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는, 다른 쪽이 무일푼에 고아인 데 반해 자신은 대단히 부유했으므로, 진정한 너그러움으로 제 재산의 온갖 혜택을 알베르틴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지젤에 대한 그녀의 감정으로 말하자면, 내가 짐작하도록 이끌렸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곧 그 젊은 여학생의 소식이 우리에게 닿았는데, 알베르틴이 자기가 받은 편지를, 곧 지젤이 여행 이야기를 전하고 작은 무리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려 쓴,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게을러서 아직 편지를 못 썼다고 핑계를 댄 그 편지를 돌려 보였을 때, 나는 앙드레가 (나는 그들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절교가 있은 줄 여겼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난 내일 걔한테 편지 쓸 거야. 걔가 먼저 쓰기를 기다리다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니까. 워낙 게으름뱅이라서.”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당신 눈엔 걔가 별것 아니게 보였겠죠, 뻔해요. 하지만 참 좋은 애예요, 게다가 난 걔를 정말 좋아하고요.” 여기서 나는 앙드레의 다툼이란 오래가지 않기 십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비 오는 날을 빼면, 우리는 늘 자전거로 벼랑을 따라 달리거나 내륙으로 소풍을 가기로 정해 두었으므로, 출발할 시각이 되기 한 시간쯤 전에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몸단장을 하고, 프랑수아즈가 내가 원하는 물건을 죄다 꺼내 놓지 않았으면 투덜대곤 했다. 이제 파리에서도 그녀는 첫마디 꾸중에도 세월에 굽기 시작한 등을 도도하게, 성이 나서 곧추세우곤 했으니, 자존심이 추어올려지면 그토록 겸손하고 그토록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이것이 그녀 삶의 태엽이었기에, 그녀의 만족과 기분은 자기에게 지워진 일의 어려움에 정비례했다. 발베크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들은 어찌나 수월했던지 거의 내내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는데, 내가 벗들에게 내려가는 길에 모자를 안 털어 놨다거나 넥타이를 안 정리해 놨다고 불평이라도 하면 그 불만은 모욕당한 위엄의 빈정대는 낯빛까지 더해져 대번에 백 배로 부풀었다. 그토록 끝없는 수고를 마다 않고도 그로써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여기지 않던 그녀가, 겨우 웃옷 하나가 제자리에 없다는 내 말 한마디에, 그것을 “먼지 앉게 두느니 진작 잘 챙겨 두었노라”고 그 정성을 뽐낼 뿐 아니라, 제 노고에 정식으로 경의를 표하며, 발베크에서 자기가 누리는 휴가라는 게 변변찮기 짝이 없다고, 그리고 온 세상을 뒤져도 이런 대접을 참고 견딜 사람은 나 말고는 하나도 못 찾을 거라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어쩜 물건을 그렇게 아무 데나 늘어놓고 사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뒤죽박죽 속에서 원하는 걸 딴 사람더러 찾아보라고 해 보세요. 마귀라도 두 손 들 걸요.” 아니면 그녀는 여왕 같은 위엄을 갖추고, 이글거리는 눈길로 나를 지지고는, 침묵을 지키다가, 등 뒤로 문을 닫고 복도로 나서기가 무섭게 그 침묵을 깨뜨렸으니, 그러면 복도는 내가 모욕적이리라 짐작한 말들로 울려 댔지만, 그 말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첫 대사를 무대 옆에서 읊는 연극 속 인물들의 말처럼 또렷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그리고 없어진 게 하나도 없고 프랑수아즈의 기분이 좋을 때조차, 내가 벗들과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면 그녀는 여전히 자기를 참아 주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처녀들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그녀가 듣는 데서 늘어놓았던, 처녀들을 걸고넘어지는 케케묵은 익살들을 밑천 삼아, 그녀는 내가 알았어야 할 무언가를 나에게 폭로하려는 듯한 낯빛을 지었으나, 그 말에 진실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프랑수아즈가 자기가 들은 것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며, 진실은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녀는 여느 사람들처럼 자기만의 방식이 있었다. 사람은 결코 곧게 뻗은 큰길 같지 않아서, 살아가는 동안 그 행로의 기이하고 피할 수 없는 굽이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어떤 이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서 걸음이 막히고 방해받는 것을 끊임없는 성가심으로 느낀다. “내 모자 어디 있지?” 하는 대목에 이르거나 앙드레나 알베르틴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나는 프랑수아즈 때문에 끝없고 터무니없는 옆길로 새어 들어, 갈 길이 크게 늦춰지곤 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녀에게 치즈나 채소를 넣은 샌드위치를 잘라 달라거나, 벼랑에서 쉬며 처녀들과 나눠 먹을 케이크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보낼 때도 그랬으니, 그 케이크야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만 않았다면 처녀들이 돌아가며 얼마든지 내놓았을 법도 하다”고 프랑수아즈는 잘라 말했다. 그런 순간이면 그녀에게는 격세유전으로 물려받은 농사꾼의 탐욕과 억척스러움이 통째로 밀려와 거들었으니, 그녀에게는 죽은 원수 욀라리의 영혼이 산산조각 나, 생텔루아의 몸에 깃들었을 때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작은 무리에 속한 내 벗들의 어여쁜 몸에 되살아난 듯싶었다. 나는 이런 힐난들을, 프랑수아즈의 성격이라는 저 밟을 대로 밟힌 시골길이 더는 지나갈 수 없게 되는, 다행히 그리 오래가는 법은 없는 그런 대목 하나에 붙들려 멈춰 선 데 대한 무딘 분노로 들었다. 그러다 모자든 웃옷이든 찾아내고 샌드위치도 준비되면, 나는 알베르틴, 앙드레, 로즈몽드, 그리고 또 있을지 모를 이들을 찾아 나섰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우리는 출발하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우리의 소풍이 궂은 날씨에 이루어지기를 더 바랐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발베크에서 여전히 “킴메르인의 땅”을 찾으려 했고, 화창한 날이란 그곳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영원한 안개에 감싸인 그 태고의 고장에 바닷가 피서객들의 저속한 여름이 밀고 들어온 침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껏 내가 경멸하며 시야에서 몰아내던 모든 것을, 바다와 물가에 비치는 햇빛의 효과뿐 아니라 요트 경주며 경마 대회까지도, 나는 열렬히 찾아 나서게 되었다. 예전에 내가 오직 사나운 바다만을 바랐던 그 까닭 그대로, 이제는 이것들이 내 마음속에서, 예전의 그것들이 그러했듯, 하나의 미적 관념과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새 벗들과 함께 여러 차례 엘스티르를 찾아갔던 터라, 그리고 처녀들이 함께 있는 날이면 그가 우리에게 보여 주려 골라낸 것이 요트 복장을 한 예쁜 여자들의 그림이나, 발베크 근처 경마장에서 그린 스케치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엘스티르에게, 거기서 열리는 경마 대회에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노라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잘못 생각한 거요.”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얼마나 예쁜 구경거리인데, 정말 볼 만하다고요. 우선, 그 별난 짐승 기수 말이오, 수많은 열띤 눈길이 쏠리는, 저 울짱 안에서는 저리도 험상궂어 보이는, 화려한 저고리와 모자 사이에 낀 핏기 없는 얼굴이, 제가 탄 껑충거리는 말과 온몸 온 마음이 하나가 되어, 코스를 따라 흘러내려 갈 때 그가 만들어 내는 그 밝은 색채의 얼룩이며, 거기에 말의 털빛이 어우러지는 그 직업적인 움직임을 뜯어보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지. 경마장의 그 눈부신 광활함 속에서 눈에 보이는 온갖 대상이 얼마나 탈바꿈하는지, 거기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빛과 그늘에 끊임없이 놀라게 된다오. 게다가 거기 여자들이 얼마나 어여쁘게 보이는지! 첫날 경주는 참으로 즐거웠고, 네덜란드 풍경화의 어스름한 빛 속에 더없이 우아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있었소. 그 빛 속에서는 물의 스미는 냉기가 해 자체를 흐려 구름 끼게 하는 것마저 느낄 수 있었지. 그토록 야릇한 빛 속에서 마차를 타고 도착하거나 눈에 안경을 대고 서 있는 여자들을 나는 본 적이 없소. 아마 바다에서 올라온 습기 탓이었을 거요. 정말이지 그걸 그리고 싶었소. 경마장에서 아주 미쳐서, 어서 작업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돌아왔지 뭐요!” 그러고 나서 그는 요트 경주에 대해 한층 더 열을 올렸고, 나는 깨달았다. 잘 차려입은 여자들이 바다 경주장의 푸르스름한 빛에 잠겨 보이는 그런 사교 행사인 요트 경주가, 베로네세나 카르파초에게 그토록 즐겨 그리던 향연이 그러했듯이, 현대의 화가에게도 그만큼 흥미로운 소재일 수 있음을. 내가 이 생각을 엘스티르에게 말하자 “당신 비유는 더더욱 맞는 말이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이 그림을 그린 그 도시의 위치로 보아, 그 향연들은 상당 부분 물 위의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 시절 배들의 아름다움은 대개 그 견고함에, 그 구조의 복잡함에 있었다는 게 다르지. 그들에게도 우리 여기처럼 물 위의 마상 시합이 있었소, 대개 어느 사절단을 기리느라 벌어졌지, 카르파초가 자기 성녀 우르술라 전설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처럼 말이오. 그 배들은 육중하고, 건축물처럼 쌓아 올려져, 마치 물뭍을 오가는 양서류 같았소. 더 큰 베네치아 한복판에 자리한 자그마한 베네치아들처럼, 진홍빛 새틴과 페르시아 양탄자로 꾸민 늘어뜨린 발판으로 강기슭에 매여, 여러 빛깔의 대리석이 박힌 발코니 바로 아래로 버찌빛 비단과 초록 다마스크를 걸친 귀부인들을 실어 날랐고, 그 발코니에서는 또 다른 귀부인들이, 흰색으로 째고 진주를 박거나 레이스로 두른 검은 소매의 드레스를 입고 몸을 내밀어 그들을 바라보았소. 어디서 뭍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는지, 무엇이 아직 궁전이고 무엇이 벌써 배인지, 캐러벨인지, 갈레아스인지, 부친토로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오.” 알베르틴은 엘스티르가 우리에게 그려 보이는 이 의상의 세부, 이 우아한 환영들을 더없이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아, 말씀하신 그 레이스를 정말 보고 싶어요. 참 예쁘겠네요, 그 베네치아 무늬 레이스.” 그녀가 외쳤다. “게다가 저는 베네치아를 꼭 보고 싶어요.” “아마 머잖아 볼 수 있을 거요.” 엘스티르가 그녀에게 일러 주었다. “그들이 입던 그 경이로운 옷감을 말이오. 지금껏 사람들은 그것을 베네치아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나, 아니면 아주 드물게 옛 성당의 보물들 가운데서, 또는 이따금 견본 하나가 경매장에 나올 때에나 보아 왔소. 그런데 듣자니 포르투니라는 베네치아 예술가가 그 기법의 비밀을 되찾아 냈다더군, 그래서 몇 년 안 가 여자들이, 베네치아가 제 귀족 딸들을 위해 동방에서 가져온 무늬로 수놓았던 것 못지않게 호사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밖을 거닐 수 있게, 더 나아가 집 안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리라는 거요. 하지만 그게 그리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소, 오늘날의 여자들에게는 너무 시대착오가 아닐까 싶어서 말이오, 요트 경주에 나설 때조차도. 다시 우리네 현대의 유람선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아드리아해의 여왕’ 베네치아 시절 이래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요트의, 요트 세간의, 요트 복장의 커다란 매력은 그 단순함에 있소, 바다에 꼭 맞는 물건으로서 말이오, 그리고 나는 바다를 참 사랑한다오. 솔직히 말하리다, 나는 오늘날의 유행을 베로네세 시절의, 아니 카르파초 시절의 것보다도 더 좋아하오. 우리 요트에서, 특히 작은 요트에서 그토록 마음을 끄는 것은, 나는 거대한 요트는 좋아하지 않소, 너무 배 같아서 말이오, 요트란 여자들 모자와 같아서 어떤 한도 안에 머물러야 하는 법인데, 그 매력이란, 흐리고 납빛인 하늘 아래 크림빛 부드러움을 띠는, 끊긴 데 없이 매끈하고 단순하고 반들거리는 회색의 표면이라오. 우리가 지내는 선실은 자그마한 카페를 떠올리게 해야 하고. 요트 위 여자들의 옷도 같은 종류의 것이오. 정말로 매력적인 건 저 가벼운 옷들, 한결같이 새하얀, 무명이나 아마포나 난징목면이나 능직으로 지은 옷인데, 햇빛 속에서 바다의 푸름을 배경으로 활짝 편 돛만큼이나 눈부신 흰빛으로 도드라지지. 하기야 옷 입을 줄 아는 여자는 좀처럼 보기 드물지만, 개중엔 정말 근사한 이들도 있소. 경마장에서 레아 양은 자그마한 흰 모자에 자그마한 흰 양산을 들고 있었는데, 그저 홀릴 만큼 어여뻤소. 그 작은 양산을 얻을 수만 있다면 뭐든 다 주겠소.” 나는 이 작은 양산이 다른 어떤 양산과 어느 점에서 다른지 몹시 알고 싶었고, 다른 이유로, 곧 여자다운 허영심에서, 알베르틴은 그보다도 더 궁금해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가 제 수플레의 빼어남을 “만드는 솜씨 나름이죠” 하고 설명하곤 했듯이, 여기서도 차이는 재단에 있었다. “그건 말이오.” 엘스티르가 설명했다. “아주 자그맣고, 아주 둥그런 게, 꼭 중국식 우산 같았소.” 나는 여러 부인들이 들고 다니던 양산들을 들먹였으나, 그 어느 것과도 같지 않았다. 엘스티르는 그것들을 죄다 흉하기 짝이 없다고 여겼다. 안목이 빼어나고 유난히 까다로운 그는, 자기가 본 여자들의 사분의 삼이 걸친 것과, 그를 소름 끼치게 한 것과, 그 어여쁨으로 그를 홀린 것 사이의 온 차이를 이루는 어떤 사소한 세부 하나를 짚어 내곤 했다. 그리고 어떤 사치의 과시든 대번에 내 마음을 메마르게 하던 나와는 반대로, 그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은” 그의 그리려는 욕망을 자극했다. “여기 이 모자와 양산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맞힌 아가씨가 있구려.” 그가 나에게, 부러움으로 눈을 반짝이는 알베르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도 부자가 되어서 요트를 갖고 싶어요!” 그녀가 화가에게 말했다. “그럼 선생님한테 그걸 어떻게 부리는지 여쭈러 오겠어요. 얼마나 멋진 뱃놀이를 다닐까요. 카우스에 경주 구경을 가면 또 얼마나 신날까요. 그리고 자동차도요! 말씀해 주세요, 자동차용 여자 옷 유행이 예쁜 것 같으세요?” “아니오.” 엘스티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되면 나오겠지. 이봐요, 지금은 그럴 만한 곳이 아주 드물어, 한둘뿐이지, 칼로가, 하기야 그 집은 레이스를 좀 지나치게 쓰긴 하지만, 그리고 두세, 셰뤼이, 이따금 파캥 정도요. 나머지는 죄다 끔찍하다오.” “그럼 칼로 드레스랑 그저 그런 가게 옷이랑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요?” 나는 알베르틴에게 물었다. “아니, 어마어마한 차이지, 우리 꼬맹이 도련님! 어머, 미안해요! 다만, 아아! 그저 그런 가게에서 삼백 프랑에 사는 걸 거기선 이천 프랑을 줘야 해요. 하지만 비교할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눈에나 똑같아 보이는 거죠.” “바로 그렇소.” 엘스티르가 끼어들었다. “하기야 랭스 대성당의 조각상과 생토귀스탱의 조각상 사이만큼 깊은 차이라고까지야 말하지 않겠지만. 그런데 성당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이제 오로지 나만을 상대로 말을 이어 갔으니, 그가 하려는 말이 처녀들은 끼지 않았고 게다가 그들에게는 조금도 흥미롭지 않았을 앞선 대화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발베크 성당을 커다란 벼랑, 그 고장의 돌로 지은 거대한 방파제라고 당신한테 이야기했었지. 자, 이걸 보시오.” 그가 나에게 수채화 한 점을 건넸다. “이 벼랑들을 보시오(이건 여기서 가까운 크뢰니에에서 그린 스케치라오). 이 바위들이 성당을 떠올리게 하지 않소?” 과연 누구라도 그것을 하늘로 치솟는 붉은 아치라 여겼으리라. 그러나 이글이글 타는 뜨거운 날에 그려진 그 바위들은, 바다의 절반을 마셔 버린 열기에 휘발되어, 그림 온 표면에 거의 기체 상태에 가깝도록 증류되어, 티끌로 부스러진 듯 보였다. 이를테면 햇빛이 실재를 파괴해 버린 이날, 실재는 대비를 이루어 더 두드러지고 더 가까운 삶의 인상을 주는 어떤 어둑하고 투명한 존재들 속으로, 곧 그림자들 속으로 응집되었다. 서늘함에 굶주려, 그중 대부분은 그을린 빈터를 버리고 해가 닿지 않는 바위 밑동으로 피신해 있었고, 다른 그림자들은 돌고래처럼 물결 위를 잔잔히 헤엄치며, 움직이는 배들의 옆구리에 바싹 붙어, 그 반들거리는 푸른 형체로 배들의 선체를 창백한 수면 위로 늘여 놓았다. 어쩌면 그 그림자들이 전하는 서늘함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이날의 열기를 나에게 가장 절실히 느끼게 하여, 크뢰니에를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나로 하여금 탄식하게 한 것이었다. 알베르틴과 앙드레는 내가 틀림없이 거기에 수백 번은 가 봤을 거라고 우겼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줄도 모른 채 거기에 갔던 것이며, 언젠가 이 바위들을 보는 일이 나에게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을, 그때껏 발베크의 벼랑들 사이에서 내가 찾던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차라리 건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을 불어넣으리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풍의 왕국을 찾아 이곳에 온 나는, 빌파리지 부인과 마차를 타고 다닐 때면, 흔히 나무들 사이 틈으로 그려진 듯 멀리서만 그것을 보았을 뿐, 바다가 물가를 향해 제 힘을 모아 내던지고 있다는 인상을 넉넉히 줄 만큼 충분히 실재하고 충분히 유동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겨울 안개의 수의 아래 미동도 없이 누운 바다만을 보고 싶어 했었기에, 이제 와 내가 밀도도 빛깔도 잃은 희끄무레한 수증기에 지나지 않는 바다를 꿈꾸게 되리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엘스티르는, 열기에 나른해진 저 배들 위에서 골똘히 잠긴 사람들처럼, 그런 바다의 마력을 어찌나 강렬하게 느꼈던지, 밀물의 알아챌 수 없는 물러남을, 어느 행복한 한순간의 고동을, 그려진 화폭 위에 영원토록 옮겨 적고 못 박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이 마법 같은 초상을 보는 순간, 누구든 문득 그것에 홀려 버려, 순간에 깃든, 잠든 그 아름다움 속에서 사라진 그날을 되찾으려 온 세상을 헤매고 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엘스티르를 이렇게 찾아가기 전, 내가 그의 바다 그림 하나에 눈길을 주기 전, 곧 흰 서지나 아마포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미국 국기를 단 요트 갑판에 서 있는 그림이, 내 상상 속에 흰 아마포 드레스와 색색의 깃발을 고스란히 복제해 넣어, 마치 그런 경험이라곤 여태 한 번도 나에게 일어난 적 없다는 듯, 그 자리를 찾아가 내 눈으로 직접 바다를 배경으로 한 흰 아마포 드레스와 깃발을 보고 싶은 채울 길 없는 욕망을 대번에 나에게 심어 놓기 전까지, 그때껏 나는 늘 바닷가에 설 때면, 앞쪽의 물놀이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바닷가 옷차림 같은 지나치게 눈부신 돛을 단 요트들까지, 인류가 나타나기도 전에 똑같은 신비로운 삶으로 움직이고 있던 저 태고의 바다를 내가 바라보고 있노라고 스스로 믿게 하는 것을 가로막는 온갖 것을 시야에서 몰아내려 애썼다. 그리고 이 안개와 폭풍의 해안에 온 세상 어디에나 있는 여름의 시시한 모습을 씌우는 듯 보이는, 음악에서 쉼표라 부르는 것에 맞먹는 한낱 중단을 표시하는 데 지나지 않는 듯 보이는 저 찬란한 햇살의 날들조차 나는 아까워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궂은 날이야말로 어떤 참혹한 사고, 아름다움의 세계 속에서 더는 제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나에게 비쳤다. 나는 밖으로 나가 내 상상을 그토록 세차게 일깨운 것을 실재 속에서 되찾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느꼈고, 날씨가 알맞아 벼랑 꼭대기에서 엘스티르의 그림에 있던 것과 똑같은 푸른 그림자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나는 걸어가면서 더는, 예전처럼 두 손으로 눈가에 틀을 만들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자연이 인간이 처음 나타나기 이전의, 그리고 만국박람회에서나 모자 가게 진열창 앞에서나 나로 하여금 지루함에 하품하게 하던 저 온갖 따분한 공업적 성취의 완벽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떤 삶으로 생동한다고 여겨, 증기선 한 척 지나지 않는 바다의 그 한 자락만을 담아내려 애썼으니, 그리하여 그것을 태고의 것으로, 뭍에서 갈라져 나온 그 시대들과, 아니 적어도 그리스에서 삶이 처음 동트던 때와 여전히 같은 시대의 것으로 마음속에 그려 보고자 했고, 그 덕분에 블로크가 그토록 좋아하던 “르콩트 영감”의 시구를 그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되뇔 수 있었던 것이다.
“떠났도다 왕들이여, 떠났도다 그 우뚝한 뱃머리들이여,
사라졌도다 노한 심연 위로, 아아,
헬라스의 긴 머리 전사 영웅들이여.”
이제는 모자 만드는 여인들을 더는 경멸할 수 없었으니, 엘스티르가 나에게, 모자가 다 완성된 뒤 그 여인들이 리본이나 깃털에 마지막 세련미를, 더없는 어루만짐을 더하는 그 섬세한 손길이야말로 자기에게는 기수들의 근육 놀림 못지않게 그려 보고 싶은 것이라고 말해 준 뒤였기 때문이다(이 말은 알베르틴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나는 기다려야만 했다. 모자 만드는 여인들을 보려면 파리로 돌아갈 때까지, 요트 경주와 경마를 보려면, 이제 내년까지는 더 없을 발베크로 돌아갈 때까지. 흰 아마포 옷을 입은 여자들을 태운 요트조차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자주 블로크의 누이들과 마주쳤는데, 나는 그들의 아버지와 저녁을 함께한 사이였으므로 그들에게 인사를 해야만 했다. 내 새 벗들은 그들을 알지 못했다. “난 이스라엘 사람들이랑 노는 게 허락이 안 돼요.” 알베르틴이 설명했다. 그녀가 그 낱말을 발음하는 방식은, “이즈라엘리트”가 아니라 “잇스라엘리트”라고 한 것만으로도, 문장의 나머지를 듣지 않았더라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가정에서 자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도 아이들을 학살하는 버릇이 있다고 곧잘 믿는 이 젊은 프랑스 처녀들을 부추긴 것이, 저 선택받은 종족을 향한 어떤 우정 어린 감정 따위가 아님을 넉넉히 드러냈으리라. “게다가 네 그 친구들 말이야, 꼴이 영 아니더라.” 앙드레가, 그들이 내 친구가 결코 아님을 자기가 빤히 안다는 뜻을 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족속에 딸린 건 죄다 그렇지 뭐.” 알베르틴이, 몸소 겪어 본 사람 같은 잘라 말하는 말투로 말을 받았다. 사실 블로크의 누이들은, 지나치게 차려입은 데다 반쯤 헐벗은 채로, 그 나른하고 뻔뻔하고 요란하고 칠칠치 못한 태로,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겨우 열다섯 살밖에 안 된 그들의 사촌 하나는 레아 양을 향한 감춤 없는 흠모로 카지노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아버지 블로크 씨는 레아의 여배우로서의 재능을 매우 높이 쳤으나, 그녀의 취향은 딱히 신사들 쪽으로 향한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었다.
어떤 날은 우리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변두리 농가 중 한 곳에서 요기를 했다. 이 농가들은 레제코르, 마리테레즈, 라 크루아 되랑, 바가텔, 칼리포르니,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작은 무리가 단골로 삼은 것은 마지막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농가로 가는 대신 우리는 벼랑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기어올라, 거기에 이르러 풀밭에 앉으면, 싸 온 샌드위치와 케이크 꾸러미를 풀었다. 내 벗들은 샌드위치를 더 좋아했고, 내가 고딕식 무늬로 설탕을 입힌 초콜릿 케이크 하나나 살구 타르트 하나만 먹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것은 치즈나 푸성귀를 넣은 샌드위치, 곧 나에게는 낯설고 과거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음식과는 나에게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이크는 알아들었고, 타르트는 수다쟁이였다. 앞엣것에는 크림의 밍밍한 맛이, 뒤엣것에는 콩브레에 대해, 그리고 질베르트에 대해, 콩브레의 질베르트뿐 아니라 그 다과회에서 그것들을 다시 만났던 파리의 질베르트에 대해서까지 죄다 알고 있는 과일의 싱그러운 맛이 있었다. 그것들은 프랑수아즈가 어느 날은 「알라딘과 요술 램프」를, 또 어느 날은 「알리바바」나 「잠꾸러기가 깨어나다」나, 온갖 보물을 싣고 바소라에서 배에 오르는 「뱃사람 신드바드」를 레오니 고모에게 가져다드릴 때, 그 그림들이 고모에게 그토록 좋은 소일거리가 되어 주던 저 아라비안나이트 무늬의 케이크 접시들을 나에게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몹시 보고 싶었으나, 할머니는 그것들이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했고, 게다가 그것들이 그저 마을에서 산 흔한 접시들이려니 여겼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 잿빛 중부 내륙의 콩브레 정경 속에서, 그것들과 그 그림들은, 어두운 성당 안에서 어른거리는 광채를 뿜던 색유리창이 그러했듯, 내 침실의 어스름 속에서 환등기가 드리우던 영상이 그러했듯, 철길 정거장과 작은 지방 노선을 그린 풍경의 앞자락에 놓인 인도 미나리아재비와 페르시아 라일락이 그러했듯, 시골 소도시의 어느 노부인의 침침한 거처에 놓인 우리 대고모의 낡은 도자기 선반이 그러했듯, 여러 빛깔의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벼랑에 몸을 뻗고 누우면 내 앞에는 풀 우거진 초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 너머로는 그리스도교 우주론의 일곱 하늘이 아니라 오직 두 층뿐이었으니, 하나는 더 짙푸른 바다요, 그 위로 또 하나는 더 옅은 것이었다. 우리는 음식을 먹었고, 만약 내가 벗들 중 누구 하나의 마음에 들 만한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가져왔으면, 그녀의 투명한 얼굴에, 순식간에 발갛게 물든 그 얼굴에 너무도 느닷없이 격렬하게 기쁨이 솟구쳐 올라, 그 입술로는 도저히 그것을 붙들 수 없어, 그것이 빠져나오도록 벌어지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 둘레에 바싹 모여 앉았고, 서로 거의 맞닿은 그들의 얼굴 사이로, 그들을 갈라놓는 공기가, 마치 정원사가 장미 덤불 속을 제 몸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도록 땅을 조금 틔워 놓으려 낸 것 같은 하늘빛 오솔길들을 그려 냈다.
식사를 마치면 우리는 그때껏 내가 따분하게 여겼을 놀이를, 이따금 ‘성 주인’이나 ‘누가 먼저 웃나’ 같은 어린애 장난을 하곤 했다. 이제는 한 왕국을 준다 해도 그 놀이들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이 처녀들의 얼굴에 아직도 환히 어려 있는,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아무리 어렸어도 이미 벗어나 버린 저 사춘기의 장밋빛 여명이, 그들 둘레의 모든 것에 제 빛을 드리워, 몇몇 프리미티프 화가의 유려한 그림에서처럼, 그들의 나날의 가장 하찮은 세부까지도 금빛 배경을 등지고 도드라지게 했다. 처녀들의 얼굴조차 대개는 아직 그 실제 이목구비가 떠오르지 않은 어떤 여명의 이 안개 같은 광휘에 감싸여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매혹적인 한 폭의 빛깔뿐, 그 아래로 몇 해 뒤면 옆얼굴이 될 것은 분간되지 않았다. 오늘의 옆얼굴에는 뚜렷한 데라곤 없어서, 자연이 이 기념의 예를 갖춰 준, 세상을 떠난 어느 집안사람과 한순간 닮았을 뿐일 수도 있었다. 더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순간, 몸이 아무런 새로운 놀라움도 간직하지 않은 부동 속에 굳어 버리는 순간, 한여름의 나무에 벌써 갈색으로 물든 잎사귀가 달리듯, 아직 젊은 얼굴 둘레로 성글어 가거나 세어 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온갖 희망을 잃는 순간은 참으로 빨리도 온다. 그토록 짧기에, 그 찬란한 아침 시간이, 사람은 결국 가장 어린 처녀들만을, 살이 아직 귀한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는 그런 처녀들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순간의 덧없는 인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 빚어지는 유연한 물질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저마다가 차례로, 어린애다운 쾌활함의, 짐짓 어른스러워진 아이의, 어르는, 놀란 아이의 자그마한 조각상 하나였다고, 솔직하고 온전하되 이내 사라지는 어떤 표정에서 제 본을 뜬 조각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조형성이 어린 소녀가 우리에게 베푸는 어여쁜 살가움에 갖가지 변화와 매력을 넉넉히 안겨 준다. 물론 그런 살가움은 어른 여자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를 끌지 못하거나 우리가 자기를 끌었음을 우리에게 내비치지 못하는 여자는, 우리 눈에 얼마쯤 따분한 획일성을 띠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어여쁜 살가움조차, 어느 나이를 지나면, 생존 투쟁이 굳혀 버려 돌이킬 수 없이 전투적이거나 황홀에 빠진 것으로 만들어 놓은 얼굴 위로 부드러운 잔물결을 더는 보내지 못한다. 어떤 얼굴은, 아내를 남편에게 매어 두는 복종이 오래도록 짓눌러 온 탓에, 여자의 얼굴이라기보다 병사의 얼굴처럼 보일 것이다. 또 어떤 얼굴은, 어머니가 제 자식들을 위해 날마다 감내해 온 희생으로 깎여, 사도의 얼굴이 되어 있으리라. 또 다른 얼굴은, 여러 해의 사나운 항해를 거친 끝에, 옷차림만이 겨우 그 성별을 일러 주는 몸 위에 얹힌, 늙은 뱃사람의 얼굴이다. 물론 여자가 우리에게 베푸는 살가움은, 우리가 그녀를 사랑하는 동안은, 우리가 그녀 곁에서 보내는 시간 위로 여전히 새로운 매력을 흩뿌릴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여러 여자의 연속이 아니다. 그녀의 쾌활함은 변함없는 한 얼굴에 겉도는 채로 머문다. 반면에 사춘기는 이 완전한 응고에 앞선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젊은 처녀들 곁에서, 우리가 바닷가에 설 때 바라보게 되는 저 자연의 원초적 요소들의 끝없는 재창조를 떠올리게 하는, 쉼 없는 변화의 과정을 겪는 형상들의 광경이, 불안정한 힘들의 유희가 우리에게 안겨 주는 그 상쾌한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