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기 집안 소유였던 어느 저택, 마리 앙투아네트가 묵은 적 있고 르노트르가 설계한 정원이 딸린 그 집이, 이제는 그것을 사들인 부유한 금융업자 이스라엘스 집안의 손에 넘어갔노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이스라엘이라니, 적어도 저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름이 그렇다는 것인데, 내게는 그것이 고유한 이름이라기보다 어떤 종족을, 어떤 인종을 통칭하는 말로 여겨집니다.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어쩌면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름이란 것이 없고, 그저 자기가 속한 부족의 집합적 명칭으로만 불리는지도 모릅니다.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나 게르망트가의 저택이던 곳이 이스라엘스의 것이 되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블루아 성의 어느 방이 떠오르는군요. 그곳을 안내하던 관리인이 이렇게 말했지요. ‘여기가 메리 스튜어트가 기도를 올리던 곳입니다. 저는 여기에 빗자루를 넣어 둡니다.’ 스스로 이렇게 욕을 자초한 저 집에 대해서는, 남편을 떠난 뒤의 사촌 클라라 드 시메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집이 아직 훼손되지 않았던 시절의 사진 한 장을 간직하고 있어요. 마치 그 큰 눈이 내 사촌 말고 다른 누구를 바라보는 법을 익히기 전, 대공비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사진이란 현실의 복제이기를 그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 줄 때, 평소에는 지니지 못한 어떤 품격을 얻게 되지요. 부인께서 그런 양식의 건축에 관심이 있으시니, 한 장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바로 그때, 주머니에 넣어 둔 수놓은 손수건에서 색실이 삐져나온 것을 알아차리자, 그는 지나친 결벽 탓에 스스로 음란하다 여기는 매력을 감추려는, 내숭스럽지만 결코 순진하지는 않은 귀부인처럼 낯빛을 붉히며 그것을 얼른 눈에 띄지 않게 쑤셔 넣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가 말을 이었다. “그 작자들이 맨 먼저 한 짓이 르노트르의 정원을 없애 버린 것이었다니, 이건 푸생의 그림을 칼로 그어 놓는 것만큼이나 몹쓸 짓이지요. 그 하나만으로도 저 이스라엘스 집안은 감옥에 가야 마땅합니다. 하기야,” 그는 잠시 침묵한 뒤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그들이 감옥에 가야 할 다른 이유도 아마 얼마든지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저 건축을 배경으로 영국식 정원이라니, 그 꼴이 어떨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하지만 그 저택은 프티 트리아농과 같은 양식이잖아요.” 빌파리지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도 거기에 영국식 정원을 꾸미게 했지요.”
“그렇다 해도 그것이 가브리엘의 정면을 망쳐 놓지요.” 샤를뤼스 씨가 대꾸했다. “물론 이제 와서 아모를 헐어 버린다면 그것은 야만적인 파괴 행위일 겁니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어떻든 간에, 그 점에서 이스라엘 부인의 변덕이 왕비의 추억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고는, 아무래도 나로서는 믿기 어렵군요.”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내게 이제 그만 올라가 자라고 눈짓을 보내고 있었는데, 생루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생루는, 나를 몹시 난처하게도, 잠들기 전 밤이면 종종 나를 덮치곤 하던 그 우울을 샤를뤼스 씨 앞에서 언급해 버렸고, 그의 삼촌은 필경 그것을 사내다움이 딱하게도 부족하다는 징표로 여겼을 것이었다. 나는 잠시 더 머뭇거리다가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얼마 뒤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묻자 샤를뤼스 씨의 목소리가 무뚝뚝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몹시 놀랐다.
“샤를뤼스요. 들어가도 되겠소, 젊은이? 젊은이,” 그는 문을 닫자마자 같은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조카가 방금, 자네가 잠들기 전 밤이면 곧잘 마음을 졸이곤 한다고, 그리고 자네가 베르고트의 책을 흠모한다고 하더군. 마침 자네가 아마 모를 만한 그의 책이 내 짐 속에 한 권 있기에, 자네가 편치 못한 그런 순간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가져왔네.”
나는 샤를뤼스 씨에게 자못 따뜻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오히려 밤이 오면 겪는 나의 그 괴로움에 대해 생루가 그에게 한 말 때문에, 내가 그의 눈에 실제보다도 더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쳤을까 봐 걱정했노라고 말했다.
“아니, 어째서?” 그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네에게는 어쩌면 이렇다 할 개인적 자질이 없을지도 모르지. 하기야 우리 가운데 그런 걸 지닌 이가 몇이나 되겠나! 하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자네에게 젊음이 있고, 젊음은 언제나 하나의 매력이라네. 게다가 젊은이, 무엇보다 어리석은 짓은 자기 자신이 마침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서 비웃거나 단죄하는 일일세. 나는 밤을 사랑하는데, 자네는 밤이 두렵다고 하는군. 나는 장미 향기를 사랑하는데, 내게는 그 향기만 맡으면 열병을 앓는 벗이 하나 있다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이유로 그를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 여기겠는가? 나는 무엇이든 이해하려 애쓰고, 무엇도 함부로 단죄하지 않도록 조심한다네. 그러니 자네도 자신을 너무 가엾이 여겨서는 안 되네. 그런 우울한 기분이 괴롭지 않다는 말은 아닐세.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것들 때문에 사람이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아네. 그래도 자네는 적어도 애정을 현명하게, 할머니에게 두었어. 자네는 할머니를 자주 뵙지. 게다가 그것은 정당한 애정, 그러니까 되갚아지는 애정일세.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애정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하며, 이것을 바라보다가 저것을 집어 들곤 했다. 나는 그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기 베르고트의 책이 또 한 권 있으니, 자네에게 가져다주겠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벨을 울렸다. 이윽고 사환 소년이 왔다. “가서 이곳 급사장을 데려오너라. 이 집에서 명령을 알아듣고 제대로 따를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니까.” 샤를뤼스 씨가 뻣뻣하게 말했다. “에메 씨 말씀이신가요?” 사환이 물었다. “그 사람 이름은 내가 알 수 없다만, 그래, 이제 생각났다, 에메라고 부르는 걸 듣긴 했지. 어서 가거라, 급하니.” “금방 올 겁니다. 방금 아래층에서 봤거든요.” 사환이 유능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환이 돌아왔다. “나리, 에메 씨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가 전하겠습니다.”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을 잠자리에서 깨워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리. 그 사람은 여기서 자지 않거든요.” “그럼 우리끼리 있게 물러가거라.” “하지만 어르신,” 사환이 물러가자 내가 말했다. “너무 과분하십니다. 베르고트의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나도 바로 그 생각을 하던 참일세.” 샤를뤼스 씨는 방 안을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 오래 망설이고 몇 번인가 말을 꺼내려다 만 끝에, 그는 홱 돌아서더니 다시금 쏘아붙이는 목소리로 내게 던졌다. “잘 자게, 젊은이!” 그러고는 방을 나갔다. 그날 저녁 내가 그의 입에서 들은 그 온갖 고매한 감정들을 떠올리면, 이튿날, 곧 그가 떠나는 날, 정오도 되기 전 해변에서, 내가 물놀이를 하러 내려가던 길에 샤를뤼스 씨가 다가와 물에서 나오는 대로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일러 주었을 때, 그가 내 목덜미를 꼬집으며, 노골적으로 상스러운 허물없음과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몹시 놀랐다.
“그런데 이 녀석은 늙은 할머니 따위야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쓰지, 안 그런가, 응? 요 개구쟁이 같으니!”
“무슨 말씀이세요, 어르신! 저는 할머니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젊은이,”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얼음장 같은 태도로 말했다. “자네는 아직 젊네. 그 젊음을 이용해 두 가지를 배우는 게 좋을 걸세. 첫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여겨질 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 둘째는 자네에게 건네진 말의 뜻을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서둘러 대꾸하려 들지 않는 것이라네. 방금 자네가 이 조심성을 지녔더라면, 귀먹은 사람처럼 동문서답하는 꼴을 면했을 것이고, 수영복에 닻 따위를 수놓아 붙인 어리석음에다 두 번째 어리석음을 더하는 일도 없었을 걸세. 나는 자네에게 내게 필요한 베르고트의 책을 빌려주었네. 그 책을, 어리석고 격에 맞지도 않는 이름을 가진 그 급사장을 시켜 한 시간 안에 내게 가져오도록 하게. 이 시각이면 그자도 설마 잠자리에 있지는 않겠지. 자네를 보니 어젯밤 자네에게 젊음의 매력을 이야기한 것이 성급했음을 알겠군. 차라리 젊음의 경솔함과, 앞뒤 없음과, 몰이해를 일러 주었더라면 자네에게 더 나은 도움이 되었을 것을. 젊은이, 이 자그마한 냉수 세례가 자네의 물놀이 못지않게 자네에게 이롭기를 바라네. 그러나 자네를 이렇게 세워 두지는 않겠네. 감기라도 들 테니. 그럼 잘 가게, 젊은이.”
필경 그는 나중에 이 말을 후회했을 것이다. 얼마 뒤 나는, 앞면에 물망초 한 가지를 반부조로 새긴 세공 가죽 장식판이 박힌 모로코가죽 장정으로 된, 그가 내게 빌려주었던 그 책을 받았으니 말이다. 나는 그 책을, ‘비번’인 듯한 에메가 아니라 승강기 소년 편으로 그에게 돌려보냈던 터였다.
샤를뤼스 씨가 떠나고 나자 로베르와 나는 마침내 자유로이 블로크와 저녁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조촐한 모임에서, 우리 친구가 냉큼 우습다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이 실은 늙은 블로크 씨가 즐겨 하던 이야기이며, 아들이 말하는 ‘참으로 비범한 인물’이란 언제나 그렇게 분류해 놓은 아버지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소년 시절에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얼마간 있게 마련이다. 집안의 다른 누구보다 머리가 좋은 아버지라든가,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철학으로 우리 눈에 위신을 얻는 교사라든가, 우리보다 앞서 있는 학교 친구(내게는 블로크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같은 이들 말이다. 그런 친구는 우리가 아직 뮈세의 「신에 대한 희망」을 흠모하고 있을 때 그것을 경멸하고, 우리가 르콩트나 클로델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오직 이런 구절에만 황홀해할 것이다.
A Saint-Biaise, à la Zuecca
Vous étiez, vous étiez bien aise:
그리고 거기에 이런 구절을 곁들일 것이다.
Padoue est un fort bel endroit
Où de très grands docteurs en droit. …
Mais j’aime mieux la polenta. …
Passe dans mon domino noir
La Toppatelle
그리고 「밤」 연작 전체에서 오직 이 대목만 기억할 것이다.
Au Havre, devant l’Atlantique
A Venise, à l’affreux Lido.
Où vient sur l’herbe d’un tombeau
Mourir la pâle Adriatique.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확신에 차 우러러볼 때면, 우리는 그에게서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 모으고 감탄하며 인용하는데, 그런 말들은 우리 자신의 판단에 맡겨 두었더라면 우리가 준엄하게 물리쳤을 부류보다 한참 못한 것들이다. 마치 소설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구실로, 사람들이 실지로 한 말을 작품 속에 집어넣는 것과 같으니, 그런 말은 살아 있는 문맥 속에서는 죽은 짐짝처럼 얹혀 작품의 따분한 대목을 이룬다. 생시몽이 스스로 그려 낸 인물 초상들은(그리고 십중팔구 그 자신은 그것을 대단히 여기지도 않았을 것인데) 감탄스럽건만, 그가 영리한 벗들의 매력적인 재치라며 인용하는 말들은, 아예 뜻이 통하지 않게 되지 않은 경우에도 솔직히 따분하기 짝이 없다. 그는 코르뉘엘 부인이나 루이 14세가 했다며 그토록 날카롭다거나 그토록 빛깔이 곱다고 전하는 그 말들을, 스스로 지어내는 일 따위는 경멸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많은 작가에게서도 눈에 띄는 점으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그 가운데 하나만 짚어 두면 충분하다. 곧, 우리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마음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창조’할 때 도달하는 수준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친구 블로크 안에는, 아들보다 사십 년 뒤처져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내 친구의 마음속에서, 저 따로 떨어져 눈에 보이는 진짜 블로크 아버지 못지않게 큰 소리로 그 이야기에 웃어 대는 블로크 아버지가 하나 박혀 있었다. 왜냐하면 진짜 아버지가, 청중이 이야기의 참맛을 음미하도록 마지막 낱말을 몇 번씩 되풀이하며 터뜨리는 웃음에다, 아들이 식탁에서 아버지의 일화에 어김없이 화답하는 그 나귀 울음 같은 웃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은 블로크는 더없이 총명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자기가 집안에서 물려받은 몫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블로크 아버지가 오직 (연미복을 차려입고) 엄숙한 자리에서만, 곧 젊은 블로크가 인상을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누군가를, 이를테면 자기 스승 하나라든가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쓴 ‘동무’라든가, 아니면 이날 저녁의 생루와 나 같은 사람을 집으로 데려온 자리에서만 내놓곤 하던 그 명언들 가운데 몇 개를 서른 번째로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반드시 패하고 러시아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거를 들어 훌륭하게 규명해 낸, 통찰력이 대단한 어느 군사 평론가.’ 아니면 이런 것. ‘정계에서는 대단한 금융가로 통하고 금융계에서는 대단한 정치가로 통하는 저명한 신사.’ 이런 이야기들은 로트실트 남작에 관한 것이나 뤼퓌스 이스라엘스 경에 관한 것과 얼마든지 바꿔 낄 수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은 블로크 씨가 그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처럼 여겨질 법한 애매한 투로 화제에 오르내렸다.
나 자신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블로크 씨가 베르고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투를 보고 그 역시 베르고트의 오랜 벗이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다른 유명한 사람들이 다 그렇듯 블로크 씨도 그들을 오직 ‘실제로 알지는 못한 채’, 극장이나 거리에서 멀찍이 본 것만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기의 용모며 이름이며 사람됨이 그들에게 낯설지 않으며, 그들이 자기를 알아볼 때면 남몰래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싶은 마음을 종종 억눌러야 했으리라고 상상했다. 사교계 사람들은 재능 있는 이들, 개성 있는 인물들을 알고 지내며 자기 집 만찬에 부른다고 해서, 그렇다고 그들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교계에서 살아 보면, 그 거주자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람들이 ‘실제로 알지는 못한 채’ 알고 지내는 저 이름 없는 무리 속에는 지나치게 높은 지성이 있으려니 넘겨짚고 싶어진다. 나는 베르고트를 화제에 올리면서 이를 깨닫게 되었다. 집 안에서 사교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블로크 씨만이 아니었다. 내 친구는 누이들 앞에서 한층 더 그러했는데, 그는 접시에 얼굴을 파묻은 채 끊임없이 을러대는 투로 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댔고, 그 모든 것이 누이들을 눈물이 나도록 웃게 만들었다. 누이들은 오라비의 말투를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그것이 의무이자 지성 있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유일한 화법이라는 듯 능란하게 구사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맏누이가 손아래 누이 하나에게 말했다. “가서 우리 현명하신 아버지와 존귀하신 어머니께 아뢰어라!” “강아지들아,” 블로크가 말했다. “투창을 던지는 기사 생루를 너희에게 소개하노라. 그는 며칠간 동시에르에서, 말들이 넘쳐 나는 이 갈고 다듬은 돌의 거처로 오셨느니라.” 그리고 그는 문학적인 만큼이나 상스러웠으므로, 그의 말은 으레 호메로스풍이 덜한 어떤 익살로 끝을 맺었다. “보라, 아름다운 브로치로 너희 페플로스를 여미라, 내 눈에 비치는 저것은 다 무엇이냐? 너희 어머니는 너희가 나돌아 다니는 걸 아시느냐?” 그러면 블로크 아가씨들은 한바탕 웃음의 폭풍 속에 잦아들었다. 나는 그들의 오라비에게, 베르고트를 읽으라 권해 준 덕분에 내가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 그 책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야기했다.
늙은 블로크 씨는 베르고트를 얼굴로만 알고 그 생애도 세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만 알았는데, 그의 책과 사귀는 방식 또한 그에 못지않게 에두른 것이어서, 겉으로 문학적인 척하는 비평의 힘을 빌렸다. 그는 ‘거의 다 왔다’는 세계에서 살았으니,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허공에 대고 인사를 건네고 그릇된 판단에 이르곤 한다. 부정확함도, 무능도 그들의 자신만만함을 바꿔 놓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는 자기애가 부리는 상서로운 기적이니, 우리 가운데 저명한 이들과 어울리거나 지적인 우정을 맺을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이가 몇 되지 않는 까닭에,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자신이 가장 잘난 인간이라 믿는 것이다. 우리 사회적 시각의 광학은 저마다의 신분을 그것을 차지한 이의 눈에 가장 좋아 보이게 만들고, 그가 알지도 못한 채 이름을 들먹이며 헐뜯고, 이해하지도 못한 채 판단하고 경멸하는 더 위대한 사람들을 도리어 자기보다 덜 혜택받고 덜 운 좋아 딱한 존재로 비치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보잘것없는 개인적 이점에 자기애를 곱한다 해도,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남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큰 그 행복의 몫을 확보하기에 모자란 경우조차, 시기심이 늘 곁에 있어 그 저울을 맞춰 준다. 물론 시기심이 경멸의 말로 표현될 때, 우리는 ‘나는 그를 알고 싶지 않다’를 ‘나는 그를 알 방도가 없다’로 옮겨 읽어야 한다. 그것이 지적인 뜻이다. 그러나 그 감정적인 뜻은 정말로 ‘나는 그를 알고 싶지 않다’이다. 말하는 이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한낱 속이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느끼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그와 상대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에, 다시 말해 그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자기중심주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주가 그 주인인 자기 아래로 내림차순으로 펼쳐져 있는 양 바라보게 해 주므로, 블로크 씨도 아침에 초콜릿을 마시며, 미처 펼쳐 보지도 않은 신문 기사 말미에서 베르고트의 서명을 발견했을 때 냉혹함이라는 사치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였다. 그는 그 작가에게 이내 끊길 짧은 알현을 거만하게 베풀고는 그에게 선고를 내렸으며, 펄펄 끓는 음료를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이렇게 되뇌는 위안 어린 즐거움을 스스로에게 안겨 주었다. “저 베르고트라는 작자, 이젠 도무지 읽을 수가 없군. 맙소사, 이 인간 정말 지겨울 수도 있구나. 아무래도 구독을 끊어야겠어. 죄다 어찌나 뒤엉켜 놨는지, 시시하기 짝이 없는 소리로군!” 그러고는 빵 한 조각을 더 집어 들었다.
게다가 늙은 블로크 씨의 이 헛된 중요성은 그 자신의 지각이 미치는 범위를 조금은 넘어 뻗어 있었다. 우선 그의 자식들이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떠받들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제 부모를 깎아내리거나 치켜세우는 경향이 있어, 착한 아들에게는, 그를 우러러볼 만한 객관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그와는 상관없이, 제 아버지가 늘 최고의 아버지인 법이다. 그런데 블로크 씨의 경우에는 그런 이유가 아주 없지도 않았으니, 그는 교육받은 사람이요, 빈틈없고, 제 가족에게 다정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더 자랑스러워한 것은, ‘사교계’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기준에 따라(하기야 터무니없는 기준이지만) 거짓되나 붙박인 규칙에 좇아, 다른 모든 상류층 사람들 전체와 견주어 평가되는 데 반해, 중산층 삶의 여러 갈래에서는 만찬이며 가족 모임이 온통, 함께 있으면 즐겁고 유쾌하다고 일컬어지되 ‘사교계’에서라면 이틀 저녁을 버티지 못할 어떤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귀족의 인위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환경에서는, 그 자리를 한층 더 어리석은 구별들이 차지한다. 그리하여 그의 집안에서는, 심지어 가계도의 가장 먼 가지들 사이에서도, 콧수염을 기르는 방식과 콧대의 생김새가 닮았다는 이야기 때문에 블로크 씨가 ‘오말 공작을 쏙 빼닮은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환 소년들의 세계에서, 제딴에는 외국 장교 같은 풍모를 낸답시고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웃옷 단추를 바싹 채운 녀석은, 제 동료들에게 역시 그 나름대로 하나의 인물이 아니겠는가?)
닮은 구석이라야 지극히 희미했지만, 그것이 마치 그에게 하나의 작위라도 부여한 듯했다. 그가 화제에 오를 때면 늘 이런 식이었다. “블로크? 어느 블로크? 그 오말 공작 말인가?” 마치 사람들이 “뮈라 대공비? 어느 분? 그 나폴리 왕비 말이오?” 하고 말하듯이. 그리고 그 밖에도 몇 가지 자잘한 표시가 어우러져, 친척 무리의 눈에 그에게 인정받은 품격의 자격을 부여했다. 자기 마차를 두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으나, 블로크 씨는 특별한 날이면 회사에서 두 필 말이 끄는 지붕 없는 사륜마차를 세내어, 몸을 좌우로 흐느적흐느적 늘어뜨린 채 두 손가락은 이마에 대고 다른 두 손가락으로는 턱을 괴고서 불로뉴 숲을 지나 달리곤 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를 ‘성가신 늙은이’라 여겼을지 몰라도, 집안에서는 하나같이, 멋 부리는 일이라면 솔로몬 삼촌이 그라몽카드루스에게 한 수 가르쳐 줄 만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큰길가 어느 식당에서 그 신문의 편집장과 한 식탁을 나눈 덕에, 죽고 나면 라디칼의 사교란에 ‘널리 알려진 파리의 명사’로 소개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블로크 씨는 생루와 나에게, 자기가, 곧 블로크 씨가 늘 자기를 못 본 척하는 까닭을 베르고트가 어찌나 잘 아는지, 극장에서든 클럽에서든 자기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눈길을 피해 버린다고 이야기했다. 생루는 얼굴을 붉혔으니, 이 클럽이 제 아버지가 회장을 지낸 자키 클럽일 리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꽤나 배타적인 클럽임이 틀림없었으니, 베르고트가 지금 입회하려 든다면 결코 들어오지 못했을 거라고 블로크 씨가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루는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서, 문제의 그 클럽이 혹시 루아얄 거리 클럽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 클럽은 제 집안에서 ‘격을 떨어뜨리는’ 곳으로 여겨졌고, 유대인 몇몇이 입회를 허락받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아니요.” 블로크 씨가 무심한 듯하면서도 자랑스럽고 또 부끄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작은 클럽입니다만, 큰 클럽보다야 훨씬 더 유쾌한 곳이지요, 가나슈라고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아주 까다롭게 굴거든요, 아시겠소.” “뤼퓌스 이스라엘스 경이 회장이 아닌가요?” 젊은 블로크가 아버지에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할 기회를 주려고 물었는데, 그 금융가가 생루의 눈에는 제 눈에서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의심치 않았다. 사실인즉 가나슈 클럽이 자랑하는 것은 뤼퓌스 이스라엘스 경이 아니라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 하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제 고용주와 더할 나위 없이 사이가 좋아, 그 금융가의 명함을 한 뭉치 지니고 있다가, 뤼퓌스 경이 이사로 있는 노선으로 여행하려 할 때면 블로크 씨에게 한 장씩 건네주곤 했으니, 그 덕에 늙은 블로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클럽에 잠깐 들러 뤼퓌스 경한테 회사 노선표를 하나 부탁하고 오겠네.” 그리고 그 명함 덕분에 그는 기차의 차장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었다. 블로크 아가씨들은 베르고트에 더 관심이 있어, 가나슈 이야기를 이어 가는 대신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 막내가 오라비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에는 오라비가 즐겨 쓰는 말들 말고 다른 말이 이 세상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베르고트라는 사람, 정말 굉장한 물건이야? 빌리에나 카튈 같은, 그 대단한 친구들, 굉장한 물건들 축에 드는 거야?” “나는 총연습 때 그를 몇 번 만나 봤지.” 니심 베르나르 씨가 말했다. “거칠고 촌스러운 인간이야, 슐레밀 같은 부류지.” 샤미소의 이야기를 끌어온 이 비유에 별 대단한 뜻은 없었으나, ‘슐레밀’이라는 별칭은 반은 독일어이고 반은 유대어인 그 은어의 일부로, 블로크 씨는 집안에서 그 말을 쓰는 것은 즐거워했지만 남들 앞에서는 상스럽고 격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삼촌에게 나무라는 눈길을 던졌다. “그 사람은 재능이 있어.” 블로크가 말했다. “아!” 그의 누이가, 그렇다면 나에게도 얼마간 변명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라도 담은 듯 자못 진지하게 한숨지었다. “작가란 작가는 다 재능이 있지.” 블로크 씨가 경멸조로 말했다. “실은 그 사람이,” 아들이 포크를 치켜들고 짓궂은 반어의 기색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후보할 모양이던데요.” “설마. 그 사람은 내세울 게 모자라.” 아버지가 대꾸했는데, 그는 아카데미에 대해 제 아들딸들 같은 경멸은 품지 않은 듯했다. “그 사람은 그만한 그릇이 못 돼.” “게다가 아카데미란 하나의 살롱이고, 베르고트에게는 세련미가 없지요.” 삼촌이 단언했다. (블로크 부인은 이 삼촌의 상속녀였다.) 그는 온순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성인 베르나르만으로도 어쩌면 내 할아버지의 진단 능력을 일깨웠을 법하건만, 다리우스의 궁전에서 가져와 디욀라푸아 부인이 복원해 놓은 듯한 그 얼굴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다만 (수사에서 온 이 인물에 동방풍의 마지막 손질을 더하고 싶어 한 어느 수집가가 골랐음 직하게) 그의 이름 니심이 그 얼굴 위로 코르사바드에서 온 인두우신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러나 블로크 씨는 삼촌을 모욕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순순히 당하기만 하는 제 표적의 좋은 기분에 신이 나서 그랬든, 아니면 별장 임대료를 니심 베르나르 씨가 치르고 있는 터라 그 덕을 보는 쪽에서 도리어 제 독립성을 지키고 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첨으로 장차 들어올 넉넉한 유산을 챙기려 드는 것이 아님을 보이고 싶어서 그랬든 간에 그러했다. 늙은이에게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하인 앞에서 그토록 무례한 대접을 받는 일이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렸는데,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뿐이었다. “meschores가 방 안에 있는데.” 성서에서 ‘meschores’는 ‘하느님의 종’을 뜻한다. 블로크 집안에서는 자기네 하인들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썼고, 언제나 그 말에 신이 났으니, 기독교인에게도 하인들 자신에게도 결코 이해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니심 베르나르 씨와 블로크 씨에게, ‘주인’이면서 동시에 ‘유대인’이라는 그 이중의 특권을 한층 돋우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뒤엣것의 만족감은 ‘손님’이 있을 때면 불쾌감의 원천으로 바뀌었다. 그럴 때면 블로크 씨는 삼촌이 ‘meschores’라 말하는 것을 듣고, 마치 점잖은 친구들을 만나게 하려고 제 자매들을 불러들인 화류계 여자가 그들이 제 직업을 들먹이거나 그다지 곱지 못한 말을 쓰면 짜증을 내듯, 삼촌이 제 동방적인 면을 지나치게 도드라지게 한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삼촌의 부탁은 블로크 씨에게 아무런 효험도 내지 못하기는커녕, 그는 분을 못 이겨 제정신이 아닌 채 더는 자신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는 가엾은 삼촌을 후벼 팔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하기야,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할 기회만 생기면 삼촌이 그걸 놓칠 리 없다는 건 뻔한 일이죠. 그 사람이 방에 있었다면 삼촌이 제일 먼저 그 발이라도 핥았을걸요!” 블로크 씨가 소리쳤고, 그동안 니심 베르나르 씨는 슬픔에 잠겨 사르곤 왕의 곱슬곱슬한 수염을 제 접시 위로 떨구었다. 내 친구는 훗날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 그 수염 역시 검푸르고 곱슬곱슬해서, 제 종조부와 무척 닮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