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스완 부인 댁에서 (21)

2권 제1부 · 스완 부인 댁에서

봄이 돌아오고 그와 함께 추운 날씨가 찾아왔을 때, 얼어붙을 듯한 사순절과 우박이 몰아치는 성주간 동안, 스완 부인이 집 안이 춥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녀가 모피를 두른 채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으니, 그녀의 떨리는 두 손과 어깨는 마차 나들이에서 돌아와서도 벗지 않은, 둘 다 흰담비 털로 된 커다란 직사각형 토시와 케이프의, 눈부시게 흰 융단 아래 감추어져 있었고, 그것은 불의 열기도 깊어 가는 계절도 미처 녹이지 못한, 다른 눈보다 더 끈질기게 남은 겨울눈의 마지막 자락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 얼음장 같으면서도 이미 꽃 피어나는 몇 주에 관한 온전한 진실을, 머지않아 내가 더는 들어서지 않게 될 이 응접실에서, 더 취하게 하는 다른 형태의 흰빛이 내게 넌지시 일러 주었으니, 이를테면 불두화가 그러했는데, 그 키 크고 헐벗은 줄기 꼭대기에서 라파엘 전파 그림 속 곧게 뻗은 나무들처럼 뭉쳐, 나뉘어 있으면서도 한데 어우러진 그 꽃송이들은 수태고지의 천사들처럼 희고 레몬 같은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탕송빌의 안주인은 4월이, 얼어붙은 4월조차도 꽃이 없지 않다는 것을, 겨울과 봄과 여름이, 첫 무더운 날이 오기까지 세상에는 빗속에 헐벗고 서 있는 집들밖에 없다고 상상하는 도시 사람이 여길 법한 그런 밀폐된 장벽으로 서로 갈라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완 부인이 자기 콩브레 정원사가 보내 주는 것들로 만족했다고, 자기만의 ‘전속’ 꽃집을 끌어들여 그다지 강하지 못한 마법이 남긴 빈자리를 철 이른 지중해 연안에서 빌려 온 지원으로 메우지는 않았다고, 나는 잠시도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때 그 일이 나를 걱정시킨 것도 아니다. 스완 부인이 두 손을 넣어 두던 토시의 부슬부슬한 눈더미 위로 드리운 그 불두화의 눈뭉치들이(그것들은 아마도 이 안주인의 마음속에서, 베르고트의 조언에 따라 자기 가구와 옷가지로 ‘흰색 교향곡’을 짓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 구실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시골 풍경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채워 주기에 넉넉했으니, 그것들은 파르지팔의 성금요일 음악이 상징하던 것이 바로, 눈여겨볼 줄만 안다면 해마다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자연의 기적임을 내게 일깨워 주었고, 또 이름은 몰랐어도 콩브레 언저리를 산책하며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만들기 일쑤이던 다른 종류의 꽃들의 시큼하고 아찔한 향기의 도움을 받아, 스완 부인의 응접실을, 초록빛이라고는 조금의 자취도 없이, 탕송빌 옆 그 오솔길만큼이나 참된 꽃향기로 넘쳐나게, 그토록 순결하고 그토록 티 없이 ‘활짝 핀’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이 내게 되불려 오는 것은 더더욱 내가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들은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의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되살려 놓을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스완 부인에게 드나드는 동안 이제 조금의 괴로움도 느끼지 않았음에도, 나는 방문의 간격을 늘리고 되도록 그녀를 적게 보려고 애썼다. 기껏해야, 나는 파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지냈으므로, 이따금 그녀와 산책하는 것쯤은 나 자신에게 허락했다. 마침내 좋은 날씨가 찾아왔고, 볕이 뜨거웠다. 점심 식사 전에 스완 부인이 날마다 한 시간씩 밖에 나가, 에투알 근처 부아 대로를 잠시 거닐곤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는데, 그곳은 그 무렵 오로지 이름으로만 아는 ‘멋쟁이들’을 구경하려고 모여드는 사람들 때문에 ‘허울 좋은 신사들의 클럽’이라 불리던 곳이었으므로, 나는 일요일마다(평일에는 오전 내내 바빴던 까닭에) 부모를 졸라, 내 점심을 그들의 점심보다 한참 뒤인 한 시 십오 분까지 미루고 그 전에 산책을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그해 5월 동안, 나는 일요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으니, 질베르트가 시골에 있는 친구들 집에 가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오쯤이면 개선문에 이르곤 했다. 나는 대로 어귀에서 지켜보며, 스완 부인이, 겨우 몇 걸음만 걸으면 되는 그녀가, 자기 집에서 걸어 나올 그 골목 모퉁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이 무렵이면 거기서 거닐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남아 있는 이들은 수가 적었고, 대개는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있었다. 문득, 자갈 깔린 오솔길 위로, 서두르는 기색 없이, 서늘하고, 화사하게, 스완 부인이 나타나, 결코 두 번 같은 적이 없으나 내 기억에는 으레 연보라빛으로 남아 있는 차림새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광채가 가장 온전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 긴 자루 끝에서, 그녀의 드레스에서 쏟아지는 꽃잎들과 어울리는 빛깔의, 넓은 양산의 비단 깃발을 치켜올려 펼쳤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호위했으니, 스완 자신과, 그날 아침 그녀를 찾아왔거나 길에서 마주친 클럽의 사내 네댓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순종하며, 오데트가 그 안에 끼워 넣어진 생명 없는 배경의, 거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해 보이는 그들의 검거나 잿빛인 무리는, 오직 그 눈에만 무언가 강렬함이 깃든 이 여인에게, 마치 그녀가 그 뒤에 자리 잡은 창문에서인 양, 그 모든 사내들 가운데서 제 앞을 내다보는 듯한 분위기를 부여했고, 그리하여 그녀를 거기, 가녀리면서도 두려움 없이, 그 여린 빛깔의 벌거벗음 속에 떠오르게 하여, 다른 종(種)의, 알 수 없는 종족의, 거의 무인다운 힘을 지닌 어떤 존재의 출현처럼 보이게 했으니, 그 힘 덕분에 그녀는 혼자서도 그 여러 겹의 호위 전부와 맞먹는 듯했다. 미소 지으며, 좋은 날씨와 아직 견디기 힘들 만큼은 아닌 햇살을 즐거워하며, 제 할 일을 다 이루고 그 밖의 무엇에도 마음 쓰지 않는 창조자의 차분한 확신에 찬 분위기로, 자신의 옷이, 비록 속된 무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것 중 가장 맵시 있다고 확신하며,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자기 벗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그 옷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도 아주 무심하지도 않게 그것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몸통 부분과 치마에 달린 작은 리본 매듭들이, 자기 앞의 공기 위로 가뿐히 떠다니게 내버려 두면서, 마치 거기 있음을 그녀가 모르지 않으나 그것들이 원한다면 제 나름의 박자를 지키며 놀도록, 다만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그것들이 따라오기만 한다면 놀도록 너그러이 놔두는 별개의 존재들처럼 두었고, 심지어 무대에 나타날 때 흔히 아직 ‘펴 들지’ 않은 그 연보라빛 양산 위에도, 마치 파르마 제비꽃 한 다발 위에인 양, 이따금 행복하고도 그토록 다정한 눈길을 떨구었으니, 그 눈길이 더 이상 벗들이 아니라 어떤 생명 없는 물건에 머물 때에도 그녀의 두 눈은 여전히 미소 짓는 듯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맵시의 그 영역을 열어 둔 채, 자기 옷가지가 그 영역을 차지하게 했으니, 그녀와 가장 허물없이 지내는 사내들도 그 영역의 존재와 그 필요성을 다 함께 존중하여, 성소를 찾은 속인들이 그러하듯 얼마간의 경의를,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인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마치 병자가 스스로 취해야 하는 특별한 조심에 대해, 또는 어머니가 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그러함을 우리가 인정하듯이) 자기들의 벗이 정당한 관할권을 지녔음을 그들도 인정했다. 그녀를 에워싼 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듯한 그 시종들 못지않게, 스완 부인은 그곳에 늦게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그녀가 그토록 길고 그토록 느긋한 오전을 보냈으며 이제 곧 점심을 위해 돌아가야 할 그 방들을 대번에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 편안한 걸음걸이로 그 방들이 가까이 있음을 일러 주는 듯했으니, 마치 제집 정원을 오르내리며 도는 산책 같은 그 걸음으로, 그녀가 그 방들의 서늘한 실내 그늘을 여전히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말할 만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그녀를 보는 것은 내게 바깥 공기와 따스함의 감각을 도리어 더 강하게 안겨 줄 뿐이었다. 더욱이, 스완 부인이 그토록 깊이 통달한 그 전례에 따라, 그 의식에 따라, 그녀의 옷이 한 해의 철과 하루의 시각에 필연적이면서도 유일무이한 끈으로 이어져 있음을 나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던 까닭에, 나는 그녀의 모자의 빳빳한 밀짚 챙 위에 달린 꽃들, 그녀의 드레스 위에 달린 자그마한 리본들이 정원과 숲의 꽃들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5월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날씨나 계절에 어떤 최근의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또 하나의, 더 가까운 하늘처럼 둥글고, 온화하고, 움직이며, 푸른, 펼쳐져 활짝 열린 그녀의 양산보다 더 높이 눈을 들 필요가 없었다. 이런 의례들이, 설령 더없이 중요한 것이었다 해도, 그 영광을(따라서 스완 부인 자신의 영광까지) 하루에, 봄에, 햇볕에 겸허히 복종시키고 있었으니, 그 어느 것도 그토록 우아한 여인이 자신들의 존재를 못 본 체하지 않는 은혜를 베풀어 그것들을 위해 더 밝고 더 얇은 천의 드레스를, 그 옷깃과 소매의 트임으로 그것들이 드러낸 목과 손목의 촉촉한 따스함을 내게 넌지시 일러 주는 그런 드레스를 골랐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우쭐해하는 것처럼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그것들을 위해, 아무리 미천한 이라도 누구나 아는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을 흔쾌히 낮추어 찾아가면서도 그 자리에 걸맞은 옷차림을 굳이 갖추어 입는 어느 위대한 인물이 들이는 온갖 수고를 다 들였던 것이다. 그녀가 도착하면 나는 스완 부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녀는 나를 멈춰 세우고는 영어로 ‘굿 모닝’이라 말하며 미소 지었다. 우리는 잠시 함께 걷곤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녀가 옷을 입을 때 따르는 이 규범들을, 마치 그녀 자신이 그 여사제인 어떤 ‘지고의 지혜’에 순종하듯,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지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너무 더워져서, 그녀가 단추를 채워 두려던 재킷을 풀어 젖히거나 아예 벗어 내게 들라고 건네는 일이 생기면, 나는 그 아래 블라우스에서, 대중의 귀에는 결코 가닿지 못할지언정 작곡가가 무한한 공을 들인 관현악 총보의 어느 대목처럼,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온갖 여지가 있던 수천 가지 세공의 세부를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또는 내 팔에 접혀 걸쳐진 재킷의 소매 안쪽에서, 나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든 그 옷 임자에 대한 애정에서든, 어떤 정교한 세부를, 맛깔스레 물들인 한 조각을, 평소에는 온갖 눈길로부터 감춰져 있으면서도 겉면 못지않게 섬세하게 지어진 연보라빛 새틴 안감을, 천천히 들이켜듯 바라보곤 했으니, 그것은 마치 대성당의 저 고딕식 조각들, 땅에서 팔십 척 높이 난간 안쪽에 숨겨져 있어, 정문 위의 부조들만큼이나 완벽하면서도, 어느 예술가가 여행길에 우연히 그리로 지나다가 허락을 얻어 그것들 사이로 기어올라, 솟구친 탑들 사이 바깥 공기 속을 거닐며 온 도시를 한눈에 훑어보기 전까지는 어떤 살아 있는 사람의 눈에도 띈 적 없는 그 조각들과 같았다.

스완 부인이 마치 제집 정원의 오솔길을 따라서인 양 대로를 걷고 있다는 이 인상을 한층 돋운 것은, 그녀의 ‘운동하는’ 버릇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뒤따르는 마차 하나 없이 걸어서 그곳에 왔다는 사실이었으니, 그녀로 말하자면, 5월이 시작되고 나면 사람들이 으레, 파리에서 가장 눈부신 ‘마차 채비’, 가장 맵시 있는 마부 제복을 뒤에 거느리고, 여신처럼, 여덟 개의 용수철 위에 얹힌 거대한 빅토리아 마차의 향긋한 대기 속에 다소곳하고도 위엄 있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아 오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걸어서 다니는 스완 부인은, 특히 햇볕의 열기 속에서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호기심에 못 이긴 듯한, 자기 규범의 모든 법칙을 어기는 ‘남다른’ 위반을 저지르는 듯한 모습이었으니, 마치 감히 어떤 비판도 내놓지 못하는 시종들의 다소 놀란 찬탄에 둘러싸여,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고, 성대한 공연 도중에 자기 특별석에서 걸어 나와 극장 로비를 찾고는 잠시 나머지 관객들 사이에 섞이는 저 왕관 쓴 이들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스완 부인과 자기들 사이에는, 그들 눈에 세상에서 가장 넘어설 수 없어 보이는, 어떤 종류의 부(富)가 이룬 그 장벽이 놓여 있음을 군중은 느꼈다. 포부르 생제르맹에도 나름의 장벽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허울 좋은 신사들’의 눈과 상상에는 덜 ‘와닿는’ 것이다. 이 후자의 사람들은, 더 소박하고, 자그마한 전문직이나 장사꾼의 아내로 오해받기 더 쉽고, 서민에게서 덜 동떨어진 진짜 귀부인 앞에서는, 스완 부인을 마주쳤을 때 그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과 같은, 자신들의 불평등에 대한, 거의 자신들의 하잘것없음에 대한 그런 느낌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부류의 여인들은, 군중처럼 자기 옷차림의 광채에 스스로 눈부셔하지는 않으며, 거기에 더는 조금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데, 다만 그것은 그들이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뿐, 다시 말해 그것을 점점 더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자기 동류들을 그 사치스러운 방식에 얼마나 정통한가에 따라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스스로 내보이거나 남에게서 알아보는 그 위엄이란 전적으로 물질적이고, 쉽게 확인되며, 더디게 얻어지고, 그것이 없으면 벌충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그런 여인들이 어떤 행인을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놓는다면, 그것은 그가 자기들 눈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 바로 그 본능적인 과정에 의한 것이니, 곧 본능적으로, 첫눈에, 그리고 항변의 여지도 없이 그리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시절 귀족계 여인들과 어울리던 이스라엘스 부인 같은 여인들과, 훗날 그들을 알게 될 스완 부인을 아우르던 그 특별한 사회 계층은, 포부르 생제르맹의 사람들을 ‘뒤쫓아 다녔다’는 점에서는 그곳보다 아래였으나 포부르 생제르맹에 속하지 않은 그 밖의 모든 것보다는 위였던 그 중간 계층은, 이미 단순한 부자들의 세계에서는 벗어나 있으면서도 여전히 부(富)를 대변하되, 물길처럼 다스려지고, 어떤 쓸모에 이바지하며, 예술적인 어떤 관념에 흔들리는 부, 곧 잘 벼려지는 황금이자, 시적인 무늬로 아로새겨지고, 미소 짓도록 길들여진 부를 대변한다는 이 독특함을 지니고 있었으니, 아마 그 계층은, 적어도 그와 같은 형태로, 그와 같은 매력을 지닌 채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계층에 속했던 여인들은 오늘날 그들이 군림하던 그 으뜸가는 조건을 채우지 못할 터인데, 나이가 들면서 그들은, 거의 다, 그 아름다움을 잃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스완 부인이, 위엄 있고,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부아 대로를 따라 나아가면서, 히파티아처럼, 자기 발의 느린 걸음 아래로 뭇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본 것은, (그녀의 고귀한 재산의 정점에서 못지않게) 무르익고도 여전히 그토록 향기로운 그녀의 여름의 영광스러운 절정에서였다. 여러 젊은이가 지나가며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으니, 자기들이 그녀와 어렴풋이 아는 사이라는 것이(더구나 스완에게 기껏해야 한 번밖에 소개되지 않은 터라, 그가 자기들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만큼) 감히 모자를 벗어 인사할 만한 충분한 구실이 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정하면서 그 결과를 생각하며 떨었으니, 그토록 대담하고, 그토록 불경스럽게 섭리를 시험하는 그 몸짓이 파국적인 자연의 힘을 풀어놓거나, 질투하는 신의 복수를 자기들 머리 위에 내리게 하지는 않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것이 불러일으킨 것은, 마치 태엽 장치를 감은 것처럼, 오데트의 호위꾼들에 다름 아닌, 몸을 굽혀 답하는 작은 인물들의 일련의 몸짓뿐이었으니, 그 시작은 스완 자신으로, 그는 초록 가죽으로 안을 댄 높은 모자를,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익힌 정교한 예의로 들어 올렸으나, 거기에는 한때 그가 보였을 그 무심함이 이제 더는 배어 있지 않았다. 그 자리를 이제 (마치 그가 어느 정도 오데트의 편견에 물들기라도 한 듯) 차지한 것은, 별로 잘 차려입지도 못한 사람의 인사에 답해야 하는 데 대한 짜증과, 자기 아내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안다는 데 대한 만족이 뒤섞인 감정이었고, 그는 그 감정을 자기 곁에서 걷는 맵시 있는 벗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드러냈다. “아니 또 한 사람이라니! 원, 내 아내가 대체 이 친구들을 다 어디서 주워 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먼!” 그러는 동안,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으나 심장은 아직 사납게 뛰고 있던 그 겁에 질린 젊은이에게 고개를 살짝 까딱여 인사를 건넨 뒤, 스완 부인은 내게로 돌아섰다. “그럼 다 끝난 거예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이제 다시는 질베르트를 보러 오지 않을 건가요? 나만은 예외로 두고 나까지 대뜸 ‘내치지는’ 않겠다니 다행이에요. 나는 당신을 보는 게 좋지만, 당신이 내 딸에게 끼치던 그 영향도 좋았거든요. 그 애도 분명 무척 서운해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을 몰아세워서는 안 되겠죠, 안 그러면 당신이 대번에 다시는 내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어 버릴 테니까요.” “오데트, 사강이 당신한테 말을 걸려고 하는데!” 스완이 아내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과연 거기에는, 마치 연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떤 변환 장면에서처럼, 또는 서커스에서, 아니면 옛 그림에서처럼, 그 대공이, 그녀를 마주하려고 말을 돌려 세우고, 웅장하고 영웅적인 자세로, 연극조의, 이를테면 우의적인 크나큰 손짓과 함께 모자를 벗어 들고 있었으니, 그 몸짓 속에서 그는, 설령 그 여성성이 자기 어머니나 누이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떤 여인에게 깃들어 있다 할지라도, ‘여성’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몸을 굽히는 대귀족의 그 기사도적 예의를 죄다 내보였다. 그리고 시시각각, 자기 양산이 자기 위로 드리운 그늘의 그 물빛 투명함과 빛나는 윤기의 깊은 속에서 알아보아지며, 스완 부인은 뒤늦게 지나가는 마지막 기마객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으니, 그들은 대로의 눈부신 빛 속을 질주하며 마치 촬영된 영화 장면에서인 양 스쳐 지나갔고, 클럽에서 온 그 사내들의 이름은, 대중에게는 그저 유명 인사를 뜻할 뿐인 앙투안 드 카스텔란, 아달베르 드 몽모랑시 따위의 이름은, 스완 부인에게는 낯익은 벗들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시적 감흥에 대한 우리 기억의 평균 수명, 그 상대적 장수는 마음이 겪은 것에 대한 우리 기억의 그것보다 훨씬 더 긴 까닭에, 한때 질베르트로 인해 내가 느꼈던 슬픔들이 바래어 사라진 지 오랜 뒤에도, 그것들보다 오래 살아남은 즐거움이 있으니, 곧 눈을 감고, 이를테면 해시계의 문자판 위에서, 5월의 열두 시 십오 분과 한 시 사이에 새겨진 그 몇 분을 읽을 때마다, 마치 등꽃 정자의 물든 그늘 속에서인 양, 그녀의 양산 아래에서 스완 부인과 그렇게 다시 한번 거닐며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보는 데서 얻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