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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풍경, 소녀들의 띠 장식 ④

2권 제2부 · 바다 풍경, 소녀들의 띠 장식

그러다가 나 자신의 삶조차 새로운 무대장치에 온통 가려졌으니, 그것은 무대 맨 앞에 내려진 “막”과 같아서, 그 뒤에서 무대 담당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배우들이 새로운 “막간극”으로 등장하는 그런 막이었다. 이제 내가 한 배역을 맡게 된 그 막간극은 동방의 옛이야기 풍이었다. 나는 이 끼워 넣어진 무대장치가 워낙 바싹 다가와 있는 탓에 내 과거도 나 자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저 발바닥을 매질당하고 온갖 형벌을 받는 한 사람이었을 뿐이니, 그 죄가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으나 실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죄였다. 문득 나는 잠에서 깨어, 오래 잔 덕분에 연주회의 한 소절도 듣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벌써 오후였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몇 번이나 애쓴 끝에, 처음에는 부질없이 실패하여 베개 위로 자꾸만 뒤로 넘어지는 그런 짧은 넘어짐, 술이든 회복기든 다른 온갖 도취와 마찬가지로 잠의 여운이기도 한 그 짧은 넘어짐에 번번이 가로막힌 끝에, 나는 시계를 보고 그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시각을 보기도 전에 이미 정오가 지났음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간밤의 나는 무게도 없이 텅 빈 그릇에 지나지 않았고(가만히 있으려면 먼저 자리에 누워야 했고 잠자코 있으려면 잠들어야 했으므로), 뒤척이며 지껄이지 않고는 못 배겼던 것이다. 나는 이제 아무런 안정도, 무게중심도 없었으니, 움직이도록 밀려나 있었고, 이대로 그 음울한 궤도를 달려 달에까지 이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자는 동안 눈이 시각을 보지 못했다 해도, 내 몸은 어떻게든 그것을 헤아려 냈다. 표면에 눈금과 숫자가 새겨진 문자반으로가 아니라, 되채워진 나의 온 힘의 꾸준히 불어나는 무게로써 시간을 재었던 것이니, 강력한 시계장치처럼 그 힘이 톱니 하나하나만큼씩 내 뇌에서 몸의 나머지로 내려앉도록 두었고, 그 몸속에는 이제 무릎 위까지 그 비축분이 끊임없이 그득 차올라 있었다. 바다가 한때 우리의 본원적 터전이어서, 기운을 되찾으려면 우리의 식은 피를 그 속에 담가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잠의 망각, 잠의 정신적 부재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시간에서 벗어나는 듯싶지만, 그 사이에 소모하지 않고 그러모은 힘이 그 분량으로써 시간을 재니, 시계추나 무너져 내리는 모래시계의 피라미드만큼이나 정확하다. 그런 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오래 이어진 깨어 있음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조금도 쉽지 않으니, 모든 것이 그토록 끈질기게 지속하려 들기 때문이다. 어떤 마취제가 우리를 잠들게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얼마간 자고 났다는 것은 더욱 강한 마취제여서, 그 뒤에는 스스로 깨어나기가 몹시 힘겹다. 아직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자기 배를 댈 항구를 또렷이 바라보는 뱃사람처럼, 나는 시각을 보고 일어나겠다는 아주 분명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나, 내 몸은 순간순간 잠의 물결 위로 도로 내던져졌다. 상륙은 힘겨웠고, 굳어 버린 사지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그 쌓인 힘이 가리키는 시각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을 맞대어 볼 수 있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나는 두세 번 더 베개 위로 넘어졌다.

마침내 나는 시계에 손이 닿아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오후 두 시!” 나는 종을 울렸다. 그러나 이내 나는 다시 선잠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그것이 훨씬 더 오래 이어졌음이 틀림없었으니, 깨어났을 때 느낀 상쾌함으로, 넘어선 어느 광막한 밤의 환영으로 미루어 그러했다. 그런데도 나를 깨운 것은 프랑수아즈가 들어온 일이었고, 그녀가 들어온 것은 내가 종을 울린 탓이었으니, 내게는 아까 것보다 더 길었던 듯싶고 그토록 많은 안식과 망각을 안겨 준 이 두 번째 잠은 실은 반 분도 채 이어지지 못했던 셈이다.

할머니가 내 방문을 열었다. 나는 그녀에게 르그랑댕 집안에 대해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내가 평온과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어제 그것들을 나로부터 갈라놓은 것은 단순한 공간의 간격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밤새도록 거꾸로 흐르는 물결에 맞서 싸워야 했고, 이제 나는 다시 그것들 앞에 서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다시 한번 내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언젠가 부서져 나의 관념들을 영영 새어 나가게 할 나의 텅 빈 머리, 그 표면 아래 여전히 다소 아픈 어떤 정해진 지점들에서, 그 관념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여태껏 아쉽게도 누리지 못했던 그 존재를 되찾았다.

또 한 번 나는 잠들 수 없는 불가능에서, 나의 신경성 폭풍의 범람과 난파에서 벗어났다. 이제 나는 안식을 빼앗긴 채로 있던 전날 저녁 나를 짓누르던 그 위협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새로운 삶이 내 앞에 열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온전히 부서져 있으면서도 아주 말짱하고 개운했기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피로를 음미했다. 그 피로가 내 다리와 팔의 뼈들을 따로따로 떼어 놓았으니, 나는 그것들이 내 앞에 흩어져 다시 하나로 붙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우화 속 건축가처럼 나는 그저 노래만으로 그것들을 일으켜 세우면 될 터였다.

문득 나는 리브벨에서 본, 슬픈 표정의 아름다운 처녀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었다. 저녁 내내 다른 많은 여자들이 매력적으로 보였건만, 이제 내 기억의 어둑한 곳에서 떠오르는 것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눈여겨보았다고 느꼈고, 급사 하나가 그녀의 은밀한 전언을 속삭이며 내게 오리라 기대했었다. 생루는 그녀를 알지 못했고 그녀가 정숙한 여자이리라 짐작했다. 그녀를 보기란, 그것도 늘 보기란 몹시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나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였고, 이제 오직 그녀만을 생각했다. 철학은 흔히 자유로운 행위와 필연적인 행위를 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보다 더 완전히 그 필연에 종속되는 행위는 아마 없으리라. 곧, 행위 그 자체 동안에는 억눌려 있던 어떤 상승하는 힘의 작용으로, (일단 우리 마음이 잠잠해지기만 하면) 우리의 무관심이 고르게 눌러 다른 추억들과 나란히 평평해져 있던 어떤 추억 하나를 어김없이 솟아오르게 하여 표면으로 밀어 올리는 그런 행위 말이다. 그 추억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튿날에야 비로소 우리가 알아차리게 되는 어떤 매혹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이보다 더 자유로운 행위도 아마 없으리니, 그것은 아직 습관에 의해, 곧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어느 한 사람의 영상이 늘 되풀이해 떠오르도록 돕는 그런 일종의 정신적 환각에 의해 부추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은 바다를 배경으로 젊은 처녀들의 아름다운 행렬이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본 그 이튿날이었다. 나는 호텔의 여러 투숙객들, 해마다 거의 빠짐없이 발베크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녀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일러 줄 수 없었다. 뒷날 한 장의 사진이 그 까닭을 내게 알려 주었다. 사람이 그토록 온통 달라지는 그런 나이를 이제 겨우, 그러나 분명히 넘어선 그녀들에게서, 몇 해 전만 해도 천막을 둘러싸고 모래밭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모습을 볼 수 있었을 저 어린 소녀들의, 아직 온통 앳되고 형체 없는 사랑스러운 덩어리를, 어느 누가 이제 와 알아볼 수 있으랴. 그것은 일종의 희고 어렴풋한 별자리여서, 그 안에서 남달리 반짝이는 한 쌍의 눈, 짓궂은 얼굴, 아마빛 머리채를 얼핏 가려낼 수 있었으나, 이내 그것들을 다시 놓쳐 그 흐릿하고 젖빛 어린 성운 속에 뒤섞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그토록 최근인 그 지난날에는, 어제 그녀들이 처음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처럼 그 무리에 대한 나의 인상이 뚜렷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그 무리 자체가 뚜렷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그 아이들은, 그저 갓난것이나 다름없는 그 아이들은, 아직 저마다의 얼굴에 개성이 그 도장을 찍지 않은, 형성의 그 원초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개체가 그 자체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이루는 산호충들보다는 오히려 암초 속에 존재하는 저 원시 유기체들처럼, 그녀들은 아직 서로 바싹 붙어 있었다. 이따금 하나가 옆의 아이를 밀어 넘어뜨리면, 그녀들 개개의 삶의 유일한 발현인 듯싶은 왁자한 웃음이 그녀들 모두를 단번에 뒤흔들었으니, 반짝이며 떨리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는 가운데 그 어렴풋이 히죽거리는 얼굴들을 지워 버리고 뒤섞어 버렸다. 언젠가 그녀들이 내게 주게 될, 그리고 그 뒤로 내가 줄곧 간직해 온 그녀들의 옛 사진 속에서, 그 앳된 무리는 이미 훗날의 그 여인다운 행렬과 똑같은 수의 인원을 이루고 있다. 거기서 보건대 그녀들의 존재는 그때조차 이미 해변에서 눈길을 끄는 남다른 자국을 남겼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서 그녀들을 하나하나 알아보려면 오직 추론의 과정을 거치는 수밖에 없으니, 소녀 시절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변모에 널찍한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하나의 재구성된 모습이 또 다른 개체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이르고, 그 개체 또한 확인해야 하는데, 그 어여쁜 얼굴은 큼직한 체구와 곱슬머리라는 부속물 덕분에, 어쩌면 한때 그 사진첩이 우리에게 내미는 저 쪼그라들고 장난기 어린 조그만 히죽거림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처녀들 저마다의 신체적 특징이 짧은 사이에 밟아 온 거리가 그것들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너무 애매한 척도로 만들어 버린 반면, 그녀들이 공통으로 지닌 것, 말하자면 집단적으로 지닌 것은 그 이른 시절에 이미 뚜렷이 새겨져 있었기에, 이따금 그녀들의 가장 가까운 벗들조차 이 사진 속에서 하나를 다른 하나로 혼동하곤 했으니, 결국 그 문제는 오직 어느 하나가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입었노라고 확언할 수 있는 옷차림의 어떤 사소한 부분으로써만 가려낼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방금 그녀들이 “해변 산책로”를 거니는 것을 본 그날과는 그토록 다르면서도 시간상으로는 그토록 가까운 그 시절 이래로, 그녀들은 여전히 웃음보를 터뜨리곤 했으니, 그날 오후에도 내가 본 바와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유년기의 그 간헐적이고 거의 반사적인 웃음, 그 시절에는 비본강의 피라미 떼가 흩어져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모여들듯 그녀들의 머리를 자꾸만 원 밖으로 까딱거리게 하던 그 발작적인 방출과는 다른 웃음이었다. 이제 저마다의 얼굴은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었고, 그녀들의 눈은 저마다 나아가는 목표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제 그녀들의 앳된 웃음과 그 옛 사진이 그러했듯이, 이제 낱낱으로 개별화되어 갈라진 그 창백한 산호초의 포자들을 내가 어렴풋이 혼동하게 되기까지에는, 나의 첫인상의 그 머뭇거림과 떨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여쁜 처녀들이 지나갈 때면 나는 아마 여러 번, 다시 그녀들을 보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으리라. 대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의 존재를 이내 잊어버리는 우리의 기억은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워하고, 우리 눈은 어쩌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며, 그새 우리는 또 다른 처녀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으되 그녀들 또한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발베크의 그 발랄한 작은 무리에게 일어나게 될 일이 바로 그러했듯이, 우연이 그녀들을 끈질기게 다시 우리 눈앞에 데려온다. 그럴 때 우연은 우리에게 좋고 유익한 것으로 여겨지니, 우리는 그 안에서 이를테면 조직의 싹, 우리 삶을 정돈하려는 시도 같은 것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어떤 영상들이 붙들려 남게 되는 일을 쉽고 불가피하게, 때로는(더는 기억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게 했던 중단들이 있은 뒤라 더욱) 잔혹하게 만드니, 우리는 마침내 그 영상들을 소유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고 믿게 되건만, 우연만 아니었더라면 다른 숱한 영상들처럼 처음부터 그토록 손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을 것들이다.

이윽고 생루의 체류가 끝나 갔다. 나는 해변에서 그 처녀들의 무리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는 오후에는 발베크에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 그녀들에게 마음 쓸 겨를도, 나를 위해 그녀들과 사귀어 볼 겨를도 없었다. 저녁이면 그는 좀 더 자유로웠고, 여전히 나를 줄곧 리브벨로 데려갔다. 그런 식당에는, 공원이나 기차 안에서도 그러하듯, 아주 평범한 겉모습을 한 채 있으나, 어쩌다 이름을 물어보고서 이 사람이 우리가 짐작하던 그저 그런 무해한 낯선 이가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가 그토록 자주 들어 온 그 장관이나 공작임을 알게 되면 그 이름에 우리가 놀라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벌써 두세 번, 리브벨 식당에서 생루와 나는, 다들 자리를 뜰 채비를 할 무렵에야 들어와 한 식탁에 앉는, 훤칠한 키에 아주 다부진 몸집을 하고 반듯한 이목구비에 희끗희끗한 수염을 기른 한 사내가, 골똘히 정신을 모아 허공을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저녁, 저 눈에 띄지 않는 고독하고 뒤늦은 손님이 누구냐고 우리가 주인에게 묻자 그가 소리쳤다. “아니!” 그가 외쳤다. “설마 저 유명한 화가 엘스티르를 모르신단 말입니까?” 스완이 언젠가 내게 그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으나, 어떤 연유였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기억의 누락은, 글을 읽을 때 문장의 한 부분이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불확실이 아니라 성급한 확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저이는 스완의 친구로, 아주 이름난 예술가이고,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야.” 나는 생루에게 말했다. 그러자 우리 둘 위로, 감동의 물결처럼, 엘스티르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명사인데, 우리를 다른 손님들과 뒤섞어 여기며, 자기 재능의 관념이 우리를 몰아넣은 그 황홀경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물론 그가 우리의 흠모도, 우리가 스완과 아는 사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바닷가에 와 있지만 않았더라도 우리를 안달하게 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직 열광이 잠자코 있지 못하는 나이였고, 남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그런 삶 속으로 옮겨져 있었기에, 우리는 두 사람 이름을 모두 서명한 편지 한 통을 써서,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은 두 손님이 그의 재능을 열렬히 흠모하는 두 사람이자 그의 절친한 벗 스완의 두 친구임을 엘스티르에게 밝히고, 몸소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급사 하나가 이 편지를 그 명사에게 전하는 일을 맡았다.

이 무렵의 엘스티르는 어쩌면 아직 주인이 내세운 만큼의 명사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그로부터 몇 해 안에 명성의 절정에 이르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이 식당이 아직 일종의 농가에 지나지 않던 시절부터 이곳을 드나든 첫 사람들 중 하나였고, 이곳에 예술가들의 무리를 통째로 데려왔었다(그런데 그들은 공교롭게도, 그들이 헛간 지붕 아래 야외에서 배를 채우던 그 농가 마당이 유행하는 명소가 되자마자 죄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가 버렸다). 엘스티르 자신이 오늘 저녁 리브벨로 돌아온 것도 단지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근처에 얻어 둔 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재능은, 그 존재가 아직 인정받지 못했을 때조차 어김없이 어떤 흠모의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 주인은 그러한 현상을, 엘스티르가 어떤 삶을 사는지 정보에 목말라하는 한둘이 아닌 영국 부인 손님들이 던지는 물음에서, 또는 그가 외국에서 받는 편지의 수효에서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주인은, 엘스티르가 작업할 때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고, 한밤중에 일어나 달이 밝으면 작은 모델 하나를 물가로 데려가 벌거벗은 채 자세를 취하게 한다는 것도 눈치챘다. 그리고 그는, 리브벨로 들어오는 길가에 서 있던 나무 십자가 하나를 엘스티르의 그림 한 폭에서 알아보고 나서는, 그토록 많은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관광객들의 흠모도 부당한 것이 아니라고 혼잣말을 했다.

“틀림없어!” 그는 얼떨떨해하며 되뇌곤 했다. “가로대가 네 개 다 있잖아! 오, 저 사람은 정말 공을 많이 들인다니까!”

그리고 그는 엘스티르가 자기에게 준 조그만 바다 위의 일출 한 폭이 한밑천 값어치가 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가 우리 편지를 읽고,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기 물건을 챙겨 달라고 하고, 떠나려 일어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청으로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어찌나 굳게 믿었던지, 이제는 (처음에 그가 알아채기를 몹시 두려워하던 만큼이나 간절히) 그의 눈에 띄지 않고 빠져나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어야 마땅한 한 가지 사정을 우리는 단 한순간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니, 곧 우리가 그 진실함을 조금도 의심받게 하지 않으려 했을, 실로 기대에 숨을 죽인 우리 호흡으로, 그 위대한 인물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렵고 영웅적인 일이라도 마다 않겠다는 우리의 열망으로 증명해 보일 수도 있었을 그 엘스티르를 향한 열광이,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 달리 흠모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둘 중 누구도 그가 그린 것을 하나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은 “위대한 예술가”라는 공허한 관념을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품 자체를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기껏해야 추상적인 흠모, 내용 없는 흠모의 신경성 껍데기, 그 감상적인 골격에 지나지 않았으니, 다시 말해 성인 남자에게는 이미 사라진 어떤 기관들처럼 소년기와 뗄 수 없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소년이었다. 그러는 사이 엘스티르는 문에 다다르고 있었는데, 문득 그가 돌아서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몇 해 뒤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을 그런 감미로운 두려움의 전율에 사로잡혔다. 세월은 우리의 능력을 줄이는 한편, 세상과의 친숙함이 그새 우리 안에서 그런 낯선 만남을 자청하고 싶은 마음, 그런 종류의 감동을 느끼고 싶은 마음을 죄다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엘스티르가 우리 식탁에 앉아 우리에게 하러 되돌아온 그 몇 마디 말 가운데, 내가 몇 번이나 스완 이야기를 꺼냈으나 그는 한 번도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스완을 알지 못하는가 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더러 자기 발베크 화실에 찾아오라고 청했으니, 그 초대를 생루에게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초대를 받을 만한 일을 했던 것이니(설령 엘스티르가 스완과 가까웠다 한들 스완의 추천으로는 어쩌면 받지 못했을 초대다. 사람들의 삶에서 사심 없는 동기가 하는 몫은 우리가 곧잘 여기는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내가 예술에 몰두해 있다고 그가 여기게 만든 몇 마디 말로써 그것을 얻었다. 그는 내게 다정함을 아낌없이 베풀었으니, 그것은 생루의 다정함이 한낱 장사치의 붙임성 위에 있는 만큼이나 그 위에 있는 것이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다정함에 견주면, 대귀족의 다정함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배우가 한 배역을 연기하는 듯한, 꾸며 낸 듯한 느낌을 준다. 생루는 남의 마음에 들려 애썼고, 엘스티르는 주기를, 자기 자신을 주기를 좋아했다. 그가 지닌 모든 것, 사상이며 작품이며, 그가 훨씬 하찮게 치던 그 나머지 것들을, 그는 자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에게든 기꺼이 주었으리라. 그러나 견딜 만한 사교계가 없는 탓에 그는 고립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허세와 무례라 부르고, 관청은 반항적 기질이라 부르고, 이웃들은 광기라 부르고, 그 가족은 이기심과 오만이라 부르던 그런 야만스러움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물론 처음에 그는, 자신의 고독 속에서조차, 자기 작품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기를 오해했거나 상처 준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더 드높은 관념을 심어 주고 있다는 것을 즐거이 생각했으리라. 어쩌면 그 시절 그가 홀로 산 것은 무관심에서가 아니라 동포를 향한 사랑에서였으니, 내가 질베르트를 단념한 것이 언젠가 더 매력적인 빛을 띠고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기 위해서였듯이, 그도 어떤 이들에게 다시 다가가는 한 방편으로 자기 작품을 그들에게 바쳐, 실제로 그를 보지 않고도 그들이 그를 사랑하고 흠모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리라. 단념이란 우리가 애초의 심경으로 그것을 결심할 때, 그리고 그것이 아직 우리에게 되작용하기 전에는, 병자의 단념이든 수도자의 단념이든 예술가나 영웅의 단념이든, 처음부터 늘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이들을 마음에 두고 만들어 내고자 했다손 치더라도, 만들어 내는 동안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는 무관심해진 그 사교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고독의 실천이 그에게 고독에 대한 애정을 안겨 준 것이다. 우리가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마는 온갖 큰일에 그러하듯 말이니, 그것이 우리가 매달리던, 그것과 양립할 수 없음을 알던 더 작은 것들과 어긋난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며, 그러나 그 큰일은 우리에게서 그 작은 것들을 앗아 간다기보다 우리를 그것들에서 떼어 놓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겪어 보기 전에는 우리의 온 관심은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어떤 즐거움들과 화해시킬 수 있을까에 쏠려 있으나, 그 즐거움들이란 우리가 그것을 일단 겪고 나면 이내 즐거움이기를 그치는 것들이다.

엘스티르는 우리와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며칠 안에 그의 화실에 가 보리라 마음먹었으나, 이튿날 오후,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해변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 카나프빌의 절벽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해변과 직각으로 뻗어 내린 자그마한 거리들 중 하나의 어귀에서, 한 처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마지못해 제 우리로 몰려가는 짐승처럼 고개를 숙이고 골프채를 든 채, 웬 감독하는 사람 앞에서 걷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도 그녀나 그녀 벗들의 “가정교사”였을 것이다. 그 여자는 호가스가 그린 제프리스의 초상을 떠올리게 했으니, 홍차보다 진을 즐기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벌건 얼굴에, 입가에 말라붙은 담뱃진 자국이 희끗희끗하나 무성한 콧수염의 곡선을 이어 놓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걷던 처녀는, 검은 폴로 모자 아래 무표정하고 통통한 얼굴에 웃는 두 눈을 보이던 그 작은 무리의 한 처녀와 닮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앞을 지나가던 처녀 또한 검은 폴로 모자를 쓰고 있었으나, 내게는 그 다른 처녀보다 한결 더 어여쁘게 다가왔다. 코의 선이 더 곧았고, 코끝 밑의 콧방울 곡선이 더 도톰하고 살졌다. 게다가 그 다른 처녀는 도도하고 창백한 처녀로 보였던 반면, 이 처녀는 얌전하고 발그레한 낯빛의 아이였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 다른 처녀와 똑같은 자전거를 밀고 있었고 똑같은 순록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나는 그 차이가 아마 이제 내가 그녀를 보는 각도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결론지었다. 발베크에 결국 따지고 보면 그토록 닮은 얼굴에 차림새의 세세한 데까지 똑같은 두 번째 처녀가 있으리라고는 좀처럼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쪽으로 재빨리 눈길 한 번을 던졌다. 그 뒤 며칠 동안 해변에서 그 작은 무리를 다시 보았을 때도, 아니 그 무리를 이룬 처녀들을 죄다 알게 된 훨씬 뒷날에도, 나는 그녀들 중 어느 누구도(그들 모두 중 그녀와 가장 닮은, 자전거를 탄 그 처녀조차) 그날 저녁 “해변 산책로” 끝, 거리 하나가 해변으로 내려가는 그곳에서 내가 본 처녀, 행렬 속에서 내가 눈여겨보았던 그 처녀와 거의 다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어렴풋이나마 분명히 다르던 그 처녀와 같은 사람이라고 도무지 단정할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지난 며칠간 내 마음을 주로 차지하던 것이 그 키 큰 처녀였다면, 이제는 골프채를 든 그 처녀, 시모네 으로 짐작되는 그 처녀가 다시금 내 온 주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다른 처녀들과 걸을 때 그녀는 곧잘 걸음을 멈추어, 그녀를 몹시 존중하는 듯한 벗들까지 멈춰 서게 했다. 바로 그렇게 걸음을 멈춘 채로, 폴로 모자 아래 두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오늘도 다시 본다. 바다가 그녀 뒤로 펼쳐 놓은 화폭을 배경으로 또렷이 드러난, 그리고 투명하고 하늘빛 어린 공간, 곧 그때 이래로 흘러간 시간의 간격으로 나와 갈라져 있는 그녀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고도 섬세한 첫인상, 갈망되고 뒤쫓기다가 잊혔다가 다시 찾아진 그 얼굴을, 실제로 내 방에 있던 한 처녀를 두고 “바로 저 여자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려고 그 뒤로 여러 번 과거의 구름 위에 투영해 온 그 얼굴을.

그러나 어쩌면 또 다른 처녀, 제라늄빛 뺨에 초록 눈을 한 그 처녀야말로 내가 가장 알고 싶어 했을 이였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느 날 그중 누구를 보고 싶어 하든, 그녀가 없어도 나머지 처녀들만으로 내 욕망을 부추기기에 충분했으니, 이제 주로 이 처녀에게, 이제 저 처녀에게 쏠리던 그 욕망은, 첫날 나의 어렴풋한 시야가 그러했듯이, 그녀들을 계속 한데 어우르고 뒤섞어 그녀들만의 작은 세계, 공동의 삶으로 생기 도는 세계로 만들었으니, 하기야 그녀들 스스로도 자기들이 그런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 중 하나의 벗이 됨으로써, 야만인들 틈에 들어가는 교양 있는 이교도나 꼼꼼한 그리스도인처럼, 건강과 남에 대한 무심함과 관능적 쾌락과 잔혹함과 지성 없음과 기쁨이 다스리는 그 젊음을 되돌려 주는 사회 속으로 파고들었으리라.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