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엘스티르와 만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는, 그와의 우정에서 내가 얻을 온갖 지적 이득을 생각하며 기뻐하시고는, 아직 그를 찾아뵙지 않은 것이 어리석고 예의에도 어긋난다고 여기셨다. 그러나 나는 오직 그 작은 무리만을 생각할 수 있었고, 처녀들이 산책로를 지나갈 시각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자리를 비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할머니는 내 차림새가 말쑥해진 데에도 놀라셨으니, 나는 문득 그동안 내 트렁크 밑바닥에 처박혀 있던 옷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나는 날마다 다른 옷을 입었고, 새 모자와 넥타이까지 파리에 주문해 두었다.
발베크 같은 해수욕장의 삶에, 조개나 과자나 꽃을 파는 어여쁜 처녀의 얼굴이 우리 마음속에 선명한 빛깔로 그려져, 이른 아침부터 규칙적으로, 우리가 해변에서 보내는 그 한가롭고 눈부신 하루하루의 목표가 된다면, 그것은 삶에 큰 매력을 더한다. 그러면 그 하루하루는, 바로 그 때문에, 비록 아무 볼일도 없건만, 일하는 날처럼 팽팽해지고, 뾰족해지고, 자기(磁氣)를 띠고, 다가오는 어느 순간을 맞으려 살짝 곧추선다. 우리가 모래 과자며 장미며 암모나이트를 사는 동안, 한 여인의 얼굴 위로 꽃 위에서처럼 순수하게 펼쳐진 그 빛깔을 보며 즐거워하게 될 그 순간을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조그만 장수들과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그녀들에게 말을 걸 수 있으니, 덕분에 그저 눈으로 보아 아는 것 말고 다른 모습들을 우리의 상상으로 지어내고, 초상화 앞에 섰을 때처럼 그녀들의 삶을 되지어내며 그 매력을 부풀리는 수고를 덜게 된다. 게다가 바로 우리가 그녀들에게 말을 걸기 때문에, 어디서 몇 시에 다시 그녀들을 볼 수 있을지도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은 무리에 관해서는 나에게 이런 이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들의 습관을 나는 알지 못했다. 어떤 날에 그녀들을 언뜻 보지 못하면, 그 부재의 까닭을 몰라 그것이 무언가 고정되고 규칙적인 것인지, 그녀들이 하루걸러만 나타나는지, 어떤 날씨에만 나타나는지, 아니면 아예 아무도 그녀들을 못 보는 날이 있는지를 알아내려 애썼다. 나는 벌써 그녀들과 벗이 되어 이렇게 말하는 나를 상상했다. “그런데 그저께는 안 오셨죠?” “안 왔냐고요? 아, 물론이죠. 그건 토요일이었으니까요. 토요일엔 절대 안 와요, 왜냐하면…” 그것이 그토록 간단해서, 저주스러운 토요일에는 애태워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해변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헤매고, 과자점 앞에 앉아 에클레르를 갉아먹는 척하고, 골동품점을 기웃거리고, 목욕 시간이며 연주회며 만조며 일몰이며 밤을 기다려 봤자, 그 그리운 작은 무리는 끝내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 운명의 날은 어쩌면 일주일에 한 번 오지는 않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반드시 토요일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어떤 대기 상태가 그것에 영향을 미치거나, 아니면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지도 몰랐다. 겉보기에는 불규칙한 그 미지의 세계들의 운행에 관해, 자기가 한낱 우연에 이끌려 길을 잃은 것이 아님을, 자기의 예측이 틀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기까지, 그토록 많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치르고서야 얻어지는 그 격렬한 천문학의 어떤 확실한 법칙들을 밝혀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찰을, 참을성 있으나 조금도 태평스럽지 않은 관찰을 쌓아야 하는가. 어느 요일에는 아직 그녀들을 본 적이 없음을 떠올리고서, 나는 그날은 그녀들이 오지 않으리라고, 더는 해변에서 기다려 봤자 소용없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녀들을 언뜻 보았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날에는, 그 별자리들의 회귀를 이끄는 법칙이 있다고 내가 짐작할 수 있는 한 상서로운 날이 틀림없으리라고 내가 헤아려 둔 그날에는, 그녀들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그녀들을 볼지 못 볼지에 대한 이 일차적인 불확실에, 또 하나의 더 불안한 불확실이 더해졌다. 곧 내가 다시 그녀들을 눈에 담을 수 있기나 할까 하는 것이었으니, 결국 나는 그녀들이 곧 아메리카로 떠날 참이 아니라거나 파리로 돌아갈 참이 아니라거나 하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그녀들을 사랑하기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어느 한 사람에게 이끌림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저 슬픔의 샘, 저 돌이킬 수 없다는 느낌, 사랑의 길을 닦는 저 고뇌를 터뜨리려면, 반드시 어떤 불가능의 위험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열이 그토록 애타게 끌어안으려는 실제 대상인 것이다. 이리하여 내게는 이미, 우리의 잇따르는 연애에서 되풀이되는 저 영향들이 작용하고 있었으니, 하기야 그것들은(다만 그때는 오히려 도시 생활에서) 언제가 반공일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고 공장에서 나오는 것을 놓쳤을까 봐 마음 졸이게 되는 조그만 여공들에 대한 생각으로도 불러일으켜질 수 있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내 경우에는 되풀이되어 온 것들이다. 어쩌면 그것들은 사랑과 뗄 수 없는 것이리라. 어쩌면 우리의 첫사랑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던 모든 것이, 추억과 암시와 습관에 의해 그 뒤에 오는 사랑들에 들러붙어, 우리 삶의 잇따르는 시기들을 거쳐 그 서로 다른 모습들에 하나의 일반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들을 그곳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 바라는 시각이면 무슨 핑계든 붙들어 해변으로 내려갔다. 한 번은 점심을 먹는 동안 그녀들을 언뜻 본 뒤로, 이제 나는 으레 점심에 늦게 들어와, “해변 산책로”에서 그녀들이 지나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식당에서 보내는 그 짧은 시간마저 온통 유리로 된 그 하늘빛 벽을 눈으로 살피는 데에 바쳤고, 혹여 그녀들이 다른 시각에 나갔을세라 놓치지 않으려 후식이 나오기 한참 전에 일어났으며, 할머니가 아무 악의 없이 내게 알맞아 보이는 그 시각을 넘겨 곁에 붙들어 두시면 애가 타서 안달했다. 나는 의자를 비스듬히 놓아 시야를 넓히려 했다. 어쩌다 처녀들 중 어느 누구든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녀들 모두가 같은 특별한 정수를 나누어 가진 터라, 마치 뒤바뀌는 악마적인 환각처럼, 바로 조금 전까지도 오로지 내 머릿속에만(그것이 영영 고여 있던 그곳에만) 있던 그 심술궂으면서도 열렬히 탐나는 꿈의 일부가 내 눈앞에 투영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들 중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면서 그녀들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으니, 그런데도 그녀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나의 나날 속에서 유일한 기쁨의 요소였고, 온갖 장애를 뛰어넘게 하는 그 드높은 희망들을, 그녀들을 보지 못하면 이따금 분노로 끝나고 마는 그 희망들을 내 안에서 홀로 움트게 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이 처녀들은 나의 애정 속에서 할머니를 무색하게 했다. 그녀들이 있을 만한 곳으로 가는 것이라면 아무리 먼 여행이라도 당장 마음이 끌렸으리라. 내가 다른 무언가를, 혹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여길 때조차, 내 생각이 편안히 매달려 있는 것은 그녀들이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녀들을 생각할 때면, 그녀들은 나에게, 저들 자신은 더더욱 무의식중에, 바다의 산악처럼 굽이치는 푸른 물결, 파도를 배경으로 그 윤곽이 지나가는 한 무리였다. 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가장 열렬한 사랑도, 실은 언제나 그와 더불어 다른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이제 내가 골프와 론테니스에 열을 올리며 당신이 당대 가장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기는 이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내게는 다소 편협한 견해에서 비롯된 듯한 못마땅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 샹젤리제에서 이미 짐작했고 그 뒤로 스스로 흡족하게 확인한 바, 우리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의 영혼의 어떤 상태를 그녀에게 투영하는 것일 뿐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여자의 가치가 아니라 그 상태의 깊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런 특출함도 없는 처녀가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위대한 인물과의 대화에서, 심지어 그의 작품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데서 얻는 즐거움으로는 닿지 못할, 우리 존재의 가장 은밀하고 더 개인적이며 더 아득하고 더 본질적인 부분들을 우리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할머니의 뜻에 따르게 되었는데, 엘스티르가 ‘해안가’에서 다소 떨어진, 발베크의 가장 새로 난 거리 가운데 하나에 살고 있었던 만큼 더욱 마지못한 걸음이었다. 한낮의 더위 탓에 나는 라 플라주 거리를 지나는 전차를 타야 했고, (여전히 내가 킴메르인들의 오랜 왕국에, 어쩌면 마르크 왕의 나라에, 혹은 브로셀리앙드 숲 자리에 있다고 믿고 싶어서) 양편으로 늘어선 건물들의 값싸고 요란한 화려함을 보지 않으려 애썼는데, 그 가운데 엘스티르의 별장이 어쩌면 가장 호사스럽게 흉했음에도 그가 그 집을 택한 것은, 발베크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그에게 정말로 널찍한 화실을 마련해 주는 유일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정원을 가로지를 때에도 나는 눈길을 돌린 채였는데, 그 정원에는 파리 근교의 여느 작은 교외 별장처럼 축소판이라 할 잔디밭이, 사랑에 빠진 정원사의 작은 조각상이, 제 모습이 일그러져 비치는 유리 구슬들이, 베고니아 화단이, 그리고 철제 탁자를 둘러싸고 흔들의자들이 놓인 작은 정자가 있었다. 그러나 속물적 추함이 낙인처럼 찍힌 이 모든 서두를 지나, 화실에 들어서자 나는 굽도리에 발린 초콜릿빛 몰딩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더없이 행복했으니, 나를 둘러싼 온갖 스케치와 습작의 도움으로, 여태껏 현실의 전체 광경에서 따로 떼어 본 적 없던 숱한 형상들을, 기쁨으로 가득한 시적 이해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스티르의 화실은 내게 일종의 새로운 세계 창조의 실험실처럼 보였으니,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온갖 사물이라는 혼돈으로부터, 방 안 곳곳에 걸린 여러 캔버스 직사각형 위에 그것들을 그려 냄으로써, 여기에는 라일락빛 거품을 모래 위에 성난 듯 부서뜨리는 바다의 물결을, 저기에는 흰 리넨 정장 차림으로 배의 난간에 몸을 기댄 젊은이를 뽑아냈다. 그의 저고리와 흩뿌려지는 물결은, 그것들을 이룬다고 여겨질 만한 성질들을 빼앗겼음에도, 즉 물결은 더는 튀어 오를 수 없고 저고리는 더는 누구를 입힐 수 없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품위를 얻고 있었다.
내가 들어선 순간, 그 창조자는 손에 든 붓으로 막 지는 해의 형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화실을 빙 둘러 덧문은 거의 모두 닫혀 있어, 안은 제법 서늘하고, 한 군데 햇빛이 벽에다 눈부시나 덧없는 장식을 드리운 곳을 빼면 어두웠다. 열려 있는 것은 인동덩굴에 뒤덮인 작은 직사각형 창 하나뿐으로, 그 창은 한 뙈기 정원 너머 큰길로 나 있었다. 그리하여 화실 대부분의 공기는 어스름하고, 투명하되 덩어리째 빽빽했으나, 황금빛 햇살의 걸쇠가 그것을 띠처럼 두른 틈새들에서는 액체처럼 흐르며 반짝였으니, 마치 수정 덩어리의 한 면이 이미 여기저기 깎이고 다듬어져 무지갯빛 광선을 받은 거울처럼 빛나는 것과도 같았다. 엘스티르가 내 청에 따라 계속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반쯤 어스름한 빛 속을 거닐며 이 그림 저 그림을 차례로 멈춰 서서 들여다보았다.
벽을 덮은 그림들은 대개 내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보고 싶어 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랑 호텔의 열람실 탁자에 놓여 있던 어느 영국 미술 잡지가 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화풍이라 부른 것, 즉 신화적 화풍과 일본풍의 영향이 엿보이는 화풍의 그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잡지에 따르면 이 두 화풍은 게르망트 부인의 소장품에서 훌륭히 드러나 있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화실에 있는 것은 거의 다 이곳 발베크에서 그린 바다 풍경화였다. 그러나 나는 이 그림들에서, 각각의 매력이 그 안에 재현된 사물들의 일종의 변형, 시에서 우리가 은유라 부르는 것에 견줄 만한 변형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가 사물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들을 창조했다면, 엘스티르는 그 이름들을 벗겨 내거나 다른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들을 새로이 창조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물을 가리키는 이름들은 언제나 지적 관념에 대응하는데, 그 관념은 우리의 참된 인상과는 이질적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 인상에서 자기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을 지워 버리도록 강요한다.
때때로 발베크 호텔의 내 창가에서, 아침에 프랑수아즈가 빛을 가리던 커튼의 잠금을 풀 때, 또 저녁에 생루와 함께 나가려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릴 때, 나는 어떤 햇빛의 효과에 이끌려 그저 조금 더 어두운 바다의 자락을 먼 해안선으로 잘못 보거나, 액체 같은 하늘빛 띠를 그것이 바다에 속하는지 하늘에 속하는지 모른 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이내 나의 이성은 그 요소들 사이에, 첫인상에서 내가 놓쳤던 그 구분을 다시 세워 놓았다. 마찬가지로 나는 파리의 내 침실에서, 아래 거리의 다툼을, 거의 소란에 가까운 소리를, 그 원인을, 이를테면 나를 향해 덜컹거리며 굴러오는 마차 같은 것을 되짚어 낼 때까지 듣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그 소음에서, 내 귀는 실제로 들었으나 바퀴가 내는 것이 아님을 내 이성은 알고 있던 그 날카롭고 귀에 거슬리는 아우성을 지워 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시적 시선으로 보는 드문 순간들, 엘스티르의 작품은 바로 그 순간들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그의 곁에 놓인 바다 풍경화들에 가장 흔히 나타나는 은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땅과 바다를 견주며 그 둘 사이의 온갖 경계선을 지워 버리는 것이었다. 한 폭의 캔버스 위에서 말없이 지칠 줄 모르고 되풀이되는 이 견줌이야말로, 엘스티르의 작품이 어떤 수집가들에게 불러일으킨 열광의, (그들 자신은 늘 뚜렷이 알아채지는 못하는) 원인인, 그 다채로우면서도 강력한 통일성을 그림에 부여했다.
이를테면 바로 이런 종류의 은유를 위해, 며칠 전에 완성해 내가 지금 실컷 바라보며 서 있던 카르크튀이 항구 그림에서, 엘스티르는 작은 마을에는 바다에 관한 낱말만을, 바다에는 도시에 관한 낱말만을 써서 보는 이의 마음을 미리 준비시켜 놓았다. 그 마을의 집들이 항구의 일부를, 건선거를 가리고 있든, 아니면 발베크 해안에서 늘 그러하듯 바다 자체가 뭍 사이로 굽이쳐 들어오든, 마을이 세워진 곶의 반대편에서는 지붕들 위로 (마치 방앗간 굴뚝이나 교회 첨탑이 그러하듯) 돛대들이 솟아 있었는데, 그 돛대들은 거기에 딸린 배들을 마치 뭍에서 나고 땅 위에 지어진 도시의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 인상은 다른 배들을 보면 더욱 굳어졌으니, 방파제를 따라 매인 그 배들이 어찌나 빽빽이 줄지어 있던지, 사람들이 이 갑판에서 저 갑판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보이되 그 사이를 가르는 선은, 그 사이 물의 틈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이 고깃배 선단은 물에 속했다기보다는, 이를테면 크리크베크의 교회들에 속한 듯했으니, 그 교회들은 저 멀리서, 사방이 물에 둘러싸여, 마을은 보이지 않은 채 교회들만 보였던 까닭에, 부슬거리는 햇빛의 안개와 부서지는 물결 속에서, 설화석고나 바다 거품으로 빚어져 물에서 솟아오르는 듯했고, 갖가지 빛깔의 무지개 띠에 둘러싸여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앞쪽 바닷가에서 화가는, 눈이 땅과 바다 사이의 어떤 고정된 경계도, 어떤 절대적인 구분선도 찾아내지 못하도록 배치해 두었다. 배를 바다로 밀어 넣는 사내들은 모래 위를 달리는 만큼이나 물결 사이를 달리고 있었는데, 젖은 모래가 그 뱃전을 마치 이미 물속에 든 것처럼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자체도 고른 선을 이루며 밀려오지 않고 해안의 굴곡을 따랐으며, 그림의 원근법이 그 굴곡을 한층 더 부풀린 탓에, 실제로는 바다에 떠 있는 배 한 척이 병기창의 튀어나온 구조물에 반쯤 가려져 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듯 보였다. 바위 틈에서 새우를 줍던 여인들은, 물에 둘러싸인 데다, 바위가 고리처럼 두른 장벽 너머로 바닷가가 (뭍에 가장 가까운 쪽에서) 해수면까지 내려앉은 그 우묵함 때문에, 배와 물결이 머리 위로 드리운 바다 동굴 속에 있는 듯했으니, 그 동굴은 기적처럼 비껴간 밀물의 길목에서 뻥 뚫려 있으면서도 무사했다. 그림 전체가 바다가 뭍 안으로 들어온 항구의, 땅이 이미 물속에 잠기고 사람들은 물뭍 양서류인 그런 항구의 인상을 주었다면, 바다라는 요소의 힘은 어디에서나 뚜렷했다. 바위 언저리, 바다가 거친 항구 어귀에서는, 어부들의 근육이 쏟아 내는 안간힘과 예각으로 기울어진 배들의 비스듬함에서, 항구의 창고와 교회와 마을의 집들이 잔잔하게 곧추선 것과 견주어, 어떤 이들은 그리로 돌아가고 어떤 이들은 고기잡이하러 나오는 그 배들이, 재빠르고 사나운 짐승을, 그들의 솜씨가 아니었다면 뒷발질로 그들을 떨어뜨렸을 그런 짐승을 안장 없이 올라탄 채 물 위를 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무리의 나들이객들이 험한 길 위의 이륜마차처럼 출렁이는 배를 타고 흥겹게 바다로 나서고 있었다. 그들의 뱃사공은, 명랑하면서도 제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부푼 돛을 조절했고, 배가 한쪽으로 무게가 쏠려 뒤집히지 않도록 저마다 제자리를 지켰으니, 그렇게 그들은 햇빛 어린 들판을 가로질러 그늘진 곳으로 내달으며 물결의 골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얼마 전의 폭풍우에도 화창한 아침이었다. 실로 저 배들의 편안한 균형에 이르려면 먼저 잠재워야 했을 그 강력한 움직임이 여전히 느껴졌으니, 바다가 어찌나 잔잔한지 그 반영이 떠 있는 뱃전보다 거의 더 단단하고 실물 같았고, 그 뱃전은 햇빛의 효과로 아지랑이처럼 흐려졌으며, 그림의 원근법은 그 부분들을 다른 부분들 사이에 짜 맞추어 놓았다. 그런 곳에서 배들은 움직임 없이 햇살과 산들바람을 누리며 놓여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것들을 바다의 다른 부분들이라 부르지 못했으리라. 그 부분들 사이에는, 그중 하나와 물에서 솟은 교회 사이만큼, 또는 마을 뒤편의 배들 사이만큼의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우리의 이성이 일에 나서, 여기서는 몰려드는 폭풍우 아래 검고, 조금 더 가서는 온통 하늘과 한 빛깔로 그처럼 환히 윤나며, 또 다른 곳에서는 햇빛과 안개와 거품에 어찌나 바래고, 어찌나 다부지고, 어찌나 땅 같고, 어찌나 집들로 에워싸여 하얀 돌 둑길이나 눈밭을 떠올리게 하는지, 그 표면 위로 배 한 척이 마치 마차가 여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기어오르듯 높이 뭍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보면 자못 섬뜩할 지경이었으나, 잠시 뒤 그 단단한 벌판의 솟고 부서진 표면 위에서 배들이 술 취한 듯 출렁이는 것을 보면 이 모든 다른 모습 속에서도 그것이 여전히 바다임을 깨닫게 되는, 그런 하나의 요소로 만들어 냈다.
예술에는 진보도 발견도 있을 수 없고 오직 과학에만 있으며, 제 나름으로 홀로 새로이 노력을 시작하는 예술가는 다른 모든 이의 노력에서 도움도 방해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예술이 어떤 법칙들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나면, 일단 어떤 산업이 그 법칙들을 가져다 통속화해 버렸을 때, 그 분야를 맨 먼저 개척한 예술은 돌이켜 보건대 제 독창성을 조금 잃는다는 것을. 엘스티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이른바 ‘감탄스러운’ 풍경과 도시 사진들에 익숙해졌다. 그 예찬자들이 이 형용사로 무엇을 뜻하는지 정의를 캐물으면, 우리는 그것이 대개 낯익은 대상의 어떤 색다른 모습, 우리가 늘 보아 온 것과는 다른, 색다르면서도 자연에 충실한 그림에 붙여지며,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 이중으로 인상적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를 놀라게 하여 우리의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어떤 이전의 인상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멋진’ 사진 가운데 하나는 원근법의 한 법칙을 보여 주는데, 우리가 늘 도시 한복판에서 보던 어느 대성당을, 대신 어떤 골라 잡은 시점에서 찍어, 그 성당이 집들의 서른 배 높이로 보이고 실제로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강기슭에서 부벽을 쑥 내밀고 있는 듯 보이게 한다. 그런데 사물을 자기가 아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처음 볼 때 이루어지는 착시에 따라 재현하려는 엘스티르의 노력은, 그를 바로 이 지점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 원근법의 법칙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특별히 강조했는데, 그의 예술이 그 법칙들을 맨 먼저 풀이한 것이었던 만큼 그것들은 한층 더 인상적이었다. 강물은 그 흐름의 굽이 때문에, 만은 양편 절벽이 맞닿아 보이는 까닭에, 마치 벌판이나 산의 한복판에 사방이 온통 뭍으로 막힌 호수가 파여 있는 듯 보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린 발베크 풍경 그림에서는, 바다의 후미가 분홍빛 화강암 벽에 갇힌 듯, 바다가 아닌 듯 보였고, 바다는 저 바깥에서 시작되었다. 대양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그림을 볼 때 단단한 바위처럼 보이는 것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로써만 암시되었는데, 사실 그 갈매기들은 밀려드는 밀물의 축축한 물안개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같은 캔버스에서 다른 법칙들도 알아볼 수 있었으니, 이를테면 거대한 절벽 발치에서, 푸른 거울 같은 수면 위 흰 돛들의 릴리퍼트 같은 앙증맞음은 그 표면 위에서 잠든 나비들처럼 보였고, 그림자의 깊이와 빛의 창백함 사이의 어떤 대비들도 그러했다. 사진 또한 진부하게 만들어 버린 이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엘스티르는 어찌나 흥미를 느꼈던지, 한때 그는 거의 신기루라 할 그림들을 그렸는데, 거기서는 탑을 인 성이, 꼭대기에 탑을 얹고 발치에 거꾸로 선 탑을 드리운 완벽한 원을 이룬 성으로 나타났으니, 이는 화창한 날 유난히 맑은 대기가 물에 비친 그림자에 돌의 단단함과 밝음을 주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아침 안개가 돌을 그림자처럼 아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다 너머, 한 줄의 숲 뒤편에서, 지는 해의 빛으로 장밋빛을 띤 또 다른 바다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실은 하늘이었다. 빛은, 말하자면 새로운 고체들을 응결시키듯, 제가 내려앉은 배의 뱃전을 여전히 그늘에 잠긴 다른 뱃전 뒤로 밀어냈고, 물질로는 평면이었으나 아침 바다 위 빛과 그림자의 유희로 깨진 것을 마치 수정 계단의 층계처럼 다시 배열했다. 어느 도시의 다리들 아래를 흐르는 강물은 어떤 시점에서 포착되어, 온전히 어그러진 듯 보였으니, 여기서는 호수로 넓어지고, 저기서는 실개천으로 좁아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나무 우거진 언덕에 가로막혀 끊겼는데,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그 나무들 사이로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맛보곤 했다. 그리고 이 산산이 흩어진 도시의 리듬은 오직 첨탑들의 굽힘 없는 곧추섬으로만 보장되었으니, 그 첨탑들은 솟아오른다기보다 차라리, 개선 행진에서처럼 박자를 새기는 진자의 수직선을 따라, 부서지고 조각난 강물의 기슭을 따라 안개 속에 어렴풋이 솟은 그 어지러운 집더미 전체를 제 아래에 매단 채로 있는 듯했다. 그리고 (엘스티르의 가장 이른 작품은 화가가 인물 하나를 끼워 넣어 풍경을 돋보이게 하던 시절에 속했으므로) 절벽 끝이나 산속에서, 자연의 반쯤 인간적인 부분이라 할 길은, 강이나 바다처럼, 원근법의 가림을 겪었다. 그리고 깎아지른 산벽이든, 급류에서 피어오른 안개든, 바다든, 무엇이 나그네에게는 보이나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솔길의 이어짐을 눈이 좇지 못하게 막든, 옛날식 옷차림을 한 그 자그마한 인간 인물은 흔히 벼랑 끝에서 우뚝 멈춰 선 듯했으니, 그가 따라오던 길이 거기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머리 위 천 피트 높이 저 소나무 숲에서, 나그네의 발길을 반기는 그 먼지 인 표면의 실오라기 같은 흰빛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촉촉한 눈과 위로받은 마음으로 바라보았으니, 우리에게는 산비탈이, 폭포나 골짜기를 피해 굽어 도는 그 사이의 굽이들을 가려 놓았던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고서 온갖 지적 관념을 벗어던지려는 엘스티르의 노력은, 붓을 들기에 앞서 스스로 일부러 무지해지고, 제 올곧은 뜻으로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그것도 아는 것이란 그 자체로는 존재하기를 그치는 법이므로 그리한 이 사람이, 실은 유달리 잘 닦인 정신의 소유자였던 만큼 한층 더 감탄스러웠다. 발베크의 성당 정문을 보고 느낀 실망을 내가 그에게 털어놓자, “뭐라고요!” 그가 소리쳤다. “그 정문에 실망했다고요! 아니, 그건 사람들이 여태껏 가져 본 가장 훌륭한 그림 성경인데요. 저 성모상과, 그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그 모든 부조는, 중세가 성모의 영광을 기린 저 끝없는 흠모와 찬미의 시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영감 어린 표현이란 말입니다. 성스러운 경문을 옮기는 데 있어 더없이 꼼꼼한 정확함과 나란히, 그 옛 조각가가 얼마나 절묘한 착상을, 얼마나 깊은 사유를, 얼마나 감미로운 시를 지녔는지 당신이 알기만 한다면!
“천사들이 성모의 몸을, 감히 손으로 만지기에는 너무도 성스러운 그 몸을 커다란 천에 받쳐 나르는 그 착상, 얼마나 놀라운 발상입니까.” (나는 이 주제가 생탕드레데샹에서도 다루어졌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거기 정문 사진을 본 적이 있어 수긍했으나, 저마다 한꺼번에 성모를 향해 서두르는 그 자그마한 농부 형상들의 부산한 움직임은, 그토록 날렵하고 그토록 부드러운, 거의 이탈리아풍이라 할 저 두 위대한 천사의 장중함과는 다른 것이라고 짚었다.) “성모의 영혼을 그 몸과 다시 합치려고 나르는 천사, 그리고 성모가 엘리사벳과 만나는 장면에서, 성모의 태를 만지고는 그것이 아이를 배어 부른 것을 느끼며 놀라는 엘리사벳의 몸짓, 그리고 손으로 만져 보지 않고서는 무염시태를 믿지 않으려 했던 산파의 붕대 감긴 팔, 그리고 부활의 증거를 주려고 성모가 성 토마스에게 던진 아마포 천, 또 성모가 제 가슴에서 찢어 내어 아드님의 벌거벗음을 가리는 그 너울, 그 아드님의 옆구리에서 교회가 성찬의 포도주를 성작에 받는 동안, 그 반대편에서는 그 나라가 끝나 버린 유대교 회당이 두 눈에 붕대를 감고 반쯤 부러진 홀을 쥔 채, 머리에서 미끄러지는 관과 함께 옛 율법의 판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그리고 최후의 심판 날, 무덤에서 일어나는 젊은 아내를 부축하며 그 손을 제 심장에 대어, 그것이 정말로 뛰고 있음을 증명해 그녀를 안심시키는 남편, 이런 것이 당신 생각에는 그토록 하찮은 발상입니까, 그토록 진부하고 흔해 빠진 것입니까? 그리고 이제 쓸모없어진 해와 달을 거두어 가는 천사, 십자가의 빛이 창공의 빛보다 일곱 배 더 밝으리라 적혀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아기의 목욕물이 충분히 따뜻한지 보려고 손을 담가 보는 천사, 그리고 성모의 이마에 관을 씌우려 구름에서 나오는 천사,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난간 사이 하늘 궁륭에서 몸을 내밀어, 악인들의 형벌과 선택받은 이들의 축복을 보고 두려움이나 기쁨으로 팔을 치켜드는 그 모든 천사들! 그것은 하늘의 온갖 하늘이요, 신학과 상징으로 가득한 거대한 시 하나가 거기 당신 앞에 통째로 있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환상적이고 미쳤고 신성하며,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볼 어떤 것보다 천 배는 나은데,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바로 이 팀파눔을 훨씬 재능이 못한 조각가들이 정성껏 베껴 갔지요. 천재가 두루 넘치던 시대란 결코 없었습니다. 그건 다 헛소리예요. 그런 건 황금시대를 넘어서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저 정면을 새긴 그 친구는, 장담컨대, 당신이 요즘 가장 우러르는 사람들 못지않게 위대했고, 그들 못지않게 깊은 착상을 지녔습니다. 우리가 함께 거기 가 본다면 내 말뜻을 보여 드릴 수 있을 텐데요. 성모 승천 성무일도의 어떤 대목들은, 르동조차 결코 견주지 못한 표현의 섬세함으로 옮겨져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