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브레 근처에 영지가 있고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후손임을 내세우는 그 게르망트가는 아니지?”
“바로 그 집안이지. 문장학이며 그런 온갖 것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인 우리 삼촌 말로는, 우리 ‘함성’, 그러니까 전투 구호가 나중에 ‘파사방’으로 바뀌긴 했지만 본래는 ‘콩브레지스’였다는군.” 그는, 반쯤 왕가에 속하는 가문들, 봉건 무리를 거느린 큰 우두머리들만이 누리던 ‘함성’이라는 이 특권을 뽐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금 그 영지를 가진 건 삼촌의 형이야.”
그러니까 이 빌파리지 부인은 정말로, 그것도 아주 가까이 게르망트가와 친척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그토록 오래도록, 어릴 적 초콜릿을 채운 오리 인형을 준 부인, 그 무렵 게르망트 쪽과는 메제글리즈 어딘가에 갇혀 있는 편이 차라리 나을 만큼 멀게 느껴지던, 콩브레의 안경사보다도 내 눈에는 덜 빛나고 덜 높은 자리에 있던 그 부인이, 이제 느닷없이, 우리가 지닌 다른 것들의 못지않게 뜻밖인 가치 하락과 나란히 일어나는 그 놀라운 가치 상승 가운데 하나를 겪은 것이었으니, 이 상승과 하락은 다 같이, 우리 젊은 시절에, 그리고 젊음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인생의 그 시기들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만큼이나 숱한 변화를 우리 안에 불러들인다.
“거기, 그 아래에 옛 게르망트 영주들의 흉상이 다 있지 않아?”
“응, 아주 볼만한 광경이지!” 생루가 빈정댔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죄다 좀 우스운 걸로 봐. 하지만 게르망트에는 좀 더 흥미로운 게 있는데, 카리에르가 그린 우리 숙모의 초상화야, 아주 마음을 울리는. 휘슬러나 벨라스케스만큼이나 훌륭하지.” 생루는 이렇게 말을 이었는데, 갓 입문한 이의 열의로 위대함의 등급에 대해서는 늘 그리 정확하지가 않았다. “귀스타브 모로의 감동적인 그림 몇 점도 있어. 우리 숙모는 자네 친구인 빌파리지 부인의 조카딸이야. 그분 손에 자랐고, 사촌과 결혼했는데, 그 사촌도 빌파리지 숙모의 조카였어, 바로 지금의 게르망트 공작이지.”
“그럼 이 삼촌은 누구야?”
“삼촌은 샤를뤼스 남작이라는 작위를 지녔어. 엄밀히 말하면 우리 종조부가 돌아가셨을 때 삼촌 팔라메드가 데 롬 대공 칭호를 물려받았어야 했지, 형이 게르망트 공작이 되기 전에 쓰던 그 칭호 말이야. 그 집안에서는 셔츠 갈아입듯 이름을 바꾸거든. 하지만 삼촌은 그런 온갖 것에 대해 별난 생각을 가지고 있어. 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대공이니 스페인 대귀족이니 하는 걸 지나치게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서, ‘대공’ 칭호를 예닐곱 개나 골라 쓸 수 있는데도 항의하는 뜻으로 샤를뤼스 남작으로 남아 있어,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감춘 태도로 말이야. ‘요즘은,’ 삼촌이 이러시지. ‘누구나 무슨무슨 대공이야. 정말이지 남과 구별되는 칭호를 하나 가져야 해. 나는 남몰래 여행하고 싶을 때나 대공을 자처하겠네.’ 삼촌 말로는 샤를뤼스 남작위보다 더 오래된 작위는 없다는 거야. 그게 몽모랑시 작위보다 앞선다는 걸 자네에게 증명하려고, 그 집안이 프랑스 제일의 남작이라고, 실은 자기네 영지가 있던 일드프랑스에서나 으뜸이었을 뿐인데 아주 그릇되게 주장하곤 했다면서, 삼촌은 몇 시간이고 자네에게 설명할 거고 그걸 즐길 거야. 아주 똑똑하고 정말 재능 있는 분인데도 그런 걸 아주 살아 있는 대화거리로 여기거든.” 생루가 다시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나는 삼촌과 달라서, 나한테 족보 얘기를 시키진 마. 그것보다 더 따분하고 진 빠지는 건 없으니까. 정말이지 인생은 그러기엔 너무 짧아.”
이제 나는, 그날 아침 카지노 밖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든 그 매서운 눈길에서, 스완 부인이 질베르트를 불러 데려가던 순간 탕송빌에서 내게 고정되어 있던 것을 본 바로 그 눈길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얘기해 준, 삼촌 샤를뤼스 씨가 거느렸다는 그 숱한 정부들 중에 스완 부인도 하나 있지 않았어?”
“저런, 아니야! 그러니까, 삼촌은 스완의 절친한 친구고 늘 그를 편들어 왔어. 하지만 삼촌이 스완 아내의 정부였다고는 아무도 넌지시라도 말한 적이 없어. 자네가 그렇게 믿는다고 사람들이 여긴다면 파리 사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걸.”
내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여긴다면 콩브레 사교계에서는 더 큰 파문을 일으켰으리라는 말은, 나는 감히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샤를뤼스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는 출생과 사회적 지위의 온갖 문제에 지나친 중요성을 두었고 할머니도 그 점을 알아챘지만, 대개 그런 태도에 배어 있는, 남이 자기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이점을 누리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은밀한 시샘과 짜증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한편 할머니는 자기 처지에 만족하며 더 화려한 세계에 들지 못한 것을 한순간도 아쉬워하지 않았으므로, 샤를뤼스 씨의 별난 구석을 관찰하는 데 오직 지성만을 썼고, 그래서 생루의 삼촌 이야기를,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 사심 없는 관찰의 대상에게 그 즐거움에 대한 보답으로 보내는 그 초연하고 미소 어린, 거의 다정하기까지 한 호의로 했으니, 더욱이 이번에는 그 대상이, 정당하지는 않을지언정 어쨌든 그림처럼 흥미로운 그의 허세로 하여, 그녀가 평소 볼 일이 있던 사람들과 뚜렷이 대조되는 인물이었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의 귀족적 편견을 그토록 선뜻 용서한 것은 특히 그의 지성과 감수성을 헤아려서였으니, 생루가 조롱하던 사교계의 그 숱한 사람들과 달리 샤를뤼스 씨가 그 두 가지를 두드러지게 지녔음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편견은, 조카에게서처럼 더 높은 자질을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샤를뤼스 씨는 그것을 그런 자질들과 화해시켰다. 느무르 공작가와 랑발 대공가의 후손인 덕에, 문서와 가구와 벽걸이 융단, 라파엘로와 벨라스케스와 부셰가 그의 조상들을 위해 그린 초상화들을 지니고 있어, 집에서 그저 집안의 유물을 뒤적이면서도 박물관과 견줄 데 없는 서고를 둘러보는 중이라고 말할 만한 그는, 조카가 끌어내려 놓은 그 자리에 귀족의 유산 전체를 다시 올려놓았다. 어쩌면 또한, 생루보다 덜 형이상학적이고 말에 덜 만족하며 인간을 살피는 데 더 현실주의적이었던 그는, 남들 눈에 비치는 자기 위신에 요긴한 요소 하나를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니, 그것은 그의 상상력에 어떤 사심 없는 즐거움을 주는 한편, 그의 실리적인 활동에는 흔히 강력하고 효과적인 보탬이 될 수도 있었다.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자기 안의 이상에 복종하여 오직 그 이상을 실현하려고 그런 이점들을 죄다 벗어 던지라는 재촉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합의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후자는, 이 점에서, 기교를 저버리는 화가와 작가, 스스로를 현대화하는 예술적 민족, 보편적 군비 축소의 첫걸음을 내딛는 호전적 민족, 민주적으로 돌아서서 가혹한 법을 폐지하는 절대 정부와 닮았는데, 그 뒤가 그 고귀한 노력에 보답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사람은 재능을 잃고, 나라는 오랜 우위를 잃으니, ‘평화주의’는 흔히 전쟁을 곱절로 늘리고 관용은 범죄를 곱절로 늘린다. 생루의 성실함과 해방을 향한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판단하건대 더없이 고귀하다고 칭찬받을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샤를뤼스 씨에게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그래도 고맙게 여길 수는 있었다. 그는 조카처럼 르부르나 기요맹을 써서 ‘모던 스타일’의 장식으로 갈아치우는 대신, 게르망트 저택의 그 훌륭한 벽 판장을 상당 부분 자기 집으로 옮겨 왔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샤를뤼스 씨의 이상이 몹시 인위적이며, 이상이라는 말에 그런 형용을 붙일 수 있다면, 예술적인 만큼이나 사교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두 세기 전 그 여자 조상들이 옛 질서의 온갖 영광과 우아함을 함께 누렸던, 빼어나게 아름답고 보기 드물게 교양 있는 어떤 여인들에게서 그는 어떤 기품을 발견했고, 그래서 오직 그들과 어울리는 데서만 즐거움을 느꼈다. 그가 그들에게 품은 흠모가 진실하다고 항변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들의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역사적, 예술적 회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그 속에 들어와 그 큰 부분을 이루었으니, 마치 고전 고대의 암시가, 애서가의 마음을 차갑게 내버려 둘 오늘날의 시들보다 어쩌면 못한 호라티우스의 송가 한 편을 읽으며 그가 느끼는 즐거움의 한 이유가 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여인들 가운데 아무나 하나가 예쁘장한 평민 여자 곁에 있으면, 그에게는 마치, 행렬이나 혼례를 그린 당대의 화폭 옆에 걸린, 우리가 그 내력을 아는 그 옛 그림들과 같았다. 그것을 주문한 교황이나 국왕에서 시작해, 선물이나 구매나 정복이나 상속으로 그것을 손에 넣은 이들의 손을 거치는 그 내력은 우리에게 어떤 사건이나 적어도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어떤 인연을 떠올리게 하고, 따라서 우리 스스로 얻은 어떤 지식을 떠올리게 하여, 그 그림에 새로운 쓸모를 주고, 우리 기억이나 학식이 지닌 재산의 풍요로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키운다. 샤를뤼스 씨는, 자기 것과 비슷한 어떤 편견이, 이 몇몇 위대한 귀부인들이 피가 덜 순수한 여자들과 섞이는 것을 막음으로써, 그들을 흠 없이, 변함없는 고귀함 그대로, 마치 분홍 대리석의 납작한 기둥 위에 떠받쳐진, 세월이 흘러도 아무 변화도 새겨 넣지 못한 18세기 저택의 정면처럼, 그의 경배 앞에 내주었음을 고맙게 여길 만도 했다.
샤를뤼스 씨는 이런 여인들의 특징인 정신과 마음의 참된 “고귀함”을 칭송했는데, 그 말을 이중의 뜻으로 놀리듯 썼고 정작 자기가 거기에 넘어가 있었으니, 바로 거기에 이 잡종 관념, 곧 귀족성과 관대함과 예술이 뒤섞인 이 혼합물의 허위가 있었으나, 동시에 그 유혹하는 힘도 있어서, 할머니 같은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것이었다. 오직 문장(紋章)의 사분면에만 마음을 쓰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귀족의 덜 세련되었으되 더 순진한 편견이라면 할머니에게는 말도 안 되게 어리석어 보였겠지만, 어떤 것이 정신적 우월함의 외양을 쓰고 나타나기만 하면 할머니는 속수무책이었으니, 급기야 그녀는 대공들을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부러운 존재로 여겼는데, 그들이 라브뤼예르나 페늘롱 같은 이를 가정교사로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랑 호텔 앞에서 세 명의 게르망트 사람은 우리를 떠났다. 그들은 뤽상부르 대공비와 오찬을 함께하러 가는 길이었다. 할머니가 빌파리지 부인에게, 생루가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동안, 그때까지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던 샤를뤼스 씨가 무리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내 곁에 이르러 말했다. “오늘 저녁 만찬 뒤에 나는 숙모 빌파리지 방에서 차를 들 참이오. 그대와 그대의 할머니를 거기서 뵙는 기쁨을 주었으면 하오.” 그 말과 함께 그는 후작부인에게로 돌아갔다.
일요일이었는데도 이제 호텔 밖에 대기하는 마차는 철이 시작될 무렵보다 많지 않았다. 특히 그 변호사의 아내는, 캉브르메르가에 가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그 때문에 매번 마차를 세내는 것은 그럴 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판단하고는, 자기 방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했다.
“블랑데 부인은 편찮으신가요?” 사람들이 그녀의 남편에게 물었다. “온종일 못 뵈었네요.”
“머리가 좀 아프답니다. 더위 탓이에요, 천둥이 올 모양이거든요. 사소한 것에도 몸이 상하는 사람이라. 하지만 저녁에는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내려오는 게 좋겠다고 일러 뒀거든요. 해로울 건 없을 테니까요.”
나는 이렇게 자기 숙모와 함께 차를 들자고 우리를 청한 것을 두고, 그가 우리가 간다고 숙모에게 틀림없이 미리 일러 두었으리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샤를뤼스 씨가 그날 아침 산책 중에 내게 보인 무례를 만회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우리가 빌파리지 부인의 방에 들어서서 내가 그 조카에게 인사하려 했을 때, 그를 빙 돌아 앞까지 갔는데도,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제 친척 하나에 관한 다소 심술궂은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그것도 꽤 큰 소리로 말해 내가 왔음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미 그것을 알아챘음을 깨달았으니, 내 입에서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내가 그에게 막 고개를 숙이려던 참에, 그가 나를 돌아보지도 이야기를 멈추지도 않은 채 손가락 두 개를 내밀어 잡으라고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나를 보았으면서도 본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이고, 그때 나는 그의 눈이, 말을 건네는 상대에게는 결코 고정되는 법 없이, 겁먹은 어떤 짐승들의 눈처럼, 혹은 떠벌리며 불법 상품을 늘어놓으면서도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언제 어디서 불쑥 경찰이 나타날지 모르는 지평선의 여러 지점을 날카롭게 살피는 거리 행상들의 눈처럼, 끊임없이 사방으로 헤맨다는 것을 알아챘다. 동시에 나는 빌파리지 부인이 우리를 반가워하면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지는 않아 조금 놀랐고, 샤를뤼스 씨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을 듣고는 더욱 놀랐다. “아! 우리를 찾아 주다니 정말 훌륭한 생각이셨습니다. 참 반가운 일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숙모님?” 그는 분명 우리가 들어설 때 숙모가 놀라는 것을 눈치챘고, 유행을 선도하고 적절한 분위기를 잡는 데 익숙한 사람답게, 자기가 몸소 그 기쁨을 느끼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도착이 마땅히 불러일으켰어야 할 감정임을 보여 주기만 하면 그 놀라움을 기쁨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리라 여겼다. 그 점에서 그는 현명하게 계산했으니, 조카를 높이 평가하고 그를 기쁘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던 빌파리지 부인은 문득 할머니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듯 계속 그녀를 극진히 대했다. 그러나 나는 샤를뤼스 씨가 몇 시간 사이에, 바로 그날 아침 내게 건넨 그 초대를, 그토록 퉁명스러웠으되 보아하니 그토록 일부러, 그토록 미리 마음먹고 한 그 초대를 어떻게 잊을 수 있었는지, 아니 왜 온전히 자기 생각이었던 것을 할머니의 “훌륭한 생각”이라 부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확함을 따지는 조심성으로, 그러니까 남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그에게 물어서 알아내는 것이 아니며, 아마도 남모르게 지나갈 오해의 위험이 눈먼 고집에서 올지 모를 위험보다 작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내가 간직하고 있던 그 조심성으로, 나는 그에게 일깨웠다. “하지만 선생님, 오늘 저녁에 우리가 와 주겠느냐고 제게 물으신 건 바로 선생님이었잖아요, 기억하시죠?” 샤를뤼스 씨가 내 물음을 듣기라도 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소리나 몸짓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외교관처럼, 혹은 오해가 생긴 뒤 지치지도 보답받지도 못하는 열의로, 상대가 끝내 해 주지 않기로 작정한 해명을 얻어 내려 애쓰는 젊은이들처럼, 그 물음을 되풀이했다. 그래도 샤를뤼스 씨는 내게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높은 데서 아랫사람들의 인품과 됨됨이를 판단하는 자들의 그 미소가 그의 입가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가 아무 해명도 하려 들지 않았으므로, 나는 스스로 하나를 마련해 보려 했으나, 여럿 사이에서 망설이는 데 그쳤을 뿐, 그중 어느 것도 옳은 것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어쩌면 그날 아침 그가 내게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 쪽이 나인지도 몰랐다. … 그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그가 자기가 경멸하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했던 것처럼 보이기를 원치 않아서, 오히려 그 침입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려 한 것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가 우리를 경멸했다면, 왜 그토록 우리가 오기를, 아니 할머니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을까. 우리 둘 가운데 그날 저녁 그가 말을 건넨 것은 오직 할머니뿐이었고 내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할머니에게, 또 빌파리지 부인에게도 더없이 활기차게 이야기하면서, 말하자면 그들 뒤에 몸을 숨긴 채, 마치 극장 특별석 안쪽에 앉은 듯이, 그는 이따금 그들에게서 그 꿰뚫는 눈의 탐색하는 시선을 돌려, 마치 내 얼굴이 판독하기 어려운 원고이기라도 한 양, 똑같은 진지함과 똑같은 골똘한 기색으로 그것을 내 얼굴에 붙박는 것으로 만족했다.
물론 그 눈이 없었다면 샤를뤼스 씨의 얼굴은 잘생긴 여느 남자들의 얼굴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언젠가 생루가 다른 여러 게르망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그들에게는 팔라메드 삼촌이 지닌 그 순종(純種)의 기품, 손끝까지 신사인 그 티가 없어!” 하고 말해, 순종의 기품과 귀족의 품격이란 무언가 신비롭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렵잖게 알아보았으되 거기서 어떤 특별한 인상도 받지 못했던 요소들로 이루어졌다는 내 짐작을 확인해 주었을 때, 나는 내 또 하나의 환상이 깨졌음을 느끼게 될 터였다. 그러나 옅은 분 한 겹이 거의 무대 위 얼굴 같은 모습을 준 그 얼굴에, 샤를뤼스 씨가 아무리 그 표정을 빈틈없이 봉인해 두려 한들 헛일이었다. 그의 눈은 두 개의 틈새, 그가 미처 막지 못한 유일한 두 개의 총안(銃眼) 같아서, 그 앞에서 어디에 서 있느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사람은 문득 어떤 내부의 기관이 뿜어내는 불빛이 자기를 가로질러 번뜩이는 것을 느꼈으니, 그 기관은 그것을 온전히 다스리지도 못한 채 몸속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그 자신에게조차 아무 안심도 주지 못하는 듯했고, 불안정한 평형 속에서 늘 폭발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의 조심스럽고 쉼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은, 눈에서 뻗어 나와 뺨 아래쪽 거뭇한 두 그늘까지 이르는 온갖 탈진의 기색과 더불어, 그가 아무리 조심스레 얼굴을 꾸미고 다스린들 그 얼굴에 찍혀 있었으니, 위험에 처한 어떤 세도가가, 아니 그저 위험한, 그러나 비극적인 어떤 인물이 취한 어떤 익명, 어떤 변장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가슴속에 지니지 않은 이 비밀이 무엇인지, 그날 아침 카지노 밖에서 그를 보았을 때 이미 샤를뤼스 씨의 눈길을 그토록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던 이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맞히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집안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으로는, 그것이 도둑의 눈이라고는 더는 믿을 수 없었고, 그의 대화를 들은 뒤로는 미치광이의 눈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가 할머니에게는 상냥하게 굴면서 내게는 쌀쌀맞았다면, 그것은 어쩌면 개인적인 반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대체로 그가 여자들에게 호의적이어서 그들의 결점을 이야기할 때도 여느 때는 더없이 너른 관용을 조금도 좁히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에 대해서는, 특히 젊은 남자들에 대해서는, 마치 어떤 극단적인 여성 혐오자가 여자에게 품는 것 같은 격렬한 증오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생루의 친척이거나 가까운 벗인 어떤 “안방 기사들” 두셋의 이름을 마침 누가 입에 올리자, 샤를뤼스 씨는 평소의 냉담함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거의 사나운 표정으로 그들을 “하찮은 놈들!”이라 불렀다. 나는 그가 그 시절 젊은 남자들에게서 찾아낸 특유의 흠이 그들의 지나친 여성스러움임을 알아챘다. “저것들은 영락없는 계집이야.” 그가 경멸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가 남자에게 기대하는, 그러면서도 결코 충분히 힘차거나 사내답다고 여기지 못하는 그런 삶에 견주면, 어떤 삶인들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았겠는가? (그 자신은 들판을 가로질러 걸을 때면, 여러 시간을 길에서 보낸 뒤 달아오른 몸을 얼어붙은 개울에 담그곤 했다.) 그는 남자가 반지 하나 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내다움을 표방한다고 해서 더없이 섬세한 감수성을 함께 지니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빌파리지 부인이 그에게, 세비녜 부인이 머물렀던 어느 시골 저택을 할머니에게 설명해 달라고 청하며, 그 부인이 “그 성가신 그리냥 부인”과 떨어지는 것을 그토록 괴로워한 데는 어쩐지 좀 “문학적인”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천만에요,” 그가 대꾸했다. “그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런 종류의 감정이 온전히 이해되던 시절이었지요. 라퐁텐의 모노모타파 사람이, 꿈에 슬픈 얼굴로 나타난 벗을 보러 달려가는 것이나, 가장 큰 불행은 다른 비둘기가 곁에 없는 것이라 여기는 비둘기가, 사랑하는 숙모님께는 어쩌면 세비녜 부인이 딸과 단둘이 있게 될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과장되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딸과 헤어질 때 그녀가 하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지요. ‘이 이별이 내 영혼에 안기는 아픔을 나는 몸의 통증처럼 느낀다. 떨어져 있으면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 그리도 애타게 바라는 때를 미리 앞당겨 그려 본다.’” 할머니는 그 편지가 이렇게 이야기되는 것을, 그것도 꼭 자기가 이야기했을 그대로 이야기되는 것을 듣고 황홀해했다. 할머니는 한 남자가 그것을 이토록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할머니는 샤를뤼스 씨에게서 아주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감수성을 발견했다. 우리는 나중에 우리끼리 있게 되어 그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가 틀림없이 어떤 여자의, 그의 어머니의, 혹은 훗날 자식이 있었다면 그의 딸의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서로 말했다. “어쩌면 정부였을지도,” 나는 생루의 정부가 그에게 끼친 듯한 영향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 덕분에 나는 남자가 함께 사는 여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세련되어질 수 있는지 헤아릴 수 있었다.
“일단 딸과 함께 있게 되면, 그녀는 아마 딸에게 할 말이 없었을 거예요.” 빌파리지 부인이 끼어들었다.
“분명히 그랬지요. 설령 그것이 그녀가 말한 대로 ‘너무나 사소해서 당신과 나 말고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말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딸과 함께 있었지요. 라브뤼예르는 우리에게 그것이 전부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 말을 걸지 않는 것, 그 모두가 다 같은 일이다.’ 그의 말이 옳아요.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유일한 형태이지요.” 샤를뤼스 씨가 애수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그 행복이란, 아, 인생이란 참으로 서투르게 짜여 있어서 그것을 맛보는 일이 지극히 드물답니다. 세비녜 부인은 그래도 우리 대부분보다는 덜 가엾은 편이었지요. 그녀는 생애의 많은 부분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냈으니까요.”
“그 경우에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잊으시는군요. 그 상대는 그녀의 딸이었어요.”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그는 판관 같고 단호하며 거의 매정하다 할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랑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세비녜 부인이 딸에게 품은 감정은, 젊은 세비녜가 정부들과 맺은 그 진부한 관계보다는, 라신이 앙드로마크나 페드르에서 그린 정념과 나란히 놓일 자격이 훨씬 더 큽니다. 신비주의자가 자기 신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사랑에 그어 놓는 그 완고하고 명확한 경계선은 오로지 삶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앙드로마크와 페드르를 그렇게까지 여기신단 말입니까?” 생루가 삼촌에게 은근히 경멸하는 어조로 물었다. “라신의 비극 한 편에는 빅토르 위고 씨의 모든 극작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 샤를뤼스 씨가 대꾸했다. “저분들은 정말 사람 기막히게 하는군.” 생루가 내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빅토르보다 라신을 더 쳐주다니, 뭐라고 해도 좋아, 이건 획기적인 사건이야!” 그는 삼촌의 말에 진심으로 마음이 상했지만, ‘뭐라고 해도 좋아’라고, 더 나아가 ‘획기적’이라고 내뱉는 만족감이 그를 달래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슬픔에 관한 이런 성찰 속에서(그것은 훗날 할머니로 하여금, 빌파리지 부인의 조카가 어떤 것들을 그 고모 못지않게, 다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게다가 그에게는 여느 사교 클럽 회원들보다 그를 훨씬 높은 곳에 올려놓는 무언가가 있다고 내게 말하게 만들었다) 샤를뤼스 씨는 남자들이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섬세한 감정을 내비쳤을 뿐 아니라, 그 목소리 자체가, 제대로 된 음역으로 다듬어지지 못해 노래할 때면 젊은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부르는 이중창처럼 들리는 어떤 콘트랄토 음성들처럼, 이 미묘한 감정을 표현할 때면 높은 음으로 올라가 뜻밖의 감미로움을 띠었고, 마치 사랑의 보물을 아낌없이 쏟아 내는 약혼한 처녀들의, 자매들의 합창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온갖 종류의 여성스러움을 질색하던 샤를뤼스 씨가 자기 목소리 속에 이처럼 처녀들의 무리를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몹시 괴로워했을 그 처녀들의 무리는, 감정의 편린을 해석하고 조율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다. 샤를뤼스 씨가 이야기하는 동안 이따금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영리한 혀와 어여쁜 재치를 한껏 부려 상대를 놀려 대는 여학생이나 요염한 여인의, 새되고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