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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고장 (계속) ①

2권 제2부 · 고장의 이름: 고장 (계속)

발베크의 의사는 갑작스러운 열병 발작을 다스리려 불려 왔는데, 내가 그늘도 없이 이글거리는 햇볕 아래 온종일 해변에 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히고 나를 위한 여러 처방을 적어 주었다. 할머니는 그 처방들을 공손한 태도로 받아 들었지만, 나는 그 태도에서 어느 것 하나 “조제하게” 하지 않으리라는 할머니의 굳은 결심을 대번에 읽어 낼 수 있었다. 다만 위생에 관한 그의 충고에는 주의를 기울였고, 마차로 우리를 드라이브에 데려가겠다는 빌파리지 부인의 제안은 받아들였다. 그 뒤로 나는 점심때까지 오전 시간을 내 방과 할머니 방 사이를 오가며 보내곤 했다. 할머니의 방은 내 방처럼 바다를 곧바로 마주 보고 있지는 않았고, 네 면 가운데 세 면에서 빛이 들어왔으니, 곧 “해안 산책로”의 한 자락과, 건물 안쪽의 우물과, 내륙의 시골 풍경이 내다보였으며, 가구도 내 방과는 달리 붉은 꽃무늬가 놓인 금속빛 천을 씌운 안락의자들이 있었는데, 방에 들어설 때 나를 맞이하던 서늘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바로 그 천에서 배어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햇살이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말하자면 하루의 저마다 다른 시각에서 비쳐 들어와 벽의 모서리들을 부수고, 해변의 반영을 방 안으로 밀어 넣고, 서랍장을 들꽃이 무리 지어 핀 둔덕처럼 알록달록한 축제의 제단으로 만들고, 언제라도 다시 날아오를 듯한 광채의 날개를 접힌 채로, 떨리는 채로, 따스한 채로 벽에 붙여 놓고, 우물이 내다보이는 창 앞에 놓인 시골풍 양탄자의 네모난 자락을 목욕물처럼 데우며 그 위에 덩굴풀처럼 무늬와 장식을 드리우고, 의자에 놓인 비단 꽃들의 꽃잎을 따서 흩뿌리고 그 은실을 천에서 도드라지게 하는 듯이 보임으로써 방 안 가구의 매력과 복잡함을 한층 더해 주던 그 시각이면, 드라이브 채비를 하러 가기 전 잠시 머무르던 이 방은 바깥에서 빛나는 빛의 색채가 산산이 갈라지는 프리즘 같기도 했고, 내가 이제 막 맛보려는 하루의 달콤한 즙이 증류되어 흩어지는, 취하게 하는, 눈에 보이는 벌집 같기도 했으며, 은실과 장미 잎의 떨리는 아지랑이 속으로 녹아드는 희망의 정원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나는 내 방 커튼을 젖혀 두었으니, 그날 아침 바닷가에서 네레이드처럼 노니는 것이 어떤 바다인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그 바다들 가운데 어느 것도 우리 곁에 하루보다 오래 머무는 법이 없었다. 이튿날이면 또 다른 바다가 있었고, 때로는 그 전날의 바다와 닮아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같은 바다를 두 번 본 적이 없었다.

그중에는 어찌나 드문 아름다움을 지녔던지, 언뜻 바라보는 즐거움이 놀라움으로 한층 더해지는 바다도 있었다. 어떤 특권으로, 하필 다른 아침이 아니라 바로 그 아침에, 커튼을 젖힌 창은 놀라워하는 내 눈앞에 님프 글라우코노메를 드러내 보였던가. 그 나른한 아름다움은 부드럽게 숨 쉬며, 아지랑이 어린 에메랄드의 투명함을 지니고 있어, 그 표면 아래로 물빛을 물들이는 묵직한 요소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바다는 해마저 자신의 놀이에 끌어들였는데, 그 미소는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로 나른해져 있었으니, 그 아지랑이란 반투명한 표면 둘레에 비워 둔 공간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게 도려내진 표면은 한결 더 마음을 끌었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 덩어리에 돋을새김으로 새기고 나머지는 다듬지 않은 채 남겨 둔 여신들처럼. 그리하여 그 견줄 데 없는 빛깔로 바다는 우리를 저 울퉁불퉁한 뭍의 길로 불러냈으니, 그 길에서 빌파리지 부인의 사륜마차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온종일, 끝내 다다르지 못한 채, 그 잔잔한 물결의 서늘함을 바라보게 될 터였다.

빌파리지 부인은 늘 일찌감치 마차를 대령시켰는데, 생마르르베튀나 케톨므의 바위들, 아니면 그 밖의 어떤 목적지에 이르는 데 넉넉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소 굼뜬 마차로는 그런 곳들이 온종일 걸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앞으로 떠날 긴 드라이브가 기뻐서 나는 빌파리지 부인이 채비를 마칠 때까지 이리저리 거닐며 얼마 전에 들은 가락을 흥얼거리곤 했다. 일요일이면 호텔 앞에 세워진 마차가 부인의 것만은 아니었다. 삯마차 여러 대가 대기하고 있었으니, 캉브르메르 부인에게서 페테른으로 초대받은 사람들뿐 아니라, 벌받는 아이들처럼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느니 발베크의 일요일은 도무지 견딜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점심을 들자마자 이웃한 어느 휴양지로 몸을 숨기러 가거나 그 지방의 “명소” 하나를 구경하러 나서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누군가 블랑데 부인에게 캉브르메르가에 다녀왔느냐고 물을 때면(그런 일이 잦았다) 부인은 딱 잘라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아니요, 우리는 벡 폭포에 갔었어요.” 마치 그것이 페테른에서 하루를 보내지 않은 유일한 이유라는 듯이. 그러면 변호사는 너그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부럽습니다. 저도 그 대신 거기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정말 볼 만한 곳일 겁니다.”

내가 기다리며 서 있던 현관 앞, 늘어선 마차들 곁에는 보기 드문 품종의 관목처럼 어린 급사 하나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 아이는 식물 같은 살갗 못지않게 유별나고 인상적인 머리빛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안쪽, 초기 바실리카의 나르텍스, 곧 예비신자의 성당에 해당하는 홀, 호텔에 묵지 않는 사람들도 지나다닐 수 있던 그 홀에서는, 이 “바깥” 급사의 동료들이 그보다 딱히 더 열심히 일하지는 않았으되 적어도 훈련된 몇 가지 동작만은 해 보였다. 아마 이른 아침에는 청소를 거들었으리라. 그러나 오후가 되면 그들은 그저 합창대처럼 거기 서 있을 뿐이었으니, 할 일이 없을 때에도 배역의 머릿수를 채우려고 무대에 남아 있는 합창대와 같았다. 나를 그토록 겁에 질리게 했던 바로 그 총지배인은 이듬해에 그 수를 크게 늘릴 작정이었으니, 그에게는 “큰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망은 호텔 지배인의 속을 몹시 썩였으니, 그는 이 소년들이 여기저기 얼쩡거려 봐야 “성가시기만 할” 뿐이라 여겼고, 그 말인즉 손님들에게 거치적거리기나 하고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점심과 저녁 사이, 손님들이 드나드는 틈틈이 그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텅 비었을 무대를 채워 주었으니, 마치 맹트농 부인의 제자들이 젊은 이스라엘 사람 차림으로, 에스테르나 조아드가 “퇴장할” 때마다 극을 이어 가듯이. 그러나 저 바깥 급사는, 그 여린 빛깔과 크고 가냘프고 부서질 듯한 몸통을 하고서, 후작부인이 아래층으로 내려오기를 그 곁에서 기다리던 나를 두고, 어떤 우수가 스며든 부동자세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형들은 더 번듯한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 호텔을 떠났고, 그래서 그는 이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을 사무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빌파리지 부인이 나타났다. 부인의 마차 곁에 서서 그녀가 오르는 것을 돕는 일은 어쩌면 그 어린 급사의 소임에 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자기 하인들을 데리고 호텔에 드는 사람은 그 하인들이 시중들기를 바라기에 대개 “팁”에 후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대체로 이는 저 오래된 포부르 생제르맹의 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은 이 두 부류에 다 들었다. 그리하여 이 나무 같은 급사는 부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결론짓고는, 부인과 그 짐을 마차에 챙겨 싣는 일은 부인의 하녀와 하인에게 맡긴 채, 형들의 부러운 팔자를 서글피 꿈꾸며 제 식물 같은 부동자세를 지켰다.

우리는 길을 떠났다. 기차역을 돌아 얼마쯤 지나면 어느 시골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은 이내 콩브레 근방의 길들만큼이나 내게 익숙해졌으니, 낚싯바늘처럼 어여쁜 과수원을 미끼 삼아 굽어 도는 어귀에서부터, 양옆으로 갈아 놓은 밭을 낀 채 그 길을 벗어나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그러했다. 그 밭들 사이로 여기저기 사과나무가 보였는데, 과연 꽃은 다 떨구고 이제는 암술 술 한 가닥밖에 달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매혹하기에는 넉넉했다. 그 견줄 데 없는 잎사귀들을 보노라면, 이미 끝나 버린 혼례를 위해 깔아 놓은 예식의 양탄자처럼 널따랗게 펼쳐진 그 잎들이,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발그레한 꽃들의 흰 공단 자락에 쓸리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그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 파리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꽃집에서 사과꽃 가지를 사 들고 와서, 그 꽃들 앞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던가. 그 꽃들에는 초록빛으로 펼쳐지는 잎을 분처럼 뒤덮어 하얗게 물들이던 것과 똑같은 크림빛 정수가 피어 있었고, 그 눈처럼 흰 꽃받침들 사이에는, 마치 꽃 파는 이가 내게 베푼 너그러움에서, 또한 넘치는 착상에서, 효과적인 대비로 삼으려 양옆에 어여쁜 진홍빛 봉오리를 곁들여 놓기라도 한 듯싶었다. 나는 앉아서 그 꽃들을 바라보았고, 등불 빛 아래 그것들을 모아 두었으니, 어찌나 오래 그러고 있었던지, 새벽이 그 흰빛에, 바로 그 순간 발베크 길가에서 그 자매 꽃들에 물들이고 있었을 것과 똑같은 발그레함을 가져다줄 때에도 나는 흔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상상 속에서 그 꽃들을 저 길가로 되돌려 놓아, 그것들을 늘리고 펼쳐, 그것들을 위해 마련된 틀을, 곧 내가 윤곽을 훤히 외고 있으며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 밭들의 이미 준비된 화폭을 채우려 했으니, 언젠가는 다시 보아야만 할, 봄이 천재의 그 절묘한 열정으로 그 화폭을 제 색채로 뒤덮는 그 순간에 보아야 할 그 화폭을 말이다.

마차에 오르기 전 나는 앞으로 찾아 바라볼 바다 풍경을 미리 지어 놓았는데, “빛나는 해”를 그 위에 얹어 보기를 바랐던 그 풍경을, 발베크에서는 너무나 조각난 형태로만 알아볼 수 있었으니, 내 꿈에는 자리할 데 없는 저 숱한 속된 끼어듦들, 곧 헤엄치는 사람들, 탈의용 오두막들, 유람용 요트들이 그 풍경을 깨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가 높은 지대에 이르러, 나뭇잎 우거진 가지 사이로 바다를 언뜻 보았을 때는, 그만한 거리에서 바다를 이를테면 자연과 역사에서 떼어 놓던 저 한때의 자잘한 것들이 틀림없이 사라졌고, 그 물결을 굽어보며 나는 그것이 르콩트 드 릴이 그의 오레스티에서 우리에게 그려 보이는 바로 그 바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시에서 “날이 밝기 전, 먹이를 노리는 새 떼처럼” 영웅적 헬라스의 긴 머리 전사들이 “십만의 노로 저 우렁차게 울리는 심연을 저어 간다”고 했으니.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이제 바다에 그리 가까이 있지 않았으니, 바다는 내게 더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붙박인 것으로 보였다. 나뭇잎들 사이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그 빛깔들 밑에서 나는 이제 아무런 힘도 느끼지 못했고, 그 빛깔들을 통해 바다는 하늘만큼이나 실체 없어 보였으며 다만 더 짙은 푸른빛일 뿐이었다.

빌파리지 부인은 내가 성당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이 성당을 또 하루는 저 성당을 찾아가 보자고, 특히 부인의 말마따나 “온통 오래된 담쟁이에 파묻힌” 카르크빌의 성당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부인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한 번 내저었는데, 그 손짓은 눈앞에 없는 정면을 보이지 않는 고운 잎사귀 장막으로 우아하게 감싸는 듯했다. 빌파리지 부인은 흔히 이런 자잘한 묘사의 손짓과 더불어, 어느 유서 깊은 건물의 매력과 두드러진 특징을 규정할 꼭 알맞은 낱말을 찾아내곤 했으니, 늘 전문 용어는 피했으나, 자신이 이야기하는 대상들에 대한 속속들이 깊은 이해만은 감추지 못했다. 부인은 이 해박함에 대한 변명을 이런 사실에서 찾는 듯했다. 곧 그녀가 소녀 시절을 보낸 아버지의 시골 저택 하나가 발베크 근방의 성당들과 양식이 비슷한 성당들이 있는 고장에 자리해 있었으니, 그녀가 건축에 취미를 붙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으리라는 것이고, 덧붙이자면 그 저택은 르네상스 건축의 가장 빼어난 본보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 저택은 또한 어엿한 박물관이기도 했고, 게다가 쇼팽과 리스트가 거기서 연주를 했으며, 라마르틴이 시를 낭송했고, 꼬박 한 세기 동안 이름난 예술가들이 저마다 집안의 방명록에 “감회”를 적고, 선율을 그려 넣고, 밑그림을 그려 넣었던 터라, 빌파리지 부인은, 그것이 섬세함에서든, 좋은 가문의 교양에서든, 참된 겸손에서든, 아니면 지력의 모자람에서든, 온갖 예술에 대한 자신의 조예를 오로지 이 순전히 물질적인 내력 탓으로 돌렸고, 겉보기에 회화와 음악과 문학과 철학을, 목록에 오르고 별표까지 붙은 유서 깊은 건물에서 더할 나위 없이 귀족적인 방식으로 자라난 아가씨의 응당한 몫쯤으로 여기기에 이른 듯했다. 부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는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 아닌 그림이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듯싶었다. 부인은 자신이 걸치고 드레스 위로 늘어뜨린 목걸이를 할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자 흡족해했다. 그 목걸이는 집안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티치아노가 그린 그녀의 어느 여자 조상의 초상화에도 나와 있었다. 그러니 그것이 진품임은 틀림없었다. 어디서 샀는지도 모를, 어느 벼락부자가 사들인 그림 이야기라면 부인은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것들이 위작이라 굳게 믿어 볼 마음조차 없었다. 우리는 부인 자신이 수채로 꽃을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그림들이 칭찬받는 것을 들은 적 있는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빌파리지 부인은 겸손하게 화제를 돌렸으나, 명성이 이미 굳어져 찬사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예술가가 그러할 법한 것 이상으로 놀라움이나 기쁨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부인은 다만 그것이 즐거운 소일거리라고만 했으니, 붓끝에서 피어난 꽃이 별것 아니라 해도, 적어도 그 작업 덕분에 진짜 꽃들과 더불어 지내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는, 특히 그리려고 가까이서 찬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때에는, 결코 물릴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베크에서 빌파리지 부인은 눈을 아끼려고 그 일을 쉬고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부인이 중산층 대다수보다도 얼마나 더 “진보적인지”를 알고 놀랐다. 부인은 예수회 추방에 어떻게 누가 분개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일은 예전부터, 왕정 아래서도, 심지어 에스파냐에서도 늘 있어 온 일이라고 했다. 부인은 공화정을 두둔했고, 그 반교권주의에 대해서는 이렇게밖에 말하지 않았다. “내가 미사를 듣고 싶을 때 못 듣게 하든, 듣기 싫을 때 억지로 듣게 하든, 나는 똑같이 언짢을 거예요!” 그리고 이런 말들로 우리를 놀라게 하기까지 했다. “아! 요즘 세상에 귀족이라는 게 대체 뭐란 말이오?” “내 생각엔, 일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값어치도 없어요!” 어쩌면 그저 그런 말들이 자기 입에서 나오면 날이 서고 맛이 살아, 실로 기억에 남게 된다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런 앞선 견해들을, 그것이 빌파리지 부인이 몹시 꺼리던 사회주의에까지 이를 만큼 앞서 나간 적은 결코 없었으되, 하필 그런 부류의 사람 하나가 그토록 자주, 그토록 거리낌 없이 내놓는 것을 들었을 때, 곧 그 지력을 헤아리면 우리의 조심스럽고 소심한 공평함으로는 보수파의 생각을 대놓고 단죄하기를 마다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그러는 것을 들었을 때, 할머니와 나는 우리 드라이브의 이 유쾌한 길동무에게서 만사에 걸친 진리의 척도와 본이 발견되리라 믿을 뻔했다. 부인이 자기 집안의 티치아노 그림들이며, 시골 저택의 열주며, 루이필리프의 담소 재간을 높이 살 때, 우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집트 회화나 에트루리아 비문을 이야기하게 하면 우리를 넋 놓게 만들면서도 근대의 작업에 대해서는 어찌나 따분하게 늘어놓는지 우리가 그들이 통달한 학문의 흥미를 과대평가해 온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저 학식의 보고 같은 이들처럼, 곧 그들이 보들레르에 관한 얼빠진 논평에 쏟은 것 못지않게 저 연구들에도 틀림없이 들였을 범속한 정신이 그들의 다룸새에는 드러나지 않는 그런 이들처럼, 빌파리지 부인 역시, 저마다 한 시절 그녀 부모의 손님이었고 그녀가 직접 보고 말을 나누기도 한 샤토브리앙에 대해, 발자크에 대해, 빅토르 위고에 대해 내가 묻자, 나의 경외에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공작들과 정치가들에 대해 들려주던 것 같은 재미난 일화들을 이야기했고, 그 작가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다만 그들에게 저 겸손함이, 저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이, 오직 하나의 옳은 선에 만족하며 그것을 힘주어 강조하지 않는, 무엇보다도 과장된 언사의 어리석음을 피하는 저 절제된 기예가, 곧 그 알맞음이, 참된 위대함이 지향하고 이르는 것이라 배워 온 저 절도와 판단과 소박함의 자질들이 모자랐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가 그들 위에, 어쩌면 결국 그런 자질들 덕분에 응접실에서든 학사원에서든 각의에서든 발자크나 위고나 비니를 능가했을 법한 사람들, 곧 몰레, 퐁탄, 비트롤, 베르소, 파스키에, 르브룅, 살방디, 다뤼 같은 사람들을 서슴없이 올려놓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당신이 그토록 우러르는 듯한 스탕달의 소설들만 해도 그래요. 장담하는데, 당신이 그런 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면 그를 몹시 놀라게 했을 거예요. 메리메 댁에서 그를 만나곤 했던 우리 아버지는, 아, 메리메 그분이야말로 재능 있는 사람이었지요, 벨이(그게 그의 본명이었어요) 지독히도 상스러웠지만 저녁 식탁에서는 꽤 좋은 말벗이었고 제 책에 대해서는 조금도 잘난 체하는 법이 없었다고 자주 말씀하셨답니다. 발자크 의 터무니없이 과한 찬사에 그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적어도 그 점에서 그는 신사답게 처신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부인은 이 위인들 모두의 친필을 지니고 있었고, 자기 집안이 그들과 맺은 사사로운 교분을 내세울 때면, 그들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나처럼 그들을 만나 볼 기회조차 없던 젊은이들의 판단보다 더 근거가 탄탄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내게는 분명 말할 자격이 있어요, 그들이 우리 아버지 댁에 드나들었으니까요. 그리고 더없이 지혜로운 분이던 생트뵈브 가 늘 말씀하셨듯, 평가를 내릴 때는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그 참된 가치를 더 정확히 가늠할 수 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법이랍니다.”

때로 마차가 갈아 놓은 시골을 지나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오를 때면, 콩브레의 수레국화 같은 머뭇거리는 수레국화 몇 송이가 우리 뒤로 흘러 지나가며, 밭을 한결 더 실감 나게 하고, 옛 거장들 몇몇이 제 그림에 서명 삼아 그려 넣던 귀한 꽃처럼 그 밭에 진짜라는 표를 더해 주었다. 이내 말들이 그것들을 앞질렀지만, 조금 더 가면 또 한 송이가 눈에 띄었는데, 그 꽃은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며 풀숲 사이로 제 하늘빛 별을 곧추세워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대담하게도 길가에까지 나와 자리를 잡았고, 내 마음에 남은 인상은 먼 기억들과 길들여진 들꽃들이 어렴풋이 뒤섞인 것이었다.

우리는 내리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걸어서, 자전거로, 짐수레나 마차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저런 존재들 가운데 하나와 마주치곤 했다. 화창한 날의 꽃이면서도 들꽃과는 다른 존재들, 저마다 다른 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어, 그 여자가 우리 안에 낳아 놓은 욕망을 그녀의 어느 동무에게서도 결코 채울 수 없게 하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소를 몰거나 짐수레에 비스듬히 누운 농가 처녀, 바람을 쐬러 나온 가겟집 딸, 사륜포장마차 뒤 좌석에 부모와 마주 보고 꼿꼿이 앉은 멋쟁이 아가씨. 블로크가 내게 새 시대를 열어 주고 삶의 값어치를 바꿔 놓은 것은 분명하니, 그가 이렇게 말해 준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곧 메제글리즈 쪽을 홀로 거닐며 어느 시골 처녀가 지나가 내 품에 안을 수 있기를 바라던 그 몽상이, 내 바깥의 아무것과도 맞닿지 않는 한낱 공상이 아니라, 마주치는 처녀란 시골 아가씨든 “규수”든 하나같이 그런 간청에 기꺼이 귀 기울일 채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병이 들어 혼자서는 나다니지 못하는 내가 그 처녀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할 운명이라 해도, 나는 그래도 행복했다. 마치 감옥이나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가, 사람의 몸이란 마른 빵과 “물약”밖에는 소화하지 못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가, 복숭아와 살구와 포도가 그저 시골 풍경의 장식만이 아니라 맛있고 손쉽게 몸에 받는 양식이라는 것을 문득 알게 되었을 때처럼. 간수나 간호인이 그 탐스러운 열매를 따 먹게 놔두지 않는다 해도,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더 나은 곳으로, 그 안에서의 삶은 더 너그러운 것으로 보인다. 어떤 욕망이 우리에게 더 매혹적으로 보이고 우리가 더 미더이 그것에 기대게 되는 것은, 비록 우리로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일지언정 우리 바깥에 그 욕망에 들어맞는 현실이 있음을 알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만 우리 개인으로 하여금 그러지 못하게 막는, 우연하고 특수한 그 자잘한 장애물을 잠시 마음에서 지워 버린다는 조건 아래, 그 욕망을 달래는 자신을 그려 볼 수 있는 삶을 한결 더 기쁘게 떠올리게 된다. 지나가는 예쁜 처녀들로 말하자면, 그 뺨에 입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그날부터 나는 그들의 영혼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우주는 내게 더 흥미로운 것으로 비쳤다.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는 빠르게 나아갔다. 우리 쪽으로 오는 처녀를 볼 겨를조차 나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의 아름다움이란 사물의 아름다움과 달라서, 우리는 그것을 의식과 자유의지를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느끼는지라, 그녀의 개체성이, 곧 아직 어렴풋한 영혼과 내게는 알 길 없는 의지가, 그 무심한 눈길 깊은 곳에 엄청나게 줄어들었으되 온전한 제 조그만 그림을 내보이자마자, 나는 곧, 그것을 받아들일 암술을 향해 내 안에 준비된 꽃가루의 신비로운 응답으로, 어떤 욕망의 배아가 그 못지않게 어렴풋하고 그 못지않게 자잘하게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처녀를 그냥 지나쳐 보내지 않으려는 욕망, 그녀의 마음이 내 존재를 의식하게 만들고, 그녀의 욕망이 다른 누군가에게로 헤매어 가지 못하게 막고, 그녀의 꿈속에 나를 붙박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차지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려는 욕망 말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마차는 그녀에게서 굴러 멀어져 갔고, 예쁜 처녀는 벌써 뒤에 남겨졌으며, 그녀는 한 사람을 남의 마음속에 이루어 놓는 그런 관념들을 나에 대해 하나도 지니지 못한 터라, 나를 겨우 보았던 그 눈은 이미 나를 잊어버린 뒤였다. 내가 그녀를 조각조각 언뜻 보았을 뿐이기에 그토록 매혹적으로 여긴 것일까? 그랬는지도 모른다. 우선, 그녀에게 다다랐을 때 멈출 수 없다는 것, 다른 날 다시 만나지 못할지 모른다는 위태로움은, 그런 처녀에게 대번에, 병이나 가난 탓에 찾아갈 수 없게 된 고장이 얻는 것과 같은, 혹은 우리가 틀림없이 스러질 전투가 그러지 않았으면 살아 내야 했을 저 밋밋하기 그지없는 나날들에 부여하는 것과 같은 매력을 준다. 그러니 습관이라는 것이 없다면, 삶은 순간마다 죽음의 위협을 받는 우리에게, 곧 온 인류에게 황홀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으리라. 다음으로, 우리의 상상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비상은 온전히 지각된 현실에 매이지 않으니, 지나가는 낯선 이의 매력이 대개 우리가 스쳐 가는 빠르기에 정비례하는 이런 무심한 마주침에서 그러하다. 밤이 내리고 마차가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우리를 낚아채 가는 속도와 그것을 잠기게 하는 땅거미에 옛 대리석상처럼 잘려 나간 여인의 몸통은 하나같이, 길의 굽이마다에서, 환히 밝은 가게 안에서, 우리 심장을 겨누어 아름다움의 화살을 쏜다. 그 아름다움이란, 이 세상에서 과연 조각나고 덧없는 낯선 이에게 아쉬움으로 지나치게 부풀려진 우리 상상이 덧붙인 보완물 이상의 무엇인지, 우리가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지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내가 자유로이 멈추어, 마차에서 내려, 우리가 지나쳐 가던 그 처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면, 어쩌면 마차에서는 알아보지 못한 그녀 살결의 어떤 흠 때문에 환멸을 느꼈을까? (그다음이면 그녀의 삶 속으로 파고들려는 온갖 애씀이 문득 불가능해 보였으리라. 아름다움이란 일련의 가설이고, 추함은 우리가 이미 미지를 향해 열리는 것을 보고 있던 길을 가로막아 그 가설을 끊어 버리는 법이니.) 어쩌면 그녀가 내뱉었을 단 한마디, 미소 하나가 내게 열쇠를, 미처 기대치 못한 실마리를 쥐여 주어, 그녀 얼굴의 표정을 읽고 그 몸가짐을 풀이하게 했을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곧 아무 흥미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으리라. 그럴 법도 하다. 나는 실생활에서 어떤 진지한 사람과 함께 있어, 온갖 핑계를 지어내면서도 그에게서 도무지 몸을 뺄 수 없던 날들만큼 탐나는 처녀들을 만난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발베크에 처음 갔던 해로부터 몇 해 뒤, 아버지의 벗과 함께 파리를 지나 마차로 달리다가 어두운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한 여인을 언뜻 보았을 때, 나는 순전히 관습적인 거리낌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있는 전부일지도 모를 삶에서 내 몫의 행복을 저버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느껴, 사과 한마디 없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그 낯선 여인을 쫓아갔다. 두 거리가 엇갈리는 곳에서 그녀를 놓쳤고, 세 번째 거리에서 다시 따라잡았으며, 마침내 숨이 턱에 차서 가로등 아래에 이르러, 여러 해 동안 조심스레 피해 오던 늙은 베르뒤랭 부인과 얼굴을 맞대고 말았다. 부인은 반가움과 놀라움에 이렇게 외쳤다. “아니, 나한테 안부 한마디 하겠다고 이렇게 여기까지 달려오다니, 어쩜 이리 상냥할까!”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