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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로베르 드 생루에 관한 새로운 조명 ②

6권 · 제4장: 로베르 드 생루에 관한 새로운 조명

그동안 질베르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사교계 사람들은 자못 진지한 관심을 띤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 저 여자가 바로 생루 후작과 결혼한다는 그 사람이군요.” 그러고는, 파리의 온갖 사교계 뒷소문을 즐길 뿐 아니라 무언가 배우고 싶어 안달하며 제 내면 성찰의 깊이를 굳게 믿는 이들 특유의 눈여겨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뜯어보았다. 반면에 질베르트만 알던 사람들은 생루를 더없이 유심히 바라보며, (흔히 나와 거의 안면도 없는 이들이었는데) 그에게 소개해 달라고 청했고, 신랑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얼빠진 행복감에 겨워 환히 빛나며 내게 말했다. “정말 잘생겼네요.” 질베르트는 ‘생루 후작’이라는 이름이 ‘오를레앙 공작’이라는 이름보다 천 배는 더 대단하다고 굳게 믿었다.

“젊은 캉브르메르의 결혼을 주선한 건 파름 대공비인 모양이더라.”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대공비는 오래전부터, 한편으로는 그 저작을 통해 르그랑댕을 알고 그를 뛰어난 인물로 여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캉브르메르 부인을 알았는데, 이 부인은 대공비가 혹시 르그랑댕의 누이가 아니냐고 물을 때마다 화제를 돌리곤 했다. 대공비는 캉브르메르 부인이,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저 대귀족 세계의 문턱에 선 제 처지를 얼마나 뼈저리게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올로롱 의 신랑감을 찾아 주기로 나선 파름 대공비가 샤를뤼스 씨에게, 스스로를 르그랑댕 드 메제글리즈라 부르는 (르그랑댕 씨가 이제 그렇게 자처하고 있었다) 상냥하고 교양 있는 사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남작은 처음엔 없다고 대답했다가, 문득 어느 날 밤 기차에서 알게 되어 명함까지 건네받은 한 사내가 떠올랐다. 그는 아리송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같은 사람일지도 몰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신랑감이 르그랑댕의 누이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자 그는 말했다. “아니,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제 외삼촌을 닮았다면야, 그거야 나로선 겁날 것도 없지요. 나는 늘 그런 자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남편감이라고 말해 왔으니까요.” “그런 자들이라니, 누구 말씀인가요?” 대공비가 물었다. “오, 마마, 우리가 좀 더 자주 만난다면 죄다 설명해 드릴 텐데요. 마마하고는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전하께서는 워낙 총명하시니까요.” 샤를뤼스는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그렇게 말했으나, 그 욕구는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캉브르메르라는 이름은, 비록 그가 그 청년의 부모를 좋아하지는 않았어도,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브르타뉴의 네 남작가 가운데 하나이며, 제 양녀를 위해 바랄 수 있는 가장 나은 이름임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래되고 존경받는 이름이었고, 그 고장에 탄탄한 연고를 두고 있었다. 대공이라면 애초에 어림없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바로 이거야말로 제격이었다. 그리하여 대공비는 르그랑댕을 초대했다. 겉모습으로 보면 그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고,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나아진 편이었다. 몸매의 날씬함을 위해 얼굴을 일부러 희생하고 마리엔바트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여자들처럼, 르그랑댕은 기병 장교 같은 자유롭고 거침없는 분위기를 몸에 익혔다. 샤를뤼스 씨가 굼뜨고 둔중해져 간 것과 반비례하여, 르그랑댕은 더 날씬해지고 더 재빠르게 움직였으니, 동일한 원인에서 나온 정반대의 결과였다. 이 재빠른 움직임에는 심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는 드나드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어떤 은밀한 소굴들을 자주 찾곤 했는데, 그럴 때면 몸을 던지듯 안으로 뛰어들었다. 르그랑댕은 쉰다섯의 나이에 테니스를 시작했다. 파름 대공비가 그에게 게르망트가며 생루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그들을 평생 알고 지냈다고 잘라 말하며, 게르망트 영주들의 이름을 늘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미래의 생루 부인의 아버지인 스완을 내 고모 댁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한데 버무렸다. 콩브레에서는 그 스완의 아내와 딸을 찾아뵙기를 늘 마다하던 르그랑댕이었는데 말이다. “실은 얼마 전에 게르망트 공작의 동생인 샤를뤼스 씨와 함께 여행을 했지요. 그분이 먼저 말을 걸어오시더군요, 그건 늘 좋은 징조입니다. 말문이 막힌 촌뜨기도, 거만한 위인도 아니라는 증거니까요. 오,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 하는 말은 나도 죄다 압니다. 하지만 난 그런 뒷공론 따위엔 도통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게다가 남의 사생활은 내 알 바 아니고요. 그분은 내게 예민한 천성에 교양 있는 정신을 지닌 분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어서 파름 대공비는 올로롱 이야기를 꺼냈다. 게르망트 사교계 사람들은, 늘 그래 왔듯 너그러운 샤를뤼스 씨가 한 푼 없는, 그러나 사랑스러운 처녀의 앞날의 행복을 마련해 주는 그 고결한 마음씨에 감동했다. 그리고 제 동생의 평판 때문에 시달리던 게르망트 공작은, 이 처사가 훌륭하기는 해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내 말뜻이 분명한지 모르겠소만, 이 일은 모든 게 자연스럽소.” 그는 버릇처럼 서투르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노린 것은, 그 처녀가 실은 제 동생이 딸로 인정하고 있는, 동생의 딸임을 넌지시 알리는 것이었다. 이로써 쥐피앙의 존재까지 한꺼번에 설명이 되는 셈이었다. 파름 대공비는 르그랑댕에게, 결국 젊은 캉브르메르가 낭트 쯤 되는 여자와, 곧 오를레앙 공작도 콩티 대공도 업신여기지 않던 루이 14세의 서출 가운데 하나와 결혼하는 셈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이야기의 이런 판본을 넌지시 흘렸다. 우리를 파리로 데려오던 기차 안에서 내가 이미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던 이 두 결혼은, 이 이야기가 흘러오는 동안 등장했던 여러 인물에게 자못 두드러진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르그랑댕이 그러했다. 그가 샤를뤼스 씨의 저택으로, 마치 결코 들키면 안 되는 색주가에라도 들어서듯, 그리고 동시에 제 활력을 과시하고 제 나이를 감추려는 듯 (우리의 버릇이란 더는 쓸모가 없어진 곳까지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법이니), 회오리바람처럼 휩쓸려 들어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샤를뤼스 씨가 그를 맞으며 짓던, 포착하기도 어렵거니와 해석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미소를 알아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미소는, 상류 사교계에서 늘 만나던 두 사내가 서로 떳떳지 못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주고받는 미소와 겉모습은 비슷했으나, 그 본질은 정반대였다 (이를테면 옛날 엘리제궁에서, 프로베르빌 장군이 거기서 스완과 마주칠 때마다, 그를 알아보고는, 데 롬 대공비의 살롱을 드나들던 두 단골이 그레비 씨를 찾아옴으로써 스스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는, 그런 얄궂고 은밀한 공모의 표정을 짓곤 했던 것과 같은 미소였다). 르그랑댕은 오래전부터, 곧 내가 어릴 적 콩브레로 휴가를 보내러 가던 시절부터, 남몰래 귀족들과의 관계를 가꾸어 왔으나, 그것이 낳은 것이라곤 기껏해야 아무 결실 없는 별장 모임에 어쩌다 한 번 초대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조카의 결혼이 끼어들어 이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자, 르그랑댕은, 그를 그저 사인(私人)으로만 알았으되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지난 관계에서 뒤늦게 일종의 견고함을 끌어낸 사회적 지위 속으로 성큼 들어섰다. 사람들이 그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 그 부인들은 지난 이십 년 동안 그가 해마다 두 주씩 자기네 시골집에 묵었으며, 작은 응접실에 놓인 그 아름다운 낡은 기압계도 다름 아닌 그가 선물한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마침 그는 그 부인들과 친척뻘인 공작들까지 낀 ‘단체’ 사진에 함께 찍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지위를 손에 넣기가 무섭게, 그는 그것을 조금도 써먹지 않게 되었다. 이는 단지 이제 사람들이 그가 어디서나 환대받는다는 걸 알게 된 마당에 더는 초대받는 데서 아무 기쁨도 얻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그를 지배하려 다투어 온 두 악덕 가운데, 덜 자연스러운 쪽인 속물근성이, 덜 인위적인 다른 악덕에게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니, 그 다른 악덕은 적어도, 에두른 길이나마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회귀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 둘이 양립 못 할 것은 아니어서, 공작부인의 야회를 나서자마자 곧장 빈민가의 밤 탐사에 나설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나 나이가 끼얹는 냉기는 르그랑댕으로 하여금 그토록 넘치는 쾌락을 그러모으기를, 뚜렷한 목적 없이 문밖을 나서기를 꺼리게 만들었고, 또한 자연의 쾌락을 어느 정도 플라토닉한 것으로, 곧 주로 우정이나 시간을 잡아먹는 대화로 이루어진 것으로 바꾸어 놓아, 그로 하여금 제 시간의 거의 전부를 하층민들 틈에서 보내게 했으니, 사교 생활에 쓸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다. 캉브르메르 부인 자신도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다정한 접근에 거의 무심해졌다. 후작부인을 찾아뵈어야 했던 공작부인은, 우리가 우리 동류를, 곧 마침내 발견하게 되는 여러 미덕의 조합과 마침내 익숙해지고 마는 여러 결점을 지닌 그 동류를 더 자주 만나게 될 때면 으레 그러하듯, 캉브르메르 부인이 타고난 지성과 후천적으로 갖춘 교양을 지닌 여자임을 알아차렸다. 그 지성과 교양을 나로서는 대단찮게 여겼으나, 공작부인에게는 놀랍게 비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작부인은 자주, 늦은 오후에 캉브르메르 부인을 찾아와 오래 머물다 가곤 했다. 그러나 캉브르메르 부인이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있으리라 상상하던 그 놀라운 매력은, 상대가 제 벗을 구한다는 걸 알아챈 순간 이내 사라져 버렸고, 그래서 그녀는 이제 제 즐거움보다는 예의에서 공작부인을 맞이했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질베르트에게 나타났으니, 그것은 스완이 결혼한 뒤에 겪은 변화와 대칭을 이루면서도 또한 그와는 다른 변화였다. 처음 몇 달 동안 질베르트가 가장 엄선된 손님들에게 기꺼이 제 집 문을 열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제 어머니와 가깝게 지내던 절친한 벗들을 초대한 것은 필시 장차의 유산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그것도 다른 사람 없이 그들끼리만 모이는 특정한 날에 한해서였고, 세련된 사람들과는 따로 떼어 놓았으니, 마치 봉탕 부인이나 코타르 부인이 게르망트 대공비나 파름 대공비와 접촉하는 일이, 두 종류의 불안정한 화약처럼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빚어내기라도 할 듯했다. 그럼에도 봉탕네며 코타르네 같은 이들은, 모임의 조촐함에 실망하면서도, “우리가 생루 후작부인과 저녁을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음을 자랑스러워했으니, 더욱이 그녀가 이따금 그들과 함께, 거북 등딱지와 타조 깃털 부채를 든 영락없는 ‘귀부인’ 마르상트 부인까지 큰맘 먹고 초대할 때면 더 그러했는데, 이 또한 유산을 노린 처사였다. 다만 그녀는 이따금, 초대받았을 때 말고는 좀처럼 얼굴을 비치지 않는 조심스러운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만은 잊지 않았으니, 그것은 코타르-봉탕 부류의 청중에게 그녀가 더없이 우아하면서도 서먹한 인사를 건네며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어쩌면 나는 이런 모임에 끼는 편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눈에 나는 주로 제 남편과 게르망트가의 벗이었으니 (그리고 그녀는, 어쩌면 내 부모가 제 어머니를 찾지 않던 콩브레 시절부터 이미, 우리가 사물의 값어치에 이런저런 것을 보태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그 나이에, 훗날에도 결코 잃지 않는 그런 위신을 내게 부여했던 터라), 질베르트는 이런 저녁 모임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내가 작별을 고할 때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그런데 모레 다시 오세요, 게르망트 이모님이랑 푸아 부인도 와 계실 거예요. 오늘은 그저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엄마 친구분 몇 분을 모셨을 뿐이에요.” 그러나 이런 상태는 겨우 몇 달밖에 이어지지 않았고, 이내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는 질베르트의 사교 생활이 스완의 그것과 똑같은 대조를 드러내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질베르트가 생루 후작부인이었던 것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5 잠깐뿐이었으니, 가장 눈부시고 가장 오르기 어려운 자리에 이른 그녀는, 이제 생루라는 이름이 이글거리는 에나멜처럼 제 몸에 배어들었으므로, 어울리는 상대가 누구든 앞으로는 온 세상 앞에서 영원히 생루 후작부인으로 남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으니, 귀족 작위의 값어치란, 회사 주식의 값어치가 그러하듯, 수요가 늘면 오르고 시장에 내놓으면 떨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불멸로 보이는 모든 것은 파멸을 향해 간다. 사교계에서의 지위도 다른 무엇과 마찬가지로 한 번에 영원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권력이 그러하듯 일종의 끊임없는 창조 과정을 통해 매 순간 새로이 세워지며, 반세기의 흐름 속에서 사회사나 정치사에 나타나는 겉보기의 모순들은 바로 이것으로 설명된다. 세계의 창조는 태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일어난다. 생루 후작부인은 스스로에게 ‘나는 생루 후작부인이다’라고 말했고, 바로 전날 공작부인들과의 만찬 초대를 세 건이나 거절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어느 정도까지는 그녀가 초대하는, 조금도 귀족적이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을 드높여 주었다면, 반대의 과정으로, 후작부인이 초대하는 그 부류의 사람들은 그녀가 지닌 이름의 값을 떨어뜨렸다. 그런 과정 앞에서는 무엇도 버텨 내지 못하며, 아무리 위대한 이름이라도 결국에는 거기에 굴복하고 만다. 스완도 프랑스 왕가의 어느 공작부인을 알지 않았던가. 그 살롱은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다 받아들인 탓에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느 날 데 롬 대공비가 의무감에서 이 전하를 잠시 예방하러 갔다가 그 살롱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밖에 보지 못하고는, 곧바로 르루아 부인 댁에 이르러 스완과 모덴 후작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마음 편한 곳에 왔군요. 방금 X 공작부인 댁에서 오는 길인데, 방 안에 아는 얼굴이 셋도 없더군요.” 요컨대 “내 이름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선언하는 오페레타 속 인물의 의견에 공감하며, 질베르트는 자기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에 대한 경멸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포부르 생제르맹 사람들은 죄다 얼간이이고 찾아갈 만한 집이 못 된다고 떠들어 댔으며, 말한 대로 행동에 옮겨 그들의 집에 발길을 끊었다. 이 시기가 지나서야 그녀를 알게 된 사람들, 그것도 알게 된 초기에, 이미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된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을 그 사교계를 두고 더없이 터무니없는 농담을 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그녀가 그 세계의 사람은 단 한 명도 초대하지 않으며 그중 누구든, 아무리 화려한 인물이라도 그녀의 살롱에 발을 들이면 대놓고 그 앞에서 하품을 한다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도 한때 그 상류 사교계에서 무슨 특별한 가치를 보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제 와 돌이켜 얼굴을 붉히며, 타고난 본성의 고귀함 덕분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이해할 능력조차 없었으리라 여겨지는 그 여인에게, 지난날 자기들의 나약함이라는 이 부끄러운 비밀을 감히 털어놓지 못한다. 그들은 그녀가 공작들을 두고 그토록 재미난 조롱을 하는 것을 듣고, 게다가 (이것이 더 의미심장한데) 그 조롱에 자신의 처신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것을 본다! 물론 그들은 스완 을 포르슈빌 으로, 포르슈빌 을 생루 후작부인으로, 마침내 게르망트 공작부인으로 바꿔 놓은 그 우연의 원인을 캐물어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우연이 낳은 결과가 그 원인 못지않게 질베르트의 훗날 태도를 설명해 준다는 것도 아마 그들에게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벼락출세한 자들과 어울리는 습관은, 모두가 ‘공작부인 마님’이라 부르고 다른 공작부인들이 ‘사촌’이라 부르는 부인에게는, 스완 이 그것을 바라보았을 눈과는 사뭇 다른 눈으로 비치는 법이다. 우리는 이르지 못한 목표든, 이미 완전히 이르러 버린 목표든 언제나 기꺼이 경멸하려 든다. 그리고 이 경멸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격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어쩌면 지나간 세월을 거슬러 되짚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누구보다도 사납게 바로 그 나약함에 좀먹혔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들이 그것을 어찌나 완벽하게 숨기거나 이겨 냈던지, 우리는 그들이 그런 나약함에 시달려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남에게서 그것을 눈감아 줄 줄도, 하물며 상상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어쨌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생루 후작부인의 살롱은, 적어도 사교의 관점에서는 그 항구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른 방면에서 그 안에 어떤 풍파가 무르익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놀라웠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파리에서 가장 격식 있고 가장 폐쇄적인,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연회에 견줄 만큼 화려했던 야회가 바로 생루의 어머니인 마르상트 부인의 것이었음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편 근래 몇 년 사이, 사교적 지위로는 한없이 낮았던 오데트의 살롱 또한 그 우아함과 화려함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고 눈부셨다. 그러나 생루는 아내의 막대한 재산 덕분에 안락함이라는 면에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된 것을 기뻐하며, 훌륭한 만찬을 마친 뒤 솜씨 좋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안락의자에서 조용히 쉬는 것만을 바랐다. 그리고 한때 그토록 자존심 세고 야심만만해 보이던 이 젊은이는, 자기 어머니라면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옛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호사를 함께 나누었다. 질베르트는 질베르트대로 스완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질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두려운 건 양이지.” 그리고 늘 아내 앞에 무릎 꿇다시피 하는 생루는, 아내를 사랑했기에, 또 이 극진한 안락을 아내에게 빚지고 있었기에, 자기 취향과 그토록 비슷한 아내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하여 마르상트 부인과 포르슈빌 부인이 해마다 열던, 주로 제 자식들을 화려한 기반 위에 자리 잡게 하려는 속셈으로 베풀던 성대한 연회는, 생루 부인의 연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함께 말을 타고 나갈 최고의 승용마도, 유람할 최고급 요트도 있었지만, 손님은 결코 두엇 넘게 데려가는 법이 없었다. 파리에서는 저녁마다 벗 서넛을 만찬에 부를 뿐 그 이상은 결코 아니었으니, 예상치 못한, 그러나 동시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퇴행에 의해, 어머니들의 그 광대한 두 새장은 고요한 둥지 하나로 바뀌어 있었다.

이 두 결혼으로 가장 득을 보지 못한 사람은 젊은 올로롱 양이었다. 그녀는 종교 예식이 있던 날 이미 장티푸스를 앓고 있어 간신히 성당까지 몸을 끌고 갔고, 몇 주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은 얼마 뒤 발송된 부고장에는 쥐피앙 같은 이름들과 나란히 유럽의 거의 모든 최고 명문가의 이름이 섞여 있었다. 몽모랑시 자작과 자작부인, 부르봉수아송 백작부인 전하, 모데나에스테 대공, 에두메아 자작부인, 에식스 부인 따위였다. 물론 고인이 쥐피앙의 조카딸임을 아는 사람이라 해도 이토록 넘쳐 나는 화려한 인척 관계에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단한 연줄을 갖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casus foederis가 작동하면, 한낱 작은 가게 점원 아가씨의 죽음이 유럽의 모든 대공가를 슬픔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후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마리앙투아네트 돌로롱, 곧 캉브르메르 후작부인을 가장 고귀한 태생의 귀부인으로 오해할 가능성은 접어 두더라도, 이 부고장을 읽으며 또 다른 여러 오류를 저질렀을 법하다. 가령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닌 덕에 콩브레 근방 지방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이라면, 메제글리즈 백작이 게르망트 공작 바로 곁에서 서명자들 맨 앞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메제글리즈 쪽은 게르망트 쪽과 만나지 않는가” 하고 그는 말했을지 모른다. “같은 고장의 유서 깊고 고귀한 가문들이라면 여러 대에 걸쳐 연을 맺어 왔을 테지. 누가 알겠어? 어쩌면 메제글리즈 백작이라는 칭호를 지닌 게르망트가의 한 방계일지도.” 그러나 실상 메제글리즈 백작은 게르망트가와 아무 연고가 없었고, 서명에서도 게르망트 쪽이 아니라 캉브르메르 쪽에 올라 있었다. 이 메제글리즈 백작은, 벼락같은 출세로 겨우 두 해 전만 해도 그저 르그랑댕 드 메제글리즈였던, 우리의 옛 친구 르그랑댕이었기 때문이다. 가짜 칭호를 이것저것 따져 본대도, 게르망트가에 이만큼 불쾌한 것도 드물었으리라. 그들은 지난날 진짜 메제글리즈 백작 가문과 인척이었는데, 그 가문에서 살아남은 후손은 여자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보잘것없고 수수한 부모의 딸로, 우리 고모의 소작인 가운데 메나제라는 자와 혼인했다. 메나제는 부자가 되어 그녀에게서 미루그랭을 사들이고는 이제 스스로를 “미루그랭의 메나제”라 일컬었으니, 그의 아내가 “메제글리즈 태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저 그녀가 메제글리즈에서 태어났을 뿐이며, 남편이 “미루그랭 사람”이듯 그녀도 “메제글리즈 사람”이려니 여겼다.

다른 어떤 가짜 칭호였더라도 게르망트가에는 이보다 덜 거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귀족 사회는, 어떤 관점에서든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혼사가 걸리는 순간, 이런 짜증쯤은, 아니 그 밖의 숱한 짜증까지도 견뎌 낼 줄 안다. 게르망트 공작의 비호 아래, 르그랑댕은 그 세대의 일부에게 진짜 메제글리즈 백작이었고, 그다음 세대 전체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젊은 독자라면 또 하나의 착각에 빠지기 쉬웠을 텐데, 포르슈빌 남작과 남작부인이 생루 후작의 처부모 자격으로, 다시 말해 게르망트 쪽에 이름을 올린 것이라고 여기는 착각이었다. 그러나 이쪽에는 그들이 나설 자격이 없었으니, 게르망트가와 혈연이 닿는 것은 로베르였지 질베르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포르슈빌 남작과 남작부인은 이 오해를 부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아내 쪽에 이름을 올린 것이 맞았다. 그러나 캉브르메르 쪽은 아니었으니, 게르망트가가 아니라 쥐피앙 쪽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자에게 밝혀 두어야 하는데, 쥐피앙은 오데트의 사촌이었다.

샤를뤼스 의 총애는 입양한 조카딸의 혼인 이후로 온통 젊은 캉브르메르 후작에게 쏟아졌다. 그 젊은이의 취향은 남작의 취향과 비슷했는데, 그 취향이 남작으로 하여금 그를 올로롱 의 남편으로 고르는 것을 막지 못했던 만큼, 그가 홀아비가 되자 남작이 그를 한층 더 아끼게 된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 후작에게 샤를뤼스 의 매력적인 벗이 될 만한 다른 자질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그를 사생활 안으로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그가 휘스트까지 칠 줄 안다는 것이 무시 못 할 이점이자 그를 유독 쓸모 있게 만드는 장점이다. 젊은 후작의 지성은 남달랐고, 페테른에서 그가 아직 요람을 갓 벗어났을 무렵부터 이미 말하기 시작했듯이, 그는 온전히 할머니를 “빼닮았으며”, 같은 열정과 같은 음악 사랑을 지녔다. 그는 할머니의 몇몇 별난 버릇도 그대로 지녔는데, 다만 이는 집안의 나머지 사람들이 다 그렇듯 격세유전이라기보다 흉내에서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가 죽고 얼마 뒤, “레오노르”라 서명된 편지 한 통을 받았을 때, 그것이 그의 이름인 줄은 기억에 없던 터라, 나는 맺음말을 읽고서야 누가 내게 편지를 보냈는지 깨달았다. “Croyez à ma sympathie vraie”라는 말에서 “vraie”라는 낱말이 그 자리에 놓인 것이, 레오노르라는 세례명에 캉브르메르라는 성을 보태 주었던 것이다.

이 무렵 나는 옛 친분을 되살린 질베르트를 자주 만나곤 했다. 결국 우리 삶이란 우정의 지속 기간에 따라 셈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게 두면, (지난날의 장관들이 정계에 다시 나타나고 낡은 연극이 무대에 다시 오르듯) 예전과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끊겼던 벗의 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그것도 기꺼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십 년이 지나면, 한쪽으로 하여금 너무 열렬히 사랑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하여금 지나치게 까다로운 압제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던 이유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관습뿐이어서, 지난날 질베르트가 내게 거절했을, 그녀에게는 견딜 수 없고 있을 수 없어 보였던 모든 것을, 이제 그녀는 아주 선선히 내게 허락했다. 아마도 내가 더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둘 다 이 변화의 까닭을 스스로에게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늘 기꺼이 나를 찾아오고 서둘러 떠나려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장애물이, 곧 나의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얼마 뒤 탕송빌에서 며칠을 보내러 갔다. 그 여행이 나로서는 꽤 성가셨는데, 파리에 여자 하나를 두고 있었고 그녀가 내가 빌린 독신자용 아파트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남들이 숲의 향기나 호수의 잔물결을 필요로 하듯, 나는 밤이면 그녀가 가까이에서 잠들고 낮이면 마차 안에서 늘 내 곁에 있어 주기를 필요로 했다. 하나의 사랑이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그것은 뒤이어 올 사랑의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이전 사랑의 한복판에도, 우리 스스로는 그 기원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날의 습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날의 어떤 고뇌가 우리로 하여금 그리움에 잠겨 생각하게 하고, 이윽고, 그 뜻은 잊힌 채 굳어 버린 관습처럼 항구적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들이 있었으니, 연인의 문 앞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는 귀갓길이라든가, 그녀가 우리 집에 머무는 일이라든가, 그녀의 모든 외출에 우리가, 혹은 우리가 믿는 누군가가 따라붙는 일 같은 것이었다. 이 모든 습관은, 우리의 사랑이 날마다 지나다니는 크고 한결같은 큰길처럼, 오래전 뜨거운 감정의 화산 불길 속에서 벼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습관들은 여자보다 오래 살아남고, 여자에 대한 기억보다도 오래 살아남는다.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다른 사랑들과 번갈아 드는 어떤 사랑들의 틀이 된다. 그리하여 나의 집은, 잊힌 알베르틴을 기리듯, 손님들에게는 숨기던 지금의 정부(情婦)가 곁에 있기를 요구했다. 그녀는 지난날 알베르틴이 그러했듯 내 삶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탕송빌로 떠나기에 앞서 나는 그녀에게, 며칠 동안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내 친구 하나에게 몸을 맡기고 있겠다는 약속을 받아 두어야 했다.

준비 중…