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텔 생활은, 그곳에 벗이 하나도 없었던 탓에 따분했을 뿐 아니라, 프랑수아즈가 벗을 하도 많이 사귄 탓에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 벗들이 이런저런 면에서 우리 형편을 한결 수월하게 해 주었으리라 여길 법도 하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하층민들이란, 프랑수아즈에게 겨우겨우 아는 사람으로 대접받는 데조차 큰 애를 먹었고,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예의를 갖춘다는 조건을 채우지 못하는 한 아예 그럴 수조차 없었으나, 일단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유일하게 “한몫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오랜 세월 내려온 그녀의 법도는, 그녀가 주인들의 벗에게는 조금도 매인 몸이 아니며, 바쁠 때라면 할머니를 찾아온 부인 앞에서라도 서슴없이 문을 닫아 버려도 좋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제 나름의 벗들, 곧 그녀가 굽힐 줄 모르는 친밀함 속으로 받아들인 하층민 가운데 가려 뽑은 몇몇에게만은, 그녀의 처신이 더없이 미묘하고 더없이 엄정한 예법에 따라 규율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수아즈는 커피점의 사내와, 어느 벨기에 부인의 바느질일을 해 주는 어린 하녀와 안면을 트고 나서는, 더 이상 오찬 직후에 곧장 올라와 할머니의 채비를 갖추어 드리지 않고 한 시간 늦게 올라왔으니, 커피점 사내가 제 가게에서 그녀에게 커피나 탕약을 한 잔 타 주고 싶어 했거나, 그 하녀가 바느질하는 것을 구경하러 오라고 청했기 때문이요, 그 어느 쪽을 거절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자, 해서는 안 될 일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어린 바느질 하녀에게는 각별한 마음을 써야 마땅했으니, 그 아이는 고아로서 남의 손에 자랐고 아직도 이따금 며칠씩 쉬러 그들에게 가곤 했다. 그 아이의 유별난 처지는 프랑수아즈의 연민을, 아울러 자애로운 경멸을 자아냈다. 가족이 있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작은 집이 있으며, 그 집에 딸린 밭에서 오라비가 소를 치는 그녀가, 그토록 뿌리 뽑힌 존재를 어찌 제 대등한 상대로 여길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 아이가 성모 승천 축일에 은인들을 찾아뵙도록 허락받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프랑수아즈는 줄곧 이렇게 되뇌었다. “저 앤 정말 사람을 웃긴다니까! 글쎄 ‘승천 축일엔 집에 갈까 해요’ 이러잖아. ‘집’이라니! 제 집도 아닌 데다, 어디서 굴러온 앨 거둬 준 사람들 아니냐고. 그런데도 저 앤 꼭 제 집이라도 되는 양 ‘집’이라 그런다니까. 가여운 것! 집이 있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니 얼마나 딱한 신세람.” 그래도 프랑수아즈가 다른 손님들이 호텔로 데려온 몸종들, 곧 그녀와 함께 “하인용” 구역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의 화사한 레이스 모자와 훤한 옆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몰락한 형편”이나 어떤 정 때문에 할머니의 말벗 노릇을 하게 된 고귀한 태생의 마님쯤으로 여겼을 법한 그런 몸종들하고만 어울렸더라면, 한마디로 프랑수아즈가 호텔에 딸리지 않은 사람들만 알고 지냈더라면, 큰 탈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시중도 들어 줄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녀가 그것을 막을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무슨 형편에서든, 설령 그녀가 모르는 새라도, 그들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 시중을 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포도주 담당 급사 가운데 하나와, 주방의 어느 사내와, 그리고 우리 층의 객실 담당 우두머리 하녀와도 연을 맺었다. 그 결과 우리 일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프랑수아즈는, 도착하던 날, 아직 아무도 모르던 때에는, 할머니와 내가 감히 부를 엄두도 못 낼 시각에 사소한 일 하나에도 온갖 초인종을 죄다 울려 대다가, 우리가 조심스레 나무라기라도 하면 “아니, 우리가 그만한 값은 치르고 있잖아요?” 하고, 마치 제가 그 값을 치르기라도 할 것처럼 대꾸하던 그녀가, 요즈음에는, 우리의 앞날의 안락에 좋은 조짐이라 여겨졌던 주방의 한 인물과 벗이 된 뒤로는, 할머니나 내가 발이 시리다고 하소연해도, 지극히 정상적인 시각인데도 감히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으니, 화로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하는 탓에 언짢아할 거라거나, 하인들의 저녁 식사를 방해하는 탓에 성가셔할 거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마디를 내뱉었으니, 그것을 입에 올리는 애매한 투에도 불구하고 뜻만은 분명하여 우리를 여지없이 잘못한 편으로 몰아넣었다. “실은 말이죠…” 우리는 더 우기지 않았으니, 스스로에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다른 한마디를 불러들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게 좀…!” 그리하여 결국은 이런 셈이 되었으니, 프랑수아즈가 물을 데워 줄 사내와 벗이 되어 버린 탓에 우리는 이제 더운물 한 방울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도, 할머니 때문이면서도 할머니를 통해서, 하나의 연을 맺게 되었다. 어느 아침 할머니와 빌파리지 부인이 문간에서 딱 마주쳐,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인데, 그에 앞서 먼저 놀라움과 망설임의 몸짓을 주고받고, 뒷걸음질과 미심쩍음의 동작을 취하다가, 마침내 반가움과 인사의 탄성을 내지르고서야 그리되었으니, 마치 몰리에르의 몇몇 희곡에서 무대 양편에서 몇 걸음 떨어진 채 저마다 긴 독백을 늘어놓던 두 배우가, 아직 서로를 보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가, 문득 상대를 알아보고는 제 눈을 믿지 못해 하던 말을 뚝 그치고, 끝내는 (그동안 코러스가 대사를 이어 가는 가운데)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얼싸안는 것과 같았다. 빌파리지 부인은 눈치가 빨라, 첫인사를 마치자 할머니를 홀로 두고 물러가는 시늉을 했으나, 할머니는 점심때까지 남아 이야기를 나누자고 우겼다. 그 친구가 어떻게 하여 우리보다 편지를 더 일찍 방으로 올려 받는지, 또 어떻게 그토록 맛있게 구운 것들을 얻는지 몹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빌파리지 부인은 대단한 미식가여서, 우리에게 나오는 식사를, 할머니가 여전히 세비녜 부인을 인용하여 “배를 곯려 죽일 만큼 굉장하다”고 이르던 그 호텔 주방을 아주 형편없이 여겼다.) 그리하여 후작부인은 제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날마다 우리 식당 탁자에 잠시 앉으러 오는 습관을 들였는데, 우리더러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조금도 격식을 차리지도 말라고 다잡곤 했다. 기껏해야 우리는, 흔히 그러하듯, 오찬을 마친 뒤에도 그 방에 남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으니, 나이프들이 구겨진 냅킨들 사이 식탁보 위에 어질러진 채 나뒹구는 저 지저분한 순간에도 그러했다. 나로 말하자면, (발베크를 만끽할 수 있도록) 내가 대지의 맨 끝 곶에 와 있다는 관념을 지켜 내려고, 애써 더 먼 곳으로 눈길을 두어 오직 바다만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보들레르가 묘사한 효과들을 찾으려 했고, 우리 탁자로는 오직, 거기에 무슨 거대한 물고기, 어떤 바다 괴물이 놓인 날에만 시선을 떨구었다. 그 물고기는 나이프며 포크와는 달리, 대양이 처음으로 생명으로 우글거리기 시작한 저 원시의 시대, 킴메르인들의 시절과 같은 때의 것이었으니, 그 몸뚱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등뼈와 푸른 핏줄, 붉은 핏줄로 이루어졌으되, 자연이 어떤 건축의 설계에 따라, 마치 심해의 여러 빛깔로 물든 대성당처럼 지어 놓은 것이었다.
이발사가, 각별한 공경과 정성을 다해 면도해 주곤 하던 어느 장교가 방금 가게에 들어선 손님을 알아보고는 잠시 멈춰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 두 사람이 같은 계급의 신사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해하며, 비누 그릇을 가지러 가면서 절로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듯이, 왜냐하면 그는 제 가게에서 한낱 이발소의 속된 일상에 사교적인, 아니 귀족적이라 해도 좋을 즐거움이 보태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에메는 빌파리지 부인이 우리에게서 오랜 벗을 찾아낸 것을 보고, 손님을 저희끼리 두고 물러날 줄 아는 여주인 특유의, 자랑스러우면서도 겸손하고 짐짓 사려 깊은 바로 그 미소를 띤 채 우리 핑거볼을 가지러 갔다. 그는 또한, 제 자애로운 식탁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행복한 한 쌍을, 참견 없이 흐뭇이 바라보는 흐뭇하고 다정한 아버지를 떠올리게도 했다. 게다가 에메가 기꺼워하는 데에는 그저 작위 있는 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 이는 프랑수아즈와는 딴판이었다. 프랑수아즈 앞에서는 아무개 백작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그 얼굴이 어두워지고 말투가 무뚝뚝하고 날카로워졌는데, 이 모두가 뜻하는 바는 그녀가 귀족을 에메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떠받든다는 것이었다. 다만 프랑수아즈에게는 남에게서라면 더없이 몹쓸 흠으로 나무랐을 그 성질이 있었으니, 곧 그녀는 자존심이 셌다. 그녀는 에메가 속한 저 붙임성 있고 서글서글한 족속이 아니었다. 그런 족속은 다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되 어쨌거나 새롭고 신문에는 나지 않은 소식 하나를 일러 주면 강렬한 기쁨을 느끼고 또 드러내 보인다. 프랑수아즈는 놀라는 기색을 보이기를 마다했다. 루돌프 대공이, 그녀로서는 그런 이가 세상에 있었으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짐작하지 못했으련만, 세간의 통설과는 달리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팔팔하더라”고 그녀가 듣는 데서 알렸더라도, 그녀는 그저 “네” 하고, 마치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대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고분고분 주인이라 부르며 자기를 거의 길들이다시피 한 우리, 바로 그 우리의 입에서조차 귀족의 이름을 들으면 발끈 치미는 성을 억누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태어난 집안이 제 마을에서 남부럽지 않고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 누리던 존중이 위협받을 일이라곤 오직 그 귀족들 탓밖에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그런 귀족들의 저택에서라면, 에메 같은 이는 어릴 적부터 하인으로 들어앉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들의 적선으로 자라났을 터였다. 그러니 빌파리지 부인은 프랑수아즈에게, 우선 제 귀족 신분부터 용서를 빌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지체 높은 신사 숙녀들의 재주, 아니 실은 유일한 소임인 것이다. 프랑수아즈는, 주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토막말들을 끊임없이 주워듣고는 그로부터 곧잘 그릇된 추론을 이끌어 내는, 마치 인류가 대체로 짐승들의 습성을 두고 그러하듯 하는 하인들의 흔한 버릇을 좇아, 늘 누군가가 우리를 “저버렸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는데, 그런 결론에 그녀가 쉬이 이른 것은, 어쩌면 우리에 대한 지나친 애정 때문이라기보다 우리에게 언짢은 소리를 하는 데서 얻는 재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빌파리지 부인이 우리에게, 또한 그녀 자신에게 베푼 그 끝없는 자잘한 배려들을 틀림없이 확인하고 나자, 프랑수아즈는 그녀가 후작부인인 것을 용서해 주었고, 그녀가 후작부인이라는 이유로 여태 그녀를 자랑스러워하기를 그친 적이 없던 터라, 그때부터는 그녀를 우리의 다른 어떤 벗보다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덧붙여 두거니와, 다른 누구도 우리에게 그토록 한결같이 살갑게 굴려고 애쓰지 않았다. 할머니가 빌파리지 부인이 읽던 책을 두고 한마디 하거나, 누군가 우리 벗에게 방금 보내온 과일을 탐냈다고 말하기만 하면, 한 시간이 못 되어 하인이 그 책이나 과일을 우리 방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다음번에 그녀를 만나면, 우리의 사례에 답하여 그녀는 그저, 제 선물의 하찮음에 대한 무슨 핑곗거리를 그것이 쓰일 무슨 특별한 용도에서 찾으려는 듯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여긴 신문이 하도 늦게 와서, 뭐라도 읽을거리가 있어야지요.” 또는 “바닷가에서는 아무래도 틀림없이 믿을 만한 과일을 두는 편이 언제나 현명하답니다.” “그런데 두 분이 굴 드시는 건 도무지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그녀가 우리에게 말했으니, 그 순간 내가 느끼던 역겨움을 한층 돋우었다. 굴의 살아 있는 살점은, 바닷가에 밀려온 해파리의 끈적임이 내게 발베크의 해변을 더럽히던 것보다도 더 나를 진저리 나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 굴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아, 우리 몸종이 제 편지를 가지러 갈 때 두 분 편지도 함께 가져오게 이르지요. 아니, 따님이 날마다 편지를 쓴다고요?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 서로 편지를 쓰신답니까?” 할머니는 잠자코 있었으나, 그 침묵은 경멸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해도 좋으리라.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때면 세비녜 부인의 말을 되뇌던 할머니가 아니던가. “편지를 한 통 받고 나면 나는 곧장 또 한 통을 바라니, 그것이 올 때까지는 숨도 쉴 수 없어라. 내 말뜻을 알아들을 만한 이는 드무니라.”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빌파리지 부인에게 이런 결론을 들이댈까 봐 겁이 났다. “나는 가려 뽑힌 소수에 드는 이들을 찾고, 그 나머지는 피하노라.” 할머니는 어제 빌파리지 부인이 우리에게 보내 준 과일에 대한 칭찬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과연 그 과일이 어찌나 좋던지, 지배인은 우리가 제 공식 대접을 소홀히 한 데서 인 시샘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렇게 말했더랬다. “저도 손님과 같습니다. 저는 다른 어떤 후식보다 과일에 사족을 못 씁니다.” 할머니는 벗에게, 호텔에서 나오는 과일이 대개 형편없던 터라 그 과일이 한결 더 맛있었노라고 말했다. “저는요,” 하고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세비녜 부인처럼, 우리가 별안간 나쁜 과일이 먹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파리에 주문해야 할 판이라고까지는 말 못 하겠어요.” “아, 그럼요, 물론이지요, 세비녜 부인을 읽으시는군요. 오시던 날 그분 서한집을 들고 계신 걸 봤답니다.”(그녀는 문간에서 부딪치기 전까지는 호텔에서 할머니를 공식적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한데 좀 지나치다고 여겨지지 않으세요, 딸을 향한 그 끊임없는 걱정 말이에요? 너무 자주 들먹여서 도무지 진심 같지가 않아요. 자연스럽지가 못하죠.” 할머니는 어떤 논쟁도 부질없으리라 느꼈고, 자신이 아끼는 것들을 그것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세르장 부인 회상록을 손가방으로 덮어 감추었다.
프랑수아즈가 “한낮”이라 부르던 그 시각에, 곧 그녀가 고운 모자를 쓰고 온갖 공경에 둘러싸인 채 “하인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그 시각에 빌파리지 부인이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인은 그녀를 세워 놓고 우리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프랑수아즈는 후작부인의 전언을 우리에게 옮기면서, “그분이 저더러 이러시더라고요, ‘꼭 그분들께 안부 여쭤 드리게’, 이러셨어요” 하며, 자기가 한 자 한 자 그대로 옮기고 있다고 여기는 빌파리지 부인의 목소리를 흉내 냈으나, 실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또는 성 요한이 예수의 말을 왜곡하는 것 못지않게 그 말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프랑수아즈는, 당연하게도, 이런 배려에 깊이 감동했다. 다만 그녀는 할머니의 말은 믿지 않았으니, 빌파리지 부인이 젊었을 적에 어여뻤다고 할머니가 우리에게 일러 주었을 때, 그것을 제 계급의 이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이려니(부자들이란 늘 이렇게 서로를 감싸 주게 마련이니) 여겼던 것이다. 하기야 그 어여쁨의 자취라곤 이제 실낱같은 흔적밖에 남지 않았고, 프랑수아즈보다 훨씬 더 예술가다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 허물어진 아름다움을 되살려 낼 수는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나이 든 여인이 한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아보려면, 그 얼굴의 선 하나하나를 뜯어볼 뿐 아니라 풀이할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잊지 말고 물어봐야겠구나, 게르망트가와 무슨 연이 닿아 있다는 내 생각이 결국 옳은 게 아닌지 말이다.”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몹시 분개했다. 하나는 경험이라는 저열하고 부끄러운 문을 통해, 다른 하나는 상상이라는 황금의 문을 통해 내 의식 속으로 들어온 두 이름을, 어찌 하나의 공통된 뿌리가 잇고 있다고 믿으라는 말인가?
우리는 요 며칠 사이 여러 차례, 위풍당당한 마차를 타고 우리 곁을 지나가는 뤽상부르 대공비를 보았는데, 그녀는 키가 크고 적갈색 머리에 아름다웠으며 코가 조금 도드라졌고, 몇 주째 인근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녀의 마차가 호텔 앞에 멈추자 하인 하나가 들어와 지배인에게 말을 건네고는, 마차로 되돌아갔다가, 놀랍기 그지없는 한 아름의 과일을(그것은 마치 저 만(灣)처럼 서로 다른 철의 것들을 한 바구니에 아울러 담고 있었다) 들고 다시 나타났으니, 거기엔 “뤽상부르 대공비”라 적힌 카드가 딸려 있었고 그 위에 연필로 몇 마디가 갈겨 적혀 있었다. 대체 여기 남몰래 묵고 있는 어느 왕가의 나그네에게 저 청록빛 자두들이, 바로 그 순간의 에워 흐르는 바다처럼 빛나고 둥근 저 자두들이, 시든 가지에 다닥다닥 매달려 마치 가을의 화창한 하루 같던 저 투명한 포도송이가, 천상의 군청빛을 띤 저 배들이 바쳐진 것이었을까? 대공비가 예방하려 한 상대가 할머니의 벗일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튿날 저녁 빌파리지 부인은 우리에게 그 포도송이를 보내왔으니, 서늘하고 물기 어린 황금빛이었다. 자두들과 배들도 함께였는데, 우리 눈에 익은 그것들이었으나, 자두들은 우리 저녁 식사 시각의 바다처럼 칙칙한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고, 배들의 군청빛 겉면에는 발그레한 구름 몇 조각의 형상이 떠돌고 있었다. 며칠 뒤 우리는 아침마다 해변에서 열리던 교향악 연주회에서 나오다가 빌파리지 부인과 마주쳤다. 내가 듣고 있던 음악이(로엔그린의 전주곡, 탄호이저의 서곡 따위가) 더없이 드높은 진리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굳게 믿은 나는, 될 수 있는 한 나 자신을 드높여 그것들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려 애썼고, 그것들을 헤아리려고 나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끌어내고 있었으며, 그 무렵 내 본성 가운데 가장 좋고 가장 깊은 것을 죄다 그것들에 부여하고 있었다.
자, 우리가 음악회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와 나는 해안로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빌파리지 부인과 몇 마디를 나누었는데, 부인은 우리를 위해 호텔에 크로크무슈와 크림에그 한 접시를 시켜 두었다고 일러 주었다. 그때 나는 저 멀리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뤽상부르 대공비를 보았다. 대공비는 양산에 반쯤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 자세는 크고 경이로운 그녀의 자태에 살짝 기운 선을 주어, 제정기에 아름다웠던 여인들이 사랑하던 그 아라베스크 곡선을 그리게 했다. 그 여인들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등을 활처럼 휘며 허리를 옴폭 들이고 다리를 굽혀, 마치 몸을 대각선으로 꿰뚫었으리라 여겨지는 보이지 않는 줄기의 뻣뻣함을 비단 스카프처럼 부드럽게 감아 흐르게 할 줄 알았다. 대공비는 아침마다 해변을 한 바퀴 거닐러 나왔는데, 그 시각은 다른 사람들이 목욕을 마치고 점심을 들러 집으로 올라갈 무렵과 거의 같았고, 그녀의 점심은 1시 반이 되어서야 나왔으므로, 배고픈 해수욕객들이 이글거리는 ‘해안로’를 텅 빈 사막처럼 버리고 떠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자기 별장으로 돌아갔다. 빌파리지 부인은 할머니를 소개했고 나도 소개하려 했으나, 먼저 내 이름을 물어야 했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애초에 내 이름을 안 적이 없거나, 알았더라도 할머니가 딸을 누구에게 시집보냈는지를 오래전에 잊어버렸을 것이다. 내 이름을 막상 듣자 빌파리지 부인은 적잖이 감명받은 듯했다. 그러는 동안 뤽상부르 대공비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후작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사이 할머니와 나에게로 몸을 돌려 다정한 눈길을 보냈는데, 그것은 우리가 ‘유모’와 함께 나온 아기에게 미소를 지을 때 그 미소에 담는, 입맞춤의 싹 같은 것이었다. 실로 대공비는 자기가 우리보다 높은 세계의 주민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 나머지, 우리 사이에 실제로 놓인 거리를 잘못 가늠했던 모양이다. 조절을 그르친 탓에 그녀는 눈을 어찌나 자애롭게 빛냈던지, 나는 그녀가 곧 손을 내밀어 우리를 쓰다듬을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우리가 두 마리 얌전한 짐승이라도 되어 동물원 우리의 창살 사이로 그녀에게 머리를 내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마침 그 순간, 우리에 갇힌 짐승과 불로뉴 숲이라는 이 관념이 뚜렷하게 확증되었다. 마침 해변이, 떠돌아다니며 소리치는 장수들로, 과자며 사탕이며 비스킷을 외쳐 파는 장수들로 붐비는 시각이었다. 우리에게 애정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 잘 몰라, 대공비는 곁을 지나가던 장수를 불러 세웠다. 그에게는 오리에게나 던져 주는 그런 호밀 과자 한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공비는 그것을 받아 들고 내게 말했다. “할머니께 드리렴.” 그러면서도 그녀가 그것을 내민 상대는 나였다.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네가 직접 드리려무나!” 하고 말했는데, 나와 짐승들 사이에 중개자가 없어야 내 기쁨이 그만큼 온전해지리라 여긴 것이었다. 다른 장수들이 다가오자, 그녀는 그들이 가진 것을 모조리 봉지에 싸서 내 주머니에 가득 채워 넣었다. 사탕과자며 스펀지케이크며 막대사탕이며. “너도 좀 먹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할머니께도 좀 드리렴.” 그러고는 어디든 그녀를 따라다니는, 붉은 새틴 옷을 입은 어린 흑인 시동을 시켜 장수들에게 값을 치르게 했는데, 그 아이는 한동안 해변의 큰 구경거리였다. 이윽고 그녀는 빌파리지 부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우리에게도 손을 내밀었는데, 우리를 자기 벗을 대하듯, 아는 사람으로 대접하고 자기 몸을 우리 손이 닿는 데까지 낮추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수준을 피조물의 등급에서 그리 낮게 잡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와 우리가 대등하다는 것을 대공비는 할머니에게, 어린 소년에게 마치 어른을 대하듯 작별 인사를 건넬 때 여인이 짓는 그런 다정하고 자애로운 미소로 나타냈으니 말이다. 진화의 기적적인 도약으로, 할머니는 이제 오리도 영양도 아니라, 영국풍을 좋아하는 스완 부인이라면 ‘베이비’라 불렀을 존재가 이미 되어 있었다. 마침내 우리 모두에게 작별을 고한 뒤, 대공비는 볕에 달궈진 ‘해안로’를 따라 다시 거닐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휘감은 뱀처럼 그 눈부신 자태를 굽이지게 하며, 뤽상부르 부인이 펼치지 않은 채 손에 든, 푸른 무늬가 든 흰 양산과 한데 얽혀서. 그녀는 내가 처음 만난 왕족이었다. 처음이라 말한 것은, 엄밀히 따지면 마틸드 대공비는 셈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왕족은, 나중에 차차 보게 되겠지만, 그 너그러움으로 나를 못지않게 놀라게 하게 된다. 평민과 왕 사이의 다정한 중개자인 우리 대귀족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한 가지 방식이 이튿날 내게 드러났으니, 빌파리지 부인이 이렇게 전한 것이다. “대공비께서 자네를 아주 매력 있게 보셨다네. 그분은 더없이 건전한 판단력과 더없이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지. 흔한 왕비니 뭐니 하는 이들과는 다르네! 정말로 훌륭한 데가 있는 분이야.” 그리고 빌파리지 부인은 확신에 찬 어조로, 그 말을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못 들떠서 말을 이었다. “그분은 자네를 다시 만나면 틀림없이 기뻐하실 걸세.”
그러나 그 전날 아침, 뤽상부르 대공비와 헤어진 뒤에 빌파리지 부인은 나에게 훨씬 더 깊은 인상을 준, 그리고 단지 호의에서만 나온 것이 아닌 말을 했다.
“자네가,” 그녀가 내게 물었다. “부처의 사무차관 아드님인가? 저런! 자네 아버님이 아주 매력적인 분이라고 들었네. 지금 훌륭한 휴가를 보내고 계시다더군.”
며칠 전 우리는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와 그 벗인 노르푸아 씨가 짐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짐은 찾았다네. 사실 정말로 잃어버렸던 것도 아니었지. 어찌 된 일인지 내가 말해 줌세.” 빌파리지 부인이 설명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보다도 아버지의 여정을 훨씬 소상히 꿰고 있는 듯했다. “자네 아버님은 이제 더 일찍, 실은 다음 주에 돌아오실 작정인 모양일세. 아마 알헤시라스에 가려던 생각은 접으실 테니까. 다만 톨레도에 하루를 더 머무시고 싶어 하시네. 티치아노의 어느 제자를, 이름은 잊었네만, 흠모하시는데 그 사람 작품은 거기서라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게지.”
나는 자문했다. 빌파리지 부인이 안전한 거리에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의 무리가 벌이는 부산하고 하찮고 목적 없는 소동을 바라보던 그 공평무사한 유리, 그 유리에서 하필 그녀가 아버지를 관찰하는 지점에 어떤 기묘한 우연으로 엄청난 배율의 렌즈 조각이 끼어들게 되었는지를. 그 조각 탓에 부인은 아버지에게 매력적인 모든 것을, 그가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여러 사정이며 세관에서 겪은 곤란이며 엘 그레코를 향한 흠모까지 그토록 도드라진 부조로, 더할 나위 없이 세세하게 보았으며, 시야의 척도마저 바꾸어 이 한 사람만을 나머지 모두가 자못 작아 보이는 가운데 그토록 크게 보았으니, 마치 귀스타브 모로가 연약한 필멸의 인간 곁에 그려 넣으며 초인적인 위용을 부여한 저 유피테르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빌파리지 부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우리가 호텔 밖에서 조금 더 머무르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다가, 유리 칸막이 너머로 점심이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식인종 섬 왕의 젊은 정부가 목욕을 하러 내려갔다가 이제 호텔로 돌아오는 참이었다.
“정말이지, 이건 완전히 골칫거리야. 이럴 바엔 아예 이민을 가고 싶어질 지경이라니까!” 마침 그녀와 마주친 변호사가 노발대발하며 외쳤다.
그러는 동안 사무 변호사의 아내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그 가짜 왕비의 뒤를 좇고 있었다.
“블랑데 부인이 저렇게 그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면 내가 얼마나 화가 나는지 말도 못하겠소.”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한 대 갈기고 싶은 심정이오. 저러는 게 바로 그 하찮은 것들을 대단해 보이게 만드는 짓이란 말이오. 물론 저들이 바라는 게 바로 그거요, 사람들이 자기들한테 관심을 가져 주는 것 말이오. 부인 남편더러 좀 일러 주라고 하시오, 부인이 지금 얼마나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맹세컨대 저 광대짓하는 것들 앞에서 멈춰 서서 입을 헤벌리고 구경할 거면 다시는 저들과 함께 나다니지 않을 거요.”
뤽상부르 대공비가 찾아온 일로 말하자면, 대공비가 과일을 두고 간 그날 그녀의 마차가 호텔 앞에 와 멎었는데, 그것은 사무 변호사와 변호사와 재판장의 아내들로 이루어진 저 작은 부인들 무리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부인들은 얼마 전부터, 모두가 그토록 정중히 대하는 저 빌파리지 부인이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후작부인인지를 알아내는 데 여간 골몰해 있던 게 아니었으니, 실은 그 부인이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어서 듣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이 홀을 지날 때마다, 어디서나 수상쩍은 낌새를 맡는 재판장의 아내는 자기 ‘뜨개질’에서 눈을 들어 그 침입자를 빤히 쏘아보았는데, 그 꼴에 벗들은 우스워 죽으려 했다.
“뭐, 그야 아시다시피,” 그녀가 도도하게, 은근히 깔보는 투로 설명했다. “나는 늘 최악을 믿는 데서 시작한답니다. 어떤 여자든 출생증명서와 혼인 증서를 내게 보여 주기 전에는 제대로 결혼한 여자라고 결코 인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놀라실 것 없어요. 내 소소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하여 날마다 부인들은 한자리에 모여 웃으며 서로에게 물었다. “뭐 새로운 소식 없어요?”
그런데 뤽상부르 대공비가 다녀간 이튿날 저녁, 재판장의 아내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뭔가 알아냈어요.”
“어머, 퐁생 부인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저런 분은 여태 본 적이… 아무튼 어서 얘기해 봐요! 무슨 일이래요?”
“글쎄 이걸 좀 들어 봐요. 노란 머리에 얼굴에는 분을 손가락 한 마디는 두껍게 처바른 여자가, 마차는 또 어찌나, 십 리 밖에서도 냄새가 풍길 지경인, 저런 부류나 감히 몰고 다닐 법한 마차를 타고, 오늘 여기 그 「후작부인」이라는 분을 찾아왔지 뭐예요, 원 세상에!”
“어머머머! 저런 쯧쯧쯧쯧. 세상에 그럴 수가! 아니 그거, 우리가 봤던 그 여자가 틀림없어요, 기억나시죠, 회장님, 그때 우리가 저 여자 꼴이 영 마뜩잖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 여자가 만나러 온 게 바로 그 「후작부인」인 줄은 몰랐죠. 깜둥이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그 여자 말이죠?”
“바로 그 여자예요.”
“설마 그럴 리가요? 혹시 그 여자 이름은 모르시고요?”
“알아냈고말고요. 일부러 실수인 척하고 그 여자 명함을 슬쩍 집어 들었지요. 글쎄 그 여자, ‘뤽상부르 대공비’라는 이름을 내걸고 장사를 하고 있더라니까요! 내가 그 여자를 의심한 게 옳지 않았어요? 저런 당주 남작부인 같은 것과 함부로 섞여 지내야 한다니, 참 좋은 일이기도 하지!” 변호사는 재판장에게 마튀랭 레니에의 마세트를 인용했다.
그러나 이 오해가, 막이 내리기 전에 풀리도록 소극(笑劇)의 2막에서 벌어지는 그런 오해들처럼 한때의 것이었으리라 여겨서는 안 된다. 영국 왕과 오스트리아 황제의 조카딸인 뤽상부르 부인과 빌파리지 부인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차 나들이에 데리러 왔을 때, 온천 휴양지에서 언제나 마주치기 그토록 거북한 그런 ‘늙은 할망구’ 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포부르 생제르맹의 남자들 열에 아홉은, 평범한 중산층 사람의 눈에는 그저 술이나 퍼마시는 건달로(사실 개개인을 보면 실제로 그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비쳐서, 점잖은 사람이라면 저녁 식사에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을 위인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중산층은 자기 기준을 너무 높이 잡는데, 왜냐하면 이 남자들의 그런 태도가, 정작 중산층은 결코 발을 들이지 못할 저택들에서 그들이 온갖 존경의 표시와 함께 맞아들여지는 것을 조금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중산층이 이 사실을 안다고 어찌나 진심으로 믿는지, 자기 일을 이야기할 때 짐짓 소탈한 체하고 벗들을 깎아내리는 투로 말하는데, 특히 ‘해안에 와 있을’ 때 그러하여, 그 오해를 완벽하게 만들어 버린다. 혹여 사교계의 어떤 남자가,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을 지닌 덕에 온갖 중요한 금융 기업의 회장으로 뽑히는 바람에 ‘사업가들’과 교류를 이어 가게 되는 경우, 마침내 자기가 보기에 ‘큰 사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귀족을 만났다고 여기는 그 사업가는, 저런 사람이 도박으로 파산한 후작 따위와 상종할 리 없다고 장담할 것이다. 그 사업가는 그 후작이 친하게 굴면 굴수록 더욱더 친구 하나 없는 신세라고 지레짐작하는 터였다. 그리고 그 거대 기업의 이사회 의장인 공작이, 도박꾼일지언정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성을 지닌 바로 그 후작의 딸과 자기 아들을 혼인시키는 것을 보면, 그 사업가는 놀라움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한다. 마치 군주라면 아직 재임 중인 대통령의 딸보다는 차라리 폐위된 왕의 딸을 며느리로 맞으려 하듯이 말이다. 말하자면 이 두 세계는 서로를 두고, 발베크 만의 이쪽 끝에 자리한 마을 사람들이 저쪽 끝 마을을 두고 품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상(像)을 품는 것이다. 리브벨에서는 오만한 마르쿠빌, 곧 마르쿠빌 로르괴외즈가 겨우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마저도 착각을 부르는데, 자기 쪽이 마르쿠빌에서 보이리라 상상하지만 정작 그곳에서는 리브벨의 화려함이 거의 온전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