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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고장 ④

2권 제1부 · 고장의 이름: 고장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라니! 하인이 나를 깨우러 와 뜨거운 물을 가져다준 뒤, 내가 씻고 옷을 입으며 트렁크 속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 애쓰다 헛되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만 뒤죽박죽 끄집어내는 동안, 벌써 점심의 즐거움과 바닷가 산책을 떠올리며, 창문 안에, 또 배 선실의 현창처럼 늘어선 책장의 온 유리문 안에, 헐벗고 그늘 한 점 없이 트인 바다가, 그러면서도 그 넓이의 절반은 그늘에 잠긴 채, 가늘고 일렁이는 선으로 경계 지어진 바다가 담긴 것을 보는 일, 그리고 다이빙대를 따라 늘어선 잠수부들처럼 하나 뒤에 또 하나, 내게로 뛰어오르는 물결을 눈으로 좇는 일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던가. 나는 시시각각, 호텔 이름이 박힌 뻣뻣하고 좀처럼 말을 안 듣는 수건을 한 손에 쥔 채, 그것으로 몸을 말리려 헛수고를 하면서도, 다시 창가로 돌아가 그 거대한 원형극장을, 눈부시고 산더미 같은 그것을, 곳곳이 매끈하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결의 눈 덮인 마루를 또 한 번 바라보곤 했다. 그 물결은 잔잔한 사나움으로, 사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듯 가파른 앞면을 기울이며, 이제 해가 얼굴도 이목구비도 없는 미소를 얹어준 그 앞면을, 제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게 하고는, 기우뚱하다 녹아 없어지게 했다. 이제부터 나는 아침마다 이 창에 자리를 잡으리라, 잠에서 깬 역마차의 유리창 앞에서 지난밤 그토록 찾던 산줄기가 밤새 가까워졌는지 물러났는지 살피듯이. 다만 여기서는 그 산줄기가 바다의 언덕들이어서, 우리에게 춤추듯 되돌아오기 전에 곧잘 멀리멀리 물러나는 통에, 흔히 나는 길고 모래 깔린 벌판 끝에 이르러서야, 몇 마일은 떨어진 듯한 곳에서, 토스카나 원시파의 화폭 배경에 보이는 빙하 같은, 투명하고 아지랑이 같고 푸르스름한 배경 위로 솟은 그 첫 물결을 겨우 알아보곤 했다. 또 다른 아침이면 아주 가까이에서 해가 그 물 위로 미소 짓고 있었다, 알프스 목장에 간직된 것만큼이나 여린 초록빛 물, 그러나 그 초록은 흙의 물기 때문이라기보다 빛의 유동적인 흐름 때문에 그러한 물이었다(해가 여기저기 게으른 거인처럼 몸을 펼치고, 언제라도 그 험한 비탈을 신나게 뛰어내려올 듯한 산들 사이에서). 어쨌든 물가와 바다가 함께 세상의 나머지 전부를 뚫고 내는 그 틈에서, 그리로 빛이 지나가고 쌓이는 그곳에서, 무엇보다도 빛이, 그것이 오는 방향과 우리 눈이 그것을 좇는 방향에 따라, 바다의 물결을 옮기기도 하고 붙박기도 한다. 빛의 차이는, 긴 여행길에 실제로 가로지른 공간의 거리 못지않게 한 장소의 방향을 바꾸어놓고, 우리 눈앞에 새로운 목표들을, 그것에 이르고 싶은 갈망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새 목표들을 세운다. 아침에 해가 호텔 뒤에서 솟아, 바다의 첫 보루에 이르기까지 빛에 잠긴 모래밭을 내게 드러낼 때면, 그것은 그림의 또 다른 면을 내게 보여주는 듯했고, 제 햇살의 굽이진 길을 따라, 시간이 자아내는 갖가지 풍경의 가장 아름다운 정경들 한복판에서, 자리는 그대로이면서도 늘 변화하는 여행에 나서라고 나를 이끄는 듯했다. 그리고 이 첫 아침, 해는 저 멀리, 어떤 지리학자의 지도에도 이름 없는 바다의 그 푸른 봉우리들을 흥겨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다가, 이윽고 그 마루와 눈사태의 우렁차고 어지러운 표면 위로 숭고한 유람을 마치고 어지러워지자, 바람을 피해 내 침실로 되돌아와, 정돈되지 않은 침대를 가로질러 으스대며, 물 튄 세면대와 열린 트렁크 위로 제 보물을 흩뿌렸고, 그 눈부심과 어울리지 않는 사치로써 온통 어질러진 분위기를 한층 더 보태었다. 아, 그 바닷바람이라니. 한 시간 뒤, 큰 식당에서, 우리가 점심을 들며 레몬의 가죽 주머니에서 황금빛 몇 방울을 짜내어 서대기 한 쌍에 뿌리고, 이윽고 그것들이 우리 접시에 뻣뻣한 깃털처럼 곱슬거리고 치터처럼 낭랑하게 우는, 발라낸 뼈대의 깃털을 남기던 그때, 유리처럼 투명하나 닫힌 창 때문에 그 생기를 돋우는 숨결을 뺨에 느낄 수 없다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잔인한 박탈로 여겨졌다. 그 창은 박물관 진열장의 앞면처럼 우리를 바닷가에서 갈라놓으면서도 그 온 넓이를 내다보게 해주었고, 하늘이 어찌나 온전히 그 안으로 들어왔던지 그 하늘빛은 마치 창유리의 빛깔 같았고 흰 구름은 유리에 난 흠집처럼만 보였다. 나는 내가 “방파제 위에 앉아” 있거나 보들레르가 말하는 “규방”에서 쉬고 있다고 상상하며, 그의 “바다 위의 햇살”이란, 저녁 햇살, 곧 금빛 연필의 흔들리는 획처럼 단순하고 표면적인 저녁 햇살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서, 바로 그 순간 바다를 토파즈빛 갈색으로 그을리고, 발효시키고, 거품 이는 맥주처럼, 우유처럼 창백하고 희뿌옇게 물들이며, 이따금 그 위로 어떤 신이 심심풀이 삼아 하늘의 거울을 이리저리 옮겨 드리우는 듯한 커다란 푸른 그림자들이 감돌게 하던, 그것이 아닐까 자문했다. 안타깝게도 발베크의 이 식당이 길 건너 집들을 마주 보던 콩브레의 우리 방과 다른 것은 그 전망만이 아니었으니, 이 식당은 벽이 헐벗고, 대리석 성수반의 물처럼 초록빛인 햇살로 가득 찼으며, 그러는 동안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만조와 대낮이 마치 천상의 도시 성문 앞에 세우듯 에메랄드와 황금으로 된, 무너지지 않고 일렁이는 성벽을 세우고 있었다. 콩브레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알았기에 나는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바닷가 생활에서는 오직 제 일행만을 알 뿐이다. 나는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아, 남들의 눈에 들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벗어나기에는 너무 예민했다. 세상 물정에 밝은 이라면 방 안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에게, 또 창밖을 거니는 소년 소녀들에게 느꼈을 그 한층 고상한 무관심도 아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소풍을 떠나는 일이 결코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으나, 사교적 격식을 업신여기고 내 건강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할머니가 그들에게 다가가, 내가 엿듣기에도 창피한 부탁, 곧 나를 데려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더라면 그만큼 아프지는 않았으리라. 그들이 내 알 길 없는 어느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이든, 아니면 라켓을 손에 들고 거기서 나와 어느 잔디 테니스 코트로 향하는 길이든, 혹은 그 말발굽이 내 마음을 짓밟고 찢어놓는 말에 올라탄 채이든, 나는 사회적 구별이 뒤바뀌는 그 눈부신 바닷가의 빛 속에서 열렬한 호기심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토록 많은 빛을 방 안으로 쏟아 넣던 그 거대한 유리 만(灣)의 투명함을 통해 그들의 온갖 움직임을 좇았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을 막았고, 이것이 할머니에게는 잘못된 일로 여겨졌으니, 내가 바깥공기를 한 시간이나 쐬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할머니는 몰래 창유리 하나를 열어젖혔고, 그 바람에 다른 탁자에 앉은 사람들의 차림표와 신문과 베일과 모자가 대번에 날아올랐다. 정작 할머니 자신은 하늘의 숨결에 기운을 얻어, 성 블란디나처럼 태연하고 미소 띤 채였으니, 그동안 나의 고립감과 비참함을 더해가며, 저 경멸에 차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격분한 손님들은 우리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리고 발베크에서 이 점이, 여느 때는 단조롭게 부유하고 세계주의적이던 그런 세련되고 “배타적인” 호텔의 투숙객들에게 자못 독특한 지방색을 부여했는데, 그들은 그 지역 프랑스의 여러 도청 소재지에서 온 명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캉의 재판장, 셰르부르 변호사회의 중진, 르망의 큰 사무 변호사가, 해마다 휴가철이 돌아오면, 일하는 한 해 내내 전투의 저격병들처럼, 혹은 도판 위의 제도사들처럼 흩어져 있던 여러 지점에서 출발하여, 이 호텔로 저마다의 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들은 늘 같은 방을 예약했고, 귀족 행세를 하려 드는 아내들과 함께 작은 무리를 이루었으며, 여기에 파리에서 온 이름난 변호사와 이름난 의사가 합류했으니, 그들은 떠나는 날 나머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 그렇지요, 물론. 당신들은 우리 기차로 가지 않으니. 운이 좋으십니다, 점심시간에 맞춰 집에 닿으시겠군요.”

“운이 좋다고요? ‘파리, 그 대도시’의 수도에 사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나는 십만 명 남짓한 초라한 시골 군청 소재지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인데(하기야 지난번 인구 조사에서 십만 이천 명은 그러모았습니다만, 당신들 이백오십만에 비하면 그게 다 무엇이겠소?), 그것도 아스팔트 거리며 파리 생활의 온갖 북적임과 흥취로 돌아가시는 분이.”

그들은 이런 말을 r 발음을 시골식으로 굴리며 했지만, 씁쓸함은 없었으니, 저마다 제 고장에서는 앞장서는 인물들로서, 마음만 먹었다면 남들처럼 파리로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캉의 재판장은 항소법원 판사 자리를 여러 번 제안받았으나, 고향에 대한 사랑에서든, 무명(無名)에 대한 애착에서든, 명성에 대한 애착에서든, 아니면 그들이 반동적인 성향이어서 이웃한 시골 저택들과 다정하게 지내는 것을 즐겼기에든, 있던 자리에 머무는 편을 택했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 몇몇은 곧바로 제 군청 소재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발베크 만은 큰 세계 한복판에 따로 떨어진 작은 세계, 좋은 날과 궂은 날, 차례대로 이어지는 달들이 고리처럼 모여든 계절의 바구니여서, 리브벨이 눈에 들어오는 날에는, 그것 자체가 폭풍이 오리라는 조짐이었는데, 발베크가 어둠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그곳 집들에는 햇살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추위가 발베크에 닥친 뒤에도 그 건너편 물가에서는 두세 달 남짓한 여분의 온기를 어김없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랑 호텔의 단골손님들 가운데 휴가가 늦게 시작되거나 오래 이어지는 이들은, 비와 안개가 몰려오고 가을 기운이 감돌면, 짐 상자를 꾸려 싣게 하고는, 리브벨이나 코스테도르에서 여름을 다시 만나려고 만을 가로질러 배를 띄웠다. 발베크 호텔의 이 작은 무리는 새로 오는 손님마다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에게 조금도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하나같이 서둘러 자기들 벗인 수석 급사장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마다 철이 되면 돌아와 그들의 탁자를 맡아주는 같은 수석 급사장, 곧 에메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가 “산달이 가깝다”는 말을 들은 부인네들은 식사 뒤에 저마다 “자잘한 것들” 가운데 하나를 뜨개질하며 앉아 있다가, 다만 안경을 치켜올리고 우리를, 나와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려고만 손을 멈추곤 했으니, 우리가 상스럽다고 여겨지는, 실은 알랑송의 상류 사회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삶은 달걀 샐러드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폐하”라 불리며 실제로 남태평양의 몇몇 야만인이 사는 작은 섬의 왕을 자처하던 한 프랑스인을 두고 경멸에 찬 반어의 태도를 꾸며 지었다. 그는 예쁜 정부(情婦)와 함께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그녀가 해수욕을 하려고 바닷가를 가로지를 때면 어린 사내아이들이 “왕비 만세!” 하고 그녀를 맞이했으니, 그녀가 자잘한 은화를 소나기처럼 뿌려 그들에게 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재판장과 변호사는 그녀를 못 본 척하기까지 했고, 혹시 자기들 벗 가운데 누가 그녀를 쳐다보기라도 하면, 그녀는 한낱 가게 점원 아가씨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러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오스텐데에서는 그자가 왕실 전용 해수욕 마차를 썼다던데요.”

“그야 못 쓸 것도 없지요. 이십 프랑이면 빌리는 겁니다. 그런 것이 마음에 드신다면 당신도 직접 빌리실 수 있어요. 아무튼 내가 확실히 아는 바로는, 그 작자가 거기 있을 때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가, 자기는 무슨 무언극의 왕자 따위는 알은체하지 않는다는 답을 되돌려 받았답니다.”

“저런, 그것참 흥미롭군요! 세상에는 별 괴상한 사람들이 다 있어요, 정말이지!”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죄다 사실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사무 변호사와 재판장과 변호사가, 자기들이 이른바 “사육제”라 부르던 행렬이 지나갈 때 그토록 심사가 뒤틀려, 자기들 벗인 수석 급사장도 잘 알아들을 만한 분개를 소리 내어 내뱉은 데에는, 함께 묵는 많은 이들에게 자기들이야말로 그저 점잖긴 하나 다소 상스러운, 잔돈푼을 그리 헤프게 뿌리는 저 왕과 왕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만 비친다는 생각에서 오는 원한도 있었다. 그 급사장은 진짜는 아닐지언정 후한 그 폐하들에게 마땅한 예를 갖추어야 하는 처지였으나, 그들의 주문을 받으면서도 멀찍이서 오랜 단골들에게 은근하면서도 뜻이 통하는 눈길을 던지곤 했다. 아마 거기에는, 자기들이 실제보다 못한 존재로 잘못 여겨지는데도 실은 더 세련된 사람들임을 밝힐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같은 원한도 얼마쯤 섞여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어느 실업계 거물의, 폐병 들고 방탕한 아들, 날마다 새 양복을 차려입고 단춧구멍에 난초를 꽂은 채 나타나, 점심에 샴페인을 마시고는, 창백하고 무표정하게, 입가에 온전한 무관심의 미소를 띠고 호텔을 어슬렁어슬렁 나가, 카지노에서 바카라 판에 엄청난 돈을, 사무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체념한 낯빛으로 말했듯 “잃어도 될 형편이 못 되는” 돈을 날려버리는 그 젊은 “한량”을 두고 “썩 좋은 표본”이라 일컬으며 그 말에 힘을 주었다. 재판장의 아내는 그 “골칫거리” 청년이 부모의 흰머리를 슬픔 속에 무덤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믿을 만한 소식통에서” 들었다고 했다.

한편으로 변호사와 그 벗들은, 어딜 가든 온 식솔을 다 데리고 다니는 어느 부유한 늙은 귀부인을 화제 삼아 빈정거림을 그칠 줄 몰랐다. 사무 변호사와 재판장의 아내들은 식사 때 식당에서 그녀를 볼 적마다 안경을 치켜올리고 무례한 눈길로 그녀를 뜯어보았으니, 그 눈길은 마치 거창한 이름을 달았으되 미심쩍은 겉모습을 한 어떤 요리를, 꼼꼼히 살펴본 끝에 헛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거만하게 손을 내젓고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려야 마땅한 요리를 보듯, 그토록 세심하고 미심쩍은 눈길이었다.

그들이 이런 처신으로 보이려 한 것은 분명, 설령 세상에 자기들에게 없는 것이 있다 한들, 이 경우에는 그 늙은 귀부인이 누리는 어떤 특권들과 그녀와 아는 사이라는 특전이 그러했는데, 그것은 자기들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기를 원치 않아서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정말로 자기들의 심정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데 성공해 있었다. 그리고 낯선 삶의 형식에 대한 온갖 욕망과 호기심을, 새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 싶은 온갖 바람을 억눌러버린 것이야말로(여자들의 경우에는 그 자리를 꾸며낸 경멸과 인위적인 명랑함이 대신했다), 자기들의 불만에 만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스스로에게 끝없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껄끄러운 결과였으니, 그 점에서 그들은 크게 가엾이 여길 만했다. 그러나 호텔의 다른 모든 이들도 분명 비슷한 식으로 처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처신이 다른 형태를 띠었을 뿐, 그리고 자만심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주입된 어떤 원칙과 마음의 습관에, 낯선 종류의 삶에 섞여드는 짜릿한 기쁨을 제물로 바치면서. 물론 그 늙은 귀부인이 홀로 틀어박힌 소우주의 공기는, 사무 변호사와 재판장의 아내들이 무기력한 노여움에 차 재잘거리며 앉아 있던 무리의 공기처럼 독한 씁쓸함으로 오염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참으로 섬세하고 예스러운 향내로 배어 있었으나, 그렇다 해도 인위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왜냐하면 마음속으로 그 늙은 귀부인은, 새 벗들의 알 수 없는 호의를 끌어당기고 자기에게 붙들어 매는 데에서(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새로이 꾸미는 데에서), 오직 제 세계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며, 제 세계가 온갖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상이니 “바깥 사람들”의 무지한 경멸쯤은 무시해도 좋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서 얻는 즐거움에는 전혀 없는 어떤 매력을 아마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이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만약 발베크 그랑 호텔에 남몰래 도착한다면, 검은 나사 드레스에 구식 보닛 차림으로, 흔들의자 깊숙이 앉아 고개를 들고 “저런 허수아비 좀 보게!” 하고 중얼거릴 어느 늙은 난봉꾼의 입가에, 혹은 더 나쁘게는, 재판장처럼 희끗희끗한 구레나룻 사이에 발그레한 안색과 그녀가 보기 좋아하는 반짝이는 두 눈을 간직한 어느 명망가의 입가에 웃음을 자아내리라고, 그리고 그 명망가는 그토록 진기한 현상에 곧바로 부부의 안경이라는 확대경을 들이대리라고. 그리고 아마도, 몇 분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물속에 처음 머리를 담글 때처럼 못지않게 무서운 그 첫 몇 분에 대한, 차마 털어놓지 못한 두려움에서였을 것이다, 이 늙은 귀부인이 하인 하나를 미리 앞세워 보내, 제 여주인의 신분과 습관을 호텔에 알리게 하고, 지배인의 인사말을 짧게 끊고는, 오만보다 소심함이 더 짙게 밴 무뚝뚝함으로 제 방을 향해 곧장 나아간 것은. 그 방에는, 호텔 창을 드리운 커튼 대신 자기 커튼을 걸고, 자기 병풍과 사진들을, 그러지 않았다면 스스로 맞추어야 했을 바깥세상과 자기 사이에 그토록 효과적으로 세워두어 사생활의 방벽을 이루었으니, 그리하여 여행을 한 것은 그녀 자신이라기보다 그녀가 편안히 머물러온 제 집이었던 셈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한편으로 호텔의 종업원들 및 그 실내장식가들 사이에, 자기 대신 이 온갖 낯선 인간 무리와 부딪치는 충격을 받아내고 여주인 둘레에 낯익은 공기를 지켜주는 하인들을 놓아두고, 자기와 다른 손님들 사이에 자기 편견들을 세워두고서, 자기 벗들이라면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무례를 범하든 말든 개의치 않은 채, 벗들과의 서신으로, 추억으로, 자기 지위와 몸가짐의 품격과 예절의 능란함에 대한 은밀한 자각과 확신으로, 여전히 제 세계 안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 마차로 드라이브를 나가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면, 그녀 뒤를 따르며 무릎덮개를 든 하녀와 그녀 앞을 서서 가는 시종은, 마치 대사관 문 앞에서 그녀가 속한 나라의 깃발을 내걸고, 낯선 땅에서 그녀에게 치외법권의 특전을 보장해주는 보초병들 같았다. 그녀는 우리가 도착한 이튿날 오후 늦게야 방에서 나왔으므로, 우리는 식당에서 그녀를 보지 못했는데, 지배인은 우리가 그곳에 낯선 사람들인지라, 마치 하사가 신병 한 무리를 옷 맞추러 재단장에게 데려가듯, 우리를 제 날개 아래 거두어 그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잠시 뒤에, 무명이나 아주 유서 깊은 브르타뉴 가문 출신의 시골 신사와 그의 딸, M. 드 스테르마리아와 Mlle. 드 스테르마리아를 보게 되었으니, 그들의 탁자가, 그들은 외출했다가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짐작 아래 우리에게 배정되었던 것이다. 발베크에는 그저 그 근방에 아는 몇몇 시골 유지들을 만나러 온 그들은, 호텔 식당에서, 받아들인 초대며 치른 방문으로 하여,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만큼의 시간만을 보냈다. 그들을 온갖 인간적 호의로부터, 둘레에 앉은 낯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일로부터 온전히 지켜준 것은 그들의 뻣뻣함이었으니, 그 낯선 이들 가운데서 M. 드 스테르마리아는, 전에 본 적도 없고 다시는 볼 일도 없는, 그리고 우리 “몫”의 냉육 닭고기와 기차의 우리 구석 자리를 그들의 습격에서 지키는 것 말고는 아무 관계도 생각할 수 없는 동승객들 틈에서, 기차역 간이식당에서 우리가 짓곤 하는 그런 얼음장 같고 골똘하고 서먹하고 무뚝뚝하고 깐깐하고 미심쩍어하는 낯빛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점심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우리는 방금 도착한 M. 드 스테르마리아의 지시로 자리를 비워달라는 청을 받았으니, 그는 우리에게는 사과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채, 우리가 듣는 데서 수석 급사장에게 “이런 착오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탁자를 차지했다는 것이 그에게는 역겨웠던 것이다.

그리고 한 젊은 여배우를, 그녀는 오데옹에서 이따금 맡은 배역보다는 세련된 옷차림과 재치 있는 입담과 독일제 자기 수집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는데, 그 여배우와, 그녀를 위해 교양까지 갖춘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젊은 애인, 그리고 그 무렵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던 두 귀족 자제로 하여금, 따로 작은 무리를 이루어, 오직 함께만 여행하고, 발베크에 있을 적에는 모두가 식사를 마친 뒤 아주 늦게야 점심을 들러 내려오고, 온종일 자기들 거실에서 카드놀이를 하며 지내게 만든 그 감정 속에는,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어떤 심술도 들어 있지 않았고, 다만 그들이 어떤 종류의 대화에, 잘 사는 삶의 어떤 세련됨에 대해 길러온 취향의 요구가 들어 있었을 뿐이니, 그 취향 때문에 그들은 오직 자기들끼리만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고, 그 비의(秘義)에 입문하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으리라. 만찬 자리에서든 카드판에서든, 저마다 맞은편에 앉은 식사 동무나 짝패 속에, 아직 드러나지 않고 쓰이지 않은 채 잠재된 어떤 지식이 있어, 파리의 그토록 많은 집에 널린 잡동사니를 진짜 중세나 르네상스의 “작품”으로 알아볼 줄 알고, 화제가 무엇이든 자기들 무리 전체에 공통된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어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가려낼 줄 아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아마도 이 네 벗이 무엇보다도 잠겨 있고 싶어 하던 그 특별한 종류의 삶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오직 식사나 놀이의 전반적인 침묵 속에 이따금 던져지는 드물고 우스운 한마디로, 혹은 젊은 여배우가 점심이나 포커를 위해 새로 차려입은 곱고 산뜻한 드레스로써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들을 속속들이 외우고 있는 습관의 체계 속에 잠기게 함으로써, 그것은 그들을 둘레에서 벌어지는 삶의 신비로부터 지켜주기에 넉넉했다. 긴 오후 내내, 바다는 그들의 눈앞에, 마치 매력적인 색조의 화폭이 부유한 독신 남자의 집 벽에 걸리듯 그렇게 걸려 있을 따름이었고, 오직 “판”과 “판” 사이의 짬에, 딱히 할 일이 없어진 놀이꾼 하나가 거기에 눈을 들어 날씨나 시각의 낌새를 살피고, 다른 이들에게 차가 준비되었다고 일러줄 뿐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그들은 호텔에서 저녁을 들지 않았으니, 그 호텔에서는 감춰진 전기의 샘이 큰 식당을 빛으로 넘치게 하여, 그것은 흡사 거대하고 놀라운 수족관이 되었고, 그 유리벽 너머로는 발베크의 노동하는 사람들, 어부들과 상인들의 식솔들이 바깥 어둠 속에 보이지 않게 모여들어, 안쪽 황금빛 소용돌이 위로 잔잔히 떠도는 그 안 사람들의 호사스러운 삶을 지켜보려고 얼굴을 바싹 대었으니,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낯선 물고기나 연체동물의 삶만큼이나 기이한 것이었다(이것은 중대한 사회 문제이다. 저 유리벽이 언제까지나 잔치를 벌이는 그 놀라운 생물들을 지켜줄 것인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굶주린 눈으로 지켜보던 그 어두운 무리가 언젠가 쳐들어와 그들을 수족관에서 건져내 잡아먹지는 않을 것인지). 그러는 동안, 어쩌면 그 지켜보는 무리 가운데, 어둠 속에 미동도 없이 형체도 없는 덩어리로, 어떤 작가나 인간 어류학도가 있어, 늙은 여성 괴물들의 턱이 한 입 음식 위로 다물렸다가 이윽고 그것을 삼키는 것을 지켜보며, 그것들을 인종에 따라, 타고난 특징에 따라, 또한 획득된 특징에 따라 분류하며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획득된 특징이란, 이를테면 어느 늙은 세르비아 부인의 입가 돌기가 큰 바닷물고기의 그것과 같아지게 하는 것이니, 어릴 적부터 포부르 생제르맹의 맑은 물에서 헤엄쳐온 까닭에, 그녀가 온 세상 사람이 다 보는 앞에서 라 로슈푸코처럼 샐러드를 먹는 것이었다.

그 시각이면 만찬용 재킷을 걸친 세 젊은이가, 여느 때처럼 늦는 젊은 여자를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윽고 그녀는, 거의 언제나 다른 드레스에, 애인의 어떤 특별한 취향을 흐뭇하게 해주려고 고른 여러 스카프 가운데 하나를 두른 채, 층계참에서 승강기를 부른 뒤, 마치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인형처럼 그 안에서 나타나곤 했다. 그러고는 네 사람 모두, 발베크 땅에 심어진 “팰리스”라는 국제적 현상이 여기서는 먹을 만한 음식으로보다 물질적 호사로 꽃피었다고 여겼기에, 마차에 우르르 올라타, 한 마일쯤 떨어진, 평판이 좋은 작은 식당으로 저녁을 들러 갔고, 거기서 요리사와 직접 자기들 식사의 구성과 갖가지 요리의 조리법을 두고 끝없는 논의를 벌였다. 마차를 몰고 가는 동안, 발베크를 벗어나 이어지는 사과나무 늘어선 길은 그들에게, 파리에 있는 자기들 집에서 카페 앙글레나 투르 다르장까지를 갈라놓던 거리와 어둠 속에서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 그저 가로질러야 할 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 끝에 이르러서야 그 멋들어진 작은 식당에 닿을 수 있었고, 거기서, 젊은이의 벗들이 그가 그토록 맵시 있게 차려입은 정부를 두었다고 부러워하는 동안, 그 여자의 스카프들은 그 작은 일행 둘레에 향기롭고 하늘거리는 베일처럼 펼쳐졌으나, 그것은 그들을 바깥세상과 갈라놓는 베일이기도 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