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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의 이름: 고장 (계속) ⑤

2권 제2부 · 고장의 이름: 고장 (계속)

블로크가 내가 겪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그 속물근성의 발작을 두고 나에게 말하며 내가 속물임을 실토하라고 다그쳤을 때, 나는 얼마든지 이렇게 대꾸할 수도 있었다. “내가 속물이라면 자네하고 어울려 다니지도 않을 걸세.” 나는 그저 그가 그리 정중하지는 못하다고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사과하려 들었으나, 제 잘못을 더 부풀릴 구실만 찾으면 무엇이든 기꺼이 다시 들쑤시는 배운 데 없는 사내 특유의 방식으로였다. “용서하게.” 그는 이제 우리가 만날 때마다 이렇게 사정하곤 했다. “내가 자네를 성가시게 하고 괴롭혔지. 공연히 심술을 부렸어. 그렇지만, 사람이란 대체로, 특히 자네 벗은 참으로 별난 동물이라, 자네를 이토록 모질게 놀려 대는 나, 바로 이 내가 자네에게 품은 애정이 얼마나 큰지 자넨 짐작도 못 할 거야. 자네 생각을 하면 나는 곧잘 눈물이 나기까지 한다니까.” 그러고는 소리 내어 흐느꼈다.

블로크에게서 그의 나쁜 예절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대화의 질이 얼마나 들쭉날쭉한지를 알게 된 일이었다. 명성이 절정에 오른 작가들을 두고도 “음침한 얼간이야, 순 멍청이지.” 하고 말할 만큼 여간해선 성에 차지 않던 이 젊은이가, 이따금은 도무지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를 엄청난 신명을 내며 늘어놓거나, 아무짝에도 대수롭지 않은 어떤 사내를 ‘참으로 비범한 인물’이라고 예로 들곤 했다. 사람의 재치와 값어치와 흥미로움을 재는 이 두 겹의 잣대는, 내가 아버지 블로크 에게 소개되기까지 줄곧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나는 우리가 그를 알게 되도록 허락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 아들 블로크가 생루에게는 나를 험담하고 나에게는 생루를 험담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로베르에게, 내가 (언제나) 지독한 속물이라고 말했다. “그래, 정말이지, 저 친구는 르르르르그랑댕 를 안다고 아주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이렇게 한 단어를 따로 떼어 내는 버릇은, 블로크에게 있어 빈정거림인 동시에 학식의 표시이기도 했다. 르그랑댕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생루는 어리둥절했다. “한데 그게 누군가?” “아, 그거 참 물건이지!” 블로크는 마치 온기라도 쬐려는 듯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웃었는데, 자기가 그 순간 바르베 도르비이의 인물들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 만큼 별난 어느 시골 신사의 그림 같은 면모를 그려 보고 있노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르그랑댕 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을, 그 이름 앞에 대문자 을 잔뜩 붙여 스스로 달랬으니, 가장 깊숙한 술광에서 꺼낸 포도주라도 되는 양 그 이름을 혀끝으로 음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관적인 즐거움은 남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채로 남았다. 그가 생루에게 나를 험담했다면, 나에게 생루를 그 못지않게 험담함으로써 그것을 벌충했다. 우리는 저마다 이 비방들을 이튿날 낱낱이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서로에게 그것을 옮긴 것은 아니었으니, 그런 짓은 우리에게 매우 잘못된 일로 여겨졌을 테지만, 블로크에게는 어찌나 당연하고 거의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였던지, 타고난 조바심에서, 더구나 우리 저마다가 조만간 반드시 알게 되리라는 것을 자기가 일러 주는 데 지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에서, 그는 그 폭로를 미리 앞지르는 편을 택했다. 그리하여 생루를 따로 데려가서는, 남들 입에 오르내리게 하려고 일부러 그를 험담했노라 실토하고, ‘맹세를 관장하는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를 걸고 자기가 그를 끔찍이 아낀다고,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노라 맹세하고는, 눈물 한 방울을 훔쳤다. 같은 날 그는 용케 나와 단둘이 있게 되어 제 고백을 늘어놓으며, 자기가 나를 위해 그리한 것이라고, 어떤 종류의 사교가 나에게 치명적이라고 느꼈으며 내가 ‘더 나은 것들에 값하는’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고는 술꾼의 감상에 젖어, 다만 그 취기라야 순전히 신경에서 온 것이었지만, 내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나를 믿게.” 그가 말했다. “그리고 만일 어제, 자네를, 콩브레를, 자네를 향한 나의 가없는 애정을, 자네는 기억조차 못 하는 그 오후의 수업 시간들을 떠올리며 내가 밤새 잠 못 이루고 울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검은 케르가 나를 붙잡아 사람들이 꺼리는 하데스의 문 너머로 데려가도 좋아. 그래, 밤새도록, 맹세하네, 그리고 아아, 나는 알아, 나는 사람의 마음을 아니까, 자넨 나를 믿지 않겠지.” 나는 정말이지 그를 ‘믿지 않았고’, 즉석에서 지어내어 말하는 대로 부풀려 가는 것이 느껴지던 그의 말에, ‘케르’를 걸고 하는 맹세는 별 무게를 더해 주지 못했으니, 블로크에게 있어 저 헬레니즘 숭배란 순전히 문학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감상에 젖어들어 듣는 이도 어떤 거짓말에 함께 젖어들게 하고 싶어질 때면 언제나 “맹세하네.” 하고 말하곤 했는데, 그것은 남들에게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게 하려는 것이라기보다 거짓말을 하는 데서 오는 히스테릭한 만족을 위해서였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 일로 그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으니,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훨씬 더한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조차 앙심을 품지 못하는 그 무능과, 결코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 그 버릇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블로크는 아주 못된 젊은이만은 아니었으니, 이따금은 꽤 매력적일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나 어머니처럼 티끌만큼도 오염되지 않은 존재들이 태어난 저 콩브레의 종족이 거의 씨가 마른 듯 보이는 지금, 나에게 남은 선택이라야, 목소리만 들어도 남의 삶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 대뜸 드러나는 정직하고 무디되 충직한 짐승 같은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나를 이해하고 아끼며 눈물이 날 만큼 감상에 젖다가도 몇 시간 뒤에는 나를 두고 어떤 모진 농담을 던져 앙갚음하지만, 언제나 그만큼 잘 이해하고 그만큼 매력적이며 그 순간만큼은 그토록 나에게 가까이 동화된 채로 다시 내게 돌아오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 사이의 것밖에 거의 없는 터라, 나는 도덕적 값어치는 몰라도 적어도 벗으로 사귀기로는 이 뒤엣부류 쪽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자네를 생각할 때 내가 느끼는 슬픔은 자넨 짐작도 못 할 거야.” 블로크가 말을 이었다. “가만 따져 보면 그건 내 천성의 다소 유대인다운 면이지.” 그는 비꼬듯 이렇게 덧붙이며, 마치 현미경에 올리려고 극미량의 ‘유대인 피’를 채비하기라도 하는 듯 두 눈동자를 오므렸는데, 그 모습은 조상이 죄다 기독교도이면서도 그 가운데 사뮈엘 베르나르를,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레비 가문이 그 후손이라 일컫는다는 성모 마리아까지 끼어 있을 법한 어느 프랑스 대귀족이, ‘그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두고 (결코 그러지는 않겠지만) 말했을 법한 투였다. “나는 오히려 좋아.” 그가 이어 말했다. “내 감정들 가운데, 내 유대인 혈통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그 몫에게(그래 봤자 아주 작은 몫에 지나지 않지만) 자리를 내주는 게 말이야.”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제 혈통에 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영리하면서도 용감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인데, 그러면서도 그는 그 진실을, 빚을 갚기로 마음먹었으나 절반보다 더 낼 용기는 없는 구두쇠들처럼, 놀랄 만큼 그럴싸하게 물타기해 두었다. 진실을 대놓고 선언하는 대담함을 부리되 그것을 왜곡하는 넉넉한 거짓을 섞고서야 그리하는 이런 종류의 기만은, 사람들이 여기는 것보다 흔하며, 평소에 그것을 일삼지 않는 이들에게조차 인생의 어떤 위기, 특히 사랑이 걸린 위기는 거기에 손대게 할 기회를 준다.

블로크가 생루에게는 나를 헐뜯고 내게는 생루를 헐뜯던 이 온갖 은밀한 험담은 결국 만찬 초대로 이어졌다. 그가 먼저 생루만 따로 붙잡으려 해 보지 않았으리라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짓이야말로 블로크다운 것이어서 아마 그랬을 테지만, 그랬다 해도 그 시도가 성공으로 끝나지는 못했으니, 어느 날 블로크가 이렇게 말한 상대는 나와 생루 둘 다였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스승이여, 그리고 그대, 아레스의 사랑을 받는 기사, 말을 길들이는 생루앙브레여, 물거품이 이는 암피트리테의 물가, 날랜 배를 거느린 메니에가의 천막 곁에서 그대들을 만났으니, 이번 주 아무 날에나 둘이 함께 흠 없는 마음을 지닌 나의 고명한 아버님과 저녁을 드시겠소?” 그가 이 초대를 내민 것은 생루에게 더 바싹 달라붙고 싶어서였는데, 생루가 자기에게 귀족 사회로 들어설 자격을 얻어 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나를 위해 품었다면 이런 야심은 블로크에게 더없이 추악한 속물근성의 표시로 보였을 테고, 그가 내 본성의 어느 한 면을 두고 이미 갖고 있던 견해, 즉 그것을 내 본성의 가장 중요한 면으로 여기지 않던, 적어도 그때까지는 여기지 않던 견해와 딱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야심이 제 안에 있을 때는, 어쩌면 얼마간 문학적 소득을 거둘 수도 있을 어떤 사교적 탐사를 해내려는, 호기심이 잘 발달한 정신의 증거로 보였다. 아들이 친구 하나를 저녁에 데려오겠다고 말하면서 그 친구의 이름과 작위를 비꼬는 듯하면서도 흡족한 어조로 또박또박 밝혔을 때, 즉 “생루앙브레 후작”이라고 했을 때, 블로크 어르신은 크게 동요했다. “생루앙브레 후작이라! 이거 놀랄 노릇이군!” 그는 이렇게 외쳤는데, 이 감탄사는 그에게 사회적 경의를 나타내는 가장 강한 표시였다. 그러고는 그런 교분을 맺을 줄 아는 아들에게, 마치 “정말이지, 놀랍구나. 이 신동이 정말 내 자식이란 말인가?” 하고 말하는 듯한 감탄의 눈길을 던졌는데, 그것은 내 친구에게 다달이 받는 용돈이 오십 프랑 오른 것만큼이나 큰 기쁨을 주었다. 블로크는 제 집에서는 물 만난 고기가 아니었고, 르콩트 드 릴과 에레디아를 비롯한 다른 “보헤미안들”을 평생 흠모한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자기를 길 잃은 양처럼 취급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수에즈 운하 이사회 회장을 지낸 생루앙브레와 알고 지내게 되었다는 것은(“이거 놀랄 노릇이군!”) 반박할 수 없는 “성과”였다. 여행길에 깨질까 봐 입체경을 파리에 두고 온 것이 얼마나 아쉬운 일이었던가. 사람들 가운데 오직 블로크 어르신만이 그것을 선보이는 재주를, 아니 적어도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주 드문 경우에만, 그것도 요긴하게, 고용한 급사들까지 부리는 정식 연회가 있는 저녁에만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이 입체경 시연에서는 자리한 이들에게 이를테면 특별한 격, 특권적인 지위 같은 것이 배어 나왔고, 그것을 베푸는 집주인에게는 재능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과 같은 명성이 따라붙었으니, 사진을 블로크 가 직접 찍고 기계도 그가 발명한 것이었다 한들 그보다 더 큰 명성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네 어제 솔로몬네 초대 못 받았나?” 집안 식구 하나가 다른 이에게 물었다. “못 받았지! 나는 선택받은 축에 못 들었어. 뭐가 있었는데?” “아, 대단한 소동이었지, 입체경에다 온갖 신기한 것들까지 다!” “그래! 입체경이 있었다면 못 간 게 아쉽군. 솔로몬이 그걸 다루는 솜씨가 아주 기막히다던데.” “어쩔 수 없지.” 이제 블로크 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 애한테 한꺼번에 다 보여 주는 건 잘못이야. 그러면 앞으로 기대할 게 하나도 안 남잖니.” 그는 실제로 아비의 정으로, 아들의 마음을 움직여 볼 요량으로 그 기계를 가지러 사람을 보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니 없으리라고들 여겼다. 생루가 호텔을 떠날 수 없어 만찬을 미뤄야 했기 때문인데, 그는 빌파리지 부인과 며칠을 보내러 오는 삼촌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삼촌은, 체력 단련에, 특히 오래 걷기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이라, 머물던 시골 저택에서 발베크까지 대부분 걸어서, 길가 농가에서 밤을 지새우며 오려 했으므로, 그가 발베크에 도착할 정확한 날짜는 도무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루는 문밖에 나서기조차 겁내어, 날마다 정부에게 보내는 전보를 가장 가까운 전신국이 있는 앵카르빌까지 부치는 일마저 내게 맡겼다. 우리가 기다리던 그 삼촌은 팔라메드라 불렸는데, 시칠리아 대공이던 그의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훗날 내가 역사를 읽다가 이런저런 포데스타나 교회의 대공에게 같은 세례명이 붙어 있는 것을, 대대로 바티칸의 진열장에서 내 친구의 삼촌에게로 전해 내려오며 늘 그 가문에 남아 있던, 누구는 진짜 고대 유물이라고도 하던 어느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 메달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재력이 없어 메달 수집이나 그림 전시실을 시작하지 못한 채 옛 이름들을(옛 지도나 조감도, 간판이나 세관 장부처럼 교훈적이고 그림 같은 지명들, 그리고 그 고운 프랑스어 어미에서 발음의 결함, 종족적 상스러움의 억양, 우리 조상들이 라틴어와 색슨어 낱말에 지속적인 훼손을 가해 마침내 그것이 우리 문법책의 존엄한 입법자가 되게 한 그릇된 발음이 또렷이 울려 나오는 세례명들을) 찾아 다니는 이들에게, 요컨대 자기가 모은 오래되고 낭랑한 낱말들을 끌어다, 지난날의 음악을 옛 악기로 연주하려고 비올라 다 감바와 비올 다무르를 사들이는 사람들처럼 스스로에게 음악회를 베푸는 이들에게만 예비된 즐거움을 느꼈다. 생루의 말로는, 삼촌 팔라메드는 가장 배타적인 귀족 사회에서조차 유난히 다가가기 어렵고 오만하며, 뼛속까지 귀족 티가 나는 사람이라는 남다른 특징을 지녔고, 형수와 몇몇 선택된 인물들과 더불어 이른바 ‘피닉스 클럽’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거기서도 그의 오만함이 어찌나 두려움을 샀던지, 그를 만나고 싶어 그의 친형에게 소개를 청했던 지체 높은 사람들이 거절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내 아우 팔라메드에게 소개해 달라고는 청하지 마시오. 내 아내와 나, 우리 모두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건 소용없는 일이오. 게다가 그 애가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 위험이 늘 있는데,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으니.” 조키 클럽에서 그는 친구 몇몇과 함께, 자기들에게는 결코 소개되도록 두지 않을 회원 이백 명의 명단을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파리 백작의 모임에서 그는 그 기품과 자부심 때문에 ‘대공’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생루는 이제는 오래전이 된 삼촌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삼촌은 날마다 여자들을 데리고, 자기만큼이나 잘생긴 두 친구와 함께 쓰던 독신자 처소로 갔는데, 그 때문에 그들 셋은 ‘삼미신(三美神)’으로 통했다.

“하루는, 발자크의 말마따나 지금은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아주 주목받는 사람이지만 젊은 시절 좀 난처한 무렵에는 별난 취향을 드러내던 어떤 남자가, 삼촌에게 그곳에 오게 해 달라고 청했지.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그는 여자들이 아니라 삼촌 팔라메드에게 수작을 걸기 시작한 거야. 삼촌은 못 알아들은 척하며 핑계를 대고 두 친구를 불러오게 했지. 그들이 나타나 그 무례한 자를 붙잡아 옷을 벗기고 피가 나도록 두들겨 팬 다음, 바깥은 영하 이십 도인데 발로 차서 거리로 내쫓았어. 그자는 초주검이 되어 발견되었고, 급기야 경찰이 수사에 나섰는데 그 가엾은 작자는 수사를 그만두게 하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더군. 삼촌은 이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결코 쓰지 않을 테지만, 사교계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도도하면서도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애정을 보이고 감싸 준 이가 얼마나 많은지 자네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그 보답이 배은망덕뿐일지라도 말이지. 호텔에서 자기 시중을 든 하인이라면 파리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농장 일꾼이라면 기술을 배우도록 돈을 대 주는 식이지. 그게 정말이지 삼촌 성격의 꽤 괜찮은 면이야, 사교적인 면과는 대조되는.” 과연 생루는, “그 사람의 정말 괜찮은 점은”, “그의 꽤 괜찮은 면” 같은 표현을 갈고닦을 수 있는 높이에 자리한 그런 유의 멋쟁이 청년에 속했으니, 그것은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람들”은 전부인 것으로 여기게 하는 사고방식을 아주 빠르게 자라나게 하는 값진 씨앗, 한마디로 평민의 자만심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삼촌이 젊었을 때 어떻게 사교계 전체의 유행을 만들고 법도를 정했는지, 도무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삼촌은 오로지 자기를 위해 행동했어.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마음에 드는 것, 가장 편한 것을 했을 뿐인데, 그러면 곧바로 속물들이 그걸 따라 하기 시작했지. 극장에서 목이 말라 특별석에서 사람을 내보내 마실 걸 시키면, 일주일 뒤엔 특별석마다 뒤에 딸린 작은 응접실이 죄다 음료로 채워졌어. 어느 비 많은 여름, 삼촌이 류머티즘 기운이 있어 헐렁하지만 따뜻한 비쿠냐 모직으로, 여행용 무릎덮개에나 쓰이는 그 천으로 얼스터 외투를 맞추면서 파랑과 주황 줄무늬가 드러나게 두었더니, 큰 재단사들마다 손님들에게서 파랑 주황 거친 모직 얼스터를 지어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됐지. 하루 묵으러 간 시골 저택의 만찬에서 격식의 흔적을 죄다 없애고 싶어, 그 점을 분명히 하려고 야회복도 없이 와서 그날 오후에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식탁에 앉으면, 시골에서 저녁을 들 때는 정장을 차려입지 않는 것이 유행이 됐어. 무슨 특별한 디저트를 먹으면서 숟가락 대신 나이프를 쓰거나, 은세공인에게 맞춰 만든 자기만의 특별한 도구를 쓰거나, 손가락을 쓰면, 곧바로 그걸 다른 식으로 먹는 것이 잘못된 일이 되어 버렸지. 한번은 베토벤 4중주를 다시 듣고 싶어 하셔서(온갖 터무니없는 생각을 다 하셔도 바보는 아니야, 알겠지만, 대단한 재능을 지닌 분이거든) 음악가 몇을 불러 매주 한 번씩 자기와 친구 몇에게 연주하게 했어. 그해 최고로 유행한 것이 실내악을 곁들인 아주 조촐한 모임이었지. 삼촌이 인생을 꽤 잘 살아온 편이라고 해야겠어. 그 외모로 여자가 수도 없이 많았을 거야!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말 못 해, 워낙 입이 무거우시니까. 하지만 내 가엾은 숙모에게는 완전히 부정했다는 건 알지. 그렇다고 숙모에게 늘 더없이 다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고, 숙모도 삼촌을 흠모했어. 삼촌은 여러 해 동안 숙모의 상을 입었지. 파리에 있을 때면 지금도 거의 매일 묘지에 간다니까.”

로베르가 삼촌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다음 날 아침, 그가 삼촌을 기다리는 동안(공교롭게도 헛되이 기다렸다) 나 혼자 카지노를 지나 호텔로 돌아오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마흔쯤 된 남자가 보였는데, 키가 아주 크고 다소 뚱뚱했으며, 몹시 짙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회초리로 바짓가랑이를 툭툭 치면서, 관찰로 크게 벌어진 두 눈을 내게 고정하고 있었다. 이따금 그 눈에는 격렬한 활기의 빛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것은 모르는 사람을 볼 때, 무슨 까닭에서든 남들은 하지 않을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이들, 이를테면 미치광이나 첩자 같은 이들에게서만 이는 그런 빛이었다. 그는 대담하면서도 신중하고, 재빠르면서도 깊은 지극한 응시를 내게 쏟았는데, 그것은 마치 달아나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적을 향해 쏘는 마지막 한 방 같았다. 그러고는 먼저 주위를 두루 둘러본 뒤, 갑자기 딴 데 정신이 팔린 듯 도도한 태도를 취하며, 온몸을 홱 돌려 벽에 붙은 공연 벽보를 살피기 시작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단춧구멍에 꽂은 이끼장미를 만지작대는 사이 그것을 읽는 데 몰두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예고된 공연 제목을 받아 적는 듯하더니, 두세 번 시계를 들여다보고, 검은 밀짚모자를 눈 위로 끌어내리고는 그 위로 손을 차양처럼 뻗어 챙을 늘이며, 마침내 누군가 오는지 보려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실제로 누군가를 기다릴 때는 결코 하지 않는, 오래 기다렸음을 드러내려는 사람들 특유의 짜증 섞인 형식적인 몸짓을 해 보이더니, 모자를 뒤로 젖혀, 옆머리만은 물결치는 ‘비둘기 날개’ 모양으로 꽤 길게 기르고 정수리는 바싹 깎은 머리를 드러낸 채, 별로 덥지도 않으면서 더운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내는 요란한 헐떡임을 토해 냈다. 그는 며칠 전부터 할머니와 나를 지켜보다가, 우리를 털 궁리를 하던 차에 내가 자기가 염탐하는 현장을 들켰다는 걸 방금 알아챈 ‘호텔 도둑’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나를 딴 데로 따돌리려고, 어쩌면 그는 그 새로운 태도로써 그저 지루함과 무심함을 나타내려던 것뿐인지도 모르나, 그 과장이 어찌나 공격적이었던지, 그의 목적은, 내가 그에게 품었을 의심을 흩뜨리려는 것 못지않게, 나도 모르게 그에게 안겼을 어떤 모욕을 되갚으려는 것, 곧 그가 나를 못 봤다기보다 내가 그의 눈길을 끌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허세 부리듯 어깨를 젖히고, 입술을 깨물고, 콧수염을 밀어 올리고는, 눈의 수정체에다 무언가 무심하고 매몰차며 거의 모욕적인 것을 맞춰 넣었다. 어찌나 효과적이었던지 그 표정의 유별남 때문에 나는 어느 순간에는 그를 도둑으로, 또 어느 순간에는 미치광이로 여겼다. 그런데도 빈틈없이 정돈된 그의 옷차림은 발베크에서 내가 본 어느 여름 피서객들의 것보다도 훨씬 수수하고 훨씬 단순했으며, 그들의 눈부시고 흔해빠진 새하얀 휴가 차림에 그토록 자주 주눅 들던 내 옷에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그때 할머니가 내게로 다가와 우리는 함께 한 바퀴 거닐었고, 한 시간 뒤 할머니가 잠깐 들른 호텔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로베르 드 생루와, 카지노 밖에서 나를 그토록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낯선 사람과 함께 빌파리지 부인이 호텔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번갯불처럼 재빠르게 그의 눈길이 나를 꿰뚫었는데, 내가 그를 처음 알아챘던 순간과 꼭 같았다. 그러더니 그 눈길은, 마치 나를 못 본 듯이, 다시 눈앞에서 약간 내리깔린 채 맴돌았고, 밖의 아무것도 보지 않는 척하면서 안의 정신에 무엇 하나 전할 줄 모르는 무심한 시선처럼 흐릿해졌다. 그것은 제 둘레의 눈꺼풀을, 그 위선적으로 둥근 모양으로 갈라 놓으며 그 눈꺼풀을 느끼는 만족만을 드러내는 시선, 어떤 위선자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그 경건하고 독실한, 흠뻑 젖은 듯한 시선, 어떤 바보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흡족한 시선이었다. 나는 그가 옷을 갈아입었음을 알아챘다. 그가 입은 옷은 아까 것보다도 더 어두웠다. 옷차림에서 참된 기품은 거짓된 기품보다 소박함에 더 가까이 있는 법이니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보면, 이 옷들에서 색이 거의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그 색을 거기서 몰아낸 그가 색에 무심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슨 까닭에서인지 스스로에게 그 즐거움을 금했기 때문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옷들이 드러내는 절제는 식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식이요법의 규칙에 복종해서 생겨나는 그런 종류의 것으로 보였다. 짙은 초록 실 한 올이 그의 바지 천 속에서 양말의 무늬와 어우러졌는데, 그것은 다른 데서는 죄다 억눌린 취향의 발랄함을, 그 약점을 봐주는 셈치고 유일하게 허락된 이 하나의 양보 속에 드러내는 세련됨이었으며, 넥타이의 붉은 점 하나는, 감히 누리지 못하는 자유처럼,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안녕하세요? 제 조카를 소개하죠, 게르망트 남작이에요.” 빌파리지 부인이 내게 인사를 건넸고, 그동안 그 낯선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어렴풋이 “반갑소!” 하고 중얼거리더니, 그 상냥함에 억지로 하는 듯한 기색을 입히려고 “흠, 흠, 흠” 소리를 뒤에 붙였다. 그러고는 새끼손가락과 집게손가락과 엄지를 도로 접고,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 두 개를 내게 내밀었는데, 약손가락에는 반지 하나 끼여 있지 않았고, 나는 그의 스웨이드 장갑 너머로 그것을 잡았다. 그런 다음 그는 내 얼굴로 눈을 들지도 않은 채 빌파리지 부인 쪽으로 돌아섰다.

“어머나, 이러다 내 이름까지 잊어버리겠네!” 그녀가 소리쳤다. “글쎄 내가 자넬 게르망트 남작이라 부르다니. 샤를뤼스 남작을 소개하지요. 하긴 그리 큰 실수도 아니에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다른 무엇이든 간에 어엿한 게르망트 사람이니까요.”

이때쯤 할머니가 다시 나타났고, 우리는 다 함께 길을 나섰다. 생루의 삼촌은 내게 말 한마디는커녕 눈길 한 번 주는 것조차 마다했다. 낯선 사람들은 뚫어지게 쳐다보아 무안하게 만들면서도(이 짧은 나들이 동안 그는 두세 번, 마침 지나가던, 보아하니 미천한 태생의 하찮은 사람들에게 그 무섭고 캐묻는 듯한 응시를 측연(測鉛)처럼 내던졌다), 그 대신 그는, 내 경우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자기가 아는 사람들은 단 한순간도 쳐다보지 않았으니, 마치 특별 임무를 띤 형사가 사사로운 벗들만은 직업적 경계에서 빼놓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와 할머니와 빌파리지 부인이 서로 이야기하도록 두고 뒤로 처져 생루와 나란히 걸었다.

“말해 봐, 방금 빌파리지 부인이 자네 삼촌더러 게르망트 사람이라고 하는 걸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당연하지. 팔라메드 드 게르망트야.”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