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발베크에서, 그런 마주침의 순간이면 나는 할머니와 빌파리지 부인에게 머리가 어찌나 지독히 아픈지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편이 상책이라고 우겨 대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나를 마차에서 내리게 놔두지 않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 예쁜 처녀는, 이름도 없고 제 발로 옮겨 다니는 힘까지 지녔으니 유서 깊은 건물보다 훨씬 다시 찾기 어려운 존재였는데, 훗날 더 가까이 살펴보리라 스스로 다짐한 모든 이들의 수집첩에 더해졌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귈 수 있으리라 믿게 하는 상황에서 여러 번 내 눈앞을 지나갔다. 호텔에 크림을 더 대러 어느 농장에서 오던 우유 파는 처녀였다. 나는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본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그녀는 어떤 주의 깊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어쩌면 나의 주의 깊음이 그녀에게 불러일으킨 놀라움 탓이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내내 쉬고 있던 그날, 프랑수아즈가 정오쯤 커튼을 젖히러 들어오면서 아래층에 맡겨진 편지 한 통을 내게 건넸다. 나는 발베크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편지가 우유 파는 처녀에게서 온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아, 그것은 그저 베르고트에게서 온 것이었으니, 마침 지나던 길에 나를 보려 했으나 내가 잠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다정한 몇 줄을 갈겨쓴 것으로, 그 봉투에는 승강기 소년이 주소를 적었던 터라 나는 우유 파는 처녀가 쓴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나는 몹시 실망했고, 베르고트에게서 편지를 받는 편이 더 어렵고 내게는 더 우쭐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필 이 편지가 그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해서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 처녀로 말하자면,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에서만 보았던 이들을 다시 마주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다시는 그녀와 마주치지 못했다. 그들을 보았다가 이내 잃어버리는 일은 이처럼 내가 살아가던 동요의 상태를 키웠고, 나는 욕망에 한계를 두라고 권하는 철학자들에게서 어떤 지혜를 발견했다. 다만 그들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말이다. 그것만이 알 수 없고 의식도 없는 존재를 대상으로 삼아 불안으로 끝나는 유일한 종류의 욕망이니, 철학이 재물에 대한 욕망을 두고 하는 말이라 여긴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노릇이리라. 그러면서도 나는 이 지혜를 미완의 것으로 여기는 쪽으로 기울었으니, 이런 마주침들이 세상을 한결 더 아름답게 여기게 만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온갖 시골길을 따라 드물면서도 흔한 꽃들을, 하루의 덧없는 보물들을, 드라이브가 뜻밖에 떨궈 준 열매들을 그렇게 자라나게 하는 세상,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우연한 상황들 탓에만 내가 누리지 못했으되 삶에 새로운 맛을 더해 주던 그 열매들의 세상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언젠가 더 큰 자유를 누리며 다른 길들에서 그와 엇비슷한 처녀들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바랐을 때, 나는 이미 매력적이라 여긴 여인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욕망 속의 오로지 개별적인 것을 그르치고 더럽히기 시작한 것이었으며, 이 욕망을 인위로 키울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은연중에 내 환상을 시인한 셈이었다.
빌파리지 부인이 우리를 카르크빌로 데려간 날, 그곳에는 부인이 우리에게 이야기한 저 담쟁이에 덮인 성당이 있었는데, 돋운 땅 위에 세워져 마을과 그 아래로 흐르는 강을 함께 굽어보며 중세부터 제 작은 다리를 간직해 온 성당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홀로 남아 느긋이 그 건물을 살펴보고 싶어 하리라 여기고는,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훤히 보이는, 햇빛 속에 그윽이 물들어 온통 중세풍인 어떤 전체의 또 한 부분처럼 보이던 마을 광장의 과자점에서 먼저 가 나를 기다리자고 벗에게 권했다. 내가 나중에 거기서 그들과 합류하기로 정해졌다. 내가 그 앞에 남겨져 서 있던 그 무성한 초록 덩어리 속에서, 성당을 찾아내려면 나는 어떤 정신의 애씀을, 곧 “성당”이라는 관념을 한결 또렷이 붙드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어떤 문장을 옮기거나 풀어써 익숙한 형태를 벗겨 내게 하면 그 뜻을 더 온전히 헤아리게 되는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그 자체로 알아볼 수 있는 첨탑 아래 서 있을 때에는 좀처럼 필요치 않던 이 “성당”이라는 관념을, 나는 잊지 않으려 끊임없이 되새겨야 했다. 여기 이 담쟁이 덤불 속 아치가 뾰족한 창의 아치라는 것을, 저기 잎사귀들의 돌출이 그 밑에서 부풀어 오른 기둥머리 탓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윽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움직이는 현관에 떨림을 보냈고, 그 현관은 빛의 물결처럼 뻗어 나가며 떠는 소용돌이에 뒤덮였다. 뾰족한 잎들이 서로 마주 벌어졌고, 몸을 떨며 그 나무 같은 정면은 물결치는, 어루만져지는, 덧없는 초록빛 기둥들을 뒤로 이끌고 갔다.
성당에서 나오다가 나는 옛 다리 곁에서 마을 처녀들 한 무리를 보았는데, 아마도 일요일이라 그런지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서성이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놀려 대고 있었다. 다른 처녀들만큼 잘 차려입지는 않았으나 그들 위에 어떤 우위를 누리는 듯한, 다들 말을 걸어도 좀처럼 대꾸하지 않던, 더 진지하고 더 다부진 기색의 키 큰 처녀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애는 다리 난간에 올라앉아 두 발을 늘어뜨린 채, 방금 잡은 듯한 물고기가 가득 든 작은 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살결은 볕에 그을었고, 눈은 부드러웠으나 제 주변을 업신여기는 빛이 서려 있었으며, 코는 작고 곱살하게 매력적으로 빚어져 있었다. 내 눈길은 그녀의 살갗에 머물렀고, 내 입술은 필요만 생겼다면 제가 내 눈길을 뒤따랐다고 믿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다다르고 싶던 것은 그녀의 몸만이 아니었으니, 그녀 안에 깃든 그녀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과 맞닿는 길은 오직 하나, 곧 그 주의를 끄는 것뿐이었고, 그 안으로 파고드는 방식도 오직 하나, 곧 그 안에 어떤 관념을 일깨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어여쁜 낚시하는 처녀의 내면은 여전히 내게 닫혀 있는 듯했으니, 내가 마치 사슴의 시야 안에 놓이기라도 한 듯 알 길 없는 굴절률을 좇아 그녀 눈길의 쌍둥이 거울에 내 모습이 슬며시 비치는 것을 본 뒤에도, 나는 과연 그 안에 들어섰는지 미심쩍었다. 그러나 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즐기면서 그 입술에도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는 흡족하지 못했을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존재 안에 들어가 그녀에게 들러붙을 나에 대한 관념이, 그녀의 주의뿐 아니라 그 흠모와 욕망까지 내게로 끌어당기고,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 그녀가 나를 기억에 간직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기를 나는 바랐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돌팔매 거리 안에,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광장을 볼 수 있었다. 허비할 순간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처녀들이 이렇게 제 앞에 붙박인 듯 서 있는 나를 보며 웃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머니에는 5프랑짜리 동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어, 그녀를 심부름 보내려는 그 용건을 설명하기 전에, 그녀가 내 말에 귀 기울일 가망을 더 높이려고, 잠시 그 동전을 그녀 눈앞에 들어 보였다.
“이 고장 사람인 것 같은데,”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부탁 하나 들어주지 않겠어요? 어느 과자점에 좀 가 줬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광장에 있는 모양인데 그게 어딘지는 나도 몰라요, 거기 내 마차가 기다리고 있어요. 잠깐만요! 확실히 하려면, 그 마차가 빌파리지 후작부인의 것인지 물어봐 주겠어요? 하지만 놓칠 리는 없을 거예요, 쌍두마차니까요.”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알리고 싶던 바였으니, 그녀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작부인”이니 “쌍두마차”니 하는 말을 입 밖에 내자마자, 문득 나는 크나큰 평온을 느꼈다. 나는 낚시하는 처녀가 나를 기억하리라 느꼈고,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과 더불어 그녀를 만나고 싶은 욕망의 일부도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내게는 마치 보이지 않는 입술로 그녀라는 사람을 만지는 데 성공한 듯,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든 듯 여겨졌다. 그리고 그녀 마음에 대한 이 습격과 사로잡음은, 이 형체 없는 소유는, 육체의 소유가 그러하듯 그녀에게서 그 신비의 일부를 앗아 가 버렸다.
우리는 위디메닐 쪽으로 내려갔다. 문득 나는 콩브레 이래로 자주 느껴 보지 못한 그 깊은 행복에 사로잡혔으니, 무엇보다도 마르탱빌의 첨탑들이 내게 안겨 주었던 것과 비슷한 행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미완인 채로 남았다. 방금 나는, 우리가 지나던 가파른 등성이에서 조금 물러선 자리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를 보았는데, 아마도 그늘진 가로수길의 어귀를 이루고 있을 그 나무들은 내가 지금 처음 보는 것이 아닌 어떤 무늬를 그려 냈다. 나는 그 나무들이 이를테면 떨어져 나온 그 자리를 되살려 내는 데 끝내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것이 한때 내게 익숙했던 것임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이 어떤 먼 해와 지금 이 순간 사이에서 흔들리자, 발베크와 그 언저리가 녹아 흩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 드라이브 전체가 한낱 지어낸 일이 아닌지, 발베크란 상상 속에서 말고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 아닌지, 빌파리지 부인이란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닌지, 그리고 저 세 그루 늙은 나무야말로,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들 때 되찾게 되는 현실, 곧 우리가 그 안으로 몸소 옮겨졌다고 믿기에 이른 어떤 환경을 그리던 그 책에서 눈을 들 때 되찾는 현실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그 세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또렷이 보이기는 했으나, 내 정신은 그것들이 미처 붙잡지 못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느꼈으니, 그것은 마치 사물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어, 팔을 한껏 뻗어도 겨우 한순간 그 겉면을 스칠 뿐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새로운 기운으로 팔을 다시 내뻗어 한두 치라도 더 멀리 닿아 보려 한다. 그러나 내 정신이 이처럼 스스로를 가다듬어 힘을 모으려면, 나는 홀로 있어야 했다.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하며 부모에게서 몸을 떼어 내던 그 시절처럼 빠져나갈 수만 있었다면, 나는 무엇인들 내주지 않았으랴! 지금이야말로 정말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알아보았으니, 그것은 과연 정신 편에서 얼마간의 노력을 요구하기는 하나, 그에 견주면 그 즐거움을 단념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나태의 유혹 따위는 몹시 하찮게 여겨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 즐거움, 내가 어렴풋이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대상, 내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그 즐거움을 나는 드문 경우에만 맛보았으되, 그때마다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오직 그 즐거움의 실재에만 매달림으로써 마침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싶었다. 나는 빌파리지 부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잠시 손을 눈 위에 얹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이윽고 생각을 한데 모아 다지고 굳힌 뒤, 그 나무들 쪽으로, 아니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그 끝에서 나무들이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그 방향으로 한층 멀리 뛰어들었다. 나는 그 나무들 뒤에서 다시금 그 대상을, 내게 익숙하면서도 아리송한, 그러나 더 가까이 끌어당길 수 없는 그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마차가 나아가는 동안 그 셋 모두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전에 어디서 그것들을 보았던가? 콩브레 근처에는 그렇게 길가로 가로수길이 열리는 곳이 없었다. 그것들이 내게 떠올리게 한 그 자리는, 어느 해 할머니와 함께 온천을 하러 갔던 독일의 그 고장 풍경 속에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그것들에 딸린 풍경이 내 기억에서 온통 지워져 버릴 만큼 이미 아득한 세월로부터 온 것이라, 마치 읽은 적이 없다고 여겼던 책 속에서 별안간 뭉클하며 알아보는 페이지들처럼, 내 가장 이른 유년의 잊힌 장에서 저절로 솟아오른 것이라 여겨야 했을까? 아니면 그것들은 차라리 저 꿈속 풍경들, 언제나 똑같은, 적어도 그 낯선 모습이란 깨어 있는 동안 내가 기울이던 노력이 꿈속에서 객관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 나에게는 늘 똑같은 그 풍경들에 속하는 것이었을까? 그 노력이란, 게르망트 쪽에서 내게 그토록 자주 일어났듯 어떤 장소의 겉모습 아래 무언가 더 있음을 어렴풋이 의식하며 그 신비를 꿰뚫으려던 노력이거나, 아니면 그토록 알고 싶어 했으나 막상 알게 된 날부터는 발베크처럼 온통 껍데기뿐으로 보이던 어떤 장소에 신비를 되돌려 놓으려던 노력이었다. 아니면 그것들은 그저 간밤의 꿈에서 갓 끄집어낸 영상이되, 이미 너무 닳고 너무 변해서 훨씬 더 먼 데서 온 것처럼 여겨졌을 뿐인가? 아니면 나는 정말이지 그것들을 전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가. 그것들은 그 겉면 아래에, 게르망트 쪽에서 보았던 나무들이나 풀숲처럼, 먼 과거만큼이나 아리송하고 붙잡기 어려운 어떤 의미를 감추고 있어서, 그것들이 내게 새로운 관념을 터득하라고 조르는 것이건만 나는 내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알아내야 한다고 착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 그것들은 아무런 숨은 뜻도 감추고 있지 않았고, 다만 공간 속에서 이따금 사물이 겹쳐 보이듯 시간 속에서 그것들을 겹쳐 보게 만든 것은 내 지친 시력일 뿐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내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면 어떤 신화 속 환영, 내게 신탁을 늘어놓을 마녀들이나 노른들의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그것들이 과거의 유령들, 내 어린 시절의 정다운 벗들, 우리의 함께한 추억을 일깨우는 사라진 친구들이라고 믿고 싶었다. 유령처럼 그것들은 나더러 자기들을 데려가 달라고, 다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그 단순하고도 애타는 몸짓에서 나는, 말하는 힘을 잃고서 제가 하고픈 말을 우리에게 결코 전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우리가 결코 헤아리지 못하리라는 것도 느끼는 사랑하는 이의 속수무책한 고뇌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이윽고 어느 갈림길에서 마차는 그것들을 두고 떠났다. 마차는 나를, 내가 유일하게 참되다고 믿은 것에서,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해 주었을 것에서 멀리 떼어 놓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과도 같았다.
나는 나무들이 절망에 찬 팔을 내저으며 차츰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그것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오늘 우리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을 그대는 영영 알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대에게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애쓰던 이 길의 우묵한 곳으로 우리를 도로 떨어지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가 그대에게 가져다주려던 그대 자신의 한 부분이 통째로 심연 속으로 영원히 굴러떨어지고 말리라.” 과연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방금 느꼈던 그 즐거움과 동요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었고, 어느 저녁, 너무 늦게였으나 그때부터는 영원히, 거기에 나를 붙들어 매기는 했으되, 그 나무들 자체가 내게 무엇을 주려 했던지, 또 내가 그것들을 달리 어디서 보았던지는 끝내 알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길이 갈라지고 마차도 그와 함께 방향을 틀어, 내가 그것들에게서 등을 돌려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빌파리지 부인이 무슨 생각에 잠겼느냐고 내게 물어 왔을 때, 나는 방금 벗을 하나 잃은 듯, 나 자신이 죽어 버린 듯, 죽은 이들에게 신의를 저버린 듯, 내 신을 부인한 듯 참담했다.
이제 집을 생각할 때였다. 빌파리지 부인은 자연에 대한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그것보다는 차갑되 미술관이나 귀족의 저택 밖에서도 유서 깊고 예스러운 어떤 것들의 소박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줄 아는 감정이었으니, 마부에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으나 우리가 자못 감탄하던 늙은 느릅나무들이 늘어선 옛 발베크 길로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일렀다.
이 길을 알게 된 뒤로는, 색다른 맛에, 갈 때 그 길로 오지 않았다면, 돌아올 때는 샹트렌과 캉틀루의 숲을 지나는 다른 길로 돌아오곤 했다. 나무들 속에서 우리 곁 가까이 서로의 노래를 이어받던 수많은 새들의 보이지 않음은, 눈을 감았을 때 느끼는 것과 똑같은 안식의 느낌을 내게 주었다.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처럼 뒷좌석에 매인 채 나는 나의 오케아니데스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어쩌다 그 새들 중 하나가 잎에서 잎으로 옮겨 가는 것을 언뜻 보게 되어도, 그것과 내가 듣던 노래 사이에는 겉으로 드러난 연관이 어찌나 적던지, 파닥이며 놀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그 작은 몸뚱이에서 그 노래의 근원을 보고 있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 길은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같은 종류의 여러 다른 길들과 마찬가지로, 제법 가파른 비탈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나머지 길은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 무렵 나는 그 길에서 별다른 매력을 찾지 못했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훗날 내게 잦은 기쁨의 원천이 되었으니, 내 기억 속에 하나의 자석처럼 남아, 내가 산책이나 마차 나들이나 여행길에서 지나게 될 온갖 비슷한 길들이 곧바로 거기에 이음매 없이 달라붙어, 그 덕분에 내 마음과 직접 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차나 자동차가 빌파리지 부인과 함께 달리던 그 길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 듯한 이런 길들 가운데 하나로 접어들기 무섭게, 내 의식이 마치 내 과거의 가장 최근 사건에 대하듯 곧바로 매달리는 것은 (그사이 여러 해가 슬며시 지워진 채), 발베크 언저리를 마차로 돌던 그 눈부신 여름 오후와 저녁에 내가 받았던 인상들이었다. 그때 나뭇잎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고, 땅에서는 안개가 피어올랐으며, 바로 곁의 마을 너머로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가 보였는데, 그것은 마치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있는 어떤 곳, 그날 저녁 안에는 다다르지 못할 숲 속의 먼 어느 곳인 양했다. 다른 곳, 비슷한 길 위에서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어우러져, 두 경우에 다 같이 딸린 온갖 부수적인 감각들, 곧 깊이 들이쉬는 공기며 호기심, 나른함, 식욕, 마음의 가벼움에 에워싸이고 다른 모든 것은 배제된 채, 이 인상들은 한층 강해져, 어떤 특정한 종류의 즐거움의 밀도를, 나아가 삶의 어떤 배경의 밀도를 띠었으니, 마침 나는 좀처럼 그런 배경과 마주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으되, 그 안에서는 이 되살아난 기억들이, 내 감각이 지각할 수 있는 실재 한가운데에, 암시되고 꿈꾸어지며 붙잡을 수 없는 실재의 적잖은 몫을 놓아, 내가 지나가던 그 고장들 가운데서 내게 한낱 미적 감정 이상의 것을, 곧 거기 머물러 언제까지나 거기서 살고 싶다는 덧없으나 드높은 열망을 안겨 주었다. 그 뒤로 얼마나 자주, 그저 푸른 잎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빌파리지 부인 맞은편 뒷좌석에 앉아 자기 마차에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던 뤽상부르 대공비를 만나고 그랑 호텔로 저녁을 먹으러 돌아가던 일이, 현재도 미래도 우리에게 되돌려 줄 수 없는, 평생 단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그 형언할 수 없는 행복 가운데 하나로 내게 떠올랐던가.
우리가 호텔에 이르기 전에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곤 했다. 나는 머뭇거리며 하늘의 달을 가리켜 빌파리지 부인에게 샤토브리앙이나 비니나 빅토르 위고의 잊지 못할 한 구절을 읊어 보이곤 했다. “저 우수의 오랜 비밀을 사방에 흩뿌리며”라거나 “제 시냇가에서 디아나처럼 눈물지으며”라거나 “혼례의 그림자, 장엄하고도 존엄한.”
“그래, 자네는 그게 훌륭하다고 여기는 게로군?” 그녀는 이렇게 묻곤 했다. “자네 말마따나 ‘영감이 어렸다’고 말이지.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분들의 벗들이, 그 재능은 넉넉히 인정하면서도 맨 먼저 웃어넘기던 것들을 요즘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면 나는 늘 놀란다네. 그 시절엔 ‘영감’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그리 헤프게 쓰지 않았어. 요즘은 작가더러 한낱 재주가 있을 뿐이라고 하면 모욕으로 여기지만 말일세. 자네는 내게 샤토브리앙 씨가 달빛을 두고 쓴 멋들어진 구절을 읊어 주었네. 내가 왜 그렇게 삐딱한지 나름의 까닭이 있음을 곧 알게 될 걸세. 샤토브리앙 씨는 노상 우리 아버지를 찾아뵈러 오셨지. 단둘이 있을 때는 소탈하고 재미있어서 퍽 유쾌한 분이었으나, 청중이 생기는 순간 젠체하기 시작해서 우스꽝스러워졌다네. 아버지가 방에 계실 때면, 자기가 왕의 면전에 사표를 내던졌다는 둥, 콘클라베의 표결을 좌지우지했다는 둥 떠벌리면서, 정작 자기를 다시 거두어 달라고 왕께 청해 달라 부탁한 상대가 우리 아버지였다는 것도, 교황 선출을 두고 그가 세상없이 얼빠진 예측을 늘어놓는 것을 우리 아버지가 다 들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 그 유명한 콘클라베에 대해서는 블라카스 씨의 이야기를 들어 봤어야 하네. 그분은 샤토브리앙 씨와는 아주 딴판인 분이었어. 달을 두고 늘어놓던 그 멋진 문구들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손님을 대접하는 우리 집 정례 여흥거리가 되어 버렸다네. 집 언저리에 달빛이 좀 어릴라치면, 처음 묵으러 온 손님이 있을 때 저녁을 든 뒤 샤토브리앙 씨를 모시고 산책을 나가라 이르곤 했지. 들어오면 아버지가 손님을 한쪽으로 데려가 이렇게 물었다네. ‘그래, 샤토브리앙 씨가 아주 청산유수던가?’ ‘오, 그럼요.’ ‘달 이야기를 하던가?’ ‘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가만있자,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그러고는 아버지가 그 구절을 읊는 거야. ‘그랬습니다. 한데 대체 어떻게…?’ ‘그리고 로마 캄파냐에 비친 달빛 이야기를 하던가?’ ‘아니, 선생님, 마법사시로군요.’ 우리 아버지는 마법사가 아니라, 샤토브리앙 씨가 매번 똑같은 그 달 타령을 되풀이했을 뿐이라네.”
비니를 입에 올리자 그녀는 웃었다. “‘나는 알프레드 드 비니 백작이오!’ 하던 그 사람 말이지. 백작이면 백작이고 아니면 아닌 게지, 그런 건 손톱만큼도 중요치 않아.” 그러고는 어쩌면 그것이 결국 얼마쯤은 중요하다고 여겼는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선 그가 정말 백작이었는지도 나는 도무지 미덥지 않고, 어쨌든 그이는 지극히 미천한 출신이었네. 제 시구에서 ‘내 종자(從者)의 문장(紋章)’을 들먹이는 그 양반 말일세. 어찌나 고상한 취향인지, 안 그런가, 그러니 독자들에게 얼마나 흥미로울꼬! 뮈세도 마찬가지야, 한낱 파리 시민 주제에 ‘내 투구를 얹은 황금 매’를 그리도 힘주어 읊었지. 진짜 신사라면 그런 소리를 입에 담기나 하겠나! 그래도 뮈세는 시인으로서 얼마간 재주는 있었어. 하지만 나는 생마르 말고는 비니 씨의 글이라곤 단 한 편도 읽어 낸 적이 없다네. 어찌나 지루한지 책이 손에서 절로 떨어지지. 비니 씨에게 없던 그 모든 명민함과 재치를 두루 갖춘 몰레 씨는, 그를 아카데미에 맞아들이며 그 분수를 톡톡히 일러 주었지. 설마 그 연설을 모른다는 겐가? 반어와 무례의 걸작이라네.” 그녀는 발자크를 흠잡았는데, 조카들이 그를 우러르는 것을 의아해하며, 그가 “발도 들여놓지 못한” 사교계를 묘사하는 체하면서 그 묘사가 터무니없이 있음 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빅토르 위고로 말하자면, 낭만주의 운동의 젊은 기수들 가운데 벗을 둔 자기 아버지 부용 씨가 그중 몇몇에게 이끌려 에르나니 초연에 갔었으나, 그 재주는 있으되 방종한 작가의 시행들이 하도 우스꽝스러워 끝까지 앉아 있지 못했다고 그녀는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 작가는 오직 흥정을 성사시킨 덕에,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의 위험천만한 오류에 사심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는 관용을 베푼 데 대한 보답으로 “대(大)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호텔이 보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도착하던 첫날 저녁에는 그토록 매몰차던 그 불빛이, 이제는 우리를 감싸 주고 다정히 굴며 집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가 문 앞에 멎자, 문지기며 사환들이며 승강기 보이, 곧 우리가 늦은 데 주의를 기울이며 어설프게 굴고 어렴풋이 안절부절못하던 그들은, 이제 낯익어진 터라, 우리 삶이 흐르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듯 그토록 여러 번 변하는 저 존재들, 그러나 잠시나마 우리 습관의 거울이 되어 줄 때면, 우리가 충실하게, 그것도 다정한 마음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느낌에서 무언가 끌리는 데가 있는 그런 존재들 축에 들었다. 우리는 오래 못 본 벗들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데, 그들 안에는 실제 우리 모습이 더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온종일 햇볕에 나가 있던 바깥 사환만은 밤의 찬 공기를 막으려 안으로 들여져, 두툼한 모직 옷에 감싸여 있었으니, 그 불그레한 머리칼의 주황빛 광채와 볼의 유난히 붉은 홍조가 어우러져, 홀의 유리 정면 너머로 그를 보노라면 서리를 막으려 싸매어 놓은 온실 화초가 떠올랐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으나, 그들은 이 장면의 중대함을 알아채고 저마다 거기에 한몫 끼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는 늘 몹시 배가 고팠다. 그래서 이따금, 저녁 식사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어느새 참으로 내 것이 되어 그 긴 보랏빛 커튼과 나지막한 책장을 언뜻 보기만 해도 사물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게 되비쳐 주던 그 자아와 다시 홀로 마주하게 되던 그 방으로 먼저 올라가지 않고, 우리 모두 홀에서 함께 급사장이 나와 저녁 준비가 되었다고 알려 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빌파리지 부인의 이야기를 들을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