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자네가 마르상트 후작의 아들이란 말인가? 나는 그분을 아주 잘 알았다네.” 니심 베르나르 씨가 생루에게 말했다. 나는 그가 ‘알았다’는 말을, 블로크의 아버지가 베르고트를 안다고 했을 때와 같은 뜻으로, 곧 얼굴만 안다는 뜻으로 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이어 갔다. “자네 아버지는 내 가장 친한 벗 가운데 한 분이셨지.” 그러는 동안 블로크는 새빨개졌고, 그 아버지는 잔뜩 언짢은 낯빛이었으며, 블로크 아가씨들은 웃음을 참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실은 니심 베르나르 씨에게는, 블로크 씨와 그 자식들에게서는 억눌려 있던 그 과시욕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버릇을 길러 놓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호텔에 묵을 때면, 니심 베르나르 씨는, 블로크 씨라도 마찬가지로 했을 법하게, 모두가 자리한 점심 식사 한복판에 늘 하인을 시켜 식당으로 신문을 가져오게 했으니, 자기가 하인을 거느리고 여행한다는 것을 남들이 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텔에서 사귄 사람들에게 삼촌은, 조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말, 곧 자기가 상원의원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칭호가 도둑질한 것임을 사람들이 머지않아 알아차리리라는 것을 그도 뻔히 알았을 테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 칭호를 내세우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블로크 씨는 삼촌의 거짓말과, 그것이 불러오는 온갖 난처함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저 사람 말은 마음에 두지 마시게, 워낙 허튼소리를 많이 하니까.” 그가 생루에게 속삭였는데, 생루는 거짓말쟁이의 심리를 파헤쳐 보고 싶은 호기심에 오히려 더욱 관심이 돋우어졌다. “아테나가 그를 인간들 가운데 으뜸가는 거짓말쟁이라 불렀다지만, 이타카의 오디세우스보다도 한술 더 뜨는 거짓말쟁이지요.” 아들이 그 고발을 마무리 지었다. “아니, 이런 세상에!” 니심 베르나르 씨가 소리쳤다. “내 오랜 벗의 아들과 마주 앉아 저녁을 들게 될 줄 알았더라면! 아, 나는 지금도 파리 집에 자네 아버지의 사진 한 장과 그분에게서 온 편지를 잔뜩 간직하고 있다네. 그분은 늘 나를 ‘삼촌’이라 부르셨는데, 왜 그러셨는지는 아무도 몰랐지. 매력적이고 재기 넘치는 분이셨어. 니스에서 내가 베푼 만찬이 어찌나 또렷이 기억나는지. 사르두, 라비슈, 오지에가 있었고,” “몰리에르, 라신, 코르네유도 있었겠죠.” 블로크 씨가 빈정대며 덧붙였고, 아들은 손님 명단을 “플라우투스, 메난드로스, 칼리다사”로 마저 채웠다. 니심 베르나르 씨는 정곡을 찔려 회상을 뚝 멈추더니, 크나큰 즐거움을 금욕적으로 스스로에게서 앗아 버린 채,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청동 투구의 생루여,” 블로크가 말했다. “기름진 넓적다리가 묵직한 이 오리를 한 점 더 드시게. 그 위로 이름난 새의 제관이 붉은 포도주를 숱하게 부어 바쳤노라.”
여느 때 같으면, 귀한 손님을 즐겁게 하려고 뤼퓌스 이스라엘스 경 따위에 관한 일화들을 곳간에서 꺼내 보인 뒤, 블로크 씨는 아들의 마음을 흔들어 녹이는 데 성공했다 싶으면, ‘거물’의 눈에 제 효과를 망치지 않으려고 슬며시 물러나곤 했다. 그러나 도무지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때면, 이를테면 아들이 교수 자격을 딴 날 밤 같은 때면, 블로크 씨는 늘 하던 일화들에다, 평소에는 제 개인적인 벗들에게만 아껴 두던 다음과 같은 반어적인 소감을 덧붙였는데, 그것이 제 손님을 위해 나오는 것을 보고 젊은 블로크는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정부가 용서 못 할 짓을 저질렀어. 코클랭 씨와 의논하는 걸 깜박했지 뭔가! 코클랭 씨가 불쾌하다는 뜻을 내비쳤다더군.” (블로크 씨는 자기가 반동주의자임을, 연극쟁이들을 경멸함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블로크 아가씨들과 그 오라비는 귀밑까지 새빨개졌으니, 늙은 블로크가 제 아들의 두 ‘동무’를 대접하는 데에 끝까지 왕후처럼 굴 수 있음을 보이려고 샴페인을 내오라 이르고는, 우리를 위한 특별한 대접으로 그날 저녁 오페라 코미크 극단이 카지노에서 올리는 공연의 일층 앞자리 표 석 장을 잡아 두었노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알렸을 때, 그들은 여간 감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특별석을 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자리가 죄다 나가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는 특별석에도 자주 앉아 봤는데, 사실 아래쪽 오케스트라 옆자리가 보기에도 듣기에도 더 낫다고 했다. 다 좋은데, 아들의 결점이, 곧 아들 딴에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믿는 그 결점이 상스러움이었다면, 아버지의 결점은 인색함이었다. 그리하여 샴페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 나온 것은 유리병에 담긴 값싼 발포 포도주였고, 오케스트라 옆 일층 앞자리라는 이름 아래 그가 잡아 둔 것은 값이 절반밖에 안 드는 이층 뒷자리 석 장이었으니, 그는 제 결점이 부리는 신묘한 조화 덕에, 식탁에서든 극장에서든(그곳은 특별석이 죄다 비어 있었다) 그 결점이 눈에 띄지 않으리라고 감쪽같이 믿고 있었다. 블로크 씨가, 그 아들이 ‘옆구리가 깊이 파인 크라테르’라는 격식과 칭호로 치켜세운 납작한 잔에 우리가 입술을 축이게 한 뒤, 그는 자기가 어찌나 애착하는지 발베크까지 가지고 온 그림 한 점을 우리에게 감탄하며 보게 했다. 그는 그것이 루벤스의 그림이라고 했다. 생루가 순진하게 서명이 있느냐고 물었다. 블로크 씨는 얼굴을 붉히며, 액자에 맞추려고 서명을 잘라 내 버렸지만, 그림을 팔 생각은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뒤 그는 서둘러 우리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는, 집 안 여기저기 널브러진 주르날 오피시엘의 지난 호들 속에 파묻히러 갔는데, 자기 ‘의회에서의 위치’ 때문에 그것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일러 주었으나, 그 위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 주지 않았다. “나는 목도리를 챙기겠네.” 블로크가 말했다. “제피로스와 보레아스가 물고기 우글대는 바다를 서로 제 것이라 다투고 있으니, 공연이 끝난 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장밋빛 손가락의 에오스가 처음 붉게 물들기 전에는 집에 닿지 못할 걸세.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가 생루에게 물었는데, 나는 몸이 떨렸으니, 블로크가 그 빈정대는 투로 이야기하는 것이 다름 아닌 샤를뤼스 씨에 관한 것임을 대번에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저께 해변에서 자네와 함께 거니는 걸 본, 검은 옷을 입은 그 대단한 늙은 괴짜는 누구였나?” “그분은 내 삼촌일세.” 생루는 언짢아했다. 딱하게도, ‘실수’란 블로크에게는 피해야 할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웃음으로 몸을 들썩였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진작 짐작했어야 했는데. 그분은 풍채가 아주 훌륭해, 더없이 고귀한 혈통을 지닌 늙은 ‘노망꾼’의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상판대기라니.” “자네가 완전히 잘못 봤네. 그분은 대단히 영리한 분이야.” 이제는 화가 치민 생루가 쏘아붙였다. “그거 참 안됐군. 그렇다면 그분이 그만큼 덜 완벽해지는 셈이니. 그래도 나는 그분을 무척 알고 싶네. 저런 늙은 괴짜들에 대해서라면 꽤나 그럴듯한 글을 몇 편 써낼 수 있으리라고 자부하거든. 그저 지나가는 걸 보기만 해도 배꼽을 잡겠어. 하지만 나라면 그 희화적인 면은, 곧 (미안하네만) 한순간 나를 즐거운 웃음으로 허리를 접게 만든 그 상판대기의 그 면은, 문구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반한 예술가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니 제쳐 두고, 자네 삼촌의 귀족적인 면을 도드라지게 그리겠네. 그분은 어쨌거나 확연히 소를 닮은 데가 있어서, 한바탕 웃고 나면 그 대단한 풍격으로 사람을 감탄케 하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는 이번에는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아주 다른 종류의 일이 또 하나 있는데, 진작부터 자네에게 물어보려던 것이라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마다 올림포스에 사는 복된 어느 신이, 진작 내게 크게 쓸모가 있었을 법하고 언젠가 반드시 크게 쓸모가 있을 그 정보를 물어보는 걸 까맣게 잊게 만든단 말이지. 말해 보게, 얼마 전 아클리마타시옹 정원에서 자네와 함께 있던, 내가 얼굴은 아는 듯한 신사와 머리 긴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던 그 아리따운 부인은 누구였나?” 그때 나는 스완 부인이 블로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진작 똑똑히 알아챘었으니, 그녀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고 내 친구를 어느 부처의 관리라고 했기 때문인데, 그 뒤로 나는 그가 실제로 그 자리에 들어갔는지 알아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내게 일러 준 바로는 그녀에게 소개까지 받은 블로크가, 어째서 그녀의 이름을 모른단 말인가? 나는 너무 놀라 대답하기 전에 잠시 멈칫했다. “그 여자가 누구든,” 그가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자네도 그 여자와 있으면서 심심하진 않았을 테지. 나는 그보다 며칠 앞서 순환 철도에서 그 여자를 낚았는데, 순환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 여자가 어찌나 친절한지 이 보잘것없는 종을 위해 제가 두른 것을 풀어 주더군. 내 평생 그런 시간은 처음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막 다시 만날 약속을 하려던 참인데, 그 여자가 아는 누군가가 눈치 없게도 종착역 바로 앞 정거장에서 올라타 버렸지 뭔가.” 내가 여전히 잠자코 있자 블로크는 못마땅한 눈치였다. “나는 은근히 바랐네,” 그가 말했다. “자네 덕분에 그 여자의 주소를 알아내서, 일주일에도 여러 번 그리로 찾아가 그 여자 품에서 신들이 아끼는 에로스의 기쁨을 맛보기를 말일세. 하지만 파리와 푸앵뒤주르 사이에서 내리 세 번이나, 그것도 더없이 세련된 방식으로 내게 몸을 허락한 그 직업여성에 대해 자네가 함구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니, 더는 조르지 않겠네. 언젠가 밤에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되고말고.”
이 만찬이 있은 뒤 나는 블로크를 찾아갔고, 그도 답례로 나를 찾아왔으나 나는 외출 중이었다. 그가 나를 찾는 모습을 프랑수아즈가 보았는데, 그는 콩브레에서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건만 그때까지 프랑수아즈는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안 것이라고는 내 친구인 “그 신사분들” 가운데 한 명이 나를 만나러 들렀다는 것뿐이었고, “무슨 용건으로” 왔는지도 몰랐으며, 이렇다 할 인상도 남기지 못한 어중간한 차림새였다. 프랑수아즈가 지닌 어떤 사교적 관념들, 아마도 단어들 사이의, 그녀가 언젠가 영영 서로 혼동해 버린 이름들 사이의 착각에 얼마간 근거를 둔 그런 관념들이 나로서는 영원히 파고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경우에 대한 해명 찾기는 이미 오래전에 단념한 처지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블로크라는 이름이 프랑수아즈에게 지니는 그 어마어마한 의의가 무엇일 수 있는지를 알아내려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애씀은 헛일이었다. 그녀가 본 그 젊은이가 바로 블로크 씨라고 내가 말하자마자,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으니, 그만큼 그녀의 아연함과 실망이 컸던 것이다. “뭐라고요! 저 사람이 블로크 씨라고요?” 그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외쳤다. 마치 그토록 대단한 인물이라면 그를 보는 순간 세상의 위인들 중 하나 앞에 서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그런 풍모를 갖추었어야 마땅하다는 듯이. 그리고 어떤 역사적 인물이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처럼, 그녀는 감명받은 어조로 되풀이했는데, 그 어조에는 장차 온갖 것에 대한 회의주의로 자라날 씨앗이 잠재해 있음을 나는 읽어낼 수 있었다. “뭐라고요! 저 사람이 블로크 씨라고요? 어머, 정말이지, 보고서는 짐작도 못 하겠네요.” 그녀는 또한 마치 내가 늘 그녀 앞에서 블로크 칭찬을 “과하게” 늘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원망하는 듯싶었다. 그러면서도 고맙게도 이렇게 덧붙였다. “뭐, 저분이 블로크 씨든 뭐든 간에요. 우리 도련님이 하나도 뒤지지 않는다고 저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어요.”
얼마 뒤 그녀는 자기가 떠받들던 생루에 대해서도 종류가 다르고 정도는 덜한 환멸을 겪었으니, 그가 공화파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를테면 포르투갈 왕비를 이야기할 때면 민중 사이에서 존경의 지극한 형태인 그 무례함으로 “아멜리, 필리프의 누이”라고 말하곤 했으니, 프랑수아즈는 왕당파였다. 그러나 후작이라는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것도 첫눈에 그녀를 매혹한 후작이 공화국 편이라 하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치 내가 금으로 된 줄로만 믿고 극진히 고마워하며 받았던 상자를 두고 나중에 보석상이 그건 도금일 뿐이라고 일러주기라도 한 듯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대번에 생루에 대한 존경을 거두었으나, 곧 다시 그에게 그것을 되돌려주었으니, 생루 후작쯤 되는 사람이 공화파일 리는 없고 다만 제 잇속을 위해 그런 척할 뿐이며, 지금 같은 정부 아래서라면 그 편이 그에게 큰 이득이 될 수도 있으리라 헤아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그를 향한 그녀의 냉담함도, 나를 향한 원망도 그쳤다. 그리고 생루 이야기가 나오면 그녀는 “저분은 위선자예요”라고, 그를 처음 알았을 때와 다름없이 다시 “높이 사고” 있으며 이미 용서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너그럽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생루는 더없이 진실하고 사심이 없었으며, 바로 이 강렬한 도덕적 순수함이야말로, 사랑처럼 이기적인 감정 안에서는 온전한 만족을 얻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를테면 내 안에는 있던) 자기 자신 말고 다른 데서는 정신의 양식을 찾을 수 없는 그 불가능성과는 그에게서 마주치지 않았기에, 그를 (내가 우정에 무능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참으로 우정에 능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프랑수아즈가 생루를 두고, 그가 민중을 깔보지 않는 “그런” 태도를 지녔지만 그것은 죄다 겉치레일 뿐이며 마부에게 성을 낼 때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투덜댔을 때도 그녀는 못지않게 잘못 짚은 것이었다. 로베르가 자기 마부를 얼마쯤 험하게 꾸짖는 일이 실제로 이따금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그가 계급과 대중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평등을 느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좀 심하게 대했다는 내 나무람에 그가 대꾸했다. “내가 왜 굳이 그에게 공손하게 말해야 하지? 그가 내 동등한 사람 아닌가? 내 삼촌들이나 사촌들 못지않게 나와 가까운 사람 아니냔 말이야? 자넨 내가 그를 아랫사람 대하듯 예우해야 한다고 여기는 모양이군. 꼭 귀족처럼 말하는걸!” 그는 경멸하듯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편견을 품고 적의를 드러내는 계급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귀족계였으니, 그 정도가 어찌나 심했던지 그는 사교계 인사의 뛰어난 자질을 믿기가 민중 출신 사람의 자질을 믿기만큼이나 어려웠다. 내가 그의 이모와 함께 만난 적 있는 뤽상부르 대공비 이야기를 꺼내자,
“늙은 물고기 같은 여자지.” 그가 평했다. “그 무리가 다 그래. 참, 나하곤 사촌뻘 되는 사람이야.”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깊은 편견을 지녔던 터라 그는 좀처럼 “사교계”에 나가지 않았으며, 그가 그곳에 대해 취한 경멸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는, 무대에 서는 여자와의 친밀한 관계가 그의 모든 가까운 친척들 사이에 불러일으킨 괴로운 인상을 한층 더 키웠다. 그 관계야말로 그를 파멸시키리라고 그들은 단언했으며, 특히 그것이 그에게 저 헐뜯는 기질, 저 못된 심보를 심어주었고 그를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고 탓하면서, 그렇게 되면 그가 아주 낙오해 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포부르 생제르맹의 무던한 남자들 중 많은 이가 로베르의 정부를 이야기할 때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여자들이야 제 밥벌이를 하는 거지.”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들 못지않게 괜찮아. 하지만 그 여자만은, 아니, 사양이야! 그 여자는 용서 못 해. 우리가 아끼던 친구에게 너무 못된 짓을 했으니까.” 물론 그 덫에 걸린 것이 그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세상 물정에 밝은 남자답게 즐길 줄 알았고, 정치든 무엇이든 세상 물정에 밝은 남자답게 계속 생각했다. 반면 그를 두고 그의 가족은 “비뚤어졌다”고 여겼다. 그들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으니, 그러지 않았더라면 정신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채, 교우에 거칠고, 부드러움도 취향도 없이 남았을 숱한 유행아들에게, 실은 그들의 정부야말로 참된 스승이며, 이런 종류의 관계야말로 그들이 한층 높은 교양에 입문하고 사심 없는 관계의 가치를 배우는 유일한 도덕의 학교가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하층민 사이에서조차 (그들은 거칠기로 치자면 유행아들의 세계를 그토록 자주 떠올리게 하거니와) 여자는 더 예민하고 더 섬세하며 더 여유가 있어, 호기심에 이끌려 어떤 세련됨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해하지는 못할지언정 감정과 예술의 어떤 아름다움을 존중하며, 그것들을 남자에게 가장 탐나 보였던 것, 곧 돈이나 지위보다 위에 둔다. 그러니 그 정부가 생루 같은 젊은 귀족의 정부이든 젊은 노동자의 정부이든 (이를테면 전기공들도 이제는 우리의 가장 참된 기사도의 반열에 넣어야 하리라) 그녀의 애인은 그녀를 너무나 흠모하고 존중하기에 그녀가 몸소 존중하고 흠모하는 것에까지 그 흠모와 존중을 넓히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그에게 가치의 저울은 뒤집히고 만다. 그녀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그 여자라는 성뿐이다. 그녀는 신경 질환에 시달리며, 남자에게, 아니 다른 여자에게, 그가 조카나 사촌쯤 되는 여자에게 일어났더라면 이 건장한 젊은이의 입가에 미소를 자아냈을 그런 설명할 길 없는 일들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괴로워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생루처럼 정부를 둔 젊은 귀족은, 그녀를 데리고 나가 저녁을 들 때면 그녀에게 필요할지 모를 쥐오줌풀 “물약”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급사에게 비꼬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단호하게 문을 조용히 닫아달라고, 식탁에 축축한 이끼를 얹지 말라고 이르는 버릇이 들었으니, 이는 자신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러나 그녀가 그 실재를 믿게 만든 어떤 은밀한 세계를 이루는 그 불편들로부터 동반자를 지켜주기 위함이었고, 그는 이제 그 불편들을 조금도 이해할 필요 없이 가엾이 여기며, 훗날 그녀 아닌 다른 여자들이 그 괴로움을 겪을 때에도 여전히 가엾이 여기게 되리라. 생루의 정부는, 중세의 초기 수도사들이 기독교 세계에 가르쳤듯이, 그에게 짐승들에게 다정하라고 가르쳤으니, 그녀는 짐승을 몹시 사랑하여 개와 카나리아와 모란앵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생루는 그것들을 어미 같은 정성으로 돌보았으며 말 못 하는 짐승에게 잘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짐승만도 못한 자로 대했다. 다른 한편, 그와 함께 살던 이 여배우, 또는 자칭 여배우는, 그녀가 영리한지 아닌지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 없었으나, 그로 하여금 사교계 부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루하게 여기게 하고 파티에 나가는 일을 괴로운 의무로 보게 함으로써, 그를 속물근성에서 구해내고 경박함에서 낫게 해주었다. 그녀 덕분에 사교 모임이 이 젊은 애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줄어들었을뿐더러, 그가 한낱 응접실의 남자에 지나지 않았더라면 허영이나 잇속이 그의 친구 고르는 기준을 좌우하고 무례함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되었을 텐데, 그의 정부는 그에게 우정에 고귀함과 세련됨을 담아 넣도록 가르쳤다. 그녀는 여자다운 직감으로, 그리고 그녀의 이끎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애인이 어쩌면 오해하고 비웃었을 남자들의 어떤 섬세한 감수성을 더 예리하게 알아보는 눈으로, 언제나 재빨리 생루의 친구들 가운데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이를 가려내어 그 사람을 자기가 아끼는 이로 삼았다. 그녀는 그에게 그런 벗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그 고마움을 나타내게 하며, 무엇이 그 벗을 기쁘게 하고 무엇이 아프게 하는지 헤아리게 할 줄 알았다. 이윽고 생루는 그녀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니, 발베크에서, 그녀가 곁에 없던 그곳에서,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고 그가 어쩌면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직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 나를 위해, 자진하여 내가 앉아 있던 마차의 창을 올려주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꽃들을 방에서 치우고,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면 정작 떠날 시간이 되기 전에 그들과의 인사를 마쳐, 나와 단둘이 마지막까지 남기 위해, 그들과 나를 구별하기 위해, 나를 나머지와 다르게 대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의 정부는 그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것에 열어주었고, 그의 삶에 진지한 요소를, 그의 가슴에 섬세함을 들여놓았으나, 이 모든 것은 “저 계집이 그를 죽이고 말 거야, 그러는 동안에도 온 힘을 다해 그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있지”라고 되뇌던 그의 시름겨운 가족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서 그녀가 자기에게 베풀 수 있는 온갖 좋은 것을 다 끌어낸 것은 사실이었고, 이제 그녀가 그에게 안겨주는 것이라고는 끊임없는 고통뿐이라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그녀는 그를 몹시 싫어하게 되어 온갖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어느 화창한 날부터 그녀는 그를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젊은 작가들과 배우들 사이에 있던 그녀의 친구들이 그가 그렇다고 장담했기 때문이며, 그녀는 그들이 한 말을, 여태 전혀 알지 못하던 남의 의견이나 습관을 밖에서 받아들여 제 것으로 삼을 때 우리가 보이는 그 열정, 그 자제 없는 태도로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그녀는 자기 배우 친구들처럼, 생루와 자기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심연이 놓여 있노라고 서슴없이 공언했으니, 둘은 서로 다른 종족에 속하며, 자기는 지성인이고 그는 아무리 아닌 척한들 지성의 타고난 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그에 대한 견해가 그녀에게는 심오해 보였고, 그녀는 애인의 더없이 하찮은 말, 더없이 사소한 행동에서 그 확증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같은 친구들이 다시 그녀에게, 그녀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리 속에서 그녀가 자신들이 불러일으켰다는 그 큰 희망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으며, 애인이 그녀에게 흔적을 남길 것이고, 그와 함께 살면서 예술가로서의 앞날을 망치고 있노라고 못 박자, 생루에 대한 그녀의 경멸에는, 만약 그가 자기에게 치명적인 병균을 기어이 접종하려 든다면 느꼈을 법한 그런 증오가 더해졌다. 그녀는 되도록 그를 드물게 만났으나,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결별의 순간은 미루었으니, 그것은 내게 몹시 일어날 성싶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생루는 그녀를 위해 어찌나 큰 희생을 치렀던지,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면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녀의 사진 보여주기를 마다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선 그녀는 미인이 아니고, 게다가 늘 잘 안 나오게 찍혀. 이건 내가 코닥으로 직접 찍은 스냅사진 몇 장일 뿐인데, 그녀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줄 거야.”) 그런 일에 응해줄 다른 남자를 그녀가 찾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재능 하나 없으면서도 이름을 떨치려는 어떤 집착, 자기를 속이고 있는 사람들의 흠모, 그것도 남몰래 표한 흠모에 지나지 않는 그런 것이, (생루의 정부에게는 어쩌면 해당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한낱 작은 창녀에게조차 돈을 버는 즐거움보다 더 결정적인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정부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면서도, 그녀가 부당한 질책에서든 영원한 사랑의 맹세에서든 온전히 진실하다고는 믿지 않았던 생루는,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는 그녀가 할 수 있게 되는 대로 자기와 결별하리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리하여 필시 그의 사랑의 일부였던 자기보전의 본능에, 어쩌면 생루 자신보다 더 눈 밝은 사랑에 떠밀려, 또한 마음의 더없이 드높고 눈먼 비상과도 그의 안에서는 양립하던 실무적 수완도 발휘하여, 그녀에게 어떤 목돈도 넘겨주기를 거부하고, 대신 그녀가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도록 엄청난 액수를 빌리되 그것을 오직 그날그날 조금씩만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물론, 그녀가 정말로 그를 떠날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제 둥지를 다 틀 때까지 태연히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생루가 준 돈으로 그리하자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겠으나 그래도 얼마간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고, 그 시간이야말로 내 새 벗의 행복을, 아니 그의 불행을 늘여주는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할 터였다.
그들 관계의 이 극적인 시기, 이제 가장 첨예한 단계에, 생루에게 가장 잔혹한 단계에 이른 이 시기는, 그녀가 그에게 파리에 머무는 것을 금하고, 자기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의 존재를 견디지 못해 그를 연대에서 손닿는 곳인 발베크에서 휴가를 보내도록 몰아붙인 이 시기는, 어느 날 저녁 생루의 이모들 중 한 분의 집에서 시작되었으니, 그는 이모를 졸라 큰 모임에 앞서 자기 벗이 그곳에 와서 어느 “전위적인” 극장에서 한때 출연했던 어떤 상징극의 대사 몇 대목을 낭송하게끔 허락받았고, 그녀 자신이 표방하던 그 극에 대한 흠모를 그에게도 나눠 지니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큰 백합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생루에게 더없는 “아름다움의 환영”이라고 믿게 한 Ancilia Domini를 본떠 지은 의상을 걸치고 방에 나타나자, 클럽의 남자들과 공작부인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그녀의 등장은 미소로 맞이되었고, 그 미소는 그녀의 단조로운 낭송 가락과 어떤 낱말들의 괴상함, 그리고 그것들이 잦게 되풀이되는 통에 웃음보로 바뀌었으니, 처음에는 억눌린 웃음이었으나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와 가엾은 낭송자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이튿날 생루의 이모는 그토록 우스꽝스러운 여배우를 응접실에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두루 비난을 받았다. 어느 이름난 공작은 그녀에게, 이렇게 구설에 오른 것은 오로지 그녀 탓이라고 서슴없이 일러주었다. “아니 정말이지, 사람들은 그런 ‘여흥거리’를 보러 오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 여자에게 재능이라도 있다면 또 몰라. 하지만 재능이라곤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요. 맹세컨대, 파리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소. 사교계가 온통 얼간이들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란 말이오. 이 자그마한 여인은 자기가 파리를 깜짝 놀라게 하리라 여긴 게 분명하오. 하지만 파리는 그렇게 호락호락 놀라는 곳이 아니고, 아직도 우리에게 삼키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쯤 남아 있소.”
한편 그 여배우는 생루와 함께 집을 나서며 이렇게 외쳤다.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저 거위들, 저 무식한 암캐들, 저 더러운 뒷골목 건달들한테 데려간 거야? 솔직히 말해서, 그 방에 있던 남자란 남자는 하나같이 나한테 추파를 던지거나 내 발을 슬쩍 눌러댔어. 그런데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앙심을 품고 저러는 거라고.”
이 말은 사교계 사람들에 대한 로베르의 반감을 깊고도 괴로운 혐오로 바꾸어놓았고, 그 혐오는 무엇보다 그것을 가장 받아 마땅하지 않은 이들, 곧 집안을 대신해 생루의 여인에게 그와 결별하라고 설득하려 든 헌신적인 친척들에게서 그의 안에 일었으니, 그녀는 그 움직임을 자기를 향한 그들의 연정에서 비롯된 것인 양 그에게 둘러댔던 것이다. 로베르는 그들을 곧바로 안 보게 되었으면서도, 지금처럼 정부와 떨어져 있을 때면, 그들이나 그들 같은 자들이 자기가 없는 틈을 타 다시 공세에 나서 어쩌면 그녀를 넘어가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그가 벗들에게 불충하며 벗들의 아내를 유혹하려 들고 그들을 밀회의 집으로 오게 하려 애쓰는 호색가들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온 얼굴이 고통과 증오로 이글거렸다.
“나라면 개 한 마리를 죽이는 것보다도 덜 거리끼며 그런 자들을 죽여버릴 거야. 개는 그래도 얌전한 짐승이고, 충직하고 한결같으니까. 가난과 부자들의 잔혹함에 떠밀려 죄를 저지른 불쌍한 가엾은 이들보다야, 차라리 단두대에 올라 마땅한 자들은 따로 있지.”
그는 시간의 대부분을 정부에게 편지와 전보를 보내는 데 썼다. 그녀가 그를 여전히 파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편지로 트집을 잡아 다툴 구실을 찾아낼 때마다, 나는 그의 뚜렷이 흐트러진 기색에서 그 소식을 대번에 읽어냈다. 정부는 그에게 무엇이 잘못이라 여기는지 결코 말해주지 않았으니, 그는 그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녀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며 그저 그에게 싫증이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면서도, 그래도 해명을 듣고 싶어 그녀에게 이렇게 쓰곤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줘. 내 잘못이라면 얼마든지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를 짓누르던 슬픔이 그로 하여금 자기가 정말 잘못 처신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답장을 끝없이 기다리게 했고, 그 답장은 막상 오면 아무 뜻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거의 언제나 이맛살을 찌푸린 채, 흔히는 빈손으로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생루를 보곤 했으니, 호텔에서 오직 그와 프랑수아즈만이, 그는 연인의 조바심에서, 그녀는 하인 특유의 남에 대한 불신에서 그곳으로 편지를 찾거나 부치러 다녔다. (전보를 부치려면 그는 훨씬 더 먼 길을 가야 했다.)
블로크 집안 사람들과 함께한 만찬이 있은 며칠 뒤, 할머니가 기쁜 얼굴로 내게, 생루가 발베크를 떠나기 전에 자기 사진을 한 장 찍어드릴까 하고 방금 물어보더라고 일러주었을 때, 그리고 할머니가 일부러 가장 고운 옷을 차려입고 여러 개의 제일 좋은 모자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할머니답지 않은 이 어린애 같은 짓에 적잖이 짜증이 났다. 나는 심지어, 내가 할머니를 잘못 본 것은 아닌지, 할머니를 너무 높이 여긴 것은 아닌지, 할머니가 몸치장에 대해 내가 늘 여겨온 것처럼 그렇게 무심한 사람인지, 실은 내가 할머니의 기질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믿었던 바로 그 약점, 곧 교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불행히도, 사진 “촬영”이라는 예상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그것을 몹시 기대하는 듯한 그 만족스러운 기색에서 내가 느낀 이 언짢음을, 나는 어찌나 드러냈던지 프랑수아즈가 그것을 알아채고, 본의 아니게 그 언짢음을 부추기고 말았으니, 내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감상적이고 넘치는 말을 내게 늘어놓은 것이다.
“어머, 도련님, 우리 가엾은 마님께서 사진 찍히시는 걸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늙은 이 프랑수아즈가 손질해 드린 모자를 쓰실 참이랍니다. 도련님, 부디 그렇게 하시게 두세요.”
나는 프랑수아즈의 감상을 비웃는 내가 잔인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모든 일에서 내 본보기인 어머니와 할머니도 종종 똑같이 그랬다는 것을 스스로 되새김으로써 얻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언짢아 보이는 것을 알아채고, 사진을 찍겠다는 이 계획이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시게 두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조금도 나쁠 것 없다고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몸치장을 하시도록 두었으나, 내 통찰과 굳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기며, 할머니가 사진 찍히는 데서 얻는 듯한 기쁨을 무디게 하려는 뾰족한 빈정거림 몇 마디를 덧붙였으니, 그리하여 할머니의 그 훌륭한 모자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더라도, 적어도 나를 기쁘게 했어야 마땅한 그 즐거운 표정만큼은 할머니의 얼굴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런 표정이 우리에게는, 우리가 그들에게 그토록 안겨주고 싶어 하는 행복의 값진 모습이 아니라, 어떤 못난 변덕의 부아를 돋우는 발현으로만 비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있는 법이다. 나의 언짢음은 특히, 지난 한 주 동안 할머니가 나를 피하는 듯싶었고, 밤에도 낮에도 잠시조차 할머니를 나 혼자 차지할 수 없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오후에 잠깐 할머니와 단둘이 있으려고 돌아오면 할머니는 호텔에 안 계시다는 말을 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는 내가 감히 끼어들 수 없는 끝없는 밀담을 나누느라 프랑수아즈와 방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그리고 저녁 내내 생루와 나가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에게 가서 입 맞출 수 있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걸었건만, 우리 사이의 칸막이벽을 두드려 들어와 잘 자라는 인사를 하라고 알려주는 그 세 번의 자그마한 노크 소리를 기다려도 헛일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토록 새롭고 낯선 무심함으로 내가 그토록 기대하던 기쁨을 앗아간 할머니가 조금 원망스러워, 어린 시절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잠시 가만히 누운 채, 잠잠하기만 한 벽에 귀 기울이다가, 끝내 울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