이 꾸며 주던 집안의 부인들에게, 생명 없는 장식을 향한 어떤 차가운 관심이라기보다 오히려 식물을 향한 살아 있고 감미로운 열정에 답한 것이었으리라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그 시절 집집에서, 다만 더 큰 규모로, 설날 아침 켜 놓은 등불 아래에 (아이들은 언제나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조바심을 냈으므로) 다른 온갖 새해 선물 사이에 차려 놓이던,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그 작고 들고 다닐 수 있는 온실들을 떠올리게 했으니, 그 온실은 겨울 흙의 헐벗음을 달래려는 듯, 아이들이 자라는 대로 돌볼 수 있는 진짜 화초로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온실 자체보다도 더, 그 겨울 정원들은 아이들이 동시에 거기서 볼 수 있던 온실, 곧 또 다른 선물인 어느 즐거운 책 속에 그려진 온실과 닮아 있었다. 그 책은 그들에게가 아니라 이야기의 여주인공인 릴리 에게 주어진 것이었음에도, 아이들을 어찌나 홀렸던지, 그들은 이제 거의 늙은 남녀가 된 지금조차, 그 복된 시절에는 겨울이 계절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지 않았던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리고 그 안, 겨울 정원 너머, 거리에서 보면 불 밝힌 창을, 그림 속의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그런 아이들 장난감 가운데 하나의 유리 앞면처럼 보이게 하던 갖가지 나무 모양 화초들 사이로, 발끝을 세워 몸을 돋운 행인은, 흔히 프록코트를 입고 단춧구멍에 치자꽃이나 카네이션을 꽂은 한 남자가, 앉아 있는 한 부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곤 했으니, 두 사람 다, 그 무렵 막 들여온 물건이던 사모바르가 자욱하게 흐려 놓은 응접실 대기의 깊숙한 곳에서, 토파즈에 새긴 두 개의 음각 세공처럼, 어렴풋이 윤곽만 드러나 있었다. 그 사모바르에서는 어쩌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김이 새어 나오고 있을지 모르나,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이제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스완 부인은 자기 「티」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녀는 어떤 남자에게 「아무 날이나 꽤 늦게 오시면 저를 집에서 만나실 거예요, 티 드시러 오세요!」 하고 말할 때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내고 매력을 나타낸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말에, 스치듯 영국식 억양을 살짝 곁들여 발음하며, 달콤하고 섬세한 미소를 함께 실었고, 그 말을 듣는 이는 마치 그 초대가 경의를 요구하고 주의를 요하는 대단하고 드문 것이기라도 한 듯, 엄숙하게 고개 숙여 받아들이며 그것을 정중히 새겨들었다. 이미 든 이유들 말고도, 스완 부인의 응접실에서 꽃이 한낱 장식 이상의 몫을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이 이유는 시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오데트의 지난 삶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때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름난 화류계 여인은 주로 자기 연인들을 위해, 곧 집 안에서 살아가며, 그것은 결국 그녀가 차츰 제 집을 위해 살게 됨을 뜻한다. 「점잖은」 여인의 집에서 눈에 띄는 것들, 물론 그녀에게도 중요해 보일 수 있는 그것들은, 화류계 여인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더없이 중요한 것들이다. 그녀 하루의 절정은, 세상 모두에게 보이려고 옷을 차려입는 순간이 아니라, 한 남자를 위해 옷을 벗는 순간이다. 그녀는 실내복 차림에서도, 잠옷 차림에서도, 나들이옷 차림에서와 똑같이 맵시가 나야 한다. 다른 여인들은 제 보석을 내보이지만, 그녀로 말하면, 자기 진주들과 은밀히 벗하며 살아간다. 이런 종류의 삶은 그녀에게 은밀한, 곧 사심 없음에 가까운 사치의 애호를 의무로 지우고, 끝내는 그런 애호를 갖게 만든다. 스완 부인은 이를 넓혀 자기 꽃들까지 아울렀다. 그녀 의자 곁에는 언제나, 파르마 제비꽃이나 물 위에 흩뿌린 길고 흰 데이지 꽃잎으로 가장자리까지 가득 채운 커다란 크리스털 사발이 놓여 있었으니, 그것은 막 들어선 손님의 눈에, 스완 부인이 제 즐거움을 위해 거기서 혼자 마시고 있었을 찻잔처럼, 어떤 좋아하는, 그러다 중단된 소일거리를 증언하는 듯 보였다. 그것은 더욱 은밀하고 더욱 신비로운 소일거리였으니, 어찌나 그러했던지, 그녀 곁에 그렇게 내놓인 꽃들을 보면, 마치 아직 펼쳐진 채로 있는 책의, 방금 오데트가 읽고 있던 것을, 그리하여 어쩌면 아직 그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을 드러냈을 그 제목을 들여다본 데 대해 사과라도 하듯, 저도 모르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책과 달리 꽃은 살아 있는 것이었다. 스완 부인을 방문하러 방에 들어섰을 때 그녀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은, 또는 그녀와 함께 집에 왔을 때 방이 비어 있지 않은 것은 성가신 노릇이었으니, 그 꽃들이 방 안에서 그토록 두드러진 자리를, 수수께끼 같고 아무도 모르는 제 안주인 삶의 시간들과 은밀히 얽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꽃들은 오데트의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녀가 거기 잊고 둔 것으로, 그녀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나눌 것이었으니, 그 이야기를 방해할까 봐 두려웠고, 파르마 제비꽃의 촉촉한 보랏빛, 아직도 축축한 그 수채화 같은 빛에 눈을 붙박은 채 그 비밀을 읽어 내려 애썼으나 헛일이었다. 시월이 끝나 갈 무렵이면 오데트는, 그 시절에는 아직 「파이브 오클록 티」라 불리던 차 시간에 맞추어 더없이 정확하게 집에 돌아오기 시작했으니, 그녀는 언젠가, 베르뒤랭 부인이 살롱을 꾸릴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언제나 같은 시각이면 틀림없이 그녀를 집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 말을 즐겨 되뇌었다. 그녀는 자기 역시 같은 종류의 살롱을, 다만 더 자유로운, 그녀 말마따나 senza rigore한 살롱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녀는 그리하여 자신이 일종의 레스피나스로 등장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고, 그 작은 패거리의 뒤 데팡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남자 몇을, 특히 스완 자신을 빼내어 맞수 살롱을 세웠다고 믿었다. 스완은 그녀의 이탈과 은거에 그녀를 따라온 사람이었으니, 이는 그녀가, 지난 일을 모르는 근래의 벗들 사이에서는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음직한, 다만 스스로를 납득시키지는 못한 어느 이야기 판본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즐겨 맡는 배역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하도 자주 연기하고 혼자 있을 때 하도 정성 들여 연습한 나머지, 우리는 거의 온통 잊어버린 현실의 증언보다 그 꾸며 낸 증언에 기대는 편이 더 쉽다고 여기게 된다. 스완 부인이 집을 나서지 않은 날이면, 사람들은 그녀가 겨울 첫눈처럼 흰 크레프드신 실내복 차림으로 있거나, 아니면 흰빛 또는 장밋빛 꽃잎이 흩날리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는, 오늘날이라면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그러나 실은 아주 잘못된 그런 판단을 받을, 저 길게 주름 잡힌 무슬린드수아 옷 가운데 하나를 걸치고 있는 것을 보곤 했다. 왜냐하면 이 가벼운 옷감과 부드러운 빛깔은, 문을 두꺼운 휘장으로 가린, 그 시절 응접실의 숨 막히는 온기 속에서, 당대의 사교 소설가들이 그런 방을 두고 찾아낼 수 있던 가장 그럴듯한 말이 「더없이 폭신하게 꾸며졌다」는 것이던 그런 방에서, 한 여인에게, 겨울에도 불구하고 그녀 곁 방 안에 머물 수 있던, 마치 이미 봄이기라도 한 듯 발가벗은 채 발그레 달아오른 살빛으로 있던 장미들에게 주던 것과 똑같은 서늘한 기운을 주었기 때문이다. 온갖 소리를 카펫이 죽여 놓은 데다, 그녀의 아늑한 은신처가 멀찍이 떨어져 있던 까닭에, 이 집 안주인은, 오늘날처럼 손님이 들어온 것을 미리 알려 받지 못한 채, 손님이 그녀 의자 앞에 서기 직전까지 거의 계속 책을 읽고 있곤 했으니, 이는 그 낭만적인 느낌, 일종의 은밀한 발견이라는 그 매력을 한층 더 돋우었다. 그 매력을 우리는 오늘날, 그 시절에도 이미 유행에 뒤진, 스완 부인만이 어쩌면 홀로 버리지 않고 있던, 그리고 그것을 걸친 여인이 틀림없이 소설의 여주인공이었으리라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는 그 가운들의 기억 속에서 되찾는데, 이는 우리 대부분이 앙리 그레빌의 몇몇 이야기의 책장 밖에서는 그런 옷을 좀처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무렵 오데트는, 겨울이 시작되면, 자기 응접실에, 예전에 스완이 라 페루즈 거리의 그녀 응접실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을, 엄청나게 크고 갖가지 빛깔을 띤 국화들을 두고 있었다. 그 국화들에 대한 내 감탄은, 곧 내가 스완 부인을 그 우울한 방문 가운데 하나로 찾아갔을 때, 내 슬픔에 부추겨져, 그녀에게서, 이튿날 「네 친구가 어제 나를 보러 왔더구나」 하고 말할 그 질베르트의 어머니로서의 성격이 지닌 온갖 신비로운 시정(詩情)을 발견하던 그때의 그 감탄은, 틀림없이 이런 느낌에서 솟아난 것이었다. 곧 그 국화들이, 그녀 의자를 덮은 루이 14세풍 비단처럼 장밋빛 도는 창백한 빛으로, 그녀의 크레프드신 실내복처럼 눈처럼 흰 빛으로, 또는 그녀의 사모바르처럼 쇠붙이 같은 붉은 빛으로, 방의 장식 위에 또 하나의, 그에 못지않게 풍성하고 그에 못지않게 빛깔이 섬세한, 그러나 살아 있어 며칠밖에 가지 못할 덧붙은 장식을 겹쳐 놓았다는 느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국화들이 덧없다기보다 차라리, 거의 그렇게 말해도 좋을 만큼, 오래가는 것처럼 보임을 알고 마음이 뭉클했다. 지는 해가 11월 오후의 안개 속에서 그토록 눈부시게 펼쳐 보이는, 그토록 분홍빛이고 그토록 구릿빛인 그 색조들, 집에 들어서기 전에 그것들을 보고 나면 하늘에서 스러지던 그 색조들과 국화를 견주어 보면, 나는 그것들을 안에서 다시 만났으니, 꽃들의 타오르는 팔레트 위로 늘어나고 옮겨진 채였다. 대기와 태양의 덧없음에서 어느 위대한 색채 화가가 붙잡아 고정해 놓은 불길이, 사람의 거처에 들어와 그곳을 꾸미도록 한 것처럼, 그 국화들은 나를 불러, 내 온갖 슬픔을 내려놓고, 그 「티타임」 동안 11월의 너무나 덧없는 기쁨을 탐욕스러운 황홀로 맛보라고 했으니, 그 기쁨의 은밀하고 신비로운 영광을 국화들은 내 사방에 활활 불붙여 놓았다. 아아, 내가 귀 기울여야 하는 대화 속에서는 그 영광에 다다르기를 바랄 수 없었으니, 그 대화는 그것과 별로 통하는 데가 없었다. 코타르 부인 상대로도, 시간이 늦어 가는데도, 스완 부인은 더없이 살가운 태도를 지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머, 아니에요, 늦지 않았어요, 정말. 시계는 보지 마세요. 저건 맞는 시각이 아니에요. 멈춰 버렸거든요. 지금 달리 하실 일이 있을 리 없잖아요, 뭘 그리 서두르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달아날 채비로 명함집을 움켜쥐고 있던 그 교수 부인에게 마지막 타르틀레트 하나를 억지로 권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