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들의 “족제비 놀이”나 “수수께끼 알아맞히기”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것은, 빌파리지 부인과의 마차 나들이 같은 사교 약속만이 아니었다. 로베르 드 생루는 한 번 이상, 내가 동시에르로 자기를 보러 오지 않으니 스물네 시간의 휴가를 얻어 발베크에서 보내겠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그때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지 말라고 답장을 썼고, 바로 그날 나 자신이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핑계를 댔는데, 할머니를 모시고 근처에 사는 집안 친지들에게 의례적인 방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의례적 방문”이 무엇이었는지, 또 할머니 역할을 함께 맡은 이들이 누구였는지 숙모에게서 전해 듣고 나서, 그의 눈에 내 값이 떨어졌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세상의 헛된 쾌락뿐 아니라 우정이라는 진짜 즐거움마저도 이 푸른 정원에서 온종일 지내는 즐거움을 위해 희생한 것이 어쩌면 잘못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능력을 누리는 사람들은, 사실 그런 사람들이란 예술가이고 나는 오래전부터 결코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리라 믿어 왔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 또한 지고 있다. 그리고 우정은 이 의무의 면제, 곧 자아의 포기다. 우정의 표현 양식인 대화조차도 우리에게 아무런 새로운 획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피상적인 곁길일 뿐이다. 우리는 평생 이야기를 나누어도 한순간의 공허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데 그칠 뿐인데, 반면 예술 창조의 고독한 노고 속에서 사유의 행진은 아래로, 깊은 곳으로,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은 유일한 방향을 따라, 우리가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는 그 방향으로, 물론 더 큰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진리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우정은 대화처럼 덕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벗과 함께 있을 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 권태감은, 다시 말해 깊은 곳으로의 발견의 항해를 이어 가는 대신 의식의 표면에 드러난 채 머물러야 할 때, 발전의 법칙이 순전히 내적인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그 첫 권태의 인상은, 우정 때문에 우리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애써 바로잡으려 하고, 벗이 한 말을 감동에 젖어 되새기며, 그것을 우리 본질에 더해진 값진 보탬으로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밖에서 돌을 덧붙일 수 있는 건물이 아니라, 제 수액에서 줄기에 마땅히 돋는 옹이와 넓게 펼쳐지는 잎사귀의 지붕을 끌어내는 나무와 같은데도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고, 내가 참으로 넓어지고 행복해질 수 있었던 그 방향으로의 성장 과정을 끊고 있었다. 생루처럼 그토록 선량하고 영리하고 보기 드문 존재에게 사랑받고 감탄받는다고 스스로 흡족해할 때, 의무가 풀어내라 명하는 나 자신의 어렴풋한 인상들이 아니라 벗이 한 말에 마음을 쏟을 때, 그리고 그 말을 스스로 되뇌면서, 우리 안에 살면서 사유의 짐을 우리가 늘 기꺼이 떠넘기는 그 또 다른 자아를 시켜 되뇌게 하면서, 정말로 혼자였을 때 침묵 속에서 좇던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른, 로베르와 나와 내 삶의 가치를 드높여 줄 아름다움을 억지로 찾아내려 애쓸 때가 그러했다. 이런 벗이 마련해 준 삶 속에서 나는 스스로 고독에서 편안히 지켜지고, 그를 위해 나를 희생하려는 고결한 열망을 품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은 나 자신을 실현할 능력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 소녀들 사이에서는, 내가 누린 즐거움이 이기적인 것이었다 해도, 적어도 그것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이 홀로가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거짓말, 곧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이제 말하는 것이 더는 우리 자신이 아니며, 우리와는 전혀 다른 우리 고유의 자아가 아니라 낯선 이들의 모습을 본떠 스스로를 빚어내고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게 막는 그 거짓말에 근거하지는 않았다. 작은 무리의 소녀들과 나 사이에 오간 말은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게다가 그 말은 몇 마디 되지도 않았고, 내 쪽에서 오래도록 침묵하는 바람에 자주 끊겼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내게 말할 때 귀 기울이는 데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큰 즐거움을 얻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니, 저마다의 목소리 속에서 선명하게 물든 그림 한 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황홀경 속에서 그들의 지저귐을 붙들었다. 사랑은 우리가 사물을 분간하고 식별하도록 돕는다. 숲속에 서서 새를 사랑하는 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 똑같이 들리는 여러 종의 지저귐을 곧바로 구별해 낸다. 소녀를 사랑하는 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보다 더욱 다양하다는 것을 안다. 목소리 하나하나는 가장 풍부한 악기보다도 더 많은 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목소리가 그 음들을 엮어 내는 조합은 인격의 무한한 다양성만큼이나 무궁무진하다. 내 친구들 가운데 누구와 이야기하든, 나는 그녀만의 독창적이고 유일한 초상이 얼굴의 표정만큼이나 목소리의 억양으로도 능란하게 그려져 내 마음에 압제적으로 새겨진다는 것을, 그리고 이 둘이 저마다 제 평면에서 똑같은 하나의 현실을 그려 내는 별개의 두 광경임을 느꼈다. 물론 얼굴의 선처럼 목소리의 선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얼굴이 변해 가듯 목소리도 아직 변성기를 겪어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젖을 소화하게 해 주는 분비샘이 있어 어른 남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듯이, 이 소녀들의 지저귐에는 여인의 목소리에 더는 담기지 않는 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음역이 더 넓은 이 악기를 그들은 입술로 연주하며, 벨리니가 그린 어린 천사 악사들의 온 정성과 열의를 다 쏟아 냈으니, 그 또한 오직 젊음만이 지니는 특권이었다. 훗날 이 소녀들은 가장 소박한 말에까지 매력을 실어 주던 그 열띤 확신의 음조를 잃게 될 것이었다. 이를테면 알베르틴이 위엄 있는 어조로 말장난을 되풀이하면 어린 소녀들이 감탄하며 듣다가 마침내 재채기처럼 걷잡을 수 없는 격렬함으로 웃음의 발작이 모두를 사로잡을 때가 그러했고, 앙드레가 교실에서 하는 공부, 그들이 즐기는 놀이보다도 겉보기엔 더 유치한 그 공부를 본질적으로 어린애다운 진지함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가 그러했으니, 그들의 말은 음조가 바뀌어, 시가 아직 음악에서 거의 갈라져 나오지 않아 음계의 여러 음에 실려 낭송되던 옛 시대의 노래 가사와도 같았다. 그럼에도 소녀들의 목소리는, 이 작은 사람들 저마다가 삶에 대해 취한 태도를, 어느 한 소녀를 두고 “저 애는 뭐든 농담으로 넘긴다”거나 다른 소녀를 두고 “저 애는 단정에서 단정으로 건너뛴다”거나 또 다른 소녀를 두고 “저 애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망설임 속에 산다”고 말하는 것조차 너무 두루뭉술한 표현이 될 만큼 지극히 개인적인 그 태도를, 이미 꽤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얼굴의 이목구비란 습관의 힘으로 굳어진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폼페이의 파멸처럼, 요정이 나무로 변신하는 것처럼, 우리를 익숙한 동작 속에 붙박아 놓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억양은 우리의 인생관을, 어느 순간에 사람이 사물에 대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담고 있다. 물론 이런 특징들은 소녀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부모에게서 온 것이었다. 개인이란 자기보다 더 넓게 퍼져 있는 무언가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 부모는 우리 얼굴과 목소리의 윤곽을 이루는 습관적 몸짓뿐 아니라, 억양만큼이나 무의식적이고 억양만큼이나 깊은, 그래서 삶에 대한 뚜렷한 관점을 마찬가지로 드러내는 어떤 말버릇, 어떤 즐겨 쓰는 표현까지도 우리에게 물려준다. 소녀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런 표현들 가운데 어떤 것은 부모가 아이가 어느 나이에 이르기 전까지는, 대개 여인이 되기 전까지는 물려주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것들은 아껴 두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엘스티르의 어느 친구가 그린 그림에 관해 이야기한다 치면, 아직 머리를 “땋아 늘인” 앙드레는 제 어머니와 언니가 쓰던 “그 사람, 아주 매력적인 모양이더라!” 하는 표현을 아직은 제 입으로 쓸 수 없었다. 그러나 팔레루아얄에 드나들 나이가 되면 때가 되어 그리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알베르틴은 첫영성체를 치른 뒤로 벌써 숙모의 어느 친구처럼 “난 정말이지 그건 끔찍하다고밖에 못 하겠어!”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또 그녀는, 관심 있어 보이려고, 또 제 나름의 의견을 세우려 애쓰는 척하려고, 방금 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되받는 버릇을 자그마한 선물처럼 물려받기도 했다. 어느 예술가의 작품이 훌륭하다거나 그의 집이 근사하다고 말하면, “오, 그 사람 작품이 훌륭하다고요?” “오, 그 사람 집이 근사하다고요?” 하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집안의 유산보다도 더 보편적인 것으로, 그들이 목소리를 얻어 온,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억양에 그 맛이 배어 있는 고향 지방이 입혀 놓은 두터운 층이 있었다. 앙드레가 날카롭게 엄숙한 음을 낼 때면, 그녀의 이목구비가 지닌 남프랑스풍의 순수함과 오히려 잘 어우러지는 울림을, 그 목소리라는 악기의 페리고르 지방 현이 되울려 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한편 로즈몽드의 끊임없는 장난에는, 그때그때 기분이 어떠하든, 북부 지방 특유의 얼굴과 목소리의 바탕이 제 고장의 억양으로 응답했다. 그 지방과, 이런 억양을 받아쓰게 한 어린 소녀의 기질 사이에서, 나는 매혹적인 대화를 붙들었다. 대화이지, 결코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소녀 자신과 그녀의 고향을 떼어 놓기란 불가능했으리라. 그녀는 그녀 자신이었고, 여전히 그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것을 활용하는 천재에게 그 고장에서 얻은 재료가 미치는 이 반작용은, 그 반작용이 작품에 한결 신선함을 더해 주기에, 작품을 조금도 덜 개성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이 건축가의 작품이든 소목장이의 작품이든 작곡가의 작품이든, 그가 상리스의 맷돌 돌이나 스트라스부르의 붉은 사암을 다룰 수밖에 없었기에, 물푸레나무 특유의 옹이를 존중했기에, 악보를 쓰면서 플루트나 알토 목소리의 자원과 한계와 음량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에, 예술가의 개성이 지닌 가장 미묘한 결까지도 그 못지않게 세밀하게 비추어 낸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깨닫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빌파리지 부인이나 생루와 함께 있을 때라면 나는 말로써 실제로 느낀 것보다 훨씬 큰 즐거움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들과 헤어질 때면 나는 늘 녹초가 되곤 했으니까. 반면 이 소녀들 한가운데 풀밭에 누워 있을 때는, 내가 느끼던 것의 충만함이 우리가 나눈 말의 빈약함과 드묾을 한없이 압도하여, 나의 부동과 침묵에서 넘쳐흘러, 그 물결이 잔물결져 이 젊은 장미들의 발치에서 밀려와 스러졌다.
꽃밭이나 과수원에서 온종일 쉬는 회복기 환자에게 꽃이나 과일의 향기가 그의 한가로운 시간을 이루는 수천 가지 사소한 것들에 스며들듯이, 그 빛깔과 그 향기, 곧 그것을 찾아 내 눈이 자꾸만 소녀들 쪽으로 헤매게 만들던, 그리고 그 감미로움이 마침내 내 안에 배어든 그 빛깔과 향기가 내게 그렇게 스며들었다. 포도가 햇볕 속에서 달콤해지는 것도 그런 이치다. 그리고 이 단순하고 자그마한 놀이들은 그 더딘 이어짐으로, 온종일 바닷가에 길게 누워 짠 공기를 들이마시며 볕에 그을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서처럼, 내 안에도 어느새, 뇌에서 눈으로 번져 간 나른함과 더없이 행복한 미소와 어렴풋한 어지럼을 서서히 자아내 놓았다.
이따금 그들 가운데 누군가의 어여쁜 배려가 내 안에 떨림을 일으켜 나머지 소녀들에 대한 욕망을 한동안 흩어 놓곤 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알베르틴이 불쑥 물었다. “연필 가진 사람?” 앙드레가 연필을, 로즈몽드가 종이를 내주었다. 알베르틴이 그들에게 일러두었다. “자, 아가씨들, 내가 쓰는 건 보면 안 돼요.” 그녀는 종이를 무릎에 받쳐 든 채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껏 그리더니, 내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도 못 보게 조심해요.” 그래서 나는 그것을 펼쳐 그녀의 전갈을 읽었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해요.”
“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시답잖은 낙서나 하고 있으면 안 되지.” 그녀는 갑작스레 근엄한 태도로 앙드레와 로즈몽드 쪽으로 홱 돌아서며 외쳤다. “오늘 아침에 지젤한테서 받은 편지를 보여 줘야 하는데. 나도 참 바보지, 여태 주머니에 넣고만 있었네. 이게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할지 너희는 상상도 못 할걸.” 지젤은 친구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도 돌려 볼 수 있도록, 자격시험에서 자기가 쓴 작문을 베껴 두었던 것이다. 출제될 주제가 어려우리라던 알베르틴의 걱정은 지젤이 골라야 했던 두 문제로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들어맞았다. 첫째는 이러했다. “소포클레스가 저승에서 라신에게, 아탈리의 실패를 위로하는 편지를 쓴다.” 다른 하나는 이러했다. “에스테르의 초연이 끝난 뒤, 세비녜 부인이 라파예트 부인에게,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것을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편지를 쓴다고 하자.” 그런데 지젤은, 시험관들의 마음을 움직였어야 마땅할 지나친 열의로, 둘 중 더 어려운 쪽이기도 한 첫 번째 주제를 골라, 어찌나 뛰어난 솜씨로 다루었던지 14점을 받고 심사위원단의 칭찬까지 들었다. 스페인어 시험에서 “막히지”만 않았더라면 “우등”을 받았을 것이었다. 지젤이 이제 그녀에게 베껴 보낸 그 작문을, 알베르틴은 우리에게 곧바로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곧 같은 시험을 치러야 할 처지라, 그중 단연 가장 영리하여 좋은 “요령”을 일러 줄 만한 앙드레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얘가 운이 좀 좋았지!” 알베르틴이 한마디 했다. “얘 프랑스어 선생님이 여기 와 있는 동안 얘한테 달달 외우게 한 게 바로 이 주제거든.” 지젤이 쓴 대로, 소포클레스가 라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벗이여,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영광을 누리지 못한 처지에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당신의 최근 비극 아탈리는 당신이 저의 보잘것없는 작품들을 더없이 철저히 연구하셨음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당신은 극의 주역, 곧 주요 인물들의 입에 시를 담았을 뿐 아니라, 아첨 없이 말씀드리건대, 합창대를 위한 또 다른 매혹적인 시구까지 지으셨는데, 이는 소문으로 듣건대 그리스 비극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특징이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아주 새로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늘 그토록 유창하고 세련되고 사람을 끄는, 그토록 곱고 섬세한 당신의 재능이 여기서는 어떤 힘을 얻었으니, 그 점에 대해 축하를 드립니다. 아탈리와 여호야다, 이들은 당신의 경쟁자 코르네유라도 이보다 더 잘 빚어내지는 못했을 인물들입니다. 인물들은 남성적이고,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이 중심 선율이 아닌 비극을 우리에게 선사하셨으니, 이 점에 대해 저는 가장 진심 어린 찬사를 바쳐야겠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격언이 언제나 가장 참된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인의 기예로 하여금 날개 단 듯
곧장 듣는 이의 가슴으로 날아가게 하는 이 열정을 노래하라.’당신은 당신의 합창대가 흠뻑 젖어 있는 종교적 정서 또한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일반 관객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을지 모르나, 판단할 자격이 가장 높은 이들은 당신께 마땅한 몫을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저의 모든 축하를 당신께 바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여기에 더하여, 친애하는 시인 형제여, 저의 지극히 높은 경의의 표현을 덧붙이는 바입니다.”
알베르틴은 우리에게 이것을 읽어 주는 내내 눈을 반짝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건 어디서 베껴 온 게 틀림없다니까!” 그녀는 끝에 다다르며 외쳤다. “지젤이 이만큼 잘 쓴 걸 지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못 믿겠어! 게다가 이렇게 시까지 끌어들이다니! 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해 왔을까?” 알베르틴의 감탄은, 대상이 바뀌기는 했으나 강렬함은 조금도 줄지 않고 오히려 더해져서, 오가는 말에 바싹 귀 기울이는 태도와 어우러진 채, 앙드레가(무리 중 맏이이자 다른 이들보다 아는 것이 많다 하여 자문 상대가 된 앙드레가) 처음에는 지젤의 작문을 얼마쯤 비꼬는 투로 말하다가, 이어 속에 깔린 진지함을 다 감추지는 못하는 가벼운 어조로 그 편지를 제 나름대로 다시 꾸며 나가는 동안 내내, 알베르틴의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게 했다. “아주 못 쓴 건 아니야.” 앙드레가 알베르틴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너라면, 그리고 같은 주제를 받는다면, 그럴 법도 하지, 워낙 자주 내는 주제니까, 나라면 그런 식으로는 안 쓰겠어. 나라면 이렇게 다뤘을 거야. 자, 우선 내가 지젤이었다면 그렇게 옭매이게 두지 않고, 쓰려는 내용을 딴 종이에 초안으로 대강 잡는 것부터 시작했을 거야. 맨 윗줄에 문제를 적고 주제의 개요를 밝힌 다음, 전개에 녹여 넣을 일반적인 생각들을 적고. 그러고 나서 평가, 문체, 결론. 그렇게 참고할 요약이 있으면 자기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거든. 그런데 바로 첫머리, 주제의 개요를 시작하는 데서, 아니 편지 이야기니까, 티틴, 본론에 들어서는 데서부터 지젤은 아예 길을 완전히 벗어났어. 17세기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소포클레스가 ‘친애하는 벗이여’라고 했으면 절대 안 되지.” “어머, 그러게, ‘친애하는 라신 님’이라고 했어야지.” 알베르틴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게 훨씬 나았을 거야.” “아니야.” 앙드레가 살짝 비웃는 기색을 띠며 대꾸했다. “‘선생님’이라고 했어야 해. 마찬가지로 끝맺을 때도, ‘부디 헤아려 주소서, 선생님’(기껏해야 ‘친애하는 선생님’) 정도로 해서, ‘제가 영광스럽게도 당신의 종으로서 지니는 이 드높은 경의의 뜻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하는 식으로 생각했어야 했어. 또 지젤은 아탈리의 합창대가 새로운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에스테르를 잊은 거고, 요즘엔 별로 안 읽지만 마침 올해 교수님이 직접 분석하신 두 비극도 잊은 거야. 그러니 그것들만 언급하면 돼, 교수님이 거기에 푹 빠져 계시니까, 그럼 붙는 건 따 놓은 당상이지. 로베르 가르니에의 유대 여인들하고, 몽크레스티앵의 아망 말이야.” 앙드레는 이 제목들을 대면서, 미소로 새어 나오는 은근한 호의적 우월감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는데, 그 미소는 어쨌거나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알베르틴은 더는 참지 못했다. “앙드레, 넌 정말이지 대단한 애야.” 그녀가 외쳤다. “그 이름들 나한테 좀 적어 줘. 생각해 봐, 내가 그 문제에 걸리기만 하면, 구술시험에서라도, 그걸 바로 끌어다 붙여서 어마어마한 인상을 남길 테니 얼마나 운이 좋겠어.” 그러나 그 뒤 며칠 동안, 알베르틴이 그 두 희곡의 이름을 적어 두게 다시 한 번만 일러 달라고 조를 때마다, 그 잘난 척하는 친구는 참으로 딱하게도 그 이름들을 잊어버린 듯했고, 알베르틴은 끝내 더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앙드레는 저보다 훨씬 어린 동무들을 얕보는 기색을 목소리에 아주 희미하게 실으며 말을 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의 감탄을 즐겼고, 저라면 그 작문을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데에 우리에게 내비치고 싶어 한 것보다 더 큰 중요성을 두고 있었다. “저승의 소포클레스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죄다 훤히 알고 있어야 해. 그러니 아탈리가 처음 상연된 것이 일반 관객 앞이 아니라 국왕 폐하와 몇몇 특별한 신하들 앞에서였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지. 이 대목에서 지젤이 자격 있는 심사자들의 존경 어쩌고 한 건 전혀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나아갈 수도 있었어. 이제 불멸의 존재가 된 소포클레스라면 예언의 능력마저 얼마든지 지닐 수 있어서, 볼테르에 따르면 아탈리가 라신만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최고 성취가 되리라고 선언할 수도 있었을 거야.” 알베르틴은 한마디 한마디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리고 이제 놀이를 시작하자는 로즈몽드의 제안을 그녀는 더없이 분개하며 물리쳤다. “그러니까.” 앙드레는 옅은 비웃음에 어떤 확신의 온기를 뒤섞은, 여전히 느긋하고 초연한 어조로 마무리했다. “지젤이 우선 전개하려는 일반적인 생각들부터 제대로 적어 두었더라면, 어쩌면 나라면 했을 법한 것, 곧 소포클레스의 합창대와 라신의 합창대에 담긴 종교적 영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짚어 볼 생각이 떠올랐을지도 몰라. 나라면 소포클레스의 입을 빌려, 라신의 합창대가 그리스 비극 시인들의 합창대처럼 종교적 정서로 가득하다 해도 그 신들은 같지 않다고 말하게 했을 거야. 여호야다의 신은 소포클레스의 신과 아무 공통점이 없거든. 그리고 주제를 다 전개하고 나면 그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를 결론으로 데려가지. 그들의 믿음이 다르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소포클레스라면 그런 점을 굳이 우기기를 망설였을 거야. 라신의 신념을 다칠까 두려워, 포르루아얄의 스승들에 관한 알맞은 몇 마디를 슬쩍 끼워 넣고는, 제자의 드높은 시적 천재를 축하하는 쪽을 택했겠지.”
감탄과 몰입으로 알베르틴은 어찌나 달아올랐던지 굵은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앙드레는 여성 멋쟁이다운 흐트러짐 없는 침착함을 지켰다. “유명한 비평가들의 견해를 몇 가지 인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녀가 놀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덧붙였다. “맞아.” 알베르틴이 끼어들었다. “나도 그렇게 들었어. 대체로 인용하기 제일 좋은 건 생트뵈브하고 메를레지, 안 그래?” “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앙드레가 말했다. “메를레하고 생트뵈브도 결코 나쁘지 않지. 하지만 델투르하고 가스크데포세도 꼭 언급해야 해.” 그러면서도 그녀는 알베르틴이 아무리 애원해도 이 낯선 두 이름을 적어 주기를 마다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알베르틴이 내게 건넨, 낙서장에서 찢어 낸 그 작은 종잇조각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해요.” 그녀는 그렇게 써 놓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내 취향에는 조금 지나치게 가파르게 발베크로 되돌아 내려가는 길을 허둥지둥 내려오면서, 나는 나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그녀와 함께 펼쳐지리라고 혼잣말을 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아차리는 데 익숙한 온갖 징표가 다 나타나 있는 상태, 이를테면 누가 나를 보자고 청하더라도 소녀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 한 나를 깨우지 말라고 호텔에 남긴 당부라든가, 그녀를(그 가운데 누구를 기다리고 있든) 기다리는 동안의 심장 두근거림이라든가, 그런 아침이면 나를 면도해 줄 이발사를 찾지 못해 알베르틴이나 로즈몽드나 앙드레 앞에 텁수룩한 턱의 흉한 몰골로 나서야 할 때의 격분 같은 것으로 드러나는 그 상태는, 이 소녀 저 소녀를 떠올릴 때 가리지 않고 되풀이되던 그 상태는, 하나의 존재, 하나의 개체가,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여러 유기체에 나뉘어 있는 식충류의 삶이 인간의 삶과 다른 것만큼이나,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그러나 박물학은 우리에게, 동물 생명의 그러한 조직이 실제로 관찰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도, 첫 단계를 벗어나기만 했다면, 우리가 여태 짐작조차 못 했던,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고 이윽고 아주 떠나보낼 수도 있는 여러 상태의 실재성에 대해 그에 못지않게 확실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내게는 여러 소녀에게 한꺼번에 나뉜 이 사랑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나뉘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나뉘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대개는 내게 그토록 감미로운 것, 세상 그 무엇과도 다른 것, 이튿날 그것을 다시 찾으리라는 희망이 내 삶의 가장 큰 행복이 될 만큼 그토록 소중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소녀들 무리 전체였기 때문이다. 절벽 위에서 보낸 그 오후들, 그 생기 없는 시간들 동안, 알베르틴과 로즈몽드와 앙드레의, 내 상상을 그토록 설레게 하던 그 자태들이 누워 있던 그 한 뙈기 풀밭 위에, 그들이 다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광경들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이 그중 누구였는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어 한 것이 그중 누구였는지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서도 그 끝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사랑의 대상에만 오로지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윽고 거기서 솟아날 사랑하고 싶은 욕망이(그리고 훗날에는 그것이 남기는 기억이), 서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매력들의 지대를, 그저 자연스러운 매력, 이를테면 식욕의 충족이나 주위 환경을 누리는 즐거움일지도 모를 그 매력들의 지대를, 관능적으로 헤매고 다니는데, 그 매력들은 서로 어찌나 잘 어우러져 있는지 그중 어느 하나 앞에 있어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그들에 대한 내 지각은 아직 친숙함에 무뎌지지 않았기에, 나는 여전히 그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다시 말해 그들 앞에 설 때마다 깊은 놀라움을 느끼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놀라움은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럴 때 상대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우리 저마다의 다형성은 어찌나 크고, 얼굴과 몸의 선이 이루는 풍요로움은 어찌나 넘쳐 나는지, 그 선들 가운데 상대와 헤어지고 나면 우리 기억의 제멋대로인 단순함 위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극히 드물다. 우리 마음은 우리에게 인상 깊었던 어떤 특징을 골라내어 그것을 따로 떼고 과장해서, 키가 커 보였던 여자를 몸매가 터무니없이 길쭉하게 늘어난 스케치로, 뺨이 발그레하고 머리가 금빛으로 보였던 여자를 순전한 ‘분홍과 금빛의 하모니’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다 그 여자가 다시 우리 앞에 서는 순간, 그 하나 기억된 특징의 균형을 되잡아 주는, 잊고 있던 다른 온갖 특질들이 어수선한 복잡함 속에서 대번에 우리를 덮쳐, 그녀의 키를 줄이고 뺨을 창백하게 하며, 우리가 오직 그것 하나를 찾으러 그녀에게 온 그것 대신에, 첫 번에 분명 알아차렸던 것을 이제 새삼 떠올리게 되는,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것을 다시 살펴볼 생각을 여태 잊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특징들을 갖다 놓는다. 우리는 기억한다고 여겼다. 틀림없이 공작 암컷이었는데, 막상 보러 가니 모란꽃이더라. 그리고 이 피할 수 없는 놀라움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와 나란히 또 다른 놀라움이 오는데, 이번에는 기억의 판에 박힌 형상과 현실 사이가 아니라, 지난번에 본 사람과 오늘 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나타나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 사람 사이의 차이에서 태어나는 놀라움이다. 사람의 얼굴이란 참으로, 어느 동방 신통기(神統記)의 신의 얼굴처럼, 한데 빽빽이 모여 있으되 서로 다른 면에 놓여 있어 한꺼번에 다 볼 수는 없는 얼굴들의 무리 전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