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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고장 ③

2권 제1부 · 고장의 이름: 고장

몇 분마다 작은 기차는 발베크플라주 앞에 놓인 역들 가운데 하나에 우리를 멈춰 세웠는데, 그 이름만 놓고 보면(앵카르빌, 마르쿠빌, 도빌, 퐁타쿨뢰브르, 아랑부빌, 생마르르비외, 에르몽빌, 멘빌) 나에게는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졌으나, 책에서 마주쳤더라면 나는 대뜸 그것들이 콩브레 근방 어떤 지명들과 닮았다는 데 놀랐으리라. 그러나 훈련된 귀에는, 저마다 그토록 많은 음으로 이루어지고 그중 여럿을 서로 공유하는 두 선율이라 해도, 그 화성과 관현악법의 빛깔이 다르다면 조금도 닮아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리하여, 모래와 너무 성기고 텅 빈 공간과 소금으로 이루어져, 마치 ‘잠자리’라는 낱말 끝에서 ‘자리’가 솟아나오듯 그 끝의 ‘빌’이라는 어미가 늘 빠져나가 버리는 이 음산한 이름들만큼, 나에게 저 다른 이름들, 곧 루생빌이나 마르탱빌을 덜 떠올리게 하는 것은 없었다. 식탁에서, 식당에서 큰이모가 그토록 자주 그 이름들을 입에 올리는 것을 들었던 까닭에, 그 이름들은 어떤 음울한 매력을 얻었는데, 거기에는 아마도 “설탕 절임”의 맛에서 우러난 것, 장작불과 베르고트의 어떤 책장이 풍기는 냄새, 맞은편 집 돌 벽면의 빛깔이 뒤섞여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 기억의 깊은 곳에서 기체의 거품처럼 떠오를 때면, 수면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서로 겨루는 온갖 관심의 켜켜를 뚫고서도 저마다 고유한 효능을 간직하고 있다.

이 역들은, 저마다의 모래언덕 마루에서 먼바다를 굽어보거나, 갓 도착한 호텔 침실의 소파처럼 볼품없는 초록빛에 거북한 모양을 한 언덕들 밑에서 벌써 밤을 맞으려 몸을 접으며, 저마다 별장들이 모인 무리로 이루어져 그 줄이 잔디 테니스장까지, 이따금은 카지노까지 뻗어 있고, 그 위로는 상쾌해진 바람에 마른기침 같은 소리를 내며 깃발이 펄럭이는, 그런 일련의 해수욕장들이었다. 그 해수욕장들은 이제 처음으로 나에게 그 단골손님들을 보여 주었으나, 보여 준 것은 그들의 겉모습뿐이었다. 흰 모자를 쓴 잔디 테니스 선수들, 위성류와 장미 사이 그 자리에서 한평생을 보내는 역장, 밀짚 “보터” 모자를 쓴 어느 부인,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삶의 나날의 일과를 좇으며, 돌아올 제 몫으로 이미 등불이 켜진 방갈로로 들어가기에 앞서 길에서 무언가를 살피느라 멈춰 선 제 개를 부르던 그 부인. 그 이상하리만치 예사롭고 무람없이 낯익은 광경들은, 아무의 인사도 받지 못한 내 눈을 찌르고 유배당한 내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가 발베크 그랑 호텔 로비에 다다라, 대리석처럼 보이는 웅장한 계단 앞에 내가 서 있고, 할머니는 앞으로 우리가 그 틈에서 살아가야 할 낯선 이들의 점점 커 가는 적의에는 아랑곳없이 지배인과 “숙박료”를 두고 흥정하는 동안, 내 고통은 얼마나 더 커졌던가. 그 지배인은 얼굴도 목소리도 한결같이 흉터로 덮인, 굽실대는 만다린 같은 자였는데(그 흉터는 이방의 혈통에서, 또 국제적인 성장 과정에서 얻은 갖가지 억양 여기저기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스럼을 도려낸 자국이었다), 말쑥한 디너 재킷을 걸치고 노련한 심리학자 같은 낯빛으로, “합승마차”가 새 손님을 부려 놓을 때마다 “명사 귀족”은 “얼뜨기”로, “호텔 사기꾼”은 명사 귀족으로 분류하며 거기 서 있었다. 아마 저 자신도 한 달에 오백 프랑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잊은 채, 그는 오백 프랑을, 혹은 그가 즐겨 말하는 대로 “이십오 루이”를 “큰돈”으로 여기는 이들을 깊이 경멸했고, 그들을 그랑 호텔이 결코 겨냥하지 않은 천민 족속쯤으로 여겼다. 하기야 그 벽 안에도 그리 많이 치르지 않으면서 지배인의 존경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씀씀이를 살피는 것이 가난 때문이라기보다 인색 때문임을 그가 확신하는 한 그러했다. 인색이란 하나의 악덕이며, 따라서 어느 사회적 지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므로, 그것이 그들의 격을 조금도 떨어뜨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배인이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오직 사회적 지위 하나였으니, 사회적 지위, 아니 그보다는 그 지위가 드높음을 뜻하는 듯 그에게 보이는 표시들, 이를테면 로비에 들어서면서 모자를 벗지 않는 것, 니커보커스나 허리가 잡힌 외투를 입는 것, 구겨진 모로코가죽 갑에서 자줏빛과 금빛 띠를 두른 여송연을 꺼내 무는 것 따위였는데, 아, 그 어느 이점도 나는 내세울 수 없었다. 그는 또 사무적인 이야기를 그럴싸한 표현들로 꾸미곤 했는데, 대개는 그 표현에 엉뚱한 뜻을 붙였다.

지배인이 모자를 쓴 채 이 사이로 휘파람을 불며 자기 말을 듣는데도 짜증 하나 내지 않던 할머니가, 꾸민 목소리로 그에게 “그런데 … 요금이 … 얼마죠? … 어머! 내 쥐꼬리만 한 예산엔 너무 비싸네요” 하고 묻는 것을 들으며, 나는 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내 의식의 가장 깊은 밑바닥으로 피신하여, 영원한 생각들의 지평으로 옮겨 가려 애썼다. 곧 내 몸의 표면에 살아 숨 쉬고 느끼는 그 무엇도, 나 자신의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려, 마치 공격받으면 억제 작용으로 죽은 체하는 짐승들처럼 마취된 채로 있으려 했으니, 이곳에서 너무 뼈아프게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대한 나의 완전한 서투름은, 바로 그 순간 말쑥하게 차려입은 어느 부인이 누리는 듯한 친숙함을 내가 보았을 때 한결 더 또렷이 드러났다. 지배인은 그 부인이 로비를 가로질러 데려온 강아지에게 스스럼없이 굴며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모자에 깃털을 꽂고 들어서면서 “편지 온 것 있소?” 하고 묻던 젊은 “멋쟁이”, 이 모든 사람에게는 저 모조 대리석 계단을 오르는 것이 곧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미노스와 아이아코스와 라다만토스의 세 겹 찌푸림이(나는 그 밑으로 벌거벗은 내 영혼을, 이제는 그것을 지켜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미지의 원소 속으로인 양 던져 넣었다), 접대의 기술에는 아마 그리 능하지 못하면서도 “접수계”라는 직함을 단 한 무리의 신사들에게서 나를 향해 준엄하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들 너머로 다시, 닫힌 유리 벽 저편에는 열람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곳을 묘사하려면 나는 단테에게서, 그가 천국과 지옥을 그릴 때 쓴 빛깔을 번갈아 빌려 와야 했을 것이다. 방해받지 않고 그곳에 앉아 읽을 권리를 지닌 선택받은 이들의 행복을 생각할 때에는 천국의 빛깔을, 이런 종류의 인상에는 무감한 할머니가 혹여 나더러 혼자 그 안에 들어가 자기를 기다리라고 했더라면 나에게 불러일으켰을 공포를 생각할 때에는 지옥의 빛깔을.

잠시 뒤 내 외로움은 한층 더 커졌다. 내가 할머니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아무래도 파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을 때, 할머니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떠나든 머물든 어차피 쓸모 있을 물건 몇 가지를 사러 나가겠다고만 했다(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으니, 내가 필요로 할 만한 몇몇 물건을 프랑수아즈가 가지고 가 버린 탓이었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거리를 한 바퀴 돌았는데, 그 거리는 실내 같은 온기를 자아내는 사람들의 무리로 붐볐고, 이발소와 제과점이 아직 문을 열고 있었으며, 제과점은 뒤게트루앵 조각상 맞은편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이 무리는 나에게, 외과의의 대기실에서 화보 잡지를 뒤적이던 환자가 그 무리를 찍은 사진에서 얻었을 법한 딱 그만큼의 즐거움만을 주었다. 나는, 이 시가 산책이 지배인의 입에서 실제로 기분 전환거리로 나에게 권해질 만큼 나와는 그토록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데, 또 새로운 거처라는 고문실이 어떤 이들에게는 호텔 안내책자의 말을 빌리자면 “끊임없는 즐거움”으로 보일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 안내책자는 과장했을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그 취향에 맞아야 할 한 무리의 손님 대군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기야 그 책자는, 손님들을 발베크 그랑 호텔로 불러들이려고 “더없이 훌륭한 요리”와 “카지노 정원 너머 요정 같은 전망”만이 아니라, “유행의 여왕 폐하의 법령, 누구도 무사히 어길 수 없으며 어겼다가는 보이오티아 사람으로 취급받는데, 교양 있는 이라면 결코 달갑게 뒤집어쓰지 않을 오명”까지 들먹였다. 지금 내가 할머니를 필요로 하는 마음은, 내가 할머니의 또 다른 환상 하나를 깨뜨렸다는 두려움 탓에 더욱 커졌다. 할머니는 낙담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이 여행의 피로조차 견디지 못한다면, 어떤 전지 요양도 내게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은 없다고 느끼면서. 나는 호텔로 돌아가 거기서 할머니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배인이 몸소 나서서 단추를 누르자, 아직 내가 인사를 나눈 적 없는, “엘리베이터”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이(노르망디 성당의 채광탑에 해당하는 건물 맨 꼭대기에, 암실 속 사진사나 성가대석의 오르간 주자처럼 자리 잡고 있던 그 사람이) 길든, 재빠른, 우리에 갇힌 다람쥐 같은 날렵함으로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러고는 다시 강철 기둥을 따라 미끄러져 올라가며, 그는 나를 딸린 짐처럼 이 마몬의 신전의 둥근 지붕을 향해 높이 실어 올렸다. 층마다, 좁게 이어진 계단 양편으로 어스름한 복도들이 부챗살처럼 펼쳐졌고, 그중 한 복도를 따라 긴 베개를 든 객실 하녀가 지나갔다. 짙어 가는 땅거미가 이목구비를 지워 버린 그 하녀의 얼굴에, 나는 아름다움을 향한 내 가장 뜨거운 꿈의 가면을 씌웠으나, 나를 향해 돌린 그 눈에서는 나 자신이 하잘것없는 존재라는 데서 오는 공포를 읽었다. 한편, 이 끝없는 오름 동안, 시적 정취라고는 없이 층계참마다 있는 외딴 화장실의 작은 창들이 이룬 단 한 줄의 수직선으로만 밝혀진 이 명암의 신비를 이렇게 말없이 뚫고 가며 느끼던 죽을 것 같은 번민을 떨쳐 내려고, 나는 내 여정의 장인이자 갇힘의 동무인 그 젊은 오르간 주자에게 몇 마디 건넸는데, 그는 여전히 제 악기의 음전을 다루고 스톱을 짚어 대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이토록 많이 차지해서, 이토록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내가 그의 예술 수행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는데, 그 연주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나는 호기심을 내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예술에 대한 강한 애착을 고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베풀지 않았으니, 내 말에 놀라서였는지, 하는 일에 골몰해서였는지, 관례를 지켜서였는지, 귀가 어두워서였는지, 성스러운 자리에 대한 경의에서였는지, 위험이 두려워서였는지, 이해가 더뎌서였는지, 아니면 지배인의 분부에 따라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바깥 세계의 실재를 그토록 강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하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를 만나기 전과 만난 뒤에, 우리를 기준으로 한 그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사실만 한 것이 없으리라. 나는 그날 오후 발베크에서 해안으로 가는 작은 기차를 탔던 그 같은 사람이었고, 내 몸속에 같은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식 위, 여섯 시에는 지배인이며 그랑 호텔이며 그 투숙객들에 대해 아무 관념도 그릴 수 없는 채로 목적지에 다다를 순간을 향한 어렴풋하고 겁먹은 조바심이 자리했던 그곳에, 이제는 그 국제적인 지배인의 얼굴에서 도려낸 부스럼들이(그는 사실 귀화한 모나코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말하기로는 언제나 세련됐다 여기는 표현을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버릇대로 “루마니아 독창성 태생”이라 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부르려 종을 울린 행동이, 엘리베이터 보이 그 자신이, 그랑 호텔이라는 저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인형극 인물들의 온전한 띠 장식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부인할 수 없고, 치울 수 없으며, 실현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메마르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변화는, 내가 불러오려고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변화는, 나 자신의 바깥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음을, 그것이 아무리 무의미한 일일지라도 일어났음을 나에게 증명해 주었으니, 나는 마치 길을 나설 때 해를 마주 보고 있다가 어느새 등 뒤로 해가 돌아간 것을 발견하고서 여러 시간 길을 걸었구나 깨닫는 나그네 같았다. 나는 기진하여 반쯤 죽은 것 같았고, 열로 불덩이 같았다. 기꺼이 자리에 눕고 싶었으나 잠옷가지가 없었다. 적어도 잠시나마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었으나,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우리 저마다에게 물질적 몸은 아닐지언정 감각하는 몸인 저 감각의 덩어리에게 나는 거기서 아무 쉼도 찾아 줄 수 없었을 터이고, 그 몸을 에워싼 낯선 물건들은 그 몸으로 하여금 지각을 늘 방심 없이 경계하고 방어하는 태세에 붙박아 두게 하여, 내 시각과 청각과 온갖 감각을(내가 두 다리를 쭉 뻗었다 한들)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우리에 갇힌 라 발뤼 추기경의 처지만큼이나 옹색하고 불편한 자리에 붙들어 두었을 테니 말이다. 방 안에 물건들을 들여놓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일이요, 그것들을 다시 치우고 우리에게 자리를 비워 주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발베크의 내 침실에는(이름만 내 것인 그 침실에는) 나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곳은 나를 모르는 물건들로 가득했고, 그것들은 내가 던진 미덥잖은 눈길을 그대로 나에게 되던지며, 내 존재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내가 저희 삶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시계로 말하자면, 집에서는 어떤 깊은 사색에서 빠져나올 때 일주일에 겨우 몇 초쯤 내 시계의 똑딱임을 듣던 것과 달리, 이 시계는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낯선 말로 나에 대해 필시 몹시 험한 소견들을 잇달아 늘어놓고 있었으니, 자줏빛 커튼이 대꾸도 없이 그 소견들에 귀 기울이면서도, 제삼자가 눈에 띄는 것이 거슬린다는 양 어깨를 으쓱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그런 태도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커튼들은 천장이 높다란 이 방에 반쯤은 역사적인 성격을 입혀, 기즈 공작을 암살하기에, 또 그 뒤로는 토머스 쿡 앤드 선 상회의 안내원 하나가 몸소 인솔하는 관광객 무리에게 알맞은 곳으로 만들어 놓았을지언정, 내가 그 안에서 잠을 자기에는 아니었다. 나는 벽을 따라 늘어선 유리문 달린 작은 책장 몇 개 때문에, 그러나 특히 한쪽 구석을 가로질러 놓인 발 달린 커다란 거울 때문에 괴로웠으니, 그 거울이 방을 떠나기 전에는 그곳에서 내가 쉴 가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자꾸 치켜떴는데, 파리의 내 방에 있던 물건들은 그 눈을 내 눈꺼풀 자체만큼도 어지럽히지 못했으니, 그것들은 그저 내 기관의 연장, 나 자신의 확대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눈을, 할머니가 나를 위해 골라 준 호텔 꼭대기에 세워진 이 망루의 터무니없이 높은 천장을 향해 치켜뜨는 사이, 우리가 보고 듣는 곳들보다 더 은밀한 곳, 우리가 냄새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그 영역, 거의 내 가장 깊은 속의 한복판에서, 꽃 핀 풀들의 냄새가 이번에는 내 마지막 남은 가녀린 참호선을 향해 공세를 펼쳤고, 나는 거기서 불안하게 킁킁대는 헛되고 끊임없는 방어로, 스스로를 한층 더 지치게 하면서도 그 냄새에 맞섰다. 이제 나를 에워싸고 몰려드는 적들에게 위협받지 않는 세계도, 방도, 몸도 없이, 열에 뼛속까지 침범당한 채,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나는 죽고만 싶었다. 그때 할머니가 들어왔고, 스러져 가던 내 마음이 부풀어 오르며 대뜸 끝없는 공간이 열렸다.

할머니는, 집에서 우리 가운데 누군가 앓을 때마다 걸치던 헐렁한 무명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그편이 더 편하다고, 할머니는 늘 자기 행동에 이기적인 동기를 갖다 붙이며 말하곤 했다), 그것은 우리를 돌보고 우리 머리맡을 지키기 위한, 할머니의 하인 제복이자 간호사 복장이자 수도복이었다. 그러나 하인이나 간호사나 수도자가 들이는 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친절, 우리가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미덕,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지는 고마움은 하나같이, 그들의 눈에 우리가 남남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우리가 홀로이며 우리 생각과 살고자 하는 의지의 고삐를 우리 손안에 쥐고 있다는 느낌을 더해 가는 데 반하여,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알았다, 내 안에 있는 비참이 아무리 크다 한들 할머니는 그보다 더 드넓은 연민으로 그것을 받아 주리라는 것을. 내 것인 모든 것, 내 근심, 내 바람이 할머니 안에서는 나 자신의 것보다도 더 강한, 내 목숨을 지키고 늘이려는 소망에 떠받쳐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내 생각들은 아무런 굴절도 겪지 않고 할머니 안에서 이어졌으니, 그것들이 내 마음에서 할머니의 마음으로 건너갈 때 분위기도 인격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다가 거울에 비친 끝이 자기가 손을 드는 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잊는 사람처럼, 또는 공중을 나는 벌레의 춤추는 그림자를 땅바닥에서 좇는 개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직접 지각할 길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곧잘 그러하듯 할머니의 육신의 겉모습에 홀린 채, 나는 할머니의 품으로 몸을 던지고 두 입술을 그 얼굴에 갖다 붙였으니, 마치 그렇게 하여 할머니가 나에게 열어 보인 저 광대한 마음에 가닿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내 입이 할머니의 두 뺨에, 그 이마에 들러붙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거기서 그토록 이롭고 그토록 자양이 되는 무언가를 빨아들여, 젖을 무는 갓난아이처럼 꼼짝 않고, 엄숙하게, 고요히 게걸스레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마침내 나는 몸을 떼고 누워 바라보았으니, 곱게 뜬 구름처럼 윤곽이 또렷하고, 환하고 고요한, 그 뒤로 부드러운 사랑의 빛살이 어른거리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할머니의 커다란 얼굴을, 나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정도로나마 할머니의 감각을 나누어 받은 모든 것, 어떤 식으로든 할머니에게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대뜸 그토록 영화(靈化)되고 그토록 성스러워져서, 나는 두 손을 뻗어 아직 거의 세지 않은 그 정겨운 머리칼을, 마치 실제로 할머니의 선함을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그만한 경의와 조심과 위안을 담아 쓰다듬었다. 할머니는 내 수고를 하나 덜어 주는 온갖 수고를 떠맡는 데서 그와 비슷한 기쁨을, 또 내 지친 팔다리가 꼼짝 않고 쉬는 한순간에서 그토록 감미로운 무언가를 느꼈으니, 할머니가 내 옷 벗는 것을 거들고 장화를 벗겨 주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채고서 내가 그것을 말리는 시늉을 하며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애원하는 눈길로, 내 상의와 장화의 맨 위 단추를 더듬던 내 손을 붙들어 세웠다.

“아유, 그냥 두렴!” 할머니가 사정했다. “할미한테는 이게 얼마나 큰 낙인데. 그리고 밤에 뭐가 필요하거든 꼭 벽을 두드리렴. 내 침대가 바로 저쪽에 있고, 칸막이도 아주 얇단다. 자, 준비되는 대로 지금 한번 두드려 보렴, 서로 어딘지 알 수 있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나는 세 번 벽을 두드렸는데, 그것은 그 이듬 주에 내가 앓을 때, 할머니가 나에게 아침 일찍 우유를 먹이고 싶어 한 까닭에, 며칠 동안 아침마다 되풀이한 신호였다. 그러다 할머니가 뒤척이는 기척이 들리는 듯싶으면, 할머니가 기다리지 않도록, 우유를 갖다준 그 순간 다시 잠들 수 있도록, 나는 겁먹은 듯 여리게, 그래도 또렷하게 조그맣게 세 번 두드려 보았으니, 혹여 내가 잘못 안 것이어서 할머니가 아직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할머니를 깨우기가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할머니가 이내 알아채지 못한, 그리고 내가 다시 두드릴 용기도 없을 그 부름에 귀 기울이며 깨어 누워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두드리기가 무섭게 나는 세 번의 다른 두드림을 들었으니, 내 것과는 다른 억양에 차분한 권위가 찍혀, 틀림이 없도록 두 번 되풀이되며, 나에게 또렷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 안달하지 마라, 다 들었으니. 곧 갈 테니!” 그러고 얼마 안 되어 할머니가 나타났다. 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내 소리를 못 듣거나, 아니면 저 너머 방에서 누가 두드리는 줄로 여길까 봐 겁이 났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우리 가여운 병아리 두드리는 소리를 남의 것으로 잘못 안다고! 원, 할미는 천 개 소리 가운데서도 그걸 가려낼 수 있단다! 이 세상에 우리 애처럼 그런 얼뜨기가, 그렇게 열에 뜬 조그만 손마디로, 나를 깨울까 봐, 또 내가 못 알아들을까 봐 그리 마음 졸이는 애가 또 있을 성싶으냐? 아주 살짝 긁기만 해도, 할미는 제 생쥐 소리를 대뜸 알아챈단다, 더구나 우리 애처럼 이렇게 가엾고 애처로운 조그만 생쥐라면 말이지. 방금도 그 소리를 들었단다, 마음을 정하려 애쓰고, 이부자리를 바스락대고, 온갖 재주를 다 부리는 걸.”

그녀는 덧창을 밀어 열었다. 내 창과 직각으로 호텔의 한 동이 튀어나온 그곳, 그 지붕 위에는 이미 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일찍 일어난 슬레이터공(工)처럼, 이른 아침 조용히 일을 시작해 잠든 마을을 깨우지 않으려는, 그 정적이 도리어 제 부지런함을 돋보이게 하는 그런 일꾼처럼. 그녀는 몇 시인지, 어떤 날씨인지 내게 일러주었다. 일어나 창가로 올 것까지는 없다고, 바다 위에 안개가 끼었다고, 빵집이 벌써 문을 열었는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저 탈것이 무엇인지도. 그 짧고 사소한, 새 하루의 막을 여는 서곡, 아무 관객도 없이 치러지는 그 하잘것없는 introit, 오직 우리 둘만을 위한 삶의 자그마한 한 조각, 나중에 프랑수아즈에게, 아니 낯선 사람들에게도 서슴없이 되풀이해 들려줄 수 있을 그것, 그날 아침 여섯 시의 “칼로도 자를 수 있을 만큼” 짙던 안개 이야기를, 자기가 얻어낸 지식이 아니라 자기 혼자에게만 베풀어진 애정의 표시를 자랑하는 사람의 과시로 늘어놓을 그것. 사랑스러운 아침의 순간, 세 번 두드리는 나의 노크가 이루는 율동적인 대화로 교향곡처럼 열리는 그 순간, 그러면 사랑과 기쁨에 젖어 선율이 되고 형체를 잃고 천사들의 합창처럼 노래하게 된 내 침실의 얇은 벽이, 애타게 기다린,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또 다른 세 번의 노크로 화답하고, 그 노크 속에 할머니의 혼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그리고 곧 오시리라는 약속을, 수태고지 같은 신속함과 선율의 정확함으로 내게 실어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첫날 밤, 할머니가 나를 두고 가시자, 나는 전날 파리에서 집을 떠날 때 느꼈던 것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 낯선 방에서 자야 한다는 이 두려움은, 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동료 인간과 함께 지니는 이 두려움은, 우리 현재 삶의 더 나은 부분을 이루는 것들이, 그것들이 아무 몫도 갖지 못하는 미래의 공식을 우리가 참이라 받아들여 마음속에 떠올리는 데 맞서 세우는 저 크고 절망적인 저항의, 가장 겸허하고 어렴풋하고 유기적이며 거의 무의식적인 형태일 뿐이리라. 그 저항은,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리라는 생각, 삶의 냉혹한 필연이 나를 질베르트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게 하거나, 단지 옛 친구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에 영영 자리 잡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토록 자주 내게 안겨준 공포의 뿌리에 있었고, 또한 나 자신의 죽음을, 혹은 베르고트가 자기 책에서 인류에게 약속하곤 하던 그런 사후의 존속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데에도 그 뿌리가 있었다, 그런 존속 속에서는 내 기억도, 내 약함도, 내 성격도 함께 데려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니, 그것들은 존재하기를 그친다는 생각에 쉬이 승복하지 못했고, 나를 위해 소멸도, 자신들이 아무 몫도 갖지 못할 영원도 바라지 않았다.

스완이 언젠가 파리에서, 내 몸이 유난히 안 좋던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네는 태평양의 그 눈부신 섬들 가운데 하나로 훌쩍 떠나야 해.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걸세.”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러면 나는 당신 따님을 더는 못 보게 됩니다. 그 애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 사물들 틈에서 살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내 분별력은 이렇게 속삭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너는 그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 텐데? M. 스완이 네게 돌아오지 않으리라 말할 때, 그 뜻은 네가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고,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네가 거기서 더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분별력은 알고 있었으니, 습관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낯선 숙소를 정들게 하려고, 거울의 위치를 바꾸고 커튼 빛깔을 눈에 익히고 시계를 멈추게 하려고 일하고 있는 그 습관이, 처음에는 싫어했던 동무들을 정겹게 만들고, 그 얼굴에 다른 모습을 입히고, 그 목소리를 듣기 좋게 만들고, 그 마음의 기울기를 바꾸는 일까지 떠맡는다는 것을. 물론 장소와 사람에 대한 이 새 애착은 옛것을 잊는 데 바탕을 두지만, 내 분별력이 생각하던 것은 그저, 언젠가 기억마저 모조리 잃어버릴 사람들과 영영 갈라선 삶의 풍경을 나는 아무 불안 없이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정신이 내 마음에 망각의 약속을 건넨 것은 위로하려는 뜻에서였건만, 그것은 도리어 마음의 절망을 더 날카롭게 벼릴 뿐이었다. 마음 역시 시간에 매여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이별이 미완인 동안에는 마음도 습관의 진통 효과를 느끼게 마련이니. 그러나 그때까지 마음은 계속 괴로워하리라.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없고, 오늘 우리에게 가장 예리한 기쁨을 주는 벗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게 될 미래에 대한 이 두려움은,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해진다, 그런 상실의 슬픔에 더해, 지금 미리 헤아려보면 한층 더 잔인해 보이는 것, 곧 그것을 슬픔으로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무심해지고 마는 것까지 더해지리라 생각하면.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자아가 달라진 것일 테니, 그때는 우리 가족이, 연인이, 벗들이 지닌 매력만이 우리를 에워싸기를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우리의 애정 자체가 그리된 것이리라. 오늘은 우리 마음속에서 그토록 두드러진 요소인 그 애정이 어찌나 말끔히 뽑혀 나갔던지, 오늘은 생각만 해도 우리가 몸서리치며 물러서게 되는 그런 삶을, 그들 없이도 즐길 수 있게 되리라. 그러니 그것은 참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의 죽음일 것이다, 물론 부활이 뒤따르는 죽음이긴 하나, 다른 자아 속에서의 부활, 죽도록 정해진 지금 자아의 요소들로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삶과 사랑을 지닌 자아 속에서의 부활. 반란을 일으키며 완강히 버티고 거부하는 것은 바로 그것들이다, 그중 가장 하찮은 것들, 이를테면 침실의 크기며 공기에 대한 우리의 어렴풋한 애착 같은 것들마저도. 그 반란을 우리는, 죽음에 맞선 우리 저항의, 조각조각 나뉘어 나날이 새로 되풀이되는 저 절망적인 긴 저항의, 은밀하고 부분적이며 손에 잡히는 참된 한 국면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삶의 온 과정에 끼어들며 매 순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새 세포들이 그 위에 불어나고 자라날 죽은 물질을 우리에게서 뜯어내는, 그 조각나고 점진적인 죽음에 맞선 저항으로. 그리고 나 같은 신경질적인 천성, 다시 말해 중개자인 신경들이 제 구실을 서투르게 하는 천성, 사라지려는 인격의 가장 미천한 요소들의 하소연을 의식에 이르는 길목에서 막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또렷하고 진 빠지게 하며 무수하고 애타는 그 하소연을 그대로 파고들게 하는 천성으로서는, 그 낯설고 너무 높은 천장 아래 길게 누운 채 내가 느낀 불안과 놀람은, 낯익고 낮은 천장을 향해 내 안에 아직 살아남은 애정의 항변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이 애정도 사라지고 다른 애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죽음이, 그다음엔 또 다른 삶이 습관의 탈을 쓰고 그 이중의 과업을 마쳤을 때). 그러나 그것이 스러지기까지는 밤마다 새로이 괴로워하리라, 특히 이 첫날 밤에는, 이제 그것이 들어설 자리가 더는 없는, 이미 실현된 미래를 마주하고서, 그것은 반란을 일으켜, 상처받고 있는 것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 채 그 다가갈 수 없는 천장에 시선을 붙들어 매려 하는 나의 애타는 눈을 향해, 그 애처로운 탄식의 날카로운 소리로 나를 괴롭혔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