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고장의 이름: 고장 ①

2권 제1부 · 고장의 이름: 고장

질베르트에 대해 거의 완전한 무관심의 상태에 이르렀을 무렵, 그로부터 이태 뒤에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발베크로 갔다. 낯선 얼굴의 매력에 굴복할 때, 다른 어떤 처녀의 도움을 빌려 고딕 대성당들과 이탈리아의 궁전과 정원을 발견하기를 바랄 때, 나는 슬프게도 이런 우리의 사랑이, 그것이 어느 한 특정한 존재를 향한 사랑인 한, 그다지 실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유쾌하거나 불쾌한 연상의 흐름이 한동안 그것을 어떤 여인에게 붙들어 매어, 마치 그 사랑이 원인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연쇄 속에서 그 여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믿게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가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런 연상에서 벗어나면, 이 사랑은 마치 그것이 정말로 자발적인 것이어서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서만 솟아난 것처럼, 다른 여인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해 다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베크로 떠날 무렵, 그리고 그곳에 머문 초기에는 나의 무관심이 아직 간헐적일 뿐이었다. 우리의 삶은 연대기에 그토록 무심하여 나날의 순서 속에 수많은 시대착오를 끼워 넣기에, 나는 이따금 여전히 그 나날들 가운데, 어제나 지난주보다 훨씬 더 오래된 나날들, 곧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던 나날들 가운데 살고 있곤 했다. 그러면 이내 그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그때만큼이나 절묘한 고통이 되었다. 그녀를 사랑했던 자아, 이미 또 다른 자아가 거의 완전히 대체해 버린 그 자아가 내 안에서 다시 일어났는데, 그것은 중대한 사건보다 사소한 사건에 훨씬 더 자주 자극받아 그랬다. 예컨대, 노르망디 도착을 잠시 앞질러 말하자면, 발베크의 해안 산책로에서 내 곁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체신부 차관과 그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그 가족이 훗날 내 삶에 끼칠 영향을 나는 아직 전혀 몰랐으니, 이 말은 마땅히 무심히 지나갔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것은 내게 당장 날카로운 아픔을 안겼는데, 그것은 내 안에서 대부분 오래전에 벗어나 버린 어떤 자아가 질베르트와 헤어지던 데서 느꼈던 아픔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질베르트가 내가 듣는 데서 제 아버지와 나누던 대화, 체신부 차관과 그 가족을 넌지시 언급하던 그 대화를 다시는 떠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의 기억도 기억 일반의 규칙에서 예외가 아니며, 그 규칙은 다시 그보다 더 일반적인 습관의 규칙에 지배된다. 그리고 습관이 모든 인상을 약화시키므로,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가장 생생하게 되살려 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잊어버렸던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리하여 온전한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기억의 더 나은 부분은 우리 바깥에, 후드득 내리는 빗줄기 속에, 환기하지 않은 방의 냄새나 차가운 화로에서 처음으로 타닥타닥 타오르는 잔가지 불의 냄새 속에 존재한다. 요컨대 우리의 정신이 쓸모없다 하여 물리쳤던 것과 우연히 마주치는 곳이면 어디든, 과거가 간직한 마지막 보물, 가장 값진 보물, 우리의 눈물이 다 그 원천에서 말라 버린 듯싶을 때에도 우리를 다시 울게 할 수 있는 그 보물이 거기 있다. 우리 바깥에 있다고 내가 말했던가. 차라리 우리 안에 있으되, 다만 얼마간 길게 이어진 망각 속에 우리 눈으로부터 감춰져 있는 것이다. 오로지 이 망각 덕분에 우리는 때때로 예전의 우리였던 존재를 되찾고, 그 존재가 마주해야 했던 대로 지난 일들과 얼굴을 맞대고 서며, 우리가 더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 존재이기에, 그리고 그 존재가 이제는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사랑했기에 새삼 다시 괴로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기억의 환한 대낮에는 과거의 영상들이 차츰 빛을 잃고 시야에서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결코 다시 찾지 못한다. 아니, 차라리 우리는 그것들을 결코 다시 찾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 ‘체신부 차관’이라는 말 같은) 몇 마디 말이, 마치 저자가 자칫 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책 한 권을 국립도서관에 맡겨 두듯, 망각 속에 조심스레 갈무리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질베르트를 향한 나의 사랑의 이 괴로움과 재발은 꿈속에서 그런 것들이 지속되는 만큼밖에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리어 발베크에서는 그것들을 살려 둘 옛 습관이 더는 곁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습관의 이 두 가지 작용이 서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인다면, 그것은 습관이 갖가지 법칙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나는 습관 덕분에 질베르트에게 점점 더 무관심해져 갔다. 습관의 변화, 곧 습관의 일시적 중단이, 내가 발베크로 떠났을 때 습관의 일을 완성했다. 그것은 약화시키되 안정시키며, 해체로 이끌되 흩어진 요소들을 언제까지고 지속하게 한다. 여러 해 동안 날마다 나는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전날의 그것 위에 본떠 왔다. 발베크에서, 낯선 침대, 아침이면 그 곁으로 파리의 아침 식사 쟁반과는 다른 쟁반이 들려 오던 그 침대는, 당연히 질베르트를 향한 나의 사랑을 먹여 살리던 공상들을 지탱해 줄 수 없었다. (흔한 일은 아님을 인정하지만) 앉아 지내는 정착 생활로 나날이 마비될 때, 시간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이 거처를 바꾸는 것인 경우도 있다. 발베크로의 나의 여행은, 자기가 나았음을 확신하는 데 그것만이 필요했던 회복기 환자의 첫 나들이와도 같았다.

이제라면 그 여행은 아마 자동차로 이루어질 터인데, 그러면 더 흥미로우리라 여겨질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여행이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더 진실되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지표면이 주름진 갖가지 굴곡을 더 가까이, 더 은밀히 뒤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여행 특유의 매력은 도중의 여러 곳에 내려서고 지치자마자 아예 멈출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과 도착의 차이를 되도록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되도록 강렬한 것으로 만들어,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고스란히, 상상이 우리를 우리가 살던 곳에서 우리가 보고 싶어 애태우던 곳의 바로 한복판까지 단숨에 실어 나를 때 우리 마음속에 있던 그대로 의식하게 하는 데 있다. 그 단숨의 이동이 우리에게 기적처럼 여겨졌던 것은 그것이 어떤 거리를 가로질렀기 때문이라기보다 세계의 별개인 두 개체를 하나로 이었기 때문, 하나의 이름에서 또 하나의 이름으로 우리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내릴 수 있어 도착점이라 할 것이 거의 없는 이동 방식에서보다) 저 독특한 장소들, 곧 기차역들에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작용으로 한층 도드라진다. 기차역은 말하자면 그것을 둘러싼 도시의 일부를 이루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 간판에 도시의 이름을 그려 붙이고 있듯 도시의 인격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다른 모든 점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는 사물을 오로지 그것에 마땅히 속하는 환경 속에서만 보여 주려는 광증에 물들어, 그리하여 본질적인 것, 곧 사물을 그 환경에서 떼어 낸 정신의 행위를 억눌러 버린다. 오늘날 그림 한 점은 같은 시대의 가구, 장식품, 휘장 한복판에 ‘전시’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그토록 무지하기 짝이 없던 바로 그 안주인이 이제는 기록물을 뒤적이고 도서관을 드나들며 시간을 보내니, 오늘날의 저택에서 이 낡은 취향의 실내 장식을 꾸미는 데 남달리 능한 이가 바로 그녀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 가운데, 우리가 식사하다 식탁에서 눈을 들어 흘끗 바라보는 걸작은, 오직 공공 미술관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그 들뜬 기쁨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미술관은 그 헐벗음으로, 성가신 온갖 세부의 부재로,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려 물러났던 그 가장 깊숙한 공간을 훨씬 더 잘 상징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기차역이라는 저 경이로운 장소들, 먼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그곳들은 또한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여태껏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던 광경들이 이제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갈 광경으로 바뀌는 기적이 이루어지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대합실에서 나서는 순간, 조금 전까지도 우리를 감싸고 있던 그 낯익은 벽 안에서 다시금 우리 자신을 발견하리라는 생각을 일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신비에 이르게 해 줄 그 역병 같은 동굴 속으로, 유리 지붕을 인 그 광막한 헛간들 가운데 하나로, 곧 발베크행 기차를 찾으러 내가 들어가야 할 생라자르 역 같은 곳으로 뚫고 들기로 마음먹은 이상,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우리 침대에서 잠들리라는 모든 희망을 접어야 한다. 그 헛간은 도시의 갈라진 배 위로, 극적인 위협이 겹겹이 쌓여 무겁게 드리운 저 황량하고 가없는 하늘 가운데 하나를, 만테냐나 베로네세가 거의 파리풍이라 할 근대성으로 그려 낸 어떤 하늘들처럼, 그 아래에서는 오직 기차로 떠나는 일이라든가 십자가를 세워 올리는 일 같은 어떤 장엄하고 엄청난 행위만이 이루어질 수 있을 듯한 그런 하늘을 펼쳐 놓고 있었다.

파리의 내 침대의 온기 속에서 몰아치는 진눈깨비에 뒤덮인 발베크의 페르시아풍 성당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동안에는, 내 몸은 이 여행에 아무런 이의도 내놓지 않았다. 이의는 오직, 여행에 제 몸소 참여해야 하며 도착하는 저녁에는 제 몸으로선 낯설기만 한 ‘내’ 방으로 안내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야 비로소 일기 시작했다. 그 반항은 한층 뿌리 깊었는데, 출발 바로 전날 나는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노르푸아 와 함께 에스파냐로 떠날 시각이 될 때까지 부처 일로 바쁠 터라, 파리 근교에 집 한 채를 얻는 편을 택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발베크의 광경은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덜 탐나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그것을 어떤 불편함을 치르고서 사야 한다 해도, 도리어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그곳에 구하러 가는 그 인상의 실재를 가리키고 보증해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인상의 자리는, 겉으로 그와 똑같은 값어치를 표방하는 어떤 광경도, 내가 집에 돌아와 내 침대에서 잘 수 있게끔 굳이 보러 갈 만한 어떤 ‘파노라마’도 결코 메워 줄 수 없었으리라. 사랑하는 자와 즐거움을 찾는 자가 늘 같은 사람은 아님을, 나는 그때 처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치료하던 의사만큼이나 온전히 발베크를 갈망하고 있다고 믿었다. 출발하던 날 아침, 내가 그토록 시무룩해 보이는 데 놀란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라면 단 일주일이라도 바닷가로 내려가 바닷바람을 쐴 수 있다면, 두 번 청하기를 기다리지 않겠소. 경주도 있고, 보트 경기도 있고, 없는 게 없을 게요!” 그러나 나는 이미 그 교훈을, 라 베르마의 연기를 보러 끌려가기 훨씬 전부터 배워 두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오직 길고 가슴 미어지는 추구 끝에야 이르러지며, 그 과정에서 나는 먼저 나 자신의 즐거움을 그 지고의 선을 위해 희생해야지, 거기서 즐거움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말이다.

할머니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이 대이동을 사뭇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여전히 나에게 주는 선물이 어떤 예술적 형태를 띠기를 늘 바라던 터라) 이 여행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옛’ 맛이 나는 ‘판화’ 한 폭을 나에게 선사할 수 있도록, 세비녜 부인이 파리에서 숄느와 ‘퐁토데메르’를 거쳐 ‘로리앙’으로 갈 때 따랐던 그 여정을, 일부는 철도로 일부는 도로로 되짚어 밟자고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 계획을 단념해야 했으니, 아버지가 만류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무슨 나들이든 거기서 짜낼 수 있는 지적 유익을 최대한 뽑아내려 꾸밀 때마다, 놓친 기차며 잃어버린 짐이며 인후염이며 어긴 규칙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늘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적어도 이런 생각에 기뻐할 자유는 있었다. 우리가 해변으로 나서려 할 때, 그녀가 그토록 아끼는 세비녜가 ‘한 마차 가득한 짐승 떼’라 부른 것이 느닷없이 나타나 우리를 집 안에 갇히게 할 위험에 결코 처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말이다. 르그랑댕이 제 누이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우리에게 건네기를 삼간 덕분에, 우리는 발베크에서 아는 이 하나 없을 터였으니까. (이렇게 소개장을 아낀 것을 셀린 이모와 플로라 이모는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두 분은 그 부인을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고, 그때까지 늘 그 옛 친분을 기리느라 그녀를 ‘르네 드 캉브르메르’라 불러 왔으며, 그녀에게서 받아 지금도 지니고 있는, 방이나 대화를 계속 꾸며 주기는 하나 이제 양편의 정은 거기 미치지 못하는 그런 자잘한 선물 몇 가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분은, 르그랑댕 부인을 찾아갈 때 다시는 그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가해진 모욕을 앙갚음한다고 여겼고, 무사히 그 집을 나서고 나면 서로 이렇게 축하를 주고받는 데 그쳤다. “누구 얘긴지 알지, 난 그 사람 얘긴 한마디도 안 했어!” “내 생각엔 제대로 먹힌 것 같은데!”)

그리하여 우리는 그저 그 1시 22분 기차로 파리를 떠날 참이었다. 나는 철도 시간표에서 그 기차를 너무도 자주 찾아보며 혼자 즐기곤 했는데, 그 시간표에 실린 여정은 어김없이 나에게 그 기차로 떠나는 듯한 감동을, 거의 착각에 가까운 감동을 불러일으켰기에, 나는 이미 그 기차를 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형태의 행복이든 그 모습을 우리 마음속에 그려 내는 일은, 그것에 관해 우리가 지닌 정보의 정확함보다 그것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갈망의 본성에 더 많이 달려 있는 법이라, 나는 이 기차를 그 온갖 세세한 데까지 안다고 느꼈다. 또한 그 객실 한 칸에 앉아, 하루가 서늘해지기 시작할 무렵 각별한 기쁨을 맛보며, 기차가 이 역 저 역에 다가갈 때 이런저런 풍경을 바라보게 되리라는 것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기차는, 늘 내 마음의 눈앞에 똑같은 도시들의 영상을 떠올려 주며, 내가 그 도시들을 기차가 내달리는 그 오후의 햇살 속에 담그던 이 기차는, 다른 어떤 기차와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그의 우정을 얻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곧잘 그러듯, 그리하여 나를 제 여행길에 데려가 줄 그 예술가 같고 금발인 나그네에게 뚜렷하고 변치 않을 얼굴의 인상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가 지는 해를 따라잡으려 서둘러 떠나기 전에, 생로 대성당 아래에서 그에게 작별을 고하게 되리라.

할머니는 곧장 발베크로 가는 것 같은 그런 ‘어리석은’ 짓은 도무지 할 수 없어서, 여정을 중간에 끊어 친구 한 분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나는 그 집에서 폐를 끼치지 않도록, 또 대낮에 도착해 발베크 성당을 볼 수 있도록 같은 날 저녁에 다시 길을 떠날 참이었다. 그 성당은 발베크플라주에서 얼마쯤 떨어져 있다고 들었기에, 내가 해수욕 요양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그것을 보러 갈 기회가 없을 성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여행의 그 탐나는 목적지가, 내가 새 거처에 들어가 거기 머물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 잔인한 첫날밤과 나 사이에 놓여 있다고 느끼는 편이 그나마 덜 괴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먼저 옛 거처를 떠나야 했다. 어머니는 그날 오후 생클루로 ‘이사해 들기’로 정해 두었고, 우리를 역에서 배웅한 뒤 곧장 그리로 갈 채비를 다 갖추었거나 갖춘 척했으며, 우리 집에 다시 들르지 않아도 되게끔 해 두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마지막 순간에 발베크로 가는 대신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사실 어머니는, 방금 얻은 집에 볼 일이 많고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은 나에게 길게 늘어지는 이별의 잔인한 시련을 덜어 주려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기다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 순간이란, 여태껏 아무 결말도 없는 부질없는 오감과 준비들 사이에 감춰져 있던 이별이 문득 뚜렷이 드러나,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어 견딜 수 없어지고, 무력하되 더없이 또렷한 그 하나의 거대한 찰나 속에 온통 응축되는 순간이었다.

난생처음 나는 어머니가 나 없이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별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머물 참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어쩌면 나의 허약한 건강과 신경질적인 과민함이 그 삶을 얼마쯤 성가시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듯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 이별이 나를 한층 비참하게 한 것은, 그것이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내가 어머니에게 안긴 잇단 실망들, 한 번도 나에게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함께 휴가를 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한 그 실망들의 끝을 뜻하리라고 스스로 되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세월이 흐르는 지금, 어머니가 앞날을 위해 이제 막 체념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어떤 삶의 형태의 첫 시련이기도 했다. 그 삶 속에서 나는 어머니를 덜 보게 될 터였고, 그 삶 속에서 어머니는 (내 악몽 속에서조차 아직 나에게 드러난 적 없던 일이지만) 이미 얼마간 낯선 사람이, 내가 없을 어느 집으로 혼자 걸어 돌아가며 문지기에게 나에게서 온 편지가 없는지 묻는 어떤 부인이 되어 있을 터였다.

역에서 내 가방을 들어 주겠다고 한 사람에게 나는 거의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달래려고 당신이 보기에 가장 효험 있을 방법들을 써 보았다. 내 슬픔을 못 본 척해 봐야 소용없다고 여기고는, 그것을 두고 나를 부드럽게 놀렸다.

“저런, 발베크 성당이 알면 뭐라고 하겠니, 저를 보러 오는 사람이 저렇게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말이야? 이건 러스킨이 말한 그 황홀에 젖은 관광객은 분명 아니로구나. 게다가, 네가 이 상황을 잘 견뎌 내는지 나는 알게 될 거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여전히 내 어린것과 함께 있을 테니까. 내일이면 엄마한테서 편지 한 통을 받게 될 거란다.”

“얘야,”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네가 세비녜 부인처럼 지도에 눈을 딱 붙이고, 한순간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을 그려 본단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내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저녁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고, 프랑수아즈에게 눈길을 돌리게 하고는, 예전에 그것들이 새것이던 시절 큰이모 머리 위에 얹힌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질색했으면서도, 이제 와 알아보지 못한 척 모자와 망토를 두고 그녀를 칭찬했다. 하나는 그 위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우뚝 솟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흉측한 무늬와 흑옥 구슬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망토는 걸치기에 너무 낡아 버려서, 프랑수아즈가 그것을 뒤집어, 수수한 천으로 된, 색이 꽤 고운 ‘안감’을 드러내 놓았다. 새로 말하자면,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망가져 버려졌다. 그리고 더없이 의식 있는 예술가들이 오직 애를 써야만 이르는 효과가, 민요 한 자락 속에, 어느 시골 농부의 오두막 벽 문 위, 구도상 꼭 알맞은 자리에 흰 장미나 노란 장미가 피어 있는 데서 문득 발견될 때 이따금 마음이 술렁이듯, 샤르댕이나 휘슬러의 초상화 속이었다면 우리를 기쁘게 했을 그 벨벳 띠, 그 리본 매듭을, 프랑수아즈는 소박하되 어김없는 안목으로 모자에 얹어 놓았고, 그리하여 그 모자는 이제 사랑스러웠다.

더 앞선 시대에서 견줄 만한 예를 들자면, 우리 늙은 하녀의 얼굴에 흔히 어떤 고귀한 기품을 감돌게 하던 그 겸손함과 올곧음이 그 옷차림에도 번져 있었으니, 그녀는, 삼갈 줄은 알되 비굴하지는 않은 여인, 제 몫을 지키고 제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여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있어도 남부끄럽지 않으면서 동시에 눈에 띄려 하거나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없도록 이 여행을 위해 그 옷을 차려입었던 것이다. 이제는 빛바랜 버찌빛 천으로 지은 망토에, 은은한 털가죽 깃을 두른 프랑수아즈는, 옛 거장이 시도서에 그린 브르타뉴의 안 왕비의 세밀화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 그림 속에서는 모든 것이 어찌나 정확히 제자리에 놓여 있고, 전체의 뜻이 어찌나 부분마다 고루 배어 있는지, 그 옷차림의 풍성하고 고풍스러운 유별남이 눈과 입술과 손과 똑같은 경건한 엄숙함을 자아내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프랑수아즈와 관련해서는 거의 입에 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는 그 절대적인 의미에서, 마음이 곧바로 다다를 수 있는 드문 진리들만 빼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관념의 드넓은 세계는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맑은 눈빛을, 코와 입술의 선을, 수많은 교양인에게는 없어서 있었더라면 지고의 기품을, 선택받은 영혼의 고귀한 초연함을 뜻했을 그 온갖 표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은, 개의 솔직하고 총명한 눈길 앞에서 그러듯 마음이 술렁였다. 그 눈길에 우리의 온갖 인간적 관념이 낯설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물음에 이르게 되었다. 저 다른 미천한 형제들, 우리네 시골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 땅의 위대한 이들처럼 소박한 정신을 지녔거나, 아니 차라리 모진 운명에 떠밀려 소박한 이들 틈에서 하늘의 빛을 빼앗긴 채 살아가면서도, 여느 배운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자연스레, 더 본능적으로 선택받은 영혼들과 가까운 존재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비록 흩어지고 길을 잃고 이성이라는 유산을 빼앗겼을망정, 모두 저 천상 가문의 일원, 어린 나이에 길을 잃은 혈육, 가장 드높은 정신의 소유자들의 혈육으로서, 그런 이들에게는, (아무것에도 그 빛을 모을 수 없다 해도 그들 눈에 어린 틀림없는 빛으로 보아 분명하듯) 재능을 갖추어 줄 것으로 오직 지식만이 모자랐던 것이다.

내가 눈물을 참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레굴루스는 사정이 위태로워지면 으레…’ 게다가 엄마한테 좋은 일이 아니잖니! 세비녜 부인은 뭐라고 하지? 할머니가 알려 주실 거다. ‘나는 네게 모자란 그 용기를 죄다 끌어내야 하겠구나.’” 그리고 남을 향한 애정이 제 이기적인 슬픔을 잊게 해 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어머니는 생클루로의 이사가 아무 탈 없이 되어 가리라 여긴다며, 세워 둔 삯마차가 마음에 든다며, 마부가 점잖아 보이고 자리가 편안하다며 나를 달래려 애썼다. 나는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에 억지로 미소 지으려 애쓰며, 수긍하고 만족하는 시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임박한 엄마의 떠남을 더 또렷이 내 눈앞에 그려 보이는 데에나 도움이 될 뿐이어서, 나는 마치 어머니가 이미 나에게서 떼어내진 것처럼, 시골에서 쓰려고 산 저 챙 넓은 밀짚모자 아래, 한낮의 찌는 더위 속 긴 마차길을 내다보고 입은 하늘하늘한 옷차림의 어머니를 가슴 저미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모자와 옷은 어머니를 다른 사람으로, 이미 몽트르투 별장에 속한, 내가 거기서는 볼 수 없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여행이 자칫 나에게 일으킬 수 있는 숨 막히는 발작을 막으려고, 의사는 나에게 출발할 때 맥주나 브랜디를 한 잔 진하게 들이켜, 신경계가 한동안 덜 취약해지는, 그가 ‘도취’라 부른 상태로 여행을 시작하라고 일러 두었다. 나는 아직 그렇게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내가 그렇게 하기로 정한다면 지혜와 명분이 내 편에 있음을 할머니가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마치 내 망설임이 오직 어디로 마실 것을 가지러 갈지, 곧 승강장의 간이주점으로 갈지 기차의 식당칸으로 갈지에만 관한 것인 양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즉시, 그런 생각은 한순간도 품고 싶지 않다는 듯한, 할머니 얼굴에 떠오른 나무라는 기색에, ‘뭐라고!’ 하고 나는 속으로 뇌까리며, 문득 나가서 술을 마시겠다는 이 행동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을 말로 알리는 것이 이의 없이 넘어가지 못한 이상,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내 독립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되었던 것이다. ‘뭐라고!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면서,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알면서,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얼마나 몸이 안 좋은지 할머니에게 설명하자, “그럼 어서 다녀오너라, 얼른. 몸에 좋다면 맥주든 리큐어든 좀 마시렴” 하고 대답하는 그 애처로움과 다정함이 어찌나 역력했던지, 나는 할머니에게 와락 달려들어 입맞춤으로 그녀를 거의 숨 막히게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내가 기차 식당칸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은, 그러지 않으면 여느 때보다 더 사나운 발작을 일으킬 성싶었기 때문인데, 그거야말로 할머니를 가장 속상하게 할 일이었다. 첫 정거장에서 우리 객실로 다시 기어 올라오며, 나는 할머니에게 발베크로 가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든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잘 풀리리라 느껴진다고, 결국 엄마 없이 지내는 데도 곧 익숙해질 거라고, 기차가 무척 편안하다고, 주점의 급사와 종업원들이 어찌나 친절한지 그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게끔 이 여행을 자주 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 온갖 반가운 소식에 나만큼의 기쁨은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잠을 좀 청해 보는 게 어떻겠니?” 그러고는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우리가 내려 두긴 했으나 유리를 온전히 가리지는 못한 그 창문의 차양 너머로 햇빛이 스며들 수 있었고 또 스며들어, 반드르르한 참나무 문짝과 좌석의 천 위로 흘러들었다. (그것은 객실 벽 높은 곳에 철도 회사가 붙여 놓은,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이름을 알아볼 수 없는 시골의 어느 고장들을 그린 광고들보다 훨씬 더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연과 더불어 나누는 삶의 광고와도 같았다.) 그것은 숲속 빈터를 따라 누워 있는 것과 똑같은, 따스하고 나른한 빛이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